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청 화가가 그린 조선 사신들...김육·이덕수 초상화 속 숨은 역사 찾기 [전시리뷰]

“조선으로 가져온 초상을 본 친구들이 모두 광대뼈와 이마, 수염과 눈썹, 신체까지 닮지 않은 것이 없으나, 눈과 입만은 닮지 않은 듯하다고 하였다. (중략) 시옥은 본 바에 의거해 그렸으니 당연한 것을 어찌하리. 그러나 입 모양이 둥글게 처진 것은 어찌 내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덕수, ‘서당사재’ 중) 화려한 가죽이 덮인 의자 위 한 사내. 그림을 뚫고 나올 듯 권력과 기품이 느껴지는 태도와 함께 찌푸려진 눈에선 사대부의 고집스런 태도가 느껴지는 듯하다. 허나 그림에 얽힌 사연을 읽고 나면 그림 속 사내가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1735년(영조 11), 청옹제가 사망하고 건륭제가 즉위함에 따라 사신을 파견하면서 이덕수(1673-1744)는 부사로 차출돼 중국으로 향했다. 한양을 떠나 머나먼 청나라에 발을 내디딘 그는 사행길 중 청나라 화가 시옥에게서 받은 자신의 초상에 관한 후일담을 ‘서당사재’에 풀어냈다. 그 속엔 초상을 그릴 당시 눈을 찌푸렸던 연유와 눈병을 앓아 몹시 힘들었던 상황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300여년 전, 사신으로 향한 곳에서 현지의 화가가 붓끝으로 남긴 초상과 이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 사내의 솔직하면서도 담백한 이야기를 알고 나면 권위적으로 보이던 사내의 얼굴은 보다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실학박물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무장애 특별기획전 ‘중국에서 그려 온 초상使行肖像: 순간의 기록에서 영원한 기억으로’는 깊이 들여다볼수록 생동감과 활기가 느껴지는 전시다. 이번 특별전은 2008년 청풍 김씨로부터의 ‘김육 초상’과 2024년 전의 이씨로부터 기증 받은 ‘이덕수 초상’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사행초상의 역사·문화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마련됐다. 조선시대 국제교류의 생생한 현장을 드러낸 전시는 마치 그 옛날 말을 타고 사행길에 오르는 행렬과 머나먼 타지에서 함께하는 듯 그 시대로 보는 이를 데려가는 듯 하다. 김필국 실학박물관장은 전시에 관해 “찰나를 붙든 붓끝은 한 사람의 생김을 넘어 한 시대의 질서를 그려낸다”며 “외교의 현장에서 태어난 초상은 가장 생생한 역사의 증언이자, 오늘의 우리에게 건네는 기억의 초대장”이라고 표현했다. 총 4부로 이뤄진 전시는 ▲1부 ‘기록, 초상으로 남기다’ ▲2부 ‘신문물, 초상으로 이어지다’ ▲3부 ‘영원, 초상으로 기억하다’ ▲4부 ‘순간의 기록에서 영원한 기억으로’의 흐름으로 이어지며 77점의 작품을 통해 다채롭게 구성됐다. 조선시대 중국에 사신을 보내는 일은 국가의 공식 관례로 이는 중요한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명나라로 파견하는 것을 부경사행(赴京使行), 줄여서 ‘사행’이라 불렀고 이후 청나라 시대엔 ‘연경사행(燕京使行)’, 줄여서 ‘연행’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사행은 문화교류의 장이었다. 사신들은 명·청나라의 황제와 대신을 만나고 신물문을 접하며 보고 들은 것을 글과 그림으로 남기며 조선에 새로움을 더했다. 관람객은 산수화, 행사기록화, 지도 등 그들이 남긴 기록물을 살펴볼 수 있다. 그중엔 중국 화가가 직접 그려준 초상화가 있다. 이는 사신단의 생생한 모습이 담긴 자료로서 국내 약 9점이 현존한다. 이번 전시엔 명·청나라의 화가가 그려준 김육 초상 3점과 이덕수 초상 4점이 포함돼 있는데, 당시 역사·문화의 변모를 살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제작연도, 제작자, 제작 배경 등이 남아 있는 등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상당히 뛰어나다. 특히 명나라 화가 호병이 그린 김육 초상과 청나라 화가 시옥이 제작한 이덕수 초상에 주목할 만하다. 이는 서양화법이 동아시아 초상에 스며든 과정을 사실주의의 두 시선으로 살핀다. 김육(1580~1658)은 1636년(인조 14) 동지사로서 약 1년간 명나라를 다녀온 경험을 ‘잠곡조천일기’ 등 견문록으로 남겼는데, 사행 중 병자호란 발발 소식과 인조의 항복 소식을 접하며 당시를 생생히 전한다. 학을 수놓은 천조각의 짙은 녹색 관복에 사모를 쓰고 있는 ‘김육 초상전신좌상본’과 소나무 아래 학창의를 입고 서 있는 인물을 표현한 '김육 초상와룡관본․송하한유도’는 1636 성절사로 명에 갔을 때 제작됐다. 두 초상은 17세기 중반 초상 화풍을 잘 보여주는 예로 이후 명대 화풍의 조선 유입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그런가하면 전시는 초상화가 사람의 얼굴뿐 아니라 정신을 담는 예술임을 드러낸다. 조선의 초상은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그려진 사람의 얼과 마음을 느끼도록 그리는 두 가지의 방향성을 함께 추구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자식에 관한 그림 등 초상은 영혼의 눈을 통해 영원의 순간을 담아내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2025년 무장애 문화향유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돼 모든 관람객이 차별 없이 예술을 누릴 수 있도록 완전한 무장애 동선, 수어 영상, 자막·음성 해설, 촉각 자료 등을 제공했다. 누군가의 얼과 마음을 시각이란 하나의 요소가 아닌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의 눈으로 느껴볼 수 있다. 특히 마지막 4부 ‘순간의 기록에서 영원한 기억으로’에선 발달장애 예술가들과 함께 초상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확장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정형화되지 않은 독창적인 선과 대상에 대한 애정을 담은 자화상 ‘니얼굴 은혜씨’를 선보인 정은혜 작가 등 발달장애 예술가 5인의 작품 28점은 오늘날 초상에서 공존과 포용의 얼굴을 읽어 내려간다. 전시는 오는 3월1일까지다.

아프리카 노예들의 애환이 담긴 브라질 삼바… ‘브라질 리우 카니발' 전

강렬한 리듬, 열정적인 춤, 장대하게 이어지는 긴 행렬 등 보는 이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브라질 리우 카니발’의 현장이 파주에 재현된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수장고에서 내년 3월 15일까지 ‘브라질 리우 카니발: 아프리카의 영혼, 삼바의 리듬’ 전시가 개최한다. 파주관 측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축제를 직접 조사하고 참여하며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그중 ‘브라질 리우 카니발’에서 대표적인 삼바 전승단체로 활약하는 망게이라 삼바스쿨의 2025년 참가 자료 중 조형물 및 악기류 등 유형별로 수집해 들여왔다.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리우 카니발’은 준비기간과 규모, 이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수많은 관광객 등 모든 면에서 압도한다. 이번 전시는 삼바 문화 특유의 화려함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삼바’는 음악과 춤을 통해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고 현실의 고단함을 털어낸 노예들의 애환이 담겨있다. 아프리카에서 브라질 농장으로 강제 이주한 이들의 영혼이 담겨있는 삼바 문화가 점차 발전해 삼바 전승 단체인 삼바스쿨 간의 경쟁적 퍼레이드 형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 오늘날 ‘리우 카니발’이다. 매년 리우 카니발은 각 삼바스쿨별로 참가 주제가 다양하다. 이번 전시의 핵심이 된 망게이라 삼바스쿨은 지난 2025년 축제에서 ‘아프리카 반투계 민족의 브라질 강제이주와 고난, 공동체 연대 속에서 피어난 희망찬 미래’를 그렸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31년 세종 이전 건립을 대비해 세계민속으로 시선을 확장하고 특히 ‘축제’에 주목하고 있다. 2024년 조선과 서양의 천문도를 담아낸 ‘신·구법천문도’, 2025년 상반기 한국 전통 양식에 서양식 쓰임을 더한 ‘근대 책상형 반닫이’, ‘브라질 리우 카니발’ 등 주요 소재로 해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이 지향하는 세계민속으로의 주제 확장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중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지역 마다의 특수한 생활상과 예술성을 통해 문화가 갖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엿볼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첨단기술이 지역 간의 물리적 경계를 넘어 소통을 가능케 하고 지구촌의 다양한 문화 경험이 보편화된 현대에 국립민속박물관의 역할은 상호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의 장을 제공하는 박물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상반기 방문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지역의 삼바 축제를 시작으로 하반기에는 남부지역의 오남 축제에 참가하며 자료 수집을 진행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브라질 리우 카니발'을 시작으로 ‘수장고에서 만나는 세계’ 전시는 계속될 예정”이라며 “다양한 세계민속 조사와 자료 수집을 기반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도자부터 유리·금속까지…여주서 열리는 ‘경계 이후, 공예의 층위’

경기도 공예 생태계의 현재를 조망하고 공예의 미래를 사유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한국도자재단은 지난 달 23일부터 여주 경기생활도자미술관 1·2전시실에서 2025 경기도 공예주간의 성과를 집약한 기획전 ‘경계 이후, 공예의 층위’를 선보이고 있다. ‘경기도 공예주간’은 공예의 중심지인 이천, 여주와 수원 등 도심을 아우르며 도 전역을 잇고 공예인이 도민과 함께 어우러지는 참여형 축제로 진행됐다. ‘경계 이후, 공예의 층위’ 기획전은 경기도 공예주간의 주요 행사인 ‘경기공예페스타 수원·여주’에서 ‘CrossCraft: 사라진 경계’를 주제로 열린 공예융합·국제유리공예·시연 워크숍에서 나타난 실천과 감각을 하나의 흐름으로 재조망한다. 이번 전시엔 총 18명의 작가가 참여해 도자·유리·금속·섬유·목공·가죽·식공예·디지털 기반 작업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 40여 점을 선보인다. 공예가 물질에서 출발해 여러 경계를 통과하고 시간을 축적하며 확장되는 과정을 ‘물성–교차–지속’의 세 개의 키워드로 구조화했다. 1부 ‘물성’에선 창작 이전 재료가 지닌 고유한 결, 밀도, 시간성을 들여다본다. 흙·유리·금속·섬유·목재 등 물질이 품고 있는 ‘형태 이전의 정체성’을 탐구하며, 공예의 출발점으로서 물질의 잠재성을 조명한다. 조영각, 이종민, 정정훈 작가의 작업으로 구성된다. 2부 ‘교차’는 전통과 현대, 손기술과 디지털, 공예와 디자인 등 서로 다른 영역이 교차하는 지점을 다룬다. 오늘날 공예가 하나의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열린 구조로 확장됨을 드러낸다. 킷 폴슨, 김용주, 현광훈, 김송이 작가 등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3부 ‘지속’에선 공예가 시대를 통과하며 축적해온 시간의 층위와 삶을 다룬다. 전통과 생활문화, 현대적 감각이 공존하는 작품들을 통해 공예란 문화적 실천임을 강조한다. 3부는 이승희, 조나단 치, 전서연, 김정현 등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기획전은 경기도 공예주간의 주요 프로그램을 통해 생산된 창작품과 참여 작가의 관련 작품을 함께 다루며 성과를 공유하는 장으로 의미를 더한다. 전시 관련 정보는 한국도자재단 누리집 또는 경기공예창작지원센터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2월22일까지.

'보리, 밀, 옥수수'를 통해 본 식문화 변화상…'탄수화물 연대기' [전시리뷰]

오늘 하루 먹은 것을 떠올려보자. 밥, 빵, 라면, 과자, 떡…. 대부분 탄수화물, 곡물에서 비롯된 음식들이다. 탄수화물은 생존의 필수적인 영양소로 식사 구성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 탄수화물에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 탓에 안먹고는 살 수 없는 애증의 존재가 됐지만 배고팠던 과거엔 높은 열량을 내는 탄수화물을 조금이라도 더 먹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던 때도 있었다. 국립농업박물관이 내년 3월8일까지 개최하는 기획전시 ‘탄수화물 연대기’는 탄수화물을 함유한 곡물 중 보리, 밀, 옥수수를 통해 광복 이후 식문화의 변화상을 살펴보고 세대별로 곡물에 얽힌 기억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윤지은 학예연구사는 “우리 민족의 주식인 ‘쌀’은 지난 2023년 개최한 제1회 기획전 ‘농農, 문화가 되다’를 비롯해 여러 전시에서 다각도로 다뤘다”며 “이번 전시에서는 쌀을 제외한 제2, 제3의 곡물에 대한 이해를 더하고자 ‘보리, 밀, 옥수수’를 앞세웠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크게 3부로 구성됐다. 1부 '탄수화물의 어제’는 신석기시대 농사를 시작한 이래 주된 작물로 자리 잡은 보리, 밀, 옥수수를 확보하고 더 많이 수확하기 위해 위한 조상들의 필사의 노력을 비춘다. 중국 농서에만 의지하던 것에서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끔 지어진 최초의 농업지침서 ‘농사직설’(1429년)에도 보리와 밀에 대한 언급은 있다. 보리의 다른 말인 대맥(大麥)과 그보다 작아 붙여진 밀의 이름 소맥(小麥)에 대해 이 책에서는 “새 곡식과 묵은 곡식 사이의 식량으로 농가에서 가장 긴요한 작물”로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수확한 식량이 모두 떨어지고 봄철 기근을 나기까지 보리와 밀은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 작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옥수수에 대한 첫 언급은 조선의 통역 기관인 사역원에서 편찬한 중국어 학습서 ‘역어유해’(1690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외교와 교역에 필요한 중국어를 익히기 위해 만든 이 책에서 옥수수는 ‘옥을 닮은 수수’라는 뜻의 ‘옥슈슈玉蜀蜀’로 기록돼 있다. 2부 ‘탄수화물의 대명사들’에서는 지난 100년간 일제강점기, 6·25전쟁, 도시화 및 산업화 등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으며 바뀌어 온 보리, 밀, 옥수수의 위상을 살펴보고 있다. 정부는 1960~70년대에 들어서며 ‘혼분식 장려운동’을 펼친다. 윤 학예사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이런 노력이 단순히 장려를 넘어 식문화를 제도화 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보리혼식장려요원증’으로 당시 경기도에서는 각 지역의 통·반장을 혼식 지도 요원으로 임명해 가정과 지역사회 전반에 혼식 실천을 확산시키고자 했다. 또한 1960~70년대 학교에서는 당시 시행된 혼분식 장려운동으로 쌀밥에 보리나 잡곡이 30% 이상 섞여 있지 않으면 벌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은 농촌진흥청의 ‘봄보리 가꾸기’ 자료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재배 시기와 방법을 알기 쉽게 정리한 농업 홍보자료로 품종 선택, 파종 간격, 병충해 관리 등 식량 증산과 자급을 목표로 한 정부의 농업기술 보급 정책을 보여준다. 삼국시대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되는 ‘밀’은 값이 비싸고 귀한 곡물이었다. 윤 학예사는 “정약용 선생은 ‘아언각비’에서 밀가루를 진가루(眞加婁)로 표현할 정도로 귀하게 여겨졌다”며 “광복 이후 미국의 식량 원조로 대량의 밀이 유입되고 정부의 분식 정책으로 라면 소비량이 급증하며 친근한 곡물이 됐다”고 설명했다. 3부 ‘탄수화물의 오늘과 내일’에서는 광복 이후 식량 증산을 위한 노력과 쌀 생산량 증가 이후 변화된 우리의 식문화를 조명하고 있다. 1973년 당시 내무부, 문교부, 농수산부, 보건사회부 장관은 공동명의로 ‘혼분식에 관한 담화문’을 발행해 ‘밀가루 또는 잡곡 30% 이상을 혼합합시다’ 등 가정과 음식점, 양곡가공업소에서 지켜야 할 지침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위반하는 음식판매업자와 양곡가공업자는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은 1977년 정부가 ‘쌀 주곡 자급’을 공식화 하며 식량 증산에서 품질 향상으로 급변한다. 맛과 품질을 쫓는 식문화가 자리잡고 우리의 ‘밥상’은 단순한 식생활 공간을 넘어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화 요소로까지 자리하게 된다. 1984년 월간 ‘식생활’의 창간호 발간사는 이런 변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단적인 예다. 발간사에서는 “급격한 세계화와 문화적 진보 그리고 풍요로운 오늘날의 생활에 맞춰 단순히 포만감을 느끼는 시가 보다는 영양과 맛을 즐기는 새로운 식생활로 나아가기 위해 잡지를 창간했다”고 밝히고 있다. 윤 학예사는 “관람객이 선호하는 곡물을 직접 선택하고, 다른 관람객들의 결과를 함께 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 체험 프로그램 통계를 보면 연령대 별 밥·빵 선호율이 확연히 다르다”며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6·25, 현대화와 세계화까지 격변하는 근현대를 겪은 세대가 어우러져 사는만큼음식, 식문화, 선호하는 곡물도 저마다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전시는 내년 3월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신상호: 무한변주’展…흙의 예술가 신상호의 60년 발자취

한국 현대 도예의 역사를 이끌어간 신상호 작가의 60여 년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달 말 개최한 국립현대미술관 역대 최대 규모의 도자 작가 개인전 ‘신상호: 무한변주’에선 전통 도자에서 조각, 회화, 건축 등 경계를 넘나드는 신상호의 전작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시 제목 ‘신상호: 무한변주’는 국내 도자의 전통적인 형식과 의미를 해체하고 새 질서를 세워온 신상호(1947~)의 여정을 상징한다. 5부로 구성된 전시는 도자 90여 점과 아카이브 70여 점을 다루며 현대사의 흐름 속 사회와 미술의 변화를 마주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1부 ‘흙, 물질에서 서사로’는 1960~1990년대 신상호의 도자 세계를 조명한다. 이천에서 장작가마를 운영하며 전통 도예의 길에 들어선 그는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이천의 도자 장인들과 일본 전시에 참여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신상호는 국내 최초로 가스가마를 도입하고 정교한 디자인의 생활 식기 제작과 화가와의 협업 등 전통의 현대화를 도모했다. 1973년 국내 첫 개인전을 계기로 선보인 ‘아(我)’ 연작은 초기 정체성 확립을 살펴볼 수 있다. 2부 ‘도조의 시대’는 신상호의 도자 조각(陶彫)을 다룬다. 1984년 미국 교환교수 시절, 추상표현주의 도자를 경험한 그는 조각과 회화 요소가 결합된 조형성을 추구하며 ‘꿈’ 연작을 발표했다. 신상호는 한국 도예의 국제화를 위해 88 서울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국제도예워크숍’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1995년 영국에서 아프리카미술을 경험하고 흙의 원초적 생명력과 힘을 형상화한 ‘아프리카의 꿈’ 연작으로 형태적 언어를 확립했다. 3부 ‘불의 회화’는 2001년 이후 신상호의 건축 도자의 실험을 600여 장의 도자 타일과 건축 아카이브를 통해 조명한다. 그는 도자와 건축의 결합을 실험하며 대형 외벽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서울 센트럴시티 고속터미널 ‘밀레니엄 타이드’를 시작으로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금호아시아나 사옥, 서초 삼성타운 등 외벽에 ‘구운 그림’ 도자 타일을 설치했다. 4부 ‘사물과의 대화’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수집과 이를 통한 창작활동을 다룬다. 컬렉터로도 잘 알려진 작가의 수집품을 작업장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 그는 서로 다른 문명과 시대의 사물들의 수집에서 영감을 받아 ‘부산물’(2014)이나 ‘표면, 그 너머’(2010년대) 등 혼종의 연작을 선보였다. 5부 ‘흙의 끝, 흙의 시작’는 2017년부터 흙판을 금속 패널에 부착하고 다채로운 색을 입히는 도자 회화를 조명한다. ‘흙으로 그린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생명수’(2017)와 ‘묵시록’ 연작(2017~)은 흙의 유기적 패턴과 색의 층위가 한데 어우러진다. 도자 회화는 1980년대 도조 작업 이후 이어져 온 ‘조각과 회화의 통합’이란 그의 예술적 탐구가 가닿은 곳이다. 전시 연계 교육프로그램인 ‘흙에서 태어난 상상동물’도 마련돼 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흙이라는 물질의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한국 현대 도예에 대한 시각이 확장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3월29일까지다.

수원·부천·화성, 2025년 피날레 장식할 '제야 음악회' 풍성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시기, 음악과 함께 풍성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채로운 공연이 열린다. 우리 지역 주변에서 열리는 음악회와 함께 한 해를 뜻 깊게 마무리하는 것은 어떨까. ■ 수원문화재단, ‘2025 송구영신 음악회’ 수원문화재단은 31일 오후 10시30분부터 수원 화성행궁 광장 일원에서 2025년을 마무리하고 2026년 신년을 맞는 ‘2025 송구영신 음악회’를 개최한다. 이번 음악회에는 5인조 재즈밴드 ‘리치파이’와 전통 타악 그룹 ‘소리스’가 무대에 오른다. 또한 ‘싱어게인4'에서 ‘19호'로 활약중인 가수 이상웅이 무대에 오른다. 수원문화재단 관계자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다채로운 무대를 통해 시민들과 함께 한 해를 뜻깊게 마무리하고자 한다”며 “온 가족이 함께 따뜻한 새해를 맞이하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2025 송구영신 음악회’가 펼쳐질 화성행궁 광장 옆 여민각에서는 새해맞이 경축 타종 행사와 떡국 나눔 행사도 함께 마련된다. 자세한 내용은 수원문화재단 누리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부천아트센터 특별기획 ‘2025 제야음악회’ 2025년과 2026년의 시작을 가장 클래식하게 물들이는 시간, ‘BAC 특별기획 2025 제야음악회’가 31일 오후 10시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생상스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중 ‘바카날’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사라사테 ‘치고이너바이젠’, 레하르 오페레타 ‘미소의 나라’ 중 ‘당신은 내 마음입니다’, 구노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중 ‘꿈속에 살고 싶어’,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 중 ‘저녁 별의 노래’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아리아 위주의 갈라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된다.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제4대 상임지휘자 아드리앙 페뤼숑이 지휘를 맡으며 소프라노 강혜정,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테너 이범주, 바리톤 양준모, 바이올린 장유진 등이 협연자로 화려한 무대를 완성한다. 섬세하고 풍성한 음향을 자랑하는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오케스트라와 성악, 바이올린의 매력이 어우러져 2025년 마지막 밤을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 화성예술의전당 개관 기념 ‘제야 콘서트’ 내년 1월 15일 공식 개관을 앞두고 있는 ‘화성예술의전당’이 화성시 대표 문화공간으로의 출발을 기념하고 시민들과 희망찬 병오년 시작을 축하하기 위해 31일 오후 9시30분 ‘화성예술의전당 준공기념 제야 콘서트’를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화성예술의전당 건립을 위해 노력해온 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시를 대표할 공연장을 기다려 온 화성시민의 관심과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마련됐다. 음악감독 김문정이 이끄는 The M.C.오케스트라와 뮤지컬 배우 최정원, 홍지민, 박건형, 민경아, 에녹 등이 주옥같은 뮤지컬 넘버를 시민들에게 선사하며 연말 무대를 감동으로 채울 예정이다. 또한 새해맞이 카운트다운과 용주사에서 진행되는 제야 타종행사 생중계로 마련돼 있다. 이번 공연은 화성시민을 대상으로 전석 무료로 진행된다. 예매자 및 동반자를 포함한 모든 관람객은 화성시민임을 증빙해야 한다.

2026년 경기도미술관에서 엿보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미술

한국현대목판화 70년의 역사와 동시대의 기후위기 문제 등을 올해 미술적 관점에서 되짚었던 경기도미술관이 내년엔 개관 20주년을 맞아 5개의 특별 전시를 선보인다. ‘환대’와 ‘연대’를 키워드로 미술관의 역사를 되짚고 미래 방향성을 제시하는 점이 눈에 띈다. 봄봄봄 프로젝트 ‘폼폼폼’을 비롯해 ▲소장품전 ‘미완의 대화, 사이’ ▲관객체험형 전시 ‘지모마커넥트’ ▲청년작가전 ‘우리의 여름에게’ ▲국제전 ‘아시아 현대미술’ 등 총 5개 전시를 통해 경기도미술관이 20년간 축적해온 가치를 재조명하고 지역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미술관으로의 도약을 모색한다는 전략이다. 경기도미술관은 2026년을 여는 첫 지역 기반 전시로 미술관과 호흡해 온 문화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 ‘폼폼폼’을 개최한다. 3월 2일부터 25일까지 24일간 경기도미술관의 주요 조각 작품이 설치된 야외조각공원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로 문화자원봉사자라는 공동체 안의 작은 연대를 이끌어낸다. 경기도미술관이 2026년 지향하는 ‘환대’ 개념을 문화자원봉사자들과 더불어 고민하며, 미술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장소임을 확인하는 취지로 펼쳐질 예정이다. 개관 20주년 소장품전 ‘미완의 대화, 사이’는 3월 26일부터 6월 14일까지 열린다. 경기도미술관 소장품 수집의 역사와 그간의 방향성을 되짚어보는 이 전시는 지난 20년간 미술관이 어떤 가치를 수집하고 보존해 왔는지를 조명한다. 김선영, 나기현 학예연구사가 기획하는 이번 전시는 소장품이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닌, 현재와 미래를 잇는 ‘미완의 대화’이자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가능성임을 제시한다. 관객체험형 전시 ‘지모마커넥트’도 마련된다. 경기도미술관은 관람객을 처음 맞이하는 1층 프로젝트갤러리를 개방형 공간으로 리모델링해 참여 전시 공간으로 운영한다. 3월 26일부터 8월 17일까지, 9월 15일부터 12월 31일까지 나뉘어 진행되며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다양한 현대미술작품 감상 경험을 제공하고 미술관과 관객이 능동적으로 연결되는 장이 될 지 주목된다. 신진 예술가를 발굴하고 조명하는 청년작가전 ‘우리의 여름에게’는 7월 16일부터 9월 27일까지 만날 수 있다. 김현정, 심민하 학예연구사가 기획하는 전시로 개관 20주년을 맞이해 21세기의 1분기를 관통하는 동시대 미술의 현장에서 새로운 예술적 가치와 지향으로 시대를 진단하고 표현하는 신진 예술가들이 참여한다. 아시아의 현대미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국제전 ‘아시아 현대미술’은 10월 29일부터 2027년 2월 14일까지 열린다. 이채영, 유채린 학예연구사가 기획하는 이 전시는 아시아의 현대미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미디어아트, 설치, AI, 회화, 조각, 퍼포먼스,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면서도 경기도 지역의 다문화·이주·노동 현실을 아시아적 맥락과 연결하고, 탈식민주의의 역사와 현재를 시각화한다. 경기도미술관 관계자는 “미술관을 지역 커뮤니티와 아시아의 다양한 목소리가 만나는 공유지로 구축함으로써, 경기도미술관의 20년이 지역을 넘어 아시아로 확장되는 의미를 담고자 한다”고 전했다. 전시의 개막과 개관기념일에 맞춰 관련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미운오리새끼’의 꿈,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는 용기’ [공연리뷰]

현대사회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다. 생각하고 바라보는 방식, 취향, 성장 과정, 그리고 현재 처한 환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하며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편견과 선입견은 불협화음을 낳고, 때로는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어린이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들 역시 저마다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과 두려움 또한 모두 다르다. 또래 간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저마다 겪는 어려움과 힘든 상황도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황 앞에서 좌절에 머무르기보다, 이를 극복하고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일 것이다. 지난 20~21일 빛누리아트홀 무대에 오른 수원시티발레단의 창작 뮤지컬발레 ‘미운오리새끼’(예술감독 김문신, 안무 함도윤)는 어른과 어린이 모두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오리새끼’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공연이다. 원작이 ‘어느 무리에 속하든 태생적 조건의 당위성’을 내포하고 있다면, 이번 작품은 ‘다름을 인정하는 용기’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화해에 이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이한 알에서 깨어난 초라한 존재 ‘미추’는 친구들과 다른 동물들로부터 ‘미운오리새끼’라 불리며 따돌림을 당한다.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던 미추는 어느 날 호숫가에서 ‘달빛요정’을 만나 ‘자신을 믿고 용기를 내라’는 응원을 받고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다. 힘든 여정 중, 갈대숲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파랑꼬리여우’를 만나게 되고, 둘은 차별 없이 살아가는 ‘무지개 동물나라’로 향한다. 그곳에서 받은 깊은 감동은 미추로 하여금 댄스 축제에 참가하기로 결심하게 만든다. 파랑꼬리여우와 함께 출전한 축제에서 우승한 미추는 용기를 내어 자신이 과거에 ‘미운오리새끼’였음을 고백한다. 이후 가족과 친구들을 감싸안으며 용서와 화해의 눈물로 공연은 마무리된다. 이번 공연은 예술감독의 치밀한 연출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안무가 돋보였다. 물 흐르는 소리와 갈대숲으로 꾸며진 무대는 호숫가의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재현했으며, 장면 전환은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함께 빠르게 진행돼 몰입도를 높였다. 각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과 조명은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고, 오리·고양이·청개구리·여우 등의 의상과 분장은 관객을 무대 속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분장한 무용수들의 말 없는 몸짓은 ‘따돌림’, ‘모험’, ‘용기’, ‘화해’라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또렷하게 전달했다. 슬픔과 기쁨, 긴장과 두려움, 그리고 용서와 화해의 축제로 이어진 공연은 어느새 막을 내렸다. 누군가는 질문한다. “미추는 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나요?” “친구를 따돌려도 되나요?” 사실 처음부터 ‘미운오리새끼’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과 동물의 마음속에 자리한 편견과 선입견이 있을 뿐이다. 다원화되고 다문화된 현대사회는 이제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용기를 요구한다.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수원시티발레단의 ‘미운오리새끼’가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편견과 따돌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미추가 어려움을 이겨내며 성장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가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여주의 마지막 선비 ‘직당 신현국’…‘깊은 울림’으로 되살아나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라는 격랑의 시대 속에서도 올곧은 선비의 지조와 유학자의 품격을 끝까지 지켜낸 여주의 대표적 선비, 신현국(1869~1949) 선생의 삶과 문학 세계를 조명하는 특별전 ‘직당 신현국 선생의 깊은 울림을 만나다’가 여주에서 막을 올렸다. 여주 강변유원지길에 위치한 금은모래 작은 미술관에서 27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특별전은 직당 선생의 한시를 현대적 감각과 전통 서풍을 아우르는 서예가 전기중의 필체로 만날 수 있다. 경기 서예으뜸이로 선정된 바 있는 전씨는 문자에 담긴 정신을 시각적 울림으로 확장한다. 직당 신현국 선생은 여주 가남읍 본두 1리(소곡리)에서 태어나 평생을 고향에 머물며 후학을 기르고 유학을 실천한 인물로 구한말 대유학자가 지어 준 그의 호 ‘직당(直堂)’은 ‘곧고 바르게 살아가라’는 뜻이 담겨 있다. 선생이 남긴 문집 ‘직당집’에는 나라를 잃은 지식인의 고뇌와 시대에 대한 성찰, 자연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지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힘차면서도 절제된 획, 여백을 살린 전기중의 해석은 직당의 선비 정신의 깊이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이번 전시엔 직당의 작품 외에도 ‘등황학산’, ‘이릉회고’, ‘여제우상효양산은선암’ 등 남한강과 세종대왕릉(영릉)·효종대왕릉(녕릉)을 노래한 대표 한시를 비롯해 농촌의 계절과 민초의 삶을 담담히 담아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기획자 이장호씨는 “격동의 시대에도 향촌 사회의 모범으로 살았던 직당 선생의 삶과 문학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성찰과 위로를 준다”며 “이번 전시가 여주의 정신문화 자산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4일 열린 개막식에는 이항진 전 여주시장과 지역 문인 등 30여 명이 참석해 여주가 낳은 선비의 정신을 함께 되새겼다.

영혼이 안식하고 자아를 찾는 공간… ‘집 그리고 또 다른 장소들’ 전시

한국과 캐나다 예술가들이 바라본 ‘집’을 통해 두 나라 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전시 ‘집 그리고 또 다른 장소들’을 주제로 한 순회전이 내년 2월 15일까지 용인 다올갤러리에서 열린다. 2024-2025 시즌 광주비엔날레 캐나다 파빌리온에서 첫 선을 보인 이번 전시는 2025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역전시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광주·캐나다 협업 프로젝트가 지역을 넘어 수도권으로 확장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특히 중앙 기관 중심의 기존 순회전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기반의 민간 갤러리를 통해 경기 지역에 소개된다는 점은 우리나라 지역 예술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전환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6일부터 용인에서 시작된 ‘집 그리고 또 다른 장소들’은 캐나다 북극 킨나깃(kinngait) 출신 이누이트 예술가 18명과 이 지역을 탐방한 작가와 기획자의 시선으로 포착한 북극의 삶과 풍경을 담고 있다. 김설아, 이조흠, 주세웅 작가와 이선 기획자는 북극의 자연환경, 인간의 삶, 동물과의 관계, 전통문화 등 다양한 요소를 탐구하며 ‘집’이라는 주제를 새롭게 사유했다. 또한 이누이트 예술가 쿠비안턱 푸드라, 카우육 푸드라 등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이누이트 예술의 숭고한 정신과 한국 작가들의 섬세한 해석이 만나 ‘집’이 단지 머무는 장소가 아닌 영혼이 안식하고 자아를 형성하는 ‘존재의 터전’임을 증명하며 한국과 캐나다 두 나라의 예술가들이 삶에 가장 깊은 근원인 ‘집’과 ‘고향’을 주제로 교류하며 만들어낸 관계의 결실을 조명한다. 김경호 다올갤러리 대표는 “이누이트 예술가들과 한국 작가들이 서로의 삶과 환경을 나누며 발견한 ‘집’이라는 주제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근원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며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북극의 풍경 속에서 또 다른 장소의 의미를 상상하고, 자신만의 ‘집’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집이라는 공간을 통한 문화적 교류와 삶을 성찰하게 될 이번 전시는 내년 2월 15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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