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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2 (수)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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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내무실덕(內無實德) 외의무익(外儀無益)

청매선사(靑梅禪師)는 1548년에서 1623년까지 이 땅에 인연하셨고 임진왜란 때에는 3년간 의병활동을 하신 분이다. ‘십무익송(十無益頌)’이라는 뛰어난 가르침을 남기셨는데, 그 여섯 번째에 ‘내무실덕(內無實德)이면 외의무익(外儀無益)’이라 하신 부분이 있다. ‘안으로 실다운 덕이 없으면 밖으로 보기 좋은 위의를 나타내도 참다운 이익이 없다’는 뜻이다.

이번 6ㆍ4지방선거 후 경기도에서는 여야의 정치인들이 상호 장점을 인정하고 함께 협력적으로 도정을 운영해 보자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고 느끼는,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먼저 마음 안으로부터 진실한 상호존중과 상생의 가치를 지녀야 할 것이다.

여야 협력적 도정 시도 ‘반가워’

외형적으로 겉모습에만 치중하면 경기도 발전을 이루는 좋은 결과는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청매선사의 가르침처럼 실답고 진실한 덕목으로 안과 밖이 하나 되는 훌륭한 정치발전을 이루기 바란다.

18세기 조선의 문화 르네상스 시대에 참으로 가슴 저리게 아름다운 교유를 이룬 분들이 있었다. 바로 다산 정약용과 강진 백련사의 혜장선사이다. 다산은 두 해 전에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 인물에 지정됐다.

그의 뛰어난 안목 그리고 많은 분야의 훌륭한 저술 활동과 통섭의 삶이 세계 문화사적으로 뛰어난 평가를 받은 것이다. 또한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지금의 우리 공직사회에서 가장 모범적인 지도자상에 대한 다산의 철학과 가르침은 더욱 필요하게 되었고 새롭게 빛을 발하고 있다.

다산은 정조대왕께서 안타깝게도 일찍 승하한 후에 강진에 유배를 가게 되는데, 유배 초기에 매우 많은 고생을 하였다. 주막뒷방에 겨우 몸을 의탁하여 병고 속에서 지냈다. 몇 년 후 다산은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백련사 뒷산에 있는 다산 초당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그 곳에서 유학을 새롭게 해석하며 많은 개혁적 저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강진 백련사에 있는 혜장선사를 만나게 된다. 혜장선사는 여러 면에서 다산을 도와주고 함께 공부하고 친하게 교유하게 된다. 다산은 불교 서적을 읽고 배우며 혜장선사는 주역을 새롭게 공부한다. 다산은 백련사 녹차를 알게 되고 차를 즐겨 마시고 앓고 있던 속병도 차츰 낫는다.

두 사람은 뒷산을 오가며 자주 만나서 함께 공부하고 세상사를 논하곤 했다. 백련사 뒷산에 초당이 있었고 두 사람은 친근한 형제처럼 10여년의 세월을 함께 한다. 그 아름다운 교유의 산책로가 있는 산을 차가 많이 난다하여 다산(茶山)이라 한다.

얼마나 차를 좋아 했으면 그 호를 다산이라 하였겠는가? 초당에서 안정된 생활이 되면서 다산은 활발한 저술활동을 한다. 유학자와 불교수행자가 서로 배우고 도와주며 녹차를 함께하며 아름다운 사상과 문화의 교유를 이룬 것이다. 다산의 열린 통섭의 철학과 교유의 한 단면이라고 하겠다.

다산은 해배된 후 남양주 고향집에서도 노론의 학자들과도 폭넓은 정치적 교유를 한다. 본래 다산은 남인이다. 다산은 또한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 등과도 깊은 친분을 가지고 있다. 추사체로 유명한 김정희 선생도 다산과 다른 정파에 속해 있었다. 초의 선사는 다산에게 좋은 녹차를 많이 보내준다. 다산은 이를 귀한 약으로 여겼다.

다산과 혜장선사 이미 모범 보여

조선 후기의 수준 높은 차 문화가 이렇게 형성되기 시작한다. 다산의 이러한 폭 넓은 교유는 그 시대에서도 상당히 앞서고 뛰어난 것이었다. 그런 중심에 혜장 선사도 있었던 것이다.

다산과 혜장선사처럼 이번에 우리 경기도의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참으로 실답고 아름다운 협력과 존중의 가치를 실현하기 바란다. 진정 정조대왕과 다산의 꿈을 실현하는 진실한 토대를 이루기를 모든 경기도민들은 지켜보고 있고 기다리고 있다. 꼭 이루기를 바란다.

인해 스님 용주사 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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