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한 달간 지낸 적이 있다. 괴테(1749-1832)가 대학을 졸업한 곳이라 그의 동상을 볼 수 있었고, 그가 즐겨 다녔기에 ‘파우스트’에도 등장하는 술집에서 마시기도 하였다.
내가 학생시절 읽으며 가슴 아파하였던 서간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은 그가 친구의 약혼녀 샤르로테에 대한 자신의 실연체험과, 그와 함께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공부하던 한 학생이 유부녀에게 실연당해 자살한 사건(1772)을 소재로 써서 1774년 발표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내용은 젊은 변호사 베르테르가 상속사건을 처리하다가 약혼자가 있는 처녀 로테를 사랑하게 되고,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권총으로 자살한다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순환성성격자 내지 양극성정동장애 환자였던 괴테가 우울했던 시기에 느낀 정서로 주인공의 심정을 묘사하였는데 독자는 이러한 병적 측면을 알 수가 없었기에 작품에 매혹되었고 서유럽 청년들이 소설 출간 이후 30년간 권총으로 자살하는 사례가 유행처럼 번졌다.
근대 철학자 중에 쇼펜하우어는 “자살할 권리가 있음이 인간이 동물보다 낫다는 점이다”고 자살을 옹호하였으나, 볼테르와 몽테스키외는 자살에 반대하였다.
최초로 자살을 관대하게 용서해준 법이 그 유명한 나폴레옹법전(1804)이다. 그 이전까지 천 년간 내려오던 자살 조항이 모두 삭제된 이 법의 공표 후에 유럽 각국은 도미노처럼 법전의 자살조항을 덩달아 삭제하였다.
그러나 아직 서양에서는 종교적, 사회문화적으로 수치스럽게 여기는 풍조가 남아있다. 즉, 자살한다는 말을 할 때 ‘저지른다, 범한다(commit)’는 단어를 붙여 “자살을 저지른다(commit suicide)”라고 표현하고 있다.
1897년 ‘자살론’이라는 책을 출간한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1858-1917)은 개개인과 사회와의 관계가 잘못되면 자살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3가지 자살유형을 들었다. 첫째, 이기적 자살로서 개인이 그가 속한 사회에 융화하는 정도가 부족한 경우(편집형 조현병, 우울증 등). 둘째, 이타적 자살로서 개인이 그가 속한 사회에 지나치게 융화결속되어 그 사회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심정이 되는 경우 (육탄테러, 일본의 할복자살). 셋째, 무통제적 자살(anomic suicide)로서, 사회에 대한 개인의 적응이 갑자기 차단되거나 와해된 경우이다(존경받던 인물이 갑자기 지탄받게 된 경우 등). 그는 개인이 사회집단과의 결속에서 끊겨나온 결과 생기는 사회심리적 고립현상을 ‘아노미(anomie)’라 하여 자살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하였다.
‘2020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 당 26.6명으로 OECD국가중 1위이며 OECD평균(11.5명) 보다 2.1배 높다.
한때 내가 팬이었던 유명 연예인의 자살 뒤에 유가족뿐만 아니라 그 여파로 보이는 자살이 이어졌던 안타까운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유명 연예인의 자살에는 평균 600명 자살의 ‘베르테르 효과’가 있다고 보도된 바 있다(2013 연합뉴스).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비단 연예인뿐이겠는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부터 사람의 생명을 더욱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무책임한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하겠다고 다짐하여 본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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