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심채(空心菜)라는 식재료가 있다. ‘속이 빈 채소’란 이름처럼 여백을 품은 이 채소는 동남아시아 기후와 같은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 잘 자란다. 요즘은 국내에서 재배하는 곳이 많아 시금치보다도 저렴한 가격으로 마트에서 보인다. 동남아 전역에 걸쳐 김치처럼 많이 사용되는 공심채는 ‘모닝글로리’라는 이름처럼 여름 아침과 같은 생기를 더해 준다. 최근 한국의 날씨는 동남아시아의 열기와 많이 닮아 있다. 푹푹 찌는 더위와 습도 속에서 마치 태국이나 베트남의 골목 어딘가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고온다습한 기후는 몸을 지치고 늘어지게 만들지만 동시에 여름의 태양은 곡식과 채소 과일을 튼실하게 키워내는 엄청난 에너지의 계절이다.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멕시코, 브라질, 아프리카, 인도, 이탈리아 남부 등 아열대 기후를 지닌 지역의 음식문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뜨겁고 습한 날씨를 이겨내기 위해 칠리나 커리처럼 강한 향신료와 신선한 허브를 풍부하게 활용한다. 이들은 단순히 맛을 내기 위한 재료를 넘어 냉한 기운의 채소에 양기를 보완하고 더위에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특히 동남아의 음식은 매운맛, 신맛, 짠맛, 단맛의 네 가지 맛이 균형을 이루는 조화를 중시한다. 더위로 잃기 쉬운 입맛을 되살리기 위해 다른 지역보다 좀 더 자극적이고 생기 있는 맛을 담는다. 여름은 1년 중 양(陽)의 기운이 가장 강한 시기다. 뜨거운 태양, 상승하는 체온, 활발한 생명 활동은 모두 화(火)의 기운을 품고 있기 때문에 몸속 수분과 기운은 쉽게 소모되고 때로는 열독이나 갈증, 무기력으로 나타나 일상의 균형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이때 자연은 채소라는 지혜로운 해답을 내놓는다. 채소는 대부분 음(陰)의 기운을 지니고 있어 뜨거운 여름에 과도한 양기를 조절하고 체내 열을 내리며 수분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한다. 신진대사가 가장 활발해지는 여름에는 몸에 노폐물이 많이 쌓인다. 이를 배출하는 데는 섬유질이 많은 채소와 과일이 최고다. 오이, 가지, 감자, 풋고추, 열무, 수박, 참외, 자두 같은 제철 식재료는 무더위에 지친 몸에 생기를 불어넣고 노폐물 배출을 원활하게 한다. 상추, 깻잎 같은 잎이 넓은 채소들도 뜨거운 여름에 어울리는 음식이다. 된장과 고추장을 곁들여 쌈으로 즐기면 소화에 도움이 되고 입맛을 되살린다. 여름의 채소는 풍부한 수분으로 열을 내려주고 상열감을 가라앉혀 주며 몸의 균형을 조율하는 식탁 위의 처방전이다. 평소에는 쌈이 끌리지 않다가도 여름에는 우리 몸이 먹고 싶게 만드니 몸과 자연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다. 몸과 마음이 쉽게 흐트러지는 계절, 신선하고 깨끗한 여름의 식재료는 우리 삶의 중심을 잡는 큰 힘이 된다. 싱그러운 쌈 한 입, 상큼한 오이냉국 한 그릇에서 여름을 건강하게 건너는 힘을 얻는다. 여름 식탁에서 채소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고 여름이 시원하게 지나가기를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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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25-06-22 1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