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중산층의 기준은 무엇일까? 한 연봉 정보 사이트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부채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월 급여 500만원 이상, 2천CC 이상의 중형차, 잔고 1억원 이상의 예금액, 1년에 1회 이상의 해외여행’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인터넷에 소개된 ‘중산층의 기준’이란 글에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도 소개되고 있다. 영국은 ‘페어플레이를 할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나만의 독선을 지니지 말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불의·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이라고, 옥스포드대에서 제시한 기준이 소개돼 있다. 프랑스는 ‘외국어 하나는 할 수 있을 것, 스포츠 하나는 즐길 수 있을 것, 악기 하나는 다룰 수 있을 것, 남의 집과 다른 요리솜씨 하나를 지닐 것, 공분(公憤)에 의연히 참여할 것,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할 것’ 등이 제시돼 있다.
우리나라는 중산층의 기준을 ‘돈’으로 봤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생각과 행동’에 두고 있다. 영국은 중산층의 정신적 조건을, 프랑스는 생활의 질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국민 50.1% ‘나는 저소득층이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얼마전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8월 현재 46.4%에 불과하다. 2011년 소득을 기준으로 통계청이 분류한 중산층 비중은 64%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주관적인 중산층 비중은 이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이에 반해 ‘나는 저소득층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50.1%를 차지했다. 통계청의 소득 기준 저소득층 비율 15.2%보다 세 배 이상 많은 수치다. 스스로 고소득층이라고 답한 비율도 1.9% 뿐이다. 이 역시 통계청의 고소득층 비율(20.8%)에는 한참 못 미쳤다.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 정도에 대한 인식도 심각했다. 중산층의 78%, 고소득층의 75%, 저소득층의 77%가 ‘우리 사회의 소득·재산 분포가 불평등한 상태’라고 응답했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1인당 GDP는 6천달러에서 2만달러로 3배 이상 증가했으나, 중산층의 비중은 1990년대 75% 수준에서 2011년 현재 64%까지 내려왔다. 이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 온도는 더욱 심각하다. 실제 중산층의 상당수가 자신을 심리적으로 저소득층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 중산층 복원 대안 내놔야
자신이 저소득층으로 내려갔다는 응답자들은 소득 감소와 부채 증가를 그 이유로 들었다. 이들의 98.1%는 아예 계층 상승 기대감을 접고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체념했다.
세대별로 보면 20대는 불안정한 일자리, 30대는 대출 이자와 부채 증가, 40대는 과도한 자녀교육비, 50대는 퇴직과 소득감소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우리사회의 총체적 실패가 중산층의 심리적 패배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중산층은 우리 경제의 중심축이자 버팀목이요, 빈부·이념 등 각종 갈등을 완충하는 사회 안전판이다. 사회 통합과 안정적 성장에 중요 역할을 하기에 중산층이 두터워야 건강한 사회다. 중산층의 안정 없이는 경제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중산층이 희망을 잃으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그러기에 중산층의 심리 위축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중산층 의식이 희미해지면 중산층 붕괴는 시간 문제다. 외환위기·카드사태·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중산층은 얇아졌다. 앞으로 ‘88만원 비정규직’ 세대가 신(新)빈곤층으로 고착되고, 은퇴하는 베이비부머의 자영업 창업이 대거 실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머지않아 중산층 붕괴가 눈앞의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중산층의 붕괴를 그냥 바라만 볼 수는 없다. 붕괴돼 가는 중산층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희박해진 중산층 의식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 해법이 제시돼야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중산층과 중산층 의식을 튼튼히 하는 정책으로, 중산층에게 희망을 주는 계기가 돼야 한다. 대선 후보들은 복지와 경제민주화에 앞서 어떻게 중산층 붕괴를 막을지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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