1자가 6개나 되는 기념비적인 날 내장산을 찾았다. 11월은 몰골 자체가 외롭다. 저채도로 바뀌는 모호함이 더욱 쓸쓸하다. 단풍 구경 제대로 가겠다고 아껴둔 것이 때를 놓쳐 모두 낙엽이 되었다. 내장사 뒤란의 감주저리만 풍요롭다. 산을 오르는데 무언가 불편함을 느꼈다. 아뿔싸! 구두를 신고 온 것이다. 정신없는 삶이 진저리가 나지만 상습적이라 자책마저 무모하다. 비자나무숲을 지나며 레바논 산맥의 아름다운 백향목이 생각났다. 가랑비 맞으며 불출봉정상에 오르자 운무가 사방을 뒤덮은 경이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이 멋진 순간은 한해를 잃은 단풍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하산 길은 젖어 있고 짓밟힌 낙엽은 총 맞은 카다피처럼 처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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