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설렘을 한 가득 담은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청소년 단원들도 함께한 합창무대부터 어린이 관객을 사로잡을 뮤지컬 메들리, 크리스마스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명작 발레까지 올 겨울을 풍성하게 물들일 다채로운 공연이 수원 곳곳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 수원시립합창단, 주니어 콰이어와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가장 먼저 만나볼 무대는 18일 오후 7시30분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열리는 수원시립합창단 제192회 정기연주회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공연이다. 1부의 막은 금관 음향과 경쾌한 멜로디가 어우러진 르로이 앤더슨의 명곡 ‘A Christmas Festival’이 환하게 밝힌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캐롤 ‘Gesu Bambino(아기 예수)’이 오르간 연주와 함께 펼쳐진다. 잔잔한 분위기와 웅장한 멜로디가 특징인 작품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전 세계의 교회와 콘서트에서 자주 연주된다. 이와 함께 웅장한 브라스 음향과 역동적인 합창이 어우러져 성탄의 기쁨을 표현하는 ‘Gloria’를 만나게 된다. 총 3악장으로 구성된 작품은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2부에선 모두에게 친숙한 캐롤 명곡 ‘Winter Wonderland’, ‘Silver Bells’ 등이 설렘을 더한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수원시립합창단 주니어 콰이어의 데뷔 무대가 될 ‘겨울 노래 모음’이다. 수원교육지원청 청소년 E:음 공유학교와 함께하는 ‘수원시립합창단 주니어 콰이어’ 프로젝트는 빈소년합창단 상임지휘자를 역임한 김보미 예술감독 및 시립합창단원의 지도를 받은 청소년 단원들이 4개월간 열정을 쏟아 준비한 첫 공식 무대라는 점에서 감동을 더할 예정이다. ■ 수원문화원, 클래식·뮤지컬 어우러진 ‘해피 메리 크리스마스’ 24일 오후 8시 수원문화원 빛누리아트홀은 콘서트 ‘Happy Merry Christmas’ 공연을 선보인다. 클래식 앙상블 ‘에끌라’의 연주와 뮤지컬 배우 진세휘, 조용휘, 박주혁 등이 무대를 누비며 이브의 밤을 낭만으로 물들일 예정이다. ‘하얀 겨울밤, 사랑이 머무는 순간’을 콘셉트로 한 이번 공연은 클래식과 캐럴, 뮤지컬 넘버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풍성한 무대 구성은 어린이 관객부터 연인, 가족 단위 등 전 연령대를 사로잡을 예정이다.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 Op.71a 중 ‘Waltz of the Flowers’(꽃의 왈츠) , 드뷔시 ‘Clair de lune(달빛)’, 류이치 사카모토 ‘Merry Christmas Mr. Lawrence’ 등 세계적인 작곡가들의 명곡들이 잔잔하면서도 풍성한 크리스마스의 정취를 전한다. 이와 함께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사랑은 열린 문’, 뮤지컬 ‘위키드’의 ‘Defying Gravity’,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주제곡 등 애니메이션과 뮤지컬 넘버로 구성된 다양한 작품이 성탄절 이브의 밤을 따뜻하게 물들인다. ■ 수원문화재단, 명작 ‘호두까기 인형’ 선봬 24~25일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선 수원문화재단이 크리스마스 시즌 대표 레퍼토리로 사랑받는 명작 발레 ‘호두까기 인형’ 무대를 선보인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함께 차이콥스키의 3대 명작으로 꼽히는 ‘호두까기 인형’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소녀 ‘마리’가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 받고, 밤사이 펼쳐지는 환상적인 모험을 다룬 작품이다. 이번 무대는 수원SK아트리움 상주단체인 '정형일 발레 크리에이티브'의 신선한 무대와 해석이 돋보일 예정이다.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의 실감 나는 전투, 눈송이 요정들의 눈부신 왈츠와 과자나라에서 펼쳐지는 각국의 전통 무용, 차이콥스키의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하는 클라라와 왕자의 환상적인 무대 등이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름다운 선율과 무용수들의 몸짓, 화려한 무대는 아이들에게는 환상적인 동화의 세계를, 어른에게는 따뜻한 추억과 감동의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공연은 24일 오후 7시30분, 25일 오후 2시와 5시로, 총 3회 진행된다.
겨울밤 장독 뚜껑을 열고 코를 킁킁대며 동치미가 담긴 독을 찾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 반세기 전만 해도 장독대는 서민들의 집은 물론이고 산속의 사찰과 궁궐에도 반드시 있었던 살림살이였다. 파주 헤이리예술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한향림옹기박물관(관장 한향림)을 찾았다. 산속에 놓인 장독대가 정겨운 옹기박물관에서 처음 만난 추억의 유물은 기다란 원통형 물건들이다. “연통과 연가입니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 연기를 배출하기 위해 만든 굴뚝은 연통과 연가로 이뤄져 있지요.” 최준석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며 한옥 온돌방에서 연기를 배출하는 굴뚝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이처럼 ‘연가’는 굴뚝으로 빗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지붕 역할을 하는 물건이다. 새와 거북이 조각돼 있는 연가에서 옛사람들의 여유와 멋을 발견한다. 어릴 적 무심히 봣던 것을 나이가 들어 자세히 살펴보는 시간이 즐겁다. ■ 옹기에 쏟은 부부의 사랑 2004년 문을 연 옹기박물관은 본관인 옹기박물관과 분관인 현대도자미술관으로 이뤄진 도자 전문 사립박물관이다. 옹기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한향림옹기박물관은 어떻게 설립됐을까. 설립자이기도 한 한향림 관장은 대학에서 도자기를 만들던 시절에 옹기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도기나 자기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자연 친화적이고 역사가 긴 옹기에 마음이 끌렸다는 그의 고백이 놀랍다. “프랑스 유학 시절 유럽의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을 다니며 도자기 명품들을 봤어도 옹기가 지닌 매력을 넘어서진 못했습니다.” 1987년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한 관장은 전국을 돌며 눈에 띄는 옹기를 모으기 시작한다. 당시만 해도 옹기는 도자기에 밀려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드물었기에 약 1천500점에 이르는 아름답고 소중한 옹기를 수집한다. 기업체 대표였던 한 관장의 남편이 적극 도움을 준 것이 큰 힘이 됐다. 부부가 마음과 뜻을 모아 세운 박물관이라 그런지 더욱 정감이 간다. “옹기는 인류의 일상생활 속에서 같이 숨을 쉬며 살아온 물건이지요. 집마다 장독대에 있던 항아리가 바로 옹기입니다. 플라스틱 용기가 나오기 전까지 옹기는 생활필수품이었고 조상의 지혜와 일상적인 미의식이 담긴 물품입니다. 이런 옹기들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정감이 가고 자연스럽게 힐링이 됩니다.” 옹기의 가치를 제대로 보존하고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박물관을 설립한 한 관장은 작가로도 촉망받았다. 1998년에 연 개인전에서 ‘산’을 소재로 한 독특한 옹기 작품을 선보여 호평받았고 대학 교수직을 제의받았으나 작품 제작과 옹기 수집에 전념하는 길을 선택한다. 우리 고유의 옹기를 보존하고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할머니나 어머니가 쓰던 장독도 세월이 흐르면 문화재와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인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옛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결국 예술을 누리는 첫걸음입니다.” ■ 팔도의 옹기를 만나다 한향림옹기박물관에 전시 중인 옹기의 대부분은 조선 후기인 1850년에서 1950년대 이전의 것들이다. 최 학예사의 안내로 팔도의 특색 있는 옹기와 마주한다. 지역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개성이 뚜렷한 옹기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시간이 즐겁다. “우리나라 옹기는 지역의 일조량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합니다. 경상도나 전라도처럼 일조량이 많은 경우 입구가 좁고 몸통이 불룩하지만 경기도의 경우 장에 더 많은 볕을 쪼이기 위해 넓은 입구와 일자형 몸통으로 제작됐습니다.” 입구가 넓은 것은 북부지방의 항아리일 가능성이 높고 배가 부르고 입구가 좁은 적은 것은 남부지방의 항아리일 가능성이 높다. 전시실 입구 왼편에 경상도 옹기와 전라도 옹기가 나란히 전시돼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차이는 무엇일까. “경상도 옹기는 배가 부른 둥근 모양을 하고 있으며 전라도에 비해 문양이 적거나 단순하고 유약의 색은 어두운 갈색으로 진하며 바닥에 비해 입구가 좁아 안정감이 있습니다.” 전라도 옹기는 경상도와 달리 화려한 문양이 돋보인다. 전라도를 예향이라 불리는 까닭을 옹기도 보여준다. 충청도 옹기는 짐작했던 대로 경기도와 남부지방의 중간 형태다. 경기도 옹기에 비해 어깨 부분이 더 볼록하며 남부지방 옹기에 비해 입구가 더 넓다. 제주도 옹기의 특징은 무엇일까. “전국에서 유일하게 유약을 바르지 않고 제작되는 옹기로 철분이 많은 화산토로 만들어 붉은색을 띠고 있습니다. 바닥을 넓게 만들어 바람에 쉽게 넘어지지 않도록 했지요.” 입구가 넓고 어깨 부분의 경사도가 급한 모양의 옹기는 일조량이 적은 추운 날씨에 잘 견디도록 만든 강원도 옹기다. “강원도에는 산이 많은 탓에 운반이 쉽도록 작은 크기의 옹기가 많습니다.” 경기도의 옹기들이 전시실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 옹기는 장독대에 많은 항아리들을 효율적으로 둘 수 있도록 홀쭉하게 만든 것이 특징입니다. 옹기 안으로 더 많은 햇볕을 받아 장이 익을 수 있도록 입구가 넓습니다.” 소나무의 송진을 모으던 용기 ‘송진독’은 식민지 시기 일제의 자원 수탈을 보여주는 특이한 유물이다. 두 팔을 벌린 모양의 간수통은 보기 드문 유물이다. 천일염을 이 간수통에 넣어 두면 간수가 나오는데 이 간수로 두부를 해 먹었다. 호롱불을 등잔에 넣었던 부엌등 같은 유물도 정겨운 유물이다. ■ 옹기, 흙으로 빚어 불로 만든 그릇 기획전이 열리는 2층에서 독불장군을 만난다. 5월에 개관한 기획전 ‘독불장군, 흙으로 빚어 불로 만든 그릇’은 박물관의 정성과 노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콧수염을 기르고 상투를 튼 ‘이대장’과 더벅머리 청년 ‘박건아’가 반겨준다. 기획전의 등장인물 캐릭터는 최 학예사가 직접 그린 작품이다. 전주는 옹기 제작의 물적 지원을 담당하는 인물, 옹기대장은 옹기를 빚을 줄 아는 전문기술자로 옹기를 만들고 가마에 서리며 굽는 사람, 건아꾼은 옹기대장의 보조기술자로 흙 준비, 옹기 말리기, 시유, 옹기 보수, 운반 등 제작 전반의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최 학예사는 전통가마 모형을 만들기 위해 경기 여주시 금사면 ‘오부자옹기’를 찾고 제96호 국가문화유산 김창호 옹기장에게 직접 들은 전통 가마와 근현대 옹기장들에 관한 이야기를 관람객에게 들려준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흙으로 그릇을 빚어 사용해 왔습니다. 흙은 점성이 있어 조물조물 무엇이든 만들기 좋은 재료이지만 마르고 난 후 쉽게 부서집니다. 그러나 이런 흙에 열을 가하면 훨씬 가볍고 단단한 물질이 됩니다.” 인류가 고온의 불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전에 없이 뜨거운 불을 만난 흙은 비로소 온전한 그릇이 됐다. “불의 온도가 높아질수록, 불을 다루는 장인의 노력이 더해질수록 그릇은 더욱 견고하고 아름다워졌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도기와 자기, 즉 도자기입니다.”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옹기들은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가 사용하던 생활용품이었다. 이 옹기들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누구와 함께 살다 여기까지 온 건지 각각의 옹기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친절하게 들려준다. 박물관에 있는 옹기들이 태어나던 시기, 한창 옹기 수요가 급증하던 1900년대를 전후한 그 시절 옹기를 만들던 사람들을 만나 그때 그 이야기들을 차분히 들려준다. 관람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한향림옹기박물관의 치열한 노력은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제11회 ‘자랑스러운 경기도 박물관인상’ 큐레이터상 수상(2015년)과 제17회 ‘자랑스러운 경기도 박물관인상’ 관장부문 수상(2021년)은 이를 대변하는 성과물이다. 국고지원사업 우수 박물관상을 수상하고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활성화 유공표창을 받기도 했다. 관람객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한향림옹기박물관의 고민과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한 생명의 탄생을 둘러싼 풍경은 저마다 다양하다. 전통사회의 의례와 관습부터 의학과 국가 제도 속에서 변화한 근대의 출산 문화까지 시대가 달라져도 가족과 공동체의 따뜻함과 신비한 기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국립민속박물관이 내년 5월 10일까지 개최하는 출산 특별전 ‘출산, 모두의 잔치’에서는 출산으로 맺어지는 관계와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조명한다. 아이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100개의 옷감을 이어 만든 백일저고리, 아빠가 쓴 육아일기, 아이를 위해 1천명의 글자를 받아 만든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 등 328건의 전시자료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산실, 생명의 공간’, ‘임신, 계획과 선택’, ‘생일, 모두의 잔치’로 나눠 구성된다. 첫 번째 ‘산실, 생명의 공간’은 출산을 앞둔 임산부를 위해 특별히 준비된 공간 ‘산실(産室)’을 다룬다. 산실은 임산부는 출산의 고통을 견디고 위험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하는 공간이다. 그곳이 짚을 깐 자리이거나 병원 위 침대일지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공간을 거치게 된다. 전시는 전통부터 현대까지 산실을 둘러싼 다양한 도구와 인물에 집중한다. 한낱 낫과 가위에 불과한 연장일지라도 아기와 산모를 연결하던 태를 자르는 도구로 사용할 땐 아기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산모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순수한 무명천은 새 생명의 순수함과 일상으로부터의 분리를 상징하며 산실문에 걸어 부정과 잡귀의 출입을 막기도 했다. 과거에도 건강한 출산을 위해 다양한 의학 지식이 활용됐다. ‘동의보감’엔 ‘산모에게 필요한 약’ ‘아기를 잉태하는 방법’ 등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증상과 대처법을 실었으며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를 사용해 산후 복통 등 치료법과 처방을 싣기도 했다. 서양 의학이 도입됨에 따라 출산의 모습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임신과 출산, 육아는 계획에 따른 선택의 대상이 됐고 출산 의료 전문화에 따른 인구 증가는 출산율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이유가 됐다. 그럼에도 출산의 기쁨,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 1920년대 이후 근대 의학이 확산하며 산부인과 병원이 늘었다. 당시 사용하던 외귀형 청진기, 겸자, 임신부 골반 측정기 등을 통해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바뀐 출산 환경을 짐작할 수 있다. 국가적으로 임신과 출산율을 관리하는 시기엔 ‘가족계획 포스터’ ‘가족계획 홍보물’ 등을 배포헸다. ‘알맞게 낳아 훌륭하게 기르자’(1962~1966)는 기조부터 ‘세살 터울로 세 자녀만 35세 이전에 낳자’(1967~1971),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1982~1990)까지 시대별로 달라지는 표어에 따라 ㅇ인구정책의 목표와 과정을 직관적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길고 고된 과정을 거쳐 한 생명이 탄생한 날, 고생한 산모를 함께 축하하고 건강한 아이를 축복하는 날은 누군가의 생일이자 모두의 잔칫날이 된다. 건강한 아이, 그중에도 아들에 대한 염원은 ‘동국세시기’(1911)에도 잘 나타나있다. 월별 세시풍속을 정리한 이 책엔 충북 진천 지역 풍속 가운데 3월 삳짇날부터 4월 팔일까지 여인들이 무당을 데리고 동서 용왕당과 삼신당에서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비는 모습이 기록돼 있다. 그밖에 고대에서 현대까지 인류가 가장 신성한 것으로 여겨 온 ‘생명을 낳는 힘’과 관련한 상징물도 만날 수 있다. 기도, 제의, 예술 등의 형태로 전해지는 것들은 단지 자손의 번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지의 풍요와 공동체의 지속을 바라는 인간의 보편적 염원임을 알 수 있다.
정조에게 무예는 단순한 군사 훈련이 아니었다. 그는 무예를 나라를 지키는 힘이자, 백성을 향한 통치 철학의 연장선으로 보았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을 가슴에 품고 왕위에 오른 정조는, 강한 군대 없이는 진정한 태평성대도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즉위 이후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해 흩어져 있던 무예를 표준화하고, 무예를 왕권 아래 다시 정렬했다. 칼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는 상징이었고, 혼란의 시대를 넘어 자주적인 국가로 나아가겠다는 의지였다. 1795년,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열린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서 검무를 올린 것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왕실의 최고 어른이자 자신의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잔치에서 ‘검무’를 선보인 것은 정조가 꿈꿨던 ‘예로 다스리되, 힘으로 지키는 국가’를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었다. 화성으로의 8일간 행차를 담은 ‘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그렇게 칼춤을 추는 두 여인의 그림과 함께 ‘검(劍)무(舞)’라는 이름이 또렷이 남았다. 조선 왕실 공식 기록에 명확히 남은 ‘검무’는 이때가 유일하다. 지난 4일 저녁, 화성행궁 봉수당을 지척에 둔 정조테마공연장은 궂은 날씨에도 관객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230년 전 펼쳐졌을 문무예술 정신을 보기 위한 설렘과 긴장감이 객석을 메웠다. 검은 칼날이 공기를 가를 때마다 숨을 참는 관객의 호흡과 함께 공간엔 검기(劍氣)가 차오르는 듯했다. 이날 공연은 정조가 어머니 홍씨의 회갑을 기념해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열었던 진찬연에서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검무를 복원한 첫 무대다. 박제가의 ‘검무기’, 신윤복의 ‘쌍검대무’, ‘무예도보통지’의 쌍검 검법, 그리고 의궤 속 기록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조인문예술재단이 2년에 걸친 학술 연구와 실연을 거쳐 완성한 결과다. 공격과 방어를 위한 검술과 곡선으로 이뤄진 무형의 예술 춤이 한데 섞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연출을 맡은 지기학 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과 무예연구가이자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인 김영호 정조인문예술재단 이사 겸 한국병학연구소장, 그리고 진행자 서승원과 3명의 예인이 펼친 이날 무대는 마치 종합예술과 같았다. 화려한 연출 없이 검은 무대 위 오로지 빛과 그림자, 검만 있을 뿐이었다. “검은 원래 병기이고, 춤은 아름다움의 세계입니다. 그 두 세계 사이의 간극은 상상 이상으로 큽니다. 이번 무대는 그 경계를 넘는 순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기록 속에만 남아 있던 검술이 다시 살아 움직이고, 그것이 춤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지기학 감독의 말처럼 이날 무대에선 ‘검’의 예술이 펼쳐졌다. 무대는 총 8막으로 이어졌다. 1~3막에서는 윤자경·김재성·신미경 세 명의 예인이 각각 ‘검녀’, ‘무제’, ‘검무랑’을 선보였다. 음악도, 화려한 의상도 걷어낸 채 오로지 자연의 새소리와 칼, 몸의 결만이 남았다. 맨발에 칼을 쥔 여인이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재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순간, 관객들은 숨을 삼키며 그들의 칼 끝만을 바라봤다. 4막 ‘검선(劍仙) 김광택’은 검무와 검술의 경계를 상징적으로 풀어낸 대목이었다. 영·정조 시기에 실존했던 검술의 명수 김광택은 거문고 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군영의 병장기와 검술이 관무재를 거쳐 담장을 넘어 민간으로 스며들고, 그 과정에서 ‘공격의 칼’이 ‘춤의 칼’로 변모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무대 위 서사로 펼쳐졌다. 정조의 군사들이 펼쳤던 검술 정신이 민간에 스며들어 검무가 되고, 그것이 다시 궁중으로 돌아온 것이 아닐까하는 상상이다. 5막으로 넘어가며 무대는 반전됐다. 왕이 직접 진두지휘하며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기록 속 장면들이 무대에 구현됐다. 5~7막 김영호 무예연구가는 직접 시연과 해설을 곁들이며 정조의 강군 육성 정신과 이를 연습했을 그 시절 군사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마침내 두 여인만이 남았다. 마지막 8막 ‘칼검(劍)·춤무(舞)’ 무대였다. 군복에 해당하는 전복과 전대, 군모인 전립까지 착용한 두 여인이 서로의 모양새를 살펴주듯 마주 보며 칼을 들었다. 몸을 뒤로 젖혀 크게 휘두르는 동작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졌다. 이윽고 칼을 내려놓고 등을 맞댄 두 여인의 뒷모습은 긴 여운을 남겼다. “검무는 단순한 춤이 아니라, 본래 조선이 갖고 있던 가장 건강한 몸의 기억”이라며 “이 무대는 그 잘린 역사와 정신을 다시 잇는 작업”이라고 말한 김영호 연구가의 각오는 수많은 관객에게 가닿았다. 그 옛날 국왕과 함께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했던 박제가가 어느 날 묘향산을 여행하다가 보았다는 검무의 인상에 관한 명문은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열린 회갑연에서 검을 들고 그곳을 누볐을 31살의 의녀 ‘춘운’과 24살의 침선비 ‘운선’ 두 여인의 향기를 현대의 관객에게 오래도록 남기었다. “어우러져 싸울 때는 네 자루가 서리를 날리고, 갈라졌을 때는 두 자루 번개를 일으키네. 검 기운 벽에 어른어른 파도 희롱하는 어룡의 형상이네”(박제가, ‘검무기’ 중). ● 관련기사 : 정조의 검무, 230년 만에 무대 위로… 화성행궁에서 ‘칼검 춤무’ 첫 공개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1201580080
개관 15주년을 맞은 갤러리세인(강남구 청담동 소재)이 오는 17일까지 두 번째 기획시리즈로 박종호·황은화 작가 초대전을 진행한다. 앞서 지난 11월5일부터 27일까지 김순철·김영환 작가의 작품으로 꾸민 첫 번째 기획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마친 갤러리세인은 2011년 개관전 주제이기도 한 ‘작가주의’를 비롯해 진정성과 초심을 뜻을 담아 기획전을 꾸리고 있다. 지난 2일부터 시작된 기획전 2부 전시는 ‘Sincere Artist’를 부제로 갤러리세인 초기에 함께하며 독창적인 작품으로 주목을 받은 수원 기반의 황은화 작가와 키아프 서울(Kiaf Seoul)에 몇 차례 소개되기도 한 박종호 작가가 함께한다. 정영숙 갤러리세인 대표는 “박종호, 황은화 작가의 작품은 겉으로는 다르다”며 “하지만 내용적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집요한 집중력,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성실한 일상이 많이 닮았다”고 설명한다. 두 작가의 작품은 회화적 표현방식에는 차이를 보이지만 각자의 언어를 내면에서 끌어내 진중하고 철학적인 사유의 삶이라는 점에선 일맥상통한다. 이번 전시에 박종호 작가는 기존에 발표된 작품 일부와 2025년 작업물 등 29점을 선보이고 있다. 신작의 가장 큰 변화는 ‘붓질’로 기존에는 형상에 집중해 표면을 매끄럽게 표현했다면 최근 작품들은 붓터치를 드러내며 거친 면을 숨기지 않는다. 갤러리세인이 2011년 개관한 이후 몇 차례 전시를 함께해 온 황은화 작가는 이번 개관 전시에 2025년 작업물 8점을 공개한다.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한 황 작가는 30대에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그 당시에 이미 회화를 넘어 공간 연출을 하는 설치미술, 작가에게 중요한 오브제를 나무로 깎아 만든 형태(컵, 의자)를 캔버스에 부착하는 등 2차원 캔버스에 3차원의 설치를 꾀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 작품 중 ‘지혜의 열쇠’ ‘땅의 노래’ ‘흔들리며 피는 꽃’ 등에 등장하는 지팡이와 컵의 손잡이에도 작가는 ‘부분적 입체’ 표현 방법을 선택했다. 황은화 작가는 “부분 입체 표현은 정면으로는 평면적으로 보이지만 측면에서 바라볼 땐 새로운 모습으로 보인다”며 “내가 본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닌 또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적인 입체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지혜의 열쇠’이 오브제로 선택된 지팡이는 가파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인간의 사고를 위협하는 것들로부터 청년과 우리 아이들을 지키고픈 작가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온화한 색조는 어른들의 포용력을 대변하고 밝고 경쾌한 색깔은 긍정의 에너지를 나타낸다. 여기에 더해진 섬세한 붓터치는 작가의 염원이기도 하다.
내년 정식 개관을 앞둔 화성예술의전당이 첫 시범공연을 통해 무대와 시설을 시민에게 선보인다. 오는 27일 오후 4시 30분 예술의전당 동탄아트홀에서 ‘금난새&성남시립교향악단’ 초청 공연이 열린다. 이번 공연은 정식 개관을 앞두고 공연장 무대, 조명, 음향 등 시스템과 운영 전반을 사전에 점검하기 위한 시범 공연으로 화성시민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지휘자 금난새는 창의적인 해석과 재치 있는 해설로 관객과의 소통에 강점을 지닌 인물이며 성남시립교향악단은 다양한 혁신적 프로그램으로 주목받아왔다. 이날 악단은 ‘Classic Gala Concert’는 ▲존 윌리엄스 영화 ‘스타워즈’ 모음곡 ▲사라사테 ‘찌고이네르바이젠’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1악장’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 주요 아리아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4악장’ 등 영화음악, 오페라 아리아, 관현악 명곡을 두 파트에 걸쳐 선보일 예정이다. 두 주체의 협연은 개관을 앞둔 화성예술의전당에 첫 하모니를 더하며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시는 공연이 끝난 후 관람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시민 의견을 수렴하고 향후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개선 사항을 도출할 예정이다. 이번 ‘금난새&성남시립교향악단’ 공연 예매가는 전석 1천원이며 예매는 예술의전당 누리집(3일 오픈)과 NOL티켓(9일 오픈)을 통해 가능하다. 시 관계자는 “이번 공연은 시민들께 새롭게 조성된 공연 환경을 가장 먼저 선보이는 뜻깊은 자리”라며 “지휘자 금난새와 성남시립교향악단의 수준 높은 연주를 통해 예술의전당의 예술적 가능성을 점검하고 내년 개관을 향해 더욱 정교히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사회·역사적 사유를 예술적 언어로 치열하게 구현한 연극 ‘미궁의 설계자’가 5~6일 안산문화재단 별무리극장에 오른다. 연극 ‘미궁의 설계자’는 지난해 제45회 서울연극제 우수작품상·연출상·연기상·신인연기상 수상과 제18회 차범석 희곡상을 수상했다. 2023년 월간 ‘한국연극’ 공연베스트 7에 선정되는 등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미궁의 설계자’는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의 상징적 공간으로 남아 있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건축한 인물을 중심으로 권력과 예술, 윤리와 책임과 관련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연극은 건축가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 정치적 사건을 단순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재능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고통의 실체 앞에서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등 연극이 예술적 요소로 다뤄야 할 인간·존재적 질문을 확장하며 보편적 공감을 끌어낸다. 무대는 치밀한 연출과 정교한 공연 미학을 통해 관객들에게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가는 과거의 비극을 다시 조명하고 현재의 우리에게 남겨진 책임과 윤리를 되묻는다. 무대는 아무것도 없는 백색의 공간에서 출발해 시간과 기억이 쌓이며 ‘건물’의 공간을 드러낸다. 연출은 건축적 공간감, 시간의 층위, 관객의 이동·시선 설계를 통해 ‘기억의 미궁’을 구현한다. 공연 관계자는 “이로써 관객은 단순히 바라보는 주체가 아닌 무대 공간 안에서 ‘이동’하고 ‘발견’하는 뒤섞인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고 전했다.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회에서 다양한 기념 행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권력의 양면성을 예술적으로 풀어낸 이색 전시가 관심을 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한준호(고양을)·임오경(광명갑) 의원이 공동 주최한 박형필 작가의 설치전 ‘개조심’이 3일부터 7일까지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열린다. 전시장에는 내란 주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인물을 상징하는 수십 마리의 개 모형과 다양한 설치물이 배치돼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품은 ‘개조심’이라는 익숙한 문구에서 출발했다. 박형필 작가(63)는 “장년층에게는 친숙하지만 요즘 세대에게는 낯설어진 문구 ‘개조심’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반려동물로 상징되기도 하지만 순간의 상황에 따라 공포의 대상으로도 변하는 존재를 통해 권력의 양면성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전시를 기획한 한준호 의원은 “군대를 동원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그 겨울밤을 지켜낸 시민들과 함께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어 “권력이 국민에게 공포가 될 때 이에 맞서는 시민들의 용기를 떠올리며 작품을 만들어온 작가에게 깊은 연대와 위로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는 비상계엄의 상흔을 예술적 언어로 되짚으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환기하는 자리로 평가된다.
가장 오래된 공동체 ‘가족’을 둘러싼 상처와 기억을 흥겨운 트로트 음악과 이야기로 풀어낸 창작뮤지컬이 경기아트센터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경기도극단의 2025년 창작 신작 뮤지컬인 ‘명랑가족’이 12일부터 14일까지 열린다. 뮤지컬 ‘명랑가족’은 트로트가왕 ‘심해룡’의 죽음 이후 남겨진 남매가 아버지의 유산 문제로 갈등을 겪으며 각자의 상처와 오해를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다. ‘유산’을 단순한 물질적 상속이 아닌 상처, 기억, 책임의 상징으로 확장하며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보편적 질문을 던져 가족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이번 작품은 대중에게 친숙한 트로트 선율에 극을 버무렸다는 점에서 경기도극단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트로트부터 발라드까지 다양하게 구성된 음악은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폭 넓은 경기도극단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명랑가족’은 2017년 초연 이후 전국을 누비며 사랑받은 ‘명랑시장’에 현대적 감성을 더한 창작 신작이다. 연령불문 관객층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담았으며 경기도극단 단원들의 무대 위 호흡과 신선한 앙상블이 극단만의 색깔을 극대화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제17회 한국뮤지컬대상 ‘극본상·작품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진 이들이 공연을 함께 꾸렸다. 연출 노우성, 극본 노우진, 작곡 J.ACO 등 외부 창작진이 합류해 탄탄한 서사와 음악적 깊이를 더했다. 노우성 연출은 “‘명랑가족’의 명랑함은 단순한 유쾌함이 아니라 상처를 직면하면서도 다시 웃을 수 있는 태도의 윤리”라며 “경기도극단 단원들의 진심 어린 연기가 만들어내는 울림이 관객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와 중국 출신의 사회 비평적 현대예술가 아이 웨이웨이(1957~)가 100년을 뛰어넘어 한 공간에서 만났다. 지난 10월 2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원형전시실에서 진행중인 MMCA 해외 명작 ‘수련과 샹들리에’는 시대적으로 양 끝에 있는 두 작품 사이에 국제미술 소장품 44점을 엄선해 전시하고 있다. 천장에 검은색 샹들리에가 달려있다. 무광의 검은색은 빛을 발산하는 대신 흡수하고 있지만 언뜻 보기엔 평범한 조명 기구와 다름 없다. 가까이 갈수록 그 실체가 드러난다. 척추, 두개골, 손가락 뼈 마디, 심장과 콩팥 등 인간과 동물의 장기로 구성된 이 물체는 샹들리에 모양을 한 죽음의 상징이다. 중국 출신의 현대예술가로 사진, 영상, 건축, 회화, 공공미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 비판적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 웨이웨이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작업한 ‘검은 샹들리에’는 빛을 밝히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샹들리에를 통해 화려한 삶 이면에 공존하는 죽음을 암시한다. 원형 전시실 내벽 너머엔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이 배치돼 있다. 넓은 전시실을 벽으로 나눈 외딴 공간이 연못 같고 모네의 작품이 그 위에 떠 있는 수련 그 자체 같다.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이 작품을 위한 독립된 공간이 주는 한가로움이 ‘수련'과 ‘샹들리에’가 갖는 100년의 시대적 간격만큼 아득하다. 가장 상반되는 전시 제목의 두 작품 외에도 미국의 대표적인 개념미술가 바바라 크루거의 사진 ‘모욕하라, 비난하라’(2010)가 전시장 입구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지와 텍스트를 결합하는 바바라 크루거 특유의 작업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날카로운 바늘이 눈을 찌르려는 순간은 담은 이미지 위에 '모욕하라 비난하라(Shame it, Blame it)는 문장을 배치했다. 이는 미디어와 시각적 이미지가 개인에게 가하는 위협과 폭력을 표현한 것으로 크루거의 문장은 온전한 진실과 고정관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풍만하고 둥근 형태, 과장된 비율의 신체 표현 등 독특한 스타일로 알려진 콜롬비아 출생의 페르난도 보테로(1932~2023)는 서구 중심의 미술사와 문화적 기준, 고정된 미적 기준에 대해 도전하며 다양성을 추구했다. 이번에 전시된 ‘춤추는 사람들’(2000)은 다양한 색의 조명이 비추는 실내에서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라틴댄스를 즐기고 있는 남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보테로 특유의 풍만한 인체 표현과 활기찬 분위기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이 지닌 열정을 느끼게 한다. 보테로는 춤, 음악, 놀이 등 다양한 삶의 형태를 화폭에 담아 자신의 배경인 라틴문화와 정서를 알리고자 했다. 이외에도 2021년 이건희컬렉션 수증을 통해 미술관에 소장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등 19~20세기 인상주의 대표 화가의 작품 16점과 국재 최초 미술품 물납제를 통해 소장된 중국 현대미술의 대표작가 쩡판즈의 ‘초상’(2007) 2점을 포함해 소장 이후 최초 공개작 4점 등 그동안 쉽게 볼 수 없었던 해외 거장 33명의 작품을 한 곳에 모았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특별한 주제나 연대기적 분류 대신 44점의 작품 한 점, 한 점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국제미술 소장품을 엄선해 마련한 전시”라며 “약 100년의 시간 사이에 놓인 서양미술의 장면들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2027년 1월 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