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민에 고용된 거야! 그러니 약자의 편에 서는 관료가 될 거야!”
넷플릭스 드라마 ‘신문기자’ 중에 남편이 공무원인 부부간 대화다. 정부가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면 무지한 사람 중에는 좌파 같은 소리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무지한 사람들이다. 우파의 가치란 정치는 민주주의 원리로, 그리고 경제는 시장의 원리로 사회를 운영하자는 것이다. 경제를 시장의 원리에 맡기자는 주장은 그 방식이 ‘사회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은 (공정) 경쟁의 원리에 맡겨야 하고, 경쟁은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내기에 불평등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그리고 이 불평등은 경쟁이 공정하지 못할수록 불평등은 커진다. 그 불평등은 사회 갈등의 원인이자 심지어 경제 성장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경제학계의 상식이다.
불평등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민주주의가 해왔다.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수백 년 지속한 이유다. (돈의 힘이 지배하는) 시장의 세계와 달리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리’가 작동하는 세계다. 그리고 한 사회 50% 이상의 소득은 일반적으로 사회 평균 소득보다 낮다. 따라서 정확하게 ‘1인 1표의 원리’가 작동하면 국가는 약자의 편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약자의 편에 선다는 것은 국가 자원(특히 재정자원)이 약자에게 유리하게 배분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부자에 대한 누진세가 강화되고, 빈자에 대한 공적 지원이 강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 교과서가 조세의 기능 중 하나를 소득 재분배로 설정한 이유다. 이러한 약자친화적 정부 운영을 싫어하는, 즉 부자의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부유층들은 국민을 파편화<2022>원자화시키는 ‘국민 갈라치기’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이른바 분할지배(divide and rule) 전략이다. 노동자가 개인으로 파편화돼 사용자인 자본 측과 협상하면 기울어진 역학 관계 때문에 불리한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는 반면, (연대해) 조직노동자로 대응하면 불공정한 계약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역사적으로 사용자 집단인 자본 측이 끝없이 노동조합을 파괴하려 한 배경이다.
‘좋은 정치’란 사회 구성원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해주는 일이다. 사회통합은 그 결과물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해줄 자신이 없을 때 정치는 ‘갈라치기’의 유혹에 빠진다. 사회분열은 그 결과물이다. 국가의 공적 자원을 사익 추구의 대상으로 삼는 집단일수록 갈라치기 전략을 극대화한다. 사회분열이 공동체에 끼치는 피해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갈라치기’는 특히 선거 과정에 고조된다. 이념 갈라치기와 지역 갈라치기는 갈라치기의 전통적 수단이다. 그런데 시대의 변화는 새로운 갈라치기를 만들어낸다. 기술변화와 그에 따른 경제의 플랫폼화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제생태계가 부상하면서 그 충격이 2030, 특히 20대에게 가장 집중되고 있다. 예를 들어, 플랫폼 사업모델은 전통 산업처럼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고, 고용 관계 및 기업조직의 유연화로 노동 및 고용조건도 불안정해진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기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기 어렵다. 그리해 절망감이 크고 분노를 표현할 대상을 찾는 경향이 있다. 2030 중 남성, 특히 이대남의 반페미 정서에 기댄 ‘젠더 갈라치기’ 선거 전략이 정치권에 부상한 배경이고, 여성가족부가 희생양이 된 배경이다. 갈라치기는 논리만으로 해결하기 쉽지 않다. 사실 청년 남성이나 청년 여성 모두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다. 사실 젠더 갈등의 해법은 단순하다. 양성평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양성평등은 구호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교육의 변화는 물론이고 문화 변화도 필요하듯이 시간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양성평등은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 없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2030은 금융 접근 기회의 구조적 불공정으로 자산 불평등에 가장 노출된 세대다. 유동성과 자산가격 급등을 자산축적의 기회로 삼을 수 없었고, 그 결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다. 문제는 이념이나 지역 갈라치기에서 평범한 국민 누구도 승리자가 된 적이 없듯이 젠더 갈라치기에서도 2030은 정치싸움의 소모품일 뿐이라는 점이다. 2030이 승리자가 되는 길은 미래에 대한 불안 대신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2030 앞에 놓여 있는 불공정과 불평등 격차 해소를 정치에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의 소모품이 아닌, 2030 모두가 승리자가 되는 길이고, (이념이나 지역 갈라치기에 휩쓸렸던) 기성세대와 차별화되는 지점이 될 것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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