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 로고
2025.07.02 (수) 메뉴 메뉴
위로가기 버튼

[인천의 아침] 선배 시민과 어르신

image
최재용 연수문화재단 대표이사

어릴 때는 얼른 어른이 되길 바랐지만 막상 어른이 되니 해가 바뀌는 게 달갑지만은 않은 게 나이 든 사람들 대부분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늙었다”거나 ‘노인(老人)’이라는 말을 들으면 질색을 하기 십상이다.

 

고령화사회에 접어들었지만, 전(前) 시대의 같은 나이 때보다 훨씬 젊게 사는 요즘은 이런 현상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급기야 얼마 전 경기도에서는 65세가 넘은 사람을 ‘선배 시민’이라 부르자는 조례를 만들어 통과시켰다.

 

이 조례가 무얼 말하려 하는지는 물론 잘 안다. 그럼에도 그 호칭이 영 어색하기만 하다. 이를테면 나이 든 사람에게 길을 물어야 할 때 “선배 시민님, 길 좀 묻겠습니다”라고 할 건가.

 

이런 어색한 호칭 대신 우리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쓰이고 있는 ‘어르신’이라는 단어가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의 본뜻을 모를 것이다.

 

현대어의 ‘어른’은 중세국어의 ‘얼운/어룬’에서 나온 말이며, 이는 ‘얼우다/어루다’라는 단어의 관형형이다. ‘얼우다’는 ‘시집 또는 장가를 보내다’, ‘혼인하다’라는 뜻이다. ‘어루다’는 ‘성교(性交)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얼운/어룬’은 ‘혼인을 한’ 또는 ‘성교를 한’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의 발음이 바뀌어 ‘어른’이 된 것이다. 원래는 ‘얼운/어룬’ 뒤에 ‘사람’이라는 말이 들어갔지만, 이 말 없이도 사람의 뜻으로 쓰였다.

 

결국 ‘어른’이란 ‘결혼을 해서 남녀 간에 성행위를 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요즘도 결혼을 안 한 사람은 웬만큼 나이가 많아도 어른 대접을 안 해주는 풍습이 조금 남아있는데, ‘어른’이라는 말에 그 이유가 담겨 있다. 결혼을 하고, 어루는 행위를 해야만 말 그대로 ‘어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세국어에서 ‘얼우신/어루신’이었던 ‘어르신’도 ‘어른’과 똑같은 구조에 높임을 나타내는 어미 ‘-시-’가 붙은 말이다. 곧. ‘얼우/어루 + 시 + ㄴ’으로 구성된 단어가 명사로 굳어져 쓰이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살이의 이치와 순서를 따라 ‘어른’이 되고 ‘어르신’이 된 사람들을 굳이 다른 말로 부를 필요가 있을까.

 

세월이 흐르면 늙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그리고 그 섭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게 바로 노인이고, 어르신일 터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나이 든 사람을 뭐라 부를 것인가’가 아니라 늙었으면 늙은 대로, 젊었으면 젊은 대로 세대 간에 서로 존중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사회적 노력이 아닐까.

댓글(0)

댓글운영규칙

-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 대상을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법률에 의해 제해될 수 있습니다. 공공기기에서는 사용 후 로그아웃 해주세요.

0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