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탄핵 정국·북미 종전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2024년 12월3일 밤 갑자기 비상계엄이 선언되고 이후 대통령 탄핵, 권한대행 탄핵, 다음 순위 권한대행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내란, 외환 등의 죄목이 거론되는 가운데 대통령에 대한 체포를 놓고 국가기관 공권력 간에 대치가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 나라가 헌법, 법률보다도 현실적 힘이 더 먹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대한 권력 게임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심지어 자칫 내란을 넘어 내전으로까지 확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됐는가. 국민 대다수는 헌법과 법률의 정당한 집행과 민주적 절차에 의한 정치 시스템의 안정을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신속히 이뤄지길 바랄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권력자가 민주적 가치를 훼손할 경우 이를 용납하지 않는 역사를 여러 차례 보여 왔다. 우리 국민의 민주주의 실현 역량은 가히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만큼 이번 국난도 능히 극복해 낼 것으로 믿는다. 그럼에도 우리를 크게 우려하도록 하는 것이 있다. 이번 사태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적 타격으로 우리의 삶이 완전히 황폐하게 된 중에 다음 수순으로 북한과 연동해 한반도에서 대변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건 남한과 북한 모두에 걸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대격동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제질서의 흐름을 볼 때 이것을 지나친 염려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 미국 대통령선거를 두고 세기적 선거가 될 것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의 말에서 비단 선거만 세기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 패권 질서의 변화도 세기적이고 역사적인 순간에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오는 20일 그의 취임일 이전에 벌써 세계질서는 변화의 기운이 꿈틀대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나 가자지구 전쟁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고 조만간 휴전협정을 선언할 듯한 분위기다. 물밑에서 그리고 뒤에서 미국이 강력하게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두 지역의 전쟁이 마무리되고 나면 다음은 어디일까. 바로 한반도가 될 것이다. 트럼프는 얼마 전 자신의 특임대사로 리처드 그레넬을 임명했는데 그는 지난 10여년 동안 북한을 담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는 김정은에 대한 대화 신호로 읽힌다. 그뿐이 아니다. 영국과 독일은 북한에 손을 뻗기 시작했고 이에 자극받은 인도 모디 총리는 그동안 휴면 상태에 빠졌던 인도의 북한 대사관을 가동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들에게 북한은 비즈니스적으로 관심 국가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도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미국의 물밑 움직임을 포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움직임은 돈의 흐름의 조짐을 암시한다 할 것이다. 트럼프 정권은 미국 우선주의를 선언한 만큼 미국에 활력을 넣기 위한 이벤트성 행사를 그의 취임 이후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대대적으로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 종전선언은 가장 적합한 이벤트가 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을 지렛대로 삼은 상태에서 한반도 및 동아시아를 대대적인 미국 및 세계 자본의 투자 거점으로 삼아 중국과의 경제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 들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러시아의 푸틴은 미국의 트럼프와 한배를 탈 것으로 예상된다. 서로의 이익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존 미어샤이머라는 세계적인 석학의 주장이 실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 앞에 던져진 시급한 과제는 먼저 탄핵 정국을 신속하게 마무리 짓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민주주의 구현 역량 위에 남북 간의 관계를 평화와 화해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북미 종전선언 후 펼쳐질 세계질서의 재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을 말한다. 이때 그 무엇보다도 평화경제가 경제성장 및 번영의 활로로 주목받게 될 것이다. 단, 기존에 언급되던 평화경제를 새롭게 다시 그려야 할 필요는 있다.

[경기시론] 이민자의 창업활성과 지역균형발전과의 관계

이민자가 국내로 유입될 경우 부족한 인력을 보충해 주는 효과 이외에도 소비, 투자 등 국내총생산에 대한 지출을 증가시켜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이민자가 창업을 할 경우 직접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이를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2년을 기준으로 37개 회원국의 취업자 중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국민의 경우 평균적으로 13.4%이고 해외 출생 이민자의 경우 평균 13.8%로 이민자의 창업비율이 더 높다. 세계 최대 이민 국가인 미국의 경우 국민은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이 8.2%이지만 이민자는 12.3%로 이민자의 기업가 정신이 국민보다 훨씬 높다고 볼 수 있다. 실제 2018년 뉴아메리칸이코노미재단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약 1천300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미국 500대 기업의 약 44%(219개)가 이민자 1세 또는 2세에 의해 창업됐거나 미국 국민과 공동으로 창업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민의 경우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이 18.7%로 OECD 평균보다 높지만 이민자의 경우 4.9%에 불과해 OECD 평균보다 훨씬 낮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이민 배경을 가진 자영업자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다. OECD는 이민자를 근로자로 고용하는 비율이 높고 이민자의 노동시장 접근성이 높은 국가들이 일반적으로 자영업자 비중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OECD가 지적한 사항 이외에도 정부가 이민정책을 외국인 근로자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는 점, 창업과 관련된 법제도와 금융 지원에 대한 정주 외국인의 접근성이 매우 낮은 점 등에도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최근 지역소멸 위기에 처해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이민자 유치를 통해 인구감소 위기에 대처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인구의 감소로 인한 공동화 현상이 심화되는 농어촌지역의 경우 국민은 물론이고 이민자의 창업을 활성화해 평균 소득을 높이는 동시에 일자리를 창출, 인구가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의 경우 국민은 물론이고 이민자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이민자가 그 지역에서의 거주를 기피한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일자리가 없는 환경을 탓하기보다 창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혁신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농촌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주민의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마을마다 경쟁력을 가진 농작물을 선정하고 그 마을에 거주하는 농업인들이 자발적으로 작물별 협동조합을 구성해 밭을 경지정리하거나 논을 밭으로 활용함으로써 자동화와 첨단 농기구를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1인당 경작면적과 생산성을 높이는 한편 농업혁신을 통해 발생하는 농업인과 이민자 등의 유휴인력을 농산물 가공 공장의 인력으로 활용함으로써 농산물 수급과 가격을 안정시키고 농가의 소득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작물별 연구단지 또는 해당 작물을 활용한 식품연구 단지를 조성해 작물과 식품의 품질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첨단 농기구의 대여와 지원, 유통망 지원 등을 강화해야 한다. 또 이민자 중에서 창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네덜란드는 2023년 기준으로 인구가 약 1천788만명이고 영토는 우리나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세계 식품 수출국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정부, 학계, 기업, 농업인 등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농업 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룩한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반드시 참고할 사례라고 본다. 지역 내 소재하는 고등학교 또는 대학과정에서도 그 지역에서 비교 우위를 갖는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유학생에 대한 교육, 직업훈련 및 창업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농어촌지역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몇 개의 마을 단위를 묶어 교육할 수 있는 기숙학교를 설치해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교육의 질을 높이거나 방과 후 온라인 보충 교육을 강화하는 방법 등을 강구해야 한다. 또 주거, 의료 및 도로의 정비 등을 통한 주거환경 개선에도 노력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현재 운영 중인 지역특화비자 또는 2025년부터 시범 실시 예정인 광역비자 제도와 관련, 그 지역에서 비교우위를 갖는 산업에 종사하는 이민자 또는 관련 분야를 전공한 유학생에게 우선적으로 비자를 발급해야 한다. 정부에서도 ‘벤처투자촉진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벤처기업 또는 초기 창업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전문가 양성, 벤처투자자금 조성과 지원, 세제 감면 등을 강화하고 있다. 향후 비교우위 산업 분야에서 창업하고자 하는 이민자에게도 이러한 제도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질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과 제도가 신속하게 마련되기 바란다.

[경기시론] 누구도 모르는 정서적 학대행위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 아동복지법 제17조 제5호에서 정하고 있는 정서적 학대행위의 개념이다.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행위란 무엇인가. 이처럼 모호하고 광범위한 법 규정 때문에 교권보호 5법(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아동학대처벌법)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동학대로 신고·고소돼 고통받는 교원이 많다. 경기도교육청에서 9년이 넘는 기간 근무하며 많은 사안을 지원해 왔기에 학교 현장을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는데 교육청 밖에서 보는 학교 현장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직접 신고할 수 있음에도 굳이 학교장 등에게 동료 교원을 아동학대범죄로 신고하라고 압박하는 학부모·교육감 의견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사의 언행으로 아동들이 정신상 피해를 입었다면 정서적 학대가 맞다고 단언하는 수사관, 아동학대 의심이 든다면 수사기관에 신고하면 된다는 무미건조한 국가기관의 회신까지. 아동학대로 신고되면 교육(지원)청 사안 확인, 지방자치단체(아동학대전담공무원) 조사, 수사기관의 수사까지 교사가 감당해야 할 과정이 참 험난하다.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이뤄진다 해도 최소 3개월은 교원의 일상생활이 무너져 내리고 기소되면 몇 년이 걸리기도 하는데 추후 불기소처분이나 무죄판결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그 기나긴 고통을 보상받을 길은 없다. 헌법재판소는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란 ‘아동이 사물을 느끼고 생각해 판단하는 마음의 자세나 태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성장하는 것을 저해하거나 이에 대해 현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행위로서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유기 또는 방임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행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고, 어떠한 행위가 이에 해당하는지에 관하는지는 법관의 해석과 조리에 의해 구체화될 수 있다”며 현재 아동복지법 제17조 제5호는 위헌이 아니라는 취지로 여러 차례 결정을 해왔다. 법원에서 법관의 해석과 조리에 의해 비로소 구체화되는 것이라면 이게 어째서 문제가 아니란 말인가.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가 무엇인지를 사전에 알 수 있어야 하는데 변호사인 필자 역시 도무지 이를 알기 어렵다. 그러니 교원의 생활지도 등으로 정신상 피해를 호소하며 아동학대가 아니냐는 질의에 “그것은 아동학대가 아니다”라며 자신 있게 답변을 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란 것이다. 현재 정서적 학대행위 개념을 구체화하는 내용을 담은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정서적 학대행위를 ‘반복적·지속적이거나 일시적·일회적이라 하더라도 그 정도가 심한 것으로 판단되는 행위’로 그 개념을 구체화하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회통념에 반하지 않는 교육·지도 등 행위를 정서적 학대행위에서 제외하며 아동학대범죄를 범하지 않았으나 이로 인해 신고된 사람의 정보를 아동학대정보시스템에서 삭제하는 등 권리보호 조치를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정서적 학대행위는 확인하기 어려워 그 피해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어 그로부터의 보호가 필요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러한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행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학대행위 개념은 매우 모호하고 광범위한데 무분별하게 이뤄진 ‘신고·고소’ 행위로 인해 교원이 입는 불이익은 상상 이상이다. 우리는 ‘서이초 사건’이라는 교육 현장의 민낯을 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법관의 해석과 조리에 의해 비로소 구체화될 수 있는 현재의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학대행위 개념의 한계를 과감하게 인정하고 학교 현장이 적극적인 생활지도 및 교육활동을 통해 보다 정상화될 수 있도록 정서적 학대행위 개념의 개정안 도출을 위한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제라도 말이다.

[경기시론] 계엄군도 공무원도 변하고 있다

5·16군사정변 때 서울에 출동한 군인들은 팔에 ‘혁명군’이라고 쓴 완장을 차게 했다. 그것을 찬 군인들은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김종필 전 국무총리 회고록에 의하면 완장을 차지 못한 군인들이 차별감을 느껴 곧바로 금지시켰다고 한다. 그때는 군인들이 완장 차고 정부 청사를 장악하는 것에 우월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군의 의식도 변했다. 지난 3일 밤 벌어진 계엄령 파동이 실패로 끝난 데는 출동한 군인들의 태도가 소극적이었고 지휘관급에서 ‘묵시적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북한 관련 작전으로 알고 출동했다며 수줍어 하는 병사도 있었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제 우리 군인들도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오는 정치군인으로 기록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이렇듯 45년 동안 경제발전만 아니라 사회 의식, 특히 군인 의식도 달라진 것이다. 공무원 사회도 군 사회처럼 그렇게 변해 가고 있다. ‘직업공무원’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5·16군사정변 때 군 장성들이 장차관을 차지했는데 그 무렵 가뭄이 심각했다. 그래서 가뭄 관련 장관이 충남 부여 현지 시찰을 왔다. 물론 군복에 권총을 찬 육군 소장. 충남도청 가뭄 대책 H국장이 현장에서 장관을 맞이해 브리핑을 했는데 도중에 장관과 국장 사이에 의견 충돌이 벌어졌다. H국장이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장관에게 맞서자 장관은 갑자기 권총을 꺼내고는 “당신 죽고 싶어” 하고 언성을 높였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긴장했다. 가까스로 자리는 파했으나 H국장은 “이제 나는 공직생활이 끝났구나” 하고 낙담하며 도청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곧 도지사실에서 호출이 왔다. H국장은 이제 사표 쓰라는 모양이다 생각하고 지사실에 들어서니 자기에게 권총으로 위협하던 장관이 지사와 함께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장관은 뜻밖에도 국장의 손을 잡고는 “당신 같은 소신 있는 공무원은 처음 봤소. 존경합니다” 하며 칭찬을 했다고 한다. H국장은 이후 부지사에 오르는 등 공직생활을 잘 마쳤다. 문재인 정부는 월성 원전 1호기의 가동 중단을 비롯해 탈원전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그래서 한번은 월성 원전 1호기에 대한 가동 연장 여부를 보고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담당 과장이 눈치 없이 ‘가동 연장이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너무 낡아 가동 중단하는 게 경제성이 있다는 답변을 기대한 상관은 그 과장에게 ‘너 죽을래’ 하고 버럭 화를 냈다는 것이다. 5·16 때 권총을 빼들고 ‘당신 죽고 싶어’ 하며 H국장에게 화를 냈던 군인 출신 장관이 생각나는 장면이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 탈원전을 다루던 부서의 공무원들 중에는 상관의 지시로 탈원전 자료를 주말에 삭제하는 듯 불법행위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고 더러는 구속되기도 했다. 청와대만 쳐다보는 정치 공무원 상관들 때문에 직업공무원들이 희생을 당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새 풍속도로 정부의 공약 사업이나 정책에 관련된 업무에서는 손을 떼는가 하면 기왕 손을 댄 공무원들도 열정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대통령실 파견 근무를 승진 혜택 등을 고려해 서로 지원했는데 지금은 기회가 주어져도 거절한다고 한다. 심지어 대통령이 유능한 인재를 골라 장관 등 요직에 기용하려 해도 청문회 같은 절차도 피곤하게 하고 훗날 구설수에 오를까 봐 기피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 사회와 군 조직에 새로운 풍속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번 계엄 사태에서 보여 준 발전적 시그널이다.

[경기시론] 기회경제, 경제 위기 돌파구가 될 것인가

우리가 무엇을 하려 하거나 무엇이 되려 할 때 ‘기회’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그 결과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고 한다. 기회가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데 결정적인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당장에 좋은 직장을 잡고, 좋은 학교를 가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싶어도 직장, 학교, 배우자에 접근할 기회조차 없는 사람은 이 말이 얼마나 가슴에 사무치는지 알 것이다. 기회는 경제적 영역에서 활용되면 경제적 자원이 되고 사회적 측면을 강조하면 사회적 자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기회가 풍성하고, 두루 펼쳐져 있고 또 양질의 것이 제공될 수 있는 사회는 안정되고 활력이 넘치며 희망으로 가득찬 세상이라 할 것이다. 올해 들어 경제에서 기회가 강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회경제’가 세간의 화두로 부각된 것이다. 이는 직접적으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8월22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직 수락 연설에서 “노동자와 중산층을 위한 기회경제를 만들 것”이라고 말한 것에서 연유한다. 이와 다르게 미국 대통령 당선인인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친다. 이 문구는 기회경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미국 경제, 특히 미국 제조업이 살아나도록 하기 위한 기회를 다시 만들겠다는 걸 암시한다. 그 기회를 다른 나라들에 대한 고관세 부과나 방위비 부담 증가 등에서 찾겠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국의 국가급 지도자들이 심각한 문제에 봉착한 경제의 활로를 찾는 데 기회가 중요하다는 어떤 느낌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경제는 재정적자, 무역적자, 인플레이션, 제조업의 붕괴, 일자리 부족 등 심각하게 어려운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고용률이 올라가 미국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하지만 이는 중남미 쪽 비합법 이민자 등의 일자리 차지라는 점에서 백인 중심의 중하층 미국인들에겐 설득력이 없는 얘기다. 우리나라 경제는 어떤가. 최근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통계청 등이 발표한 경제지표는 줄줄이 빨간불이다. 물가 상승률은 6%를 넘나들다가 최근 약간 진정되는 듯하나 이것이 내수 위축으로 해석되듯 생산, 소비, 투자는 트리플 감소를 보이고 있다. 내수 침체는 서민, 특히 중소상공인들에게 큰 타격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외 기관들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계속 떨어뜨리고 한국 경제가 갈수록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과 전망을 내고 있다. 한국 경제가 위기라는 신호다. 그런데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한다. 여기서 기회는 하나의 찬스로서의 기회라기보다는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낼 중요한 자원, 자본으로서의 기회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흥미롭고 고무적인 것은 10월24~25일 개최된 2024 경기글로벌대전환포럼에서 기회경제가 언급되면서 한국에서도 기회경제를 들고 나와 경제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이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언급된 기회경제는 인공지능(AI)과 휴머노믹스(인간 배려 경제)를 중심 개념으로 삼고 있다. 이는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되는 그런 내용은 아니다. 그리고 엄밀하게 말해 여기서 기회경제는 기회를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한 자원이나 자본으로 다루는 접근을 보여주고 있진 않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점은 기회경제 개념이 현재 미완성이고 계속 발전시켜야 하는 정책 개념이라는 것이다. 듣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우리의 경제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제시하는 프레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기시론] 다문화사회에서의 사회통합 방향

국제이주기구(IOM)는 이민자의 통합에 대해 “이민자와 이민자가 거주하는 사회 간에 서로 적응하는 쌍방향 과정을 통해 그 공동체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생활 속으로 통합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카슬과 밀러는 이민자를 주류 사회로 편입시키는 모형을 크게 차별적 배제 모형, 동화 모형, 통합 모형, 다문화 모형으로 구분했다. 첫째, 차별적 배제 모형은 우리 사회가 원하지 않는 이민자의 정주를 막고 국민과의 차별적 대우를 유지하며 문화적 단일성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동화 모형은 이민자가 출신국의 주류사회로 동화하는 것을 전제로 국민과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 대다수 국가는 귀화 또는 영주 허가 요건 중의 하나로 주류 사회의 언어, 문화 등에 대한 이해 정도를 평가하고 있는데 이는 동화 모형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다문화 모형은 원주민, 소수민족, 이민자 집단의 언어, 문화 등의 정체성을 보전하면서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캐나다와 호주는 영국 출신의 소수의 이민자가 주류 사회를 형성한 후 원주민 및 소수민족과의 공존을 추구하기 위해 원주민과 소수민족의 언어 및 문화의 보전을 장려하는 다문화주의를 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통합 모형은 이민자가 주류 사회와 상호 조정을 거치면서 주류 사회로 점진적으로 흡수되는 것을 말한다. 사회·문화적 통합 측면에서 우리나라, 유럽연합(EU ) 등의 선진국이 통합정책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에이미 추아는 ‘제국의 미래’라는 저서에서 역사적으로 다른 민족과 문화에 대한 관용과 포용력이 있는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패권을 차지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새로운 문화와 가치에 눈과 귀를 닫고 우물 안의 개구리로 배타적이고 현실에 안주하는 국가와 사회는 국제사회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간 정부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민자를 유치하는 데 관심을 집중한 반면 우리 사회와 이민자 간의 통합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원하는 이민자가 우리 사회에 정주할 수 있는 거주환경과 사회문화적 환경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이민자와 그 후손들은 우리 사회에 정착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정착하더라도 통합되기 힘들 것이다. 또 현재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전문 인력, 숙련기능공, 투자자, 창업자 등을 유치하기 위해 주요 선진국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에서 이민자들이 우리나라를 선택할 유인이 줄어든다. 따라서 반드시 이민자통합지수 같은 평가기준을 정교하게 만들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통합정책을 정기적으로 평가해 잘못되거나 미흡한 부분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이민자에게만 우리 사회와 문화를 존중하도록 일방적으로 강요할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도 이민자의 다른 문화와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우리 사회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출 경우 민주주의와 다양한 창의적 사고에 기반을 둔 사회로 발전할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도 폭넓은 지지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사회의 핵심적 가치를 수용하지 않고 분리되려는 개인의 이민을 억제하는 한편 국내에서 그러한 집단이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일부 특정 국가 밀집거주지역이 주변화 내지 소외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국민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이에는 많은 민간단체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고 정부도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이민자의 정착 지원과 통합에 대해 지역주민에 대한 행정을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민자가 우리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 자녀 교육, 의료, 금융 등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경제 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한국 언어와 문화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 중에서도 이민 배경을 가진 아동을 미래의 소중한 자원으로 여겨 교육, 직업훈련 등에 있어 국민과 동등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초·중등교육법’에서 규정한 대로 우리나라에서 출생하지 않고 중도에 입국한 아동을 위해 초기 한국 언어를 집중 교육하는 특별학급이나 지원센터의 설치를 확대해야 한다. 또 방과 후 보충학습 확대, 다양한 가격대의 국제학교와 대안학교 설립, 숙련기능공이 되길 원하는 학생에 대한 직업훈련과 인턴제 제공 등을 통해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아동의 이민 배경으로 인한 정체성, 고립감 등의 심리적 문제도 해소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경제적 통합을 촉진하기 위해 해외에서 인력을 유치하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국내에 거주하는 결혼이민자, 정주를 허용한 외국인의 가족, 외국 국적 동포, 유학생 등을 우선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 언어와 사회의 이해에 관한 교육프로그램도 이민자가 종사하는 직업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경기시론] 교사에게도 맞춤형 통합지원이 필요하다

교사들의 정상적인 교육활동에 대한 열망과 교권 회복에 대한 간절함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원지위법 등 교권보호 5법이 지난해 개정됐다. 그럼에도 교육활동 침해 행위는 좀처럼 줄어들고 있지 않다. 코로나19가 유행했던 2020년을 제외하고 연 2천건 이상의 교육활동 침해 행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약 5천건으로 2년 새 2배 수준으로 증가하기도 했다. 교권보호위원회 심의에 이르지 못한 숨겨진 교육활동 침해까지를 고려한다면 실제 발생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가 학생들에게 교육활동 보호 예방 교육을 하다 보면 왜 ‘교권’만을 교육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학생들이 더러 있다. 아마 교권을 교사 개인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탓일 것이고 교권의 강화가 학생 인권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교육활동 침해 행위는 교육활동 방해를 넘어 교원의 안전을 위협하며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까지 침해해 공교육을 흔드는 원인이 된다. 교사의 사기가 떨어지고 수업 분위기가 망가져 공교육이 흔들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이 된다. 학생들과 보호자들에게 이 지점을 설명하고 납득시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교사들은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까지 하게 된다. 지난 20일 한국교육정책연구소는 2024년 6월 초·중·고교 교원 6천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교직문화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전국 초·중·고교 교사들은 ‘학생 규정 위반 행위, 학부모 항의’를 스트레스 원인 1위로 꼽았다고 한다. 전체의 39.8%라고 하는데 2004년 조사에서는 올해 응답률의 3분의 1도 안 되는 11.6%였다는 점, 이번 조사에서 교사로서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에 대해 전체의 64.1%가 ‘학생·학부모의 비협조적 태도와 불신’이라고 응답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20년 사이에 학교 현장이 ‘관계’의 문제로 참 어려워졌다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교육활동 침해 행위는 교사 개인이 감당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공교육’을 바로 세운다는 관점에서 교원의 교육활동에 대한 보호를 획기적으로 강화함으로써 교육 발전을 도모해야 하며 실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 복합적 어려움에 대응해 학생들에 대한 맞춤형 지원을 하기 위한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 구축’이 한창이다. 사후처방 중심의 지원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을 조기에 발굴해 복합적 지원을 해준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교원맞춤통합지원’은 어떠한가. 교사에 대한 지원도 맞춤통합지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교육활동 침해 행위가 발생한 이후 처리 중심의 지원이 아닌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사전에 발굴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적기에 필요한 지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충분히 경험해 왔다. 특히 신규·저경력 교사는 더욱 그렇다. 그들의 다양한 어려움을 파악해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그 해결책은 ‘제도’로 완성돼야 한다. 학생맞춤통합지원은 교사가 교실에서 혼자 모든 학생을 감당하며 소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 교원맞춤통합지원은 교사가 소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인 지원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활동 침해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뿐만 아니라 교사의 지위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교사 중심으로 재구조화하고 교육청 내 여러 팀 및 기관이 각기 운영 중인 지원사업의 체계적 연계가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경기시론] 눈물을 닦아 주는 게 ‘정치’

딸을 찾아 달라며 25년 동안 전국 곳곳에 현수막을 걸고 다니는 등 ‘딸 찾기’에 모든 것을 바쳤던 송길용씨가 지난 10월 평택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뉴스는 참으로 가슴을 찡하게 했다. 그는 교통사고로 숨지던 날도 현수막을 걸기 위해 1t 트럭을 타고 나갔다가 지나가던 덤프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여고 2학년인 어느 날 학교에 간다며 나간 딸이 25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아버지 송씨는 그로부터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전국에 전단 돌리기, 현수막 걸기를 계속했다. 이렇게 25년 동안 뿌린 전단이 1천만장, 현수막이 1만장으로 재산도 다 날려 단칸방에 기초수급자로 전락했는가 하면 화병을 앓던 부인마저 사별해야 했다. TV 등 언론매체에 등장해 눈물로 딸을 찾아 달라며 호소했고 경찰도 발 벗고 나섰지만 결국 공소시효 만료로 수사를 종결했다. 그리고 그 역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생전에 TV에 출연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눈물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송씨뿐이겠는가. 어떤 사람은 2020년 딸을 성폭행하는 현장에서 범인을 잡았으나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 아버지는 너무 분해 국민 청원을 제기했다. 28만여명이 그의 청원에 참여했는데도 정부 답변은 사법부에 관여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렇게 다섯 번이나 청원을 했으나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2만명이 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눈물은 또 어떠한가. 정치권이 정쟁으로 세월을 다 보내는 동안 전국 여기저기에서 절망에 빠져 극단적 선택을 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다행히 국회가 뒤늦게 전세사기 특별법을 통과시켰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국민의 눈물을 생각하는 데 너무 소홀하다. 6·25전쟁 당시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중 생존해 있는 분이 500여명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오지탄광 등에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누구는 탈북에 성공도 했지만 아직도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렇게 생존해 있는 것이다. 돌아오지 못하는 가족들의 가슴은 까맣게 타 들어갔다. 당장 중환자를 업고 병원을 찾았으나 의료대란으로 의사가 없어 뺑뺑이를 돌다 지쳐 버린 가족의 눈물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는 하느님’이라는 성경 표현이 있지만 세상의 정치도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아닐까. 인도 독립의 아버지 간디도 ‘정치란 백성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라 했다. 정쟁으로 날이 밝고, 정쟁으로 해가 지는 우리 정치인들 가슴에 심어 주고 싶은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에선가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국민을 생각하며....

[경기시론]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한반도의 미래

지난 5일 치러진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됐다. 트럼프는 북한 김정은과 만날 태세이고, 거기다 우리에게 방위비 부담을 엄청나게 지우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것만 보면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우리는 우리의 안보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크게 고민해야 할 시간이 도래한 것 같다. 다만 중요한 것은 변하는 상황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일 것이다. 이미 세계는 미국 주도의 패권 체제가 다극 패권으로 전환되는 격변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미국은 여전히 제일의 패권국가이긴 하나 노쇠해 가고 있고 주위에 만만치 않은 세력들이 형성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미중 패권 대결에 이어 최근에 세계 패권의 한 축으로 부각되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미국 중심의 G7 국가들보다 중국과 러시아 중심의 브릭스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 브릭스는 정치적으로는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는데 처음 5개국에서 시작해 20개국을 넘어 조만간 30여개국으로까지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과 G7 국가들은 세계의 중심에서 주변의 위치로 전락하게 된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 G7 국가들은 이러한 러시아의 부상을 반길 리 만무하다. 우크라이나전쟁은 이러한 변화 흐름에서 발생한 사태라 할 것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프록시로 러시아와 패권 대결을 하는 전쟁을 하고 있지만 핵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미국은 어떤 형태로든 러시아와 타협하고 전쟁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북한군 파병 관련 이슈가 크게 문제되고 있으나 이는 미국과 러시아의 물밑 대화 및 합동 통제 속에 있기에 그리 염려할 건 아니라고 본다. 한편 미국은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러시아를 대적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중국이라는 강력한 패권 경쟁 국가를 상대해 왔다. 더군다나 브릭스가 커져 브릭스 내 중국의 경제적 패권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 위안화의 부상에 대응해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이 어쩔 수 없이 러시아와 협력해야 하는 지점이다. 그런데 러시아는 브릭스 내 중국의 세력 확대를 막고자 여러 국가의 브릭스 가입을 잠시 중단시키고 있으며 달러의 기축통화 유지에 손들어 주기까지 하고 있다. 이는 실제 미중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북한조차 러시아의 도움으로 브릭스 파트너 국가가 되고 나중에 정식으로 가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북한 경제는 러시아의 다양한 지원과 브릭스 내 경제 교류로 완전히 살아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김정은으로 하여금 적대적 두 개 국가론을 주장하게 한 이유로 보인다. 하지만 러시아의 대(對)동아시아 지역 전략은 남북한이 하나의 국가이길 원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정책기조와도 일맥상통해 보인다. 러시아나 미국의 입장은 한반도를 동북아 세력 질서의 균형 유지뿐만 아니라 북한의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한 상태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경제적 활력처나 회랑으로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미래를 내다볼 때 대륙세력인 러시아가 해양세력인 미국과 손잡고 연결하면서 서로 경제적 이득을 얻는 데 한반도보다 더 좋은 지정학적 입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고서 북러가 손잡은 상태에서 미러가 손잡고, 다시 북미가 하나 되는 북미종전선언 추진 같은 시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하나인 남한으로서도 다소 진통과 혼란이 있겠지만 결국엔 미국-러시아-북한과 하나 되는 결속체 속에 들어가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이는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이 평화통일 모드에 돌입하고 대중흥의 역사를 펼치는 장이 만들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가운데 경기 북부는 대발전의 기회의 땅이자 남북통일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경기시론] 이민의 재정적 효과

이민정책연구원이 2024년 1월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이민청 설치에 대한 찬성 의견은 68.6%, 반대 의견은 15.2%를 차지했다. 반대 의견의 주된 이유로 불법체류·범죄율·복지비 증가 등 사회 비용이 늘어날 것(51.3%)이라는 점을 꼽았다. 즉, 국민은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사회질서의 훼손과 국가 재정에 대한 부담 증가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민의 재정적 효과를 살펴볼 때 이민자의 수요에 따른 사회 보장 비용과 함께 세금 납부 등을 통한 재정 기여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민자의 연령, 경제활동 여부와 그 분야, 소득 등에 따라 재정 기여도가 달라지고 이민자에 대한 사회보장제도와 정책 및 그에 대한 접근성 등에 따라 사회보장비용이 달라지므로 이 분야에 대해 지속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또 오랫동안 납세의 의무를 이행하면서 국가 재정에 기여한 이민자가 고령 인구에 편입된 경우 고령 인구가 된 단면만을 분리해 재정적 효과를 분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령 인구에 속하는 이민자의 경우 국내에 거주한 기간 전체를 토대로 사회보장 혜택을 부여하는 데 드는 비용과 함께 국가 재정에 기여한 정도를 함께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보장비용만을 생각하고 이민자의 정주로 인한 재정 기여도 등의 이익을 종합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정주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는 국제경쟁력이 없다. 미국, 캐나다, 유럽 선진국은 국민들의 관심사항을 반영해 이민의 재정적 영향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해 왔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연구에 필요한 세부 데이터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향후 해당 부처에서 외국인의 거주 지역, 체류자격, 연령 등에 따른 세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부처별로 수집된 데이터를 취합해 이민의 재정적 효과를 정기적으로 분석하는 한편 그 분석 결과를 정부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이민정책연구원에서 2010년부터 2019년까지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외국인 주민과 지방정부의 공공 사회복지 지출에 관한 실증분석’을 한 결과 외국인 주민의 증가는 국민을 포함한 전체 1인당 공공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세출예산의 감소를 가져와 국가 재정에 기여했다. 이러한 결과의 주요 이유는 외국인은 내국인에 비해 사회복지 등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적이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6년부터 2018년까지 25개 회원국을 분석한 결과 이민자가 내는 세금 및 사회적 기여가 그들이 받는 혜택이나 서비스 보다 평균적으로 20% 정도 더 많아 국가 재정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 평균적으로 국민보다 이민자의 재정 기여도가 낮았지만 정부가 국민보다 이민자에게 지출한 금액이 더 적어 전체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2014년 OECD의 선행 연구 결과와 같이 신규 취업이민자의 비중이 큰 국가들의 경우 이민의 재정 효과가 보다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재정 기여도 중 연령이 가장 중요하며 취업 연령대에 속할 때에는 재정 기여도가 높고 아동이나 고령자는 재정 기여도가 부정적으로 나타났다. 특히 핵심생산연령인구(25~54세)의 경우 이민자의 재정 기여도가 정부가 이민자를 위해 지출한 비용보다 3배나 높았다. 해당 연구 결과를 토대로 경제적 목적의 이민 수용에 관한 정책을 수립할 때 이민자의 개인적 역량 이외에 연령을 고려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예를 들어 이번 연구 결과를 토대로 유학생 정책을 살펴보면 젊은 연령에 해당하는 유학생의 경우 경제활동 기간이 길어 중장기적으로 재정적 효과가 높을 것으로 기대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은 이를 적절하게 반영하지 않고 있다. 특히 국내 유학생이 졸업한 후 취업활동이 가능한 체류자격으로 변경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단순노무에 종사하는 ‘비전문취업(E-9)’ 체류자격의 경우 인력 송출계약이 체결된 17개국의 정부 추천을 받은 사람에 한해 근로계약을 체결한 후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전문인력, 준전문인력 또는 기능인력으로 취업할 수 있는 ‘특정활동(E-7)’ 체류자격으로 변경하기 위한 취업 업종과 직종, 소득 수준 등에 관한 요건을 살펴보면 노동시장에 처음으로 진입하는 유학생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따라서 재학 중인 유학생의 경우 한국어, 한국문화 이해 등에 관한 교육을 강화하고 인턴제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며 일정 수준의 한국어 구사 능력, 인턴제로 일한 경험 등의 요건을 갖춘 유학생이 졸업한 경우 보다 폭넓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인구 감소가 심한 지역이나 인력난이 심한 업종과 직종에 취업할 경우 우대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캐나다의 경우 유학생이 졸업한 후 3년간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후 그 실적에 대한 평가를 통해 필요한 비자를 부여하고 있는데 참고할 만한 좋은 사례라 생각된다.

[경기시론] ‘학교 법교육’ 그 백년대계

학교폭력을 입었다고 응답한 학생들이 또 늘었다.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부터 현재까지 피해응답률은 지속적으로 상승한 데다가 초등학생은 2013년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한 이래 가장 높은 피해 응답률을 기록했다고 하니. 잘못돼도 무언가 한참 잘못됐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2021~2023년) 전체 신고건수는 4만4천444건→5만7천981건→6만1천445건이다. 이 중 학교장 자체해결로 종결되지 못하고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올라온 건수는 1만5천653건→2만1천565건→2만3천579건으로 동반 상승했다고 하니, 학교폭력이라는 학교 갈등이 커지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대입 불이익’을 포함하는 교육부의 고강도 근절대책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리라.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학교 내 따돌림은 직장 내 괴롭힘이나 갑질로 이어진다. 학창 시절의 폭력이 사회로 이어지기도 하니 학교폭력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이런 행위들은 징계를 받을 수 있는 행위임을 넘어 범법행위로서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작년의 기억보다 이십여 년 전의 기억이 더 선명한 건 필자만은 아닐 테니 학창 시절의 ‘배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회적 문제가 된 학교폭력 역시 결국 ‘배움’, ‘교육’의 문제이다. ‘법 교육’은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법적 이해능력, 합리적 사고능력, 긍정적 참여의식, 질서 의식, 헌법적 가치관 등을 함양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과 관련된 모든 교육을 말한다. ‘학교 법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이해하고 법적인 소양을 길러, 자신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며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행동하는 시민으로 커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교 법교육은 어떠한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고운 말을 써야 한다는 교육, 쓰레기를 길에 버리면 안 된다는 교육, 고맙다는 인사와 사과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 등 기본적인 도덕적 교육을 진행한다. 이때의 배움으로 아이들은 공동체에서 지켜야 할 규범을 배운다. 초등학교 입학한 이후에는 이러한 도덕적 교육을 뛰어넘어 본인들에게 허용되는 행동과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배워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법교육은 여전히 어린이집, 유치원의 도덕적 교육에 멈춰있다. 학교폭력이나 교육활동 침해 예방 교육 등 법정교육도 대부분 형식적으로 이루어질 뿐이다. 2008년에 제정돼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은, 그만큼 우리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법교육지원법’에 따르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질 높은 학교 법교육을 위해 각종 법교육 활동을 지원할 수 있고, 교원을 대상으로 전문성 함양을 위한 법교육 연수기회를 제공하고 민간 교육기관의 법교육 연수 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학교 법교육은 교육의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다.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법교육을 운영하는 교사들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본 바 없다. 법은 사회에 맞닿아 있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사회의 근간은 ‘법’이다. 학교 법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과 교원들을 배려하며 학교 공동체 내에서 조화롭게 생활하는 데 필요한 소양을 배울 수 있다. 다른 이들을 배려해야 하는 이유, 폭력을 행사하면 안 되는 이유 등을 분명하고 무겁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당장은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이러한 체계적인 법교육은 학생들의 준법의식을 함양시키고 공동체 의식을 배우게 한다. 이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게 ‘대입 불이익’을 주는 정책보다 더딜지는 몰라도 폭력을 예방하고 저지하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고 건전한 방법이다. 어차피 교육은 백년대계가 아니던가? 결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학생들이 건전한 법의식을 배우는 것은 학교폭력 예방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학교 법교육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교육부는 깊이 있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경기시론] 저출생, 정말 답이 없는 것일까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는다고 한다. 가임기(15~49세) 여성 1명이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의 수인 합계출산율이 작년에 0.72명을 기록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마저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출생아 수가 2000년 약 63만명이던 것이 2023년 약 43만명이 됐다. 머지않아 아이들은 드물고 노인만 가득한 나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더 나아가 나라도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2006년부터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5개년 계획)을 4차에 걸쳐 수립했고 이에 따른 각종 대책과 예산을 세우고 실행해 왔다. 저출생 대책에 쓴 예산이 지난 18년간 약 38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출생률이 반등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진단과 비판이 뒤따르는 실정이다. 이것이 성평등 제고 정책인가, 복지정책인가 등 정책목표의 불명확성에 대한 지적에서부터 예산을 출생과 무관한 데 썼다는 재정효율성 문제를 언급하는 데까지 다양하다. 저출생 문제 해결은 사회의 근본 질서를 흔들거나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 곤란하다는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아예 출생률을 높이기보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정책목표를 설정하기도 한다. 저출생 대책의 방향을 출생 자체보다 더 나은 삶으로 옮기겠다는 의도다. 이러면 저출생 문제에서 저출생은 사라지는 것이다. 저출생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고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심각한 저출생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한 주장인데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어 설득력이 떨어진다. 애를 많이 낳는 문화권 사람들의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저출생 문제는 쉽게 극복될 거라고도 한다. 단일민족 중심의 국가주의가 강한 국민 정서상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들어 젊은이들이 반려동물을 너무 사랑해 애를 안 낳는다고도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저출생은 더 이상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심지어 출생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안 태어나고 인구가 줄어들면 그대로 살면 되지 왜 이걸 문제 삼는가 하고 반문하는 것이다. 이는 저출생 문제를 미궁으로 빠뜨린다. 놀라운 일이지만 이 모든 게 저출생을 둘러싼 우리 담론의 현실이다. 저출생 문제 해결 방안으로 경제적 지원 강화, 일과 가정의 양립 지원, 보육시설 확충, 주거 문제 해결, 사회적 인식 변화 등이 거론된다. 이것 모두 필요하겠지만 확실한 효과를 보장하는 특단의 대책을 찾는다면 출생소득 지급을 꼽을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개리 베커 교수도 이런 유인책을 권한다. 예를 들어 보자. 출생아 수가 매년 60만명은 돼야 우리나라 인구 5천만명 선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매년 60만명의 아이가 태어나도록 하기 위한 유인책으로 이들이 20세가 될 때까지 매월 200만원의 출생소득을 부모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자녀 두 명의 경우 매월 400만원을, 세 명은 600만원을 받는다. 첫해는 14조4천억원, 둘째 해는 28조8천억원, 셋째 해는 43조2천억원이 들 것이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18년 동안 사용한 1년 평균 예산이 21조원을 넘는다는 걸 생각하면 이는 그리 큰 규모가 아니다. 더군다나 예산 문제는 이러한 소득 보장을 하는 대신 현재 시행되고 있는 각종 복지 혜택을 없앰으로써 대폭 해결할 수 있다. 출생소득 지급 대상을 가계소득 상위 10%에서 시작해 점차 줄여갈 수도 있다. 저출생 문제, 답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답을 못 찾았을 뿐이다. 저출생 문제 해결은 충분한 출생소득 지급을 중심으로 다양한 대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때 가능할 것이다.

[경기시론] 대통령의 가족

뉴욕 현대미술관에는 콜롬비아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 ‘대통령의 가족’이 전시돼 있다고 한다. 그림에 등장한 대통령 가족들의 표정이 우스꽝스럽게 과장되거나 전체적인 구도가 풍자적으로 돼 있는데 가령 대통령 부인이 여우 목도리를 하고 있는 것은 교활함과 부를 암시한다는 것. 남미 거의 모든 나라의 정치 부패와 권력의 탐욕에 크게 실망하고 있던 보테로는 ‘대통령의 가족’이라는 풍자적인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 것이다. 그러니까 국민들은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 자신은 물론이고 그 가족까지도 보테로의 ‘대통령의 가족’처럼 한 몸으로 보는 것 같다. 건국 후 초대 국무총리 이범석에서부터 현 한덕수 48대 국무총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국민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부인의 이름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억하지 못한다. 당장 현재의 국무총리 부인과 가족에 대해서도 국민들 대부분은 모르고 있다. 이는 현재의 국회의장이나 대법원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당연지사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에 대해서는 대통령 본인은 물론이고 그 부인, 심지어 자녀들까지 잘 기억하고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프란치스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육영수, 그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순자 등등. 대통령의 부인뿐 아니라 그들의 아들딸까지도 기억하고 있음은 ‘대통령의 가족’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보는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 하면 아버지 김 전 대통령이 떠오르고 그가 1997년 조세 포탈 혐의로 구속돼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어두운 과거도 기억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전 의원 역시 비리에 연루돼 2002년 구속된 바 있고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그를 어떻게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분리해 생각할 수 있을까. 요즘 SK그룹 최태원 회장과의 이혼 소송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노소영씨 역시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특히 그는 아버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그룹에 기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와 딸 다혜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고 문 전 대통령도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다. 김 여사는 인도 타지마할 방문이 문제가 되고 있고 문 전 대통령은 전 사위가 타이이스타젯 전무로 취업한 것이 뇌물 수수라는 혐의다. 소위 ‘경제공동체’라는 것. 이에 대해 딸 다혜씨는 ‘경제공동체’가 아니라 ‘운명공동체’라며 검찰 수사에 반발하고 있지만 경제공동체나 운명공동체는 결국 같은 것이 아닐까. 최근에는 다혜씨의 음주운전 사고로 부녀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여 있으니 더욱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는 명품 가방 사건,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관계로 나라 전체를 뜨겁게 달구고 특히 야당은 특검 공세를 강화하면서 탄핵까지 위협하고 있다. 사실상 윤석열 정부의 최대 위기로 확대되는 것이다. 일찍이 대통령 가족을 관리할 감찰관을 임명했더라면, 그리고 제2부속실을 설치했더라면 하는 지적도 뒤늦게나마 나오고 있다. 특히 대통령 가족에 대한 일상적인 감찰을 담당하는 감찰관은 2016년 박근혜 대통령 시절 이석수 변호사를 끝으로 지금까지 공석이 되고 있다. 문 전 대통령도 임기 내 감찰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만약 문 전 대통령이 감찰관을 뒀더라면 최근 불거진 문제들은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그때 문 전 대통령에게 왜 감찰관을 임명하지 않느냐고 공격했는데 막상 집권하니까 침묵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경기시론] 우리나라 이민정책 방향에 대한 고찰

국가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적정 인구의 수를 유지하고 그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인구의 양은 출생, 사망, 순이민 유입에 의해 결정되고 인구의 질적 수준은 교육과 훈련, 유입된 이민자의 질적 수준 등에 의해 결정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0.72명이고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약 5천100만명인 현재 인구는 2072년 약 3천600만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추계한다. 또 고령인구(65세 이상)가 생산연령인구(15~64세)보다 많게 돼 노인 부양비의 부담이 급증한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30년부터 2060년까지 우리나라의 평균 잠재성장률은 약 0.8%로 장기적인 저성장이 예측된다. 인구 감소는 노동 공급의 감소는 물론이고 소비, 투자와 일자리, 세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노인 부양비의 급증은 미래 세대에 큰 부담이 된다. 경제활동을 하는 이민자의 유입이 늘면 노동 공급이 증가함은 물론이고 소비, 투자, 세수 증가와 재정지출 확대로 인한 경제성장과 국민복지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 경제성장과 국가재정에 기여하는 이민자를 정주시키면 이러한 편익이 더 증가하고 두뇌 유출도 방지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이민자에 대한 국민 인식이 좋아져 사회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류자격을 가진 외국인 근로자 중 약 86%가 단순노무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받고 단순한 업무에 종사하는 이민자의 경우 중장기적 산업구조 조정에 따른 실업에 취약하고 자녀에 대한 교육 지원에 대한 여력이 부족해 미래 복지비용의 증가 및 사회 부적응 등에 대한 우려가 높아 정주를 허용하고 있지 않다. 일본은 30년 동안 저물가, 저금리, 저임금 속에서 기업의 수명이 연장되고 부족한 인력은 저임금의 외국 인력으로 메우는 땜질식 처방을 했다. 이는 결국 기업의 산업구조 조정을 지연시켜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렸고 이민을 통한 인구 보충에도 실패해 장기적인 경기 침체를 불러왔다. 반면 미국,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등은 전문인력과 숙련기능공 위주로 정주를 허용해 인구의 양과 질을 높였다. 따라서 외국 인력의 도입을 통해 기업의 생존을 돕는 동시에 자동화, 기계화, 사업모델 혁신 등을 통한 산업구조 조정을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구조의 조정에 적응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이민자의 정주를 확대해 인구 급감을 완화함으로써 노동 공급 측면의 편익과 국민총생산의 지출로 인한 편익을 증가시켜야 한다. 인간의 국제 이주가 발생하면 이처럼 다양한 경제적 효과는 물론이고 정치, 문화, 사회 등에 미치는 영향도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노동공급 측면을 볼 때 해외에 있는 외국 인력의 유치에 치중하기보다는 우리나라 대학을 졸업한 유학생과 정주 외국인의 경제활동 기회를 먼저 제공하고 뿌리산업 등과 같이 중요한 산업이지만 국민을 구인하기 힘든 분야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직업훈련의 기회를 제공해 숙련기능공으로 키우려는 노력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볼 때 특정 국가 출신의 이민자가 지나치게 많을 경우 정치적 결정이 편향될 수 있으므로 그 비중을 적절히 조절하고 개인적 신념 등을 이유로 우리 사회와 분리되려는 집단이 커지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민자에 대한 완전한 통합 과정은 이민자 2세에 대한 통합을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이민자 2세가 차별 없이 우리 사회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국가적 과제다.

[경기시론] 학교폭력에 대한 단상

얼마 전 경기도내 한 지역의 초등학교 학부모 수십명이 ‘허위 학교폭력 신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대책을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해당 학교 6학년생 중 절반가량이 학교폭력으로 학교와 경찰에 신고됐기 때문이란다. 학교폭력 신고가 이뤄졌을 때 어떤 어려움이 있는 것이기에 이토록 학부모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일까. 통상 학교폭력으로 신고되면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최대 7일간 분리 조치된다. 조사가 이뤄지기 전이지만 신고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최대 7일간 분리돼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후 진행되는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의 사안조사 등 사실관계 확인 절차도 관련 학생들에게는 참 힘든 과정이다. 학교를 통해 1차 사실 확인을 했음에도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이 배정돼 또다시 ‘사안조사’가 진행되는 것이다. 17개 시·도교육청의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운영방법이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관련 학생으로서 두 번의 조사를 받게 되는 셈인데 학생들에게는 큰 스트레스다. 필자도 9년 넘게 교육청에서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며 이러한 사실 확인 및 조사 과정에 큰 고통을 느끼는 학생 및 보호자를 많이 만나봤다. 학교 입장에서도 이러한 사안 처리가 반가운 것은 아니다. 1차 사실 확인 후 학교폭력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 학교 안에서 종결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 경우에도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의 조사를 거쳐 신고 학생 측이 학교장 자체 해결에 동의하지 않으면 교육지원청으로 무조건 보내야 하는 것이다. 경찰에 신고한 경우 조사 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 ‘불송치결정’이 이뤄지고 송치가 된 건에 대해서도 검찰은 법원의 판단을 요구하지 않는 ‘불기소처분’도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현재 교육현장에서 이뤄지는 학교폭력 사안 처리가 얼마나 소모적인지 알 수 있게 한다. 학교폭력은 불송치결정도 불기소처분도 불가능하고 신고 학생 측이 원하면 교육지원청까지 무조건 다이렉트다. 그렇다면 교육지원청에서 해당 사안을 신속하게 처리해 분쟁을 빠르게 종결시킬 수 있나. 그렇지도 않다.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교육부가 고강도 근절 대책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학교폭력 발생 건수는 전년에 비해 또 늘었다고 한다. 일상적인 학교생활 중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이나 다툼도 ‘학교폭력’ 프레임이 씌어 신고되고 이 과정에서 분리 조치된 상대 학생 측의 불편한 감정과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가해 학생 조치를 받게 되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맞물려 ‘맞폭’ 신고가 넘쳐 난다.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오히려 현장의 발목을 잡고 학교폭력 신고 건수를 늘리고 있는 구조다. 이같이 학교폭력 발생 및 신고 건수의 증가로 신속한 학교폭력 사안 처리도 어려워졌다. 교육지원청은 학교장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으면 3주 이내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개최해 판단해야 하나 실제로는 두 달이 넘도록 회의 일정이 잡히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러니 신고 학생뿐만 아니라 피신고 학생도 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불안한 마음으로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학교폭력으로 보기 어려운 사안이 신고됐다 하더라도 위원회의 판단이 있기 전까지는 오로지 피신고 학생이자 가해 관련 학생으로 이 같은 학교폭력예방법상 사안 처리를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학생 및 보호자의 평온했던 일상이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피해는 누가 책임지나.

[경기시론] AI 시대, 더 나은 현금성 소득보장

자신의 생각이 꽂힌 특정한 어느 하나만 고집한 채 다른 것들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심지어 의사결정을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 중 자신의 생각과 다른 걸 잘 참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을 두고 종교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는 ‘하나만 아는 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라고 한다. 여기서 하나는 종교를 말하지만 이 말을 굳이 종교에만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 다 적용할 수 있다. 이 세상은 하나에서 다양함으로 펼쳐지고 그 다양성이 매 순간 서로 균형과 불균형을 이루며 굽이치는 곳이다. 거기다 인간 자체가 인식과 능력 면에서 불완전하다. 그런 만큼 하나만 붙잡고 거기에 함몰되기보다 하나 이상을 서로 대조시키는 것은 그나마 무언가의 실체를 알아가는 좋은 방법이라 하겠다. 여기서 새로운 창의적 아이디어나 혁신적 발상도 나올 수 있다. 정책 얘기로 말을 이어가 보자. 인공지능(AI) 광풍에서 보듯 최근의 기술 발전은 매우 급격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의 일자리가 대대적으로 사라지고, 심지어 고급 두뇌들조차 먹고사는 문제에 봉착할 거라고 한다. 사람들이 먹고살려면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 시스템은 대체로 일을 하고 거기서 소득을 얻어 생활하며, 이걸 못하는 경우에 대비해 보험이나 사회보장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식이다. 그런데 세상이 급격히 바뀌다 보니 일을 하고 싶어도 아예 일자리가 없거나 불안정한 일자리가 양산되는 데 반해 기존 사회보장 시스템은 안정적 소득보장을 해주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이 점차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고민 또한 깊다고 할 것이다. 최근 소득보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의 산물로 현금성 소득지원이 거론되고 있다. AI 분야의 대가인 캐나다 토론토대의 제프리 힌튼 교수도 현금성 소득보장의 절대적 필요성을 주장한다. 현금성 소득지원 정책은 여러 가지가 있고 또 다양한 모습으로 설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 기회소득, 안심소득, 참여소득, 공정소득 등으로 명명된 소득지원 정책 등이 그것이다. 이 외에도 소득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았지만 현금성 소득지원 정책에 해당하는 보편적 근로장려세(Universal EITC), 음소득세(NIT) 등도 있다. 이들을 서로 비교해 볼 때 정책적 목표나 장단점이 서로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이들은 서로 섞일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잘 결합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아예 각각 자기 정책의 정체성을 고수하면서 원래 목적하는 바를 달성해 갈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간 상호 비교를 통해 더 나은 제도를 마련할 수도 있는 법이다. 최근 연세대에서 ‘2024년 불평등 및 사회정책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새로운 사회보장정책이 제안됐다. 음소득세 방식의 기본소득과 보편적 근로장려세를 결합하는 것이 그것이다. 음소득세와 기본소득을 결합하는 것도 그렇지만 거기다 보편적 근로장려세를 더하겠다는 발상이 참신하다. 이는 현금 제공을 통한 소득보장에 더해 일자리 확대의 여지도 만드는 정책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제안이 안심소득보다 우월하다고도 한다. 기존의 것들을 서로 비교하고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고심의 결과라 하겠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제안을 기회소득과도 비교 검토하면서 더 진일보한 형태의 소득보장 정책이 나올 수 있는지 찾아본다면 어떨까. 그것이 어떤 이름이든, 어떤 형태를 띠든 국민들에게 유익한 정책이 된다면 이를 만들고 펼치는 것은 좋은 시도이고, 열린 자세라 하겠다.

[경기시론] 정치 구호가 승패 이끌까

‘못 살겠다 갈아보자.’ 1956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신익희 후보의 선거 구호였다. 그 당시로는 매우 선동적이었고 유권자들에게 호응이 컸으며, 그래서 역대 대통령 선거 구호 중 가장 호소력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 측에서는 ‘갈아봤자 별수 없다’는 구호로 대응했는데 이 역시 대응 구호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결국 투표를 앞두고 큰 인기를 보여주던 신익희 후보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선거는 싱겁게 끝났고 선거 구호만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선거에서 구호는 정말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2011년 일본 시가현 지사선거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유키꼬’라고 하는 여 교수가 기반이 단단한 현직 지사를 물리치고 여성의 몸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세금이 아깝다’라는 구호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현직 지사가 주민 혈세를 함부로 낭비하고 있는 것을 비판한 구호. 미국에서도 1992년 클린턴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로 크게 히트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내세운 ‘준비된 대통령과 경제를 살립시다’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이기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선거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대통령 출마 3수를 거치는 동안 준비를 많이 했다는 것이며 당시 IMF 사태로 나라 경제가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했고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칠 때이니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치선전, 특히 선거 구호에서는 보수 여당보다 야당, 특히 진보 후보 측이 높은 성과를 올렸다. 수세에 있는 여당보다 공격이 생명인 야 측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전당대회를 계기로 ‘먹사니즘’을 발표했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즉 민생 문제에 올인하겠다는 구호다. 이 구호가 발표되자 벌써 2027년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 대표가 3년 후에 있을 대통령선거 구호에서 선점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에 비해 국민의 힘에서는 뚜렷하게 내세울 구호가 없다. 이런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2036년 올림픽 서울 유치를 발표했는데 마침 이번 파리 올림픽으로 국민 정서가 뜨거워진 터라 반응 역시 긍정적이다. 물론 2036년 서울 올림픽 유치를 대통령선거와 연계시키는 시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뛰어난 구호가 아니라면 이런 정책 제안이 국민들에게 더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이재명 대표의 ‘먹사니즘’이 얼마만큼 효과를 발휘할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먹사니즘’이 더 부각되려면 민주당의 초강경 정치 발언들을 순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검, 청문회, 탄핵 같은 정쟁이 매일 주류를 이루고 심지어 아무리 현직 대통령 부부가 미워도 전 국민이 지켜보는 국회에서 ‘살인자’라고 외치는가 하면 ‘독도를 팔아먹는다’ 같은 괴담은 국민들을 피곤케 하는 것이다. 특히 그런 막말이 강성 당원들에게는 박수를 받겠지만 중도층 외연 확장에는 장애가 될 수 있다. 국민의 힘이나 민주당이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은 중도층을 확보하는 것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다음 대통령선거에서도 누가 이기든 지난 선거 때처럼 근소한 표 차로 승패가 갈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 근소한 1~2% 표 차를 좌우하는 것은 중도층이다. 따라서 아무리 선거 구호를 잘 만들어 내도 중산층이 등을 돌리면 허사가 되고 만다. 여야는 진정 승자가 되고 싶으면 구호보다 중도층의 민심을 얻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경기시론] 초고령사회와 국가•지자체의 역할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둔 오늘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저출산 문제와 맞물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경제 발전과 사회 통합은 우선 과제가 될 것이다. 고령자를 보호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과 법제 개선 또한 필요하다. 최근 정년 연장과 고령자 일자리 창출, 고령자를 위한 복지와 돌봄제도 개선, 연금제도 개혁 등 다양한 제도 개선책이 논의된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다. 현재 고령자의 법적 지위와 보호를 다루는 주요 법률로는 저출산 및 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질환을 사전 예방 또는 조기 발견해 적절한 치료·요양으로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노후의 생활안정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함으로써 노인의 보건복지 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노인복지법 등이 있다. 특히 고령자의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한 고용차별을 금지하고 고령자 고용을 촉진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있고 추가로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 11월 시행될 예정이다. 다양한 법률이 존재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법률 규정이 산재해 고령자 관련 법률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체계 정합성이 무너지거나 보호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한편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생활 밀착형 돌봄 서비스가 제공돼 기대를 모은다. 일례로 경기도는 고령자 보호와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인공지능 시니어 돌봄타운’, ‘인공지능로봇 활용 어르신 건강관리 사업’ 등 다양한 복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로봇 활용 어르신 건강관리 사업은 인공지능 로봇이 음성 대화를 통해 정서 안정을 돕고 약의 복용 시간과 식사 시간 등을 관리하며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할 수 있도록 24시간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등 고령자의 생활 전반에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도록 설계됐다. 초고령사회를 맞이하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고령의 삶을 단순히 수동적인 보호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우리 사회에 지혜를 전파하는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주체의 삶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기시론] 경기도청 국장과 과장의 자리

경기도청 공무원 중 서기관은 대략 190명이다. 3급 이상은 40명이니 과장 이상 고위직은 230명이 넘는다. 광교 청사 본청 기준이다. 과거에 국비 서기관은 임명직 군수이고 부군수는 지방 비 서기관이었다. 군수님 앞에는 ‘서기관 아무개’라고 적었고 부군수는 ‘지방서기관’이었다. 이후 지방자치가 시행돼 시장과 군수는 주민의 투표로 선출한다. 그래서 초창기에 민선시장과 군수의 급여는 소속의 부단체장보다 한 단계 높은 금액으로 정했다는 말을 들었다. 최근에 행정안전부에서 지방자치단체의 4급 부단체장을 인구수와 관계없이 모두 3급 부이사관으로 승격하는 쉽지 않은 파격을 보였다. 이제 도내 31개 부단체장이면 3급 또는 2급 공무원이다. 혁신보다는 보수적이라는 평을 듣는 행정안전부가 큰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한다. 경기도의 경우 과천시, 동두천시, 가평군, 연천군의 부단체장이 지방 4급 서기관이었는데 기관 안에는 이미 2~3명의 지방 서기관이 기획감사실장, 주민 생활지원실장, 건설 국장 등의 직위에서 일하고 있으니 동급의 서기관인 부시장이 업무를 지휘하는 모순점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직급에 대한 예민한 사례가 있다. 행정안전부의 옛 이름인 내무부가 정부 기관 간 회의에 갈 때 다른 부처에서 서기관급을 청하면 사무관을 보내고 사무관 회의를 소집하면 주무관 주사가 참석했다고 한다. 경기도, 인천, 서울, 부산 등 광역자치단체를 직접 지휘한다는 자부심에서 중앙부처와의 관계에서는 늘 한 급을 낮게 대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때 내무부 6급이 국비 과장 직무대리를 받고 도청에서 일하고 총무처를 통해 도청에 배정된 고시 출신 사무관은 지방비 계장으로 일했다. 6급은 과장이고 5급은 계장을 하는 ‘모순 중의 모순’은 국비 직무대리 과장이 사무관 승진시험에 합격하는 날까지 이어졌다. 최근에 공직자로 30여 년을 근무해 4급 서기관에게 이른 과장 승진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4급 과장은 위임전결 규정에 의해 도지사가 위임한 도정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책임자라는 점에서 참으로 중요한 자리임을 인식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부서장이란 생각은 깊게 하고 행동은 느리며 판단은 민첩해야 하는 자리임을 부언한다. 끝으로 한 가치 경험치를 전하고자 한다. 오전 10시경에 부서원들에게 구내식당, 외식 등 점심 계획을 알리고 오후 4시 전에 저녁 스케줄을 밝혀라. 점심을 사라, 저녁을 사겠다가 아니다. 점심과 저녁의 일정을 알려 부서원들의 계획을 미리 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었다. 혹시 약속을 정했는데 과장이 저녁을 먹자면 낭패니, 미리 소통하길 바란다.

[경기시론]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

최고 권력,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앞장서서 나라의 공력을 좀비 같은 역사 전쟁으로 몰아넣고 있다. 공동체의 정신문화를 공적인 영역에서 연구하고 보급하는 일을 맡은 연구기관들과 독립기념관장에 해당 기관의 고유 목적과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인물들을 동시에 임명하면서 온 나라를 상대로 소모적 싸움을 걸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 입장이 조금 다른 정도가 아니다. 이미 헌법에 명시된 1919년 3·1운동에 기반한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과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을 계승한다는,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평가와 공동체의 합의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민간 단체 활동과 학술적 연구의 보호 아래 ‘자유’를 누리면서 주장해 왔다. 그런데 왜 자신들의 세계관과 기반 자체가 다른, 평소 소신대로면 없어져야 할 기관의 최고 높은 자리를 탐할까. 일제의 침략과 병탄이 합리적 과정이라면 왜 대다수 시민이 동의하지 않을까. 왜 일본이 일으킨 동아시아·태평양전쟁을 찬양하지 않을까. 왜 주둔지마다 식민지 여성들을 일본군 성노예로 밀어넣었던 행위를 차마 인간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일까. 왜 강제노역과 자원 수탈을 새로운 형태의 노동시장과 자유무역으로 포장할 수 없는 것일까. 문명과 사회가 발전시켜 온 양심과 상식이란 것이 있다. 남의 나라 자원과 영토, 외교, 군사, 주권 따위를 강제로 빼앗는 데 대장쯤 돼 보이는 몇몇에게 어르고 겁을 줘 문서에 서명하고 도장을 찍게 하면 그건 범죄지 나라 간의 협약이 아니다. 깡패나 건달들이 그렇게 하고 더 힘센 깡패들에게 다시 빼앗기거나, 나중이라도 밝혀지면 범죄로 처벌받는다. 그들이 ‘앙망하는 근대화’된 나라와 국제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일제 침략에 동조했던 역사를 합리적 선택, 일반적인 본성으로 포장하고 싶은 의도는 알겠으나 그것이 상식이 될 수는 없다. 끝까지 저항하고 빼앗긴 주권을 찾아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들과 그 행동을 ‘현실을 모르는 어리석음’으로 매도하는 것은 일제의 식민지 침탈과 전쟁범죄에 동조한 과거를 ‘있을 법한 선택’으로 세탁하기 위한 비열한 행위이고 ‘공범’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반성하고 사과하면서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제도와 규범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이 상식이다. 상식을 거부하는 자들이 국가 기관의 자리를 탐하고 있고,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은 그런 기회주의자들을 수집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부여한 권한으로 민주주의 자체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권력에 엄격해야 할 법치의 칼로 민주주의를 강박하는 기회주의적 극단 정치의 냄새가 역하게 풍긴다. 기회주의는 사회에서 우수한 특성이 될 수 없다. 다수의 협력이 있어야 거기에 기생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뿐이다. 아무도 협력하지 않는 사회는 개념이나 현실로도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 사고와 기회주의 정치는 재난과 위기에서 추종자들 외에 공동체와 구성원들을 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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