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대한민국은 복합적 위기의 한가운데 서 있다. 장기적인 저성장과 양극화는 경제의 구조적 병목을 심화시키고 사회 곳곳에서는 신뢰의 붕괴와 공동체 해체가 일상화되고 있다. 이제 사회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라는 오래된 슬로건이 아니라 무엇이 사람의 삶을 최소한으로 가능하게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필요하다. 그 중심에는 ‘기본’이라는 개념이 있다. 기본이란 한때는 너무도 당연해 말할 필요조차 없던 것들이었다. 주거, 교육, 먹거리, 의료, 돌봄, 지역공동체, 관계망,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 등은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할 삶의 최소한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기본들은 점점 더 운이나 출신 배경, 혹은 시장의 기회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삶의 시작선이 불평등하게 설정되고 그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복지 확대나 시장 개입 수준을 넘는 근본적인 사회 재설계다. 사회의 기반을 다시 점검하고 누구에게나 보장돼야 할 공통의 삶의 조건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이 지점에서 ‘기본경제’와 ‘기본사회’라는 두 축이 중요한 해법으로 제시된다. 기본경제란 인간다운 삶에 필수적인 주거, 의료, 식량, 교육, 돌봄, 에너지 같은 영역에 대해 공공성과 공동체 원리에 기반한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생산과 분배 체계를 구축하자는 제안이다. 이는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구조 자체를 전환하자는 방향이다. 시장의 효율성과 민간의 경쟁만으로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삶의 조건을 공동의 기반으로 회복하자는 것이다. 기본사회는 인간 관계와 사회적 의미를 중심에 둔 새로운 사회 질서다. 돌봄, 상호의존, 신뢰, 존엄의 가치를 기반으로 구성원들이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구조다. 이 사회에서 시민은 더 이상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제도의 공동 설계자이며 관계는 계약이 아니라 연대에 기반한다. 기본사회는 결국 공동체로서의 사회 본연의 의미를 되찾는 작업이기도 하다. 기본경제와 기본사회는 상호 의존적인 구조다. 기본경제가 없다면 기본사회는 이상적 구호에 머물 뿐이고 기본사회가 없다면 기본경제는 단순한 기술적 조정에 그친다. 두 개념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적 범주도 구체화되고 있다. 기본소득, 기본자산, 기본금융, 기본서비스, 사회적경제, 지역화폐 등 여섯 가지 정책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으로 설계돼야 한다. 기본소득은 생계의 불안을 줄이고 시간의 여유를 제공하며 기본자산은 삶을 기획할 수 있는 출발선을 보장한다. 기본금융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누구에게나 열어 주고 기본서비스는 교육, 건강, 주거, 돌봄 등 필수 생활 영역의 접근성을 높인다. 사회적경제는 협동과 관계를 중심에 둔 생산 구조를 만들고 지역화폐는 이를 지역 단위에서 작동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구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과제가 선행돼야 한다. 첫째, 정책과 제도를 사람의 삶의 흐름에 맞게 전환해야 한다. 행정은 지시가 아니라 지원이어야 하며 정책은 단절된 기능이 아닌 통합된 경험으로 설계돼야 한다. 둘째, 공공성과 시장을 재구성해야 한다. 돌봄과 신뢰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공공경제와 공동체 기반의 시장이 필요하다. 셋째, 시민을 수동적 수혜자가 아닌 제도의 참여자로 인식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성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넷째, 삶의 질을 정책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신뢰, 예측 가능성, 시간의 여유 같은 질적 지표가 중요하다. 다섯째, 지역 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 지역은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닌 신뢰와 관계의 터전이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이상적인 모델이 아니라 이미 일부 지역과 현장에서 작지만 의미 있게 실천되고 있다. 필요한 것은 이 흐름을 연결하고 확장할 수 있는 상상력, 정치적 결단, 그리고 시민의 참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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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25-08-13 1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