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노인 65세가 아직도 먼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공통되는 슬픈 현상이 발생한다. 손에 쥔 물건을 잘 떨어뜨리고, 음식물을 흘리거나 입 주위에 묻힌다. 어딘가에 자주 부딪혀 타박상을 입기도 한다.
이들 모두 뇌의 노화로 인한 결과인데 정말 무서운 것은 기억력 쇠퇴다. 얼굴은 또렷이 기억나는데 유독 이름만 혀끝에서 맴도는 ‘설단(舌端) 현상’과 이름과 얼굴이 일치하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미당 서정주는 기억력 감퇴를 막기 위해 70세가 넘어 아침에 일어나면 세계의 산 이름 1천625개를 외웠다고 한다. 40분 정도 염불하듯 산 이름을 외우고 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고 했다. 나로서는 사람 이름 몰라 망신만 안 당해도 감지덕지다.
일본 치매 전문가 시라사와 타쿠지 박사는 치매 예방을 위해 이틀 전 일기를 쓰라고 권장한다. 다 아는 유머지만 볼일 보고 지퍼를 안 올리는 것은 건망증이고, 지퍼를 안 내리고 볼일 보는 것은 치매라는데 건망증이 꼭 치매로 가지는 않는다는 것이 의학계 중론이다.
문제는 치매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말 전국의 치매환자는 68만5천739명으로 노인 10명 중 1명꼴이다.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장애자까지 포함하면 무려 165만1천340명으로 노인 10명 중 4명꼴이다. 고개만 돌려도 치매환자를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치매의 라틴어 어원인 ‘디멘티아(dementia)’의 일본어 번역을 그대로 따라 쓴다. ‘디멘티아’란 말은 기억과 정신이 없어지는 병이라는 뜻이다. 노망이란 말이 불경스러워 치매라는 일본 한자를 빌려 썼는지는 몰라도 사실 치매도 ‘어리석다’란 뜻이니 ‘인지장애증’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다.
일본도 이미 2004년부터 인지증(認知症)으로 부르고 있고, 대만에서는 실지증(失知症), 홍콩에선 뇌퇴화증이라고 부른다. 정신분열병도 조현병(調絃病)이란 점잖은 말로 바꾸었듯이 일부러 어리석게 되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 치매도 좋은 용어로 대체했으면 좋겠다.
일본은 이미 5년 전 ‘오렌지플랜’이란 치매대책을 수립해 범국가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병원이 아닌 재택치료와 함께 환자, 가족, 간병인, 자치단체가 유기적으로 참여하는 ‘치매 네비게이터’라 불리는 환자 중심형 제도를 시행 중이다.
평균수명이 늘다 보니 죽는 순간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이 큰 복이다. 소동파는 시냇물이 서쪽으로 흐르듯이 다시 젊어질 수 있다고 했지만 희망사항일 뿐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60년 이상 풍상을 겪었으니 이상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치매국가책임제’를 선언했다. 치매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국가 차원에서 다룰 의지를 표명한데 이어 해당부처에서 정책으로 옮긴다니 지금보다 훨씬 나아지리라 본다. 다만 공무원 책상에 머무는 비현실적 처방보다는 중·경증 치매환자 가족들에게 꼭 자문을 구해 실질적이고 효과 있는 대책을 시행하길 바란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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