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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동 칼럼] 짝짓기와 전통문화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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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결혼을 하기 위해서 상대를 고를 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어머니의 눈매를 닮은 사람을 고르게 된다는 것이 어떤 사회생물학적인 연구에서 주장된 적이 있다. 어머니의 눈빛을 닮은 사람이 지속적인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 나도 주위를 둘러보면 좀 그런 경향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또는 왜 그럴까? 라는 의문이 이어지는데 사람의 눈매라는 것은 작고 간단한 구조이지만 엄청나게 풍부하고도 깊은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느끼는 일이다. 

문득 미운 오리새끼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우화이지만 그 속에 진실이 있는 법, 새끼 오리가 깨어날 때 보았던 그 어미의 모습이 영원히 어미로서 각인되어 다른 새끼들과 모습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이 어미로 여기고 따라다니게 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습성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자신에게 익숙한 것들에 편안함을 느끼고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 넓게 말하자면 그러한 사람의 본능적인 행위의 하나라고 생각될 수 있는 것이다.

 

문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미국 인류학의 태두라고 하였던 프란츠 보아스는 역사적인 특수주의라는 것으로 문화현상을 설명하는데 바로 사람은 태어난 지역의 문화에 의해서 그 사람의 문화, 즉 행동도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아무리 전통문화라고 하더라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변화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전통문화도 기와단층집에서 아파트로 변해오고 한복에서 양복으로 변해 왔던 것이고 막걸리에서 이제는 와인을 마시는 문화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는 각진 아파트로 가득하고 거리는 서양의 커피집으로 줄을 이어 서 있다. 편리하고 예쁘기는 해도 내 눈길을 길게 잡아당기는 애잔함도 없고 맘 푸근한 느낌을 주는, 어머니의 눈매 같은 풍광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미 많은 영역에서 우리가 대대로 오랫동안 보면서 살았던 그 공간과 그 문양과 그 행위들은 기억에 없는 것들이 많다. 

전통문화전승으로 말하자면 어미의 눈매를 현실적인 기억 속에서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듯이 오늘날의 급격한 문화변동 속에서 현대인들도 이질적인 문화 속에 들어가게 되면 경이감도 생기지만 시간이 흐르면 불안함이 생기게 되고 사회적인 병리현상의 하나의 기저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하기는 하지만 깊은 의식 속에 고유한 특성이 살아있게 마련이다. 고유한 것, 그것은 우리의 눈을 편하게 하고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며 또한 가치를 높이는 길인 것이다. 바로 다양한 문화 속에서 하나의 문화가 가지는 의미이고 사람을 살만하게 만드는 힘인 것이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우리의 고유한 문화의 인자들을 가미하여 우리의 삶을 좀 더 편하게 할 수는 없을까? 시선이 낯설지도 않고 우리의 어머니의 눈매같이 어딘가 푸근하며 자연스럽게 나의 몸짓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그런 환경을 만들 수는 없을까? 그런데 우리의 사회정책들을 보면 이러한 따뜻한 배려가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모든 정책이 따뜻해지려면 우리 속에서 오랫동안 남아 있던 문화를 씌우는 것이 핵심적인 비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유전적이거나 문화적이거나 간에 우리의 정신 속에 깊이 숨어 있는 익숙한 것이야말로 사람들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변화를 만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기계적인 분위기의 아파트의 내부공간에 우리 전통가옥의 디자인을 입힌다든지 또는 아파트단지에 우리 옛 마을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든지 또는 우리의 공동체 생활 속에서 전통적인 삶의 흔적을 심어서 편한 감성을 느끼게 한다든지 등의 전통이 현대 차가운 공간 속에 은근히 살아남아서 따뜻하게 우리를 받아준다면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덜 팍팍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우리의 세대의 급작스러운 단절을 막는 정서적인 장치가 되지 않을까? 따뜻한 전통문화정책이 필요한 때이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한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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