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눈사람 만들기와 현대판 목민의 필요성

어릴 때 눈 오는 날 눈을 뭉치거나 굴려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만족해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온 세상을 골고루 뒤덮은 눈을 굴려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바닥 어떤 눈보다도 가장 늦게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위정자들은 애써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그 눈사람이 돌봐야 할 사람의 전부인 양, 녹지 않고 있는 사람의 기준인 양 그렇게 세상을 잘 못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유의해야 하는 시대가 아닌지 모른다. 오히려 전근대보다 더욱 더 가족돌봄과 지역돌봄이 구조적으로 느슨해진 요즘 광범위한 수동적인 국민들에 대한 국가의 살핌이 더 필요해진 것 아닌가. 위정자의 눈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의 목민이란 단어의 뜻은 백성을 기른다는 것으로 1818년 시대에나 쓸 수 있던 것이지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현대에는 국민을 대하는 위정자의 자세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 왔다. 현대 민주주의 속 국민은 정책의 수혜자와 위정자가 이론상 일치하기 때문이고 목민이란 단어가 주는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존재로서 상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류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어 온 자본주의는 다수를 위한 공리적 관점에서 국가가 관여해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사회가 보수 및 유지돼 왔다. 그런데 그 국가권력을 그때그때 구성하는 민주주의는 위정자의 편의적 관점에서 정치적 후견주의가 강화됨에 따라 다수인 수동적 국민을 위한, 수동적 국민에 의한 국가의 구성과 운영 원리로 기능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민을 위한’이란 민주 개념은 국가 기능 속에, 위정자의 가슴속에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절대왕정에서도. 근대에 이르러 이에 더해 ‘국민에 의한’이란 민주개념이 보편화 된 것인데 최근 ‘국민의 의한’이 ‘국민을 위한’에 도움이 덜 되는 황당한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국민 전체의 후견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인데 적극적이고 조직화된 일부 사회세력이 여론을 주도해 선거가 치러지고 이들이 위정자의 임기 내 행동을 적극 감독함으로써 위정자들은 그들을 과다 의식해 정책을 만들어 집행하고 이해관계를 그들 중심으로 조정하게 된다. 현대 민주주의가 이같이 왜곡되게 기능하더라도 각계각층의 국민을 각각 대변하는 정당이 활성화돼 있다면 다극화될 뿐 정책의 입안과 수혜 과정에서 소외되는 국민이 적었을 텐데 정치적 양극화가 보편화돼 있어 정책의 입안과 수혜 과정에서 소외되는 국민이 늘고 있다. 이는 오늘 하루의 뉴스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조직화되거나 적극적인 국민층만이 위정자들에게 정책적 쟁점을 만들어 어필하게 되고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국민층은 그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도록 쟁점을 만들 수 없으며 위정자들은 쟁점 위주로 그들의 소임을 인식하고 매진한다. 이것이 요즘 정치 구조다. 역설적으로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가 위정자로 하여금 국민 상당수를 살피지 않게 해 진정한 민주주의 원리가 퇴색되게 만들고 있으므로 이제 1818년 목민의 개념을 통찰해 민주주의의 핵심은 ‘국민을 위한’이고 위정자의 제1의 의무가 ‘국민 모두를 위한’ 목민 의무임을 시급히 깨달아야 한다.

[세상읽기] 종묘 앞 140m의 욕망

도시의 성숙은 마천루를 얼마나 빨리 쌓아 올렸는가로 증명되지 않는다. 무엇을 지키고 어디를 비워둘지를 아는 ‘절제의 미학’, 그 고요한 멈춤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도시의 품격은 드러난다. 최근 종묘 앞 완충구역에 140m 고층 빌딩이 들어설 수 있다는 소식이 서울을 흔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한 구역의 재개발 여부를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도시 문명이 앞으로 어떤 질서와 기준으로 자신을 정의할지 묻는 근본적 질문이다. 종묘는 조선의 국가 질서가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한국 도시문명의 기원을 담은 심장부다. 유네스코가 이를 “국가의 세계관과 도시 구조가 통합된 예외적 사례”로 평가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정전(正殿)의 낮은 지붕선 위로 펼쳐진 하 늘은 500년 동안 한번도 흔들리지 않은 도시의 윤리적 경계이며 권력이 스스로를 절제해 온 드문 기록이다. 이런 종묘의 완충구역에서 고도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이 오래된 경계를 단순한 개발 지표로 환산하겠다는 선언이자 도시가 스스로 세운 금도(禁度)를 시장 논리로 덮어 버리려는 위험한 시도다. 그러나 종묘 보존 논쟁에서 토지주와 상인의 절박함을 ‘탐욕’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문화재가 밥 먹여 주느냐”는 항변은 생존이 걸린 이들의 거친 외침이 아니라 수십년간 낙후를 감내해 온 도시 내부의 깊은 균열을 드러낸다. 문제는 욕망의 존재가 아니라 그 욕망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개발이냐 보존이냐라는 낡은 이분법만으로 도시의 시간을 끊어내는 방식은 이미 세계 도시들에서 유효한 해법이 아니다. 뉴욕은 같은 갈등에 ‘제3의 길’로 응답했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상부의 개발하지 않은 공중권(Air Rights)을 떼어내 인근 개발지로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용적이양제(TDR)는 도시가 채택한 가장 창의적인 제도 중 하나다. 역사적 건물은 그대로 남기고 소유주는 개발 이익을 보상받으며 도시는 시간의 기억을 지켰다. 욕망을 억누르는 대신 우회시키는 방식으로 도시 전체의 품격을 높이는 문명적 해결 방식이었다. 경관은 단순한 ‘뷰(View)’가 아니다. 공동체가 축적한 시간이며 시민 누구나 평등하게 누려야 할 공공적 자산이다. 파리가 에펠탑 주변을 비워 두고 런던이 템스강 스카이라인을 관리하며 도쿄가 황궁 주변의 조망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은 관광 수입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 세대에게 남겨야 할 도시의 자존심이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판단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그 결정이 수도권 전체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인구 1천400만명의 거대한 메트로폴리탄을 이루는 경기도는 서울의 도시계획을 준거집단으로 삼아 왔다. 종묘 앞을 140m 건물로 가리는 순간 경기도가 수원화성이나 남한산성 주변의 경관축을 지켜낼 명분은 급격히 줄어든다. “서울도 하는데 왜 우리는 안 되는가”라는 논리가 퍼지는 순간 수도권의 고유한 풍광과 역사적 결은 도미노처럼 흔들릴 것이다. 도시는 기억으로 산다. 기억을 지운 자리에 아무리 웅장한 마천루를 세운들 그것은 결국 콘크리트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도시의 정체성은 스카이라인의 높이가 아니라 스스로 넘지 않으려는 선(線)에서 드러난다. 문명은 빠르게 건물을 올리는 기술이 아니라 긴 시간에 책임을 지는 태도로 완성된다. 종묘의 하늘을 가리려는 140m의 욕망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더 크고 높은 빌딩 숲인가, 아니면 500년의 시간을 품은 고요한 하늘인가. 그 선택이 곧 우리의 도시 문명이 지닌 ‘격(格)’을 결정할 것이다.

[세상읽기] 스타트업·대학의 새로운 행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한미 협상 팩트시트 발표 이후 한미 통상 환경은 한층 선명해졌다. 미국이 제조·첨단기술·공급망을 자국 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제시한 보조금과 규제 개편은 단순한 산업정책을 넘어 국가전략에 가깝다. 최근 한국 스타트업들이 유독 미국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수 포화, 인력 불균형, 기술 경쟁 심화 속에서 미국은 새로운 선택지가 아니라 사실상 ‘첫 번째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창업 초기부터 해외 진출을 전제로 태어나는 ‘본 글로벌(Born-global)’ 기업의 패턴이 한국에서도 뚜렷해지고 있다. 이들은 속도보다 국제화 준비도를 중시한다. 문제는 미국 시장이 기회의 크기만큼 진입장벽도 높다는 점이다. 주마다 다른 법무·세무 제도, 기술 기업이 마주하는 FDA·HIPAA 등 규제 장벽, 시장 신뢰 확보를 위한 검증 과정까지미국 진출은 본질적으로 다시 ‘0에서 1을 만드는 과정’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한미 네트워크를 가진 대학의 역할이 새롭게 주목받는다. 대학의 강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제도적·공공적 신뢰성으로 초기 시장 진입의 문턱을 낮출 수 있다. 둘째, 연구·기술 검증 인프라를 통해 기술 기업이 요구받는 객관적 신뢰를 제공한다. 셋째, 지속가능하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보유해 스타트업이 스스로 확보하기 어려운 연결성을 제공한다. 즉, 대학은 기업이 단독으로 만들기 어려운 ‘국제화의 기반 시설’을 이미 갖춘 셈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이러한 기반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그중 한 예가 조지메이슨대가 보유한 한미 캠퍼스 연계와 현지 생태계를 활용한 소프트 랜딩 프로그램들이다. 조지메이슨 한국캠퍼스의 혁신창업센터는 워싱턴DC 인근 북부 버지니아의 NISA(Northern Virginia International Soft-Landing Accelerator)와 연계해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시장 안착을 지원한다. NISA는 미국 공공기관과 대학이 공동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매년 전 세계 15~20개 기업을 선발해 사업전략, 규제·법무 준비, 투자자 매칭을 지원한다. 이후 최종 선정된 기업은 6개월간 현지 혁신지구에서 실험실과 오피스를 무상 제공받으며 미국 시장에 필요한 검증·네트워킹을 집중적으로 확보한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미국 시장이 요구하는 제도적 신뢰와 초기 내재적 리스크를 줄여주는 ‘착륙 플랫폼’에 가깝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특정 기관의 활동을 넘어 하나의 흐름을 시사한다. 즉, 글로벌 진출을 희망하는 스타트업이 정교하게 설계된 국제화 플랫폼을 통해 제대로 미국에 착륙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의미다. APEC 이후의 통상 환경은 한국 스타트업에 분명한 기회다. 그러나 그 기회는 준비된 이들에게만 열린다. 미국으로 향하는 한국 스타트업 2.0 시대, 이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대학은 글로벌 기업의 출발선을 함께 설계하는 든든한 동반자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세상읽기] 사이버안보, 골든타임이 중요하다

사이버 공격과 침해 사고가 유독 많았다. SK텔레콤, 롯데카드 등 민간기업만이 아니다. 정부 업무용 ‘온나라시스템’도 뚫렸다. 한국만 그럴까. 미국 버라이존, 티모바일, AT&T 등 외국 기업도 마찬가지다. 아랍에미리트 등에선 가상자산거래소가 해킹되고 암호화폐가 탈취됐다. 사이버 사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선 대규모 화재 사고가 있었다. 이유가 뭘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원격근무가 많아졌다. 직장을 벗어나 집, 카페 등 업무환경이 다양화됐다. 접속기기도 노트북, 스마트폰 등으로 확대됐다. 바뀐 환경에서 시스템 오류와 실수가 겹치면서 해킹세력에 다양한 공격 접점을 제공했다. 오랜 경기 침체와 맞물리며 취약점이 늘고 사이버공격이 거세졌다. 인공지능(AI) 등 신기술까지 활용해 속임수 이메일, 휴대폰 문자 작성, 악성코드 투입, 데이터 조작, 페이크 영상으로 위협 강도와 정밀도를 높였다. 공격 방법도 지능적이다. 오래전에 악성코드를 심어두고 침해 시기를 저울질한다. 피해 기업에 대한 심층 연구를 통해 효과적인 공격 방법을 실행한다. 피해 기업의 노력만으론 침해 사고를 막기 어려워졌다. 침해 사고가 밝혀지지 않은 기업도 안심할 수 없다. 피해를 당했는지 모르고 있을 수 있다. 해킹 진원지로 중국, 북한을 강력하게 의심할 뿐 공격루트와 세력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사이버공격을 탐지하는 화이트해커의 ‘프랙보고서’가 공개된 후에야 침해 사고 피해를 알아차린 기관과 기업도 있다. 캄보디아 피싱범죄는 어떤가. 고수익 유혹에 속아 범죄조직에 가담함으로써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이 일었다. 많은 국민이 생명, 신체, 재산 피해를 입었다. 대통령의 결단이 있고서야 대응 조치가 취해졌다. 범죄조직은 단속을 피해 근거지를 옮기고 있지만 여전히 조직력과 자본력을 가지고 있다. 해킹, 테러세력 등 다른 범죄조직과 제휴를 강화한다면 어떻게 될까. AI 등 신기술을 장착하고 고도화, 지능화한다면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을까. 기관과 기업은 AI대전환을 통해 체질 개선과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 AI는 데이터 부족과 알고리즘 미흡으로 사이버 위협 징후를 놓치거나 해킹세력에 당할 위험이 있다. 관공서, 통신사, 금융사만 아니라 법무법인, 회계법인 등 고소득이 있는 곳도 노리고 있다. 당연히 국가보안시설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 핵심 정보가 해커의 손에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경제 위협을 넘어 국가 존립을 흔드는 안보 위협이 된다. 근본척인 해결책은 기술이다. 입법을 통해 ‘국가보안기술연구소’의 위상을 강화해 지원하고 사이버안보 기술 고도화에 주력해야 한다.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인수합병, 기술 교류를 통해 보안업체를 육성하고 해외 핵심 기술도 도입해야 한다. 물리적 공격과 사이버공격을 뒤섞은 복합 위협에도 대비해야 한다. 관계기관 사이에 칸막이 없는 원활한 협력체계 등 컨트롤타워를 갖추고 사이버안보 거버넌스를 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탄탄한 생태계를 가동해 소규모 공격도 조기 탐지와 실시간 대응 등 철통같이 막아야 한다. 올해 터지고 보완했으니 내년엔 괜찮으리라 속단해선 안 된다. 사이버 위협의 일상화, 지능화 등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근본적인 반성과 개혁이 없다면 미래도 올해와 다르지 않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사이버안보는 물론이고 우리의 조국도 존립할 수 없다.

[세상읽기] 정치 속 세이의 법칙

상품과 서비스의 적절한 가격 결정 원리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결론적으로 경쟁이 보장된 경제 환경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원리다.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하기 때문에 공급이 있으면 그만큼의 수요가 생겨나므로 수요 부족 때문에 공급 과잉이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세이의 법칙도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생산자 내지 상품이나 서비스의 공급자가 광고 등을 통해 상품 및 서비스의 본래의 기능적 장점 외에 서사를 부여하거나 소비자의 상품에 대한 기대 외의 욕구를 창출하는 방법으로 생산자 내지 공급자가 수요를 창출하거나 수요의 내용까지 좌우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는 경제적·정치적 발전을 통해 금전적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됐다. 즉, 풍요로운 사회가 돼 왔다.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고쿠분 고이치로)이란 책에 의하면 풍요로운 사회는 우리에게 한가함을 선물했으나 우리 중 누구는 때때로 그 한가함 때문에 지루함을 느낀다고 한다. 즉,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생활에 필수적이지 않은 행동과 소비를 때때론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수요 우위의 결정 시스템이 근본인 민주주의하에서의 정치 서비스 공급체계에서도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이고 급격한 변화가 보이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모습으로의 변화가 아니어서 미래의 정치 서비스 수요자들 입장에서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공급되는 정치 서비스의 내용과 방향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정치 서비스의 소비자인 국민의 날것 그대로의 의사가 중요한 것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런데 정치 수요의 내용에 따라 정치 서비스의 내용이나 공급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적지만 강력하고 선정적인 일부 정치 공급자에 의해 정치 수요자의 욕구의 내용이 바뀌고 결정되곤 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 공급자도 아니고 정치 수요자도 아닌 적은 수의 강력한 팬덤층이 정치 공급자와 공생관계를 통해 수요의 모습과 빈도를 결정함으로써 사회 전체 정치 수요의 크기와 방향이 왜곡되곤 한다. 정치 서비스의 본질을 완전히 벗어나 정치 공급자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일부 소비자층과의 관계가 정치 서비스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을 넘어 서비스의 방향에 대한 옳고 그름도 판단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공급자만을 위한 거래는 있을 수 없고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도록 설계된 것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고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정치 영역에 적용된 것이 민주주의 원리다. 그래서 수년간의 간격을 두고 선거를 통해 거래조건을 맞춰 왔던 것이다. 이러한 진정한 민주주의 원리를 통해 연령대 간, 과거와 미래세대 간, 지역 간의 이해관계가 조절되고 절충돼 공동체가 비교적 조화롭게 운영돼 왔던 것으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소비자주권을 정치제도화 한 것이다. 최근 정치 서비스에서조차 정치 공급자가 서비스와 상관 없는 서사를 서비스에 입히거나 공급자 본인에 입히는 등의 방법으로 은연중 소비자로 하여금 소비의 내용이나 소비 여부를 바꾸도록 하는 등 세이의 법칙이 통하는 장으로 만들고 있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정치 서비스 공급자 주권화는 공동체의 자원 분배를 왜곡시키고 잠재력을 약화시키며 갈등을 키워가는 것임을 역사적으로 있었던 일시적 정치 공급자 주권시대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를 위해 정치 영역에서 세이의 법칙을 추방하자.

[세상읽기] 10·15 부동산 대책의 딜레마

광풍(狂風)이 지나간 자리에 혹한(酷寒)이 찾아왔다. ‘영끌’과 ‘패닉바잉’의 함성이 뒤섞이던 부동산 시장은 이제 거래가 실종된 침묵의 계곡으로 변했다. 이재명 정부가 10·15대책을 통해 선포한 ‘부동산 불로소득 시대의 종언’은 자산 불평등에 신음하는 시대가 기다려 온 정의로운 선언이었다. 지난 10년간 노동의 가치는 조롱당했고 아파트 가격은 평범한 시민의 삶을 옥죄는 족쇄가 됐다. 그 비정상적 열병을 끊으려는 시도, 그 방향 자체를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투기적 관성에 제동을 거는 것은 곪아 터진 환부를 도려내는 외과수술에 가깝다. 하지만 선한 의도가 늘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투기 수요를 박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는 시장 생태계의 순환을 멈추게 했다.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 혈류까지 막아 버린 셈이다. 서울 외곽과 수도권 중저가 단지에서는 퇴로를 잃은 매도자와 진입로를 찾지 못한 매수자의 탄식이 메아리친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대책 이후 약 75% 감소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돈맥경화다. 주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액은 9월 대비 40% 이상 급감했고 승인 거절률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대출이라는 마지막 사다리가 걷어차이자 청년과 신혼부부의 ‘내 집 마련’은 신기루가 됐다. 평범한 실수요자마저 잠재적 투기꾼으로 오인받는 이 풍경은 정책이 지향한 ‘안정’이 아니라 모든 흐름이 멈춰버린 ‘정지(停止)’에 더 가깝다. 규제의 강도보다 위험한 것은 ‘정책의 요동’이다 문제의 근원은 시장에 각인된 ‘학습된 불신’이다. 한국의 부동산 정책사는 ‘규제 강화→시장 냉각→규제 완화→시장 과열’의 채찍 효과(Whiplash)로 점철돼 왔다. 정책의 일관성이 무너지면 시장 참여자들은 다음 정권의 정책 변화를 예측하며 움직인다. 이재명 정부가 진정 싸워야 할 적은 투기세력의 탐욕이 아니라 이처럼 깊게 내재한 ‘정책 불신의 병리’ 그 자체다. 정부가 제공해야 할 최고의 공공재는 ‘예측 가능성’이다 정부가 시장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지만 신뢰할 수 있는 규칙의 언어는 만들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규제’가 아닌 ‘흔들리지 않는 시간표’다. 정권의 임기를 뛰어넘는 ‘부동산 정책 5개년 로드맵’을 제시하고 그 약속을 사회적 계약으로 지켜내야 한다. 이를 통해 시장 참여자들이 미래를 설계할 최소한의 좌표를 확보할 때 비로소 흩어진 신뢰가 복원될 것이다. 10·15대책이 강력한 의지의 산물이었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섬세한 감각의 정책이다. 모든 연주자에게 똑같은 악보를 강요하는 지휘자는 불협화음만 만든다. 투기적 수요에는 단호한 잣대를 들이대되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와 장기 무주택 서민에게는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숨통을 틔워주는 ‘핀셋형 안전장치’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예컨대 부부합산 소득 1억원 이하, 주택가격 6억원 이하의 생애최초 구입자에게 LTV 한도를 기존보다 10~20%포인트 상향하고 정책모기지와 연계해 초기 3년간 고정금리, 전매제한을 조건으로 지원하는 식이다. 투기를 막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지만 평범한 시민의 희망까지 막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의 나침반은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려면 나침반만으로는 부족하다. 속도계와 수심계를 함께 살피는 노련한 항해술이 필요하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강력한 부동산 대책은 가격 통제가 아니라 신뢰의 설계다. 정부가 시장에 제공할 최고의 공공재는 흔들리지 않는 예측 가능성이다.

[세상읽기] 머무르며 이어지는 K-컬처

세계는 지금 한국을 ‘콘텐츠 강국’이라 부른다. 오늘날 K-문화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인이 즐기고 공감하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음악,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분야의 K-콘텐츠는 한국의 언어와 역사,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강력한 매개체로 기능하며 국가 간 상호 이해와 교류를 촉진하는 중요한 ‘소프트 파워’가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 흐름을 ‘전파’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누가 더 많이 보고, 어디까지 퍼졌는가에 집중하는 동안 그 콘텐츠가 어떻게 이해되고 다른 문화와 만나 어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K-컬처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단순히 무엇을 ‘만드는가’를 넘어 그 문화가 어떻게 ‘머무르고’, ‘관계로 이어지는가’를 고민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인천국제공항을 빠져나오는 외국인 손에는 대부분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다. 그들이 만나는 한국은 거리의 냄새나 사람들의 얼굴보다 먼저 알고리즘이 선별한 ‘K-컬처 클립’이다. 방문보다 콘텐츠가 앞서고 관계보다 소비가 먼저 재생되는 구조 속에서 공항과 테마파크, 쇼핑몰 등 화려한 공간은 늘어났지만 머물며 배우고 서로의 언어로 말을 건넬 수 있는 ‘문화적 머무름의 공간’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인천이 추진 중인 K-콘랜드 프로젝트는 매우 상징적이다. 인천국제공항 인근에 조성될 이 복합 콘텐츠 클러스터는 공연, 체험, 숙박이 결합된 ‘머무름의 인프라’를 지향한다. 세계인이 공항을 통해 한국을 처음 만나는 그 순간부터 콘텐츠를 ‘보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고 머무는’ 경험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K-컬처가 관계로 전환되는 그 첫 번째 물리적 실험이 인천에서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지역적 흐름은 최근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새 정부는 K-콘텐츠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산업 규모를 300조원으로 확대하고 해외 진출과 국제 협력을 위한 규제 완화, 세제 지원, 아레나 건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한 수출 산업이 아닌 한국의 정체성과 문화적 공명을 이끄는 ‘국가 전략 자산’으로 콘텐츠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결국 이 두 흐름(인천의 공간 전략과 국가의 정책 전략)은 같은 목표를 향한다. K-콘텐츠를 ‘소비’에서 ‘공존’으로, ‘유행’에서 ‘지속가능한 관계’로 옮겨 놓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K-콘텐츠에 관심을 가진 젊은 인재들이 더 오랜 머무름과 배움을 목표로 오도록 하는 대학들의 K-콘텐츠 교육 허브로서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특히 인천 송도에 자리한 인천글로벌캠퍼스 같은 시설은 미국 대학의 확장 캠퍼스를 넘어 문화적 머무름을 교류로, 교류를 K-컬처 전달로 확장시키는 공공외교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에서 출발한 이야기들을 다양한 국적, 인종,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유하면서 K-콘텐츠라는 공통관심사로 서로 만나고 섞이는 가운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무엇인가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 K-콘텐츠의 미래는 거대한 스크린이나 화려한 쇼케이스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세계인의 마음속에 오래 머무르는 이야기,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그 문화적 관계 속에 있다.

[세상읽기] AI 거품, 다룰 줄 알아야

2000년 세계를 강타한 ‘닷컴버블’을 기억하자. 인터넷 기업 주가는 과도하게 상승했다가 그대로 붕괴했다. 기업은 방문자 수 등 과장된 지표로 고평가되고 인수합병을 더해 판을 키웠다. 주식시장에 들어온 돈은 흥청망청 쓰이고 연구개발과 투자로 이어지지 않았다. 주식시장은 대략 80%까지 폭락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도 거품이 빠르게 커졌다가 순식간에 빠진 경우다.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기대를 심었다. 금융기관은 돈을 빌려주며 집을 사게 했고 집을 담보로 잡은 파생상품을 팔아 고수익을 냈다. 집값 상승이 멈추고 급락하자 사람들은 빚을 갚지 못해 파산했다. 금융기관부터 도산해 세계경제를 연쇄적 위험에 빠뜨렸다. 거품이 뭔가. 상품 가치는 변함없는데 기대만으로 수요가 크게 늘면 가격이 급격하게 치솟다가 떨어진다. 상품 가격과 실재 가치의 차이가 거품이다. 최근 인공지능(AI) 거품론이 거세다. 반도체, 그래픽처리장치 등 인프라 수요에 힘입어 AI 기업 주가가 가파르게 올랐지만 그에 비례하는 실적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고성능 컴퓨팅시스템을 구축·운영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오픈AI는 1조원 규모의 컴퓨팅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자금 조달을 추진하고 있다. 다른 AI 기업도 다르지 않다. 시장과열 예측지수 중 버핏지수(미국 상장주식 시가총액÷국민총생산)는 최근 210%를 넘었고 닷컴버블, 코로나 직후의 유동성 수준을 상회했다. AI 시장에 자금이 흘러드는 방법은 주식 및 채권 구입, 공적 지원금, 출자 및 대출, 인수합병, 지분매각 등이다. 자금은 AI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업, 금융기관 등 이해관계자 간에 순환되며 신용통화량을 키운다. AI 기업의 잠재력 확인이 쉽지 않다면 거품 위험이 커진다. 거품은 풍부한 유동성을 만들어 투자를 쉽게 한다. 연구개발과 각종 실험이 이뤄지고 상품개발을 촉진한다. 인재도 돈의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대외 홍보를 통해 고객 인지도를 높인다. AI 산업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AI를 도입한 기업은 고용대체를 통해 비용을 줄인다. 인력을 재조정하고 직원이 도태된다. 고객도 AI 일상화를 받아들인다. AI를 활용하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인식한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700조원 규모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선언 이후 세계가 군비경쟁 하듯 AI에 돈을 넣는다. 그런데 성과를 내지 못하고 거품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AI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만 작은 규모의 AI 기업이 수십억달러를 쉽게 유치하는 등 비정상적 과열을 경고했다. JP모건의 제임스 다이먼 회장도 10년 넘게 신용 중심 강세장이 이어지면서 과열 위험이 있다고 했다. AI 거품을 다룰 수 있어야 AI 강국이 된다. 큰 틀에서 거품을 예측하고 경고해야 한다. 막내 우유값을 아껴 장남만 도와선 안 되듯 대기업에 유동성이 몰리는 것도 좋지 않다. 대·중·소기업의 공존을 도모해야 한다. 잠재력 없이 거품에 올라탄 기업은 막아야 한다. 시기와 이슈에 따라 거품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불필요한 거품은 살짝 꺼뜨리는 것도 필요하다. 거품을 관리하지 못하면 투기 등 불법을 통해 부의 분배를 왜곡하고 불만과 저항을 야기한다. 거품을 악용, 유언비어 등 정보를 왜곡해 돈벌이를 하는 범죄도 막아야 한다. 거품이 시장의 통제 수준을 넘기 전에 양질의 AI 신상품을 만드는 등 실물경제를 끌어올려야 한다. 거품이 욕실을 가득 채우기 전에 목욕을 끝내야 한다.

[세상읽기] 시제 프리즘을 통한 세상 엿보기

우리의 일상생활 환경을 구성하는 다양한 분야를 시제, 즉 과거 현재 미래란 관점으로 바라보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교육, 정치, 사법, 자치입법, 과학기술, 산업, 예술문화, 지방행정, 언론 등 우리 생활의 과거 현재 미래를 결정짓거나 그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각 분야에서 만들어지는 정책, 작품, 입법, 재판, 기술 등 콘텐츠도 담당자들의 가치관에 따라 과거형, 현재몰입형, 미래지향형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과학은 미래지향적이고 사법은 과거를 대상으로 하며 입법은 시제보다는 보편성을, 행정 중 일반행정은 미래형, 준사법행정은 과거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그 속성으로 평가돼 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법 행위 중 단죄를 통해 유사 범죄를 예방하고자 하는 예방 효과와 재범의 가능성 유무만이 미래형 성격이고 나머지 사법 행위의 대상과 목적은 과거 행위와 현상에 대한 법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인 것이다. 국회와 지방의회 등이 주로 행하는 입법은 국민과 주민의 위임을 받아 국민과 주민의 현재부터 미래의 안전과 풍요를 위해 각종 사회적 약속을 만드는 것으로 미래형이어야 한다. 광의의 행정 중 수사 등 준사법 기능을 제외하면 과학기술 산업 등 경제도 지금부터 앞으로 잘살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고 안전관리 등 일반 행정은 물론이고 국방도 안전 및 국방의 대비태세를 강구하는 미래형이며 외교도 미래형이고 환경도 미래형이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각 분야의 바람직한 시제가 뒤엉켜 바람직한 대상에 대한 혼란이 가중되고 있고 방향 자체를 잃은 것처럼 보여 안타깝다. 국회는 입법을 통해 미래를 계획하고 바람직한 우리 사회의 미래상을 구현하기보다는 과거 현상 내지 행동에 대해 스스로 평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즉, 과거 사회 현상이나 행동에 대한 정치적 옳고 그름, 이롭고 해로움의 평가는 국민이 선거 등을 통해 내리는 것이지 평가 대상인 정치인들이 입법 등을 통해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되는 것이다. 국회가 과거의 사법의 판단도, 현재의 사법의 판단도, 미래의 사법의 판단도 입법 등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미래를 만들어 달라는 국민의 뜻에 전념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사법도 과거의 현상이나 행위에 대한 보편적 판단을 넘어 미래의 국회와 행정의 대응을 기대하거나 염려한 판단을 내린다면 국민이 직간접적으로 위임한 위임의 한계를 넘는 것일 수 있다. 행정이 과거의 행위 등의 진단에 너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면 당연히 미래를 설계하고 현재를 미래로 이끌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이 부족해질 것이다. 그 행정을 이끌 국민의 대표자 임기가 정해진 경우에는 더욱 그럴 것은 자명하다. 정치가 미래시제여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적다. 우리 정치권과 직업공무원집단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놓고 고민하고 경쟁해 그 성과를 토대로 심판인 국민의 판단을 받는 기본구도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정치권 인사도, 직업공무원도 스스로 최종 판단의 주체가 아니므로 상대방을 평가하고 심판하는 역할로 미래를 설계할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읽기] AI 교통 시스템

오전 5시30분, 스마트폰 알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커피 향과 뒤섞인 체념의 공기 속에서 현관문을 나서는 경기도민의 발걸음은 무겁다. 이것은 단순한 출근이 아니다. 하루 중 가장 맑은 정신으로 빛나야 할 ‘골든타임’을 붉은 후미등의 행렬에 저당 잡히는, 매일 아침 반복되는 ‘소리 없는 전쟁’이다. 이 전쟁의 현실은 통계로 증명된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출퇴근자의 평균 통근 시간은 73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8분)의 두 배가 넘는다. 특히 경기도민은 하루 평균 86분을 길 위에서 보낸다. 이 수치는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540시간, 즉 22일 이상을 도로에서 허비한다는 뜻이다. 그 시간이 본래의 삶에 쓰였다면 누군가에게는 아이와 함께하는 저녁식사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도전을 위한 배움의 기회가 됐을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체념의 교향곡을 멈추게 할 지휘자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그 유력한 후보로 인공지능(AI)이 무대 위로 오르고 있다. AI 기반 교통 시스템은 단순히 신호를 바꾸고 길을 안내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신호등, 버스, 지하철, 개인 차량, 심지어 보행자의 스마트폰까지 도시의 모든 교통 요소를 거미줄처럼 연결해 살아 숨 쉬는 ‘디지털 신경망’을 구축하는 것에 가깝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실시간으로 호흡하고 반응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꼽히는 싱가포르는 이미 도시의 혈관인 도로망에 막힘 없는 혈류를 공급하는 ‘인공 심장’을 이식했으며 이를 통해 교통 체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 절감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거대한 비전이 경기도의 도로망 위에 펼쳐진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매일 출근길이 단 15분만 단축된다면 한 달이면 10시간, 1년이면 120시간에 달한다. 경기도 전체 노동인구 약 700만명을 기준으로 하면 절약되는 시간은 연간 8억4천만시간에 이른다. 이를 단순히 최저임금(2025년 기준 시급 1만30원)으로 환산하면 약 8조4천억원의 경제적 가치가 발생한다. 실제로 안양시가 최근 시범 운영하는 AI 기반 길 안내 키오스크는 데이터 기반 교통 서비스가 어떻게 우리의 삶에 실질적인 온기를 더하는지 보여주는 작은 증거다. 하지만 이 거대한 신경망을 가동시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내놓아야 할까. 우리의 모든 움직임이 데이터가 될 때 그 데이터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는 먼 미래의 두려움이 아닌 세계 각국이 이미 씨름 중인 현실의 과제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확정된 ‘AI 법안(AI Act)’을 통해 도시 교통망 같은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해 투명성 확보와 인간의 감독 의무를 법제화했다. 독일, 프랑스 등은 지방정부 단위에서 알고리즘 영향평가(AIA)를 의무화하며 시민이 개발 단계부터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경기도 역시 ‘AI 교통 혁신’을 도입하기 이전에 데이터 거버넌스와 디지털 격차 방지 대책을 선행해야 한다. AI가 효율성의 가면을 쓰고 특정 지역, 특정 계층을 소외시키는 ‘디지털 차별’을 막는 것은 기술 도입만큼이나 중요한 사회적 안전장치다. 결국 AI 교통 시스템의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철학으로 기술을 다룰 것인가에 대한 방향 설정이다. 경기도의 선도적 역할은 단순히 남보다 빨리 신기술을 도입하는 ‘속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민의 삶과 안전, 존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방향’의 올바름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AI에 내려야 할 궁극적인 명령은 ‘가장 빠른 길’을 찾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길’을 안내해달라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AI를 통해 더 빠른 도시를 원하는가 아니면 더 행복한 도시를 원하는가. 경기도의 아침이 이 질문에 대한 현명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세상읽기] 지피지기 백전불태

미국과 협상할 때 상대측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세계 최대 시장이자 최강국이잖아요. 결국 우리가 따라가야죠.” 하지만 현대 협상 이론의 원조격인 하버드 PON(Program on Negotiation)은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그들이 말하는 협상 성공의 7요소 중 하나인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협상 결렬 시의 최선 대안)에 따르면 협상력은 힘의 크기가 아니라 협상이 결렬될 경우 얼마나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다른 선택지가 있는가로 결정된다. 이 관점은 적대적인 힘 겨루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호 의존하는 파트너 사이일수록 서로의 제약과 대안을 이해해야 신뢰를 쌓을 수 있고 서로 만족하는 협의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미국과의 협상에서 일본과 인도의 행보는 대조적이다. 일본은 비교적 일찍 미국과 협약에 서명했다. 그 결과 자동차 등 일부 품목의 관세가 15%로 조정됐지만 여전히 기존 세율보다 높아 국내 산업에 부담이 되고 있다. 투자금 사용처와 수익 배분에 있어서도 일방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반면 인도는 ‘전략적 자율성’을 내세우며 미국의 시장 개방·관세 요구에 신중히 대응했다.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지속하고 농업·유제품 개방에도 소극적이었으며 미국의 최대 50% 보복관세에도 공급망 다변화(BATNA 강화)로 버텨 왔다. 그런데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모디 총리의 75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통화를 나눈 뒤 양국 분위기가 달라졌다. 무역당국은 협상을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positive & forward-looking)이라 표현했고 미국의 관세 완화 가능성도 거론된다. 인도가 유지한 기조가 결국 협상 분위기를 바꾼 것이다. 이들의 행보에서 한국 역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9월 조지아주 현대·LG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대규모 단속을 벌여 수백명의 한국인 기술자들을 연행했다. 약 76억달러 규모의 투자, 수천개의 일자리가 걸린 프로젝트였기에 미국 내에서도 “외국기업 투자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다”는 비판이 나왔다. 협상 결렬의 대가가 미국에도 크다는 점이 드러난 장면이다. 또 미국은 최근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라는 이름으로 자국 조선업 재건 구상을 추진 중이다. 한국은 세계적 기술력과 숙련 인력을 기반으로 미국 내 조선소 현대화, 정비(MRO), 인력 양성, 부품 공급망 구축 등을 패키지로 제안했다. 이 협력은 어느 한쪽의 승리를 위한 게임이 아니다. 미국은 숙련 인력과 부품 공급망을, 한국은 안정적 투자 환경과 예측 가능한 제도(비자 등)를 필요로 한다. 서로의 BATNA를 이해하고 존중할 때 신뢰를 기반으로 서로의 이익 (Interests) 역시 존중하는 협의에 이를 수 있다. 한국은 흔히 미국과의 협상에서 ‘약자’라는 전제를 깔고 출발한다. 그러나 일본과 인도의 상반된 행보, 그리고 조지아와 MASGA 사례가 보여주듯 미국도 결코 무한한 대안을 가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진 기술력과 투자 역량은 미국에도 꼭 필요한 카드다. 따라서 한국은 BATNA를 포함한 요소들을 두루 고려한 총체적 전략을 세워 보다 유연하고 여유롭게 협상 테이블에 임할 수 있다. 협상력은 힘의 크기가 아니라 준비된 대안에서 나오며 상대와 나의 BATNA를 정확히 이해할 때 대등한 파트너십이 가능하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협상도 예외는 아니다.

[세상읽기] 법치의 근본, 법학 발전 나서야

무더운 여름이 끝나면 수확의 계절이 온다. 뿌린 것 없이 수확을 기대하긴 어렵다. 법률시장은 어떤가. 옛날엔 평생을 통틀어 소송 등 법률 분쟁을 경험하기 쉽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다. 고소고발로 수사기관을 드나들거나 법원에서 형사재판을 받고 채권채무, 임대차, 손해배상 등 민사재판에 시달린다. 마음고생은 덤이다. 법은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존재양식의 탐구’, ‘법의 제조’ 등의 저술을 남긴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생각을 보자. 법은 갈등하고 이탈하는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제도를 다시 연결한다. 느슨하지만 분산되지 않게 공동체를 지키고 활력을 유지한다. 법은 반복적으로 시행되면서 형식과 위상이 강화된다. 종교처럼 강력하진 않지만 국민을 구속하는 핵심 장치가 된다. 자본주의는 이성과 과학을 수단으로 인공지능 등 디지털 세상으로 나아간다. 기존의 이해관계는 급변하고 복잡해져 갈등을 빚고 분쟁을 일으킨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법의 제정, 개정, 폐기가 빈번하면서 법의 위상이 흔들린다. 국회 의결 등 요건을 갖추지만 법의 가치는 훼손되고 공정성이 흔들린다. 국민의 지지를 받은 권력기관조차 법 위반과 악용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다. 바야흐로 법치주의의 위기가 오고 있다. 처음 법학교육이 등장한 후로 대학은 법학을 연구하고 정부는 사법시험을 통해 법조인을 배출했다. 법학교육은 법의 근본원리에 더해 타당성, 당위성, 가치와 한계를 논했다. 법률실무는 구체적 분쟁에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이 설립됐고 2025년 5월 기준 변호사만 4만명을 넘어선다. 판검사를 합치면 5만명에 이른다. 실무 중심으로 법학교육이 발전하면서 법의 본질과 원리 탐구 등 법학 연구가 정체되고 있다. 정치에선 정적 제거와 지지층 결집을 위해 법을 악용한다. 법학자, 변호사만 아니라 일부 판검사마저 법률기술을 창안해 편을 가른다. 경제에서도 시장 우위 및 경쟁 기업을 제거하기 위해 규제기관 제소와 형사 고소고발 등 분쟁 절차를 남용하고 있다. 정치적 타협과 건전한 경쟁은 뒷전이다. 법학의 고민과 역할을 되살려야 한다. 법률실무도 업의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의 빈틈이나 논리를 찾아 이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법의 근본적인 목적이나 본질, 원리를 먼저 찾아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이 법술전문대학원이 될 순 없다. 법과대학도 마찬가지다. 교수가 정치권과 기업에 줄을 대고 해외 사례, 입법례를 끌어들여 입맛에 맞는 논리를 만든다. 법학의 본질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을까. 도덕은 타인의 자유를 위해 나의 자유를 줄이는 미덕이고 법은 타인의 자유와 나의 자유의 경계를 짓는 일이다. 법률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라투르는 근대인을 이해관계에 함몰되지 않고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현대 법률가에게 적용해도 틀리지 않다. 법학자 오토 마이어는 확고한 법 이념 없이 법의 통일적, 체계적 해석과 집행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로스코 파운드는 뭐라고 했을까. 법은 안정돼야 하지만 정지해선 안 된다고 했다. 법학자와 실무자 간 지루한 갈등을 끝내야 한다. 법치주의의 근본을 세운다는 목표로 법학의 공동연구와 제도 개선 등 법학 발전에 나서야 한다. 법학이 바로 서야 법치가 바로 서고 대한민국이 바로 선다. 그것이 국민의 바람이다.

[세상읽기] 선출대리인의 범인공지능화

우리 사회(국가)에서는 수많은 구성원이 각자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다양한 욕구를 갖게 되고 이를 채워줄 자원이 한정돼 있어 불가피하게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며 생활하고 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서로 협력해 파이를 크게 하는 방법에 관해 고민하기도 하고 그 파이를 정의롭게 나눠 갖는 방법론에 관해 대립하기도 한다. 모두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이다. 우리 사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파이를 크게 하거나 나누는 방법에 관해 고민하고 세부적인 약속을 만들고 지키게 하는 일에 전념하는 스태프(대리인)와 여러 장치(국가의 여러 기관)는 필수적이다. 이런 스태프와 장치들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돼야 하고 최소한 그런 것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구성되고 운용돼야 한다. 파이를 크게 하거나 나누는 등에 관한 우선순위와 세부 내용에 관한 방법론상의 차이를 차이로 구성원에게 지지를 호소해 오던 선출대리인들의 모습이 그러했다. 이들 선출직 대리인들은 통상 정당, 각종 선출직 공무원 등 간접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민주주의제도의 불가결한 존재들이다. 보수와 진보로 크게 나뉘어 경쟁하던 (잠재적) 선출대리인들의 호소가 당시에 사회구성원들이 처한 여러 환경에 따라 사실상 번갈아 선택된 기본적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사회구성원의 선출대리인들의 호소 방법이 장기적으로든 단기적으로든 사회구성원 전체의 일반적인 이익을 위한 방향과 역행하는 방향으로 변해 가고 있다. 보이스피싱처럼 때론 감언이설과 때론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선출대리인적 지위를 맹목적으로 더욱 공고히 하면서도 대놓고 구성원들의 싸움을 부추기고 아예 구성원의 감정적 이익 외엔 관심을 포기하곤 한다. 선출대리인의 대리인 지위 획득 방법이 전통적인 구성원의 이익 증대 방법에 호소해 선택받는 것이 아닌 경쟁자를 경쟁 대상에서 배제시키는 비생산적 방법으로 좀 더 손쉽고 영속적인 방법으로 바뀌어 가고 있고 결국 사회구성원 전체의 이익 증대에 긍정적이지 않게 됐다. 사회의 영속적 유지와 범발전을 위해 발전에 병목 역할을 하는 기득권을 타파해야 할 선출대리인들이 맹목적으로 기득권화해 마치 인간을 지배하는 범인공지능(AGI)처럼 돼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선출대리인들의 맹목적 기득권화를 견제해 왔고 예방해 왔던 시민단체는 확연히 그 역할이 줄거나 정치세력에 흡수됐고 상호 견제할 정치세력들도 그럴 형편이 못된다. 사회구성원 중 일부가 가해자가 될 경우 구성원의 매복 대리인인 경찰 검찰 법원이 우선 나서 해결하고 선출대리인은 제도 개선을 하는 등의 역할을 하고 선출대리인이 해를 끼칠 경우 사회구성원이 다음 대리인의 자격을 주지 않거나 매복 대리인인 경찰 검찰 법원이 나서 해결하는 것이 기본적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시스템이 급격히 망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과거에 매복 대리인이 사회구성원의 이익을 벗어나 AGI처럼 행세한 잘못된 역사를 시정해 왔는데 이젠 선출대리인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 무관심하거나 AGI가 돼 매복 대리인을 해체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선출대리인과 관련된 이러한 현실은 선출대리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 구성원의 이익 증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상호 갈등을 양산하며 민주주의제도의 불신마저 초래할 것이다.

[세상읽기] GTX 갈등이 던지는 메시지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를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노선 다툼이 아니다. 김포와 하남시민들의 외침은 “불편하다”는 푸념이 아니라 오랜 배제와 박탈의 기억이 응축된 언어다. 철도는 이제 교통망을 넘어 도시의 존엄과 권리를 가르는 민주주의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김포 인구는 2015년 35만명에서 2024년 48만명으로 37% 늘었지만 서울 직결 교통망은 제자리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김포시민의 평균 통근시간은 수도권 평균보다 25분 길고 출근 시간대 만차율은 120%를 웃돈다. 하남도 인구 30만명을 돌파했지만 광역 인프라는 늘 늦었다. 지친 시민들이 정치인에게 “너도 한번 타봐라”라며 던진 챌린지는 풍자가 아니라 분노와 냉소가 결합된 집단 정체성의 발현이었다. 정부는 “AI 데이터로 최적 노선을 설계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데이터는 지도를 그려줄 수는 있어도 동의를 확보해주지는 못한다. 효율은 설득을 대신할 수 없다. 국가 예비타당성조사와 갈등관리 연구는 이미 여러 차례 경고해 왔다. 숙의 없는 결정은 지연과 재설계, 소송으로 이어지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위례신사선 경전철의 경우 주민 반발로 공정이 멈춰 수년이 지체됐고 그 과정에서 추가 재정 부담도 불어났다. 반대로 초기 3개월의 숙의는 3년짜리 재설계를 줄인다. 참여는 지연이 아니라 절감이다. GTX 갈등은 단선적이지 않다. 소외된 도시는 분노하고, 수혜 도시는 집값 급등과 임대료 불안에 흔들리며, 경유 도시는 개발 압력에 지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GTX 예정지 일부 역세권은 최근 3년간 20~30%의 가격 상승률을 기록했다. 일부 수혜 지역은 역세권 과열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역설을 겪고 있다. 부천, 의정부, 용인 같은 경유 도시는 “또 주변부로 밀려난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분노·불안·피로가 교차하는 풍경, 이것이 GTX 갈등의 본질이다. 해외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일본 신칸센에서 제외된 지역은 수십년째 “버려졌다”는 감정을 토로한다. 프랑스에서는 TGV 노선에서 빠진 도시가 ‘2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프랑스는 제도로 대응했다. 1995년 ‘바르니에법’으로 설립된 국가공론위원회(CNDP)는 대형 인프라 사업에 공론 절차를 의무화했다. 사업자는 정보를 시민에게 공개해야 하고 정부는 제기된 쟁점에 답해야 한다. CNDP는 매년 수십건의 공론 절차를 운영하며 실효성을 입증하고 있다. 영국 HS2, 독일 슈투트가르트21도 시민 공론화를 통해 갈등을 흡수했다. 신뢰는 결과가 아니라 절차에서 비롯된다. 우리도 절차로 신뢰를 세워야 한다. 무작위 추첨으로 구성된 시민배심원단, 주민·전문가·시민단체가 함께하는 상설 협의체, 지역별 투자 격차를 수치화한 공정성 지표가 필요하다. 최근 5년간 수도권 광역교통망 투자액의 절반 이상이 서울·강남권에 집중됐다는 국토부 자료는 왜 소외지역의 불만이 폭발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공정성 지표는 ‘도어 투 도어 평균 통근시간 단축률’과 ‘대중교통 접근성 개선 폭’을 수치화해 공개하는 방식이다. 효율과 공정이라는 두 바퀴가 함께 굴러야 신뢰가 선다. 이 제도는 실행도 가능하다. 단기적으로는 국토부 고시로 ‘광역교통 공론 절차 지침’을 마련할 수 있다. 중기적으로는 국회가 교통시설특별법을 개정해 시민 참여의 법적 근거를 명문화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수도권광역교통위원회에 상설 협의체를 두어 노선·보상·생활SOC를 원스톱으로 조정해야 한다. 시민배심원단 예산은 전체 타당성 조사 비용의 1~2%면 충분하다. 사회적 비용 절감을 생각하면 가장 값싼 보험이다.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내년 예타·기본계획 착수 사업부터 적용할 수 있다. GTX는 선거철마다 단기 공약으로 소비돼 왔다. 표 계산 정치가 공론을 대체해온 결과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그러나 GTX의 성공은 교통 편의를 넘어선다. 시민이 “우리 의견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때 그것은 곧 사회적 자본인 신뢰로 전환된다. 결국 GTX 갈등은 우리에게 묻는다. 정책은 지도 위에 선을 어디에 긋느냐가 아니라 시민 마음속에 어떤 선을 그을 것인가의 문제다. 정치가 이 사실을 외면한다면 철도가 닿지 않는 곳에 남는 것은 빈 땅이 아니라 깊은 상처일 것이다. GTX는 교통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다.

[세상읽기] 문화예술 소비, 또다른 불평등의 축

잘 만들어진 문화예술작품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을 흔들기도 한다. 주인공의 서사에 몰입하며 그의 기쁨과 고통에 공감하고 가슴을 울리는 대사 한 줄, 눈물이 핑 도는 노래 한 곡에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공연이 던진 질문이 머릿속에서 오래 남아 내 행동이 변화하기도 한다. 단순히 기분 전환을 넘어 삶을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 바로 문화예술이 가진 큰 힘이다. 마음속에 오래 남는 정서적 자산이 형성된다. 한국인은 2023년 기준 약 55.3%가 연간 문화예술, 스포츠 등을 관람했고 이들의 1인당 평균 관람 횟수는 7회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는 30대가 연간 약 26만5천원으로 가장 많은 지출을 하고 70대 이상은 약 8만8천원으로 나타나 연령이 낮을수록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비교적 높았다. 이는 접근성과 경제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20~30대는 공연, 콘서트, 전시 등 경험형 소비를 선호하고 40대는 자녀들과 함께 주로 가족 단위의 관람이나 체험을 많이 한다. 60대 이상은 주로 지역 문화 행사에 많이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문화예술 분야 소비에는 경제력이 큰 영향을 미친다. 프랑스 사회학지 피에르 부르디외는 문화자본의 개념을 들어 경제자본과의 관계를 설명했다. 문화자본이란 개인이 가진 지식, 교양, 취향, 예술적 안목, 언어 구사력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상징적 자산을 의미하는데 이는 태생적으로 또는 교육과 환경에 따라 후천적으로 길러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고 미술관과 박물관을 자주 찾으며 해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특정 계층에 국한된다. 문화적 경험의 폭은 경제력에 기초할 수 있다. 즉, 경제력이 개인의 물적 토대라고 한다면 문화자본은 그 토대 위에 축적되는 보이지 않는 자산인 것이다. 문화예술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향유하는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다. 클래식 공연이든 온라인에서 제공되는 전시회든 길거리 버스킹 공연이든 한 사람이 감상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배제되지 않는다. 예술을 통해 얻는 감동과 공감은 개인적 만족을 넘어 사회적 연대감을 강화하고 사회 문제를 공유하며 성찰하게 만든다. 따라서 문화예술을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로 두는 것은 일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일이다. 최근 뮤지컬, 콘서트, 스포츠 경기 등에서 나타나는 고가 티켓 현상은 눈여겨볼 만하다. 일부 인기 공연의 경우 20만원이 훌쩍 넘는 좌석과 해외 스타 내한공연이나 대형 뮤지컬은 30만원대가 흔하게 되면서 웬만한 가계에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고가 티켓이 사회 전반의 문화자본 축적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결코 가볍지 않다. 경제력이 문화자본의 접근성을 제한하고 문화예술이 돈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 되는 순간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은 약화된다. 예술의 본질이 감동과 공감의 공유에 있지만 티켓 가격이 오를수록 공연은 특정 계층만의 네트워크 공간으로 변한다. 고가의 티켓이 고급 문화의 상징수단으로 기능하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사회는 예술을 특정 계층의 지위재가 아니라 모두의 자산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국가와 제도가 문화자본 형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예술은 곧 국가 정체성’이라는 인식과 함께 문화자본이 단순한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투자와 정책을 통해 제도화하려는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미술, 음악, 연극 교육을 의무화해 어릴 때부터 예술적 감각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고 중상류층 가정에서도 미술관, 콘서트, 오페라 등 문화체험을 일상화한다. 이뿐만 아니라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는 학생, 청년에 할인제도나 무료 입장을 통해 ‘모두를 위한 문화 정책’을 현실화하며 계층별 문화 접근의 격차를 줄이려는 제도적 장치를 확보하고 있다. 기술이 사회를 움직이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인간을 온전히 인간답게 만드는 힘은 문화예술에 있다. 문화예술이 사회적 불평등을 가르는 축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정서를 다듬고 삶을 깊게 만드는 장치로서 기능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세상읽기] 담뱃값, 공동체의 무게

흡연은 개인의 선택일까, 사회의 책임일까. 담뱃값 인상 논쟁이 불붙으며 이 물음이 새삼 우리 앞에 던져지고 있다. 최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에서 담배 가격 및 비가격 정책을 점검하고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면서 규제 논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2015년 이후 10년 가까이 동결된 담뱃값은 이제 조정의 기로에 서 있다. 전자담배와 가열담배 등 신종 제품의 확산도 재점검의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 남성 흡연율은 2023년 기준 30.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0%를 크게 웃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2년 흡연으로 인한 직간접 사회경제적 손실은 연간 약 13조6천316억원에 달한다. 이는 질병 부담, 생산성 저하, 의료비 증가 등의 형태로 건강보험 재정에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오랫동안 방치됐다는 점이다. 국내 담뱃값은 한 갑 4천500원으로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호주 4만5천원, 프랑스 2만원, 미국은 1만1천원 수준인데 한국은 현저히 낮다. 낮은 가격은 흡연을 쉽게 하게 만들고 특히 청소년과 취약계층은 폐해에 더 쉽게 노출한다. 흡연이 생활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방치하면 금연은 개인의 결심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정책 개입이 없다면 흡연은 ‘선택의 자유’라는 말 뒤에 습관화의 구조로 남는다. 사회적 정의와 공평성이라는 행정적 당위성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4년 담배회사를 상대로 53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30년 이상 또는 하루 한 갑 이상 20년 이상 흡연한 고위험군 3천465명의 진료비에 대해 공단이 지급한 치료비 전액을 청구하는 형식이었다. 이는 단순한 금전적 보상을 넘어 담배로 인한 의료비 전가 구조를 바로잡으려는 사회적 대응이자 공정한 제도 적용의 시도였다. 1심 재판부는 흡연과 폐암 간 인과관계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공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공단은 흡연자가 폐암에 걸릴 위험이 비흡연자보다 54배 높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고 대한폐암학회와 세계보건기구(WHO)도 공식 의견서를 통해 이를 지지했다. 또 150만명이 지지 서명에 참여하면서 이 소송은 법정 안팎에서 공공의료의 정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흐름으로 확산했다. 물론 흡연자의 선택과 인권은 존중돼야 한다. 흡연은 합법이며 개인의 자유는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재 논의의 초점은 흡연이 쉽게 선택되고 반복되도록 만드는 구조를 사회가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있다. 해법은 혐오나 낙인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을 재설계하는 데 있다. 가격 정책으로 확보되는 재원은 금연치료 접근성 확대, 취약계층 지원, 청소년 예방 교육에 재투자돼야 한다. 담배는 단순한 기호품에 머물지 않는다. 그 중독성과 사회적 피해를 고려할 때 공공의 건강을 위한 사회적 개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미국은 1998년 담배회사들과 합의해 220조원, 캐나다는 올해 3월 약 33조원의 배상에 합의하며 담배회사의 책임을 법적으로 물었다. 우리는 아직도 흡연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낡은 프레임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담뱃값 1만원은 단순한 가격 인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공공의 건강과 삶을 보장할 수 있는 합의점에 대한 물음이다. 이 조용한 질문은 이제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세상읽기] 생성형AI로 투자 유치하기

숨 쉬듯 투자 유치를 하고 싶다. 생성형AI로 투자 유치에 나선 초기 스타트업 대표가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그러나 결혼하듯 투자금을 확보한다. 어렵게 시드(Seed) 투자 유치에 성공해도 후속 투자 유치는 날숨 내뱉는 속도로 실패한다. 시리즈A까지 간신히 도달했어도 상장(上場)까지는 코끼리가 냉장고에 들어가는 기적의 연속이다. 국가의 안위까지 흔든다는 대단한 위상의 생성형AI기술로 왜 악전고투를 할까. 늘 성공에는 놀랍게도 디테일에 답이 있다. 투자 유치는 어떨까. 화룡점정은 피칭(pitching)에 있는 것일까. 투자심사역에게 투자해달라고 당당하게 발표한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그런데 발표 시간 대부분을 생성형AI 알고리즘에만 할당해 강변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고 믿는 것일까. 설득은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다. 다수의 투자심사역은 생성형AI기술을 AI전공자나 AI연구자처럼 알지 못한다. 설사 안다고 해도 스타트업이 독창적으로 주장하는 생성형AI를 찰나에 알 수 없다. 투자심사역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놀라운 기술의 개론 수업’이 아니라 ‘경쟁 대비 기술 차별화와 고객 가치의 증명’이다. 듣는 사람의 욕구를 외면한 채 말하는 사람의 요구로만 일방통행을 거듭한다면 개떡은 그냥 개떡으로 용두사미가 된다. 파레토 법칙은 이럴 때 활용해야 한다. 애정 어린 AI기술을 얼마나 자랑하고 싶을까. 그러나 과유불급은 화를 자초한다. AI기술은 발표시간의 10~20% 이내로 힘들겠지만 통제해야 한다. 고군분투에는 이렇듯 사소하지만 중대하고 결정적인 여러 이유가 있겠다. 발본색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발표가 끝나면 어김없이 Q&A가 찾아온다. 마치 쿠키 영상(post-credits scene) 정도의 가치라고 할까.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은 어떻게 처리하세요? 토큰(Token) 최적화는 어떻게 하세요? 이러한 질문에 답변을 사전 준비 없이 대충 한다면 어떻게 될까. 큰 오판이다. 진짜 발표는 Q&A다.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제공하는 업체가 해결할 문제죠. 토큰 비용도 마찬가지죠. 이렇게 답변한다면 투자심사역은 뭐라고 할까. 빅테크의 정책에 운명이 결정되는군요. 곧바로 게임 오버. 그러면 어떻게 답변하라는 말이냐. 할루시네이션은 데이터가 가장 큰 이슈죠. 내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셋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외부에 믿을 만한 데이터셋도 연계하고 있죠. LLM(Large Language Model)이 답변을 생성하기 전에 이러한 데이터셋에 접근하는 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기술을 독자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허용된 응답 내에서만 답변을 생성하도록 가이드레일(Guardrails)이 있죠. 여기에 좀 더 살을 붙인다면 어떨까. 토큰 최적화는 API 호출 최소화와 토큰 효율화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자체 캐싱 시스템이나 프롬프트 압축 기술 그리고 경량화 모델 활용 등 전방위적인 솔루션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살짝 몇 가지 얹히면 좋지 않을까. 듣고 싶은 답변은 나만의 독보적인 기술력이 있다. 그 기술이 고객 문제를 해결한다. 그 기술이 시장 크기와 성장 추세를 확대하고 강화한다. 그 기술이 경쟁 구조와 경쟁 강도를 유리하게 전환한다. 결국 독점적 포지셔닝으로 높은 기업가치를 창출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남의 돈을 우리의 호주머니에 넣으려면 ‘남’을 공부하고, ‘남’이 사는 자본시장을 연구해서, 마침내 내가 ‘남’이 되면 된다. 그때야 비로소 생성형AI는 우리의 밥그릇이 된다.

[세상읽기] 민주주의가 만든 ‘케이팝’

2020년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운동’에서 예상치 못한 주역이 등장했다. 케이팝 팬덤이었다. 미국 경찰이 #blacklivesmatter 해시태그를 시위대 추적에 활용하자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연예인 영상에 #BLM을 무작위로 삽입해 감시 체계를 교란했다. BTS가 공식적으로 BLM운동을 지지하며 100만달러를 기부했고 팬덤은 하루 만에 같은 금액을 추가 기부했다. 이는 단순한 팬 활동을 넘어선 창의적 디지털 행동주의였다. 케이팝 팬덤은 차별과 무시에 대해 가장 조용한 연대로 가장 분명하게 목소리를 냈다. K-문화의 전 세계적 성공을 설명할 때 대다수는 재능, 기술, 세계화, 정부 정책 등을 꼽는다. 맞는 말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발전시켜온 민주주의가 성공의 배경이다. 민주주의가 강해야 문화가 풍요로워지고 그 문화 속에 민주주의는 더욱 탄탄해진다. K-문화가 증명해낸 세계사적 교훈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사회는 표현의 자유, 자발적 조직,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과 비판 의식이 일상화된 공간이 됐다. 이 민주주의의 공기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창작하는 문화에도 스며들었다. 시민은 더 이상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다. 함께 기획하고, 감상하고, 평가하는 문화의 실질적 주인이 됐다. K-문화의 성공은 획일화를 극복한 다양성의 승리다. 이 배경에는 김대중 정부의 감각적 전략이 있었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 ‘문화산업을 제2의 성장엔진’으로 선언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정책이 자유를 키웠고, 그 자유는 콘텐츠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문화 다양성이 일상화될수록 민주주의의 다양성은 넓어진다.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할 수 있는 사회에서 다양한 문화 표현이 가능해지고 이는 다시 민주주의를 풍성하게 만든다. K-문화가 보여주는 창의성과 비판정신, 포용성은 우리 국민이 일궈낸 다원 민주주의의 결실이다. K-문화의 또 다른 특징은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시하고, 고발하며, 대화를 유도한다.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은 자본주의가 만든 불평등한 계급 구조를, ‘더 글로리’는 차별과 냉소를, ‘택시 운전사’는 한국 현대사의 고통을 다룬다. BTS는 자기 존중과 다양한 연대의 가치를 노래한다. 최근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토니 어워드 6개 부문을 석권했고 ‘케이팝 데몬헌터스’는 넷플릭스 공개 4일 만에 41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드라마는 질문하고, 영화는 고발하며, 음악은 위로하고, 팬덤은 행동한다. K-문화는 시민이 써 내려가는 민주주의의 서사 그 자체다. 2024년 12월3일 불법 계엄 시도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었다. 한 사람의 어리석은 판단이 K-문화의 풍요로움을 파괴하려 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국민이 막아냈다. 촛불의 광장에서 민주주의와 K-문화는 융합하며 희망의 빛을 발산했다. K-문화는 이제 단순한 문화 수출을 넘어 민주주의의 새로운 언어가 됐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K-문화를 통해 자유, 다양성, 연대의 가치를 경험하고 있다. 자국의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K-문화의 미래는 산업 전략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감수성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달려 있다. 문화가 강해야 민주주의가 강하고, 그 강함의 바탕은 다양성이다. 문화 다양성은 민주주의의 다양성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더 풍부한 문화를 낳는다. K-문화가 보여준 이 선순환이야말로 미래 민주주의의 핵심 동력이다.

[세상읽기] 결혼, 그 거대한 소비의식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성인, 입학, 졸업, 결혼,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다양한 전환점을 통과할 때마다 사회적으로 ‘승인’받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는 이를 통과의례 (Rite of Passage)라 부르며 인간사회에 깊이 뿌리내려 왔다. 개인 차원의 새로운 변화를 사회적으로 ‘인증’받는 상징적 의식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소비사회에서 이러한 통과의례는 소비의 대상이 된다. 기업은 소비자에게 의미 있는 순간들을 완성하도록 무엇을 구매해야 하고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일종의 패키지 상품처럼 판매한다. 소비자는 정형화된 방식으로 소비하지 않으면 그 본질적인 의미가 축소 및 퇴색된다고 여기거나 심리적 소외감을 느끼는 등 점점 외형적 소비 방식에 갇히고 있다. 특히 결혼은 더 상징적이다. 결혼식은 남녀 두 사람의 결합과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 주고 축하하는 진정성을 나누는 자리이지만 점점 외형적 소비 방식에 더 큰 공을 들이게 된다. 소위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프러포즈, 예식장, 혼수, 예물, 신혼집 등 소비의 크기와 규모가 사랑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한 대형 프로젝트처럼 작동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사회 주요 소통 창구가 되면서부터 결혼은 둘만의 약속으로 끝나지 않고 행복한 부부, 깔끔한 신혼집, 감동을 주는 이벤트, 완벽한 결혼사진 등 결혼의 모든 과정을 하이라이트 영상처럼 관객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공개 무대가 되기도 한다. SNS 사회에서는 결혼 과정이 개인의 단순한 기록을 넘어 타인의 눈을 의식한 연출의 결과물로 콘텐츠화돼 소비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SNS 속 결혼은 늘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완벽함이 깃들어 있다. 통과의례가 주는 정서적 가치는 개인에게 여전히 중요하다. 또 문화적 상징은 소비 행위를 통해 더욱 공고해지며 개인의 정체성, 사회적 지위, 소속감 등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므로 타인과 비교하며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요즘 20, 30대 젊은층은 기성세대보다 결혼에 대한 심리적, 경제적 부담이 크다. 이들 세대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여전히 결혼이라는 통과의례에 대해 두 집안의 결합이라는 인식이 강한 편이다. 그러나 결혼식이라는 거대한 소비의식과 기대치를 충족해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다른 세대보다 훨씬 크다. 고물가, 저성장, 고주거비 시대에 살고 있는 젊은층에 이러한 부담감은 결혼 자체를 회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2023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 사회 평균 결혼비용이 전세자금을 포함해 2억6천만~3억6천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의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는 결혼식의 형태를 다양하게 바꾸기도 한다. 스몰웨딩, 셀프웨딩 등 미니멀 결혼식 트렌드가 증가하고 있다. 또 비혼을 당당하게 선택하며 다양한 인간관계, 자기계발을 통한 자아실현 등 인생 과정에서 결혼보다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기도 한다. ‘결혼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2024년 기준 30% 미만이고 MZ세대는 약 70%로 나타났으며 혼인율은 3.7%(인구 1천명당 혼인 건수)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는 현 상황은 이후 낮은 출산율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단순히 개인의 취향 존중이라는 긍정적인 측면 이외에 국가·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세상읽기] 여름의 정답을 찾다

6월 하순부터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지고 있다. 명색이 장마였는데 비는 온데간데없고 연일 35도를 넘는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여름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3천704명, 이 중 34명이 사망했다. 전년도보다 3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제 여름의 더위는 오곡을 익게 하는 계절의 산물보다는 건강과 생존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폭염으로 인한 열사병은 건설현장, 물류업 등 야외에서 장시간 일하는 이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고령자와 만성질환자 역시 고위험군에 속한다. 이 질환은 고열, 어지럼, 의식저하 등이 갑작스럽고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며 즉각적이고 적절한 응급조치가 생명을 좌우한다. 환자가 발생하면 즉시 그늘로 옮기고 시원한 물을 마시게 하거나 얼음찜질로 체온을 낮춘 뒤 119에 연락해야 한다. 하지만 여름철 건강 위협은 실외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실내 냉방 역시 또 다른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냉방병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나 장시간 차가운 공기에 노출될 경우 자율신경계가 교란되고 두통, 피로감, 소화불량, 호흡기 불편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을 쐬는 사무직 근로자나 실내외 온도차를 자주 겪는 이들이 더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냉방병은 아직 정식 의학 진단명은 아니지만 매년 반복되는 여름철 건강을 위협하는 병증이다. 피로감과 소화불량으로 시작되는 증상은 집중력 저하, 무기력증에 의한 업무 공백 등으로 이어지며 결국 조직 전체의 생산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물론 의료비라는 경제적 부담도 뒤따른다. 이를 예방하려면 생활 속 온·습도 관리를 습관화할 필요가 있다. 질병관리청과 환경부 가이드에 따르면 사무실 등 정온 환경에서는 실내 온도를 25~28도, 습도를 40~60%로 유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반면 제조업이나 생산설비처럼 활동량이 많고 기계열이 발생하는 작업 현장에서는 22~26도 수준이 일반적이다. 공간 특성에 맞춰 온도를 조정하고 하루 두 번 이상 환기와 주기적인 에어컨 청소를 통해 공기 질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 실내 온도를 둘러싼 갈등은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반복된다. 누구는 더워서 온도를 낮추자 하고 또 다른 이는 춥다며 불편을 호소한다. 쾌적함은 주관적이지만 지나친 냉방이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객관적이다. 최소한의 온도 기준을 함께 정하고 복장 자율화, 좌석 배치 조정 등 체감온도 차이를 줄일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냉방에 대한 체감은 다를 수 있어도 여름 건강을 지키려는 배려는 모두가 함께 나눠야 할 책임이다. 정부는 매년 폭염 대응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체감온도 33도 이상 시 야외 작업 중단 또는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권고한다. 그러나 이 지침은 강제력이 없어 현장에서 무시되기 쉽다. 일선 노동자는 더위를 견디며 작업을 이어가고 일부 사업장은 생산성을 이유로 위험을 방치하기도 한다. 결국 폭염의 부담은 제도의 합리성보다는 개인의 인내에 기대는 현실로 고착되고 있다. 건강한 여름을 보내기 위해서는 외출을 줄이고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며 냉방은 절제 있게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거창한 기술보다 중요한 건 상식을 지키는 태도다. 여름을 견디는 힘은 냉방 장치보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냉기와 열기 사이, 그 균형점에 ‘건강’이라는 해답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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