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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기행을 떠나다]3. 강진·흑산도에서 만난 실학의 혼

경국제세(經國濟世)의 혜안으로, 담대한 조선의 새 길을 열다

1. ‘다산문학’은 인간학과 경학의 만남이었다

2. 밤남정 주막집의 두 형제이별

3. 강진·흑산도에서 만난 실학의 혼

4. 유배지서도 꿈에 그리던 고향 ‘초천’

5. 유네스코선정 ‘2012세계문화기념인물’

다산학(茶山學)을 대표하는 중심 가치는‘인간’이다. 6경4서를 집대성 재창안한 실학(實學)의 주체는 단연 ‘인간 중심’이었다.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가 올해 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을 기해 그를 ‘2012세계기념인물’로 꼽은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다산 선생이 200년 전 당시의 조선사회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세계 인류사회에 남긴 위대한 학문적 업적 때문이다.

다산의 걸출한 학문에 대해, 한마디 ‘헌사(獻辭)’를 붙인다면 어떤 말이 가장 적합할까? 이에 필자는 감히 ‘경국제세(經國濟世)’란 말을 떠 올려 본다. 조선후기 혼란을 거듭했던 시대, 국가기틀을 바로 세우고 ‘백성들이 바라는 세상’을 꿈꾸며 경세학(經世學) 곧 실학이라는 거대학문의 물줄기를 끌어 온 다산에게 그 말이 꼭 들어맞을 것 같다는 느낌에서다.

‘2012실학기행’ 일행 80여 명은 지난 9월초 2박3일간 계속된 여정 속에서 차량이동 중, 또는 강연회를 통해 ‘다산이야기’로 시종 함께했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다산에 대해 읽고 듣고 느낀 감회나, 생애를 바쳐 이룩한 대학자의 성과에 대해 돌아가며 한마디씩 남겼다. 일행은 한결같이 다산에 대한 흠모와 어둡던 한 시대의 희생양으로 전락한데 대한 안타까움,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마침내 대학자로서 우뚝 선 선생의 인생여정에 끝없는 찬사와 경하의 말들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이왕 다산실학기행에 나선 김에,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200년 시간여행’도 겸해 답사를 떠나 보기로 하자. 

▣ ‘실학’은 다산이 인류사회에 남긴 큰 업적

때는 1801년 11월23일경(음력), 우리일행은 ‘대역죄인’의 올가미를 뒤집어 쓴 채 유배의 몸으로 강진까지 끌려온 다산 정약용(40세)을 만나보게 됐다. 얼마 전(1799년·38세)까지 병조참판·형조판서 벼슬에다, 정조대왕의 총애를 아낌없이 받아오던 조정대신이었다. 그러나 왕조가 바뀌면서 그 동안 숨죽이며 노려왔던 시기와 모함에 걸려, ‘죄인된 몸’으로 한양서 끌려와 강진읍 동구 밖 당산나무 옆 허름한 초가주막 앞마당에 당도했다. 읍마을 사람들이 구경삼아 우르르 몰려들었다. 밤이 되자 다산이 갇힌 옥문을 발로 차고 달아나는 사람도 있었다. 다행히 주막집 노파의 배려로 주막 한켠 골방에서 귀향살이를 하게 된다. 얼마 후 다산은 이 허름한 골방을 ‘사의제(四宜齊)’라 이름 붙이고 글방으로 삼았다. 생각, 행동, 용모, 언어 네 가지를 늘 바르게 하자는 뜻에서였다. 황량한 유배지에서, 다산의 학문은 이렇게 고독하고, 한없이 초라한 가운데 시작하게 되었다.

강진읍 주막집 한 켠에 마련한 ‘사의제’가 ‘상례’연구의 산실이었다면, 몇 년 뒤 인근 백련사 혜암스님이 마련해 준 거처 ‘고성사’는 ‘주역’연구의 산실이었다. 뒤이어 마련된 거처 ‘다산초당’에서는 ‘경세유포’를 비롯해 ‘목민심서’ 등 수많은 경세학연구서를 저작하게 된다. 다산은 울적할 때면, 이곳 다산초당 옆 산등성이에 올라서서 눈 아래 펼쳐지는 구강포(九江浦) 앞바다를 바라보며, 남서해상 고도(孤島) 흑산도로 유배가 있는 4살차이 둘째 형 손암 정약전(1758~1816)을 그리곤 했다. 손암 형은 다산의 저작에 대한 해박한 분석과 조언을 해 주는 정신적 스승이기도 했다.

▣ “마음붙여 살아갈 것이라곤 필묵 뿐”

다산의 학문적성취가 남달리 뛰어난 것은, 그가 평생을 다해 이룩한 500권의 방대한 저술작업들이 한 인간으로 그처럼 견디기 힘든 혹독한 시절 귀양살이 중에 완성됐다는 점이다. 유배 초기, 다산은 자신의 애닮은 심경을 담아 두 아들 앞으로 편지를 써 보낸다.

나는 천지간에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서있는지라

마음 붙여 살아갈 것이라곤 오직 글과 붓이 있을 뿐이다.

문득 책의 한 구절이나, 마음에 드는 한 곳을 만났을 때

다만 혼자서 읊조리거나 감상하다가 이윽고 생각하길

이 세상에서는 오직 너희들에게나 보여줄 수 있겠다 여긴다(중략 )

폐족이 되어 사람들이 너희를 천하게 여기고

세상에서 얕잡아 보는 것도 서글픈 일인데

열심히 배우지 않고 스스로를 포기해 버리면

내가 해 놓은 저술과 간추려 놓은 것들은

앞으로 누가 모아서 책으로 엮고 교정하며 정리하겠느냐

‘두 아들에게’ 1802년 12월22일

임술년(1802) 한해를 마무리하려는 뜻에서였던지, 다산은 두 아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유배생활 1년을 보내고 난 후에 쓴 글이었다. ‘몰락한 집안 자식으로, 그나마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일 한 가지밖에 없다. 독서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이다’ 라는 말로 극구 ‘학문’할 것을 권하고 있다. 폐족이라는 낙인 때문에 벼슬길마저 막힌 두 아들을 훌륭한 선비로 키워내려는 아버지의 지극한 정성이 묻어나는 편지였다.

온 천지에 의지할 곳 없어 한없이 외롭지만, 유배살이 동안 ‘오직 글과 붓’만을 의지해 저술한들 세상에 누가 이를 보고, 누가 책으로 엮고 정리하겠느냐며 탄식하는 대목에 가슴이 아려온다. 다른 한편, 그 글속에 다산의 학문연구에 대한 불타는 심경이 담겨있기도 하다. 부자간 서신으로 나눈 이 대화 속에 다산학문 전체를 꿰뚫는 고뇌와 방향, 핵심이 담겨있다고 본다. 혹독한 유배시기를 보내면서도, 다산실학의 혼(魂)은 그렇게 태동해 가고 있었다.

▣ 유배살이 중 ‘다산실학의 혼’ 태동

‘다산학’은 자신의 관료시절과 6경4서의 경학 등을 경험론적 시선에서 집대성해 정립된 학문이다. 실학은 고대 중국 공자, 맹자의 유학사상과 철학을 대표하는 경전에 새로운 주석을 바탕으로, 또한 중세의 관념론적인 성리철학의 세계관, 인성론에서 탈피해 효제(孝悌)를 근본으로 하는 실용적 학문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 같은 논리위에 실행(實行)을 앞세운 것이 다산의 ‘실천철학’이자 ‘사상체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기본윤리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이 닦이면 다음단계도 절로 열린다고 하는 것이 바로 다산철학의 중심이다.

실학자요, 철학자인 다산 정약용의 ‘실학’을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1724~1804의 ‘실천이성(Practical Reason)’에 비견하는 학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칸트 저작 가운데 인간의 존엄을 가장 명징한 언어로 구사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 ‘실천이성비판’이 그것이다. 물론 보다 많은 학자들은, 칸트의 9서5제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순수이성비판’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반인 중에, ‘칸트 저작에서 딱 1권’을 택해 읽는다면 ‘실천이성비판’ 이라고 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천이성비판에서 인간이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가를 명백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다산은 자기시대의 철학적 돌파구를 찾기 위해, 한때 서학(천주교)이라는 외래사상을 이용하고 ‘경험철학’의 어떤 지점에 이끌어와 창조적으로 변용하고 종합해내고 있다. 그는 외래사유를 활용하는 전략으로 ‘실천철학’의 지평을 확대하고 지지의 토대를 보강하고자 했다.

▣ 다산 ‘실학’은 칸트의 ‘실천이성’에 필적

다산은 그러면서도 한국인의 사유체계를 가장 잘 방증하고 있는 학자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동양인의 사유체계를 가장 잘 표현한 학자 역시 그다. 실학자적인 입장에서, 중국서 전래된 서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는가 하면 고대와 근대 동양사상과 철학을 망라한 6서4경을 관통했고 이를 수정보완해 경학서(經學書)로 완성한 학자이기도 하다.

다산은 19세기 말, 당대에 제기된 많은 국가사회 문제와 백성들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비판하면서 수 많은 연구저작물을 발간하였고, 경학(經學)을 인간학적 측면에서 재정의하여 ‘실학’이라는 학맥의 저변을 인류에게 남겼다. 다산의 꿈은 동양의 경학사상을 ‘실천학문’으로 변모시켜 ‘세상을 경륜’하고 ‘백성에게 혜택’을 고루 돌리어 행복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다산과 거의 동시대 학자로 활동해 온 칸트도 ‘실천이성비판’을 내세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연구·정의하고, 소외받은 인간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가졌던 학자로 분류된다. 칸트에게 철학은 ‘모든 가능한 것의 과학’으로 규정된다. 이 또한 다산사상과 맥을 함께 한다. 칸트철학은 인간행위를 두 가지 방향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하나는 존재론 우주론 합리성 심리학이 속하는 ‘이론철학’이며, 다른 하나는 윤리학 경제학 정치학이 포함된 ‘실천철학(Practical Philosophy)’ 이다. 칸트는 또 ‘좋은 사회냐, 아니냐에 대한 대답은 소외 계층의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느냐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 ‘다산학’의 현대성 연구 및 조명 절실

칸트의 ‘실천이성’은 6경4서를 통달하고 근현대 동양철학을 재조명한 다산이 꼭 하고 싶은 말이었다. 칸트의 글을 보노라면, 그 보다 약 30년(1세대) 후세 학자인 다산이 학문적으로 그의 ‘실천철학’을 ‘실천학문(실학)’으로 계승했던 것 아닌가 싶은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다산 정약용의 ‘실학’에 대한 연구는 올해 장 자크 루소, 헤르만 헷세 등과 함께 ‘세계기념인물’ 반열에 오른 것을 계기로 향후 더욱 봇물을 탈 것으로 보인다. ‘다산학’이 종래 동양철학 및 사상체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주 의제이자 메뉴였다면, 이후로는 앞의 글 다산-칸트의 공통논제라 할 수 있는 ‘실천철학으로서의 유학(儒學)’에서 보듯 ‘동-서철학 비교’ 대상으로 적합할 다산학에 대한 연구 폭이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다산실학이 태동한지 200년이 지난 오늘날, ‘왜 다시 다산인가’ 의아 할 정도로 다산연구가 부쩍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니, 그 배경과 원인에 유념하고 현상 및 방향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정부와 학계가 ‘21세기 다산실학의 현대적 조명’에 보다 관심있게 주목하고, 종합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할 필요와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할 것이다.

글=구동수 (사)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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