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빌 클린턴 후보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으로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을 꺾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 여의도에서는 여전히 국가의 불안 요소가 정치가 아니라 경제라고 외치고 있다. 동시에 복잡하고 낯선 경제 지표를 내세워 국민의 불안을 더욱 키우고 있다. 경상수지, 무역수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고용률, 소비자물가지수, 가처분소득, 청년 취업률, 출산율 등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다양한 통계 지표들이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언론과 방송매체는 경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 앞다퉈 ‘경기 침체’와 ‘경제 위기’를 언급하며 한국의 내일을 어두운 겨울로 묘사한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가 경제일까. 정치가 경제를 결정한다.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인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은 국가 흥망성쇠의 주요 원인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제도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영국과 이집트, 미국-멕시코 국경으로 나뉜 노갈레스시,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 동서로 나뉜 독일, 북미와 남미, 유럽과 아프리카의 극단적 차이를 통해 정치제도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는 정치제도가 경제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오판으로 구조적 문제를 겪고 있다. 첫째, 단임제가 만든 불안정한 구조다. 우리나라 경제 구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선진국에서 보기 힘든 5년 단임제다. 1987년부터 시행된 단임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과 제도가 극단적으로 변화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경제 상황 예측에 불안정성이 늘 따라다녔다. 정권이 경제정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안정된 성과를 낼 수 있지만 단임제는 정책의 단절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둘째, 수도권 과밀과 주택 문제다. 수도권 주택 집중화 문제는 이미 2004년부터 제기돼 왔다. 그러나 해결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은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보다 투자나 투기를 통해 얻는 수익이 훨씬 크다는 잘못된 신호를 준다. 이로 인해 청년들은 불안한 미래를 감수하며 대출에 의존한 투기에 몰두하고 있다. 그 결과 가계부채는 급증하고 단기적인 일자리가 증가하며 결혼과 출산율은 감소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인구 감소와 경제 활동 인구의 감소로 이어져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셋째, 교육제도의 악순환이다. 거의 매년 바뀌는 입시제도, 사라지지 않는 주입식 교육, 그리고 거대한 사교육 시장은 우리 교육제도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사교육으로 인해 가계 부담은 커지고, 학교 교육의 역할과 교권은 약화됐다. 또 대학 입시에만 초점을 맞춘 교육은 사회성이나 공동체 의식 형성을 방해하며 결국 취업 시장에서도 대졸자만 선호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부동산 담보 대출 비중이 가계부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의 양극화와 부동산 시장의 통제 불능은 저출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넷째, 외교정책이 중요하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돼 한국 경제는 커다란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관세 인상, 방위비 분담금 증가, IRA법의 확대 등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업 등 한국의 주요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외교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이러한 문제는 국민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아갈 수 있다. 우리 경제는 수출 중심, 제조업 중심 구조이기 때문에 관세나 환율의 변동은 큰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외교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정책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정치제도는 국민의 생계와 경제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권은 정쟁에 매몰돼 국민경제를 살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와 정치권은 정치를 위한 정치가 아닌, 국민의 경제를 살리는 정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드는 길이다.
오피니언
경기일보
2024-12-19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