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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면서] 아지랑이 너머 ‘봄이’

정수자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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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은 아지랑이, 춘삼월 아지랑이”(이영도·‘내 사랑은’)가 절로 붙는 삼월. 사랑을 왜 아지랑이로 선언했는지 모호하지만 그냥 끌리는 정감이 있다. 새 풀이 막 돋아나는 들길 너머로 아른아른 오르던 아지랑이에 취해본 기억 때문일까. 봄을 부르는 들판의 손짓처럼 아지랑이는 묘한 설렘을 풀어 놓는 봄의 열감이었다. 조금씩 달뜨는 봄바람을 살랑살랑 들여놓는 속삭임이 아릿했던 시절 얘기다. 요즘은 폭염지수 알리는 아스팔트 위의 아지랑이를 실감나게 맞곤 하지만.

 

아무튼 도시의 희미한 아지랑이 너머로도 봄은 온다. 전혀 예상 못 했던 폭설이 치고 간 겨울공화국 광장에도 한층 도타워진 봄볕이 내리고 있다. 얼마나 많은 걸음이 강추위를 헤치고 얼음판을 건너 우리의 봄을 불렀던가. 그러는 동안 서로의 깃발을 휘두르며 광장에 쏟아낸 말들은 우리말의 험한 표현 중 최악의 기록으로 남을 듯하다. 난폭한 언어들의 난무는 이보다 폭력적인 말은 없지 싶을 만큼 연일 상한선을 치고 나갔다. 논리도 근거도 없이 극에 달한 린치 수준의 혐오 선동 표현들은 현실에도 그대로 들어가면서 세상을 더욱 팍팍하게 만든다.

 

귀를 씻는다는 표현이 무색한 시절. 나쁜 말을 들으면 제 귀를 씻어 치웠다는 옛사람의 이야기가 지나간 전설처럼 박제된 것이다. 귀를 씻어 마음을 바로하거나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는 세상이 되고 있다. 눈만 뜨면 쳐들어오는 광고처럼 폭력적 표현들이 도처에서 들이치므로 귀를 씻을 새도 없어지는 판이다. 거친 말은 더 거친 말을 부르는 법. 갈수록 최신 무기 같은 최강의 언어 장착은 말의 품격이며 표현의 경계 따위 다 없애는 진군이 무섭다. 귀를 닫을 수 없는 청자의 고통은 물론이고 악용당하는 언어의 수난 또한 치료가 필요하다. 매체마다 자극적인 표현으로 구독 올리기 중독 중인데 이번 폭거에서 언어도 피를 너무 많이 본 셈이다. 과연 순화나 되돌림이 가능할지.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데거)으로 자주 회자된다. 말은 사고이며 인격과 정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거친 표현 속에 사는 환경이 그에 따른 인격과 정서를 품게 하는 것이다. 분노와 혐오를 넘어 처단 같은 극한 표현이 범람하듯. 이는 욕을 안 섞으면 또래와의 유대감이 떨어진다는 아이들의 욕설 난무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욕의 내용보다 욕설 자체의 배설에서 쾌감을 느끼는 정서가 더 강한 자극의 추구로 이어지는 것이다. 심심하고 지루하면 못 견디는 정서에 욕설 언어가 끼면 습관이 되면서 때와 곳과 대상의 가림 없이 튀어나게 한다. 그렇게 다름이나 상대에 대한 이해와 살핌, 헤아림 같은 아량의 언어며 정서를 치우게 하는 것이다.

 

지난날 아지랑이는 봄의 서정적 언어였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로 밀려나며 무력해진 느낌이다. 너무 미미하고 무미해져 조만간 사라질 것 같은 언어들처럼. 그런데 들녘에 나가 보면 땅 위로 나오려고 애쓰는 어린 싹들을 끌어당기는 아지랑이 행렬이 아직도 그리운 손짓처럼 피고 있다. 생명의 새순을 사물사물 뽑아 올리는 오래된 봄의 미열로. 그렇게 두루 살피고 헤아린 말로 순한 마음을 피워내고 나누는 봄다운 봄을 그려본다. 아지랑이 너머로 연하게 새롭게 피워나갈 봄의 본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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