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축제’ 그리고 비지니스다. 패션을 사랑하는 전국의 젊은 청춘들과 멋쟁이 패셔니스타들은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춘삼월을 맞아 서울의 랜드마크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로 몰려들었다. 젊은이들의 다양한 패션은 자신만의 개성과 트랜드를 맘껏 뽐내며 DDP를 우주의 정거장 같은 패션 해방구로 만들었다.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청춘들은 마치 파파라치처럼 패션피플들을 쫓고 그 대상인 피사체들은 매일 화려하게 시크한 표정으로 바뀐다.
찍는 사람이나 찍히는 사람이나 한 낮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 모두가 패션마니아들이었다. 행사 때문에 DDP를 방문한 바이어와 프레스는 말할 것 없고 동대문 시장을 찾은 관광객들도 이러한 패션 축제를 같이 즐기고 소통한다. 지구촌 멋쟁이들로 가득 채워진 DDP는 분명 서울의 또다른 얼굴이다.
올 가을/겨울 유행 경향을 미리 선보인 서울패션위크에서는 실내에서 진행된 기라성 같은 디자이너들의 58회에 걸친 서울컬렉션과 야외무대에서 펼쳐진 젊은 루키들의 21회에 걸친 제너레이션 넥스트 컬렉션 등 모두 79회의 패션쇼가 6일간 숨 가쁘게 진행됐다. 약 5만5천6백명에 달하는 수많은 관객들은 마치 밀물과 썰물이 빠져나가듯 파도처럼 DDP를 휘감아 돌아 마치 강강수월래를 보는 듯했다.
젊은 스트리트 사진작가들이나 스타일 블로거들은 자신의 블로그를 위해, 아니면 새로운 트랜드를 포착하기 위해 야수의 눈빛으로 사람들의 옷차림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했다. 옷차림으로 수많은 시선들을 유혹하는 특별한 광경은 시골 사람들을 서울 나들이에서 미아로 만들어 버린다.
보름 가까이 오디션, 피팅, 리허설 등으로 지친 모델들이지만 패션쇼 음악이 시작되면 긴장한 눈빛과 카리스마로 수천 개 눈동자들을 클론으로 만들어 버린다. 시간과 공간이 교차되는 동대문의 거대한 우주선 안은 일주일간 지구촌 패션 축제의 장이 된다.
이번에 선보인 이상봉 컬렉션은 지난 2월에 진행된 뉴욕패션위크 때와 다른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진정한 나를 담고 싶었다. 영화 ‘와호장룡’에서 나온 주윤발과 장쯔이의 대나무밭 결투를 생각하며 두 마리 새가 위태롭게 지탱하며 춤추는 모습에서 무엇이 강함이고 무엇이 진실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얀 천 350야드를 길게 겹겹이 늘어뜨리고 영상으로 화려한 목단을 먹으로 그려놓아 잠시의 영광도 순간의 먹물처럼 흘려내리는 하얀 백지의 미학을 비움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왜 ‘와호장룡’의 죽음의 결투에서 극단적인 아름다움을 느꼈을까. 세상의 미련을 버리는 초탈의 무념무상을 느끼고 싶었을까. 사실 이번처럼 담담하게 패션쇼를 마친 건 처음인 것 같다.
패션쇼가 끝난 뒤 프랑스 파리 모드아트의 학장, 학생들과 함께 K-패션 쇼룸인 ‘르돔’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섬유, 패션, 봉제의 행사장마다 열정으로 참여하는 전순옥 의원과 함께 한국 패션과 프랑스 패션의 만남을 가졌다.
지금 하이엔드 패션 수출에서 중국 바이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70%가 넘는다. 이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지만 5년 정도는 유효할 듯하다. 그들은 이미 서울에서 빅 바이어로 바잉 파워를 과시하고 있으며 동시에 K-패션을 즐기고 있다. 어느새 한국 디자이너들은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야하는 시대에 와있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하이패션이 중국 수출에 있어 작은 비중을 차지할지는 모르지만 우리 디자이너들은 감성과 문화를 파는 디자인의 최첨단에 서 있다. 이제 매일 찾아오는 중국 바이어들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친숙해졌다. 어쩌면 그들을 위해 중국에서 따로 패션쇼를 해야 하는 날이 곧 올지도 모른다.
중국인들의 옷차림과 얼굴이 변해가고 이제는 감성마저 우리를 닮아간다. 몇 년 뒤에는 한국 패션 잔치를 그들을 위해 벌일 수도 있음을 걱정하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마지막으로 이번 서울컬렉션에서 패션쇼를 열고 동료 디자이너들의 패션쇼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진실이 있었다. 바로 패션 행사의 주체가 관에서 패션 전문가로 전환이 되어야 창의적인 디자이너 육성을 할 수 있고 한국 패션의 발전에 무지개가 뜰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진실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되길 기원해 본다.
이상봉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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