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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5 (토)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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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장을 담그며…

아내가 부산하다. 제수씨도, 동생도 부산하다. 아내와 동생네가 함께 어우러져 배추 따고, 무 뽑고 김장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분주한 것이다. 손바닥보다 좁은 텃밭에 심어 놓은 무와 배추가 이런 저런 핑계로 제때 손을 봐주지 못했는데도 지난해에 비해 배추는 고갱이가 노랗고 단단하게 잘 들었고 무는 동치미 해먹기 꼭 알맞게 매끈히 자라줬다. 지난해에 이어 동생네와 같이 김장을 하다 보니 일도 쉽고 더 맛있게 담게 되고 핑계김에 작은 잔치도 벌이게 되다 보니 1석 3조4조가 돼 좋다.

지금이야 집집마다 김장을 담그지 않아도 한겨울에 걱정할 것이 없고 맞벌이하는 젊은 부부들은 시간이 있어도 직접 담가 먹기 보다는 사다 먹는 게 편하다고 김장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돌아 가셨지만 어머니가 김장은 겨울철 반식량이라며 아버지가 장독대 옆 땅속에 묻어 놓으신 큼직한 장독에 김치를 가득 담은 다음 개울에서 주워온 깨끗하고 큼직한 돌로 지근지근 눌러 놓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한겨울 엄동설한에 김치각 거적문을 들추고 서걱서걱 얼어 있는 김치포기를 꺼내다 한 대접 실하게 썰어 놓고 잘 뜬 청국장으로 찌개를 끓여 내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요즈음 주변 곳곳에서는 김장행사로 부산하다. 시청, 농협, 부녀회, 각 자원봉사단체 등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벌이는 행사다.

이제 계절은 곧 한겨울로 치달을 것이다. 올 한해는 어느 해보다 경기가 나빴던 해라고 한다. 불경기와 어지럽게 돌아 가는 세상사 우울한 소식이 서민들의 어깨를 움츠러 들게 하지만 김장행사를 바라 보면서 그래도 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는 따뜻한 손길이 많은 것같아 마음이 훈훈해진다.

겨울이 닥치면 제일 먼저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저소득 빈곤계층이다. 도내에는 생활안정을 위해 생계지원이 불가피한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가 19만9천명이나 된다. 이들보다 조금 형편이 낫긴 하지만 역시 생계지원이 불가피한 차상위 계층도 39만명이나 된다. 이들의 생활형편도 천태만상이다. 소년소녀가장, 홀로 사는 노인, 장애인, 노숙자, 경기침체로 갑자기 빈곤층으로 전락해버린 소위 신 빈곤층 등등 여러 형태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다 법상 지원대상기준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실제 생활이 어려워 갖가지 도움을 받아야할 비수급 빈곤층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 난다.

경기도와 각 시·군은 이들이 춥고 긴 겨울을 잘 날 수 있도록 올해도 여러가지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법으로 보장된 지원을 적기에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외에도 긴급을 요하는 식료품비 지원, 단전위기 가정에 대한 전기료 지원, 난방 형태에 따른 가스료 및 연탄구입비 지원, 위기대비 응급구호, 임신부에 대한 출산비 지원, 스스로 자활하도록 돕는 근로 지원, 노숙인에 대한 숙식 제공과 진료·직업훈련 등 어려운 여러 대책들을 준비했다.

그러나 이런 대책에도 이들의 생활이 점차 나아진다는 소식은 별로 없고 오히려 보호의 손길들이 닿지 않아 홀로 극한상황을 맞는 소식이 간간이 보도돼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빈곤문제는 참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경기도와 시·군 역할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회 구성원 모두의 손길이 부족한 보호의 틈새를 메워야 한다. 이웃을 생각하는 기관, 사회봉사단체, 자원봉사자 등이 더 많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장 담그기가 한창인 요즈음 많은 분들이 수고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곧 맞게 될 한겨울, 내 고향 광주에서 동생네와 같이 담가놓은 김장도 잘 익어갈 것이다. 익는 김장과 더불어 올 겨울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는 맛깔지고 아름다운 이웃들의 모습이 더욱 늘기를 기대해 본다.

/박 치 순

군포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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