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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청춘] 이춘수 도편수 (64)

바람도 세월도 머무는 안식처… ‘천년 한옥’을 짓는다

▲ 이춘수 도편수가 직접 맡아 건립한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 전원주택단지 내 한옥에서 도편수로서의 지난 30여 년간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추상철기자

“한옥은 한 세대만을 위한 집이 아니야. 적어도 천년을 안식처로 삶는 곳이지. 물론 사는 사람도 집에 어울리는 격을 갖춰야 하고.”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 전원주택단지에 유독 눈에 띄는 건물이 여러채 있다.

한눈에 봐도 돌 한개당 무게가 족히 수톤에 달할 것 같은 기초 공사에, 조선시대 삼정승(영의정, 좌ㆍ우의정)만 세울 수 있었다는 ‘솟을대문’까지. 그 규모와 웅장함에 기세가 눌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수초면 족하다.

“이 정도 규모면 100억원은 넘겠지?”라고 혼잣말을 읊조리고 있는 사이, 도편수(都邊首, 전통한식기법으로 한옥ㆍ누곽ㆍ사원ㆍ사찰ㆍ궁궐 등의 목조구조물과 문화재의 건립 및 복원하는 한식목공을 관리·감독하는 사람) 이춘수 선생(64)을 만났다.

왜소한 외모에 질끈 묶은 긴 머리, 허름한 옷차림세만 보자면 그가 이 엄청난 규모(대지면적 7천920㎡)의 한옥 신축공사를 진두지휘하는 ‘대목장’이라고 쉽게 상상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이 선생과 말을 섞자 왜 도편수인지, 또 왜 신개념 한옥의 창시자인지 금세 깨닫게 됐다. 그에게선 여느 청춘에 뒤지지 않는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 그리고 한옥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장인 정신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무와 한옥을 사랑하는 순수함도 세월이 가져다준 외모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지금이 후세에 기리 남겨줄 한옥을 만들 적기’라며 새로운 반평생을 예고하는 그의 삶속으로 들어가 봤다.

■서라벌의 인연 그리고 한옥과의 만남

수원에서 나고 자란 이 선생은 어려서 한학자였던 할아버지한테 한문이며 붓글씨를 배웠다. 할아버지가 5년만 더 사셨어도 자신은 학자가 됐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제대로 배우고 또 배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시절, 그림을 무척 좋아하고 곧잘 그려서 화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의 살림살이로는 화가는 먼나라 얘기였다. 중학교 때 수채화에 매료돼 있었는데 미술 선생님이 제도나 조각을 추천할 정도로 제도 조각 분야에 소질을 보였다.

그리고 외가 근처인 미아리 서라벌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마침 학교 옆 ‘대성목기’라는 회사에 친척이 근무했는데, 그 인연으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니게 됐다. 이 선생의 목수와의 인연은 그렇게 필연이 되어가고 있었다.

대성목기는 정부 일을 하는 업체였다. 조각에 소질이 있던 차에 그곳에서 3년 반 정도 일하면서 청와대 일을 했다.

다른 나라 귀빈이나 수상급이 오면 매번 대통령 의자를 새로 만들었는데 대통령 의자의 봉황 휘장을 새기는 일을 했다.

이 일을 처음 배우던 때가 15세였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목수 일에 발을 들여놓게 된 셈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전으로 내려가 잠시 가구 일도 했다. 그때 나이 19세.

전통건축에 대한 욕심이 생겨 경주 불국사를 찾아 2년 반을 머물렀다. 혼자서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당시에는 설계를 배우는 학원이 없었기때문에 불국사에서 나름대로 절이 어떻게 지어지는 지를 스케치 해가면서 설계를 터득했다.

이 선생은 “모든 작업의 기본이 설계다. 설계를 모르면 기능공 밖에 안된다. 건축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거지”라고 불국사를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건축에 대해 많이 아는 스님이나 고승한테 물었다. 몇 칸에 기둥은 몇 개고, 높이는 얼마고 하는 식으로 묻고 배워 종합설계를 나름대로 해 보니 맞아 떨어졌다. 대목들을 쫓아다니며 일할 때 어떤 공법을 하는지 나름대로 물어봤다. 그리고 다듬는 법과 맞춤법에 전념했다.

현상에 대해 묻고 또 물어 연구하다 보니 원리가 보였고, 설계를 해보니 그 원리가 터득됐다고 한다. “그때 큰 그림을 보는 방법을 배웠던거지. 아마도 그런 기본을 몸소 습득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야. 아주 소중한 경험이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

■고집이 가져다 준 열매, 도편수

그는 사찰과 전통 한옥을 짓는 ‘대목장’이다. 본격적으로 혼자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은 35세로, 올해로 정확하게 30년이 지났다. 40여명의 후배를 거느린 도편수이지만 도편수라는 말 자체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전체적인 감독관을 의미하는 도편수는 목공부터 석공, 와공, 단청, 철기공 등 건축의 모든 분야를 아울러야 하는데 한 분야에 평생을 바쳐도 모자라는 일을 어찌 다 아우를 수 있겠냐는 것이다. 물론 그는 건축의 기본인 설계부터 모든 분야를 총괄한다. 그래도 본인은 그냥 대목수란다. 대단한 고집이다. 그리고 일화 하나를 조용히 들려준다.

“일전에 이완 장군의 정려문을 옮겼는데 향과 자락을 찾아 옮겼어. 근데 그때 문중과 싸웠어”라고 짧게 말한다. 왜냐고 묻자, “문중에서는 내가 주춧돌을 옮기려하니 굳이 왜 옛것을 옮기려느냐고 강하게 어필했지. 하지만 지나온 100년을 이어 내가 또 100년을 이어가면 되지 않겠냐.

옛것이라고 쉽게 버리면 뭐가 남겠냐고. 특히 나라에서 한 일을 문중이라고 해서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냐”고 오히려 되물었다고 한다.

 

멋스러움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이 선생의 고집. 자신의 고집을 관철시켜 지금은 문중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다며 웃는다. 그 고집을 ‘끼’라고 설명했다.

비단 이 도편수의 고집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보통 6~7년 가까이 걸리는 한옥을 한채 짓는데도 그 고집은 여실히 드러난다.

나무는 무조건 강원도산 적송만 사용할 것, 어떠한 상황에서도 못은 절대 박지 않을 것, 이미테이션 기법을 절대 사용하지 말 것,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한옥의 품격과 맞지 않는 이에게는 절대 팔지 않을 것 등등.

“한옥 공사는 단순한 집을 짓는 기법이 아니야. 건축의 모든 기법을 아우르는 거지. 그 속에 우리의 인생이 담겨 있어. 나도 아직 그걸 깨달아 가고 있는거야.”

■천년 건축… 역사에 남을 역작을 짓다

“우리 건축의 우수성은 나무의 쓰임새를 잘 알고 쓴다는 데 있지. 우리 조상들은 나무의 성질을 알고 건축에 나무를 쓸 때 오래 갈 수 있는 법을 터득했어. 나무의 진이 아래로 내려앉아 아래 부분이 강한 성질을 이용해 기둥을 세울 때도 위 아래를 구분했지.”

이 선생은 지난 2007년부터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내 7천 920㎡ 부지에 전통기법과 현대적 감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한옥을 5채 짓고 있다. 터 발굴부터 기초공사와 설계, 기둥에 있는 문양 새기기까지 모든 과정을 총괄하고 있다.

“여기에 지어지는 한옥들은 앞으로 1천년간 자리를 보전하게 될거야. 그래서 어느 때보다 더 심혈을 기울였지. 400년된 대들보에 어디서도 쉽게 찾기 힘든 7량집으로 짓고 있어. 이게 후세에 역사적 가치를 분명 갖게 될거라고 믿어. 그만큼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어.”

이어 “동아육운주식회사 대표가 역사의 혼이 깃든 평생의 역작을 지어보자고 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데 나 역시 그 뜻을 잘 알고 있어서 내 모든 열정을 쏟아 붓고 있어. 그래서 이 한옥들은 단순한 매매를 위한 것이 아니야. 한옥의 혼을 후세에게 물려주기 위한 거지.”

 

도편수로서의 감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집주인이 될 사람들이 연령대가 높은 고령세대라는 것을 간파하고, 집안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거나 구들장 방과 다락방까지 세심하게 설계한 것에서 단순한 목수가 아닌 배려심 있는 장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옥은 겉만 번지르하면 안돼. 겉과 속이 한결 같아야 한다는 거지. 그건 내 양심선언과 같은 거야. 한옥을 단순한 집으로만 봐서는 안돼. 한옥은 천년이 지나도 인생의 안식처로 남아야 한다고.”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고 한다. 산 나무로 천년을 살았고, 죽어서도 천년을 값한다는 뜻이다. 나무가 살아있는 것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그는 지금 천년 건축을 짓고 있다.

앞으로도 역사적 가치와 실용성을 접목한 한옥이 꾸준히 우리 곁에서 지어질 수 있도록 그의 청춘이 영원하길 바란다. 그리고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김규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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