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외국인주민 집중거주지역’ 게토화 막아야

행정안전부는 기초지자체 중 외국인 주민이 1만명 이상이거나 총 주민인구 대비 외국인 주민 비율이 5% 이상이면 외국인주민 집중거주지역으로 지정한다. 2023년 기준 집중거주지역은 226개 기초지자체 중 127개(약 56%)에 있고 집중거주지역의 37.7%가 수도권에 있다. 특히 경기도 기초지자체 31개 중 77%(24개), 서울시 기초지자체 25개 중 72%(18개), 인천시 기초지자체 10개의 60%(6개)가 집중거주지역으로 수도권이 전국평균보다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민정책연구원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집중거주지역에서 외국인주민 유입의 영향을 분석한 결과 이 지역에서 공공질서와 안전 분야 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에 대처하기 위한 지자체의 예산이 공공질서 분야에서 1%, 안전 분야에서 2.6% 증가했다. 이민자의 집단 거주가 범죄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증가가 취약하지만 집중거주지역 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범죄에 대한 불안감과 우려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수송 및 교통 분야의 예산이 4.5% 감소하고 문화 및 관광 분야의 예산은 42.5% 감소했다. 이는 지자체가 예산의 한계 등으로 인해 집중거주지역에서의 거주기반 개선보다는 공공질서와 안전 분야에 행정역량을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집중거주지역의 경우 이민자가 정보를 취득하고 외로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고 이민자의 수요를 반영한 상권 형성 등에도 기여한다. 반면 집중거주지역의 게토화는 이민자의 정착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한국 언어, 문화 등을 학습할 기회를 줄여 주류사회로의 편입을 지체시키며 그 지역 자체가 주류사회와 분리되거나 주변화될 우려가 있다. 주요 선진국의 게토지역에 대한 연구결과를 보면 이러한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Nabihah 등은 집중거주지역에서 주택의 게토화까지 진행된다면 오히려 스트레스 증가, 보건환경의 악화 등과 같은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Hynsjo and Perdoni 등의 연구 결과는 미국에서 게토지역 낙인 효과로 인해 상대적으로 경제적 기회가 감소함을 보여 준다. Koster and van Ommeren의 네덜란드 게토지역 연구 결과와 Andersson 등의 스웨덴 게토지역 연구 결과는 게토지역의 집값 하락으로 인해 상대적 매력도가 떨어지면서 주민 구성에 변화가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Davezies 및 Garrouste 등은 프랑스에서 게토지역 낙인효과로 인해 부유한 가정은 공립학교 대신 사립학교 또는 다른 지역의 학교로 보내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한다. 법무부·통계청의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의 60.5%가 300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고 있어 상대적으로 열악한 거주환경을 가진 지역에 집중 거주하거나 거주할 가능성이 높게 된다. 그렇다면 집중거주지역의 게토화를 방지하면서 지역균형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첫째, 게토화가 진행되는 지역일수록 공공형 재개발을 확대해 국민은 물론 정주자격을 갖춘 이민자를 위해 저렴한 공공형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의 보급을 확대하고 도로 정비, 교육, 직업훈련, 보건과 문화서비스 등의 공공 서비스를 제공해 거주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이러한 거주환경의 개선은 지역의 비교우위산업 육성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고 소비인구를 증가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둘째, 지자체에서 마을 단위 사회통합 전담관을 둬 정기적으로 이민자의 고충을 상담하고 국민과 이민자 간의 교류 창구를 제공하며 중앙부처, 지자체, 대학, 산업계, 비영리기관 등 간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외국인을 고용하는 사용자는 그 외국인이 주말 등에 한국 언어, 사회 등에 관한 교육프로그램을 수강할 수 있도록 배려, 이민자가 국내 생활에 빨리 적응하고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 정부에서 지역특화비자 또는 광역비자 등을 통해 국내에 정주하는 이민자를 유치하고 정착을 지원하는 정책을 수립할 때 특정 지역이 게토화되지 않도록 필요한 예방대책과 사후관리 방안이 포함되기 바란다.

[경기시론]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교육을 만나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교육부는 제5차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2025~2029년)을 통해 심의의 공정성을 제고하고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운영 제도 개선으로 심의 지연을 방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현행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별 적용 세부기준 고시’를 개정, 지역별·위원회별 심의 결과의 편차를 감소시키겠다는 것인데 현재 동일한 비중의 다섯 가지 기본 판단 요소(학교폭력의 심각성·지속성·고의성, 가해 학생의 반성 정도, 화해 정도) 중 학교폭력의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요소의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같은 사안을 두고도 지역별 소위원회별로 심의 결과가 다른 것인가. 애석하게도 사실이다. 지난 12일 에듀로 교육법률연구소와 유스메이트 아동청소년문제연구소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교육을 만나다’를 주제로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학교폭력 업무 담당자와 심의위원들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하나의 학교폭력 사례를 두고 본인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심의위원이라면 어떤 조치를 내릴지 투표하는 순서도 있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각자가 갖고 있는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과 사안을 판단함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에 따라 제1호 서면 사과 조치부터 제5호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까지 심의 결과의 편차가 무척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내용의 학교폭력이지만 가해 학생의 반성 정도와 화해 정도에 따라 가해 학생 조치가 다르게 나올 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같은 내용의 사안이고 가해 학생의 반성 정도와 화해 정도가 동일함에도 어느 지역에서 발생했는지, 같은 지역이라 하더라도 어느 소위원회에 배정됐는지에 따라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큰 사회적 문제라 할 것이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 가해 학생 조치가 대학 입시에 큰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보태 생각해 본다면 교육부가 제5차 기본계획에서 ‘심의 객관성 확보’를 주요한 추진 과제로 삼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번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네 명의 토커들(교원위원, 학부모위원, 변호사위원, 장학사)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심의 기준과 관련해 많은 의견을 제시했는데 그중 심의의 형평성 문제와 관련해 대법원 소속 양형위원회에서 정하는 양형기준처럼 교육지원청별 사례를 취합, 가해 학생 조치의 양정 기준과 판단의 방향을 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청중의 주의를 끌었다. 심의 자료 및 가해 학생 조치 결과를 심층적으로 분석해 가해 학생 조치의 구체적 기준을 정할 수 있다면 참으로 반가운 일이겠지만 형사재판보다는 소년보호재판에 훨씬 더 닮아 있는 현행 학교폭력 사안처리 시스템 아래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타당할지는 사회적으로 충분한 숙의가 필요할 듯하다. 교육과 사법 사이에 놓여 있는 학교폭력이 교육적으로 해결되길 그 누구보다 바라는 필자다. 그러나 학교폭력 문제를 교육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무조건 가해 학생에게 온정적 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건 아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야 한다. 신고된 사항 중 어디까지를 사실로 인정할 것인지 명확하게 확인하고 인정된 행위 중 어디까지를 학생들 간 일상적인 갈등이나 다툼으로, 어디부터를 학교폭력으로 판단할지 분명하게 구별해야 하며 다섯 가지 기본판단 요소에 대해 형평성 있는 판정을 통해 가해 학생의 교육·선도 효과 및 피해 학생의 심리·정서 지원을 제고할 수 있는 조치를 내려야 한다. 그러려면 교육부가 제5차 기본계획을 통해 발표한 것처럼 가해 학생 조치별 적용 세부기준 고시에 따른 판단 요소별 판정 점수와 가중치 조정과 더불어 현행 깜깜이 심의에서 벗어나 보다 투명한 심의가 이뤄져야 한다. 또 교육지원청별 빈번하게 발생하는 학교급별·유형별 대표적인 사례와 그에 따른 조치 결과를 심의위원별 맞춤형 교육을 하는 자료로 활용해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경기시론] 내란회복지원금, 지역화폐로 지급한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민생 위기가 일상화됐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그래서인지 민생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재명 정부는 전 국민 대상 25만원 내란회복지원금을 추경안에 포함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로 지급해 지역상권을 살려 민생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재명 대통령조차 대통령 후보 시절 지역화폐가 노벨상을 받을 정책이라고 주장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을 더할까 싶다. 요즘 이러한 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것을 놓고 쟁론이 벌어지는 것을 본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는 지역화폐와 관련해 중요한 사항을 의도적이든 무지해서든 놓치는 경우가 상당하다. 이 가운데 핵심 몇 개만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첫째, 대형 점포에서 중소형 점포로 매출의 이전이 있는가다. 이는 그동안 여러 실증연구 결과가 밝혀내 그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지역화폐의 정책효과 중 하나인 지역상권 내 점포 간 균형 소비 효과가 분명히 달성된 것이다. 둘째, 지역 간 불균형 소비를 해소하는가다. 지역화폐는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 가능하게 해 이것이 없을 경우 예를 들어 A지역 소비자가 B지역에 가서 소비하는 것과 그 반대의 경우를 차단하는 것이기에 지역 이동에서 오는 소비(매출) 효과를 없앤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그 전제로 지역 간 소비가 자유 균형 상태, 즉 A지역과 B지역이 서로 균등하게 지역 간 소비 이동을 하는 상태라는 것을 은연중 깔고 있다. 그런데 지역 간 소비 불균형과 쏠림 현상이 보편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직관적으로도 이해가 되지만 신용카드를 쓴 자료를 가지고 전국에 걸쳐 지역 간 소비 패턴을 파악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소비에서 지역 쏠림이 있고 현금이나 카드는 이걸 조장하는 데 반해 이를 일정 부분 막아주는 게 바로 지역화폐다. 실제 조사 결과도 지역화폐를 사용한 소비가 지역 간 쏠림을 어느 정도 막는 것을 보여준다. 대규모 도시나 중심상가에서 소규모 도시 및 소규모 지역상권으로 소비 이전이 일부 있다는 것은 지역화폐의 또 다른 정책 목적이 달성됐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지역 간 이동을 해 소비하려 들면 지역화폐에 의지하지 않고 현금이나 카드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법이다. 소비의 이동 제한이 주는 불이익을 침소봉대할 일이 아니다. 셋째, 지역화폐 대신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하자는 주장이 있다. 이것이 지역 제한을 두지 않기에 국가경제 전체적으로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온누리상품권은 소비의 지역 쏠림을 해결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그 숫자가 얼마 되지 않은 전통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고 소비자나 점포조차 대부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온누리상품권은 애당초 지역화폐와 비교 경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넷째, 지역화폐가 과연 소비효과를 보여주는가다. 먼저 지역화폐가 현금, 카드로 하는 기존 소비를 대체한다는 주장이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극단적으로 100% 대체한다면 지역화폐는 아무런 소비효과가 없게 된다. 이를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연구보고서가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서베이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은 지역화폐로 기존 소비를 대체하는 비율이 평균 30% 내외라고 한다. 여기서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소비자들은 지역화폐를 사용하면서 소비 대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 소비도 30%를 넘긴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복합돼 소위 승수효과라는 것을 보이게 되는데 정책발행 지역화폐는 민간이전지출에 해당해 1.5가량의 승수효과를 보인다. 특히 지금 거론되는 내란회복지원금보다 훨씬 큰 규모일 경우 규모에 따른 효과가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수십조, 아니 그 이상 규모의 지역화폐 정책 발행은 소비를 제대로 진작하고 그로 인한 민생회복과 경제성장 효과는 상당할 것이다. 이번에 이를 증명한다면 정치적 이유로 추락한 대한민국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경기시론] 난민 소송제도의 개편 방향

6월20일은 세계난민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한 후 출입국관리법에 난민 관련 조항을 신설했고 2012년 독립적인 난민법을 제정했다.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이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해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 ▲그러한 공포로 인해 대한민국으로 입국하기 전에 거주한 상주국으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무국적자를 말한다. 박해란 생명, 신체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을 비롯해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을 야기하는 행위를 의미하므로 국제사회가 난민을 비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난민신청 건수도 증가하고 심사 기간이 장기화되고 있어 진정한 난민을 신속하게 보호하지 못하는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난민신청 건수는 1만8천336건으로 1994~2015년 건수(1만5천250건)보다 많다. 지난해 기준 심사종료까지 평균 4년 이상 소요된다.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 난민심사가 종결된 누적 건수(9만4천391건) 중 이의신청 건수(4만8천563건)의 비율은 51.4%로 높다. 지난해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2023년 난민소송은 전국 법원 행정 사건 중 약 20%를 차지하고 2023년 기준으로 1심 행정 사건 중 난민 사건의 비율은 13.4%, 2심 26.2%, 3심에선 41.8%에 달할 정도로 상소 비율이 다른 사건보다 높다. 또 2018~2023년 난민소송을 통한 난민인정 비율은 약 0.3%로 같은 기간 정부를 상대로 한 행정 사건의 평균 승소률 10.1%에 비해 매우 낮다. 난민 심사·결정이 지체되는 것은 ▲국적국의 정황, 난민요건 충족 여부 등 심사에 많은 시간 소요 ▲난민신청자는 원칙적으로 강제송환이 금지되고 난민신청 후 6개월이 경과하면 취업이 허용될 수 있는 것을 이용해 이의신청, 쟁송 등의 남용 사례가 증가하는 점 ▲난민심사 전담공무원 양성과 확충, 쟁송제도 개편 같은 조치가 미흡한 점 등에 기인한다. 난민쟁송제도 개편과 관련해 우선 독립적 심판원을 설치, 행정심판을 먼저 거치게 하거나 행정심판과 동시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최소한 제1심의 경우 난민전담법원을 신설함으로써 난민사건을 집중 심리토록 해야 한다. 난민이 다수 발생한 국가 출신이고 사회적 지위와 활동내용 등을 고려할 때 서류심사만으로도 난민 인정 가능성이 있는 사건과 패소판결이 확정된 후에 사정변경 없이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소권 남용 사건은 우선 심사 대상으로 분류해 신속 처리해야 한다. 둘째, 소권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독일은 제2심부터 특별한 사실적 또는 법적 어려움이 없는 사건은 대면심리 없이 간이 소송 절차에 따라 행정사건을 심리할 수 있다. 특히 난민 관련 간이 소송 절차의 경우 1개월 이내에 대면심리 없이 소송을 종료할 수 있다. 또 명백히 근거없는 난민 신청인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본안심리를 진행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제1심 소송과 관련된 법적 문제가 중대한 의미를 가진 경우 제1심 결정이 상급법원 판결(근거)과 다른 경우 또는 소송 절차에 흠결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본안 심리를 진행한다. 미국은 입국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난민신청을 하지 않다가 이후에 납득할 만한 사유 없이 신청을 한 경우 난민신청이 불허됐음에도 사정 변경 없이 다시 신청한 경우 또는 국가 간 협정에 따라 안전한 제3국으로 출국시키는 경우에는 처분청은 난민신청 접수를 거부할 수 있고 법원이 그 접수 거부의 적법성을 심리한다. 또 연방행정소송규칙에 따라 법원은 부당한 소송에 대해 소송 비용 담보 제공, 제소 금지 등을 할 수 있다. 영국은 제소 금지와 함께 높은 소송비용을 청구한다. 반면 우리나라 행정소송법은 처분청이 패소하면 기속력을 인정해 처분청이 그 판결의 내용에 따라 처분해야 하지만 난민 신청자가 패소하면 민사소송법을 준용토록 규정돼 있어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반한 소송제기에 대해 판례로써 심리 없이 기각판결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간이 소송 대상과 절차를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안, 기판력에 반한 소송 제기를 각하 사유로 명시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기시론] ‘학교 내 갈등’ 해법 찾아야 한다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5법이 시행된 지 1년이 훌쩍 넘었다.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사들의 수업권을 위한 ‘교권’이 강화됐는가. 학교 내 갈등은 줄어들었는가. 지난 14일 2024학년도 교육활동 침해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2024학년도 지역교권보호위원회 개최 건수는 총 4천234건으로 서이초 사안이 있었던 2023학년도 5천50건에 비해 일부 감소한 편이나 2021학년도 2천269건, 2022학년도 3천35건에 비해서는 여전히 증가 추세다. 소위 교권보호 5법이 개정·시행되고 다양한 보호 정책이 마련됐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실무적으로 교육활동 침해행 위는 피해 교원의 공식적인 신고를 통해 사안 처리가 진행된다는 점까지를 고려한다면 이러한 수치는 건수 자체가 유의미하게 줄어들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피해를 입은 교원이 교육활동 침해자인 학생이나 보호자와의 관계 회복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학생이나 보호자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가 있었다면 지역교권보호위원회까지 오지 않았을 사안도 많았을 것이란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22일 제주 한 중학교 교사가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사안이 또 발생했다.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과 학생에 대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볼 수 없다. 또 보호자는 교육활동의 범위에서 교원과 학교의 전문적인 판단을 존중하고 교육활동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현장에서 일부 학생들의 심각한 수업 방해나 보호자로부터의 악성민원은 오롯이 교사 개인이 받아내야 하는 구조다. 학생 및 보호자가 의견을 개진하거나 한두 번의 불만을 토로하는 것 자체를 모두 나쁜 것으로 볼 것은 아니나 충분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민원, 건전하고 통상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의 지속적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에는 이를 악성민원으로 보고 더 이상 해당 교사에게 직접 접촉(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행위를 포함한다)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악성민원이나 특이민원으로까지 치닫지 않기 위해 학교(교사)와 보호자 간 이뤄지는 일상적인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일부 학생 및 보호자가 악성민원, 특이민원을 일상적인 소통이나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므로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가 우리 아이의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는 강력한 안내와 교육, 그리고 심각한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대한 엄중한 대처는 분명 필요하다. 또 정당한 사유 없이 보복성 등으로 이뤄지는 악성민원 제기, 아동학대나 업무상과실치상 신고(고소) 단계의 허들을 높일 필요도 있다. 더 큰 문제는 학교 내 갈등이 교육활동 침해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생들 간 이뤄지는 학교폭력 사안에 있어서도 학교 내 갈등은 꽤 위험한 수준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제5차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에 따르면 2020년 이후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심의 결과 ‘학교폭력 아님’ 결정을 받은 사안 역시 증가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사법부조차 학생들 간 갈등이나 다툼, 학교폭력에 있어 법이 갖는 한계를 인정하고 교육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는데 정작 학교 안에서는 교육적 해결의 회의론이 들려온다. 필자는 지난 글에서 학생들 간 관계 회복의 가능성이 있는 건이라면 학교장 자체 해결로 종결되도록 하고 그렇지 못한 건이라 하더라도 조정이나 관계회복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심의 취소가 되도록 하며 그럼에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개최된다면 피해 학생 및 가해 학생 측이 납득할 만한 교육적 조치가 나오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한 조정이나 중재의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 학교 현장에 또 다른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 학교 차원의 노력뿐만 아니라 학교 현장에 이뤄지는 다양한 갈등(교육활동 침해 행위, 학교폭력 등)의 해결을 지원해줄 17개 시·도교육청 단위의 분쟁해결센터 건립 등 보다 실효적인 정부 차원의 방법을 고민해보자. 더 큰 사건,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말이다.

[경기시론] 대통령 후보들이 만들겠다는 세상

다음 달 3일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분들이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면서 중간중간 정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각각 차별화된 이름의 다양한 공약을 제시하지만 공통분모는 딱 하나로 집약된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좋은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것. 물론 각자의 이념적 지향과 정당의 입장을 깔고 있어 그 좋다는 것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지키고 더 나은 곳을 향해 가겠다는 것만큼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 각종 공약이 사람들에게 어필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인간의 기저 심리에 깔린 근원적 욕망과 바람, 그리고 도덕 기준이 뒤섞여 작동하는 메카니즘의 작동 결과가 투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언어 프레임에서 누가 우위를 점하느냐, 다시 말해 이슈 담론의 핵심 키워드를 누가 잘 설정하느냐와 긴밀히 연결된다. 그렇다면 현 대통령선거에서 사람들의 심층에 자리한 문제 의식과 시대정신을 잘 반영하는 키워드가 무엇일지 살펴보자.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근본 버팀목이 되는 기본이 제대로 서 있는 사회인가.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더 나아가 이러한 기본 토대 위에 더 성장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역량과 기회를 키워 가고 있는가. 그것이 중심이 돼 돌아가는 사회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이러한 질문 속 핵심 키워드는 기본, 성장, 역량, 기회라 할 것이다. 민주주의, 공정, 정의, 분배, 복지, 통합, 균형 등의 키워드도 중요하지만 이는 기본, 성장, 역량, 기회의 이면에 반드시 따라붙는 주제인 만큼 일단 뒤로 미뤄 두자. 무엇이든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뒤로 갈수록 흔들리고 결국 무너지고 마는 법이다. 그런 만큼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더 크게 성장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기 위해선 기본이 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무한경쟁으로 내몰리고 구성원 대다수가 적자생존을 해야만 하는 현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만 기본이 탄탄한 사회도 여러 모습이 있을 수 있고 우리가 가진 자원이 그것을 제대로 이뤄 내기에 역부족일 수도 있는 만큼 현실에서의 유연한 적응은 필요한 법이다. 중요한 점은 우리 사회가 기본이 안 되고서는 그 위에 세운 그 무엇도 사상누각이기 쉽다는 것이다. 반면 아무리 기본이 바로 선 사회라 해도 기본에 안주하려는 순간 단지 하향 평준화한 사회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기본을 탄탄하게 다지는 데 힘을 쏟는다고 해서 세상의 생존 질서가 이를 허용하고 보조를 맞춰 주는 것도 아니다. 어느 분야든 경쟁이 치열하고 심지어 패권을 놓고 싸워서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 짓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더 성장하고 나아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0.8%로 전망된다는 보고도 있다. 이는 경제가 곤두박질 칠 지경이란 얘기다. 이것만 봐도 당장 침체에서 벗어나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이의 실현은 우리의 역량이 충분히 커야 가능한 일이다. 역량 제고는 인재 양성에도 있고 기술 혁신에도 있다. 거국적인 사회 대전환을 이뤄내야 가능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이 무엇인가 해볼 수 있도록 해주는 수많은 다양한 기회가 고르게 분포되고 이를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것들이 기본보다 뒤에 있어야 한다고 감히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상 경영의 극점은 이들 간 조화로운 균형점을 찾는 데 있고 거기서 빛을 발하는 법이다. 이는 새로운 대통령의 몫이라 하겠다.

[경기시론] 이민의 경제적 영향 이해와 데이터의 중요성

프랑스 경제학자 장바티스트 세는 ‘세의 법칙(Say’s law)’을 통해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고 주장했다. 일단 공급을 하면 수요가 시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생기므로 공급 과잉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비하지 않은 저축은 투자 재원으로 쓰여 결국 모든 소득은 재화와 서비스 구입에 사용되므로 애덤 스미스의 주장대로 시장은 스스로 균형 상태를 유지한다고 봤다. 그러나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현실에서는 ‘세의 법칙’이 장기적 관점에서 예외적으로 작동하고 공급에 비해 유효수요가 부족, 경기 침체와 대공황 등으로 인한 실업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정부가 유효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경제학적 논쟁은 정부가 이민정책을 통해 개입해 경제의 공급 증가와 유효수요의 증가를 동시에 이루면서 균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연계된다. 경제적 측면에서 지속성장 속에서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는 경기 침체나 위기를 최소화해 실업으로 인한 국민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국민의 평균적인 소득과 복지 수준을 높여 빈부격차를 줄이는 동시에 소비지출과 투자지출을 증가시킴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을 이룩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초반부터 빠른 속도로 진행된 경제성장과 인구 증가에 따라 경제 전반적으로 공급 역량과 국내 유효수요 규모가 급속히 확대됐고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사업혁신 등을 통한 국제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출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5명인 초저출산 현상과 함께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등 인구 구조의 급변은 유효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또 노동투입, 자본투입 및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의 하락으로 공급 측면의 성장률(잠재성장률)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보호무역주의의 부상을 극복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런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이민자를 수용할 때 주로 노동시장에서 미스매칭이 발생하는 분야의 인력 부족을 메우는 외국인력정책이라는 단편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민은 정치, 외교, 안보, 사회, 문화, 복지 등에 미치는 영향은 차치하고라도 경제적 측면만 봐도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이민과 경제와의 관계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나 관심이 부족해 부처별 이해관계와 관심도에 따라 단편적이고 단기적인 시각에서 임기응변적으로 대처한다면 올바른 이민정책이 수립될 수 없다. 따라서 이민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이외에 공급 측면에서 연구개발과 생산성 등에 미치는 영향, 수요 측면에서 소비지출, 투자지출, 재정지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연구의 가장 큰 장벽은 중앙행정기관 등 공공기관이 보유한 데이터가 공익적 목적으로 설립된 연구기관과 공유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없고 공공기관에서 세부적인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거나 수집하더라도 그 분류체계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공기관에서 이민정책을 정확히 이해하고 어떠한 데이터를 어떠한 분류 체계에서 수집하고, 이를 공익 차원에서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금융기관 등 민간기관의 경우에도 공익적 차원에서 공개 가능한 통계를 적극 외부와 공유할 필요가 있다. 동 데이터가 정부의 부가가치세, 인적 사항 데이터와 결합해 체류자격(정주 여부), 연령, 거주 지역과 기간, 소득 수준 등에 따른 소비지출액과 소득 대비 소비 비율 등을 분석할 수 있다면 국가단위 또는 지역단위 내수시장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 이민정책을 수립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경기시론]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딥페이크 성범죄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가 심상치 않다. 이에 교육부도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학교 디지털 성폭력 초기 대응을 위한 ‘디지털 성폭력 SOS 가이드’를 제작해 발간했다. 딥페이크 성범죄,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폭력의 위험으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고 관련 피해 발생 시 학교 구성원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학생용, 교사용, 학부모용으로 제작돼 학교 현장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1월 학교폭력예방법의 개정으로 ‘딥페이크 영상 등을 제작하거나 반포하는 행위’가 사이버폭력의 유형에 포함됐다. 이제 딥페이크 성범죄가 학생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인공지능(AI) 기술 및 디지털 기기 등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성(性)과 관련된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인 디지털 성폭력은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에 익숙한 10대 학생들 사이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동의를 구하지 않고 무단으로 주변 친구를 촬영하는 등 친구의 초상권에 무심하고 친구들의 사진을 다른 사진과 웃기게 합성하는 일은 학교에 이미 만연해 있는데 이러한 행동들이 AI 기술 등을 만나 성적인 폭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의 자녀는 그럴 리가 없을까. 얼마 전 한 학부모의 전화를 받았다. 현재 중학교 3학년생의 보호자로 본인 역시 입시학원을 운영 중인 교육자라고 했다. 그런데 특목고를 준비 중인 자녀가 동급생의 사진을 나체사진과 합성해 딥페이크 사진을 제작하고 이를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한 정황까지 확인된다는 선생님의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상상치 못한 통보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며 소위 모범생인 자녀가 이러한 행위를 했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의 10대는 다른 학생들을 동의 없이 촬영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인식이 거의 없으며 딥페이크 합성사진을 만드는 것은 지브리풍 사진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쉽고 간단하다. 누구라도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호기심에 딱 한 번 만든 것이고, 만들지 않고 보기만 한 것이며, 보내준 사진을 보관한 것뿐이라며 본인 행동이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학생도 많다. 하지만 유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성적인 허위영상물(딥페이크)을 제작하는 것 자체는 디지털 성폭력이며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등을 소지하거나 시청하는 행위 역시 범죄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 성폭력은 매우 심각한 학교폭력이다. 교사는 이를 알게 된 경우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으며 학교폭력 사안 처리도 진행된다. 디지털 성폭력의 경우 무관용의 원칙으로 대응하고 있으므로 단 한 번의 행위라 하더라도 강제 전학이나 퇴학 처분 같은 중징계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니 우리 아이만큼은 가해자가 되지 않으리란 막연한 믿음은 버려야 한다. 자녀와 딥페이크 문제에 대해 대화를 해보자. 이를 통해 자녀의 디지털 환경을 확인해야 하고 위험 요소가 있을 경우 적극적인 예방교육이 필요하다. 사진을 찍기 전에 반드시 동의를 구하도록 하는 등 초상권에 민감해지도록 교육하자. 나의 정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올리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의 사진이 공개됐다 하더라도 동의 없이 내려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SNS 추천 알고리즘의 문제가 있으니 나쁜 콘텐츠는 절대 보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자녀 스스로 그것을 시청하거나 내려받았을 때의 위험한 결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 자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처벌 수위를 아무리 올려도 본인 행위가 잘못됐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정책일 뿐이다. 가정에서의 교육뿐만 아니라 학교에서의 디지털 성폭력 관련 교육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기시론] 트럼프발 관세 전쟁, 어떻게 대응하나

트럼프발(發) 관세 정책으로 세상이 난리다. 이는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해소하고 미국 내 제조업의 부흥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각국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무역흑자의 이득을 누렸다고 볼 수 있다. 한국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사실상 관세가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미국민이 싸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향유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만큼 이번 관세 폭탄은 패권을 쥔 미국의 지나친 횡포로 읽힌다. 한편 이번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는 것과 별개로 미국에 엄청난 불이익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유수 기관들은 트럼프 2기 관세 부과 정책이 미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한다. 실제로 트럼프발 관세 정책 발표가 있고 나서 미국 시장에서는 주식·국채 투매가 속출하는 등 금융시장 혼란이 커지고 있고 수입물가 상승에 의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가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 1기 재임 시의 관세 부과 정책을 살펴봐도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다. 트럼프의 관세 부과 정책으로 미국 무역적자는 오히려 2016년 7천350억달러에서 2020년 9천억달러 이상으로 23%나 증가했다. 더 나아가 미국의 제조업 부흥이라는 목표 달성도 실패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그런 만큼 미국 입장에서 관세 정책은 지속해 갈 수 있는 사안이 못 된다. 트럼프 정부 또한 이러한 점을 모를 리 없다. 아마 적절한 시점에 관세 카드를 접을지도 모른다. 다만 미국이 대중(對中) 패권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관세 정책이 전략적으로 유효한 수단이기에 미국은 자국에 손해가 나는 한이 있더라도 관세 카드를 쉽게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트럼프발 관세 정책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태는 앞으로도 심각한 양태를 띨 것으로 보인다. 자칫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이 되고 이 싸움이 간단히 끝날 것 같지 않다. 그도 그렇듯이 중국은 미국 관세 부과에 맞불 관세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이에 맞서 1차 재보복으로 50%, 2차 재보복 조치로 21%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더니 급기야 최대 245% 관세 부과를 명시하기에 이르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전면 발효 13시간여 만에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는 10%의 기본관세만 부과하고 국가별 상호관세는 90일간 유예하기로 했다. 중국과 다른 나라를 분리해 대응하는 관세 정책 카드를 뽑아 쓰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이 중국처럼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을 대적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으로서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한 미국의 관세 부과 면제를 끌어내는 것이 최선이다. 미국이 중국과 다른 국가를 갈리치기 하는 전술적 행보를 하고 있기에 미국과의 협상은 적절한 우리 측 카드를 제시하면 유효한 결과를 얻어낼 수도 있다. 개별 기업 차원의 미국 내 투자 발표가 답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미국에 먹히는 우리 측 카드는 무엇이어야 할까.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등의 산업 분야에서 무관세를 관철시킬 수 있는 카드여야만 한다. 이 분야 중국 내 제조 기업들의 입지와 저렴한 인건비 및 양질의 인력이 있는 시장을 한국, 더 나아가 한반도에 조성하는 것이 바로 핵심이다. 미국의 제조업 부흥은 사실상 불가능한 과제라 할 때 이것이 미국의 불안을 해소해주는 좋은 카드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는 단기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미국과 힘을 합쳐 차차 이뤄가겠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추후 관세협상은 새로운 대통령이 주도할 사항이다.

[경기시론] 재외동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국제 이주를 해 외국 국적을 취득하거나 무국적자가 된 재외동포의 수가 많았던 이스라엘이나 독일 등은 그 재외동포의 귀환권(Right of Return)을 인정했다. 이스라엘은 1950년 귀환법을 제정해 모든 유대인에게 이스라엘로 돌아올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이스라엘로 입국하면 국적을 부여했다. 여기서 유대인이란 할라카(Halakha)라는 유대교법에 따라 어머니가 유대인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을 말한다. 1970년 귀환법을 개정해 유대인의 배우자, 자녀와 손자녀 및 그 자녀와 손자녀의 배우자는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귀환권을 부여했다. 독일은 기본법에 따라 1937년 12월31일 현재 독일제국 영역에서 독일 국적을 가졌거나 독일 민족에 속하는 사람 중 망명자나 추방된 사람과 그 배우자 및 자손은 독일인으로 인정한다. 또 1933년 1월30일부터 1945년 5월8일까지 정치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이유로 독일 국적을 박탈당했던 자와 그 직계비속에 대해 국적 회복을 허가하고 1945년 5월8일 이후 독일에 주소를 가져온 사람은 독일 국적을 상실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적법에 따라 과거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던 자에 한해 국적회복(그 미성년인 자녀만 수반취득 허용)을 허용하고 그 외에 일제강점기에 이주한 동포의 직계비속은 그 대상에서 제외한다. 1999년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외국 국적 동포에게 재외동포(F-4) 비자를 발급해 국내 입국을 허용하고 일정한 범위에서 경제활동을 허용하는 등 법적 지위를 향상시켰다. 그러나 중국동포 등의 대량 입국으로 인한 혼란을 우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던 자(동포 1세)와 그 자녀(동포 2세), 손자녀(동포 3세)에 한해 외국 국적 동포로 인정했고 단순노무 분야에는 취업을 할 수 없도록 했다. 2004년 헌법재판소의 불합치 결정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에 해외로 이주한 외국 국적 동포에 대해서도 재외동포법을 적용했다. 또 국내 노동시장에서의 인력난이 심화됨에 따라 2007년 중국동포와 옛소련동포 등의 단순노무 분야 취업을 가능케 하고 방문취업제를 시행했다. 2019년 정부는 동포 3세까지만 외국 국적 동포로 인정하던 것에서 벗어나 과거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던 자의 직계비속에 대해 세대 제한없이 그 범위를 확대했다. 이러한 법제도의 변화는 해외로 이주한 동포의 직계비속에 대해 다른 외국인과 구분, 점차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동포로 보는 방향으로 변화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아직까지 일제강점기에 해외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상처를 우리 사회가 완전히 포용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이른 점이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의 제7차 인구센서스 자료(2020년)에 따르면 중국 내 조선족 인구는 170만2천479명으로 2000년 제5차 인구 센서스 당시에 비해 22만1천363명 줄었다. 지난해 12월 말 국내 체류 중인 중국동포는 64만3천277명으로 이 중 재외동포(F-4) 자격으로 처우를 받고 있는 중국동포는 38만9천544명이다. 중국동포 인구 감소 추세와 국내 거주를 원하는 인구의 대부분이 이미 국내에 체류 중이거나 고령화로 노동시장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중국동포를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국회는 2023년 제정된 재외동포기본법을 통해 재외동포가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재외동포의 대한민국에 대한 이해와 신뢰 증진활동 장려 등 대한민국과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것을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또 정부는 제4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2023~ 2027년)에서는 방문취업(H-2) 비자를 재외동포(F-4) 비자로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향후 두 제도를 통합해 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유대감을 가진 사람은 재외동포(F-4) 자격을 부여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허용하고 중도에 입국한 외국 국적 동포에 대해 한국 언어, 사회, 문화에 대한 이해와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과거의 역사적 상처를 우리 사회가 포용함은 물론이고 미래를 위해 한인의 정체성에 대한 개념을 단순히 혈연으로만 보는 시각을 넘어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수용하고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까지 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합법적으로 정주하는 외국인의 자녀가 국내에서 출생해 초·중등교육을 받았고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졌다면 한인의 범위에 포함해 국적을 보다 쉽게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

[경기시론] 학교폭력을 전담하는 변호사의 역할에 대해

필자는 교육청에서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로 만 9년2개월을 근무했다.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란 무엇인가.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는 교육(지원)청에 상근하며 학교폭력 사안과 관련해 학교와 교육(지원)청에 법률 지원을 한다. 학교폭력 사안 처리에 전반적인 컨설팅을 하고 관련 민원에 대한 대응을 지원하며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직접 맡아 진행하거나 지원하기도 한다. 필자가 교육청에 들어온 시점이 2015년 1월인데 그때만 해도 교육청에 근무하는 변호사 수는 손에 꼽았고 몇 안 되는 전국 교육청 변호사들이 모여 협의하는 자리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2020년 들어 학교폭력을 포함한 학교 내 갈등이 눈에 띄게 늘었고 해당 갈등을 대화가 아닌 ‘법’의 논리로 풀어가는 경우가 많아짐에 따라 교육(지원)청 직원으로 채용된 변호사 수가 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전담 변호사의 역할도 보다 구체적으로 바뀌는 추세다. 며칠 전 한 매체를 통해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 제도의 현황이 공개됐는데 지난달 기준으로 전국 교육(지원)청에 소속된 변호사가 총 50명이라고 한다. 변호사 1인당 약 10만2천600명의 학생을 맡는 셈이라 여전히 현실적으로 모든 사건에 대해 충분한 법률 지원을 제공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는데 제도란 운영하기 나름이고 업무를 하는 담당자의 역량이나 의지에 따라 많은 것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최근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른 사안 처리가 점점 구체화되고 관련한 업무 처리 지침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학교폭력이 학생생활지도, 교육활동 침해, 아동학대 사건 등과 얽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당사자 간 갈등이 극심한 경우도 잦다. 이에 따라 학부모, 학교와 교육청이 느끼는 사안에 대한 무게감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교육전문가인 학교 내 교사로서 이러한 업무 처리를 법률전문가처럼 해내기란 참 어려운데 보호자들은 학교와 교사가 변호사처럼 그 업무를 전문적으로 처리해 내길 기대한다. 학교폭력 관련 법률 정보는 삼삼오오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만 가도 넘친다. 학교폭력을 검색해 나오는 정보의 양이 어마어마해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도 어렵다. 나만 정보에서 뒤처진다고 생각한 다음에 뒤따르는 건 종종 의심이다. 잘못된 정보를 사실이나 진실로 믿고 그와 같이 처리되지 않는 경우 학교와 교사를 불신한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가 교육(지원)청 내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다. 단순히 학교와 교육(지원)청에 법률 지원하는 것을 넘어 갈등의 직접 당사자인 학생 및 학부모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 변호사의 조력 여하에 따라 알게 되는 정보의 양이 달라지는 것을 막고 정보의 불균형을 없애기 위해 양질의 정확한 정보를 공정하게 제공하는 것. 교육(지원)청에 소속된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는 이러한 일도 해야 한다. 필자는 아동·청소년과 교육의 문제에 관심이 깊다. 우리 사회에서 공교육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교육의 사법화든 외주화든 그리고 사교육시장의 엄청난 팽창이든 학교와 공교육이 바로 서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적어도 학교 내 갈등까지 외부의 힘을 빌려서는 안 된다. 대화로 관계의 어려움을 풀 수 있도록 공동체의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되 혹여 대화로 해결되지 않아 갈등이 사건화됐다 하더라도 교육(지원)청 내 전담 변호사 등 전문가로부터 균등한 양질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 해당 학교폭력이 외부의 입김에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학교폭력예방법상 학교폭력 사안 처리나 추후의 민원 및 불복 대응은 법률전문가가 아니면 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교육의 사법화와 외주화가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학교와 교육(지원)청에 법률 지원을 하는 전담 변호사 제도는 필수적이다. 이들로 하여금 학생 및 보호자에 대한 교육이나 자문을 하게 해 외부로 쏠리던 법률 지원 요청을 교육(지원)청 내 자원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인력난을 겪고 있는 교육청에서도 우수한 변호사를 채용하기 위한 적극적인 처우 개선 등의 노력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경기시론] 새로운 성장의 기회, 기후경제에서 찾자

지난달 21일 영국 투자은행인 캐피털이코노믹스(CE)는 올해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0%에 그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현 상황을 보면 심지어 0%대 경제성장률을 보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물론 여러 정책 대응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복마전 같은 현 정치·경제 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정말 이렇게 추락해 가고 마는 것인가. 그 무엇보다 비정상적인 정치·경제 상황을 정상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현 상황을 돌파할 전략적 대응책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최근 마이크 던리비 미국 알래스카 주지사의 한국 방문은 우리에게 매우 심각한 사건이다. 그는 한국의 알래스카 가스(액화천연가스·LNG) 구매 및 프로젝트에 대한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이는 무역 불균형 문제, 관세를 포함한 여러 사안과 연동돼 있기에 한국 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런 만큼 이에 대한 전략적 판단과 대응이 필요하다. 하기에 따라 이것을 한국 경제 성장의 새로운 모멘텀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은 셰일가스전 개발로 천연가스를 충분히 공급하고 심지어 수출까지 하는 나라다. 그런데 왜 자그마치 1조달러(약 1천450조원)에 달한다고 하는 알래스카 천연가스를 개발하려는 것일까. 그것도 이 사업에 한국을 끌어들이려는 것일까. 그것은 미중 간 동북아 패권 경쟁에서, 그것도 에너지라는 자원 인프라와 탄소중립 기술 경쟁에서 미국이 우위를 점할 교두보를 알래스카 천연가스 개발에서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 소비처를 동아시아 시장에 만들고 더 나아가 중간 생산지 혹은 경제적 회랑을 한국에 조성하려는 의도도 있다. 이것이 실제로 구현되면 한국은 어마어마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천연가스 개발은 화석연료로의 회귀일 수 있지만 수소와 같은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통한 그린에너지를, 이의 연료전지화 등을 통한 탄소중립, 친환경 기후경제를 창조하는 중요한 중간고리가 된다. 이의 주도권을 자칫 러시아에 뺏길 수 있어 현 시점에서 미국은 알래스카 천연가스 개발을 들고 나온 것이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개발 선도국가이고 연해주 일대의 가스전 개발 및 지열 이용 개질 공정이 이미 형성돼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마음이 급한 것이다. 일단 한국을 투자국으로 엮어 자기편 붙박이로 잡아 두려는 속셈이 있다. 연료전지 기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을 활용해 후발주자의 약점을 극복하겠다는 의도도 숨어 있다. 러시아는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고 있다. 거대한 시장 형성이라는 점에서 러시아에 큰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또 가격경쟁력의 우위와 파이프라인을 통한 공급에서 한발 앞서고 있어 러시아는 느긋한 입장이다. 미국은 한국뿐만 아니라 북한까지도 자신의 편으로 묶으려는 구도를 짜고 한반도를 미국의 대(對)중국 패권전쟁 전선의 첨병 지역으로 삼기 위한 포석을 깔고 있는 중이다. 그런 차원에서 미국은 북한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러시아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고 또 상당 수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전쟁 종식의 물밑 협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인데 조만간 북미 협상이 이뤄지고 궁극엔 북미 종전선언까지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남북 간 평화 모드 조성을 적극 권장할 것이다. 이의 연장에서 남북 간 교류를 통한 한반도 내에 미국 알래스카 천연가스와 러시아 연해주 천연가스 간 경쟁 시장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은 대격변 중이다. 이 흐름을 잘 타면 한국 경제는 저성장 흐름을 성장으로 대반전시키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후경제이며 평화경제다.

[경기시론] 국내 유입 이민자 규모 어떻게 정해야 할까

법무부는 지난해 정주적합성이 높은 전문·숙련 외국 인력을 체계적으로 도입하고 정책 수요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며 국민 일자리 보호를 위해 ‘취업비자 총량 사전 공표제’를 시범 도입했다. 해당 제도 도입을 통해 우수 인재, 투자자 등과 같이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할 대상의 경우 정책 목표로서의 기능을 하고 단순기능인력 등과 같이 국민 일자리 보호가 필요한 경우에는 연간 비자 발급건수의 상한을 제한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이에 앞으로 인구 구조, 경제성장률, 산업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연간 이민 도입 규모를 정하는 방향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국가들의 관행을 보면 미국은 이민귀화법에 따라 매년 인구의 0.3%(약 100만명)에 해당하는 이민비자(영주비자)를 발급하고 있고 캐나다와 호주는 연간 계획을 수립해 매년 인구의 약 1%에 해당하는 이민자에게 영주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영주비자를 발급할 때, 학력, 경력, 소득, 연령, 언어능력 등 다양한 개인 역량을 고려하기 때문에 정주 외국인의 양은 물론이고 질적 수준을 조절할 수 있다. 앞선 나라들은 영주비자 이외에 일시적 거주와 취업 등에 필요한 비자도 발급하지만 영주비자를 통한 정주인구 증가에 더 큰 정책의 비중을 두고 있다. 이로 인해 이민자들은 영주권을 가지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있어 자신의 기술, 기능, 지식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해외에 가진 물적 자본까지 이전할 수 있다. 아울러 본인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 나가고 창업에도 쉽게 도전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일본 등은 주로 노동수급 상황을 고려해 부족 인력을 메울 수 있는 이민자의 취업 업종·직종을 제한해 한시적으로 거주를 허용하고 입국 후 에 정주자격을 부여할지를 결정한다. 우수인재 입장에서 볼 때 정주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떨어지고 직업역량의 강화와 직업의 변경, 창업 등을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이 정책은 결국 인력의 미스매칭이 많이 발생하는 단순노무 분야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많이 유입시킨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취업자격을 가진 외국인 근로자의 약 84%가 단순노무에 종사하고 있다. 지난해 이민정책연구원이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는 중소제조업체를 분석한 결과 외국인이 1% 증가할 때 지역 내 제조업의 생산성이 0.56% 감소했다는 연구가 있을 정도다. 202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이민자의 전문성(숙련성)이 높을수록 생산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기업이 채용하는 외국 인력의 구조에 따라 그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정부, 대학 및 기업이 협업해 연구개발을 통한 새로운 기술과 혁신적 사업모델의 개발, 자동화 등을 통해 산업구조의 조정을 촉진하고 그 변화에 적합한 숙련기능공과 전문인력을 양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구 보너스 시대와 같이 부족 인력만 보충하면 된다는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인구 급감에 따라 소비와 투자가 감소하고 노동 수요와 일자리가 감소하는 악순환을 가져올 것이다. 이미 지난해 8월 기준으로 229개 시·군·구 중 57.2%가 소멸위험지역이 될 정도로 대다수 지역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섰다. 따라서 생산, 소비, 투자 등에 도움이 되는 정주외국인의 유입과 정착 지원에 대해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 실행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역비교우위산업의 육성 ▲교육발전특구의 활용 확대 ▲다양한 대안학교와 저렴한 국제학교 운영 ▲방과 후 프로그램 지원 ▲거주여건 개선 등을 통해 이민자는 물론이고 자녀가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이 이뤄져야 부모도 정착할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해야 한다. 일본은 인구 구조 악화와 인력 부족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해외 직업훈련을 강화했고 2019년 특정기능 2호 비자를 신설, 숙련기능 외국 인력까지 정주를 허용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독일은 1994년 유럽연합(EU) 단일시장 출범에 따른 노동시장 개방, 2004년 EU에 가입한 동유럽 8개국에 대한 노동시장 개방, 2020년 ‘전문인력 이민법’ 제정을 통해 EU가 아닌 국가의 전문인력과 숙련기능공의 유치 및 정주 허용 등과 같이 정책의 근본적인 틀을 바꾸고 있다. 우리 사회도 이민자를 부족한 인력을 일시적으로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잠재력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인간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각의 전환이 이뤄져야만 우리나라 이민정책의 근본적인 틀도 바뀌기 때문이다.

[경기시론] 촉법소년과 범죄소년의 소년보호사건 송치 ‘그 의미’

소년보호사건에서 흔한 비행 사실은 ‘절도’다. 지난 2월 의정부지방법원에서 보호사건 심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학생이 무인점포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훔쳐서 왔다며 큰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얘야, 단돈 천원짜리라도 다른 사람 물건을 훔치는 건 범죄란다”. 금액과 상관없이 돈을 지불하지 않고 판매되는 아이스크림을 먹은 것은 큰 잘못인데 그 학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아마 이런 자세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해당 건이 수사기관에 신고가 되고 보호사건으로 송치까지 된 것이리라. 절도와 관련해 상담할 때 가장 많이 하는 해명은 계산을 한 줄 알았다는 것인데 정작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 보이는 태도를 보면 변호사(보조인)인 필자조차 설득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거짓말은 티가 난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경찰서에 신고가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범죄소년(14~19세 미만)의 경우에는 절도 금액과 재범, 반성 및 합의 여부 등에 따라 조건부로 기소유예가 되거나 즉결심판 벌금 등으로 마무리되기도 하며 소년보호사건으로 송치돼 소년법상의 보호처분을 받는다. 형사처벌이 가능한 나이이기는 하나 소액 절도로는 잘 이뤄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촉법소년(10~14세 미만)은 형사미성년자로서 기소유예나 즉결심판 등이 어렵기에 혐의가 인정되는 한 소년보호사건으로 송치, 소년법상의 보호처분을 받는다. 이러한 보호처분은 소년법상 ‘그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어 범죄경력회보서에 기재되지는 않는다. 최근 경찰청은 전과자 양산을 막기 위해 범죄소년의 경우 선도심사위원회를 통한 훈방이나 즉결심판청구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검사의 기소유예 처분이 예상되거나 소년부 송치되더라도 1호 처분(보호자 감호위탁) 또는 2호 처분(수강명령), 3호 처분(사회봉사명령)이 내려질 가능성이 큰 사안의 경우로 보인다. 그런데 범죄소년에 대한 이러한 훈방 등이 비행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는 신중하게 검토해봐야 할 일이다. 소년보호사건의 보조인(변호사)으로서 학생들의 비행 사실을 들여다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는데 무엇보다 소년보호사건 심리기일 전에 통상 받게 되는 결정전 조사나 생활환경조사서 작성 등을 통해 보호소년 본인뿐만 아니라 그 보호자들이 비행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재발 방지 노력을 하는데 이는 이들에게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보호자들은 본인의 양육 태도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자녀에 대한 지도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게 되므로 보호사건 처리 과정은 비행 억제에 꽤 긍정적이다. 이렇듯 소년보호사건은 잘못에 대해 충분히 깨닫게 하고 비행의 반복을 멈추는 데 목표가 있다. 학생들이 바른 어른으로 커 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잘못의 인정이 반드시 필요한데 보호사건 처리 과정은 형사사건 처리 과정보다 이에 부합한다. 소년법에 따라 10세부터 13세까지를 촉법소년이라 지칭하고 이들을 보호처분이라도 받게 한 것은 14세가 되지 않으면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도록 규정한 형법의 공백을 메우고자 하는 것이지 이들을 봐주고자 함이 아닌 것이다. 소년법을 폐지하면 그나마 이뤄지던 보호처분도 불가능해지므로 폐지 논의는 의미가 크지 않을 것이고 다만 비행을 일삼는 미성년자의 나이가 어려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선도를 위해 형사미성년자의 나이를 14세에서 12세나 13세로 낮추자는 논의는 충분히 가능하고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경기시론] 저성장 극복... 사회경제 배려와 함께해야

올해 들어 각종 경제지표가 마이너스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한국 경제가 원래 어두웠는데 여기에 정치적 불안정이라는 요인이 가미돼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정치적 불안정은 그 진폭이 크든 작든 어떤 형태로든 조만간 해소될 것이다. 그런데 경제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특히 단기간에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우리를 몹시 불안하게 만든다. 경제 문제 중 대표적으로 저성장이 요즘 화두다. 한국은행 등 여러 기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지난해 말 2.1%이던 것이 이제는 1.5%까지 조정됐다. 대외 여건 악화로 수출이 위축되고 제조업 부진은 설비투자를 감소시켜 고용에도 영향을 끼치는 실정이다. 내수 둔화와 경기 부진의 지속성을 벗어나기 위해 금리를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하는데 이는 환율 변동과 연동되기에 이마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러다 일본의 장기 정체가 우리의 현실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저성장을 극복하는 주요 방안으로 기술혁신이 자주 거론된다. 기술혁신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경제를 성장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은 경제성장만 아니라 개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한다. 예를 들어 최근 부각되고 있는 인공지능이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하는 일반형 인공지능이 되면 엄청난 생산성 증가를 보일 것으로 예측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미국과 중국은 인공지능을 놓고 사활을 건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과학기술의 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 흐름은 거역하기 어려운 법인 만큼 이 흐름을 타야 하고 한국도 여기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한국 경제를 저성장에서 성장으로 전환시키는 주요 동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다만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이러한 기술혁신 또한 숱한 사회적 문제 발생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술혁신이 생산성 향상을 추동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여기에는 일자리 문제, 먹고사는 생계 문제가 수반돼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버 택시 도입이 우리나라에서 기존 택시업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좌절한 적이 있었다. 이는 기술혁신이나 경제적 효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 해결과 사회적 이해를 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일자리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새로 생긴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데 기술혁신이 이루는 높은 기술 수준을 감안할 때 새롭게 생긴 일자리가 아무에게나 쉽게 허용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기에 중단기적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더 크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더군다나 일반형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는 시기도 머지않다고 한다. 이 경우 특히 중산층 일자리나 전문직 일자리까지도 조만간 대대적인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제조업 및 남성 중심 고용의 산업화에 오랜 기간 고착돼 왔다는 것이다. 이는 중산층과 전문직을 포함해 대부분의 일자리가 고용을 통한 소득 확보 장치이고 이로써 자신의 생계 위협에 대비했다는 것을 말한다. 사회보험이나 공공부조 등이 있다고 하나 아직은 미미한 보완 장치에 불과하다. 그런 만큼 일자리의 위협은 목숨을 건 싸움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기술혁신에 의한 경제성장은 소수의 특수한 계급이나 계층을 제외한 대다수가 불안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위험 사회에 대한 합당한 대비책이 마련돼야 가능해 보인다. 실직자에게 일자리를 보장하든지 사회보장성 소득을 충분히 보장하라는 주장이 비록 급진적이긴 하나 우리 사회의 주요 담론이 된 적도 있었다. 최근에 대안으로 대규모의 세계적인 기술혁신 기업을 만들어 그 지분의 일부를 국민들에게 나눠 주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열려 있는 자세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경기시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연대감·정체성은 무엇일까

2021년 법무부는 국내에서 출생한 외국인에게 국적을 부여하기 위해 국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자는 ‘부 또는 모(대한민국에서 출생)가 영주자격을 가질 것’과 ‘6세 이하이거나 7세 이상으로서 5년 이상 계속해 대한민국에 주소가 있을 것’이라는 요건을 갖추면 신고 절차를 통해 쉽게 국적 취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국가 출신의 증가로 인한 정치적 결정이 편향될 수 있다는 여론 등에 부딪혀 입법 추진이 중단됐다. 이러한 논란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연대감과 정체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 법치주의, 인권보호 등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책임과 의무를 함께 한다는 연대감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과 국가 간의 법적 유대관계를 규정한 것이 국적법이라고 볼 수 있다. 국적법에 따라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 국민인 사람은 출생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다. 해외에서 출생해 교육을 받은 사람이 국내에서 생활할 경우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한 어려움, 정체성 혼란 등을 겪더라도 혈연이라는 유대를 통해 국민으로서의 연대감과 정체성을 가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국내 출생자의 부모가 모두 외국 국적을 가지더라도 국내에서 출생해 성장하고 우리나라 교육과정을 이수할 경우 대한민국의 언어, 문화, 헌법적 기본가치 등을 이해하면서 우리 사회에 통합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국적법은 그가 미성년자일 때 그의 부 또는 모가 귀화 허가를 신청할 때에만 함께 귀화를 신청할 수 있으므로 부 또는 모가 허가를 받지 않는 한 국적 취득을 할 수 없다. 지난해 11월 이민정책연구원, 서울시, 교육청 등이 함께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교육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에서 태어나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은 이주배경 아동은 한국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고 오히려 부모 국가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은 성인이 돼 가면서 차츰 국적으로 인한 정체성 혼란, 소외감, 진로에 대한 불안감 등을 느끼게 된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이주배경을 가진 초·중·고교생 수는 19만3천814명으로 전체 학생 수의 3.8%를 차지한다. 2017년 이주배경 학생 수(10만9천387명)가 전체 학생 수의 1.91%를 차지한 것과 비교할 때 학교에서 이주배경 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주배경 학생 중 부모 중 한 명이 외국인인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는 14만6천804명으로 74%를 차지한다.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 중에서 국내 출생자는 91.8%이고 해외출생자는 8.2%를 차지한다. 그리고 부모 모두 외국 국적을 가진 학생은 4만7천10명으로 이주배경 학생의 24.3%를 차지하며 2020년 21.4%에 비해 증가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역사적 경험을 고려할 때 혈연만을 중심으로 대한민국과 법적 유대관계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혈통주의 원칙과 함께 보충적 출생지주의를 도입한 국가 사례를 보면 독일은 부모 모두 외국 국적을 가진 국내 출생자는 그 부 또는 모가 8년 이상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하거나 영주권을 가지고 3년 이상 거주하면 출생과 동시에 국적을 취득할 수 있고 복수국적을 갖게 되면 18세가 된 후 5년 이내에 하나의 국적만을 선택해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 국내 출생자가 13세까지 프랑스에 거주하면 16세부터 18세까지 국적을 신청할 수 있다. 영국은 부 또는 모 중 한 사람이 영주권을 소지한 경우 출생과 동시에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외국의 입법 사례, 보충적 출생지주의를 도입할 경우의 우려 사항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다음과 같은 입법 방향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 국내 출생자가 국내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이수했는지를 살펴 국민으로서의 연대감과 정체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후 대한민국에서 13년 이상 거주하면서 초등 교육과정을 이수하거나 초·중등 교육과정을 6년 이상 이수한 경우 16세부터 18세까지 특별귀화 신청을 허용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귀화자는 병역의무가 면제되지만 동 대상자에게는 병역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국민으로서의 연대감과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고 부족해지는 인적 자원을 보충할 수 있다. 둘째,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우리나라로 원정출산을 오는 문제와 부모가 아동을 국내 정주 수단으로 이용하는 문제를 고려해 우선 부 또는 모가 영주(F-5) 체류자격을 가진 경우로 한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회, 정부,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토론을 통해 국민의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세부적인 방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경기시론] 학교폭력, 법적 해결보다 중요한 것

지난 10일 서울행정법원에서 ‘학교폭력 행정소송’을 주제로 학교폭력 실무 관련 강좌가 개최됐다. 학교폭력을 다루는 판사와 변호사를 비롯해 교육(지원)청에서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 업무를 다루고 있는 담당자가 다수 참여해 학교폭력 행정소송의 동향 및 학교폭력 사안 처리 관련 실무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고 한다. 필자 역시 교육청에서 9년 넘게 학교폭력 및 교육법률을 지원하는 변호사로 근무하며 교육 현장의 해석과 다른 법원의 해석에 난감하기도 답답하기도 했던 적이 많았다. ‘법’과 ‘법원’은 참 무거운 것이어서 결국 교육 현장과 괴리가 있는 판사의 해석에 따라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이 같은 강좌 및 협의회 등이 정기적으로 개최돼 간극을 줄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행정법원에 접수된 학교폭력 사건의 건수가 2022년 51건에서 2024년 98건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에 따라 서울행정법원에는 학교폭력 전담재판부까지 신설된 상황이다. 그러나 행정소송 단계를 경험했던 피해 학생이나 가해 학생이라면 ‘판결’이라는 것이 결코 분쟁의 해결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이번 강좌에서 발표를 맡은 판사들도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고 “학생들 간 진정한 화해가 있으면 소송의 형태로 종결하는 것보다 조정이나 자체 해결로 결론을 짓는 것이 교육적 목적에 부합할 것”이라고 말하거나 “학교폭력은 교육의 문제로 재판으로 넘어오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며 학교폭력의 교육적 해결을 강조했다. 학생들 간 관계회복의 가능성이 있는 건이라면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학교장 자체 해결로 종결되도록 하고 학교장 자체 해결로 종결되지 못한 건이라 하더라도 조정이나 관계회복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개최 전 심의 취소가 되도록 하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개최된다면 피해 학생 및 가해 학생 측이 납득할 만한 교육적 조치가 나오면 좋겠다. 그러나 이미 온갖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학교폭력 관련 교육현장은 그리 녹록지 않다. 학교장 자체 해결로 처리되기 위해서는 학교폭력예방법상 네 가지 요건(2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진단서를 발급받지 않았을 것,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복구되거나 복구 약속이 있을 것, 지속적이지 않을 것, 보복행위가 아닐 것)을 모두 충족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신고 학생 측의 서면 동의가 필요하기에 학교폭력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라도 학교장은 해당 사안을 학교 안에서 종결할 수 없고, 관계회복의 여지가 있다 해도 네 가지 요건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자체 해결로 종결할 수 없으며, 경미한 건으로 조정이나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자 해도 양측 모두의 동의가 없으면 시작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일률적인 학교폭력 사안 처리는 피해 학생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해 학생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도움을 주고 징계가 아닌 방법으로도 가해 학생을 선도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교육전문가인 학교장 및 교원의 다양한 조정 프로그램의 운영 등을 전제로 학교가 사건을 종결할 수 있도록 법령상 권한이 부여돼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심의위원회는 양측의 손해배상에 관련된 합의조정과 그 밖에 심의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에 대한 조정을 할 수 있는데 교육부는 ‘2025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 일부개정을 통해 교육지원청에서 분쟁조정을 담당하는 특별소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고 안내하며 운영 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그동안 가해 학생 조치를 내리는 데 집중됐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학생 및 보호자들 간 갈등이나 분쟁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경기시론] 美 트럼프의 관세 위협과 서희의 담판

지금 탄핵 국면의 지속은 주가, 환율, 수출, 수입, 물가 등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를 반영한 것인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말에 2.1%로 제시했다가 올해 들어서자마자 1.9%로 하향 조정했다. 앞으로 0.1~0.2%포인트 정도, 아니 그 이상의 추가 하락이 생길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경제가 성장을 하지 않고 오히려 하락한다는 것은 사회에 진출하는 세대에게 주어질 새로운 일자리가 없다는 것을, 더 나아가 직장인은 기존 직장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면 특히 자영업자를 위시한 일반 서민의 삶은 직격탄을 맞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가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하락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희망을 다시 절망으로 몰고 가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미국발 대형 악재가 터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현재 관세 부과라는 무기로 세계의 수많은 국가와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다. 물론 경제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중국이 주 타깃이지만 중국만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미국의 우방국인 유럽연합이나 캐나다 할 것 없이 전방위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데 과연 이 파고를 이겨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가 존망의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찾아야 할 것으로 본다. 이는 좋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고려 초 거란의 대군이 침입했을 때 서희는 거란 장수 소손녕과 담판해 교전을 치르지 않고 적을 물리친 적이 있다. 서희가 소손녕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거란의 본심을 제대로 파악해 대처했기 때문이다. 당시 동북아 국제정세상 거란은 송나라를 도모하려 했는데 고려가 거란의 뒤에서 위협 요인이 되고 있었다. 거란은 이 요인을 사전에 제거하고자 했던 것이지 고려 침입이 주된 목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면 지금 트럼프 정부의 본심은 무엇일까. 이것을 알면 우리의 대응은 서희가 거란에 했던 것처럼 쉬워질 수도 있다. 미국의 관세전쟁이 오히려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반전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이 관세전쟁을 벌인다고 미국 경제, 특히 제조업이 살아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미래 유망 산업의 하나인 전기차는 말할 것도 없고 첨단 미래 산업 분야인 인공지능(AI)이나 양자컴퓨터 분야조차 중국에 따라잡혔고 미국 제조업은 인건비나 제품 가격 측면에서 도저히 중국과 경쟁이 되지 않는 상태다. 이 점을 트럼프 정부가 모를 리 없다. 관세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오로지 중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세계 패권이 어디로 가느냐는 ‘역사는 돈이다’(강승준 저)라는 책에서 잘 설파하고 있듯 경제력, 즉 자본이 어디로 쏠리고 움직이느냐에 달렸다. 거대 자본이 미국을 벗어나 중국으로 가는 것을 막는 것이 트럼프의 심중에 급선무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 관세는 좋은 수단이 된다. 물론 관세전쟁은 미국민들에게 정치적으로 어필하기 위한 쇼라는 측면도 있다. 이것이 맞다면 한국은 이번 관세전쟁에서 트럼프를 쉽게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경제가 미국의 중국 견제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중국에 치중하지 않을 것임을 잘 이해시키면 된다. 더 나아가 한국에 관세 부과를 하지 않는 것이 향후 북미 간 평화 국면 조성 시 북한을 포함한 한국, 즉 한반도를 미국 경제의 활력처가 되는 새로운 경제 회랑으로 삼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알려주는 것이다. 해답은 관세 그 자체에 대한 경제적 대응보다 외교적 역량에 있다 할 것이다.

[경기시론] 초고령사회 속 노인돌봄서비스 관련 이민정책 방향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23일부터 주민등록 인구 5천122만1천226명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 수가 1천29만4천550명(20%)이 되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국민건강보험에 따르면 장기요양보험 수급자는 2023년 약 110만명으로 이 제도가 시작된 2008년(약 21만명)에 비해 523% 증가했다. 향후 노인돌봄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4월 말 현재 요양보호사의 경우 자격증 취득자 수는 287만5천159명이지만 관련 직무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65만7천104명(22.8%)에 불과하다. 또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 중 60세 이상의 비중은 43만1천138명(65.6%)으로 청장년층의 비중이 매우 낮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자의 근무기피 현상으로 인해 보건복지부는 2027년 약 7만9천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요양보호사의 대다수는 시설 근무를 기피하고 방문 요양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시설의 인력 부족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지난해 6월 국내 대학 졸업 외국인 유학생의 요양보호 분야에서의 취업을 허용하고 국내 체류 동포의 이 분야 취업을 장려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정부는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먼저 내국인의 일자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노인돌봄서비스 제공자의 중요성과 그 기여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령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2020년 기준으로 40.4%로 OECD 평균(14.2%)의 약 3배에 달할 정도로 높다. 2023년 통계청은 55~64세 취업 경험자 가운데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둘 당시의 평균 연령이 49.4세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은퇴자 중 아직 경제활동이 가능한 사람이 노인돌봄서비스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해 노인 빈곤율을 낮춤은 물론이고 노인 부양 관련 재정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 특히 노인돌봄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직업윤리교육을 강화, 서비스 이용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 현재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요양보호사 등 서비스 제공자의 인권 침해와 부당한 처우에 대한 구제 조치를 강화함과 동시에 해당 직업의 사회적 인식을 높이기 위해 종사하는 인력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외국인 유학생을 요양보호사로 육성하는 한편 일정 기간 이 분야에서 성실히 근무할 경우 그 지역에서 정주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2007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외국 정부와의 경제동반자협정을 통해 2008년 인도네시아, 2009년 필리핀, 2014년 베트남으로부터 일정 수준의 일본어 구사 능력을 갖춘 우리나라 요양보호사와 유사한 ‘개호복지사 후보자’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후보자들은 노인돌봄시설에서 정해진 기간 근무하면 개호복지사 자격시험의 응시자격을 부여받는다. 또 후보자의 일본어 구사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이들을 고용한 기관에 대해 일본어 학습 비용까지 지원하고 있다. 다만 일본의 사례를 참고하는 과정에서 해외에 있는 인력을 교육시키고 체류를 관리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기에 요양보호사의 처우 수준을 높여 내국인의 고용을 우선적으로 확대하고 유학생과 정주 외국인을 보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 이민정책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민자, 서비스제공 기관, 서비스 이용자 모두 이민자가 노인돌봄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의사소통이라고 응답했다. 해당 분야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 보호와 직결되므로 이민자는 한국어 구사가 가능해야 한다. 다만 현재 중국동포 등으로는 간병인 수요를 충당하기 힘든 현실을 고려해 한국에 정주하면서 한국어 구사 능력을 갖추게 된 결혼이민자, 취업 중인 이민자의 배우자 등을 간병인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해외 대학의 한국어학과를 졸업한 자 등을 간병인으로 선발하고 간병인으로 근무하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지원하는 방향까지 고려해 봄직하다.

[경기시론] 교육의 사법화, 우린 어디쯤인가

얼마 전 학교폭력 사안 처리가 잘못됐다며 가해 학생 학부모가 학교폭력 책임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적이 있었다. 피고소인 교사의 변호를 맡아 수사기관 조사에 참여했는데 수사관이 책임교사인 피고소인이 조사한 학교폭력 사안 처리에 상당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법을 모르는 교사이니 당연히 잘못된 점이 있을 것이라는 불신이 느껴졌다. 학교폭력 사안을 다룸에 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교사는 경찰관이 돼야 하는가, 법률전문가가 돼야 하는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조치에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이 불복해 제기한 행정심판은 5천100여건이다. 2021년 1천295건에서 2023년 2천223건으로 두 배가량 증가했고 행정소송 역시 2021년 255건에서 2023년 628건으로 늘었다. 대부분 가해 학생이 조치에 불복하는 사례이지만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 조치를 상향해 달라는 취지로 제기하는 행정심판과 행정소송도 점차 늘어나는 것으로 확인된다.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학교폭력 사안 처리라니. 2023년 초 정순신 전 검사의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이후 느닷없이 학교폭력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며 교육부는 중대한 학교폭력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며 학교폭력 조치사항 기록과 관리 강화를 포함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책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 발생 건수는 줄지 않고 있고 강화된 생활기록부 기재 및 관리 강화로 학교폭력 신고·조사 단계부터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으로 대응하는 건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학교장 자체 해결의 비율이 감소하고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받은 가해 학생 조치에 대한 불복 건수는 늘어난다. 모두 부정적인 지표다. 현재 학교폭력은 법적 다툼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교육 현장에 변호사의 진입이 많아지는 데 단초가 된 것이 학교폭력예방법의 제정·개정이다. 물론 학교폭력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진 것도, 권리의식이 신장된 것도 이유이겠지만 말이다. 학교폭력 신고와 사안조사 단계에서의 변호사 개입이 갈등·다툼의 조기 해결을 뜻하는 것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한 일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조치 의결 전에 이뤄지는 즉시분리, 긴급조치로 인한 가해 관련 학생의 억울함, 가해 학생 조치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면 대학 입시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불안감. 언론은 불안감을 자극하고, 변호사들은 이러한 억울함과 불안함을 법적 조력을 통해 모두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처럼 안내한다. 변호사가 개입하면 학교, 교육(지원)청 모두 교육적으로 해당 문제를 풀어 나가려는 노력보다는 문제 없이 사안 처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게 된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사소한 다툼까지도 교육적으로 훈계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인데 이는 ‘학교 공동체의 단절’로 이어진다. 학교 내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학생들은 그 갈등을 해결하며 화해하는 방법을 배우니 그러한 경험을 쌓을 필요도 있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기 전 예방주사 같은 것이랄까. 학생들 간 갈등이나 다툼을 모두 학교폭력예방법상 학교폭력으로 봐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이에 대해 법원도 상황에 따라 다른 판단을 하니 학교폭력의 개념도 참 불명확하다. 그러니 학교폭력 문제에 있어 ‘법’이 갖는 한계를 인정하자. 현재와 같은 법률과 정책으로는 학교폭력의 발생을 줄이기 어렵고 학교폭력 사안 처리를 통해 학교폭력예방법상 목적에 부합하는 결과(피해 학생 보호와 가해 학생 선도)를 초래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교육이 갖고 있는 힘과 학교가 마땅히 해야 할 노력이 사라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법률과 정책은 공동체문화를 구축하고 학교 스스로 자치의 힘을 함양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하고 우리는 학교폭력 문제를 학교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조와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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