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형 할인마트에서 일하는 박모씨(54)는 아들 생각만 하면 화가 난다. 지방대를 나온 아들(29)은 1년 6개월째 백수 신세다. 박씨가 취업전선에 뛰어든 것은 취업준비하는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다. 박씨는 한달에 110만원을 받아 거의 아들한테 쓴다. 하지만 요즘 들어 박씨는 아들이 취업을 할 의지가 없어 보여 답답하다. 입사원서도 내지않고 그저 건성으로 도서관과 집을 오갈 뿐이다. 박씨의 아들은 취업을 포기한 전형적인 ‘니트족’(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다. 박씨는 “언제까지 아들 대신 돈을 벌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2 결혼 2년차 아들을 둔 김모씨(57)는 넉달 전부터 아들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결혼할 때 구한 신혼집은 전세금을 한번에 5천만원이나 올려달라 하자,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된 아들 부부가 아예 짐을 싸들고 부모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겉으론 며느리가 ‘시집살이’를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김씨가 ‘며느리살이’를 하고 있다. 맞벌이 하는 며느리를 대신해 청소·빨래·식사준비는 기본이고, 손녀를 돌보는 것도 김씨의 몫이 됐다. 김씨는 “자식이니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다 늙어서 내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려니 몸과 마음이 지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3 윤모씨(55)의 남편은 2년 전 명예퇴직을 당했다. 중견기업에서 30년 넘게 일하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윤씨의 남편은 최근까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윤씨는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남편에게 매일 세끼 밥을 챙겨주느라 2년째 제대로 된 외출 한번 못했다. 남편은 예전과 다르게 가끔 감당할 수 없는 화를 내곤 해 윤씨는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다. 노후준비도 제대로 못한 형편인데, 막내 아들은 아직 대학생이고 딸은 결혼을 앞두고 있어 앞으로 돈 들어갈 일을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이다.
2011년 대한민국 50대 아줌마들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이들도 한때는 ‘우아한 중년’을 꿈꿨다. 자식들 시집 장가 보내고 나면 남편과 둘이서 여행도 다니고, 손자 손녀 재롱이나 보면서 취미생활을 즐기는 여유로운 삶…. 그러나 중년 아줌마들의 그런 꿈은 말 그대로 꿈으로 끝났다. 요즘 50대 아줌마들의 상당수는 백수 자식 대신 돈을 벌고, 며느리 눈치 봐가며 손녀 손자 키우느라 등골이 휜다. 취직이나 결혼을 못한 자식 걱정에 잠을 설치고, 명예퇴직한 남편의 노후 고민까지 짊어지기 일쑤다. 그래서 50대 아줌마들이 남몰래 울고있다.
다 큰 자식 대신 돈을 버는 엄마는 우리에게 더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통계청은 올해 2분기 50대 여성의 고용률(취업인구비율)이 59.3%로 같은 기간 20대 남성(58.5%)과 20대 여성(59.2%)의 고용률을 모두 앞질렀다고 발표했다. 50대 여성 취업자 수는 209만3천명으로 10년 전보다 87만6천명(72%)이나 늘었다.
대학 나와 취직한 자녀에게 용돈을 받아 쓰며 지내야 할 50대가 취업 전선에 나선 것은 반길 일이 아니다. 그 속내를 알고나면 씁쓸하기 짝이 없다. 자기 성취를 위한 게 아닌, 가족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 마련을 위한 생계형 취업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기혼여성, 더구나 직장 경력없이 전업주부로 지냈던 50대 여성이 갑자기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식당 주방보조나 청소부, 가사도우미, 노인요양사 등 단순노동이나 신용카드 모집인 같은 서비스업이 대부분이다. 하는 일이 고달픈데 비해 신분은 임시직·계약직으로 불안하고 수입도 최저임금 수준에 만족해야 한다.
자식을 가르쳐만 놓으면 부모를 부양하던 메커니즘은 이미 깨졌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100세 시대를 외치지만 노후 준비는 안 돼 있다. 베이비붐 세대 은퇴가 본격화하고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더 많은 50대 엄마가 일터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과도한 교육비 부담, 청년실업, 무너진 부모부양 시스템 등 50대 엄마를 일터로 내모는 요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어머니, 당신은 위대합니다”라고 위로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너무 부끄럽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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