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내에서 교육적으로 자체 해결이 가능한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사안까지 학교폭력으로 다뤄져 행정심판이나 소송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매우 많다.
정도가 심한 학교폭력은 피해자의 보호와 학교폭력의 방지를 위해서라도 엄중하게 다루어야 함은 백번 옳다. 그런데 현행법상 학교폭력이 아무리 가벼운 사안이라도 당사자 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의무적으로 학교폭력자치위원회(학폭위)의 논의대상이 된다. 대수롭지 않은 사안이라도 섣불리 학교 내에서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거나 학교가 편파적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교육적 해결과 당사자 간의 합의를 유도하기보다는 일단 학폭위를 개최하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학폭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징계 결정을 해도 가해자 측은 위 결정에 불복해 거의 예외 없이 행정심판이나 소송을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학교생활기록부에 징계의 결과가 기록된다는 점에 있다. 가장 낮은 수준의 징계사항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되기 때문에 징계를 받은 학생의 학부모(특히 대학교 진학을 앞둔 고등학교 학부모)는 상급학교 진학에 불이익을 입을까 봐 어떻게든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징계기록을 없애고자 재심, 행정심판, 소송 등 모든 수단을 동원, 온 힘을 다해 끝까지 다툰다.
필자는 인천시 교육청 행정심판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행정심판을 진행하다 보면 참으로 눈물겹다. 피청구인 학교장은 자신의 제자인 청구인 가해학생의 행정심판청구에 대응해 답변서를 제출하면서 청구인 가해학생을 비방하고 있고, 청구인 가해학생은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면서 학교, 선생님 또는 피해학생과 싸우고 있다. 학교 입장을 대변하는 학생부장은 행정심판에 참석해 가해자 학부모와 피해자 학부모의 눈치를 보면서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장래 걱정이 아닌 학교가 피해를 당하지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학교가 자체적·교육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문제를 법적 분쟁으로 비화시키고 난 뒤 학부모들은 제각기 자신의 자녀에게 피해가 갈까 봐 온갖 노력을 하고 싸우고 있고, 학교는 혹시나 불똥이 학교로 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형국이다.
교육부는 뒤늦게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해 현행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상 경미한 처벌(1·2·3호) 사실을 학생부에서 빼는 방안과 피해 학생과 학부모의 동의 아래 학폭위를 개최하지 않고 학교장이 자율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마련한다고 한다. 환영할 일이다.
사소한 다툼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서로 화해를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학교 교육의 한 부분이다. 법과 제도가 올바르게 개선되지 않으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할 줄 아는 용기와 피해를 당하였더라도 서로 이해를 통한 화해와 용서의 미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헐뜯는 소송의 기술이 될 것이다.
법과 제도의 올바른 개선을 기대해 본다.
이현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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