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 뒷골목서 사라져가는 옛 흔적을 찾다
-올드 아바나 뒷골목에서 알렉산더 훔볼트를 만나다-
올드 아바나 뒷골목을 둘러보러 나선다. 오비스포 거리 끝자락에 있는 암보스 문도스 호텔에서 오른쪽 오피시오스 길을 따라 아바나 베이 쪽으로 걷는다. 아열대 겨울바람은 따스한 듯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찬 기운이 바람결에 숨어 있다. 종종걸음으로 곁을 스치듯 지나가는 쿠바 아낙의 휘날리는 스카프 결에서 카리브 바닷바람의 실루엣 같은 형상을 느낀다.
올드 아바나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이곳은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꾸미거나 다듬어진 것이 더 아름답다는 문명 세계 사고에서 벗어나 지금은 오히려 있는 그대로가 예쁘고 옛것이 더 매력적이라는 느낌에 빠른 걸음보다 느릿느릿 걸을 수 있는 이 길이 더 편하고 포근하다.
정비된 아바나 비에하에서 한발 비켜선 이곳은 마치 중세 유럽의 어느 뒷골목을 걷는 듯 착각한다. 구김 없이 있는 그대로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살피다 보면 자연스레 그 시절 그들의 삶에 빠져든다. 이런 느낌을 즐기는 것도 진한 감동이 깃드는 여행의 즐거움이요 기쁨이다.
유럽 여행을 갈 때마다 그 시절을 반추하려 몽마르트르 언덕 골목길을 찾는다. 그러나 그 옛날 흔적이나 분위기는 세월이 갈수록 느낄 수 없다. 그 이유는 더 예쁘게 보이려고 꾸미다 보니 차츰 흔적이 지워지고 거리 미술가도 캐리커처 그릴 손님 찾기에 바쁜 일상을 보면서 발길을 돌리게 된다. 그러나 아바나 뒷골목에선 그런 변화의 물결은 유럽보다 아주 느리고 얼마 동안은 그 정취를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벽’이란 뜻을 가진 ‘무라야’ 골목길을 따라 해안 쪽으로 가다 ‘플라자 비에하’에 있는 테라스 카페에서 진한 카리브의 아라비카 향이 물씬 풍기는 모닝커피를 마시고 여정을 시작한다. 주변 카페와 레스토랑은 이른 시간임에도 여행객 맞을 준비로 분주하고 광장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현판과 조형물은 여행자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광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발길 닿는 대로 두리번거리며 골목길을 걷는다. 세월의 무게만큼 무거운 나무 대문이 열려 있는 건물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안내원으로 보이는 중년 여인이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한다. 벽에 붙어 있는 현판을 보고 그녀에게 질문하였으나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서로 안타까워하던 그때, 젊은 여인이 빠른 걸음으로 2층에서 내려와 유창한 영어로 안내를 자청한다. 그녀는 이곳이 자연 과학자이자 탐험가인 ‘알렉산데르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박물관’으로 《쿠바섬에 관한 정치적 에세이 A Political Essay on the island of Cuba》의 모태라고 설명한다.
박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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