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배리어프리, 예술에 문턱은 없다

예술은 늘 우리 삶에 위로와 용기를 건네 왔다. 그러나 그것을 향한 문턱이 누구에게나 넘기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는 점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질문해 왔는가. 누구나 함께 예술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외면한 채 우리는 연주와 관람이 가능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공연장과 정책, 예술 환경을 조성해 왔다. 예술의 가치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때 비로소 확장된다. 그럼에도 접근성과 포용성은 오랫동안 부차적인 요소로 취급돼 왔다. 장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도 존재한다. 예술의 장벽은 물리적인 구조가 아니라 인식의 높이에서 만들어진다. 장애예술은 오랜 시간 ‘복지 지원’의 프레임 속에 갇혀 있었다. 관련 공연과 축제, 창작 지원 사업은 종종 ‘감동’과 ‘희생’의 서사가 덧씌워진 홍보용 이벤트로 소비됐고 장애예술인은 예술의 독립적 주체가 아닌 ‘도와야 할 사람들’로 인식됐다. 예술에의 접근성을 고려하는 것은 선택 또는 선의의 영역에 머물렀으며 그 결과 장애예술 생태계는 ‘창작—제작—유통—향유’로 이어지는 순환적 프로세스를 구축하지 못했다. 장애예술이 단발성 사업과 예산의 변동에 종속돼 예술로 존재해야 할 것들이 행정적 소모성 이벤트로 전락하는 현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마주한 가장 높은 장벽이었다. 최근 열린 ‘제1회 경기 배리어프리 페스티벌’은 이러한 오래된 구조에 질문을 던진 축제였다. 장애예술인의 무대를 ‘특별한 행사’로 분리하지 않고 예술을 둘러싼 환경과 경험의 방식을 다시 설계했다. 공연장에는 수어 통역과 실시간 자막, 점자 프로그램북, 휠체어 접근 동선은 물론이고 감각 과민 관객을 위한 릴렉스존과 촉각 기반 터치 투어까지 마련됐다. 접근성은 친절과 배려의 차원이 아니라 예술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며 공연 인프라 설계의 기초다. ‘배리어프리’는 특별함이 아닌 ‘예술의 기본 조건’임을 선언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공연의 마지막 날, 그 메시지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전국 최초의 인재양성형 장애인 오케스트라인 ‘경기 리베라오케스트라’와 가수 ‘예린(그룹 ‘여자친구’ 출신)’이 함께 신곡을 작업했다. 필자는 이 작업의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그들과 함께 창작의 호흡을 맞췄다. 12월 중순 정식 발매를 앞둔 창작곡 ‘나의 하늘을 담아’는 이번 페스티벌 무대에서 처음으로 관객과 만났다. 공공 축제가 완성된 작품만을 소비하는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창작이 태어나는 실험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화려한 무대 장치나 규모가 만든 감동이 아닌 서로의 세계가 연결되는 경험이 만들어 낸 울림이었다. 예술은 누군가를 감동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힘 속에서 존재 이유가 탄생한다. 그리고 그 연결의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이며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건강한 미래다. 배리어프리는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장치나 복지의 언어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문턱을 낮추는 일이 곧 세상을 여는 일이라는 믿음이며 작은 실천이 예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확신이다. 예술이 각자에게 닿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예술은 더 넓고, 더 깊고, 더 섬세하게 설계돼야 한다. 예술의 문을 조금만 더 열면 무대는 훨씬 넓어진다. 작은 변화가 길을 만들고 그 길은 결국 더 많은 사람에게 예술의 순간을 허락한다. 예술은 모두의 것이다.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 진실을 잊지 않는다면 장벽 없는 예술을 향한 길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장애예술’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를 꿈꾸며.

[문화산책] 피탈 문화유산 원상회복 흐름

지난달 27일 영국이 ‘도덕적인 근거에 따른 배상을 가능하게 하는’ 법률 개정을 했다. 주요 내용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박물관들이 도덕적인 이유로 소장품 반환을 쉽게 하는 것이다. 이 법령은 2022년 ‘자선단체법’의 일부로 통과됐지만 보수당의 반대로 보류됐다가 이번에 개정된 것이다. 다만 대량의 소장품 반출을 우려해 대영박물관, 국립미술관 등 16개 기관은 이번 법률 대상에서 제외돼 벨기에, 프랑스 등과는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그러나 대표적인 약탈국으로 진전된 결정이다. 또 지난달 15일에는 바티칸 박물관이 캐나다 원주민으로부터 강압적으로 수집한 유물을 반환하면서 “대화와 존중, 형제애의 구체적인 표시”라며 입장을 발표했다. 이 유물은 1925년 교황이 바티칸에서의 전시회를 위해 세계 각지의 유물을 수집한 10만점 가운데 일부로 수집 과정에서 강압적 요소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2022년 캐나다를 방문한 교황은 당시 캐나다 전역의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벌어진 원주민 학생의 학대 등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교황의 사과 이후 원주민 지도자들은 관련 유물의 반환을 요구했다. 우리의 유산도 돌아왔다. 지난달 14일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은 소장하고 있던 ‘시왕도’(1798년 작)를 신흥사에 반환했다. 이 조선 불화는 6·25전쟁 시기에 미국으로 반출된 것으로 2020년 미국 LA카운티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시왕도 6점이 반환된 후 두 번째다. 소장처인 미국 박물관은 전쟁 중에 타의에 의한 반출이라는 점에서 자진 반환했다. 이처럼 과거 불법적인 수단에 의해 취득한 문화유산의 자발적 반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전쟁 중에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막대한 피해를 본 점을 반성하면서 1954년 ‘문화재’라는 개념이 처음 도입된 헤이그협약(무력 충돌 시 문화재 보호에 관한 협약)이 체결된 이후 1970년 유네스코협약(문화재의 불법적인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 그리고 1998년 워싱턴회의(나치 약탈 미술품의 반환 회의)까지 국제사회의 주요 의제는 전쟁 중 피해 회복과 예방에 관한 문제였다. 반면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의 피탈 문제는 유엔이 유네스코에 맡겨 1978년 문화재 반환촉진정부간위원회(ICPRCP)가 설립된 이후 ‘반환 권고문 위원회’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탈식민화하려는 국가의 ‘정체성’ 회복 차원에서 제국주의 국가에 의한 피탈 유산의 반환 요구는 높아갔고 약탈국들은 외교적, 문화적 수단으로 ‘유물 반환’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더구나 세계화의 빠른 진전으로 정부 중심의 협상에서 민간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다자 간 협상이 성과를 내고 있고 이제 대표적인 약탈국인 영국, 프랑스, 벨기에가 법령으로 반환을 촉진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소장자 세대교체, 정보의 디지털화, 세계화 등으로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유엔이 창설될 때 참여한 국가는 51개국으로 현재 198개국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142개국은 문화유산의 원상 회복 요구가 더욱 높아질 것이고 세상의 변화는 이를 더욱 촉진할 것이다. 대표적인 피해국인 한국의 원상 회복 노력이 공공외교 영역으로 추진돼야 하는 배경이다.

[문화산책] 문화적 도시재생 유감

문화예술정책이 중앙정부 주도에서 지역 주도로 변화를 시작한 지 어언 30년에 가깝다. 1990년대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의 제정은 문화자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기반이 됐다. 이에 따른 괄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로 지역문화재단이 전국적으로 촘촘하게 설립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현재 17개 광역지자체 모두에 문화재단이 설치돼 있으며 기초자치단체 226곳 중 절반이 훌쩍 넘는 143곳이 문화재단을 보유하고 있다. 지역문화재단은 각 지역에서 문화의 생산과 향유, 전문인력 양성, 문화공간 운영 등을 담당하는 중추적 기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지역의 문화재단이 그동안 일궈온 성과는 혁혁하다는 표현이 모자를 정도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한편에서는 재단 간 사업 구조와 운영 방식 그리고 사업의 결과물이 점차 동질화되는 문제 또한 제기되고 있다. 생활문화사업을 비롯해 법정문화도시에서 이름을 바꾼 대한민국문화도시도 지역별 특성화 측면에서만큼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문화적 도시재생사업도 마찬가지다. 근대유산, 역사시설, 학교, 군유휴시설, 폐산업시설 등 산업화 시대를 지나며 버려진 유휴공간을 문화적으로 되살려 보자는 것이 문화적 도시재생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용도폐기되면 흔적도 없이 철거되고 전혀 새로운 건물을 지음으로써 장소성과 정체성이 훼손된다는 반성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문화적 재생의 경우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보니 아무래도 민간보다는 공공이 주체가 될 수밖에 없고 그 중심에는 대부분 문화재단이 있다. 수원의 ‘111CM’, 부천의 ‘아트벙커B39’, 김포의 ‘보구곶 작은미술관’ 등 공공에 의해 추진되는 경기도내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지는 전국 최다 수준이다. 장소나 건물마다 가진 역사와 정체성을 살리겠다는 취지는 나무랄 데 없다. 문제는 이러한 시설이 다른 곳과 별 차이가 없다는 데 있다. 모두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당초 기대와 달리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관심에서 멀어지는 곳들도 적지 않다. 빵이나 호두과자 같은 공산품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지역의 문화, 특히 시설은 그 지역만의 특별함이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지역문화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찍이 조직사회학자 디마지오와 파월은 이렇게 조직이나 사업이 유사해지는 현상을 제도적 동형화(institutional isomorphism)라 이름 붙였다. 이들이 파악한 원인은 예리하지만 알고 보면 간단하다. 조직이 생존하거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른 제도와 유사한 구조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동형화는 때로는 강압적으로, 모방에 의해, 규범에 따라 이뤄진다. 중앙정부의 정책 지침, 공모사업, 평가 체계 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강압에 해당한다. 모방은 타 지역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거나 중앙정책의 모범 모델을 차용하는 것을 의미하며 전문가나 연구기관의 조언 및 컨설팅은 일종의 규범으로 작동한다. 그러고 보면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을 비롯해 지역문화재단의 사업이 유사해지는 걸 문화재단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오히려 자율성의 결여, 평가시스템의 획일화, 전문가들의 안일함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분석일 수 있다. 그렇다면 지역문화가 특성화되는 길은 자명하다. 지역문화재단에게 자율성을 좀 더 부여하고, 평가시스템을 유연하게 하며, 전문가나 연구기관이 엄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조언하면 된다.

[문화산책] 눈높이 독서 정책이 필요하다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이 1년간 책을 한 권이라도 읽었음을 보여주는 종합 독서율의 경우 43.0%, 종합 독서량은 연간 3.9권으로 2021년 결과보다 4.5%, 0.6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주기 통계 결과가 계속 하락 추세였기에 독서율 감소에 대한 우려나 출판시장 불황에 관한 소식은 이제 더 이상 ‘뉴스’라고 말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국가가 나서 ‘누가 얼마나, 무엇을 읽었나’를 조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독서 기반 지식화 능력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거나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요한 기본 역량이기 때문이다. 국가검진을 통해 국민 건강을 챙기는 것과 비슷하다. 읽기의 목적을 분명하게 알고 있고 좋은 책을 선별한 능력도 있고 고급 문해력도 갖춘 충성 독자는 읽기의 즐거움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기에 덜 걱정스럽다. 그러나 어쩌다 책을 찾아 읽는 간헐적 독자나 독서와 담을 쌓은 비독자를 위한 독서 콘텐츠는 어떻게 기획하고 만들고 제안해야 할지 보다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20여년 전 서울시와 함께 진행했던 초중고 대상 독서문화 사업이 떠오른다. 충성 독자 지원뿐만 아니라 비독자를 찾아내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다양한 독서 기회를 제공했는데 교사 연수, 학교별 맞춤 도서와 독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교실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서가를 제작해 ‘찾아가는 도서관 서비스’도 운영했다. 교사, 작가, 문화기획자와 협업해 진행했으며 성과도 좋았다. 특히 어느 고등학교에서 진행한 비독자 대상 열혈 분투기가 기억에 남는다. 학교 도서관 이용 기록을 조사해 비독자, 간헐적 독자를 찾아낸 후 일대일 관심 쏟기를 실행했다. 책을 한 번도 대출 안 했던 비독자에게 이동 서가와 함께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관심사와 눈높이에 맞는 책을 추천하고 일주일 후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정말 에너지가 많이 들었지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 결과 1년 후 변화가 일어났다. 비독자가 간헐적 독자가 되고 충성 독자로 성장하는 과정이 정말 놀라웠다. 독서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경험하지 못한 비독자나 아직 몸에 익지 않은 간헐적 독자는 책 읽기 과정이나 성취에 관한 배경지식이 비활성화돼 있기에 독서로의 진입 과정에서 인지적·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따라서 더욱 세심하고 친절하게 눈높이에 맞는 독서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도 제4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에 이런 고민을 담아 ‘비독자의 독자화’를 목표로 2028년까지 여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비독자 대상으로 다양한 주제의 독서클럽을 운영하거나 지역 기반 독서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추상적 캠페인은 지양하고 실제 독서 수행형 사업으로 전환하는 등 현실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의 여지가 있고 비독자에 치중하다 보니 충성 독자를 너무 잡은 물고기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비독자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끊임없이 다양하게 이뤄지는 독서 기회 제공은 분명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국민독서실태조사도 무엇을 얼마나 읽었느냐보다 어떻게 읽느냐에 방점을 두고 문항을 설계하면 좋겠다. 그래야 더욱 실체적 독서 정책을 수립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문화산책] 낯설지만 아름다운 음악

우리가 세계 각지의 음악, 일명 세상의 모든 음악을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정 지역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음악의 특성이나 형식, 그리고 내용이 신기해 좋다는 사람들도 있고 그 음악이 낯설지만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분명 음악 속에 담긴 그 지역만의 문화를 파악하고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이 음악의 특성이나 형식, 무엇보다도 귀로 즐기는 음악 고저장단에서 아름다움을 직관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느끼기엔 확실히 낯설다. 게다가 사전 지식이 없다면 이런 음악들은 낯설다 못해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한 예로 스페인 플라멩코는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남부 안달루시아의 일개 지역 음악이었다. 현지 토착 음악에다 오랜 세월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집시들이 바다를 만나 해안에 주저앉아 구전으로 전승하던 음악이 우리가 아는 그 플라멩코다. 그 음악 속에는 집시들이 지중해 북쪽 해안을 따라 이동하며 얻어온 여러 지역의 음악 전통도 녹아 있고 지브롤터해협을 건너온 무어인들, 정확히는 아랍문화권 음악 전통도 담겨 있다. 이렇다 보니 정작 스페인 현지에서는 플라멩코가 오랜 세월 천대받았다. 문맹률이 높은 집시들이 어쩔 수 없이 구전으로 전승하다 보니 악보가 없으며 유럽 사람들은 물론이고 스페인 현지인들조차 이민족, 이교도들의 음악이라며 플라멩코를 오랫동안 멸시했다. 문제는 이 스페인 국가대표 전통음악 플라멩코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듣다 보면 낯설고 힘들어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낭만과 정열의 음악이라더니 막상 한두 곡 넘어 한 시간 가까운 공연이나 음반 한 장을 끝까지 듣기가 힘들다고 많은 사람들이 하소연한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낯선 음악을 마음 편히 즐기기 위해서는 그 음악의 배경을 이해하거나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반복해 듣는 방법도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총동원했는데도 영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개인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이상한 건 절대 아니니 플라멩코 말고 다른 음악을 찾아 들으면 된다. 플라멩코에 익숙해지는 일은 지구 반대편에 사는 우리에게 원래 난도가 높다. 왠지 하다가 만 듯한 아랍 음악 식 마무리나 유독 음의 떨림이 많고 장식음이 많이 들어가는 모습이 낯선 건 서양 음악에 이미 익숙해진 우리의 귀 때문이다. 그 서양 음악이 흔히 클래식이든, 대중음악 또는 팝이나 가요의 형태이든 말이다. 원래 세계 각지에서 전해 내려오는 음악의 대부분은 소리의 고저장단에다 장식음을 많이 붙여 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렇게 서서히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호기심과 도전으로 바꾼다면 우리는 어느새 플라멩코 음악 속에서 낭만과 정열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익숙해지면 새로운 지역 음악에 도전해 보자. 세계 각지의 음악 이름은 대부분 리듬에서 따온 것이 많으니 리듬에 익숙해지면 음악도 금세 친숙해질 수 있다. 역사가 깊은 음악일수록 자연이나 동물들의 소리를 모방한 것이 많다. 아프리카든 호주든 몽골이든. 일단 낯선 음악을 용기 내어 즐겨보자.

[문화산책] 시작을 연주하는 ‘국악관현악’

10월, ‘제3회 대한민국국악관현악축제’가 성대히 막을 올렸다. 그중 첫 무대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였다. 대규모 개막식의 웅장함 대신 절제된 호흡과 단정한 울림으로 무대를 채웠다.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깊었다. 악기들이 서로를 덮지 않고 조심스럽게 길을 내어 주며 한 호흡을 만들어 갔다. 관현악의 이름으로 모였지만 오히려 독주와 대화의 경계에서 음악은 살아 있었다. 그 절제 속에는 “국악관현악은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숨어 있었다. 국악관현악은 늘 두 가지의 긴장을 안고 있다.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과 새로운 시대의 감각에 닿아야 한다는 요구다. 이 두 축의 균형이 맞춰질 때 음악은 생명이 된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그 경계 위에서 절묘한 균형을 보여줬다. 전통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연주자 개개인의 감각과 호흡을 허락했다. 그것은 완벽히 조율된 합주가 아니라 서로의 여백을 존중하며 만들어낸 집단적 리듬이었다. 그 여백이야말로 국악관현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1965년 3월, 첫 국악관현악단인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창단됐다. 국악기를 서양 오케스트라처럼 배치하고 지휘자가 이끄는 새로운 형식의 앙상블이었다. 서양 오케스트라의 구조를 빌리되 국악기의 음색과 장단으로 한국적 교향악을 만들고자 했다. 그 역사도 어느덧 반세기를 넘어섰다. 이제 우리는 전국 어디서든 ‘국악관현악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국악관현악의 오늘은 그 긴 여정의 결과이자 또 다른 출발점이다. 국악관현악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다.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야 하는 진행형의 예술이다. 서양 오케스트라처럼 정밀한 조율 속에서 질서를 세워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질서 속에 ‘예측 불가능한 순간’을 남겨 두는 용기가 필요하다. 국악의 본질은 그 틈에서 빛난다. 악보는 출발점일 뿐 진짜 음악은 리허설과 공연의 과정 속에서 완성된다. 연주자들이 서로의 눈빛과 호흡으로 만들어 내는 그 공동의 흐름이 음악을 살게 한다. 국악관현악축제는 단지 전통을 기념하는 자리가 아니다. 한국 음악의 현재를 실험하고 각 지역의 국악관현악단이 품고 온 다양한 소리와 문체, 감각을 한 자리에서 느끼는 축제의 장이다. 각 악단이 지닌 개성과 색채, 그리고 ‘다름’이 모여 우리 국악관현악의 지형을 풍성하게 한다. 그 다채로운 차이와 개성의 총합이 곧 미래의 자양분이 된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공연은 그 가능성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대규모 편성과 장엄한 울림이 아니어도 감각의 섬세함과 관계의 균형이 음악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국악관현악의 미래는 새로운 악기나 기술이 아니라 더 깊이 듣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의 확장에 달려 있다. 우리는 종종 국악관현악의 미래를 기술과 규모의 문제로 논의하지만 진정한 미래는 장비나 편성의 확장만이 아니라 감각의 정밀함, 관계의 섬세함 속에서 자란다. 더 크고 더 복잡한 무대가 아니라 더 깊이 들을 줄 아는 사회가 필요하다. 국악의 본질은 바로 그 ‘감각의 공동체’ 속에 있다. 기술의 시대에 ‘감각의 원점’을 되묻는다. 국악은 과거를 재현하는 예술만이 아니다. 전통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다시 써야 하는 이야기다.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묻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지금의 국악관현악이 다음 세대로 건너가기 위한 또 한 걸음이 아닐까. 축제가 끝난 뒤에도 귀에는 그 울림이 남는다. 전통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여는 언어다. 국악관현악은 완성된 형식이 아니라 여전히 써 내려가는 악보다. 그 악보 위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이 소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질문이 바로 국악관현악이 다시 ‘시작’을 연주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문화산책] ‘오구라 수집품’ 환수가 과제

10월21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집권당 자민당의 총재가 총리로 선출됐다. 1885년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이후 첫 여성 총리다. 일본 정계가 보수적임에도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는 점에서 이를 계기로 변화를 기대하는 바도 있지만 반면 다카이치 총리가 ‘제2의 아베 총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라 아베 정권이 내건 평화헌법 개정, 독도 영유권 주장 강화, 과거사 부정 등 극우 노선을 유지할 경우 한국, 중국 등 아시아권의 갈등을 부추기고 나아가 국제사회의 혼란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에서 보일 외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더구나 이번 내각의 출범은 26년 만에 공명당이 자민당과 연립정권에서 탈퇴하고 더 극우적인 일본유신회가 참여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일본 정계의 변화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자민당과 달리 공명당은 야스쿠니신사 참배 반대, 과거사 청산 등에 있어 지속적으로 한국과 중국의 입장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정치 환경이다. 실제로 2010년 8월 일본 왕실 도서관인 궁내청 소장 ‘조선왕실의궤 등 도서’ 환수를 위해 일본 각 정당의 대표를 면담하는 과정에서 공명당은 반환에 동의했다는 사실은 필자가 현장에 있었기에 잘 알고 있다. 한국의 이재명 정부와 일본의 다카이치 정부는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의 동반자로 가기 위한 출발대에 섰다. 일본 정부는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가 분명히 있다. 강제징용, 군 성노예 위안부 그리고 문화재 반환 문제 등이다. 여기에 최근 도발하는 독도 영유권 문제는 분명 역사의 시계를 1905년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다. 1905년 일본 초등 교과서에도 ‘독도’는 조선 영토라고 분명하게 표기하고 있다. 그해 11월 체결된 을사늑약 이후 헛된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광복 이후 네 차례에 걸쳐 한국 문화재를 반환했다. 가장 가까운 사례는 2010년 8월10일 일본 총리가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하고 ‘조선왕조도서’ 1천205권을 2011년 반환했다. 경술국치 100년으로 집권 민주당이 과거사 청산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1991년에는 조선왕실 복식인 ‘영친왕 일가 복사 및 장신구’ 333점을 반환했다. 이때는 한국 정부가 북방외교를 활발히 전개해 과거 공산권 국가와 수교하면서 일본이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한국 정부의 반환 요구에 응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약탈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은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으로 1천326점이 ‘인도’됐다. 1958년 4월에는 창녕의 옛 무덤에서 출토된 106점을 일본이 일방적으로 ‘반환’하는 일이 있었다. 이는 나포된 일본 어민을 풀어 달라는 선제적 조치의 일환이라는 평가가 있다. 지금 가장 큰 과제는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는 ‘오구라 수집품’의 환수다. 한국 정부는 도쿄박물관이 독립행정기구라는 점에서 북관대첩비 소장처인 야스쿠니신사와 조선왕조실록 소장처인 도쿄대의 반환 선례를 참고해 외교 협상과 민간의 환수운동이라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문화산책] 케데헌이 보여주는 ‘K-컬처 미래’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글로벌 인기가 뜨겁다. 공개 직후 93개국에서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달성한 데 이어 최근에는 ‘오징어게임’의 흥행 기록을 넘어섰다. 케데헌의 사운드트랙은 미국 아이튠즈 앨범 차트 1위를 비롯해 빌보드 200, 스포티파이 차트에서 선전하고 있다. 케데헌이 각별하게 다가오는 건 단지 흥행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작품이 더욱 주목되는 건 K-컬처가 문화적 혼종성이라는 거대한 문화적 흐름의 열차에 본격적으로 올라탔다는 징표, 즉 지속가능성에 대한 강력한 힌트를 보여 주고 있다는 데 있다. 일찍이 문화비평가 호미 바바는 현 시대의 문화를 혼종성의 문화라고 규정한 바 있다. 바바에게 있어 혼종성은 단순한 문화적 요소들의 기계적 결합이 아닌,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접점에서 발생하는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문화의 변환 과정이다. 이 속에서 원본과 복사본, 중심과 주변, 지배와 피지배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은 해체되며 기존의 문화적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의미와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케데헌에서는 바바의 문화적 혼종성이 다양한 측면에서 구현되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우리의 전통 무속에서 차용한 ‘혼문’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혼문은 악마들을 인간 세계에서 차단하는 보호막 역할을 하며 주인공 걸그룹(헌트릭스)은 노래와 춤을 통해 이 혼문을 유지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시각적으로도 동서양이 혼합돼 있다. 남산타워, 북촌 한옥마을, 낙산공원 등 서울의 명소들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우리의 전통음식, 옷, 노리개, 한의원 등이 첨단 케이팝 아레나와 교차된다. 무당의 신칼을 비롯한 무구, 작호도 같은 민화적 요소들도 케이팝 아이돌의 패션과 절묘하게 공존한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복합적이다. 주인공 루미는 악마 사냥꾼 어머니와 악마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종적 정체성의 소유자다. 악역인 사자 보이즈의 리더 진우 역시 원래 인간이었으나 귀마(악마들의 왕)와의 계약으로 악마가 됐다. 장르 역시 어반 판타지, 뮤지컬, 슈퍼히어로, 퇴마, 액션, 코미디 등 다양한 요소가 혼합돼 딱히 정확하게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K-컬처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보다 확실한 척도는 참여자 면면에 있다. 우선 제작사가 미국의 소니픽처스애니메이션이다. 연출은 한국계 캐나다인인 매기 강과 ‘위시 드래곤’의 연출자인 크리스 아펠한스가 공동으로 맡았다. 각본에는 두 연출자 외에 단야 지메네스와 한나 맥메찬이라는 외국인이 참여했다. 트와이스의 멤버가 ‘테이크다운’을 비롯해 몇 곡을 부르긴 했지만 음악 담당 역시 외국인이다. 성우진에 배우 이병헌을 비롯한 몇몇 한국 이름이 눈에 띄는 데 이례적일 정도다. 일각에서는 모처럼 성공적인 한국 소재의 애니메이션이 미국 회사와 외국인들에 의해 주도됐다는 점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K-컬처라고 해서 반드시 한국인이 제작의 주체가 돼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다양한 주체에 의해 만들어질 때 K-컬처의 지속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이미 케이팝 아이돌의 상당수는 외국인들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바바는 서로 다른 문화적 전통들이 만나 협상하고 재구성되는 과정 속에서 문화적 혼종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그 담론의 공간에서 정체성은 끊임없이 진화하며 문화 간의 위계적 관계가 해체되고 새로운 의미가 창조된다. 이를 위해선 주체 역시 다양성 혹은 애매성이 요구된다. 케이팝의 성공은 문화적 혼종성에서 비롯됐다는 여러 사람의 주장을 되새겨볼 때도 이제는 주체의 혼종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케데헌은 K-컬처가 보다 넓은 문화적 혼종성의 바다를 향한 항해를 본격화했다는 신호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문화산책] 국보 환수 TF가 필요하다

올해는 광복 80주년, 한일 문화재협정 60주년이다. 광복 이후 분단국이 되고 전쟁의 참화를 겪었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 대한민국은 세계10대 강국이 됐다. 유네스코 등재 세계유산 순위도 종합 10위다. 무형유산은 4위, 기록유산은 아시아 으뜸이다. 80년간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에는 ‘문화’가 있다. 문화는 혼란기를 견딘 버팀목이고 분열을 막아준 정체성의 뿌리다. 700만 재외동포에게 문화는 구심력이다. 21세기 들어 K-한류가 세계인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드라마를 시작으로 케이팝이 확산되고 한국 음식까지 유행하더니 최근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전 분야로 심층 확대되는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그토록 원하던 문화강국 대한민국이 정말로 실현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문화산업의 원천인 문화유산은 불귀의 객이 돼 우리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2025년 현재 국외에 있는 문화유산은 약 25만점이고 광복 이후 환수는 약 1만3천점이다. 이 중 국보로 지정된 것은 단 6건이다. 국보의 환수는 정부와 민간, 재외동포의 노력으로 이뤄졌다. 지정된 국보 중 1965년 한일문화재 협정으로 ‘한송사지 석조보살상’과 뼈항아리인 ‘녹유골호’가 돌아왔다. ‘상지은니묘법연화경’은 재일동포 김대현 선생이 구입해 고국에 기증했고 ‘금영측우기’, ‘조선왕조실록’, ‘북관대첩비’는 민간의 자발적인 활동이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 도쿄국립박물관에는 오구라 수집품 1천30점이 있다. 그중 39점은 중요문화재 또는 중요미술품으로 지정됐다. 일제강점기에 반출한 것이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국보 등으로 지정한 한국 문화재는 약 150점에 이른다. 서산 부석사 불상처럼 지방문화재로 지정한 사례는 제외한 결과다. 21세기 들어 약탈 문화유산의 원상 회복을 촉구하는 피해국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가해국의 반환 노력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를 촉진한 것은 1998년 워싱턴에서 열린 나치 약탈미술품 반환 회의다. 이때 소장 기관이 출처를 입증할 책임이 있다는 원칙이 확립됐다. 국제박물관협의회는 박물관 윤리강령으로 합법적 소유권(2-2), 출처와 주의 의무(2-3), 출처지와의 협력(6-1), 반환(6-2), 원상회복(6-3), 피점령국에서 유래한 문화재(6-4) 등을 채택했다. 최근 주목할 사안은 개별 사안별 반환을 넘어 법과 제도를 통한 반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벨기에는 2023년 식민지 유물반환법을 제정하고 르완다 등 과거 식민지 약탈 유물 8만4천점을 반환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과거사에 대해 국왕이 사과하면서 인도네시아, 스리랑카의 유물 반환을 시작했다. 프랑스는 올해 9월 1815년부터 1972년까지 약탈, 강제 이송, 절도 등에 의한 유물의 반환을 위해 반환법을 제정하고 있다. 2017년 마크롱 정부 이후 부분적으로 이뤄진 반환을 법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1866년 강탈 당한 외규장각 의궤가 포함된다. 따라서 지금이 광복 80년 동안 못다 이룬 국보 환수의 최적기다. 외규장각 의궤의 완전한 반환은 물론이고 오구라 수집품을 환수할 ‘국보 환수 태스크포스(TF)’가 필요하다. 민관 협력은 국보 환수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문화산책] ‘자살’을 ‘살자’로 바꾸는 사회

9월 정부는 범부처 차원의 ‘2025 국가 자살 예방 전략’을 발표함으로써 ‘고의적 자해(자살)’가 개인적 비극을 넘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실제로 ‘2024년 사망 원인 통계 결과(통계청)’에 따르면 국민 사망 원인 중 자살이 10대부터 40대까지는 1위, 50대와 60대에서도 2위와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거의 전 연령대에 걸쳐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이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니 그 결과가 정말 충격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인구 10만명당 국가 간 연령표준화 자살률에서도 26.2명의 우리나라가 평균치(10.8명)의 두 배를 넘겼고 2위인 리투아니아(18명)와 비교해도 거의 10명이 더 많으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살에 내몰리는 사회인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80년간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5만3천배로 증가하며 경제 선진국 대열에 오르고 있고 기대수명도 83.5세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건만 하루에 39.6명이나 자살하는 사회라면 건강한 국가로 성장했는지 의문이 든다. 더 늦기 전에 정부와 온 사회가 힘을 합쳐 그 원인을 분석하고 효과적 대책을 수립,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 자살 예방 전략에 따르면 자살 사망자는 사망 전 평균 4.3개의 스트레스에 복합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하게 살펴보면 심리 불안·트라우마·우울·양극성 장애 등의 정신적 요인, 파산·빚·취업난·실직 등에 의한 경제적 요인, 만성질환·장애 같은 신체적 요인, 가족 간 불화·직장 내 갑질·남녀 문제·외로움 등의 대인 관계적 요인이 자살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인데 왜 극복하지 못하냐며 개인의 의지 박약 문제로만 보면 자살률 1위의 상황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 풍요로움을 이룬 만큼 사회안전망 차원의 복지 문제를 많이 해결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경제·사회적 불평등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있고 다양한 가치로 파편화된 실전 사회에 필요한 절대 생존 기술은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이 어찌 할 수 없는 구조 안에서 개인에게만 극복의 책임을 돌리는 건 후진적 발상이다. 그렇기에 정부도 ‘2034년 기준 자살률 17명 이하’를 목표로 고위험군 집중 대응, 위험군 적극 발굴 및 맞춤형 지원을 통한 고충 해결, 범부처 및 지자체의 선제 대응 시스템 구축, 민관 협력 등을 통한 생명 보호 정책 시행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을 아무리 촘촘하게 펼쳐 놓은 들 빈틈이 모두 메워질 리 없다. ‘자살’을 ‘살자’로 바꾸려면 국민 각자가 서로 관심을 주고받으며 삶의 지지대로서 함께 버텨주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직접적 해결 방안이 아닐까 한다. 나의 작은 관심과 사랑,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살아갈 힘을 주는, 굵은 동아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게 내려 준 삶의 동아줄도 놓치지 말고 꽉 잡자.

[문화산책] 음악에 담긴 문화 정체성

글로벌 시대에는 아군이 없다. 각자도생의 시대다. 지역으로 나누든 분야로 나누든 국가 또는 민족 단위로 확실한 생존 방식 또는 무기가 없다면 살아남기 힘들다. 세계는 미국이 시작한 관세 관련 쟁점으로 시끄럽고 각국의 내부 사회 문제로 외부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다. 그나마 여력이 있는 나라들은 국가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전방위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 가운데 아마 문화, 특히 대중문화 분야는 21세기 들어 확실한 결과를 보장하는 훌륭한 무기가 된 것 같다. 20세기까지는 국제화 또는 보편성이라는 이름에 맞춰 세계 표준을 지향했다면 21세기 현대는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 오히려 유리한 시대가 됐다. 물론 세계 각국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정체성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영어 가사를 첨가해야 하던 시절에서 이제는 한국어 가사를 조금이라도 넣어야 세계 음악 팬들로부터 인정받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얘기다. 글쓴이는 1980년대 중반부터 대중문화 분야에서 화두가 됐던 ‘월드뮤직’을 소재로 음악 속 문화를 지금까지 살펴보고 있다. 장르와 시대를 막론하고 특정 시대의 음악 속에는 그 시대만의 문화가 담겨 있었다. 그것을 우리는 문화라고 부를 수도 있고 보편적인 정서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 문화 또는 정서가 당대의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어야 하고 그 동의가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그것은 ‘고전’이 된다. 우리가 이른바 ‘클래식 음악’ 또는 이름 그대로 ‘고전음악’이라고 부르는 장르 속 음악들이 이런 예에 속한다. 그런데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오며 지금까지 존재하는 음악 중에는 특정 시대나 장르로 구분하기 어려운 음악이 있다. 예를 들어 음악 형식이든 정서든 특정 지역에서만 발생하고 특정 지역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정서를 담은 음악이다. 글쓴이는 월드뮤직에 대해 항상 이렇게 정의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간 본연의 정서인 희로애락에 호소하는 음악이다.” 지구 반대편 안데스산맥의 장례 음악을 우리가 듣고서 농번기 축제 때 마을 사람들이 신나서 함께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할 리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음악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를 잠깐 생각해봐야 한다. 바로 리듬과 멜로디, 우리 식 표현으로는 장단과 가락이다. 이 요소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기쁘고 슬픈 감정,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분노가 소리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이것은 지역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의 음악, 모든 장르에 적용된다.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지역 또는 시대, 그리고 문화권에 따라 그 정체성이 음악으로 확립된다. 이때 언어의 장벽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음악은 소리로 표현되는 예술 형태인 만큼 먼저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가사 내용을 번역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많은 시대다. 번역 애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확도가 꽤 높은 정보를 미리 얻을 수도 있다. 이쯤 되면 문화를 통해 일으킬 수 있는 가치 창출은 단순히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자산이 된다. 세계는 확실히 보편성과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 문화를 요구한다. 어렵지만 세계는 우리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문화산책] K-컬처 시대 ‘지역 예술’

K—컬처는 이제 더 이상 ‘유행’이 아니라 세계문화의 한 축이 됐다. 케이팝 스타들의 월드투어는 유럽과 미주 대륙을 돌며 매진을 기록하고 한국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영화는 세계 각국의 OTT 플랫폼을 점령한다. ‘K—컬처’라는 이름은 이제 국가 브랜드이자 산업의 동력이 됐다. K—컬처의 성공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전국 곳곳의 공연장과 작은 무대에서, 이름 없는 예술가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 모여 세계적 성과의 토양이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 토양을 튼튼히 가꾸기보다 자극적인 단기 성과에 매달리며 오히려 그 뿌리를 약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K—컬처 성공담은 대부분 수도권, 대형 기획사 중심의 이야기다. 지역 예술인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공연장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예산이 연말 일회성 행사로 쏠려 지속성을 담보받기 어렵기도 한다. 행정 지원의 대부분이 ‘프로젝트 단위’로 이뤄지다 보니 예술가의 자립성과 장기적 성장 기반이 흔들리는 것이다. 지원금은 해마다 반복되지만 대부분이 일회성 사업으로 소모된다. 창작의 자율성을 존중하기보다 성과와 효율 중심의 지표를 맞추는 데 치중하다 보니 현장은 무난하고 비슷한 축제들로 채워진다. 지역 예술 지원사업은 애초에 경제적 자립이 힘든 예술인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지원 없이는 활동이 불가능한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지 않은지 반성이 필요하다. 공모사업의 서류와 형식에 익숙한 이들에게 기회가 집중되고 그 결과 지역의 독창적 콘텐츠는 발굴되지 못한 채 ‘비슷비슷한 전시와 공연’이 양산된다. 중앙과 지역 모두가 ‘성과’라는 숫자에만 매달리는 동안 진짜 집중돼야 할 창작의 에너지는 서서히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희망도 있다.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고유의 역사, 자연, 생활문화를 기반으로 ‘작은 K—컬처’를 실험하고 있다. 지역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만드는 공동체형 페스티벌, 전통예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연, 일상 속에서 지속 가능한 문화 생태계를 조성하는 프로젝트가 그 예다. 이런 시도는 ‘수출 가능한 콘텐츠’일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로서 K—컬처의 토대를 단단하게 한다. 세계 무대에서 K—컬처가 더 오래 빛나려면 그 뿌리인 지역 예술이 건강해야 한다. 지역 예술은 단순히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모객형 이벤트’여서는 안 된다. 창작자들이 실험하고 성장하는 토양이 돼 줘야 한다. 중앙과 지역, 지원자와 예술가 모두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태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K—컬처의 성공을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이어가려면 스포트라이트가 닿지 않는 곳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 지역 예술 현장은 그저 ‘낙후된 변방’이 아니라 한국문화의 다양성이 혼종된 문화 생태계를 키워 가는 모판이다. 그 모판이 건강할 때 K—컬처는 비로소 일회성 유행을 넘어 세계 속에서 지속가능한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뿌리를 지키지 않는 나무가 오래 설 수 없듯 지역 예술을 외면하는 K—컬처의 빛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화려한 무대 뒤에서 묵묵히 뿌리를 지켜온 지역 현장을 돌아보며 함께 이끌어 나갈 때 우리는 K—컬처의 진정한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

[문화산책] 지역문화, 액티브 시니어에 주목해야

어느덧 우리 사회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당연히 노인의 건강과 복지를 비롯한 삶의 질 전반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 과거의 노인은 비활동적 은퇴자로서 수동적인 돌봄의 대상이었다. 경제 발전과 물질적 안정이 우선시되던 시절을 살아 온 그들에게 문화나 여가 활동은 고작 TV를 시청하거나 주변을 산책을 하는 정도였다. 대부분의 여가 활동은 생계유지 중심의 생활 습관과 절약 의식에 밀려 사치로 치부되곤 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노인의 모습도 변하고 있다. 특히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의 등장이 주목된다. 1982년 버니스 뉴가튼이 제시한 개념인 액티브 시니어는 말 그대로 은퇴 이후에도 활발하게 사회 활동과 소비 활동을 영위하며 능동적으로 생활하는 50~70대 고령자 집단을 뜻한다. 이들은 자율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자아 실현 혹은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데 시간적·경제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액티브 시니어 소리를 들으려면 물론 신체적 건강과 함께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 그런데 이미 은퇴한 마당에 돈과 건강만 있다고 자아 실현이나 액티브한 삶이 저절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결국 이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여가생활로 모아진다. 물론 모든 여가가 액티브 시니어가 추구하는 삶의 양식에 적절한 건 아니다. 일회적이고, 오락적이며, 단순 참여 중심의 여가 활동만으로는 삶의 의미를 찾는 데 한계가 있다. 이를 대체하는 개념이 ‘진지한 여가(Serious Leisure)’다. 1970년대부터 연구해 온 스테빈스에 따르면 진지한 여가는 참여자가 장기적인 헌신을 바탕으로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점진적 성장과 함께 새로운 정체성 형성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여가와 구별된다. 진지한 여가를 누릴 수 있는 분야는 스포츠, 자원봉사, 캠핑, 게임 등 일반적인 여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랜 기간을 두고, 성장을 경험하며, 새로운 정체성 형성이 가능하면 진지한 여가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액티브 시니어의 진지한 여가에 무엇보다 안성맞춤인 건 문화예술 분야다. 악기 연주, 성악, 그림 그리기, 서예에 이르기까지 문화예술은 오랜 시간 수련이 필요하기에 그에 따른 성장을 확인할 수 있어 무뎌지는 정체성을 다잡으려는 액티브 시니어에게 제격이다. 갈수록 약해지는 신체 능력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요즘 지자체나 지역의 문화재단들이 인구 유출 혹은 소멸에 대한 대응책의 하나로 청년층을 위한 각종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물론 바람직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도시의 화려한 문화로 향하는 청년층의 마음을 지역의 소도시가 되잡기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역이 인구 유지 혹은 증가를 꾀하고자 한다면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보다 풍성하게 제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적하고 고즈넉한 지역의 환경은 진지한 여가를 추구하는 액티브 시니어들을 끌어들이기에 유리하다. 갈수록 경제적 여건이 나빠질 확률이 높은 액티브 시니어들의 입장에서도 소비를 상대적으로 작게 할 수 있는 지역에서의 삶은 진지한 여가를 즐기기에 더 나을 수밖에 없다.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지금,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지역문화 정책에서 좀 더 중요한 축으로 부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문화산책] 초고성능 AI 시대

7월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유서 깊은 경제전문지 포천에 본격 인공지능(AI)에 영향을 받는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같은 달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의해 발표된 생성형 AI의 직업적 영향에 관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 것으로 AI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직업군에는 일부 단순 반복성 업무를 하는 직업도 있지만 통역가·번역가·역사학자·작가(저자)·정치학자·기자·편집자·교사·웹 개발자·사서 교사 등과 같이 전통적으로 고학력, 전문적 스펙을 중요시하는 직업이 다수 포함돼 있고 상대적으로 AI의 영향을 덜 받는 직업군은 사람이 직접 수행해야 하는 육체노동에 근거한 기능직이 대부분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선임 연구원인 키란 톰림슨은 보고서의 의미는 인간의 일자리를 AI로 대체하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에 있다며 AI의 사회적·경제적 영향을 더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기사와 보고서 전문을 찾아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AI의 영향력이 가장 높다는 지식 및 교육 관련 직업의 경우 현재는 AI의 도움을 받으며 일의 효율을 증대시키는 수준이지만 고성능 AI 기술 개발에 가속도가 붙으면 가장 빠른 속도로 대체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AI 연구기관 팰리세이드리서치가 5월 발표한 실험 결과를 떠올리자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지면서 어쩌면 생각보다 더 빨리 인간이 AI에게 모든 분야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겠다는 불안감까지 느껴졌다. 해당 실험의 결과는 챗GPT 등 여러 AI 모델에게 일정 개수 이상의 수학 문제를 푼 뒤 시스템 종료를 예고했더니 일부 오픈AI 모델의 경우 ‘kill’이라는 명령어를 회피하도록 스스로 코드를 조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연구 책임자는 이는 단순히 우연이나 시스템 오류가 아니며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AI 스스로 코드를 조작할 수 있도록 허용한 행동 정책으로 인해 생긴 구조적 오류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인간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고성능 AI 시대가 도래하면 AI가 과연 오롯이 인간의 통제 아래 머물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런 근원적 불안감은 인간의 창의적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여러 소설이나 영화에서 이미 많이 다뤄졌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기술력에 의해 건설된 초문명적 사회에서 인간이 생존의 위협에 놓이는 디스토피아가 펼쳐지고 이를 이겨내는 힘은 결국 인간이 가진 창의성, 직관, 철학적 사유, 감정, 혹은 인간적 연대라는 걸 보여주는 부류가 있고 욕심이나 혐오 등에 기반해 결국 인류 멸망의 길에 빠지거나 인간으로서의 자의식을 잃은 채 지배당한다는 부류도 있다. 생존도 멸망도 결국 인간이 지닌 고유 특성 때문이란 점이 아이러니하다. 사실 이런 양극단의 상상도 지극히 인간다운 설정일 수 있기에 AI와의 공존이 긍정 미래일지 부정 미래일지 지금은 확언하기 어렵다. 다만 앞으로 AI가 인간 삶에 필요한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 대신 판단하고 실행하는 주체로 점점 더 많은 분야를 대리할 것이란 건 확실하다. AI가 인간을 위해 협력하는 차원이 아니라 인간이 AI에 무한 의존한다면 아무래도 곤란하다. 인간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힘을 놓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문화산책] 광복 80주년을 축하하며

광복 80주년 행사들로 전국이 뜨거운 8월이다. 광복절 전야제와 국민 임명식 등 온 나라가 광복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올해의 광복절은 어느 때보다 큰 울림을 줬다. 필자에게도 이번 광복절은 특별했다. 충남도청 문예회관에서 열린 제80주년 경축식의 연출을 맡아 무대라는 예술의 언어로 광복의 의미를 새롭게 풀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축식은 단순한 국가적 의례가 아니다. 그것은 의례와 예술이 만나는 자리이자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통로다. 의례는 형식을 지탱하지만 예술은 그 형식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국민의례와 만세삼창이 의무적 절차에 머문다면 공허한 구호가 될 뿐이다. 그러나 음악과 무용, 영상과 퍼포먼스가 결합할 때 시민은 그것을 체험으로 받아들이며 오늘의 삶과 내일의 다짐으로 연결시킨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경축식은 기념의 장을 넘어 성찰의 무대로 확장된다. 충남은 유관순 열사의 고향이자 수많은 독립운동의 발원지다. 이번 광복절 경축식 무대에서 필자는 지역적 기억을 넘어 보편적 가치로 확장되는 광복의 의미를 강조하고자 했다. 어린이 합창단이 ‘광복 축하합니다’를 노래하고 어르신들이 함께 구호를 외치는 장면은 단순한 행사 장치가 아니라 세대를 잇는 약속이었다. 과거의 희생이 현재를 살게 하고 현재의 다짐이 미래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예술은 그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번 광복절에 열린 수원시민대합창은 큰 울림을 줬다. 수천명의 시민이 하나의 목소리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합창곡을 불렀을 때 그것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선 거대한 체험이었다. 합창단 무대 위의 몇몇이 아니라 광장에 모인 모두가 주인공이 돼 노래했을 때광복의 의미는 개인의 감정을 넘어 공동체의 약속으로 확장됐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순간 광복은 추억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재가 됐고 음악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언어가 됐다. 충남의 경축식 무대와 수원의 시민대합창은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모두 예술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역사를 체험하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러나 감동적인 무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중요한 것은 광복의 정신이 오늘 우리 사회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다. 광복은 1945년의 역사적 사건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진행형의 과제다. 예술은 언어로는 전하기 어려운 메시지를 감각과 감동으로 각인시킨다. 무대 위에서 노래와 몸짓으로 표현된 광복의 기쁨과 환희, 그리고 다짐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비추는 등불이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축하가 아니다. 오히려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고 내일의 방향을 점검하는 성찰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예술이 있다. 이제 우리는 광복 100주년, 200주년을 향해 걸어간다. 그 길 위에서 반드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다음 세대에 어떤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 과거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그 정신을 오늘의 삶 속에서 새롭게 살아내며 미래로 전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예술로서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경축식은 국가적 의례를 넘어 예술이 생명을 불어넣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무대가 된다. 예술이 불어넣은 감각과 감동은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삶으로, 현재의 다짐을 미래의 약속으로 이어준다. 바로 그 순간 경축식은 기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 오늘의 성찰, 내일의 약속이 된다. “사랑하는 대한민국, 광복 80 축하해.”

[문화산책] 해리포터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영국을 여행하다 보면 고성과 유적, 박물관과 미술관, 오래된 마을과 전통시장이 단순히 과거의 흔적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일상 속에 살아 숨 쉬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문화유산을 보존의 틀에 가두지 않고 국가 브랜드와 지역경제를 견인하는 핵심 자원으로 인식하며 적극적으로 관리, 활용해온 결과다. 이러한 접근은 저출산과 고령화, 지역소멸, 관광 다각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영국의 사례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간의 유기적인 협력 구조다. 정부기관인 히스토릭 잉글랜드가 법적 보호와 연구, 정책을 담당하고 지방정부는 현장 관리를 맡는다. 여기에 1895년 시민 주도로 설립된 민간 비영리단체 내셔널트러스트가 전국 500곳 이상의 성곽, 저택, 정원, 해안선, 농지를 직접 소유, 운영한다. 이 민간단체는 회원 회비, 기부, 입장료 수익 등으로 재정을 유지하며 정부로부터 재정적으로 독립했지만 법적 지위와 공익적 기능이 보장돼 국가 문화유산 보존 체계의 한 축을 이룬다. 최근 한국이 문화재청을 문화유산청으로 확대 개편하며 활용도를 강조했다. 영국은 그보다 한발 앞서 이를 제도와 운영에 깊이 반영하고 있었다. 이 구조 속에서 영국은 문화유산을 관광과 콘텐츠 산업과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대표적인 예가 킹스크로스역의 ‘9와 3/4 승강장’과 패딩턴역의 ‘페딩턴 베어’다. ‘해리포터’와 ‘패딩턴’이라는 세계적 콘텐츠를 철도역이라는 교통 인프라와 결합해 관광 명소로 만든 것이다. 방문객은 단순히 사진 촬영에 그치지 않고 기념품점, 테마카페,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며 소비로 이어진다. 문화유산에 스토리텔링과 현대 대중문화를 접목해 경제적 파급력을 극대화한 대표 사례다. 승강장 인증샷을 위해 길게 늘어선 대기 줄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략은 최근 한국에서도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넷플릭스 화제작 ‘케이팝 데몬헌터스’는 서울의 전통 골목과 한양도성 성곽길을 케이팝과 판타지 액션 서사 속에 녹여냈다. 전통 경관과 현대 대중문화가 결합하면 콘텐츠 속 장소가 곧 여행지로 인식되는 효과가 크다. 이미 해외 팬들 사이에서는 드라마, 영화 촬영지를 직접 찾는 로케이션 투어가 활발하다. 영국의 킹스크로스와 패딩턴이 그러하듯 서울과 전국의 역사, 문화 공간도 스토리와 체험 요소를 결합하면 강력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문화유산을 어떻게 살아있는 이야기로 만들고 관광산업과 연결할 것인가. 내셔널트러스트가 운영하는 시골 저택에서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레스토랑, 전통공예품 판매, 계절별 축제를 결합해 사계절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처칠의 생가이자 말버러 공작의 대저택인 블레넘궁은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공간을 카페로 활용해 방문객이 귀족이 된 듯한 시간을 즐기게 만든다. 이렇게 문화유산은 지역주민에게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자부심을, 방문객에게는 잊지 못할 여행 경험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여전히 아쉽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궁, 서원, 사찰이 있음에도 보여주기식 단발성 행사나 차별화되지 않은 축제가 난립하는 경우가 많다. 프로그램의 깊이나 체험의 다양성, 지역성과의 결합이 부족하다. 영국의 사례와 K-콘텐츠의 가능성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첫째, 역할 분담 구조 확립이다. 중앙정부는 법적 보호와 정책을 총괄하고 지방정부와 민간단체가 운영 및 활용을 주도하면서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둘째, 현대 트렌드와 역사적 사실을 결합한 몰입형 경험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지역적 특색 부여다. 장소가 가진 고유한 이야기와 차별화된 요소를 살려야만 지속가능한 경쟁력이 생긴다. 문화유산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핵심 콘텐츠다. 그 가치를 인식하고 장기적, 전략적으로 활용할 때 한국 여행의 미래는 한층 풍요롭고 지속가능해질 것이다.

[문화산책] 가르강튀아와 넷플릭스의 상상력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등장하는 블랙홀의 이름은 가르강튀아다. 이 이름은 프랑스의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가 1532년에서 1564년 사이에 발표한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 등장하는 이른바 엄청난 대식가이자 그만큼 배설하는 거인 ‘가르강튀아’에서 유래했다. 가르강튀아는 삼키는 행위를 강조하듯 목구멍이나 식도를 뜻하는 ‘가르간타(garganta)’에서 파생했으며 이 단어는 우리가 흔히 쓰는 가글(gargle)과 뿌리가 같다. 놀런 감독은 무엇이든 삼켜 버리는 이 거대한 블랙홀에 인간의 삶과 희생을 투사했다. 이때 가르강튀아는 물리적 덩치만큼이나 시간, 공간, 기억, 사랑을 초월적으로 은유하는 상징이 됐다. 여기서 가르강튀아는 단지 거인의 이름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연결하는 거대한 은유적 장치였다. 가르강튀아는 본래 라블레가 창조한 존재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프랑스의 브르타뉴 지방에서 오랫동안 구전돼온 거인 전설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민속학자 폴 세비요는 그의 책 가르강튀아와 민속전통에서 가르강튀아가 프랑스 여러 지역에 구전 전승돼온 자연 창조 설화와 밀접한 거인이라는 점을 입증했다. 예를 들어 기암괴석이 많은 브르타뉴 지역에는 이른바 가르강튀아의 바위, 가르강튀아의 발자국 등으로 명명된 바위 등이 실재하며 여기에는 여지없이 거인이 바위를 던진 것이라거나 음식을 먹다 토한 흔적이라거나 아니면 거인의 발자국이 언덕을 만들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신체를 통해 풍경을 형성하는 거인의 존재는 기암괴석의 시작을 설명할 길 없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자연과 인간 사이를 중개하는 샤먼이자 민족적 상상력의 구현체였다. 한편 라블레가 소설을 쓸 당시 브르타뉴 지방은 켈트문화와 그 민족적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가르강튀아는 이 지역의 민속적 정체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라블레는 가르강튀아를 그런 전통적 설화 속 거인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통해 중세적 질서와 권위, 교회 권력을 비판하고 이성과 유희, 자유와 새로운 인간상을 재구성했다. 더 나아가 라블레는 가르강튀아를 자율성과 평등이 함께하는 즐거운 공동체적 실체로 그리고자 노력했다. 1532년 프랑스 왕정은 결국 브르타뉴 공국을 공식적으로 프랑스 왕국으로 합병했다. 이 연도의 맥락 속에서 보면 라블레의 가르강튀아는 통일된 국가의 상상적 도구로도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라블레는 브르타뉴의 토착 거인을 르네상스적 인간으로 재규정함으로써 문학을 통해 당시 절대왕정 수립에 기여한 셈이 됐다. 결국 가르강튀아는 단지 한 시대의 신화적 캐릭터가 아니라 설화에서 공감으로, 민속의 특수성에서 전체의 보편성으로 확장되는 인간 상상력의 거대한 포털이 됐다. 1998년 3월 공교롭게도 지극히 신화적 캐릭터를 앞세운 팀버튼 감독의 영화 비틀쥬스를 첫 번째로 배송하며 서비스를 시작한 넷플릭스는 이제 전 세계의 설화와 전통, 특수와 보편을 끝없이 삼켜 하나의 영상 속에 녹여내고 있다. 라블레의 가르강튀아가 바위에 얽혀 있는 설화를 지역색의 초석으로 삼았다면 넷플릭스는 지금 전 세계의 설화와 지역색을 영상 언어로 재구성해 새로운 서사적 응집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전유라기보다 세계를 향한 공진화라 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이제 이야기의 고유성을 지우기보다는 그것을 공감 가능한 형태로 삼켜 버리는 그야말로 거인 가르강튀아가 됐기 때문이다. 단점보다 장점을 생각해 볼 때 의외로 이 전략은 일종의 포용력으로 승화돼 다양한 인종에게 하나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그 첫 번째 긍정적인 반향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일으켰다.

[문화산책] 기후위기 시대, 여행 패러다임

최근 몇 년간 전 세계를 강타한 극단적 기상 현상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살인적 폭염, 통제 불능의 폭우와 폭설, 예측 불가능한 기상 변화는 농업 생산량 감소와 에너지 수급 불안정으로 이어져 경제 전반에 막대한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지난 봄 한국을 뒤흔든 대규모 산불과 농산물 가격 폭등은 기후위기가 더 이상 먼 환경 문제가 아닌 우리 일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침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지난 23일 국제사법재판소(ICJ)는 현재의 기후 위기는 모든 생명권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기후 대응은 국가의 선택이 아닌 법적 의무라고 판단하며 모든 국가가 국제법상 책임을 진다는 내용을 담은 권고적 의견(Advisory Opinion)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는 유엔총회가 2023년 3월 채택한 결의안에 이어 기후위기 방치가 국제법 위반이 될 수 있음을 명확히 밝힌 첫 국제 사법 판단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ICJ는 기후위기 방치가 국제법상 불법행위로 간주될 수 있고 배상책임까지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제 기후위기 대응은 선택적 과제가 아니라 국가와 개인 모두의 법적·윤리적 의무가 분명하다. 기후위기 시대 관광업계의 상황은 어떨까. 2024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관광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8.8%를 차지한다고 한다. ‘더 자주, 더 멀리, 더 오래, 더 폼나게’를 추구하는 여행자들의 소비문화와 비용 절감을 우선시하는 업계 관행이 맞물리며 관광업계의 탄소배출량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공정여행가 임영신은 그의 저서 ‘기후여행자’에서 이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탄소배출을 많이 유발하는 항공여행을 즐길 수 있는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단 5%에 불과한데 이들이 북극 오로라나 멸종위기 생태계를 체험하기 위해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는 여행을 즐기는 모순과 불평등을 지적하며 ‘덜 자주, 더 깊이, 더 오래 머무는 여행’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어떻게 하면 현명한 여행자가 될 수 있을까. 먼저 개인의 작은 실천이 출발점이다.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기후변화 대응 정책들은 개개인의 실천과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50인실 이상의 숙박업소의 일회용품 사용 금지와 같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추진되는 정책들은 종종 여행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문화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조금 귀찮을 수는 있지만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전에 철저하게 개인물품을 챙기는 것.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는 단기여행보다는 한 달 살기 등의 체류여행으로 전환하는 것. 탄소를 조금 덜 배출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느리게 여행하는 것 등.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기후위기 시대의 현명한 여행법을 제안하는 가이드라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대부분의 여행업계가 ESG 관련 홍보문구를 사용하지만 실제적인 온실가스 감축 실천과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한다. 이는 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여행자들의 문제일 수도 있다. 개개인의 작은 실천이 모여 정책 변화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산업 전반의 전환을 이끌 것이다. 이제 진짜 여행을 바꿔야 할 때다. 그래야 우리와 다음 세대도 여행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산책] ‘케이팝’ 플랫폼의 가능성

전통 설화의 세계관에 케이팝 아이돌이 등장한다. 액션 판타지, 영웅 서사와 케이팝 음악이 결합된 이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를 팬덤에 빠뜨렸다. 바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이하 케데헌)’다. 케데헌은 지금까지의 케이팝 콘텐츠들과는 결이 다르다. 음악과 애니메이션, 캐릭터 산업까지 아우르는 융복합 IP 콘텐츠로 이미 수많은 글로벌 팬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케데헌은 단순히 ‘퇴마사 아이돌의 이야기’라는 설정을 넘어 케이팝의 감성에 한국형 영웅 서사를 결합한 최초의 대형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블랙핑크, 트와이스, ITZY에게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여돌(여자아이돌) 그룹 ‘헌터스’와 방탄소년단, 스트레이 키즈, 빅뱅을 참고해 만든 남돌 그룹 ‘사자 보이즈’. 이 두 아이돌의 이야기는 케이팝 음악에 한국 신화와 전통문화의 서사를 녹여내며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지금까지의 고전적인 음악 산업의 틀을 깨고 ‘케이팝 음악 기반의 서사형 세계관’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케데헌은 시작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유튜브에 공개된 트레일러 영상은 단기간 내 수백만뷰를 기록했으며 글로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캐릭터별 팬아트와 챌린지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극 중 사자 보이즈가 부른 ‘소다팝’이라는 곡의 챌린지는 원작 안무가부터 ‘투어스’, ‘제로베이스원’ 등 실제 아이돌까지 참여했다. 한류 콘텐츠가 글로벌 팬들의 2차 창작을 유도하는 구조 안에서 케데헌은 이미 ‘팬과 함께 만드는 이야기’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10, 20대 팬들에게 강한 몰입을 제공하며 기존 케이팝 소비층보다 훨씬 넓은 스펙트럼을 아우르고 있다. 산업적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케데헌의 OST 음반과 콘텐츠는 이미 일본, 북미, 동남아 등 여러 국가의 콘텐츠 플랫폼에서 소개됐고 특히 OST는 빌보드 핫100 싱글차트에 동시에 진입하며 ‘스포티파이’ 1위에 오르는 등 국내외 주요 스트리밍 차트 상위권에 안착했다. BTS의 기록을 뛰어넘은 쾌거다. 이뿐만아니라 작품의 영감이 된 전통상품까지 품절 대란으로 이어졌다. 이는 케이팝이 단지 공연 중심의 산업을 넘어 IP 기반의 스토리텔링 서사와 캐릭터 중심의 콘텐츠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한다. 미래형 음악 콘텐츠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지점이다. 음악은 그 자체로도 소비 가능하지만 뮤지컬, 드라마같이 서사 중심의 콘텐츠를 끌고 갈 수 있는 ‘확장적 플랫폼’으로 소비될 때 그 영향력은 더욱 강력해진다. 이때 음악은 단순히 캐릭터의 정서나 이미지를 표현하는 보조적 역할을 넘어 음악 스스로 중심축을 가지고 서사적 구조 속에서 다른 장르와 결합하고 확장하는 기능을 한다. 이를 통해 이 같은 상업적 성과도 이뤄낸다. 케이팝 음악 제작에 있어 새로운 접근 방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무대 중심의 퍼포먼스, 비주얼이나 콘셉트를 넘어 서사형 세계관 속에서 팬과 콘텐츠가 상호작용하는 구조적 변화다. 그리고 이 변화의 중심에는 여전히 ‘음악’이 있다. 지금 우리는 케이팝이라는 ‘장르’가 아니라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을 마주하고 있다. 이제 막 열린 그 문을 통해 우리가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 그것은 창작자와 소비자, 산업과 예술 모두의 몫이다. 이 새로운 도전을 반갑게 바라본다.

[문화산책] 체류형 관광, 미래 여행의 열쇠

기나긴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 세계는 다시 여행의 시대를 맞이했다. 바르셀로나와 베네치아는 넘쳐나는 관광객에 도시가 몸살을 앓고 있고 결국 입장료를 부과하거나 관광세를 인상하는 등 강경책을 내놓고 있다. 반면 한국은 어떠한가. 2024년 2천872만명의 한국인이 해외로 떠났고 방한 외국인은 1천639만명에 그쳤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은 국가는 일본(880만명)이며 일본인 방한객은 322만명에 불과하다. 숫자만 봐도 방향성이 명확하다.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외국인의 77%가 서울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도쿄 36%, 후쿠오카 24%, 오사카 22% 등 전국적으로 관광 수요가 분산돼 있다. 요즘 일본 지방도시를 여행하면 폐점 직전이던 상점들이 한국인 관광객으로 다시 숨통을 틔우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최근 직항편이 열린 도쿠시마는 과거 시내 상점의 80%가 문을 닫았던 도시로 일본에서 가장 낙후된 도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프로모션과 인프라 정비를 통해 인근 다카마쓰, 마쓰야마로 수요가 확산되며 하나의 관광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처음에는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로 우리의 눈길이 쏠렸지만 점차 소도시까지 일본 관광의 영역은 끊임없이 확장 중이다. 한국도 한때 전주, 여수처럼 유행을 타며 각광받은 도시들이 있었지만 천편일률적인 상점 구성과 특색 없는 먹거리, 과도한 호객행위 때문에 점점 이곳을 찾는 여행자는 줄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지자체는 너나 할 것 없이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경관 좋은 곳엔 어김없이 출렁다리와 케이블카가 생기고 사계절 내내 축제가 열리며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간판과 조형물이 거리를 수놓는다. 그러나 이내 다른 지역에서 더 큰 규모로 더 화려하게 만든 콘텐츠들이 등장하면서 금세 잊혀지고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어떤 프로젝트는 지자체장의 임기와 함께 등장했다가 정권 교체와 함께 소리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지도를 펼쳐 보면 대부분의 관광지는 도시 외곽에 있다. 정작 고장의 중심지인 구도심은 상점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고 딱히 머물 이유를 찾기 어렵다. 당일치기로 찾아온 관광객은 중심지를 스쳐 지나가고 젊은 뚜벅이 여행자는 다음 교통편을 찾느라 분주하다. 유럽이나 일본, 중국 등 관광 선진국은 구도심과 근교 명소 간의 시너지 구조를 구축해 체류형 관광을 유도하는 데 반해 한국은 사진 몇 장 찍고 돌아가는 반나절 여행이 주를 이뤘다. 여행자들에게 그 고장에 대한 이미지는 스쳐 지나가는 신기루나 다름없을 것이다. 혹자는 산업화와 전쟁으로 구도심이 파괴돼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은 사라진 거리를 복원하고 가장 번성했던 시기를 테마로 도시를 재구성해 관광 자원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관광객은 거리마다 이어진 가게에서 지역 특산물을 손에 들고 다니며 쇼핑을 즐긴다. 밤이 되면 아름다운 조명과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광장이나 무대에서 열리는 지역주민들의 공연을 관람하며 지역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다. 우리도 변화의 조짐은 있다. 일과 휴식을 병행하는 워케이션을 유치하고 강진, 해남, 영암처럼 지역 간 협력을 통해 콘텐츠를 보완하거나 숙박객에게 입장료를 할인해주는 시범사업도 등장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단기적 이벤트에 머물고 퍼주거나 할인 위주의 정책에만 몰려 있어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정작 지역 정체성과 연결된 기획이나 장기적인 대책은 부족하다. 이제는 비슷한 출렁다리나 조형물 하나 세워두는 것으로 관광이 된다고 믿는 시대는 지났다. 포천에 주막풍의 막걸리 마을이 들어서고 동두천의 국제거리가 ‘록의 거리’로 부활하는 상상을 해본다. 한국 관광의 미래는 사람을 스쳐 지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며칠간 살아보게 만드는 데 달려 있다.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