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못했지만 기억해야”...하와이 이민 1세대 재조명 특별전

인천시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인천 출신 하와이 한인 이민 1세대의 삶과 유산을 재조명하는 특별기획전 ‘기록되지 못한 역사, 기억되어야 할 이름들’을 연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오는 8월31일까지 구 제물포구락부에서 열린다. 지난 1900년대 초 하와이로 이주한 한인 이민 1세대가 남긴 다양한 기록물과 유품을 통해 조국을 떠나 타국에서 외롭게 살아간 이들의 삶과 정신을 생생하게 조명한다. 전시는 하와이 이민자들의 삶의 흔적이 담긴 사진, 일기, 노동계약서 등 다양한 기록물과 생활용품 등 모두 65점의 유물을 공개한다. 이 유물은 이민 1세대의 문화적 자산을 총망라하고 있으며, 그들의 고단했던 이민 생활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특히 하와이 한인 공동묘지에서 직접 채록한 인천 출신 이민자들의 묘지 탁본과 사진은 타국에서 이름 없이 생을 마감한 이들의 삶을 다시 불러내고, 잊혔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소중한 기록이다. 시는 특별전과 함께 하와이 한인미술협회 및 워싱턴 미술협회 소속 작가 8명이 참여하는 연계 전시 ‘디아스포라의 시선, 예술로 이어지다’도 선보인다. 전시는 한민족의 이주 역사와 정체성을 예술로 풀어낸 다양한 작품을 공개해 시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윤도영 시 문화체육국장은 “하와이 이민사는 단순한 이민사를 넘어, 독립운동의 숨은 뿌리이자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형성사”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전시가 기록되지 못한 이민자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일으켜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잊혀진 역사를 시민들과 함께 기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전시는 무료이며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제물포구락부 누리집을 참조하거나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외로움’을 예술로 바라보다…‘섬 프로젝트: Linking Island’

‘외로움’을 예술적 관점으로 조망해 위축된 공동체의 관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마련됐다. 외로움을 개인의 감정으로 치부하지 않고 공동체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임을 환기한다. 파주 아트센터 화이트블록은 지난 1일부터 기획전 ‘섬 프로젝트: Linking Island’를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박물관·미술관 주간’의 주요 프로그램인 ‘뮤지엄×즐기다’ 공모에 선정돼 문체부가 주최하고 한국박물관협회가 주관한다. 이번 전시는 권혜성, 윤지영, 이영욱, 임소담, 정찬민, KL 등 6명의 작가가 참여해 외로움을 복합적인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바라본 회화, 조각, 설치, 영상 총 45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권혜성 작가는 한지와 먹, 유화와 에어브러시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자연으로부터 얻은 생명력을 강렬한 선으로 표현한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에서 심리적 방황을 겪은 권 작가는 제주도의 거친 바람과 빗속에서 견디는 식물의 에너지를 통해 삶과 자연의 본질적 순환에 대해 깨달았다. 이에 ‘여름 비 바다 수영 해파리 풍경’ 등 그의 작품에는 자연의 리듬이자 외로움을 이겨내는 생명력의 상징으로 선이 등장한다. 인간과 자연이 공명하는 순간,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윤지영 작가는 영상 작품 ‘오죽 -겠, -으면’을 통해 현실에서 겪는 불안과 고통에 맞서는 개인의 내면을 포착했다. 가족을 돌보며 매일을 살아내는 영상 속 인물은 사소한 일상적 의식과 자기최면적인 반복된 행동을 통해 불안을 견딘다. 이 같은 모습은 각자의 섬처럼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비슷한 고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 작가는 개인적 고립의 문제를 인간 전체의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하며 공감으로 소통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업을 이어간다. 특히 이영욱 작가는 낯설고 불안정한 형상을 회화작업으로 재탄생시켰다. 조작된 이미지의 파편들을 해체하고 중첩하는 방식을 통해 내면의 감정과 사회적 구조를 교차한다. 익숙한 장면을 강박적으로 반복하고 변형시키면서 개인의 불안, 욕망, 긴장을 사회·문화적 맥락과 병치시켜 우리가 무심코 수용해온 관념과 제도 속에서 재현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 이와 함께 임소담 작가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선명하게 그려내며, 물거울·수평선 등 모호한 풍경 속에 숨은 정서를 포착한다. 작가는 회화와 세라믹을 넘나드는 작업을 보여주며 부재하거나 분명히 존재하는 감각을 보여준다. 물감이 겹겹이 쌓이듯 외로움은 일상 속에 서서히 스며들지만 역설적으로 그 흐릿함을 통해 새로운 몰입과 공감을 일으키는 장이 열린다고 믿는다. 정찬민 작가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기술 발전이 가져온 변화 속에 놓인 개인의 무력감을 들추어낸다. ‘행동부피’ 등 작품을 통해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사소한 행동이야말로 인간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KL 작가는 ‘제주도’를 기반으로 잃어버린 기억과 정체성이 만들어내는 혼란과 이질감을 탐구한다. 설치 작업 ‘섬_딩검리’에서는 고립된 섬들이 보이지 않는 지층으로 연결돼 있음을 암시한다. 세 편의 영상은 해변에서 노래하고 수영하는 인물들, 물속에서 흙으로 만든 배가 시간에 따라 녹아 흩어지는 장면, 수년간 기르던 앵무새 한 쌍의 죽음을 담은 장면으로 구성된다. 삶과 죽음, 일상과 사건이 교차하는 감각의 흐름 속에서 상실과 기억의 흔적, 존재의 불안과 평온이 공존하는 순간들을 사유하게 한다. 아트센터 화이트블록 관계자는 “외로움을 사회적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는 이번 전시가 관계 회복의 실마리를 제시하고, 고립으로 여겨졌던 감정을 모두가 함께 다뤄야 할 공동의 화두로 전환시켜 치유의 가능성을 열어 보는 의미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7월13일까지.

“소리문자 한글의 무한함과 만났다”…한글 팝아트 작가 이대인, ‘디귿 도깨비’ 전시회

한글 자음을 감각적인 팝아트로 풀어내는 한글 팝아트 작가 이대인의 ‘디귿 도깨비’ 전시가 오는 18일까지 서울 이태원의 진저 한남에서 관객과 만난다. 이번 전시는 이대인 작가의 ‘기역양 니은군’의 두 번째 이야기이자 한국의 전통 도깨비와 한글 칼리그램이 한 데 어우러진 4년간의 연속 전시다. 앞서 작가는 ‘기역양 니은군’을 통해 기역, 니은, 시옷, 이응, 지읒의 초성을 토대로 각 자음의 초성과 관련된 캐릭터들이 한글을 깨우쳐 사람으로 변하는 서사를 풀어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사람을 지켜주는 한국 도깨비의 이야기에 전 세계와 한반도의 평안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아냈다. 평화를 주제로 ‘풍어제’, ‘평화만선’, ‘막걸리’ 전시를 이어감과 동시에 평화 퍼포먼스도 함께 구성해 진행할 예정이다. 작가가 태초의 소리와 그 소리가 만들어낸 세상을 표현하며 한글의 자·음을 활용한 칼리그램은 특히 주목된다. 작가는 ‘세상은 소리로 이뤄졌다’는 서사를 전하기 위해 소리문자 한글을 소재로 사용했다. 이를 통해 관객은 한글의 추상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작가의 캐릭터와 칼리그램이 한글 브랜드 제품으로 선보이며, 한류의 마지막 보루인 한글 디자인과 이야기를 차용하고자 하는 다양한 업체와의 협업도 진행한다. 작품 속 한글의 예술성을 다양한 산업으로 확산시켜 더 많은 사람들이 한글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대인 작가는 “한, 중, 일 도깨비 가운데 사람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지켜주는 도깨비는 한국 도깨비가 유일하다”며 “도깨비가 통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한글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소리문자 한글의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전시회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이대인 작가의 공식 누리집 ‘기역양 니은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릴레이 개인전 첫 전시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릴레이 개인전 첫 번째 순서로 9기 최형준 작가의 개인전 ‘LAB 1.0’이 오는 17일까지 스튜디오 3층 777갤러리에서 열린다. 최형준 작가는 전통 수묵화의 조형 언어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VR(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해 회화의 평면성 해체와 입체적 감각의 확장을 시도했다. LAB 1.0은 ‘선을 긋는 행위’를 회화의 본질적 언어로 바라보며 회화의 물리적·개념적 한계를 가상공간 안에서 실험하는 전시다. 전시 제목인 ‘LAB 1.0’은 회화라는 매체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고 회화와 기술의 융합 가능성을 초기 버전의 실험실(Laboratory) 형태로 구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관객은 전시장에 입장해 하나의 예술 실험실에 참여하게 되고 작가의 창작 과정을 추적하는 동시에 실험 결과를 직접 체험하게 된다. 전시에는 평면 회화와 조형 작업 그리고 VR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작품 등 총 10여점을 선보이며 일부 작품은 VR 장비를 통해 가상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 기술과 철학, 조형성과 몰입성이 혼합된 전시로 회화라는 장르에 대한 새로운 질문도 제기한다. 김지혜 문화관광과 미술관팀장은 “이번 전시는 작가의 창작을 예술적 실험의 과정으로 조망하며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그 실험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구성”이라며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가 지역문화의 실험적 거점이자 예술 창작의 발전소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이영교, 해설 있는 독주회 ‘MusiCuration V’ 개최

끊임없는 연구를 바탕으로 곡의 다채로운 해석을 들려주는 피아니스트 이영교가 오는 30일 오후 7시30분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피아노 독주회 ‘MusiCuration V’를 연다. ‘MusiCuration’은 ‘음악을 큐레이션 한다’는 뜻으로 관람객이 곡 사이에 배치된 연주자의 설명을 들으며 음악 감상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해설이 있는 피아노 독주회다. 앞서 이영교 피아니스트는 지난 2020년 귀국 독주회 이후 네 명의 작곡가와 그들의 작품을 바탕으로 해설이 있는 ‘MusiCuration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5회를 맞이한 이번 공연에서는 L.Ornstein의 ‘9개의 소품’, F.Schubert의 ‘4개의 즉흥곡’, L.v.Beethoven의 ‘피아노 소나타’, C.Debussy의 ‘판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영교 피아니스트가 각 작곡가의 각기 다른 개성을 잘 살려 각 악장이 품고 있는 아이디어와 색채, 인상을 피아노로 효과적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특히 곡의 배경과 감상 포인트를 쉽고 흥미롭게 전달해 L.Ornstein 등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작곡가와 그의 삶, 곡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편, 이영교 피아니스트는 수원 영복여고를 졸업한 뒤 숙명여대 음악대학 피아노과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뉴잉글랜드 음악원 석사 졸업, 전문연주자과정 졸업 및 음악집중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이후 보스턴대학교에서 피아노 연주학 박사와 문화예술경영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 강사, 미국 뉴욕예술원의 한국분교 겸임교수, 명지대 객원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개관 14년 만에 상설전 개편한 경기도어린이박물관…‘공생’ 주제로 한 ‘우리는 지구별 친구들’

“사람, 동식물, 세균, 인공지능(AI) 로봇까지. 우리는 형태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지구’에 산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공생’ 관계이지요.”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이 개관 14년 만에 ‘공생’을 주제로 상설전을 새롭게 선보인다. 지구 곳곳의 수많은 동식물부터 인공지능(AI) 로봇까지 어린이가 공동체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공생의 방법을 알려준다.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은 지난달 17일 3층 상설전시실을 전면 개편해 ‘우리는 지구별 친구들’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두근 두근 연결된 우리’, ‘와글와글 지구별 놀이터’로 구성됐으며 총 8명 작가의 14개 체험 전시물을 펼쳐보인다. 먼저 전시의 1부 ‘두근 두근 연결된 우리’에서는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보이진 않지만 서로 연결돼 있음을 알려주는 체험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새로운 생명체로 변신하는 경험을 통해 다른 존재에 대한 공존 감수성을 길러보는 ‘우리 모두 변신’, 땅속에 있는 나무뿌리, 곰팡이, 미생물의 숨겨진 공생 관계를 들여다보는 ‘땅에서 보내는 초대’ 등 디지털 체험형 콘텐츠가 어린이들을 맞이한다. 특히 노진아 작가의 말하는 AI 거북이 ‘오로라’는 오염된 바다에서 도망나온 모습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각종 그물과 덫에 걸린 거북이의 모습은 기후 위기, 환경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오로라’가 경기도어린이박물관에 오게 된 배경, 다른 생명과의 공생, 기후 위기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재미있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또 인근에 전시된 로봇 개 ‘레오’ 등 기계 동물들을 통해 미래공동체에 함께 할 특별한 동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와 함께 몸의 각 부분을 새로운 시선으로 마주하는 ‘미래 신체 의상실’, AI 기술로 탄생한 디지털 휴먼 ‘로지’와 대화하는 ‘가상 친구? 진짜 친구!’ 등 로봇, 가상의 사람과 공존할 미래 사회를 상상하게 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어지는 2부 ‘와글와글 지구별 놀이터’는 어린이 관람객이 함께 모여 놀면서 서로의 기분과 생각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됐다. 박종진 작가가 설계한 ‘바음자리 놀이터’는 유기적으로 모든 공간이 연결된 구조물로, 낮은음자리표의 모습을 닮아 있다. 작가는 다 함께 모여 노는 공간이 낮은 곳에 연결된 음들처럼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작품을 완성했다. 소리와 손끝 감각만을 사용해 야구 경기를 볼 수 있는 박유진 작가의 ‘누구나 촉각 야구’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없앤 작품이다. 어린이 관람객은 야구공이 야구 방망이에 맞는 소리, 선수들이 뛰어가는 소리, 해설 위원이 설명하는 소리에 집중해 소리로 경기를 이해해보고 경기장의 오돌토돌한 감촉을 느끼며 마음의 눈으로 야구장을 본다. 작품은 어린이의 촉감을 발달시키고 눈이 보이지 않는 경험을 통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느끼게 한다. 또 환경 오염으로 위기에 처한 펭귄을 구하는 대형 조각 쌓기 ‘내 친구, 펭귄 구출 작전’, 동물원에 갇힌 동물의 입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너의 시선, 나의 세상’, 미래 시대의 지속 가능한 연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상 작품 ‘수리솔 수중 연구소’ 등을 볼 수 있다. 송문희 경기도어린이박물관장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오랜 기간 고민했다”며 “앞으로도 안전하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다양한 연령대의 어린이와 동반자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온기가 필요한 세상…작품으로 인류애 충전” 신현옥 작가 ‘시선과 온기’

신현옥 서양화가는 스물한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며 따스한 풍경과 시선으로 바라봤던 세상을 다시 꺼내 들었다. “온기가 정말 필요한 세상에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함께 서로를 돌아보고 돌봤으면 좋겠다”란 주제의식을 품고 전시장에 작품을 메웠다. 수원시립북수원전시관에서 지난 6일부터 11일까지 열린 ‘시선과 온기’ 전에서 신현옥 작가는 그만의 시선으로 사람과 사물, 세상을 바라온 작가의 철학을 전시로 재구성해 옮겼다. 50대부터 작업한 작품들로 100호짜리 작품 7점 등 총 19점을 선보였다. 작품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본 추억과 감성, 소통, 온기의 시선이 작가만의 조형언어과 기법으로 표현됐다. “젊을 때는 그러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누구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어요. 나이를 먹은 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낀 감정이 담겼습니다. 정을 통해 함께 온기를 피우고 나눴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반영했지요.” 40년이 넘도록 치매어르신들을 도우며 미술치료를 해 온 그의 인생 행로 역시 작품에 옮겨졌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회와 공존, 부모와 자식, 사랑과 추억 등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작품에는 누군가의 인생과 누군가의 추억, 누군가의 감성, 누군가의 아픔과 상처를 담고 있다. 이러한 시선들의 총합은 결국 삶으로 이어진다. 대표작 ‘시선과 온기’는 노란 개나리가 핀 꽃밭과 철길 등의 마을의 정취를 통해 유년시절의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옮겼다. ‘만선’을 통해서는 다시 용기를 내고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소망을 , 작품 ‘수련’에는 사람은 자연을 떠나 살 수 없다는 진리를 투영했다. ‘애국애족’에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강조해온 작가의 마음가짐이 붓의 강렬한 표현을 통해 힘있게 드러났다. 작품마다 곱씹어 보며 다양한 해석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점도 전시의 재미를 더했다. 물고기 눈에 그려진 십자가나 새댁의 그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소 등 작가만의 언어는 그가 걸어온 구상회화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신현옥 작가는 “작품을 통해 그동안 작가로서 가지고 있던 예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전시를 통해 알려주고 싶었다”며 “차가운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따뜻한 온기로 이 세상을 채워나가셨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자연의 순수 세계 담아낸 최두석 시인의 시(詩) 사진전…‘꽃에게 길을 묻다’

예술의 사명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그에게 꽃은 예술을 실현해주는 존재였다. 온몸으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존재, 생생하게 살아있는 존재, 작은 곤충들을 위해온 힘을 다해 자신을 피우는 숭고한 존재. “생명의 존재들을 소중하게 담아내는 게 시 쓰는 자로서의 소명”이라 생각한 시인은 “꽃과 그 주변 생명을 지닌 귀한 존재들을 시 속에 잘 모시기 위해” 카메라로 그들을 담아냈다. 자신이 목도한 자연의 순수한 세계를 군더더기 없이 시로 담아내온 최두석 시인의 시(詩) 사진전 ‘꽃에게 길을 묻다’가 지난달 30일 노작홍사용문학관(화성시 노작로 206) 2층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했다. 1980년 ‘심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하고 시집 ‘대꽃’ ‘임진강’ ‘성에꽃’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꽃에게 길을 묻는다’ 등 역사와 자연에 관해 이야기를 해온 시인은 30년이 넘도록 꽃과 새, 흐르는 강에게 말을 건네는 중이다. 전시에선 최두석 시인이 자연 속에서 마주한 꽃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 20점, 그로부터 길어 올린 시 20편이 함께 걸렸다. 원고지에 꾹꾹 정성스럽게 눌러쓴 시인의 손글씨와 꽃의 순간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작은 생명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시인의 귀한 질문과 사유을 담아낸다. 시와 사진의 예술적 짜임과 스며듦을 통해, 사진의 정적(靜寂)과 시의 리듬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감동이 전해진다. 시인에게 사진은 꽃의 아름다움을 더욱 깊이 있게 바라보는 방법이다. 생명이 안고 있는 모든 것을 잘 담아내기 위해 그는 카메라를 들었고, 전국의 산과 들을 누비고 다녔다. 야생에서 배워나간 촬영 기법은 ‘쌓인 낙엽 비집고/ 쫑긋쫑긋’(시 ‘노루귀’ 중) 피어나는 노루귀의 생명력을, ‘호박벌이 물봉선 꽃속 가득/ 온몸을 들이밀고 꿀빠는 모습을 대하니/ 주위가 문득 생기로 충만해(시 ‘물봉선과 호박벌’ 중) 생의 희열로 가을을 맞는 골짜기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꽃잎만 보지 않고 그 안의 암술과 수술, 또 꿀샘을 안내하는 무늬들을 보면 꽃이 굉장히 아름다워요. 자기의 가루받이를 해줄 작은 곤충을 위해 최선을 다해 자신을 피우는 꽃의 아름다움을 육안으로만 봐선 알 수 없어 사진에 담게 됐지요.” 꽃을 마주했을 때의 설렘, 나비나 벌, 새가 날아드는 순간의 가슴 벅찬 감동은 그의 시와 사진작업의 중요한 동기다. 꽃이 생명활동의 절정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이자, 새로운 생명의 잉태라는 점에서 ‘꽃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믿음을 이번 전시에 녹여냈다. 귀한 생명을 포착한 사진과 그 대상을 향해 펼쳐진 시인의 섬세한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순리를 따르는 자연에 박동하는 그의 시심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동안 꽃에게 살 길과 시 쓰는 길을 물어왔어요. 앞으로도 전국을 누비며 온 힘을 다해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생명의 아름다움을 시에 모시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전시는 오는 7월13일까지.

한국등잔박물관, 유물 수집 정신을 풀어낸 ‘빛과 마주하다, 이야기하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등불은 우리 조상들의 밤과 마음을 밝혔다. 그 등잔과 석등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하나 찾으며 유물을 수집하고 문화유산을 지켜온 이야기가 전시로 풀어졌다. 한국등잔박물관(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이 지난 1일부터 선보이는 기획상설전시 ‘빛과 마주하다, 이야기하다’는 박물관 설립자의 유물 수집 정신과 문화유산을 지켜온 가족의 헌신을 조명하고, 관람객들이 유물에 깃든 이야기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전시는 등잔과 석등 등 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을 중심으로, 유물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풀어냈다. 김형구 한국등잔박물관장의 아버지이자 박물관 설립자인 고 김동휘씨가 전기 보급으로 사라져가던 전통 조명 유물을 지키기 위해 전국을 돌며 수집한 과정을 만날 수 있다. 또 이를 지키고 이어온 가족들의 헌신적 노력을 통해 박물관이 품어온 문화유산의 가치를 되새긴다. 전시 연계 체험 공간에서는 유물의 질감을 손끝으로 느껴보는 ‘촉각 체험’, 씨앗의 향을 맡아보고 절구에 빻아 보는 ‘후각 체험’, 도자기를 굽는 소리를 들으며 제작의 시간을 떠올리는 ‘청각 체험’, 등잔과 관련된 향을 맛으로 경험하는 ‘미각 체험’, 등잔불 그림자를 관찰하는 ‘시각 체험’ 등 오감을 활용한 다채로운 활동이 펼쳐진다. 각 유물 전시 캡션에는 어린이 도슨트 해설 QR이 삽입돼 있어, 관람객들이 어린이 해설자의 목소리를 통해 유물에 친근하게 접근하도록 돕는다. 박물관 야외정원에는 소원을 담아 불을 밝히는 ‘소원석등’도 상시 운영되며, 다양한 전시 참여형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유산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지혜정 한국등잔박물관 학예실장은 “이번 전시는 등잔이라는 생활민속품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소중한 기억과 생생한 체험이 어우러지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유물에 담긴 이야기와 함께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와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한국등잔박물관 공식 누리집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12월 14일까지.

백남준의 눈과 귀로 백남준을 경험하다…‘전지적 백남준 시점’

“여기 열두 개의 달이 있죠? 시간은 보이지 않아요. 나는 시간을 눈으로 보게 하고, 손으로 잡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백남준, WNET 방송국, ‘비디오 갤러리 Ⅲ’ 인터뷰 중) 백남준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경험해 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지난 10일 백남준아트센터가 개막한 ‘전지적 백남준 시점’은 백남준의 인터뷰 영상을 중심으로 그가 전달하고자 했던 시간의 개념을 다층적으로 다뤘다. 백남준은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지나면서 시대적으로 낯선 장르였던 비디오아트를 설명하기 위해 친절하게, 때로는 재치 있게 많은 이야기를 건넸다. 이번 전시에선 백남준아트센터가 소장하고 있는 2천285점의 비디오 아카이브 중 한국, 미국, 일본, 독일 등 다양한 국가에서 방영된 백남준의 인터뷰 영상을 편집해 작품과 함께 상영한다. 비디오를 그림에 빗대어 설명하고, 전자기술을 시연하는 등 생생한 백남준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백남준 예술에서 다뤄진 시간의 속성을 조명하고 시간의 폭넓은 가능성에 질문을 던진다. 13개의 모니터에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 변화하는 달의 모습을 담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시간에 대한 백남준의 실험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백남준은 비디오가 새로운 시간을 경험하게 해준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 작품을 설명하는 WNET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시간은 느낄 수 있지만, 볼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의 일부분을 붙잡아 공간에 배치하고 싶었다”고 언급하며 변화하는 달의 모습을 자신만의 기술 방식으로 시연했다. 전시에선 이 같은 백남준의 인터뷰와 작품을 함께 감상하게 해 ‘추상적 시간’을 시각화하고자 한 그의 실험에 더 깊이 몰입할 수 있게 했다. 또 ‘촛불 TV’, ‘자석 TV’, ‘참여 TV’,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 ‘TV 정원’ 등 백남준의 실험적인 작품 약 10점이 그의 인터뷰와 함께 전시됐다. 백남준은 일본 NHK 방송국과의 다큐멘터리에서 ‘참여 TV’, ‘자석 TV’, ‘촛불 TV’를 제작하게 된 배경과 작동하는 원리를 설명했다. 그 중에서도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자석 TV’는 장 폴 파르지에의 단편 영화 ‘남준, 한 번 더’에서 시연한 ‘자석 TV’와 동일한 작품으로, 전자적으로 만들어진 감각적인 화면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특히 1969년 하워드 와이즈 갤러리에서 열린 ‘창조적 매체로서의 TV’에 출품됐던 ‘세 대의 카메라 참여’ 역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전시 도록 영상에선 백남준이 작품을 설치하는 모습까지 함께 관람할 수 있는데, 그의 작업 방식과 창작 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새로운 소장품인 피터 무어의 사진 7점도 이번 전시에서 공개됐다. 사진에는 ‘TV 첼로’를 공연하는 샬럿 무어먼과 백남준, 텔레비전을 실험하는 백남준 등 그의 생생한 모습이 담겼다. 백남준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비디오 조각들도 전시됐다. 과거의 도구부터 현재 문명까지 아우르는 기술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비디오 샹들리에 No.1’, 우주로 확장된 예술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천왕성’, 백남준의 음악과 비선형적인 시간을 보여주는 ‘TV 피아노’ 등이다. 백남준아트센터 관계자는 “아카이브와 함께 비치된 시간을 다룬 백남준의 여섯 편의 글은 백남준을 더욱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며 “전시를 통해 백남준을 기억하고 시간에 대한 사유와 그 가치가 높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22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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