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용 연수문화재단 대표이사
1974년 완공돼 올해로 쉰 살이 되는 인천항 갑문(閘門)이 ‘대한민국 토목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대한민국 토목문화유산’은 대한토목학회(이하 학회)가 준공한 지 50년 이상 된 사회기반시설물을 대상으로 역사·기술·사회문화·경관 분야 가치와 경제발전 기여도 등 5개 항목을 평가해 결정한다. 지난해 이 지정 제도가 처음 시작됐다. 학회는 “인천항 갑문은 준공 당시 5만 t급 대형 선박의 통행이 가능한 아시아 최초·최대 규모의 갑문이었으며, 우리나라 수출입 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 토목문화유산 자격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인천 앞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무척 커 물때를 못 맞추면 항구에 배를 댈 수 없다. 그래서 24시간 배를 댈 수 있게 하는 갑문 건설이 일제강점기때부터 추진됐다.
1911년 시작한 이 사업의 결과로 1918년 최초의 인천항 갑문이 완공됐다. 이때의 갑문 공사는 사람들이 돌과 모래를 무겁게 등에 지고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하는, 지극히 전근대적인 방식이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일제(日帝)가 조작한 ‘안악사건(安岳事件)’으로 징역 17년형을 선고받고 인천 감옥에 갇혀있을 때 이 공사에 끌려 다녔다. 선생은 훗날 “흙 지게를 등에 지고 십여 길이나 되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일이 너무 힘들어 여러 번 떨어져 죽을 생각도 했지만 함께 짐을 지고 있는 사람까지 죽게 할 수 없어 그러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1974년 준공된 갑문의 공사 방식은 사뭇 달랐다.
학회는 “사람의 힘에 의존하던 이전의 공사와는 달리 크레인·굴착기·착암기 등 현대 장비가 대량 동원돼 항만 기계화 공사의 시작을 알렸다”고 그 의의를 설명했다. 최초의 갑문 공사 뒤 5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세상이 많이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50년이 지났다.
지난 50년 동안의 변화는 예전의 50년과는 도무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공상과학영화에서조차 생각하기 어려웠던 인공지능이 상용화 단계로 갈 정도니 토목건축 기술의 발전은 말할 것도 없다. 새로운 기술들 때문에 오히려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아 무서울 정도인 요즘, 만약 인천항에 새로운 갑문을 만든다면 어떤 기술과 장비들이 동원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한편 요즘 인천에서는 1918년 첫 갑문이 완공되면서 문을 연 인천내항 1부두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자는 시민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힘을 보탠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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