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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단상] 준비된 대통령이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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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취임 이후 한결같이 “명목세율 인상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문 정부가 내놓은 국정 100대 과제는 무려 178조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무슨 돈으로 할 거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슬그머니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대한 ‘표적 증세’ 방안을 내놓았다. ‘명예 과세’라는 단어로 억지 포장하려 했지만 대통령의 말 바꾸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번 세제개편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추가로 걷는 세금이 3조 7천800억원이라고 한다. 국가의 조세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일관성과 신뢰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액수라고는 믿기 어렵다. 이런 말 바꾸기가 언제 또 있을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과 여당이 말을 뒤집었으니 국민의 세정 불신이 더 커져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원전 정책도 비슷한 처지다. 주먹구구식으로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를 중단하려다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욕까지 먹게 되었다.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자 ‘공론화 위원회’라는 탈법기구를 만들어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안보, 복지와도 관계가 깊은 국가 에너지 정책을 법에도 없는 조직이 3개월간 논의하고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제대로 된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죽하면 ‘신고리 5·6호기 공사는 재개하고 대신 낡은 원전을 폐쇄한다’는 억지 출구전략까지 여당 내에서 나오겠는가. 그간의 주먹구구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도 문 대통령의 1만원 공약에 맞추기 위해 올해 16.4%나 올렸다. 논란이 일자 “1년만 해보고 속도를 조절하겠다”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그 1년간 영세기업과 자영업자들이 겪을 피해와 혼란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게다가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르게 되면 자영업자의 원가구조와 수익에 큰 변동이 생겨 일자리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뒤흔들어놓고 뒤늦게 속도 조절을 하겠다니 누군들 이 장단에 맞춰 살 수 있겠는가.

 

정부 정책은 일관성과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 희망과 시장 상황이 따로 가기 쉽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대책이다. 당시 부동산 거래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와 세금 폭탄으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일부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았지만 일시적 효과에 그쳤다. 정책의 실효성을 의심한 사람들은 오히려 매물을 거둬들이고 집값 상승을 기다렸던 것이다. 결국 힘겨루기 속에 전·월세 공급이 줄어들어 전·월세 값이 급등했고 매매가격도 폭등했다. 정부 의도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달 초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노무현 부동산대책 시즌 2’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의 이상 급등과 투기 단속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공급확대가 빠진 수요억제 대책만으로 정책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교육부가 ‘수능 절대평가’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도 ‘아니면 말고’의 대표적 사례다. 2018학년도부터 영어에 적용하여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과연 끝까지 해낼지, 아니면 중간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릴지 국민으로선 대응하기 어렵다. 국민 생활에 영향이 큰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국민은 피곤해지고 시장에서는 부작용만 커지게 마련이다.

 

문 정부가 인수위 없이 출범했음을 감안하더라도 이렇게 아마추어 식이라면 곤란하다. 국정운영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달려있는 실제 상황이어서 연습게임하다가 원위치에서 쉽게 재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을 두려워하며 국정운영에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심재철 국회부의장(자유한국당·안양 동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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