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오해의 시대, 진실을 지키는 법

세상은 너무나 똑똑해졌다. 뉴스는 쉴 틈 없이 흘러가고 단편적 의견은 전체를 설명하는 듯한 얼굴로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진다. 그러나 이 빠른 속도가 언제나 진실과 나란히 걷는 것은 아니다. 한 조각의 사실이 전체를 대신하고 생략된 맥락이 ‘확신’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지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알수록 더 아는 것 같지만 실은 진실에서 멀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필자는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그동안의 경험을 잘 녹여 묵묵히 해내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큰 조직과 복잡한 구조 속에서 권한 밖이어서 ‘하지 못한 일’이 어느새 ‘하지 않은 일’로 오해되고 설명되지 않은 한계는 사라진 채 단편적 서사만 남아 빠르게 퍼져 나간다는 사실을. 하나의 단면에 불과했던 이야기는 각색되고 작은 그림자 하나는 의혹으로 자라 전체를 대변하는 듯 굳어졌다. 겉으로 드러난 내용은 간결하지만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층위가 있다. 사람들의 말은 그 층위를 가로지르지 않는다. 맥락은 사라지고 단순화된 ‘하나의 주장’만 남는다. 필자는 이 잔혹한 단순화의 힘을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며 때때로 깊은 충격과 낯섦을 느꼈다. 그것이 기사로 쓰여 세상에 흘러나오는 순간 오해는 더욱 견고해진다. 정정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그냥 참고 지나가라”는 조언이 충돌하며 마음은 두 방향으로 흔들린다. 설명되지 않은 사정은 여전히 빈틈으로 남고 누군가는 그 사이에 또 다른 이야기를 덧붙인다. 맞다고 단정된 ‘정보의 속도’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보다 빠르게 앞질러 간다. 그때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혹시 나 역시 누군가의 단편만 보고 ‘아, 알았다’고 성급히 판단한 적은 없었는지.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이야기와 해석으로 머릿속은 금세 포화 상태가 된다.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조차 누군가의 선택과 해석이 덧입혀진 결과일 때가 많다. 그래서 필자는 의도적으로 소음을 걷어내는 시간을 마련하려 한다. 책을 읽고, 창밖을 바라보고, 잠시 눈을 붙이며 아무것도 단정하지 않는 상태로 돌아가는 시간. 이 여백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다시 판단하고 다시 서기 위한 내면의 바탕이다. 잠시 멈추는 일은 현실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더 정확히 보기 위한 준비에 가깝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백을 “무언가가 자라기 위한 조건”이라 했고 메리 올리버는 “모르는 공간에 있을 때 세상이 더 크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왜곡된 사실과 해소되지 않은 감정을 견뎌야 하는 시간은 분명 고통스럽지만 그 시간을 건너야만 다시 들여다볼 자리가 생긴다. 단정해버린 생각을 풀고 보이지 않는 결을 다시 살피는 그 느린 과정이야말로 진실에 다가가는 길이다. 덜 알수록, 잠시 멈춰 숨을 고를수록 우리는 스스로와 다른 이의 진실에 더 가까워진다. 맞다고 단정된 말들이 너무 쉽게 떠다니는 시대에 나를 지키는 방법은, 어쩌면 ‘더 많이 알기 위해 애쓰는 일’보다 ‘모르는 상태를 잠시 견디고 새롭게 채우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진실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서고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나만의 도리인 것이다. 그다음은 “행동하라.”

[아침을 열면서] 외교력은 곧 ‘관광력’

세계는 지금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외교력에서 찾는 시대에 들어섰다. 외교는 더 이상 정치·안보만을 담당하는 영역이 아니다. 국가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 문화 확산, 산업 협력, 관광 수요까지 외교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이미 정착됐다. 한국 정부가 연이어 추진한 정상외교와 중동·유럽·아시아 각국과의 협력 강화, 그리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유치는 한국 외교의 새로운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20년간 K-콘텐츠는 한국을 세계인이 사랑하는 문화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문화원, 공관, 공공외교, 민간 교류 등 외교적 기반이 꾸준히 축적돼 있었다. 일본의 ‘쿨저팬’, 영국의 ‘브리티시 카운슬’처럼 선진국은 외교를 통해 국가 이미지를 만들고 이 이미지를 관광·산업 확장으로 연결해 왔다. 한국 역시 이러한 선진 외교 흐름의 중앙에서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관광은 본질적으로 ‘이미지 산업’이다. 사람들은 비행기표를 구매하기 한참 전부터 이미 어떤 나라를 좋아하고 어떤 나라에 가고 싶은지 선택한다. 이미지 형성의 최전선은 바로 외교다. 특히 올해 한국이 APEC 의장국을 맡으며 제시한 디지털 전환, 기후·에너지 협력, 청년·문화교류 확대 같은 주요 의제는 관광산업과도 긴밀한 연계성을 지닌다. 한국이 국제협력의 중심국가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 관광객에게는 한국이 더욱 매력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나라로 비친다. 단순한 국제행사 주관이 아니라 한국 관광산업의 신뢰도와 매력도를 강화하는 강력한 국가 브랜드 자산이 된다. 최근 한국 방문 외국인 관광객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2025년 1~9월 기준 약 649만명, 연말까지는 1천800만명 수준이 예상된다. 우리나라도 국가의 외교력이 한층 높아졌다. 그 상승세로 관광대국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에 대한 몇 가지 전략적 대안이 필요하다. 첫째, 외교와 관광이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해외 공관을 단순 행정기관에서 벗어나 한국 관광·문화의 현지 허브로 전환해야 한다. 한류체험, K-푸드 클래스, 드라마 촬영지 홍보 등 현지인들이 한국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둘째, 콘텐츠와 관광을 연계하는 외교 전략도 중요하다. 드라마·영화 촬영지 투어, 케이팝 공연 연계 관광상품, 지역 축제와 해외문화원의 공동 기획 등은 콘텐츠의 세계적 인기가 실제 방문으로 이어진다. 셋째, 비자·항공 접근성 개선은 외교 의제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무비자 협정 확대, 복수비자 완화, 지방공항 직항노선 확보는 관광객 유입을 단숨에 증가시키는 핵심 요소다. 세계 관광강국은 모두 ‘항공·비자 외교’를 공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넷째, 지역 관광의 국제화를 위한 지역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지역의 독창적 스토리를 가진 로컬 콘텐츠를 외교사절단 방문, 해외 언론 팸투어, 국제문화포럼과 연계하면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다. 관광객의 흐름을 수도권에서 전국으로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교는 국가 홍보의 최전선이며 관광은 그 외교적 신뢰가 만들어낸 경제적 결실이다. 관광지는 많지만 외교적 신뢰가 약한 나라가 관광대국이 된 사례는 많지 않다. 한국이 진정한 관광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외교에서 시작해 관광으로 완성되는 국가 브랜드 전략이 핵심이 돼야 한다. ‘외교력이 곧 관광력’이며 ‘외교의 품격이 대한민국 관광의 미래’를 결정한다.

[아침을 열면서] 실내악이 알려준 ‘삶의 기술’

오랫동안 무대와 강단에서 활동하며 필자는 실내악이 음악가를 성장시키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과정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됐다. 실내악은 듣기와 반응, 그리고 함께 존재하는 법을 경험하게 하는 예술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음악의 영역을 넘어 삶의 중요한 원리이기도 하다. 먼저 실내악은 ‘듣기’의 깊이가 중요하다. 일상에서 듣는다는 행위는 종종 형식적일 수 있다. 우리는 말을 들으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고 상대의 감정과 맥락은 놓친 채 겉만 받아들이며 무심히 지나칠 때가 많다. 그러나 실내악의 무대에서는 겉핥기식 듣기로는 완성도 있는 음악을 만들어낼 수 없다. 동료의 활이 지나가는 미세한 속도, 프레이즈를 시작하는 찰나의 호흡, 음악적 전환점의 미묘한 순간까지 모두 음악의 흐름과 완성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실내악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과 의도를 헤아려 반응하는 ‘진정한 듣기’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듣기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반응’이다. 실내악은 계획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연습에서 수없이 다듬은 부분도 무대에서는 전혀 다른 긴장감으로 다가온다. 연습한 내용뿐 아니라 무대에서는 그 순간의 플러스알파, 즉 무대 위의 영감이 더해진다. 누군가 한 음을 조금 길게 잡으면 전체 호흡이 달라지고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이면 나머지 파트가 그에 반응하며 조율에 들어간다. 이 과정은 누가 틀렸는지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상황에 맞게 음악을 자연스럽게 완성하는 능력이 바로 실내악의 힘이자 매력이다.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예기치 않은 순간마다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관계의 형태와 깊이가 달라진다. 필자는 1991년 창단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현악4중주단콰르텟21과 실내악단코리아나 챔버뮤직소사이어티에서의 오랜 경험을 통해 실내악의 이런 원리를 점점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됐다. 해석을 놓고 논쟁하고, 의견이 엇갈리는 과정이 없으면 음악은 완성도가 없고 서로 맞춰지지 않은 해석은 설득력이 약하다. 실내악은 개인의 완벽함을 증명하는 과정이 아니다. 서로 다른 해석, 기질, 이질적인 내용이 어떻게 균형을 이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는지를 보여주는 집단의 예술이다. 이 예술행위가 얼마나 큰 희열과 풍요를 경험케 하는지는 더 말할 나위 없다. 이 배움은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 실내악을 시작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의 파트에만 집중한다. 다른 파트의 내용이 아직 잘 파악되지 않고 음악의 전체 구조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표현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조금씩 귀가 열리고 상대의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그들은 한 곡을 ‘함께 완성한다’는 성취감과 실내악의 매력을 경험한다. 이 변화는 기술적 능력만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다. 듣고, 이해하고, 반응하며, 함께 책임지는과정의 축적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결국 실내악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실내악은 혼자서는 음악을 온전히 완성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잘 듣고, 충실히 반응하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반응할 줄 아는 능력. 이 세 가지는 실내악의 원리이자 매력이고 동시에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실내악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은 함께 만드는 기쁨이다.

[아침을 열면서] AI 시대, 말 한마디의 무게

요즘 의학의 발전은 눈부시다. 인공지능(AI)은 의학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쳐 환자의 영상 자료를 분석해 더 작은 병변을 찾아내고 빅데이터는 환자의 예후를 예측한다. 특정 분야에서 AI 진단의 정확도는 이미 사람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AI의 기술과 역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의사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진료실에서 진단 결과를 알려주는 짧은 순간 의사의 말 한마디는 그 병을 대하는 환자의 마음을 완전히 바꾼다. “잘 치료해 보겠습니다”라는 말은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에게 다시 숨 쉴 틈을 주지만 “좀 더 지켜봅시다”라는 말은 때론 불안과 두려움으로 들리기도 한다. 똑같은 의학적 사실이라도 어떤 말로, 어떤 표정으로 전달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마음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의학이 과학이라면 진료실의 언어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AI는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인 수치와 분석 자료를 제공해 주지만 ‘어떻게’ 말할지는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의사가 환자와 마주 앉아 눈을 보고 설명하는 일, 그 과정에서 생기는 침묵과 호흡, 공감의 시간은 알고리즘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괜찮습니다”라는 한마디의 온도, “잘 해내고 계십니다”라는 격려의 울림은 여전히 사람만이 전할 수 있다. 의사는 종종 말의 무게를 잊는다. 너무 많은 환자를 만나고 너무 빠른 속도로 결정을 내리며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말을 짧게 줄인다. 필자 역시 진료 직후에 회의가 있거나 외부 행사가 있을 때 가끔은 이 환자를 빠른 설명으로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가 있음을 반성한다. 하지만 환자는 의사의 그 짧은 말 한마디에 온 감각을 기울인다. 그 말이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평가하는 말처럼 들릴 때도 있다. 그래서 말의 정확함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말의 방향이다. 그 말이 환자의 마음을 닫게 만드는가, 아니면 다시 열게 만드는가. AI가 진단을 대신하는 시대가 오면 의사의 역할은 오히려 더 본질적인 곳으로 향해야 한다. 기술은 병을 찾고, 데이터는 예후를 계산하겠지만 환자가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일은 여전히 의사의 몫이다. AI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그 속도만큼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의사의 말 한마디는 기술의 시대에 더욱 절실해진다. 의사는 단순히 결과를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가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게’ 돕는 사람이다. 병명보다 사람의 이름을 먼저 부르고 데이터보다 감정을 먼저 읽어 내는 일, 그것이 앞으로 의사가 지켜야 할 마지막 책무다. 차가운 데이터 사이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그것이 미래에서 현재로 성큼 다가온 AI 시대에 의사가 지켜야 할 인간의 자존일지 모른다. 기계가 진단을 내릴 수는 있어도 환자의 마음에 닿는 ‘말’을 대신하진 못한다. 그 말의 온도, 그 침묵의 길이, 그 눈빛의 진심이 의학의 미래에서도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아침을 열면서] 경기도뮤지엄, 변화를 묻다

“제작비가 3천만원인데 수조 속에서 사람이 사는 장면을 찍으려면? 수중촬영팀과 장비가 필요한데... 이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는데.” 대학원 시절 독립영화 제작에 참여하며 가장 자주 듣고, 했던 말이다. 시나리오 속 한 장면이 현실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끝자리에 ‘0’ 하나가 필요했다. 우리는 “발품 팔러 가자”는 자조 섞인 말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창작의 의도보다 숫자의 한계가 먼저 우리를 가로막던 시절이었다. 요즘 들어 그때의 기억이 자주 떠오른다.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필자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경기도 문화의 얼굴이자 가장 유망한 브랜드로 성장시킬 분야라 믿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 볼수록 제도와 구조의 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진 통합 운영의 현실이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분리 독립’의 필요성을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니라 경기도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향한 애정 어린 과제로 받아들이게 됐다. 경기도립 박물관과 미술관의 역사는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개관한 경기도박물관과 2006년 문을 연 경기도미술관은 도 직영 사업소로 시작했지만 2008년 이후 순차적으로 8개 기관이 경기문화재단으로 위탁됐다. 8개의 도립 박물관·미술관을 동시에 위탁 운영하는 곳은 전국에서 경기도가 유일하다. 문제는 이 통합 운영이 효율을 앞세운 구조 속에서 각 기관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제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문화재단의 연간 예산은 총액이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예술인 지원, 생활문화, 예술교육, 복합문화공간, 박물관, 미술관 운영까지 모두 소화해야 한다. 이 구조 속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이 수준 높은 전시를 기획하려 해도 예산은 늘 ‘분배의 논리’에 갇힌다. 작품 구입비는 턱없이 부족하고 전시는 소규모로 축소된다. 좋은 기획안이 나와도 초기 기획이 실행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홍보와 마케팅 인력, 예산 또한 중앙의 뮤지엄들과 비교할 수 없다. 블록버스터 영화와 독립영화의 차이에 비유하면 정확하다. 기획력이나 열정의 차이가 아니라 구조와 자원의 차이가 만든 격차다. 세계적 관심을 모으는 K-굿즈의 흐름 속에서도 경기도 뮤지엄이 그 대열에 서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예산의 제약이 곧 기획의 제약으로, 다시 도민의 문화 향유 기회의 한계로 이어진다.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한 친구가 부모님이 해외에서 사온 과자를 친구들에게 두 개씩 나눠 주다 마지막 친구에게 “엇, 하나만 남았네”라고 말하던 장면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분배의 강박이 누군가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박물관·미술관 운영도 그와 다르지 않다. 정해진 틀 안의 통합 운영만으로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제 역할을 다하기 어렵다. 이제는 각 기관이 자율적으로 기획하고 전문성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 행정적 효율이 아닌 문화적 창의성을 중심에 둔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가 어느 나라를 여행할 때 사람들의 마음을 이끄는 매력적인 장소 중 박물관과 미술관을 빼놓을 수 없다. 그곳은 도시의 품격이자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의 얼굴이다. 경기도립 박물관과 미술관 역시 도민의 자부심이자 경기도의 대표 브랜드로 기억될 수 있어야 한다. ‘분배식 예산 중심의 운영’을 반복할 것인가, ‘창의와 자율의 문화기관’으로 나아갈 것인가. 이제는 선택의 시간이다.

[아침을 열면서] 청년 미래 삼키는 ‘욕망의 덫’

캄보디아에서 한국 청년들이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에 연루된 사건은 단순한 ‘해외 범죄 뉴스’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그 가치의 기반을 잃어버렸는지를 보여주는 치명적 징후다. “월 수백만원 보장”, “숙식 제공”, “단순 업무”라는 달콤한 홍보문구는 사실상 감금과 협박, 폭력이 일상화된 범죄의 덫이었다. 충격적인 것은 청년들이 ‘피해자’로 끌려갔지만 시간이 지나며 또 다른 친구와 지인을 모집하는 ‘범죄의 매개자’가 됐다는 사실이다. 이 비극적 전환은 단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돈의 속도’만을 성공의 척도로 삼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무지나 순간의 실수가 아니다. 일부 청년 세대들은 반복된 좌절과 구조적 박탈을 겪으며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체념이 내면화돼 있다. 정직한 축적의 시간은 조롱받고 실력의 성장보다 ‘단기간의 역전’이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이 허탈감과 절망의 균열 사이로 범죄조직은 파고들었다. “친구 한 명의 삶을 20만원에 거래했다”는 언론 보도는 돈이 도덕을 대체하고 인간관계가 ‘가격표’로 환산되는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성공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존경받는 리더, 기업가, 예술가들이 남긴 발자취를 돌아보면 그들의 성취는 어느 날 ‘운 좋게’ 얻은 것이 아니다. 누구나 견딜 수 없는 시간, 버텨야 하는 불확실성, 기여와 신뢰의 축적이 기반이었다. ‘정당한 축적’이야말로 사회적 신뢰를 탄탄히 하는 토대이며 이것이 무너질 때 가장 먼저 위험에 처하는 것은 약자와 청년 세대다. 노력 없는 부(富)가 가능하다고 믿는 순간 사회는 신뢰 기반을 잃고 공동체는 도덕적 붕괴를 낳는다.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 “성공이란 무엇이며 인간다운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 청년들이 정당한 노력을 통해 삶의 기반을 쌓을 수 있는 사회는 제도만으로 부족하다. 그것은 사회가 ‘무엇’을 가치로 여기는지에 대한 집단적 선택이 있어야 한다. 경쟁을 부추기고 스펙을 강요하며 결과만 평가하는 문화 속에서 ‘정직한 시간의 축적’은 설 자리를 잃었다. “정도(正道)를 걷지 말라. 돌아가는 길이 더 빨리 성공한다”는 왜곡된 신호의 결과를 보여 줬다. 달콤한 유혹은 언제나 감미로운 말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끝에는 존엄의 상실이 기다린다. 돈은 잃어도 다시 벌 수 있지만 무너진 양심과 관계는 회복이 어렵다. ‘어떻게 돈을 버는가’보다 ‘왜 그것이 삶의 기반이 되는가’를 일깨워야 한다. 교육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을, 경쟁이 아니라 의미를 다뤄야 한다. 사회가 신뢰의 토대를 회복하지 않는다면 비극은 언제든 반복된다. 캄보디아의 사건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깊은 병폐를 드러내는 경고장이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정당한 삶의 방향 선택이 중요하다. 유혹의 돈은 순간이지만 쓰디쓴 대가는 평생을 따라온다. 이 경고를 외면하면 수많은 청년이 욕망의 덫에 걸려 파멸로 추락할 것이다. 모두가 과도한 욕심의 굴레를 벗고 정직한 삶의 가치를 다시 새겨야 할 때다.

[아침을 열면서] 정화된 밤, 어둠 속 피어나는 빛처럼...

음악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을 대신 이야기해준다. 한 음 한 음이 마음의 결을 따라 흐를 때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자주 잊고 지냈던 다양한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사랑과 상실 같은 감정이 서로 교차하며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작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며칠 전 필자는 20세기 초의 걸작 아널드 쉔베르크의 ‘정화된 밤’을 연주할 기회를 가졌다. 이 곡은 독일 시인 리하르트 데멜의 시 ‘두 사람’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달빛 아래 숲길을 함께 걷는 한 남녀의 마음속에서 교차하는 절망과 희망, 죄와 용서의 순간들을 섬세하게 음악으로 그려낸다. 특히 여자가 “나는 당신의 아이가 아닌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고 털어놓는 장면에서는 낮게 울리는 현악기의 떨림이 숲을 차갑게 감싸며 긴장감을 높이고 남자가 그녀를 안으며 용서를 전할 때는 화성이 점차 밝아지며 첫 새벽빛이 숲 사이로 스며드는 듯한 따스한 온기를 전한다. 이러한 순간마다 우리는 단순히 시 속 장면을 떠올리는 것을 넘어 인간 내면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함께 느끼게 된다. 작곡가 쉔베르크는 시 속 이야기만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흔들림과 구원의 순간을 그의 음악 속에 깊이 녹여낸 셈이다. 이 작품은 후기 낭만주의의 정점에 서 있으면서도 조성의 경계를 넘어 다채로운 화성과 색채감으로 음악적 깊이를 한층 확장한다. 쉔베르크는 선율과 화성을 유기적으로 엮어 전통적 음악 조성의 틀을 뛰어넘고 곡의 흐름에 따라 감정이 섬세하게 움직이도록 작곡했다. 낮게 시작하는 조용한 선율에서부터 긴장감이 서서히 쌓이는 전개, 그리고 예기치 못한 순간의 화성 변화까지 모든 요소가 긴밀하게 연결되며 음악 속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 곡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음악 속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며 단순한 감상을 넘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림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쉔베르크의 작품은 듣는 이를 음악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며 순간순간 마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필자는 코리아나 챔버 뮤직 소사이어티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얼마 전 동료들과 함께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여러 번 연주했던 곡이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새롭게 다가왔다. 연주를 준비하며 음 하나 하나와 음 사이의 숨결, 그리고 연주자들의 작은 감정선까지 함께 나누며 이 곡이 단순한 기술적 과제를 넘어 인간의 마음을 나누는 음악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음악이 단순히 소리를 들려주는 것을 넘어 마음의 울림과 공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 훌륭한 도구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정화된 밤’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절망 속에서도 서로를 통해 빛을 발견하고 어둠을 지나 점차 정화돼 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데멜의 시가 인간의 약함과 불안을 솔직하게 고백했다면 쉔베르크의 음악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용서와 구원의 가능성을 노래한다. 우리 모두는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상처와 좌절을 경험하며 살아가는데 이 곡은 그런 순간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희망을 찾고 마음의 빛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전해 주고 있다.

[아침을 열면서] 도시와 섬 잇는 의료

바다를 건너 섬에 들어가는 길은 언제나 묘한 울림을 준다. 배가 잔잔한 물결을 가르며 나아갈수록 도시는 점점 멀어지고 바다 풍경이 익숙해질 무렵이 되면 섬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난다. 바람은 부드럽고 공기는 맑다. 하지만 그 고요한 풍경 속에도 채워야 할 빈틈이 있다. 바로 전문 의료에 대한 접근성이다. 섬에는 대체로 보건지소가 있고 규모가 더 작은 섬에는 보건진료소가 있다. 보건지소에는 공중보건의와 간호사가, 보건진료소에는 의사 없이 간호사만 근무하며 주민들의 기본적인 건강 관리를 담당한다. 이를 통해 혈압과 혈당을 확인하고 예방접종이나 간단한 처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전문 진료가 필요한 순간부터 상황은 달라진다. 도시의 병원으로 나가기 위해 서해 최북단 5도에서 하루 1~2회 운항하는 정기선을 타고 나서는 일은 쉽지 않다.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환자의 경우 닥터헬기를 띄우기도 하지만 이 또한 기상조건이나 고비용 등으로 제한적 운용이 불가피하다. 자연히 통증이나 증상이 있어도 참고 지내는 경우가 많고 치료의 적기를 놓치는 일도 적지 않다. 이런 이유로 대학병원 의료진의 섬 봉사활동은 단순한 자원봉사가 아니다.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봉사는 진료의 차원을 넘어 섬 주민들에게 “도시와 연결돼 있다”는 신뢰감을 주는 일이다. 의료진이 찾아와 상태를 살피고 다음 단계의 치료를 연결해주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의료 생태계를 만들어간다. 필자는 운좋게도 병원 사회공헌지원단의 일원으로 10여년간 섬 의료 봉사를 수행하고 있다. 인하대병원은 대청도의 주치병원으로서 매년 몇 차례씩 방문 진료를 하고 있고 어르신들에게 관절주사나 영양수액제, 투약 등을 제공한다. 섬에서의 봉사는 의료인의 초심을 일깨운다. 병을 고치는 기술만으로는 환자의 삶을 지탱할 수 없다. 의료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관계이며 그 안에는 공감과 연대가 있다. 섬 봉사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도움’보다 ‘함께함’이다. 섬의 의료 현실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불균형의 축소판이다. 대도시에 집중된 의료 자원, 전문 인력의 편중, 의료 접근성의 차이는 지역 간 건강 격차로 이어진다. 수도권보다 지방, 대도시보다 소도시 주민들의 기대수명이 더 낮은 것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섬 지역에서는 단순한 의료 지원을 넘어선 지속적인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 인프라가 충분히 작동하려면 의료인뿐 아니라 행정적 지원, 지역사회의 관심, 그리고 보건정책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 막연히 공기가 맑은 시골지역에 살면 장수한다는 것은 먼 옛날의 지나간 이야기일 뿐이다. 최근 대학병원과 지역 보건지소를 연결하는 원격화상협진이 확대되고 있다. 대학병원 교수가 영상으로 섬의 응급환자나 중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현지 의료진과 함께 치료방법을 상의하고 결정하는 체계는 시공간의 한계를 크게 줄인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공지능 기반 진단 지원, 이동형 검사 장비, 응급 이송 체계 등과 연계돼 ‘섬에서도 끊김 없는 진료’가 실현될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 돌아오는 배 위에서 문득 생각했다. 섬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결코 외딴곳이 아니다. 우리가 노력하면 그 거리는 바닷길보다 좁다. 의료의 역할은 병을 고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과 지역, 도시와 섬을 잇는 다리이자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섬에서 보낸 짧은 시간이 남긴 울림은 단순한 봉사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공동체의 방향, 그리고 의료가 나아가야 할 진정한 가치였다.

[아침을 열면서] 예술의 자유와 낭만합격

예술가는 왜 자유를 원하는가. 권력이나 시장의 요구에 맞추는 순간 예술은 숨을 잃는다. 자유는 존엄이며 허용된 표현만 허락되는 사회는 예술을 장식품으로 전락시킨다. 그러나 국가는 예술을 길들이려 한다.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재정을 풀고 성과와 관객 수를 들이대며 관리 가능한 창작만 선호한다. 그럼에도 지원은 필요하다. 시장만으로는 예술이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지시가 아닌 기반이다. ‘배고파야 예술가’라는 신화와 ‘상업적 성공만이 지속가능’이라는 통념은 창작을 왜곡한다. 자유와 열망으로 무명 시절을 버틴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예술이 존재한다. 씨 뿌림과 열매 맺음의 과정은 생략할 수 없다. 정책은 이 낭만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과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창작을 뒷받침해야 한다. 얼마 전 ‘낭만합격’이라는 신조어를 들었을 때 잠시 생각이 멈췄다. 단순히 시험에 합격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라 짐작했다. 역시 설명을 듣고 나니 감흥의 다른 말이었다. 과정의 짜릿함, 나만의 추구, 현실적 기준보다 감성을 중시, 즉 ‘멋있다’는 뜻을 담은 새로운 표현이었다. 경쟁과 압박 속에서도 자신만의 속도를 잃지 않으려는 세대의 감각이 담겨 있었다. 예술과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답과 효율만 좇는 방식으로는 결코 ‘낭만합격’할 수 없다. 1980~90년대 초반 홍콩 누아르에 열광하고 90년대 노상에서 퍼지는 인기 가요 속에서 우리는 시대의 감각을 공유했다. 90년대 중반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찬란한 시작, 한류 열풍, 2002년 월드컵의 뜨거운 연대, 거리를 밝힌 촛불의 기억은 모두가 주인공이 된 경험의 장이었다. 공동체가 하나로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자 자유의 열기가 만든 감동이었다. 낭만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늘 고독했다. 오늘날 세계적 예술가들도 무명과 결핍 속에서 버텼다. 그 시절을 견디지 못했다면 오늘의 성취도 없었을 것이다. 정책은 그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 중앙은 원칙을 세우고 지자체는 다양성을 살려야 한다. 즉, 중앙·광역·시·군 정책이 지역 특수성을 존중하되 큰 틀에서 방향을 함께하지 않으면 새로운 물결은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정책은 중앙·지자체뿐 아니라 현장과 행정, 창작자와 사회가 함께 호흡하는 생태계로 작동해야 지속될 수 있다. 화려해 보이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현주소는 참담하다. 영화, 드라마, 연극, 전시, 신인 발굴과 꾸준한 육성 프로그램의 결핍 속에서 투자 중단과 예산 삭감, 창작자 부당 보상이 만연하다. 오리지널 지식재산권(IP)의 부족과 지원의 불균형 속에서 예술은 생존의 벼랑 끝에 서 있다. 예술을 지키기 위해서는 경직된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멋있을 수 있는 기회’, 즉 낭만을 상상하고 펼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정책은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해야 한다. 예술의 자유와 낭만을 현실에 담아내야 한다. 대담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가 살아야 낭만이 숨 쉬고, 낭만이 숨 쉬어야 자유가 의미를 가진다. 정책이 그 숨결을 보호할 때 다음 세대는 말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또 하나의 낭만합격을 지나고 있었다.”

[아침을 열면서] 고향의 멋, 맛

풍요로움을 나누는 추석이 다가왔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고 가족과 정을 나누는 명절은 단순한 연휴가 아니다. 살아온 뿌리와 정체성을 되새기며 세대 간의 기억과 문화를 잇는 소중한 시간이다. 고향의 멋과 맛은 그저 음식이나 풍경만은 아니다. 세월을 견뎌온 삶의 방식과 전통,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송편을 빚던 부엌의 풍경, 지글지글 전 부치던 냄새, 정성껏 차려진 차례상에는 조상의 지혜와 부모 세대의 손맛이 배어 있다. 고향의 맛은 단순한 미각의 향수가 아니라 가족의 기억이자 지역의 정체성을 잇는 문화 자산이다. 하지만 도시화와 생활 방식의 변화로 전통적인 명절 풍경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명절은 간소화되고 고향 대신 여행지를 택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추석의 의미가 점점 흐려진다. 소중한 고향의 명절을 어떻게 지키고 이어갈 것인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역의 전통문화와 향토자산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주민과 방문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지역 박물관, 문화센터, 마을 공방 등을 단순한 전시공간이 아닌 ‘체험형 문화 플랫폼’으로 운영하고 귀향인들이 고향문화를 체험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추석 연휴를 향토 음식 만들기, 마을 음악회, 세대 공감 토크 같은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연계한다면 고향은 단순히 ‘들렀다 가는 곳’을 넘어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변화할 수 있다. 고향을 찾는 귀향객들이 자연스럽게 지역의 홍보대사가 되도록 유도하는 전략도 중요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증 이벤트, 체험 후기 공유, 지역 특산물 소개 등 온라인 홍보 콘텐츠를 통해 고향의 멋과 맛은 확산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 소비를 넘어 지역경제, 관광산업에도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주민들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주민은 일상의 삶 속에서 전통을 지키고, 고향의 고유한 문화와 가치를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다. 명절이면 돌아오는 귀향객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마을의 변화를 함께 이야기하며, 정을 나누는 환대는 고향의 품격과 추억을 소환하는 중요한 요소다.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지역 공동체 스토리를 기록하고 나누는 일은 고향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동력이다. 고향을 찾는 방문객의 자세 또한 중요하다. 단순히 음식과 풍경을 즐기는 관광객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공감하는 손님’이 돼야 한다. 마을을 거닐며 과거의 흔적을 느끼고 어른들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추억을 공유하는 경험은 고향과의 정서적 유대를 더욱 깊게 만든다. 자신이 경험한 고향의 빛을 사진과 글로 남기고 온라인을 통해 나누는 것도 고향 사랑의 한 방식이다. 고향은 누구에게는 삶의 터전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다. 추석은 그 둘을 연결하는 시간이다. 고향의 멋과 맛을 지키고 전하는 일은 모두의 몫이다. 올 추석, 고향의 멋과 맛을 온전히 느끼고 그 가치를 함께 지키는 작은 실천을 시작하자. 향수(鄕愁)는 상(床) 위에 차려진 음식만이 아니라 고향을 잇는 마음도 담겨 있다.

[아침을 열면서] K-클래식의 현재와 미래

한국의 클래식은 K-클래식으로 일컬어지며 최근 국제콩쿠르에서 가장 주목받는 국가가 한국이다.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 보고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적으로 총 58회의 콩쿠르가 열렸고 79개의 1등 상 중 한국 국적 수상자가 17%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는 중국, 이탈리아, 러시아, 미국(각각 9%)을 제치고 단연 가장 높은 비중이며 1·2·3등을 포함한 상위 입상자를 합산해도 한국이 14%로 중국(12%)과 러시아(8%)를 앞선다. 국제콩쿠르의 한국 수상자는 어떤 과정을 거쳐 입상할까. 부모님의 뜨거운 조기교육열에 힘입어 어린 나이부터 꾸준히 힘든 연습을 하고 국내 콩쿠르에서 다수의 입상 경력을 쌓는다. 어린 나이에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할 정도의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음악 영재는 동기 부여가 잘돼 있어 연습을 힘들어 하지 않을까. 안데르스 에릭슨 교수는 베를린음악학교 바이올린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세계적인 바이올린 독주자가 될 ‘최우수학생집단’과 그다음 집단인 ‘우수’, ‘양호’ 집단으로 나눠 연구했다. 놀랍게도 세 집단 모두 연습을 힘들어 했으며 동기 부여나 선천적 재능의 차이는 없었다. 오로지 차이는 혼자 하는 연습 시간뿐이었다. 최우수학생집단은 18세까지 평균적으로 7천400시간, 20세까지 1만시간의 연습을 했다. 시간을 단축해주는 지름길도 없었고 적은 연습량으로 전문가 수준에도 달한 ‘천재’도 없었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연주자들은 20세까지 1만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연습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콩쿠르에 우승하면 세계적인 연주자로서의 삶은 보장될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저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소설가를 “링에 올라오는 것은 쉬워도 오래 버티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하며 직업소설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자격’이 요구된다고 했다. 젊은 음악가가 국제콩쿠르라는 링에 올라서는 것은 소설가보다 훨씬 어렵지만 일단 링에 올라가면 소설가보다 버티기는 좀 더 수월해 보인다. 하지만 20, 30년전 콩쿠르에 등용된 수많은 음악가 중 세계적인 연주자로 활동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음악가에게도 버티는 데는 어떤 종류의 ‘자격’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필자는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교수의 저서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서 답을 찾았다. 그는 역량을 자원(Resources), 프로세스(Process), 우선순위(Priorities)로 나눴다. 음악가에게 자원은 재능, 선생님에게 배운 지식, 콩쿠르 우승 경력 등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프로세스란 어떻게 생각하고, 과거에 배운 음악을 토대로 새로운 해석을 더하며, 다른 연주자들과 교류하면서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예종 총장을 지낸 김대진 교수가 가리즈피아노콩쿠르 심사를 회고한 영상이 있다. 4명의 한국 연주자와 4명의 유럽 연주자가 연이어 나왔는데 한국 연주자들은 연주 능력은 탁월했으나 같은 복장을 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연주한 반면 유럽 연주자들은 서로 다른 복장을 하고 개성 있는 연주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것이다. 한국 연주자들이 배운 그대로의 ‘모범답안’ 수준의 연주를 개성 없이 한 셈이다. 배운것에 더해 새로운 해석을 더하는 프로세스를 개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삶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고 결정을 내리는 우선순위도 필요하다. 어떤 연주자에게는 음악의 완성도나 연주 자체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우선순위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연주자에게는 관객의 환호와 호응, 혹은 연주료 등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아침을 열면서] 회복과 치유의 경계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늘 마주하는 장면이 있다. 수술과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쳤음에도 여전히 삶의 무게에 눌려 힘겨워하는 환자들이다. 반대로 의학적으로는 여전히 불편함이 남아 있는데도 놀라울 만큼 밝게 일상을 살아가는 환자들도 있다. 같은 병, 같은 치료를 받았는데 회복의 궤적은 전혀 다르게 그려진다. 이 차이를 설명하는 단어가 있다면 아마도 ‘회복’과 ‘치유’ 사이의 간극일 것이다. 의학적 회복은 비교적 명확하다. 부러진 뼈가 붙고 마비된 근육이 기능을 되찾으며 통증이 줄어드는 것. 이는 수치와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고 치료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치유는 그렇지 않다. 환자가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서 살 수 있는가,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잘 적응하는가, 마음의 고통까지 덜어낼 수 있는가는 어떤 검사로도 온전히 측정할 수 없다. 재활의학은 바로 이 회복과 치유의 경계에 서 있는 진료과다. 환자가 다치거나 질병으로 인해 수술을 받으면 “이제 저희 과에서는 퇴원하셔도 됩니다”라는 주치의의 말을 듣게 된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재활의 시계는 삶 속에서 본격적으로 돌아가게 된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환자가 퇴원 후 처음으로 길을 걷는 순간, 의학적 회복은 분명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걸음이 ‘다시 살아갈 용기’로 이어지려면 치유가 동반돼야 한다. 그 과정에는 의사의 처방뿐만 아니라 환자의 의지, 가족의 지지, 사회의 이해가 모두 얽혀 있다. 그래서 재활의학의 진료실은 늘 환자 혼자가 아니라, 가족과 지역사회가 함께 드나드는 공간이 된다. 예전에는 기능적 회복이 재활의학의 목표였다면 이제는 사회 참여가 목표가 된 것이다. 문제는 의학이 전부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치료법을 개발해 환자의 기능을 되살린다. 로봇 보조 재활, 가상현실 치료, 인공지능 기반 맞춤 프로그램까지 발전 속도는 놀랍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장비도 환자의 손을 잡아주는 가족의 따뜻한 손길을 대신할 수는 없다. 최신 약물도 환자가 다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의학이 할 수 있는 일은 회복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고, 치유는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완성되는 일이다. 나는 종종 진료 현장에서 이런 순간을 마주한다. 뇌 손상으로 언어기능을 잃은 환자가 서툰 발음으로 “고맙다”라는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환자보다 가족의 눈물이 먼저 흐른다. 기능의 회복은 의학이 도왔지만 그 한마디 말이 울림이 되는 순간은 인간적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의사가 개입할 수 없는 치유의 차원, 그곳에서 환자와 가족은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이 문제는 점점 더 중요해진다. 기대수명은 늘었지만 건강수명은 여전히 짧고, 치료와 돌봄의 공백은 점점 커진다. 단순히 병을 고치는 것을 뛰어넘어 환자가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사회 전체의 과제가 되고 있다. 의료가 회복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치유는 사회적 연대와 문화적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회복은 의학의 언어이고, 치유는 삶의 언어다. 병원을 나선 뒤에도 환자가 살아가야 할 시간 속에서 두 언어는 끊임없이 교차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경계를 자주 성찰하는 것이다. 의학이 열어준 회복의 길 위에서, 치유가 이어질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걸어가야 한다. 결국 인간을 온전히 살아가게 하는 힘은 수술실과 진료실을 넘어선 그 어딘가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아침을 열면서] 하늘을 보는 시간

문득 하늘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하늘 바라기는 어느새 습관이 됐다. 내가 유난히 하늘을 본다는 사실은 친구 덕분에 알았다. “너는 하늘 얘기를 자주 해. 그래서 나도 하늘을 보곤 해.” 그 말을 듣고 사진첩을 열어 보니 무심코 찍은 것들 중 가장 많은 게 하늘이었다. 한강에서 떠오르던 해, 빌딩 사이 조각처럼 걸린 하늘, 비 오는 날의 아득한 하늘, 마음이 뚫리듯 시원했던 하늘. 그 순간 속에서 나는 생각을 멈추고 굳이 꺼내지 않던 감정을 여러 빛깔로 펼쳐 보게 됐다. 도시에서 고개를 든다는 건 쉽지 않다. 휴대전화와 일정, 모니터, 사람들의 얼굴에 시선이 묶여 있을 때가 많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하늘은 언제나 우리 위에 있다는 것을. 묵묵히 우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짝사랑하는 것만 같아 괜히 미안해지곤 한다. 나도 예전에는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면서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어느 날 퇴근길, 창밖의 노을을 보고 멈춰 섰다. ‘내가 마지막으로 하늘을 본 게 언제였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도시는 우리의 시선을 아래로 잡아끈다. 드물게 올려다봐도 금세 외면한다. 대부분은 휴가나 시골길에서 “와, 하늘 좀 봐” 하며 숙제를 하듯 올려다볼 뿐이다. 돌이켜보면 그럴 만도 하다. 세상은 열띤 주장과 떠들썩함, 끝없는 볼거리와 대화로 가득하니 말이다. 널찍한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유튜브를 보며 밤을 새우는 것만큼 흥미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하늘을 바라보게 됐다. 왜 일까 곱씹어 본다. 거창하게 말하면 하늘은 자유와 평등을 닮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기나긴 싸움에 지쳐 있을 때 하늘이 내게 말을 건 것일지도 모른다. “숨이 가쁘면 언제든 나를 봐. 마음껏 구경만 해도 돼.” 하늘은 가진 것과 잃은 것, 도시와 시골, 아이와 노인을 가리지 않는다. 수많은 갈라짐, 편 나누기 속에서도 사람들의 말과 행동 어딘가에는 자유와 평등을 향한 소망이 숨어 있다. 나도 그러하다.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하늘을 찾아 눈길을 주게 되는 것이다. 가끔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 위를 떠다니는 구름을 따라 시선을 흘리며 내 마음도 잠시 숨을 고른다. 그 순간만으로도 마음속에 가벼운 여백이 생긴다. 하늘은 늘 다른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거울처럼 우리를 비춘다. 또 개입하지 않고 묵묵히 낮과 밤, 새벽과 아침을 연다. 그 앞에서 나는 인간의 삶과 평화를 떠올리는 경지에 닿은 듯한 경험을 한다. 그 순간이면 언제나 지극히 사랑하는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The English Patient·1996년)’가 떠오른다.전쟁 속 인간의 연약함과 사랑, 평등과 평화, 그리움과 질투,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담은 작품이다. 죽어가는 주인공이 남긴 글귀는 마치 지금도 고개만 들면 만날 수 있는 하늘 같다. “우린 진정한 국가예요. 강한 자들의 이름으로 지도에 그려진 섬이 아니에요.” 하늘처럼 경계 없는 세상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이다. 하늘은 아마 세상의 전쟁과 슬픔, 환희와 역사를 모두 내려다봤을 것이다. 우리 역시 삶의 크고 작은 일상 속에서 언제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있다. 그 무한한 시야 속에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희망을 떠올릴 수 있다. 오늘도 나는 고개를 들어 작고 큰 숨을 내쉰다. 그 소소한 순간만으로도 평화와 화해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듯하다. 그리고 그 위에 머문 나의 시선과 마음은 잠시지만 순수한 모습으로 하늘과 마주한다.

[아침을 열면서] 새로운 가능성 ‘키덜트뮤지엄’

경제적 불안정이 장기화하면서 국민의 일상적 피로감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치솟는 물가, 고단한 생계,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다. 마음을 달래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 세대를 넘어 공감할 수 있는 휴식의 장이 절실하다. 관광산업은 이제 화려한 외형이나 일회성 이벤트에 기대서는 안 된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위안과 휴식, 감성관광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최근 등장한 ‘키덜트뮤지엄’ 같은 생활형·체험형 공간은 그 단초를 보여준다. 단순히 오래된 물건을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방문객이 LP를 직접 고르고 수십년 된 영사기를 돌려보며 커피 원두를 손수 갈아 내려보는 체험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추억 소비를 넘어 관람객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참여형 관광 모델이다. 효과는 세대 간 공감으로 이어진다. 부모 세대는 양은도시락과 책받침에서 학창 시절을 회상하고 아이들은 로봇 필통과 장난감에 눈을 반짝인다. MZ세대는 레트로 감성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유의 즐거움을 동시에 누린다. 모처럼 세대가 함께 웃고 대화하는 광경은 관광이 단순한 유흥을 넘어 사회적 연결망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의 경제적 의미도 결코 가볍지 않다. 키덜트뮤지엄은 주로 폐교나 유휴 공간을 활용해 만들어진다. 낙후된 지역이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면서 관광객 유입은 물론이고 숙박, 식음, 상권 확산으로 이어진다. 값비싼 지식재산권(IP)에 기대지 않고도 큐레이션과 체험의 설계만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보는 관광’에서 ‘추억을 소환하는 힐링관광’으로 전환을 이끄는 중요한 사례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환경·사회적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버려진 해양 부표를 캐릭터 조형물로 재활용하거나 청소년이 함께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그 또한 ESG 실천의 좋은 표본이다. 전시 자료를 디지털로 기록하고 오디오 가이드나 온라인 플랫폼을 확장하는 시도도 역시 시대 변화에 부합한다. 작은 공간에서 출발했지만 ‘공유형 박물관’, ‘생활 속 감성 관광지’로 확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민간의 힘만으로는 이러한 흐름이 지속되기 어렵다. 콘텐츠를 발굴하고 보존하며 지역 자원과 결합시키는 과정에는 상당한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이 폐교와 유휴 공간을 제공하고 전시 설치와 마케팅을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특히 접경지역이나 농산어촌처럼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일수록 공공의 지원은 절실하다. 민간의 창의적 운영이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서둘러야 한다. 관광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는 치유의 장이자 침체된 지역을 살리는 재생의 길이며 미래 관광의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다. 키덜트뮤지엄이 보여주듯 작은 소품이 한 시대의 문화사로 확장되고 잊힌 기술이 오늘의 감성으로 되살아날 때 우리는 새로운 관광의 가능성을 본다. 이를 단발적 유행으로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감성적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관광산업이야말로 국민을 위로하고 지역을 살리는 길이다.

[아침을 열면서] ‘지혜·용기·사랑’ 오늘의 의미를 묻다

8월 하순의 대학 캠퍼스는 개학 준비로 분주하다. 그 시작은 대체로 하계 졸업식이다. 동계 졸업식에 비해 조촐하지만 발언자의 무게감은 교사나 학생 모두에게 가볍지 않다. 이제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를 졸업생들에게 어떤 말을 전할까 고민하다가 떠올린 것이 바로 ‘중용’의 지혜(智), 용기(勇), 사랑(仁)이었다. 중용 20장은 군신, 부자, 부부, 형제, 친구의 다섯 관계를 올바르게 맺게 하는 내면의 가장 중요한 덕으로 지혜, 용기, 사랑을 말하며 이를 ‘천하의 달덕(達德)’이라 부른다. 시대와 공간을 넘어 통용되는 보편적 덕목이라는 뜻이다. 전통사회의 권위주의적 윤리의 내용만 걷어내면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사회에서 이 덕목은 얼마나 살아있을까. 오늘날 인류는 인간, 사회, 자연에 관한 방대한 과학 지식을 축적했고 그에 상응하는 기술혁신으로 삶을 윤택하게 했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이러한 지식과 기술을 익혀 사회에 적응하게 하는 교육기관임을 자임한다. 그러나 이 현대의 지식과 기술, 그리고 대학의 역할에 관한 생각에는 중요한 물음이 하나 빠져 있다. 바로 그런 현대의 지식과 기술 추구가 인류를 평안한 삶으로 이끌고 있느냐는 질문이 그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주류의 지식과 기술은 여전히 이웃과 자연을 ‘나’와는 전적으로 다른 타자로 여겨 이들을 과학의 이름으로 쉽게 대상화하고 기술적 이용의 명분으로 지배, 통제하려 한다. 그 결과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다중의 삶은 팍팍하고 점증하는 기후 위기 속에서도 자연의 훼손은 멈출 줄 모른다. 대학 교육 역시 이런 문제를 외면한다. 파편적 지식과 먹고사는 데 유용한 기술 습득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에게 양극화나 기후 위기를 해결할 지혜가 나올 수 있을까. 한편 오늘날 ‘용기’라 하면 사람들은 보통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거나 큰돈을 벌기 위해 위험한 일에 도전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가끔 불공정에 분노를 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겨루기에 만만한 상대에게만 분출한다. 이런 용기는 수천년 전 우리 조상들이 생각한 용기에 비해 수준이 한참 떨어진다. 유학의 고전에서 말하는 용기는 자기 잘못을 솔직히 인정할 줄 아는 용기, 불의한 자가 큰 권력을 쥔 거대한 강자더라도 그 억압에 끝까지 맞서 싸울 줄 아는 용기였다. 부끄럽게도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이런 용기를 내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반대로 자신의 조그만 이익을 위해서라면 거짓된 언행을 서슴지 않고서도 몰염치한 자세를 보이는 일을 용기 내는 일로 둔갑시키는 만용(蠻勇)이 판치고 있다. 사랑은 어떤가. 예나 지금이나 세속의 유행가나 성소에서의 설교 어디서든 늘 사랑을 말하고 노래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상에는 사랑이 크게 결핍돼 있다. 현대사회는 더욱 그렇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다름 아니라 사랑은 힘써 행하는 데서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데 우리의 사랑은 위에서 말한 자기중심적 지식교육과 일그러진 용기의 만연으로 인해 그저 마음이나 말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컨대 오늘의 사회는 억눌린 이웃과 자연을 돌볼 지혜와 용기가 부족하고 이들을 향한 사랑은 대부분 입속에서만 맴돌고 있다.

[아침을 열면서] 한식의 품격, 별점이 다는 아니다

얼마 전 상하이에 사는 지인과 서울에서 식사하며 중국의 푸드 트렌드를 들었다. 코로나 이전 방문했던 상하이 와이탄의 미슐랭 식당 상당수가 문을 닫았고 ‘별들의 예약 전쟁’을 벌이던 과거와 달리 이름난 레스토랑들이 조용히 폐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 이유가 단순한 경기 불황만은 아니었다. 팬데믹 이전에는 미슐랭 식당 방문 자체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증표’였고 높은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방문 경험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증을 중시했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소비자의 태도는 실용적으로 변했다. 소량의 코스 요리를 먹느니 푸짐한 훠궈 한 상이 낫다는 식이다. 보여주기식 소비보다는 실제 체감 만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이로 인해 ‘미슐랭 식당’이 지녔던 사회적 상징성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포함한 대규모 폐업은 높은 임대료와 인건비, 수입 식재료 가격 상승, 경기 둔화, 그리고 실용적 소비로의 전환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특별한 경험’을 약속하지만 중국 사례는 ‘별점’이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글로벌하게 영향력이 큰 레스토랑 평가 제도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나뉜다. 미슐랭 가이드(Michelin Guide),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 같은 전문 평가단이 부여하는 권위 있는 등급, 그리고 구글맵, 트립어드바이저 같은 대중 리뷰·평가 기반이다. 2020년부터는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그린 스타’(Michelin Green Star)와 같은 제도도 등장했다. ‘별’이 요리의 완성도를 상징한다면 그린 스타는 환경과 사회를 위한 책임 있는 레스토랑 운영을 평가한다. 이는 지역 생태계와 농가와의 상생까지 포함한다. 한국의 파인다이닝 역시 미슐랭, 아시아 베스트 50과 같은 국제적 평가로 주목받고 있다. 많은 곳이 프렌치와 한식을 접목하며 발전시키고 한국의 식재료에 집중한다. 단순한 ‘고급화’와 ‘별점’ 의존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음이다. 하지만 극도로 낮은 이익률과 높은 고정비 부담으로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의 사례는 한국의 고급 식당이 지속가능하려면 지역·환경·사회를 고려하는 레스토랑 철학이 함께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제철 식재료와 지역 농수산물을 적극 활용하고 소비자의 감성과 취향을 반영한 메뉴 및 공간 연출로 진정한 경험을 제공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별점만으로 음식의 품격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는 점이다. 오래된 동네 식당이나 가정식 밥상에는 평가 대신 ‘기억’이 존재한다. 그날 그 자리에서 나누는 온기와 정성, 대화가 음식의 맛에 가치를 더한다. 이와 더불어 한식은 음식을 넘어 글로벌 문화 속에서 한국의 품격과 매력을 새롭게 확장하고 있다. 요즘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음식인 김밥, 떡볶이, 반찬 등은 미슐랭 별점을 받은 고급 한식과는 또 다른 일상적이고 친근한 한식의 얼굴이다. 어느 쪽의 점수가 높다 할 수 없으며 한식의 지속가능성을 논할 때 이 둘 모두를 품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맛’과 ‘소비자와의 진정한 소통’이야말로 한식의 진짜 경쟁력이며 이를 지킬 때 한식은 고급 외식 시장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침을 열면서] 인연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1950년 무더위가 이어지던 한여름, 포승줄에 줄줄이 엮인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빛을 의지한 채 산길을 걷고 있었다. 누군가 갈 길을 재촉하자 서둘러 발을 옮기는 소리, 겁에 질린 숨소리, 간혹 산속 짐승들이 내는 소리 외엔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는 밤이었다. 달도 숨을 죽인 공포의 밤이었다. 북한군이 마을을 점령한 지 여러 날이 지나자 끌려 나간 이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늘어났다. 전쟁 발발 소식을 듣자마자 피란을 떠난 사람들도 있었고 급히 남자들만 몸을 피한 집도 있었다. 무영은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된 것인지, 어디로 끌려가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자신의 불확실한 처지보다 집에 남겨두고 온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마음에 걸렸다. 다리에 힘이 풀린 누군가가 넘어지자 포승줄에 엮인 이들이 연이어 고꾸라졌다. 잠깐의 휴식이 주어졌다. 그때 총을 든 누군가가 다가왔다. 포승줄을 풀어주며 같이 소변을 보러 가자는 말에 무영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렇게 하나씩 데려가 죽이는가 싶었다. 땀이 줄줄 흐르는데도 등에 닿는 총부리의 느낌이 선득했다. 고개도 못 들고 걷고 있는데 뒤에서 빠르고 조용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소변 누는 척하고 돌아가면 줄 맨 뒤로 가서 느슨하게 묶어 줄 테니 따라가다 눈치껏 풀고 도망가소. 나는 스승님의 아들을 내 손으로 죽일 수 없소.” 그제야 무영은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봤다.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무리로 되돌아온 두 사람은 아무 말을 나누지 않았다. 무영은 무사히 탈출에 성공해 집으로 돌아왔고 바로 피란길에 올랐다. 위의 사건은 6·25전쟁 당시 할아버지가 직접 겪은 일이다. 고조·증조할아버지는 나라 잃은 백성들에게 배움이 더 필요하다며 재산을 털어 마을에 학교를 세웠다. 거기에서 두 분께 글을 배우고 학문을 닦은 이들이 많았단다. 증조할아버지는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에 상경해 국민장 기간 내내 애도하다 귀가하셨고 그 길로 곡기를 끊은 채 계속 슬퍼하다 같은 해에 돌아가셨다.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을 위시해 애도하는 이들이 올린 만장 깃발이 수백이 넘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고조·증조할아버지께서 세상에 뿌려놓은 선한 인연의 씨앗 덕분이었다. 그 씨앗이 전쟁의 야만성을 뚫고 싹을 틔워 할아버지를 살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처참한 전쟁 속에서도 가장을 잃지 않은 덕에 집안의 여러 생명이 살 수 있었고 지금의 나도 존재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인연(因緣)은 어떤 일이 생긴 근본(因)과 그 일이 일어나게 된 조건(緣)을 합친 말이다. 이유와 상황이 서로 잘 맞아떨어져야 맺어지는 것이니 절대 쉽게 이어지는 게 아니다. 선(善)한 의도로 인연의 손길을 내밀어도 악(惡)으로 갚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자신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할아버지를 살려 주신, 그분의 마음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윗대 어르신이 보여주신, 인연을 대하는 자세를 본받아 만나는 이들 모두를 소중하게 대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일보와 독자들과의 인연 또한 소중하다. 진심을 쏟은 만큼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되든 서로 웃으며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침을 열면서] 기억의 예의와 방식

연일 끓여대는 폭염에 심신이 멍멍하다. 넋 놓고 있다가 어떤 소식이 닥치면 나간 넋을 불러야 할 정도다. 잠 깨라는 죽비를 맞듯 흐릿해진 정신줄을 퍼뜩 다잡는다. 멍하니 낮을 보내면 밤은 밤대로 불면과의 싸움에 녹초가 됐다. 그래도 폭염 폭우 퍼붓던 7월 보내니 어느새 건들팔월이다. 연중 제일 덥던 기억에 걱정이 앞서지만 설마 지난 7월보다 더하랴. 올 8월은 정신 다잡고 서야 할 큰 기억이 기다린다. 광복 80년을 맞는 해라 그에 따른 기념과 기림이 전보다 많은 것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삶을 다 바친 이들의 헌신을 다시 보고 기리는 기억부터 준비하고 있다. 이 지역 문학에서는 그들의 뜨거운 헌신을 기리는 예로 각자 쓰기를 수행한다. 최선의 글쓰기 작업은 잘 기억하고 깊이 기려야 마땅한 ‘쓰는 사람’으로서의 실천이다. 조금만 둘러봐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의 희생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는지, 거명 없어도 알겠지만 깊이 쓰기를 통해 기림의 예의를 더 갖추려는 것이다. 또 기억의 옷깃을 여밀 일은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원제 ‘진달내ᄭᅩᆺ’이었음) 출간 100년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현대시의 첫 문을 열어젖힌 시집으로 손꼽히는 진달래꽃은 당시 출간이 12월이라 기림의 여러 행사가 그즈음에 더 많이 나올 테다. 하지만 경기민예총 문학위원회에서는 봄마다 여는 문학콘서트에 ‘진달래꽃 출간 100주년 기념’ 특별코너를 마련하는 식으로 먼저 기렸다. 김소월 시라면 누구나 알고 많이 읊조렸을 법한 시 중에서도 진달래꽃, 개여울, 초혼, 산유화, 못 잊어 등을 준비해 참여한 도민들과 함께 낭송하며 즐긴 것이다. 100주년에 맞춰 다시 발행한 복각본 시집 ‘진달래꽃’도 두루 나누며 소월의 시혼에 깊이 숙였다. 시는 소리 내어 읽을 때 말맛이나 가락맛이 잘 나타난다. 소월 시는 특히 전통적이고 민족적인 정서를 담은 언어가 많아 소리 내어 읽을수록 한국어 특유의 정한 어린 가락을 실어내는 맛이 아름답게 살아났다. 한 시인을, 나아가 100년이 되는 첫 시집 출간을 기억하는 일은 그렇게 흐뭇한 울림을 이루며 널리 번져갔다. 서로 마음 맞춰 읽으면서 시가 더 오롯해진다는 것을 더불어 느낀 각별한 기억의 호명이었다. 김소월을 배우고 시를 외며 즐겼던 학창시절까지 함께 돌아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촉촉해졌으니 일상에서는 그냥 지나치던 시의 힘이 새록새록 닿았다. 100년이란 기념비적 시간 앞에 또 짚이는 것은 동요 ‘오빠 생각’에 관한 기억이다. 1925년 ‘어린이’에 나온 오빠 생각은 수원 소녀의 작품이다. 그 소녀 최순애는 여동생 최영애와 서울의 잡지 어린이에 이름을 자주 올렸다. 어린 소녀들(당시 최순애는 열두 살, 최영애는 열 살)이 발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빠 최신복의 덕이다. 관련 활동가 오빠가 자매의 글쓰기를 이끌어내며 국민동요 오빠 생각 탄생에 기여한 것이다. 이에 대한 기억과 기림은 지역에서 다양하게 준비 중이다. 기억에는 역사와 기록을 중시하는 예의가 담긴다. 기억의 자세가 참다운 기림의 예를 남긴다. 바른 기억이 기록의 변색을 막을 터, 기억과 기림의 자세부터 갖춰야겠다.

[아침을 열면서] ‘이름값’ 못하는 사람들

새 정부 장관 후보자 일부의 과거 행적이 도덕적으로 문제시됐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보좌진에 대한 이른바 ‘갑질’ 의혹을,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제자 논문 표절 의혹을 각각 받았다.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겠느냐며 이들의 장관 임명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이들의 저 의혹은 해당 장관직을 맡기에는 치명적인 결격 사유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이 세상에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겠지만 그 사람이 맡으려는 직책이 고위 공직자라면 될 수 있으면 그 ‘이름’에 걸맞은 어느 정도의 높은 도덕성과 뛰어난 업무능력을 겸비한 이를 선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생각해 보면 ‘이름’에 걸맞은 행위를 하며 산다는 것이 비단 고위 공직자들에게만 부여된 책임은 아니다. 공자가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했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에 값하고 사는 일은 이 세상의 평범한 ‘부모’와 ‘자식’ 모두의 책무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부모’와 ‘자식’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며 산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가장 범하기 쉬운 잘못은 헛된 이름을 좇는 데 집착하면서도 그것을 ‘이름값’을 하며 사는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모가 자식의 출세를 위해 자신이 가진 힘을 총동원하는 경우다. 이는 참된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결국은 부모답지 못한 행위인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그렇게 성장해 출세한 우리 사회의 자식들이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속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이름을 얻은 이들 가운데는 물론 괜찮은 품성과 능력으로 자신의 위치에서 그럭저럭 이름값을 하며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특별대우를 받고 자라나 형성된 오만한 특권의식과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열등감으로 자신이 활동하는 공간에서 이름값을 전혀 하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교육 현장에는 교사나 교수라는 위세에 기대어 수업은 소홀히 하면서 학생들을 고압적으로 대하고 불공정하게 평가하는 선생이 있다. 회사에는 관리자라는 권력에 기대어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을 주시하다가 꼬투리를 잡아 질책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 간부도 있다. 그리고 군대에는 우리가 모두 알 듯 한 병사의 순직에 대한 군 간부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군인들도 있다. 모두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름값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이름값을 전혀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맹자는 이 질문 앞에서 저 이름을 바로잡자는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을 급진적인 방향으로 재해석했다. 바로 이름값을 전혀 못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혁명 사상이다. 중국 고대 하나라와 상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桀)과 주(紂)는 역사에서 대표적인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맹자는 이 폭군들을 그 자리에서 몰아낸 것은 ‘임금’이라는 이름에 전혀 부합하지 않은 실제 행위를 한 자에게서 그 이름을 박탈한 것이니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맹자의 말씀이 너무 과격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름값을 전혀 못하는 이들에게 평화적 방법으로 시정 요구라도 계속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침을 열면서] 김밥 한 줄로 이어지는 문화

얼마 전 일본에서 여행 온 40대 주부들과 한국요리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 약속을 잡는 과정에서 이들이 요청한 메뉴는 다름 아닌 김밥이었다. 같은 쌀 문화권인 일본에서 굳이 김밥을 배우고 싶다니 순간 의아했다. 소개할 만한 다채로운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김밥일까. 그러나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익숙한 김과 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빛 속에서 한국의 김밥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선 또 하나의 ‘한국문화’ 그 자체였다. 김과 밥, 다양한 속재료를 한 줄로 말아내는 김밥은 겉보기엔 소박하지만 만드는 이의 정성과 감각이 고스란히 담기는 한 입 음식이다. 일본에도 ‘노리마키’, ‘후토마키’ 같은 김말이 초밥이 존재하지만 우리의 김밥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 초밥은 식초로 간을 맞추고 차게 먹는 반면 한국 김밥은 따뜻한 밥에 소금과 참기름을 더해 고소한 향과 온기를 담아낸다. 우리도 더운 여름철에는 식촛물을 사용해 밥을 양념하거나 오이, 깻잎 같은 재료로 교체해 상하지 않도록 준비하기도 한다. “밥은 계절에 따라, 가정에 따라 초밥처럼 식초를 넣기도 하고 참기름을 넣기도 한다”는 설명에 참가자들은 “우리가 배우고 싶었던 건 참기름 향이 나는 한국 김밥이에요”라고 환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그들이 원한 것은 단무지, 시금치, 당근, 계란, 불고기, 우엉조림이 들어간 우리가 알고 있는 ‘엄마표 김밥’이었다. 특히 우엉조림의 깊은 맛과 계란말이의 부드러움, 그리고 깻잎의 독특한 향에 대해 질문이 많았는데 김밥 속 재료 하나하나가 같으면서도 다름은 분명한 것 같다. 요즘 김밥의 일본 내 인기는 K-콘텐츠의 폭발적인 확산과 같이한다. 한국 아이돌이 김밥을 만들거나 먹는 모습이 전 세계 팬들에게 퍼지면서 김밥은 일본에서 ‘긴파(キンパ)’라는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며 힙하고 건강한 K-푸드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김밥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한류 팬들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문화를 경험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된 것이다. 더 나아가 김밥은 식단의 다양성과 건강이라는 트렌드에도 부응한다. 수업 중 비건 김밥이나 현미밥, 곤약밥, 두부, 버섯 등으로도 김밥을 변형해도 좋다고 이유를 설명하자 놀라워했다. 특히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되는 냉동김밥의 등장은 접근성을 극대화했다. 김밥의 인기는 손으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특성상 ‘패스트푸드’의 장점을 갖춘다. 식품 대기업의 일본 진출로 ‘김밥’이 일본 대형마트와 코스트코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킨 것은 김밥이 일본인의 식문화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꼬마김밥’에 대한 반응이었다. “아이 도시락에 정말 좋겠어요”, “한국에서는 언제 이렇게 작은 김밥을 만들어요” 같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아이들과 함께 꼭 만들어보고 싶어요.” 언어가 다르고 살아온 문화가 달라도 ‘엄마의 손맛’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았다. 소풍날이면 새벽부터 김밥을 싸시던 어머니의 모습처럼 김밥은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싸주는 마음, 그 안에 담긴 사랑을 전하고 있었다. 이 작고 소박한 음식이 앞으로도 한일 양국을 잇는 교감과 이해의 시작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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