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천대공원의 장미공원에 활짝 핀 장미꽃들을 보았던 기억이 있지만,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인천대공원의 출입을 금지함으로 제대로 보지 못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실천으로 공원의 꽃도 마음껏 보기 어려울 때 한국인이 아니면서도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했던 장미꽃 같은 여인을 생각해 본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인 펄 벅(Pearl S. Buck)이다. 1892년 6월 26일에 태어난 펄 벅은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어린 시절을 중국에서 보내고,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다시 중국에 갔다. 펄 벅은 1931년 중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 ‘대지’(The Good Earth)를 발표하였는데, 이 소설로 1932년 퓰리처상을 받고, 193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중국에 있는 동안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는 논설을 쓰기도 했던 펄 벅은 유한양행의 창업자인 유일한 회장과 만남을 계기로 한국에 관심 두게 됐는데, 1951년에 ‘한국에서 온 두 처녀’라는 소설을 출간하고, 1963년에는 ‘살아 있는 갈대’라는 소설을 출간했다. ‘살아 있는 갈대’는 19세기 말부터 해방 때까지 한국 근대사 격동기에 살아간 한 양반 가족의 이야기를 쓴 소설로 주인공인 김일한은 유일한 회장을 생각하고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 소설을 집필하던 중 펄 벅은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작가들을 초청한 백악관 행사에 참석했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며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일본이 한국을 통제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펄 벅은 “대통령 자리에 있으면서 한국이 일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도 모르십니까? 그것은 마치 미국이 영국의 지배를 받던 때로 돌아가는 소리와 같습니다”라고 정색하며 말했다고 한다.
펄 벅은 1964년 사회복지법인 한국펄벅재단을 설립하고, 유일한 회장에게 부지를 기증받아 1967년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에 한국전쟁 고아와 미군 혼혈아동을 돌보기 위한 <소사희망원>을 건립했으며, 1968년에는 한국 혼혈아를 소재로 한 소설 ‘새해’(The New Year)를 출간했다. 소사희망원은 1973년 펄 벅이 운명한 후 1975년 문을 닫았는데, 2006년 부천시에서 그의 박애 정신을 기리기 위해 소사희망원 자리에 <펄벅기념관>을 설립했다.
펄 벅은 한국을 가리켜 “고결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했다. 펄 벅은 1960년 한국의 농촌을 방문했을 때 소달구지에 볏단을 싣고 자신도 지게에 볏단을 진 채 걸어가는 농부의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펄 벅은 소달구지에 짐을 싣고 자신도 올라타 편하게 집으로 갈 수 있을 텐데 소의 짐을 덜어 주고자 자신의 지게에 볏단을 한 짐 지고 소와 함께 귀가하는 모습을 보고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했다.
소의 짐을 덜어 주려고 배려하는 농부의 마음처럼 우리 조상들은 씨앗을 심어도 하나는 하늘의 새가 먹고, 하나는 땅의 벌레가 먹고, 나머지는 내가 나눠 먹겠다는 뜻에서 셋을 심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배려의 마음이 곧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인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배려심을 가진 민족으로 한국인의 품격을 높여 준 펄 벅의 장미꽃 같은 한국 사랑이 오늘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실천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임봉대 국제성서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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