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처음에 그 차이를 확연하게 느끼다가도 일상에 치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무디어지기 마련이다. 도시 환경은 더욱 그러한데, 불과 10년 전과 현재의 모습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있더라도 우리는 변화를 쉽게 잊고 현재에 금방 익숙해진다. 환경 변화라는 측면에서는 짧은 시간일수도 있는, ‘불과 10년’이지만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진 대표적인 사례로 횡단보도를 들 수 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횡단보도에는 턱이 있었고, 횔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은 인도와 도로 사이에 단차가 존재하지 않는 곳을 찾아서 도로로 내려와 횡단보도로 접근하여 길을 건너는,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기에 이러한 방법으로 길을 건너곤 했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1984년 9월19일, 김순석님의 죽음을 계기로 거리에 턱을 없애달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는 지금은 사라진, 그러나 1980년대 이전에는 장애의 대표적인 유형이라고 할 만큼 발현 비율이 높았던 소아마비 장애를 가졌던 사람이다. 부산 출신으로 서울로 상경하여 보석가공 기술을 배워서 뛰어난 기술을 가진 직업인으로 성장했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흉추 이하가 마비되는 장애를 중복으로 가지게 되었고 휠체어를 사용하게 된다. 지금도 상당히 불편하지만 그 당시,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의 이동을 포함한 사회접근 편의는 전무했었다고 볼 수 있다. 지하철, 버스, 거리, 건물, 어디에도 장애인을 위한 편의 시설은 없었다. 사회에 접근할 수 없는 보석가공 기술은 무용지물이었고, 생계를 이어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기에 그는 “시장님, 왜 저희는 골목 골목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우리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지나는 행인의 허리춤을 붙잡고 도움을 호소해야 합니까”라고 5장의 종이에 빽빽이 쓴 유서를 염보현 서울시장에게 남기고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그의 장례를 주도한 전국지체부자유대학생연합회를 비롯한 당사자 및 관련 단체들과 이후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조직들에 의해 지난하게 시도된 법·제도 환경개선 요구에도 불구하고 2001년 1월22일,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이용하여 역내를 이동하던 중 추락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다. 1984년, 김순석님의 죽음이 우리 사회의 이동약자의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면, 2001년 오이도역 사건은 그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구체적인 문제점을 보여주게 되었고 당사자들과 관련 자원들은 단 하나, 지하철·전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는 요구를 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 현재,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궤도 이동 시설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고 연장선으로 횡단보도에는 턱이 없어지게 된다. 이렇게 우리사회의 이동·접근권은 장애인 당사자들의 자각과 요구에 의해 상당 부분 이루어졌지만, 장애인, 노인, 임산부, 어린이 등에게만 편의 제공이 국한되지 않고, 우리 모두에게 편리한 변화로 작용해 왔으며 나아가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함을 인식해야 한다. 1984년 9월19일, 김순석님의 죽음의 의미는, 장애인이 편리한 사회는 모두가 편리하다는 가치관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거리 곳곳의 턱없는 횡단보도에서도 맞이하게 된다.
경기일보
2025-11-10 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