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말의 해

말은 ‘마력(馬力)’이라는 힘의 단위를 만들어낼 만큼 강하고 튼튼한 동물이다. 특히 몽골을 비롯한 아시아 북방지역의 말들은 큰 덩치와 멋진 갈기, 탄탄한 몸매로 무척 강렬한 인상을 준다. 아주 오랜 옛날, 아마도 만주와 몽골 일대에 살던 유목 민족들을 통해 이 말과 만나게 됐을 우리의 선조들은 그 힘과 당당한 모습에 꽤나 압도(壓倒)됐던 듯하다. 말과 관련한 우리말의 여러 단어나 이야기들이 이를 알려준다. 그 사례 중 하나로 윷놀이에서 사용하는 사위의 이름 ‘도, 개, 걸, 윷, 모’의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는 ‘모’가 있다. 이 사위의 순서는 몸집이 얼마나 큰지와 얼마나 빠르게 달리지에 따라 정해진 것으로 본다. 이중 ‘모’는 말을 뜻하는데 많은 언어학자가 우리 고대어에서 말이 ‘모’나 ‘몰’과 비슷한 발음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옛날 만주어나 몽골어에서 말을 가리킨 단어와 연관돼 있다. 이 밖에 ‘도’는 돝(돼지), ‘개’는 개, ‘걸’은 양 또는 노새, ‘윷’은 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또 우리 옛말에서 ‘말’은 지금도 산마루 같은 단어에 쓰이는 것처럼 ‘높은 곳’이나 ‘꼭대기’를 뜻하는 ‘마루’, 그리고 맏아들에서처럼 ‘가장, 최고’라는 뜻의 ‘맏’과도 통하는 말로 쓰였다. 그리고 말벌, 말잠자리 등의 단어에서 보듯 지금도 ‘말-’이라는 접두사는 ‘크다’는 뜻을 갖는다. 이는 땅 이름에서도 나타난다. 전국 곳곳에 말고개, 말치고개, 말재, 말바위, 말무덤 등의 지명(地名)이 널려 있다. 이를 한자로 바꾼 마현(馬峴), 마치(馬峙), 마산(馬山), 마령(馬嶺), 마분리(馬墳里) 등의 이름도 여럿 있다. 이런 곳들에는 흔히 “그 모양이 말처럼 생겼다”거나 “죽은 말을 묻은 곳”이라는 식의 설명이 따르곤 한다. 하지만 사실 이 중 대부분은 말과는 관계없이 ‘크다’는 뜻으로 ‘말/마-’를 쓴 것이다. 큰(높은) 고개, 큰 바위, 큰 무덤...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나라에서 말을 기른 목장이 있었던 서울 성동구의 마장동(馬場洞)이나 먼 길을 오가던 말에게 죽을 먹이며 쉬게 했던 서울 양재동의 말죽거리처럼 실제로 말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 있기는 하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말은 또한 우리의 옛이야기 속에서 흔히 상서로운 일과 관련해 등장한다. 특히 삼국유사 속의 금와(金蛙)나 박혁거세 신화에서는 왕(王)의 탄생을 알리는 신성한 전령사(傳令使)의 역할을 맡는다. 그만큼 말은 예부터 우리 민족에게 여러 면에서 좋은 일이나 기운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곧 설이다. 십이지(十二支)와 연관된 한 해의 띠는 음력에 맞추는 것이 정석(定石)일 테니 실제 말의 해는 오는 설부터 시작이다. 국내외 정세가 두루 어수선하고 서민경제에 진 주름은 좀처럼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요즘이다. 많은 사람이 바라는 것처럼 올 한 해가 힘이 넘치는 적토마(赤免馬)의 기운으로 날아올라 이런 문제들을 속시원하게 해결해 주면 좋겠다.

[인천시론] 색동원 사건, 인천이 나서 풀기를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달 30일 색동원 성폭력 의혹 사건에 대해 범부처 합동 TF 구성을 긴급 지시한 것은 사안의 심각성을 방증하는 것이며 전국 전수조사와 특별수사팀 편성, 제도 개선까지 지시한 만큼 정부와 인천시, 강화군의 책임 있는 조치가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 인천판 도가니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강화군 중증발달장애인 시설인 색동원에서 발생한 성폭력 의혹과 다수의 피해자 보고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과 범죄 행위를 넘어 오래된 제도적 미비로 인한 방임과 사회적 무관심의 결과로 보인다. 장애인 거주시설은 편의와 비용 절감의 명분으로 장애인의 삶을 개인화·격리시키고 권리 침해가 은폐되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 정부와 지자체는 세밀한 중장기적인 탈시설 로드맵을 마련해 주거, 의료, 활동지원, 교육, 고용을 연계한 지역사회 서비스망을 확충해야 한다. 또 하나의 핵심은 인권 중심의 인식 전환이다. 장애인을 ‘불쌍한 대상’이나 ‘관리 대상’으로 보는 시선은 폭력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토양이 된다. 학교와 공공기관, 특히 장애인 관련 시설에서의 장애인 인권교육의 진행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고 시설 종사자의 윤리 교육과 전문성 강화, 철저한 외부 감시 체계 적용으로 인권 침해의 위험 요인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법과 제도의 보완도 필요하다. 필자가 2025년 12월15~17일, 3일간 강화경찰서와 진행한 강화도 장애인 거주시설 정기전수조사에서는 조잡한 설문지, 중증발달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조사방법, 과거 조사 시 시설 측의 거주인들에 대한 자료 미공개 등을 확인하고 이전의 시설조사가 얼마나 형식적으로 진행됐는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 예방이 목적인 정기조사가 형식적이고 빈약하게 이뤄졌기에 색동원 사건은 사실상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이번에 실시될 전국 전수조사를 시작으로 장애 인권 전문가의 참여 조사,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신속한 분리와 지원 절차, 엄정한 가해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등을 법제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의 역할을 강조하고자 한다. 장애인의 삶은 지역사회에서 이뤄진다. 지역의 자치단체, 공공 및 민영 기관, 기업, 시민단체가 협력해 장애인의 사회참여 기회를 넓히고 종전 지역 기반의 지원과 모델을 더욱 강화하고 확산해야 한다. 장애인이 시설과 가정에서 보호·격리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나와 일상에서 많이 보이는 사회가 곧 배제와 폭력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색동원 사건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할 것인가, 아니면 피해자의 존엄과 모든 시민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사회로 전환할 것인가. 국무총리의 지시가 아니라면 인천은 이 문제를 풀 역량이 없다는 것인가. 시급한 수사와 제도 개선은 출발일 뿐이며 근본적인 변화는 지역사회와 시민사회, 정부가 함께 만드는 지속적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역량과 지혜를 모아 인천이 나서 풀어야 한다.

[인천시론] 이주시대, 공존의 교육으로

인천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도시다. 공항과 항만을 통해 세계와 연결된 도시, 다양한 국적과 언어, 문화가 일상적으로 교차하는 도시. 인천의 학교 역시 이미 다문화·이주 사회의 전면에 서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이주배경 학생을 어떻게 한국 사회에 적응시킬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머물러 있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한국 학교는 어떻게 다문화·이주 사회와 함께 변할 것인가”라고 말이다. 프랑스 교육의 경험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프랑스는 오랫동안 공화국 보편주의를 강조하며 모든 학생을 동일하게 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차이는 사적인 영역으로 밀려났고 학교는 시민의 동일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민자와 다수 집단 사이의 간극이 확대됐다. 다양성을 보지 않으려는 보편주의는 오히려 불평등을 은폐하는 장치가 됐다. 한국의 다문화교육 역시 유사한 길을 걸어왔다. 한국어 능력 향상, 한국 문화 이해, 학습 결손 보충이 주요 정책 목표였다. 물론 필요한 정책이지만 이 접근은 이주배경 학생을 ‘부족한 존재’로 전제하는 결손모형에 머물 위험이 크다. 이주배경 학생은 이제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학교 문화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이해해야 한다. 상호문화학교는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제안한다. 상호문화학교는 상호문화교육을 행하는 교육의 장이다. 이 학교에서는 특정 집단이 다수 문화에 동화되는 교육과정이 아니라 학교 공동체 전체가 서로의 문화 속에서 변형되고 재구성되는 교육과정을 실행한다. 문화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실천이며 학교는 서로 다른 규범과 가치가 만나는 사회적 공간이다. 상호문화학교는 문화적 특수성을 존중하면서도 사회적 결집을 가능하게 하는 관계적 보편성을 교육의 목표로 삼는다. 학교는 결코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다. 상호문화학교는 이러한 타자화 구조를 해체하는 교육혁신 프로젝트다. 교사는 차이가 차별로 전환되는 과정을 이해하고 중재하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인천시교육청이 다문화교육정책의 일환으로 상호문화학교 모델을 선도적으로 도입했다. 인천 논현동 소재 세계로국제중고등학교가 바로 이 모델을 도입한 학교다. 상호문화학교를 선언한 이 학교에서는 다문화·이주 사회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여는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이주배경 학생과 정주배경 학생이 함께 공부하며 교사 상호문화 역량 연수, 탈동화적 교육과정 재구성, 차별 대응 제도화, 이주배경 학부모와 지역사회 거버넌스가 작동된다. 이는 단순한 다문화교육정책이 아니라 위대한 학교 문명 전환 프로젝트다. 상호문화학교는 ‘이주배경 학생만을 위한 학교’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학생을 위한 미래 학교의 모델이다. 다양성은 관리 대상이 아니라 교육 혁신의 자원이다. 인천교육이 이 전환을 전면적으로 모든 학교로 확대할 때, 학교는 배제와 동화의 공간이 아니라 공존과 혁신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주 시대의 상호문화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이제 인천이 그 공존의 길을 열어야 한다.

[인천시론] 박사모 술이 가리키는 한국 경제

지난해 12월12일, 필자가 근무하는 한국뉴욕주립대에서 졸업식이 거행됐다. 한국과 미국의 국가가 차례로 연주되는 등 이색적인 순서가 있었고, 그중에서도 지도교수가 졸업생의 박사모 술(tassel)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겨주는 장면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에 맞춰 석사와 학사 졸업생 모두 학위모의 술을 왼쪽으로 넘긴다. 이 짧은 동작은 단순한 의식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개인의 성장을 위해 노력한 졸업생의 성취를 축하하는 동시에 이제는 학위를 받은 엘리트로서 삶의 방향을 사회로 돌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대학이라는 고등교육 체계는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한 사회가 개발하고 지지해 온 최상의 인재 양성 시스템이다. 고등교육을 마친 사람은 선택받은 소수이며 국가와 사회는 이들에게 한 단계 높은 책임을 요구한다. 졸업생들이 ‘나의 성공’을 넘어 ‘우리 공동체’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졸업식, 특히 학위모의 술을 옮긴 이후에는 개인적 성취와 공동체 발전의 균형을 추구해야 하는,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자연스럽게 적용된다. 이러한 균형은 경제학의 두 가지 기준인 효율성(efficiency)과 공평성(equity)으로도 설명된다. 효율성은 시장원리가 작동하는 영역이다. 경쟁을 통해 더 나은 성과를 추구하고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한편 공평성은 사회적 정의의 영역이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기회와 혜택을 균형 있게 보장하는 기준이며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 전체의 조화를 중시한다. 경제 주체로서 소비자와 기업은 생존을 위해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공평성의 문제가 반드시 제기된다. 1960~70년대 우리나라 같은 개발도상국은 경제성장이라는 효율성을 위해 공평성을 일정 부분 희생한 것이 역사적 현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기업이 법을 어기거나 소비자의 희생을 담보로 이익 추구에 몰두한다면 절대 공정하지 않다. 정부 역시 기업과 함께 경제를 발전시키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한편 국민의 안전과 소득재분배라는 기본적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필요하면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고통스러운 정책 결정도 감내해야 한다. 경제 발전을 달성한 국가일수록 이러한 책임은 더욱 무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정부 부채와 민간 부채, 환율 변동, 경기 양극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정책 시행 방향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환율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리면 신용경색과 민간 부문의 채무불이행, 중소기업 도산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금리를 내리면 부동산 가격 급등과 환율·수입물가 상승으로 물가 불안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졸업식장에서 박사모 술을 사회를 향해 옮기는 순간처럼 우리 경제 정책 역시 과거의 틀을 넘어서야 한다. 어렵지만 필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정책 담당자들에게 졸업생들의 이 작은 의식이 던지는 메시지를 되새겨 보길 권한다. 지금은 대전환의 시대이고 치우치지 않는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인천시론] 아동친화도시 사업 적극 지원을

인천시는 지난해 12월31일 유니세프아동친화도시 최초 인증을 받았다. 2018년 유니세프아동친화도시 추진 지방정부협의회에 가입한 후 8년 만에 이룬 쾌거다. 인천시가 아동친화도시를 조성하는 동안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2024년부터 새로운 인증 평가체계를 정비하면서 일정 기간 인증 신청을 중단한 바 있다. 이에 인천시는 새로운 인증 평가체계에 따라 ‘제2차 인천광역시 아동친화도시 조성 기본계획(2025~2028년)’을 수립하고 같은 해 12월 최초 인증을 신청했다. 광역단위 아동친화도시 인증 평가지표는 기초자치단체 아동친화도시 조성 지원, 아동 참여기회 보장, 광역-기초간 협력기구 구성 등이 포함돼 있어 기초자치단체와 달리 인증 추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아동친화도시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담긴 아동의 권리를 온전히 실현하고 아동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아동친화적인 환경을 갖춘 지역사회를 말한다. 2022년 기준 40개국이 추진 중이며 우리나라는 2015년 27개 지방자치단체가 ‘유니세프아동친화도시 추진 지방정부협의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아동이 살고 성장하는 도시환경의 질적 개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이미 2021년 기준 90.7%로 매우 높은 수준이며 수도권은 97.1%에 달하는 등 도시 중심의 인구 구조가 정착된 상태다. 과연 도시에서의 삶은 아동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아동권리를 보장하고 있을까. 1월 현재 111개 지방자치단체가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았다. 이는 전체 지방자치단체의 절반 이상이 아동친화도시 조성에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광역단위로는 부산과 광주가 2019년 최초 인증을 받았고 2023년 대구, 2025년 6월 제주에 이어 인천이 다섯 번째로 인증을 획득했다. 그러나 인천은 기초자치단체별 아동친화도시 조성 여건의 차이가 큰 것이 특징이다. 서구는 2017년 최초 인증을 받은 후 2021년에 상위 인증을 받았으며 동구는 2018년 최초 인증과 2023년 상위 인증을 받았다. 남동구와 부평구는 각각 2021, 2024년 최초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미추홀구와 계양구는 관련 조례는 있으나 연수구, 중구, 강화군, 옹진군은 아직까지 조례도 찾아볼 수 없다. 아동친화도시 인증 여부만으로 해당 지역이 아동권리를 온전히 보장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천시가 진정한 광역단위 아동친화도시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아동친화도시 조성 여건에 대한 지역 격차를 어떻게 해소해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광역-기초간 협력기구를 구성하고 이를 활성화해야 하며 각 지역 특성에 기초해 아동친화도시 조성 사업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인천시론] ‘쉬었음’ 청년 증가추세

최근 청년층의 비노동력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15~29세의 인구는 2015년 약 938만명에서 2024년에 811만명으로 감소한 반면 청년 ‘쉬었음’ 인구는 동일 기간 30만7천명에서 42만1천명으로 증가했다. ‘쉬었음’ 인구는 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비경제활동인구의 최근 1주간 주된 활동 상태의 응답 유형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 고용시장에서 노동공급 측면의 큰 변화 중 하나가 ‘쉬었음’ 인구의 증가로 이는 청년 비경제활동인구의 구성이 질적으로 크게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이 ‘쉬었음’ 청년은 니트의 하위 개념으로 2020년대 들어 청년고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과 정부 정책의 관심 대상으로 새롭게 떠올랐다. 니트가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소속 없이 실업 상태인 인구와 비구직 인구를 포괄하는 개념이라면 최근의 ‘쉬었음’ 인구는 비구직 니트 중에서도 ‘쉬었음’ 사유에 해당하는 인원으로 한정된다. 우리 사회에서 청년 비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배경은 다양하다. 거시경제적 요인으로는 청년 일자리 부족과 노동시장 수요 부진이 핵심으로 꼽힌다. 사회적 요인으로는 가족배경, 성별, 교육수준 등이 청년 비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여성 청년의 경우 취업구조에서의 불리함 때문에 직업훈련이나 추가 교육에 참여함으로써 경제활동을 늦추고, 가족의 소득수준이나 부친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장기간 비경제활동으로 지낼 가능성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적 요인으로는 우리 사회의 높은 눈높이와 낮은 일자리 만족도가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하에서 청년들이 임시직이나 저임금 직장을 기피하고 준비 기간을 늘려서라도 더 나은 일자리를 찾으려는 ‘합리적’ 태도가 나타났다. 이러한 맥락에서 취업이 지연된 청년 중 상당수가 취업준비형 비경제활동인구로 남아 있고 일부는 아예 구직을 단념한 니트족으로 전환되고 있다. 심리·개인적 요인으로는 비경제활동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정서적 어려움과 태도 변화에 주목한다. 니트 상태를 경험한 청년들은 그 이전 생애에 가정 내 정서·경제적 지원 부족, 학교 부적응 및 따돌림 등의 어려움을 겪었고 진로탐색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심리·개인적 특성은 청년 개인에 따라 상이하지만 전반적으로 낮은 자기효능감, 불안정한 정체감, 미래에 대한 불안수준이 높았다. 왜 어떤 청년들은 ‘쉬면서’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일까. 사회 진입의 단계에서 경제활동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는, 신체적으로 가장 왕성한 활동이 기대되는 청년들이 황혼기를 맞이하는 고령층보다 쉬었음 형태의 비경제활동 비중이 더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청년 쉬었음 현상은 단순히 고용 문제를 넘어 사회가 공동체 구성원의 기본적인 권리와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할 중요한 인권적 문제로 접근하고 지속적이고 통합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심과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인천시론] 축현역, 싸리재역

우리나라에는 ‘수리산, 수리바위, 수리봉’처럼 ‘수리—’라는 이름을 가진 땅들이 곳곳에 퍼져있다. 그리고 이런 곳에는 으레 “모양이 독수리를 닮았다”거나 “수리가 새끼를 낳은 곳”이라는 식의 해석이 달리곤 한다. 하지만 이는 객관성이 전혀 없으며, ‘수리’의 뜻을 몰라 생긴 잘못일 뿐이다. 원래 고구려말인 우리말 ‘수리’는 산(山)이나 ‘높은 곳’을 뜻하며 지금도 머리의 맨 위를 뜻하는 ‘정수리’ 등의 단어에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세월이 흐르면서, 또 지역에 따라 원형(原形)인 ‘수리’ 외에도 ‘사리, 서리, 소리, 살, 설, 솔, 술, 수락, 시루, 수레, 쓰리...’ 등의 다양한 변형을 갖게 됐다. 이 변형 중에 ‘싸리’도 있는데 인천 중구 경동의 ‘싸리재’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축현(杻峴)’이라는 한자 이름도 갖고 있다. ‘싸리나무(杻) 고개(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곳에 실제로 싸리나무가 많았음을 입증할 사진이나 문서 등의 증거자료가 발견되지 않는 만큼 싸리재의 ‘싸리’는 ‘수리’의 변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곳 싸리재는 느슨한 언덕 지대여서 높은 고개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주변 지역보다 조금 더 높으면 ‘수리’라 부르기도 했기에 이런 이름이 생긴 것이다. 이곳 싸리재, 곧 축현 때문에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인천~노량진 32.8㎞의 경인철도가 개통될 때 이곳에 축현역이 생겼다. 지금 동인천역의 전신(前身)이다. 이 축현역은 1926년 ‘상인천역(上仁川驛)’으로 이름이 바뀐다. 그 이유가 재미있는데 당시 자료를 보면 “축현역이라고 하니 사람들이 인천에 있는 역인지 잘 몰라 제때 내리지 못하고, 축현역에서 내려야 하는 여객이 (다음 역인) 인천역까지 가서 내리는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라고 나와 있다. 이 상인천역은 광복 뒤인 1947년 8월 일제강점기 이전의 이름을 되찾는다는 뜻에서 다시 축현역으로 바뀌었다가 1955년 7월 동인천역이 됐다. 당시 신문 기사에는 “한자음(漢字音)과 국문으로써 구별하기 곤란해 축현역을 부르기 쉬운 동인천역으로 바꿨다”라고 실려 있다. 이는 ‘杻峴’이라는 한자가 어려워 많은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어디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알기 쉬운 이름으로 바꿨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인천시가 요즘 이 동인천역의 이름을 바꾸는 문제를 연구 중이다. 고유한 특색이 없이, 동서남북의 방위만 따져 지은 이름들을 새롭게 바꿔보려는 ‘방위식 명칭 변경 용역사업’에 따른 것이다. 동인천역은 방위식 지명일 뿐만 아니라 인천의 동쪽이 아닌 서쪽에 있어 실상에도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구 대상에 포함됐다. 그런데 동인천역이라는 이름의 대안으로 축현역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최종 결정은 이번 연구용역 결과에 대한 주민공청회와 시 지명위원회를 거친 뒤 국가철도공단이 한다. 옛 이름을 되찾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갈수록 한자를 모르는 세대들이 “한자음과 국문으로써 구분하기 곤란한” 축현역을 어찌 생각할지, 정겨운 우리말로 그냥 ‘싸리재역’이라 하면 어떨지..., 여러 생각이 든다.

[인천시론] 장애인거주시설의 반인권 행위

2012년 10월24일, 인천에서는 세계장애인대회가 열렸다. 당시 필자는 2012 아시아장애인포럼(APDF) 한국조직위원회 콘퍼런스단 단장을 맡아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을 지적한바 있다. 중점적으로 제안한 것은 대회에서 도출된 결과물들이 유엔의 주요 협약인 장애인권리협약(CRPD)과 연계성을 가지고 실효성이 담보돼 작용하기 위해서 당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주목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점 파악과 대안 마련을 모색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50개 조항의 평등, 비차별의 원칙을 담아 2006년 제정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협약 가입 국가들이 이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세계장애인대회를 앞두고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원주 귀래 사랑의집 사건이 발생했다. 사랑의집 사건은 장애인 거주시설을 운영하면서 장애인의 탈주에 대비해 팔꿈치부터 팔목까지 문신으로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새기고 후원금 착복, 폭행, 사망자 냉동고 방치 등 천인공노할 일이 벌어진, 대표적인 장애인 거주시설 반인권 사건이었다. 당시 장애계는 세계장애인대회에 즈음해 시설 수용 정책이 가지는 한계와 반인권적인 측면, 시설정책의 고수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이 담고 있는 탈시설 자립생활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는 것 등을 정부 당국이 수용해 협약의 실질적인 이행과 각국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길 바라는 기대를 안고 콘퍼런스에서 사례로 드러내며 공론화했다. 그러나 세계장애인대회 이후 각국 정부의 능동적인 변화와 이행과는 달리 우리 정부와 관련 자원들은 탈시설정책에 미온적이었으며 반인권 행위 재발 방지에 대한 대책도 소극적이었다. 불행한 상황이 발생하면 피해자 분리조치와 피해 복구의 원칙,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수사)와 처벌의 원칙, 관련 자원의 사과 및 사안별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의 원칙 등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으며 이런 와중에 사랑의 집 가해자는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임에도 3년6개월 징역형이라는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쳤고 적반하장식으로 SNS와 각종 매체에 자신의 무고를 주장하는 뻔뻔한 행위를 일삼았다. 이러한 일들의 반복, 연장선으로 인천지역에서는 연수구 장애인거주시설 학대사건, 영흥도 장애인거주시설 사망사건 등이 이어졌으며 최근 강화도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반인권행위가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차별받고, 폭력을 당하고, 죽어야 이러한 일들이 멈출까? 우리가 주목하고 경계해야 할 점은 인권의 원칙에 위배되는 가치전도와 무관심, 이를 방지하는 사회적 안전망의 미비가 바로 반인권적 패륜 범죄행위의 재발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지켜낸 민주주의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잊혀질 만하면 언론에 의해 알려지게 되고 마지못해 떠밀리듯 대응하는 공공 부문과 관련 단체들의 반복적 대처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현재 강화를 포함한 인천 지역은 장애인 거주시설 전수조사 중이다. 조사원 교육을 포함한 조사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채 조사가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부디 이 조사를 계기로 시설 내 인권보장의 향상과 탈시설 로드맵의 가속화가 이뤄지길 소망해 본다.

[인천시론] 이주민 밀집지역, 어울림 공간으로

인천 함박마을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다양한 언어의 소리에 귀를 쫑긋할 수 있다. 러시아어, 중국어, 몽골어, 한국어가 교차하고 아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를 섞어 놀이터에서 서로를 부른다. 어른들은 한국어로, 또 각자의 모국어로 인사를 나눈다. 이 작은 동네는 마치 세계 지도가 접혀 한자리에 놓인 듯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 다채로움의 그림 뒤에는 설명되지 않는 긴장과 상처가 숨어 있다. 한쪽에서는 “서로 다르니까 조심하자”는 목소리가, 다른 한쪽에서는 “우리를 왜 늘 문제로 보는가”라는 속삭임이 흘러나온다. 우리 연구소에서는 수년 전부터 함박마을의 문화적 혼종성과 협력적 거버넌스를 연구해 오고 있다. 이 중 교육 문제가 가장 큰 도전 과제다. 이 지역의 학교에서는 아침부터 작은 일들이 쌓인다. 한국어가 서툰 아이가 교실에서 질문을 못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다른 아이는 집안 상황 때문에 잦은 전학을 반복하며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한다. 교사는 애쓰지만 매년 바뀌는 인력과 늘어나는 업무 앞에서 깊은 한숨을 짓는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언어가 달라도 공 하나만 있으면 금세 어울리는 아이들. 서툰 한국어를 대신 설명해 주는 또래들. 서로를 다르게 보면서도 자연스럽게 함께 있게 되는 작은 기적들. 이 아이들은 사실 ‘다문화 학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함께 자라나는 친구들이며, 우리 사회가 함께 키우는 미래다. 이주민 밀집지역에서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단순히 문화가 달라서만이 아니다. 낯선 것에 대한 긴장, 생계의 불안, 도시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가진 오래된 상처 등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문제가 표출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서로를 향한 거리감을 키우고 혐오를 자라게 한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이주민을 돕기 위한 여러 정책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정책’이 아니라 ‘관계’라고 조언하고 싶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중요하다. 마을을 변화시키는 힘은 행정의 문서보다 서로를 향해 내미는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누구의 동네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정답은 언제나 같다. 바로 ‘우리 모두의 동네’다. 이주민이든 선주민이든, 아이든 어른이든 이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같은 햇빛 아래 하루를 시작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 열린 시선 하나, 이해하려는 마음 하나가 이 동네의 풍경을 바꾼다. 함박마을에 오래 연구하다 보니 이곳이 ‘문제의 공간’으로만 불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낯선 국가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함께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아이를 돌보며, 익숙지 않은 언어로라도 대화를 이어가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는 이미 ‘공존의 싹’이 자라고 있다. 다만 그것이 더 크게 뿌리 내릴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이주민 밀집지역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차별은 거리를 만들지만 관심은 다리를 놓는다. 배제는 고립을 낳지만 어울림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다. 다름이 문제가 되지 않는 동네, 서로의 언어가 장벽이 아닌 창문이 되는 동네, 함께 살아가는 것이 부담이 아니라 기회가 되는 동네.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그렇게 시작될 수 있다.

[인천시론] ‘섞음의 미학’ 김치

‘전통문화’라고 하면 흔히 수백년, 때로는 천 년 이상의 오랜 세월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 한옥의 온돌처럼 실제로 여러 전통문화가 이런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역사가 짧은 것도 있는데 한국인의 주식(主食)인 배추김치가 그렇다. 김치는 독특한 변형을 빼도 대략 6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중 일반적으로 “김치!”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대표 주자(走者)는 배추김치다. 요즘 것과 같은 배추김치는 언제 생겼을까. 김치가 우리 민족 고유의 음식이고 배추김치는 그 대표이니 무척 오래됐을 것 같지만 그 역사는 130여 년에 불과하다. 오늘날 우리가 김치를 담글 때 주로 쓰는 배추는 결구성(結球性), 곧 잎이 안쪽으로 둥글게 모이며 단단하게 속이 드는 배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 배추가 김치의 주재료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00년대에 들어와서 였기 때문이다. 결구성 배추는 19세기 후반 중국 산둥(山東)성에서 들어왔다. 1850~1860년에 들어왔다는 설(說)과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를 따라 조선에 온 청나라 사람들이 가져왔다는 설이 있다. 당시 조선에 온 중국인들은 인천(제물포)에서는 주로 부두 노동으로 서울에서는 비단이나 잡화 판매로, 김포 일대에서는 배추 농사로 생계를 이어갔다. 대부분 산둥성 출신인 그들은 춘절(春節·설날)이면 고향에 갔는데 조선으로 돌아올 때는 꼭 배추 종자를 가져와 키웠기 때문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산둥배추는 단맛이 나며 절이기도 좋아 김치를 담그기에 알맞았다. 그래서 점차 김치 재료의 대표가 된 것이다. 이 배추를 쓴 김치가 처음 보이는 기록은 1800년대 말에 나온 ‘시의전서(是議全書)’라는 책자라고 한다. 그 이전에도 조선에 크기가 작은 다른 종류의 배추가 있기는 했지만 약재(藥材) 등으로나 쓰였다 하고 가장 흔한 형태의 김치는 무를 소금에 절인 ‘무짠지’였다. 한편 김치 종류에 고추를 넣은 첫 기록은 1766년에 나온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보인다고 한다. 오이소박이에 고춧가루를 소로 넣었다. 임진왜란 이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고추가 이때 와서야 비로소 음식에 쓰인 것이다. 그 뒤로 고추는 우리 음식에 빠져서는 안 되는 핵심 첨가물로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따라서 한국인의 식탁에 고추의 매운맛이 본격적으로 올라온 것은 1800년대 무렵이다. ‘한국 음식’이라 하면 흔히 매운맛을 떠올리지만 사실 그 이전에는 그리 매울 것이 없었다 하니 ‘매운맛의 전통’도 생각처럼 오래된 것은 아니라 하겠다. 그런데 그 김치와 매운맛이 오늘날 전 세계에 한민족을 알리는 문화의 전도사로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다. 김치는 배추에 여러 양념을 넣고 이들이 함께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김치는 비빔밥처럼 한국인의 음식 철학인 ‘섞음의 미학’을 잘 실천하는 음식이라는 말이 있다. 22일은 ‘김치의 날’이다. 2020년 우리 정부와 ‘한국김치협회’가 함께 제정한 이날은 이제 미국, 영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여러 나라에서 함께 기념하는 날이 됐다. ‘섞음의 미학’을 자연스레 실천하는 김치가 전 세계 더 많은 곳으로 퍼지며 모두를 섞어 하나로 만들고 다툼을 없애는 날이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인천시론] 장애인 편의와 사회 성숙도

변화는 처음에 그 차이를 확연하게 느끼다가도 일상에 치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무디어지기 마련이다. 도시 환경은 더욱 그러한데, 불과 10년 전과 현재의 모습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있더라도 우리는 변화를 쉽게 잊고 현재에 금방 익숙해진다. 환경 변화라는 측면에서는 짧은 시간일수도 있는, ‘불과 10년’이지만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진 대표적인 사례로 횡단보도를 들 수 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횡단보도에는 턱이 있었고, 횔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은 인도와 도로 사이에 단차가 존재하지 않는 곳을 찾아서 도로로 내려와 횡단보도로 접근하여 길을 건너는,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기에 이러한 방법으로 길을 건너곤 했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1984년 9월19일, 김순석님의 죽음을 계기로 거리에 턱을 없애달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는 지금은 사라진, 그러나 1980년대 이전에는 장애의 대표적인 유형이라고 할 만큼 발현 비율이 높았던 소아마비 장애를 가졌던 사람이다. 부산 출신으로 서울로 상경하여 보석가공 기술을 배워서 뛰어난 기술을 가진 직업인으로 성장했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흉추 이하가 마비되는 장애를 중복으로 가지게 되었고 휠체어를 사용하게 된다. 지금도 상당히 불편하지만 그 당시,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의 이동을 포함한 사회접근 편의는 전무했었다고 볼 수 있다. 지하철, 버스, 거리, 건물, 어디에도 장애인을 위한 편의 시설은 없었다. 사회에 접근할 수 없는 보석가공 기술은 무용지물이었고, 생계를 이어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기에 그는 “시장님, 왜 저희는 골목 골목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우리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지나는 행인의 허리춤을 붙잡고 도움을 호소해야 합니까”라고 5장의 종이에 빽빽이 쓴 유서를 염보현 서울시장에게 남기고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그의 장례를 주도한 전국지체부자유대학생연합회를 비롯한 당사자 및 관련 단체들과 이후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조직들에 의해 지난하게 시도된 법·제도 환경개선 요구에도 불구하고 2001년 1월22일,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이용하여 역내를 이동하던 중 추락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다. 1984년, 김순석님의 죽음이 우리 사회의 이동약자의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면, 2001년 오이도역 사건은 그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구체적인 문제점을 보여주게 되었고 당사자들과 관련 자원들은 단 하나, 지하철·전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는 요구를 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 현재,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궤도 이동 시설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고 연장선으로 횡단보도에는 턱이 없어지게 된다. 이렇게 우리사회의 이동·접근권은 장애인 당사자들의 자각과 요구에 의해 상당 부분 이루어졌지만, 장애인, 노인, 임산부, 어린이 등에게만 편의 제공이 국한되지 않고, 우리 모두에게 편리한 변화로 작용해 왔으며 나아가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함을 인식해야 한다. 1984년 9월19일, 김순석님의 죽음의 의미는, 장애인이 편리한 사회는 모두가 편리하다는 가치관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거리 곳곳의 턱없는 횡단보도에서도 맞이하게 된다.

[인천시론] 공존을 배우는... 이주민과 함께하는 봉사

“봉사는 꼭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이어야 하나요.?” 한 학생의 질문이 내게 오래 남았다. 오랫동안 우리는 봉사를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관계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이주민과 정주민이 함께하는 봉사활동의 현장은, 그런 구분이 무너지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장이 된다. 인천은 전국에서 이주민 인구 비율이 두 번째로 높은 도시다. 학교와 마을 곳곳에서 다양한 언어가 들리고 다양한 삶의 방식이 공존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봉사활동은 ‘도움을 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의 이분법 속에서 진행된다. 진정한 봉사는 이런 구분을 넘어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 앞에 선 인간은 응답을 요청받는다”고 했다. 봉사는 그 요청에 응답하는 윤리적 관계의 실천이다. 이주민과 정주민이 함께하는 봉사는 단순히 ‘노동’이나 ‘서비스’가 아니다. 서로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고 배우는 상호문화소통(intercultural communication)의 과정이다. 예를 들어, 한 마을의 음식 나눔 행사에서 한국인 봉사자가 김치 담그는 법을 소개하고 몽골 출신 봉사자가 자신의 전통 음식 ‘보즈(만두)’를 함께 나눈다면 이는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문화의 번역과 공존의 대화가 된다. 이런 경험을 통해 봉사자는 ‘다름’을 낯섦이 아니라 ‘배움의 자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봉사는 결국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는 공부’이기도 하다. 최근 시민참여형 봉사에서는 ‘코크리에이션(co-creation)’이라는 개념이 주목받는다. 이는 봉사자들이 기획—실행—평가 전 과정에 공동으로 참여하며 사회적 가치를 함께 창조하는 방식이다. 이주민과 정주민이 한 팀이 돼 마을 벽화를 그리거나,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지도’를 만드는 활동은 코크리에이션의 좋은 예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재능과 관점이 연결되고 봉사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공동체 실험’이 된다. 이런 협력은 일회성 행사를 넘어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상호문화 거버넌스로 발전할 수 있다. 최근 부평자원봉사센터와 우리 연구소가 공동으로 이주민—정주민 자원봉사활동에 관한 공론장을 열어 이주민들, 봉사활동가, 행정가들이 함께 협동 봉사활동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이주민과 함께하는 봉사활동은 단순한 사회공헌을 넘어 ‘공존의 윤리’를 배우는 교육적 실천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도움’보다 ‘관계’를, ‘시혜’보다 ‘대화’를 배운다. 봉사는 타인의 삶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나의 시선을 바꾸는 일이다. 이주민과 정주민이 함께 걷고 말하고 웃는 순간, 봉사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된다. 이제 봉사는 ‘도움을 주는 기술’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언어를 배우는 시간이어야 한다. 이주민과 정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봉사활동은 우리 사회가 ‘나눔의 시대’에서 ‘함께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존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서로의 손을 잡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그 손을 맞잡는 순간 우리는 이미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 인천은 공존의 언어를 습득하는 배움터가 될 것이다.

[인천시론] 부동산, 사회 인프라로 봐야

10월15일 이재명 정부가 출범 이후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부동산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정책 효과성이 미흡한 논란거리로 부각되고 여당과 야당이 서로를 근본적 원인 제공자라 비난하는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익숙한 형국이 반복되니 국민 사이에 ‘이번 정권에서도 틀렸다’는 부동산 불패에 대한 자조 섞인 실망마저 나온다. 부동산 문제는 일개 정권의 문제가 아니고 모든 대통령과 행정부의 공동 책임이다. 궁극적으로 국민도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부동산 문제는 한두 번의 정권 교체로 해결될 수 있는 단순한 정치적 의제가 아니라 경제 구조와 인간의 욕망이 교차하는 복합적 문제다. 흔히 ‘100개국에 100개의 경제학이 있다’고 말한다. 모든 국민경제에는 각기 다른 경제 사회적 환경과 시장 참가자를 가진다. 공급자와 소비자의 수효가 적거나 거래되는 상품의 수량이 제한되면 비효율적 시장이 형성되고 정부 개입은 정당화된다. 이런 점에서 부동산은 정부 개입이 용인되는 가장 대표적인 시장 실패 영역이다. 과거 부동산 정책은 개입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정책 성과를 확보하는 데 줄곧 실패했다. 보수정권과 진보정권 모두 대증적 단기적 요법에만 집착했다. 결과는 실패의 반복이었다. 심지어 ㎡당 5천만원이 넘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조차 지금의 아파트값이 비정상적이라고 말한다. 모든 국민이 부동산 투기를 하게 되면 국민경제가 다단계 사기의 종말과 같은 결과를 맞는다. 부동산을 일반적 ‘재산’이나 ‘상품’이 아닌 ‘사회적 인프라’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부동산, 특히 토지는 생산요소이기도 하지만 유일하게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영토의 일부로 재정의해야 한다. 이미 공공임대주택 관련 제도같이 주거를 복지의 일부로 보는 사회주의적 접근은 시장의 건강성을 회복시키는 유용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 토지를 장기 임대해 민간이 개발·운영하되 토지 소유권은 사회에 귀속시키는 ‘토지임대부 개발 모델’이나 ‘공유형 주택 제도’ 등은 시장과 공공이 공존할 수 있는 혁신적 실험이다. 적어도 여러 세대 동안 여론 수렴을 거쳐야 하는 의제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토지를 국가가 소유한 싱가포르나 이스라엘의 경우에서 부동산 정책의 개선 방향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좁은 국토를 가진 한국이 부동산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시장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모든 것을 국가가 통제하는 방식 역시 실패할 것이다. 해법은 그 중간, 즉 시장의 효율성과 사회적 정의가 공존하는 ‘현명한 절충’ 속에 있다. 부동산 정책은 집값 안정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있다. “정부는 ‘가끔’ 시장보다 낫다”(그레고리 맨큐). 정부의 개입이 아주 드물게 사회적 효율을 높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부동산과 관련해 섣부른 정책 발표가 잦아지거나 정책 변경이 빈번하다면 실패를 반복하는 셈이 된다.

[인천시론] 송도유원지 되살리기

추석 명절로 지방을 오가던 길에 철 지난 바다 몇 곳을 들렀다. 넓게 펼쳐진 백사장, 끝없이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가 머릿속까지 시원하게 해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고향 인천의 현실이 떠올라 아쉽고 안타까웠다. 8월 우리 재단은 송도달빛공원에서 7일 일정으로 ‘송도해변축제’를 열었다. 길이 30m, 너비 15m의 물놀이장과 비슷한 넓이의 모래밭, 캠핑장과 먹거리 구역을 만들어 놓고 여러 공연도 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뜨거운 날씨에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도시를 떠나지 못한 시민 7만여명이 피서를 위해 찾아왔다. 거기서 좁은 물놀이장과 모래밭이나마 즐거워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로 인해 흐뭇해하는 부모들을 마주하면서, 여기저기 어렵게 공간을 찾아 텐트를 치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가족과 연인들을 보면서 내내 생각난 것이 송도유원지였다. 많게는 한번에 2만여명까지 들어갈 수 있었던 송도유원지는 수문(水門)을 여닫는 방식으로 바닷물을 조절하는 넓은 해수욕장과 그를 빙 둘러싼 긴 모래밭, 여러 놀이기구와 보트장까지 갖춘, 그야말로 인천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였다. 유원지의 뒷문 쪽 갯벌에 바닷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길을 따라 건너편 아암도를 걸어서 오가던 낭만은 또 어땠는가. 그랬기에 여름이면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계절이 바뀌어도 해변의 정취를 찾아 이곳에 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시(市)의 끝자락에 자리한 송도유원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쉽게 오갈 수 있었기에 인천을 넘어 전국적인 명소가 될 수 있었다. 그랬던 송도유원지가 2011년 문을 닫고 14년이 지났다. 인천시가 만든 특수목적회사(SPC)가 운영해 왔지만 세월이 흐르며 전국 각지에 새로 생긴 관광지들과의 경쟁에 밀리다 결국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이로써 인천은 바다가 있지만 섬에 가지 않으면 바닷물 수영이나 백사장 산책을 할 곳은 전혀 없는 ‘특이한’ 도시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인천시민들은 지난 ‘송도해변축제’에서처럼 임시로 만든 작은 수영장과 모래밭마저 아쉬워 찾아와야 하는 신세가 됐다. 해운대처럼 도시의 바닷가에 넓고 멋진 백사장을 갖춘 해수욕장이 여럿 있어 사시사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부산과 얼마나 다른가. 그나마 인천에서 유일하게 그런 역할을 했던 송도유원지가 사라진 자리에는 지금, 북적이던 사람들 대신 팔려 갈 날을 기다리는 중고차들이 가득 차 있다. 숱한 추억을 남겨준 아암도는 그대로 있지만 대형 트럭이 휭휭 달리는 해안도로가 가로막아 오갈 수 없다. 바다를 즐길 곳이 없는 해안도시, 갯벌이든 어디든 공간만 생기면 아파트부터 빽빽하게 채우는 도시가 과연 갈수록 ‘문화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를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그런데 얼마 전 언론을 통해 이곳 송도유원지 땅에 관한 인천시의 개발 계획이 보도됐다. 복합문화시설을 갖춘 호수공원과 중·저밀도 주거단지를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이 계획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지켜봐야 알 것이다. 하지만 보도된 내용으로 보면 역시 옛 송도유원지의 풍취(風趣)나 기능을 대신하기는 영 어려울 것 같다. 송도유원지를 다시 살릴 길은 정녕 없는 것인가. 인천은 고작 이렇게 흘러가는 도시인가.

[인천시론] 장애 혐오 없는 사회

얼마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검찰 수사관이 증언 중 작성한 낙서가 사회적 논란이 됐다. 해당 낙서에는 의원들을 비난·조롱하는 과정에서 장애 비하 표현이 사용됐는데 국회라는 공간, 공직자로서의 신분, 사건의 중요성, 그리고 우리 사회 공직자가 마땅히 갖춰야 할 인권 감수성을 고려할 때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2019년 10월7일 서울고등검찰청 국정감사 현장에서도 여상규 당시 법제사법위원장이 장애 비하적 발언을 하여 사회적 공분을 산 바 있다. 특히 판사 출신이자 국회의 핵심 인사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된 여러 장애인 비하 발언 진정 사건 이후에도 문제적 언행을 보였다는 점에서 그 파장은 더욱 컸다. 이러한 사례들은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장애 인권 감수성의 부족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거친 비난을 할 때 욕설을 가려 사용하지만 장애와 관련된 비하 표현은 상대적으로 거리낌 없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장애에 대한 깊은 혐오를 담고 있으며 당사자들에게는 명백한 모욕과 차별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사회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장애에 대한 혐오는 전통적으로 장애인을 ‘정상성에서 벗어난 존재’로 규정하는 사회적·의료적 관점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관점은 장애인을 기피와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지만 사실 누구나 생애 과정에서 질병이나 노화로 인해 장애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장애는 특정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삶의 일부로 이해돼야 한다. 2001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러한 관점을 반영해 ‘국제 기능·장애·건강 분류(ICF)’를 채택했다. ICF는 장애를 단순히 개인의 신체적 손상이나 결핍이 아니라 환경적·사회적 요인과 상호작용한 결과로 본다. 북유럽 국가(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등) 또한 상황적 요인을 강조하는 정책을 펼치며 임신·출산 과정에서의 신체적 변화나 일시적 기능 저하를 제도적으로 고려하는 등 포용적 복지 시스템을 운영한다. 이와 더불어 유아기부터 통합 교육과 인권 감수성 교육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줄이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고 있다. 장애인지 감수성, 장애 인권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명확하고도 확정된 대답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는 장애인지 감수성, 장애 인권의 개념과 범주가 폐쇄·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적·사회적 조건 속에서 변화되는 것이며 그 개념을 확장하고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늘 변화되고 풍부해지는 역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지 감수성, 장애 인권의 시작은 동정적이며 시혜적인 배려가 아니라 혐오 없는 고려와 장애인지 감수성, 장애 인권에 기반한 언어의 공유와 확산이며 긍정적 패러다임의 전환과 전달체계의 변화가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반영되고 혐오와 차별의 언어가 자제되고 정화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일체의 혐오는 차별을 야기하고 차별은 폭력으로 이어진다.

[인천시론] ‘이주민’ 환대와 적대 사이

소래라는 지명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 그러나 이곳이 백제 시조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 소서노가 발을 들인 자리라는 일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소서노는 한반도의 첫 정치적 난민이었고, 그녀의 아들들은 오늘날 말하는 ‘중도입국 자녀’였다. 이렇게 인천은 고래로 이주민을 품어온 도시였다. 오늘날 인천은 항만과 공항을 중심으로 성장하며 전국 어느 도시보다 다양한 이주민들이 살아간다. 외국인 주민은 이미 전체 인구의 6%를 넘었고, 일부 지역은 10%를 초과한다. 연수구 함박마을의 몇몇 초등학교에서는 학급 절반 이상이 이주 배경 아동이다. 골목과 시장, 공장과 학교에 다국적 일상이 스며들었지만, 이 변화가 곧바로 이해와 공존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낙후 지역에 집중된 주거, 낮은 공공서비스 접근, 불안정한 체류 자격과 열악한 노동 환경은 이주민을 소외시킨다. 여성 이주민은 돌봄 노동과 사회적 고립이 겹쳐 이중의 취약성을 겪고, 이주 배경 학생들은 언어 장벽과 학업 부진, 또래 관계의 소외로 성장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여전히 언론과 여론은 이들을 위험 집단으로 묘사하며 차별의 벽을 두텁게 한다. 이제 해법은 분명하다. 단순히 문화 차이를 인정하는 다문화주의를 넘어 상호문화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소통과 책임, 참여와 연대를 전제로 한다. 이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도서관과 마을회관을 상호문화 거점으로 전환해야 한다. 언어 교육과 취업 상담, 문화 교류가 같은 공간에서 이뤄질 때 공동체가 자란다. 학교에서도 이주 아동을 특별한 대상으로만 보는 시선을 넘어서야 한다. 모든 학생이 세계시민교육과 상호문화 감수성을 함께 배울 때 미래가 희망으로 열린다. 노동과 주거에서도 기본 권리 보장은 전제돼야 한다. 불법체류 문제 역시 단속 일변도가 아니라 체류 안정화와 권리 보장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민 인식의 전환이다. 지역 축제와 공동 프로젝트, 미디어 캠페인을 통해 이주민을 ‘타자’가 아닌 ‘우리’로 인식할 때 진정한 연대가 가능하다. 인천이 세계적 도시로 성장하는 길은 단순히 항구와 공항의 네트워크에 있지 않다. 이주민과 정주민이 함께 웃고, 일하며, 살아가는 상호문화적 연대 속에서만 가능하다. 상호문화주의는 단순한 포용을 넘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새로운 공동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 및 사회적 차원의 환대가 요구된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에서는 낯선 이방인을 최소한 적대하지 않고 맞이해야 한다는 ‘보편적 환대’ 원칙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이주민 문제에 적용한다면 단순히 시혜나 자비 차원이 아니라 권리로서의 환대를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주민 문제는 더 이상 주변부의 사안이 아니라 인천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 짓는 핵심 과제다. 진정한 국제도시는 다양성을 문제로 여기지 않고 미래를 위한 힘과 자산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 우리는 적대가 아닌 환대로 이주민을 대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을 적대할 것인가, 환대할 것인가. 답은 이미 분명하다.

[인천시론] 선진국의 품격

나는 불평하는 1등을 본 적이 없다. 최근 우리나라의 2024년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6천600달러를 기록, 일본의 3만4천500달러를 2023년에 이어 사상 처음 2년 연속 앞선 것으로 추계됐다(한국은행 자료). 일본의 국민소득이 전년 수준에 그친 데 반해 우리나라는 2천달러 남짓 늘어나 이 추세는 앞으로도 유지될 전망이다. 1990년대 초반 우리의 국민소득은 일본의 3분의 1에 불과했고 모든 산업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하기에 바빴다는 점을 되새겨보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제 한국 경제는 ‘일본을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버려야 산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제조업을 포함해 세계적 영향력을 고려해 보면 한국은 더 이상 작은 나라가 아니다. 선진국의 원조를 받던 국가 중 최초로 원조공여국이 되더니 이제는 경제·문화·기술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본주의 역사상 후진국에서 선진국이 된 유일한 나라이며 무역, 경제 규모, 과학기술, 군사력 등 어떠한 기준을 적용해도 전 세계에서 6~10위에 포함되는 국가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 세계사적 흐름에서 봐도 한국의 등장은 자본주의 역사의 새로운 특이점(singularity)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변화의 출발점으로도 해석된다. 이러한 변화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와 같은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는 서비스산업보다 일반적으로 변화 주기가 길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문화의 세계 진출 속도를 고려하면 최근의 긍정적 변화는 새로운 특이점으로 손색이 없다. BTS를 비롯한 케이팝 예술가들은 일시적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넘어 세계인의 정서와 가치를 연결하는 문화적 메신저가 됐다. ‘강남스타일’로 시작해 ‘기생충’, ‘오징어 게임’으로 이어진 한국 문화의 주류화는 이제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으로 이어져 일회적 사건이 아닌, 한국 문화를 세계가 소비하는 새로운 변화의 징표라 할 수 있다. 케이팝, 영화, 드라마로 시작된 한국콘텐츠는 웹툰, 음식, 게임 등 다양한 장르로 확대되고 있다. 외국인이 뽑은 세계 5대 박물관에 국립박물관이 포함된 것처럼 이제는 의도하지 않은 분야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우리 문화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요즘 한국인은 해외에서 그야말로 선진국 국민 대접을 받는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보다도 지난 60년간 지속된 한국 경제의 발전이 큰 역할을 했고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이 경제발전의 원동력 역할을 해왔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지난 40여년간 지속된 과학기술 분야의 투자 효과는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인공지능(AI) 분야 100조원 투자 계획으로 더욱 탄력을 받아 한국 경제에 긍정적 변화를 지속적으로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바이오, 우주 산업 등 신산업 분야에서조차 한국은 빠른 추격자에서 잠재적 선도국가로 성장하고 있다. 과학기술은 문화와 결합해 더 큰 파급력을 만들어내고 이는 다시 국가의 위상을 강화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지금 대한민국 전체가 긍정적 특이점이라는 미증유의 역사적 변곡점을 맞고 있다. 새로운 가능성인 동시에 또 다른 세계관의 시작이다. 선진국 시민으로서 후진국의 구태를 답습한다면 2025년 오늘의 특이점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잃어 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의 1980년대처럼. 개인이나 국가나 1등은 항상 자기 혁신과 상생에 집중한다.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에 자기만의 고독과 타인의 질시도 감내해야 한다. 불평하거나 상생하지 않는 1등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인천시론] 위기 청년, 자립지원 필요하다

8월28일, 여성가족부는 내년 예산으로 1조9천866억원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올해 1조7천777억원보다 11.8% 증가한 수치로 역대 최대 규모다. 정책분야별 예산을 살펴보면 가족정책이 1조4천19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이어 청소년정책 2천679억원, 성평등정책 2천751억원, 권익보호 1천461억원 순이다. 정책분야별 세부사업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청소년복지시설 대상 가정 밖 청소년 성장일터(3개소)’ 지원사업이다. ‘가정 밖 청소년’이란 가정 내 갈등·학대·폭력·방임, 가정해체, 가출 등으로 인해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청소년(청소년복지지원법 제2조)들로 이들은 청소년쉼터, 청소년자립지원관 등 청소년복지시설에서 일정기간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아동복지시설 및 위탁가정에서 보호 중이거나 보호가 종료된 지 5년 이내의 ‘자립준비청년’(아동복지법 제38조)에 해당하지 않는다. 위기상황에 처한 아동·청소년은 발굴 또는 발견 경로에 따라 아동보호체계(보건복지부 관할), 청소년보호체계(여성가족부 관할), 소년보호체계(법무부 관할)로 분리되기 때문이다. 이같이 청(소년)보호체계 내 시설퇴소 청년들은 보건복지부의 자립지원사업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자립지원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국민통합위원회를 비롯해 인천시의회—인천시정연구네트워크 정책소통토론회 등을 통해 이어져 왔다. 때문에 ‘제7차 청소년정책기본계획(2023~2027년)’에서도 가정 밖 청소년에 대한 자립지원을 강화하고 내년부터 여성가족부가 이들을 위한 일터 조성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이 고무적인 이유다. 아동양육시설 및 청소년복지시설에서 퇴소했거나 이들 시설에서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중도 퇴소했거나,소년원에서 나온 뒤 갈 곳 없는 청년들이 모여드는 곳이 청소년자립지원관이다. 청소년자립지원관은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후 자립준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설(청소년복지지원법 제31조)로 현재 인천의 2개소를 포함해 전국에 13개소가 운영 중이다. 인천에서 운영 중인 별바라기에는 현재 60여명의 청년이 생활하고 있고 이미 퇴소했지만 여전히 고립된 채 도움이 필요한 40여명의 청년이 있다. 별바라기는 5월 서구 석남동에 위치한 편의점을 인수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나 학습지연 등으로 인해 쉽게 해고되는 청년들을 위한 ‘안정적인 일터’ 를 확보했다. 더불어 이곳에서 일 할 수 있도록 출퇴근 습관, 위생과 복장, 메모 습관, 고객 응대, 충동 조절, 관계 맺기 등 기본기술을 지도하고 있다. 이러한 자활사업은 위기의 청년들이 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는 생존기술을 훈련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기를 마치고 부모 또는 시설로부터 독립해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청년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청년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게 자립이다. 그러므로 보호시설 퇴소 후 자립이 요구되는 위기의 청년들을 위한 사각지대 없는 지원이 필요하다. ‘보호’와 ‘지원’과 ‘자립’은 상호 분리되거나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애 전 과정을 통해 지속되는 과정이다. ‘자립지원’은 청년들의 미래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와도 직결된다. 인천에서는 자립지원이 필요한 청년들이 누구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이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정책적 뒷받침이 이뤄지기 바란다.

[인천시론] 상륙 작전과 평화는 모순이다

지난달 일이다. 대한민국 연극제를 홍보하는 현수막에 놀랐다. ‘연극, 인천에 상륙하다’라니. 나를 비롯한 인천시민 대다수는 연극사에 문외한이다. 연극이 바다 건너에서 인천을 통해 들어왔는지 잘 모른다. 다만, 연극축제를 소개하는 팸플릿을 유심히 봤다. 전국에서 모여든 극단 중에 상륙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바다 밖 단체를 찾지 못했다. 해외에서 참여한 연극인들도 없다. 연극과 연극인들은 상륙한 게 아니라 육지에서 육지로 이동했다. 슬로건을 창작한 이는 항변할 수 있다. 인천의 특성을 살린 상징적인 표현에 딴지를 건다고. 인간이라는 종은 바다에서 진화해 육지에 올랐다. 상륙 자체가 인간의 운명이었다. 연극이라는 예술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바다 도시 인천에서 진화를 완성하는 축제가 되기를 바라는 열망을 상륙이라는 단어에 담았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일이다. 전차와 장갑차가 인천시가지를 행진했다. 수륙 양용 전투 장비가 상륙이라는 단어와 만났다. 환호도 있었겠지만 기겁한 시민들은 전쟁과 살육부터 떠올렸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인천에게 숙명처럼 남은 상륙을 되돌아봤다. 월미도에 남은 상흔처럼 포연 가득한 현장을 기억하는 이들은 치를 떨었다. 전쟁 도시 이미지를 탈각하려 고심해 온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게 상륙 작전 재현이었다. 상륙작전 기념 행사를 기획했던 이들은 달을 봐야지 손가락만 보고 수선 떤다 할지 모른다. 국군의 날 퍼레이드처럼 전쟁 억지력 과시야말로 평화를 보장하는 수단이라는 메시지에 주목하라고. 결국 평화를 말하기 위해 상륙이 등장했다고. 평화가 값진 만큼 상륙이 불러온 희생은 어쩔 수 없는 비용으로 치부한다. 그래서 벌어진 일이 있다. 인천의 한 후보가 자유 공원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상륙 작전을 지휘한 맥아더를 정치적인 상징으로 부각했다. 자유공원이라는 명명과 맥아더라는 인물은 인천을 과거로 끌고 간다. 상륙작전을 본떠 진행한 출정식은 시민들에게 먹히지 않았다. 인천은 미래를 향해 발돋움하길 원한다. 대한민국 지도자가 되려는 이가 인천을 전쟁도시 이미지로 소모하길 바라지 않는다. 전쟁도시가 과거 지향이라면 미래는 평화도시다. 전쟁을 통해 평화에 이르렀다고 강변해도 전쟁은 전쟁이고 평화는 평화다. 평화로 평화를 만드는 길을 여는 게 인천시민이 바라는 미래상이다. 올해는 다행히 상륙 작전 기념 행사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빼기로 했다. 전쟁을 가리고 평화를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게 기획의 골자다. 하지만 상륙 작전을 기념하려는 이상 오로지 평화만 떠올릴 수는 없다. 전쟁을 기억하자며 벌이는 잔치는 여전히 형용 모순이다. 상륙작전 기념 행사를 명분 삼아 전쟁에 축제라는 옷을 입히겠다는 의도 자체를 거둬들여야 한다. 전쟁은 기억할 수는 있을지언정 축제화 할 대상이 아니다. 승전이라고 해서 전쟁이 남긴 참화가 지워지진 않는다. 한국을 바라보는 다른 나라의 시선은 인천에 상륙했던 군대가 아니다. 활기차게 세계와 교호하고 있는 문화다. 인천상륙작전을 소재 삼은 영화들은 실패했다. 보고 싶은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보여 주려고만 하다 보니 관객들이 외면했다. 시민들은 인천상륙작전 기념 행사보다 지속가능한 평화를 보고 싶어 한다. 시가 준비한 상륙 작전 기념 행사 기간에 인천의 시민단체들은 ‘평화주간’을 선포했다. 평화를 이루려면 오로지 평화만을 수단으로 쓰자는 취지다. 상륙 작전 기념 행사에 담을 수 없는 진짜 평화를 추구하는 시민들이 있어 고맙다.

[인천시론] 제물포역을 어찌할까

인천시의 행정구역 통합·조정 계획에 따라 내년 7월1일 인천에 제물포구가 새로 생긴다. 이를 위한 행정 절차들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와 연관된 경인전철 제물포역의 이름 변경 여부는 공식적인 논의가 안 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제물포구 출범 전에 어떤 결론을 내든 한 번은 정리를 해야 할 과제라고 본다. 제물포역은 제물포구 출범 뒤에도 미추홀구에 있게 된다. 그래서 영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계속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될 때 인천의 출발역, 서울 쪽에서 볼 때는 종착역을 ‘인천역’이라고 이름 지은 것에서 비롯됐다. 지금도 그 이름 그대로인 인천역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제물포’라고 불리던 곳의 일부였다. 원래 제물포는 조선 초기 이래 지금의 중구 중앙동·항동 일대에 있던 작은 포구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그것이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지금의 중구청 주변을 중심으로 중구·동구 일대를 두루 가리키는 말이 됐다. 1954년 자유공원 밑, 웃터골에 문을 연 제물포고가 제물포라는 이름을 쓴 것도 그래서였다. 따라서 인천역은 당초에 제물포역이라 이름 붙이는 것이 더 옳았다. 그럼에도 인천역이라 한 것은 아마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방의 승객들을 더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제물포역보다 인천역이라는 이름이 ‘인천에 왔음’을 훨씬 분명하게 알려주었을 것이어서다. 그 뒤 1963년에는 경인철도 숭의역이 제물포역으로 이름을 바꿈으로써 지금의 제물포역이 생겼다. 이런 사실과 사연이 그동안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물포구가 생김으로써 별문제가 되고 있다. 해결책은 당연히 둘 중 하나다. 제물포역의 이름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방안과 문제가 있더라도 그냥 지금 그대로 놓아두는 것. 만약 이름을 바꾼다면 지금의 인천역이나 동인천역에 제물포역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분간 그 이름 아래 ‘옛 인천역’이나 ‘옛 동인천역’과 같은 표시를 해줘야 할 것이다. 또 지금의 제물포역에도 새로운 이름과 함께 당분간 ‘옛 제물포역’이라는 표지를 붙여줘야 할 것이다. 제물포역의 새 이름을 뭐로 정할까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이 모든 단계가 진행되는 동안 철도청과 인천시는 전 국민을 상대로 계속 홍보를 해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반면 지금의 이름을 그대로 쓰는 두 번째 방법도 있다. 이는 번거로울 일이 전혀 없어 좋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문제를 내내 안고 있어야 한다. 두 가지 방안 중 어느 쪽이 더 좋을지, 혹시 이들과 다른 해결책은 없을지 시민들의 의견을 한번 모아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제물포역 일대를 제물포구로 편입시킬 수도 있겠으나 너무 과격한(?) 방안이 될 것도 같다. 현재 영종도를 뺀 중구와 동구의 인구수, 개항기 이후 오랜 시간 인천의 중심이자 원도심으로 함께해온 이 두 지역의 역사를 고려할 때 제물포구의 출범은 지극히 타당하고 그 이름도 아주 적절하다. 이에 더해 미추홀구에 있는 제물포역의 이름 문제까지 공론화해 어느 방향으로든 한번 확실하게 정리한다면 제물포구의 출범이 한층 깔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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