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연민의 마음으로 서로 바라보고 배려하자

오선경 성공독서코칭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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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명절이나 집안 제사가 있을 때면 부모님과 함께 시골 큰댁으로 내려갔다. 여름이나 겨울의 방학 때마다 이어지는 친가 방문도 의례적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장항선 완행열차, 비둘기호를 타고 오가던 길이 어린 시절의 필자에게는 설렘 가득한 기차 여행이었으나 어머니에겐 퍽 고생스러운 길이었을 게다. 공무원인 아버지는 대체로 근무를 마친 후 막차로 내려가셨고 이런저런 명절 준비를 해야 했던 어머니는 고만고만한 아이 셋에 짐까지 책임지고 인파로 미어터지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줄줄이 딸린 애들을 챙기며 자리 선점 경쟁을 위해 달리고 달려 어렵게 기차에 올랐나 싶으면 시끄럽고 담배 냄새 자욱한 완행열차를 몇 시간씩 견뎌야 했다. 시골 작은 역에 도착한 후에도 큰댁까지 가려면 30분 넘게 걸어 들어가야 했는데 타계하신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는 그곳을 매년 수없이 다니셨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에 조용히 참아내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을 그 시간 동안 어머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머니와 옛 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게는 꽤 낭만적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일화들이 어머니에겐 매우 힘든 기억이었음을 알게 돼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언젠가 이런 어머니의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의뢰받은 어르신 자서전 쓰기 강좌가 있어 어머니께 지난 인생을 대략의 기록으로 남겨보는 게 좋지 않겠냐며 넌지시 권했다. 배움이 길지 않아 글쓰기가 자신 없다며 잠시 주저하던 어머니는 마지못해 수강 신청을 마쳤고 교육이 시작되자 열혈 수강생으로 변신했다. 반년 동안 이어진 강좌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사진과 글로 엮어낸 어머니는 마침내 완성한 인생 사진첩 자서전을 가슴에 품고 매우 뿌듯해했다. 그 뒤로 다른 자서전 강좌를 통해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 어머니의 글을 읽으며 80년 인생 내내 얼마나 많은 꿈을 접으며 사셨는지 더 자세하게 알게 됐다.

 

지역에 중·고등학교 지을 부지가 없다는 말에 선뜻 땅을 내어줄 정도로 교육받을 권리에 깨어 있었고 마을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무상으로 농사지어 먹을 수 있는 공용 땅을 내놓았으며 집안 부엌 뒷마당에 누구나 가져갈 수 있는 쌀독을 뒀을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던 집안에서 귀히 여긴 하나뿐인 딸에겐 왜 고등교육 기회를 주지 않았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다. 여자에겐 신교육을 시키지 않는다거나 고된 시집살이를 시키는 게 그 시절엔 비일비재했기에 어머니도 군말 없이 감내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 시절을 견뎌낸 수많은 어머니와 여성의 희생 및 인내 덕분에 이 땅의 가정 내 평화가 지켜졌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비단 여성만의 희생으로 이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육받은 권리를 누린다거나 사회적 활동에서 여성에 비해 많은 기회를 얻었음은 틀림없지만 남성인 아버지들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 격동의 20세기를 가족의 안녕과 국가 발전을 위해 책임감 하나로 버텨낸, 수많은 아버지와 남성의 노고도 기억해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서로 힘을 합해도 부족할 판에 요즘 국내 정치·경제적 문제로 세대 간 갈등이 심해지고 남녀 갈라 치기도 횡행하니 안타깝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연민의 마음으로 서로 조금 더 이해하려 노력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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