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영화는 역시 로망이지!’
보는 내내 이렇게 생각했다. <탑건: 매버릭> 이야기다. 워낙 인기 있는 작품인 만큼 영화에 대해선 특별히 보탤 말이 없다. 다만 톰 크루즈 예찬만큼은 몇 자 얹어야겠다. 그는 전성기를 지나 원숙기로 접어들던 시기의 마라도나와 메시 같았다. 정상급 실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자신의 나이든 면모를 긍정적으로 발현해 팀을 특별한 경지로 끌어올린 이들. 톰 크루즈도 그랬다.
이런 속편 성격의 작품은 조금만 삐끗하면 ‘추억팔이’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한때 멋지고 탁월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고루하고 식상해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전혀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로맨틱하다며 젖어들었다. 예전에 열광한 대목은 더욱 두근두근해졌고, 세월과 나이듦을 녹여낸 서사도 뭉클했다. 시대상을 반영해 젠더 등 여러 감수성을 업데이트한 것도 세련되게 다가왔다.
‘고스트 버스터즈’ 시리즈와 비교된다. ‘탑건’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를 상징하는 메가 히트작이다. 역시 30여 년이 지난 2016년에 부활해 극장에 걸렸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 원작 내용을 잇지 않고 새로 시작하는 ‘리부트’ 방식을 택했다는 것. 괴짜 집단이 유령을 사냥한다는 큰 줄기 외엔 싹 갈아엎었다. 주인공 네 명 역시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었고, 심지어 과거 주인공 역의 배우들은 별다른 비중 없는 카메오로 등장했다. 등장한 지 1분 만에 죽거나, 지나가던 택시기사로 잠깐 나오거나...
이러면 추억을 팔기보다는 오히려 배신하는 쪽에 가깝다. 결과는 ‘폭망’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심지어 괜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주인공의 성별이 바뀐 점에 집착해 영화를 페미니즘과 엮으며 소모적인 감정싸움을 벌인 것이다. 실제 영화는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수준이었지만 과도하게 추앙하거나 매도하는 이가 많았다. 평론가들마저 이를 부추겼다.
결국 소니는 이 2016년 버전을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아예 없었던 것으로 간주하고 1980년대 원작의 내용을 잇는 진짜 속편을 만들었다. 원작 주인공의 손녀와 친구들을 새로운 주인공으로 삼아 세대를 교체했고, 70대가 된 예전 배우들 역시 큰 비중으로 등장해서 활약했다. 그러자 비로소 대중이 호응했다. 추억을 환기하며 즐겼고 팬데믹 와중에도 흥행에 성공했다. 작품성이 아쉽다는 평론가들의 지적은 다들 그냥 흘려들었다.
속편을 만드는 데에 뚜렷한 공식은 없다. 다만 하나는 확실해 보인다. 사람들은 한때 좋아했던 무언가를 추억으로 이름 붙여 기억하고, 가급적 그걸 지키며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는 것. 사랑받은 속편, 나아가 프랜차이즈를 구축한 시리즈는 대체로 이 점을 존중해왔다. 사람들은 추억팔이를 손가락질하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추억팔이를 갈망한다. 어쩔 수 없다. 추억 또한 인간의 핵심 동력이니까. <탑건: 매버릭>은 훌륭한 추억팔이의 사례로 오래 기억될 만하다. 추억팔이는 이렇게 해야 한다.
홍형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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