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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 칼럼] 이땅에 펼쳐지는 三國志 계략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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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조조는 황급히 도망치다 진궁이라는 지방수령에게 붙잡히고 만다.

 

그러나 진궁은 조조의 수하에 들어가 그를 풀어주고 자신도 함께 조조를 따라 도망친다. 조조와 진궁은 이렇게 같은 동지가 되어 조조의 백부되는 여백사의 집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런데 잠을 자다 칼가는 소리에 잠을 깬 조조는 여백사의 친족들이 자기를 죽이려는 것으로 판단, 칼가는 사람에게 달려가 목을 쳤다.

 

하지만 이것은 조조를 대접하기 위해 돼지를 잡으려고 칼을 가는 것이었다. 뒤늦게 이를 알고 조조는 후회했지만 다시 집을 나와 도망가는데, 출타했다 돌아오는 백부 여백사를 길에서 마주쳤다.

 

조조는 아무것도 모르고 반가워하는 여백사까지도 죽여버린다.

 

진궁이 조조에게 묻는다.

“여백사는 당신의 백부님이 아니시오? 그런데 왜 죽이시오?” 그러자 조조가 대답한다. “내가 세상을 버리게 할지라도 세상이 나를 버리지는 않게 하겠다” 말하자면 여백사를 살려두면 자기 혈육을 죽인 조조에게 원한을 갖게 되니 아예 후환의 불씨를 없애야 한다는 것. 이것은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지 열 번 읽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식자층에서 평가 받고 있다. 그만큼 삼국지에는 군사는 물론 세상 살아가는 계략이 총동원 되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처럼 되어있다.

 

적을 그럴 듯 하게 속이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거나 자해까지 하는 고육계(苦肉計), 동쪽을 치기 위해 서쪽을 치는 척 하는 양성계, 아름다운 여인을 등장시키는 미인계, 병에 걸린척하여 상대를 교란시키는 사병계(詐病計) 등등 이 모든 것의 핵심은 정당한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책과 계략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특히 정치인들이 삼국지식 정략에 빠지고, 건강한 꿈을 가져야 할 젊은이들이 계략을 선호하면 비전 없는 정치, 비전 없는 삶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1996년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ㆍ김종필의 소위 DJP연합이라 하여 새천년민주당과 자민련(자유민주연합)의 공동정부가 출발했으나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민련 국회의석이 17석으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다.

그러자 민주당에서 송석찬, 장재식, 배기선, 송영진 4명의 의원을 자민련에 꾸어주어 겨우 교섭단체를 만드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제갈량의 계책으로 유비와 손권이 동맹을 맺고 적벽전투에서 조조군을 무찌른 것에 비길 수 있는 ‘삼국지’식 정치계책이다.

 

그래서 우리 정치인들은 삼국지를 교과서나 되듯 걸핏하면 삼국지에 나오는 고사를 곧잘 인용하는데 우려스러운 일이다.

 

특히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에서 ‘협치’라는 이름으로 ‘협치’ 아닌 삼국지식 정략만 무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때 국민의당 연정설이 나오더니 급기야 바른정당과의 통합설, 그리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설 등등 마치 2000년전 삼국지 무대가 이 땅에서 정치공학(政治工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펼쳐지는 것 같아 건강하고 깨끗한 정치발전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우려스럽기만 하다.

 

모든 것이 진화하는데 우리 정치만 진화하지 않고 삼국지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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