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원 단국대 철학과 교수
최근 일부 2030세대의 탄핵 반대 시위 참여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극우 유튜버나 기독교 목사들이 주도하는 집회를 따라다니는 이 청년들은 더불어민주당 배후에 중국 공산당이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만약 탄핵이 인용되면 대한민국 정권이 완전히 반국가세력에 의해 장악돼 우리는 자유를 상실한 채 살아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합류에 기존 노년층 태극기부대는 무척 고무된 분위기다. 반면 김누리 교수 같은 이는 이를 후기 파시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청년들이 경쟁과 승자 독식을 사회의 지배적 법칙인 것처럼 교육받은 결과라고 일갈한다.
필자는 이런 진단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전체주의는 정치적으로 후진적인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전체 인류를 괴롭히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라고 본다. 전체주의자들은 생존경쟁, 약육강식, 적자생존이 자연과 사회를 관통하는 보편 법칙이라 굳게 믿는다. 그리고 이 ‘신앙’에 기초해 인간 사이의 인종적, 민족적, 계층적 위계화, 서열화와 강자의 약자 지배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이런 사회관이 현대사회에서 더는 지배적인 생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대다수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그런 질서 외에 협력적, 공생적 질서도 있다는 점을 인정할 뿐이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한 인정 정도가 높을수록 전체주의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따름이다.
경쟁과 투쟁을 통한 강자의 약자 지배는 전체주의 사회만이 아니라 현대 산업사회의 기본적 특징이기도 하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한국의 2030세대는 이런 산업사회의 요구에 그 어떤 세대보다 충실하게 부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은 공부와 출세를 하나로 연결해 생각하는 오랜 문화 전통이 있다. 현대 한국인은 그 토양 위에서 ‘교육열’이라 칭하지만 실은 생존과 출세를 위해 청춘을 바치는 지옥 같은 체험을 10대 때부터 처절하게 한다. 그런데 현대 상공업 기술의 혁신 속도는 이 경쟁의 강도를 갈수록 더욱 크게 만든다. 현 세대가 살기 위해 그 누구보다 처절하게 몸부림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기 생존이 가장 문제가 될 때는 누구든 자기중심성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경제의 양극화로 어려운 이웃과 생태계 훼손으로 신음하는 생명은 ‘내’ 관심 밖이다. 심지어 ‘내’ 일자리 마련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예컨대 중국인, 여성 등에 대해서는 쉽게 혐오의 언사를 내뱉는다.
왜 물질적으로 더없이 풍요로운 현대에 혐오의 언사가 범람하는가. 혐오하는 당사자들은 밖에서 그 원인을 찾겠지만 이유는 ‘내’ 안에도 있다. 혐오 감정의 기저에는 과도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과도한 불안은 주로 과로의 끝에 온다.
오늘날 무한경쟁의 사회체제는 전 세대를 늘 과로하게 만들고 그 고된 노동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생기기도 한다. 오늘날 청년세대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누구보다 더 과로하는 이들임을 고려한다면 최근 2030 태극기부대의 출현 역시 그 극도로 불안하고 우울한 정서가 낳은 병리적 사회 현상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2030세대, 나아가 대한민국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과로와 그것이 파생하는 과도한 불안 및 우울의 정서를 근본적으로 치유할 사회적 출구를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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