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오디세이] 약한 이들에 먼저 닿는 재앙... 불평등한 기후 위기

어느 해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그날, 빗물은 반지하에 살던 우리 이웃의 삶을 앗아갔다. 그날 도심의 배수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홍수 같은 물이 저지대로 몰렸기 때문이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인재였지만 누구도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같은 비를 맞았음에도 누구는 잠깐 불편했고 누구는 목숨을 잃은 것처럼 기후 위기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지구 온난화 관련 각종 과학적 수치가 쏟아지지만 기후 위기의 실체는 그 수치 뒤에 있다. 도심 외곽의 노후 주택, 에어컨이 없는 쪽방, 지하에서 일하는 노동자, 논밭에서 일하는 농민 등 가장 열악한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가장 깊은 피해를 입는다. 그래서 기후 위기는 생태 문제이기 전에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한 불평등의 문제인 것이다. 폭염도 폭우와 다르지 않다. 냉방비를 아끼기 위해 하루 종일 창문만 열어 놓고 열기를 참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중 상당수가 65세 이상의 홀몸노인이다. 냉방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임에도 그것을 뒷받침할 공적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하다. 에너지바우처제도나 폭염 쉼터 정책은 있지만 수혜 범위는 제한적이고 접근성이 낮다. 이러한 기후 위기의 불평등은 도시와 농촌, 계층, 주거환경, 국적에 따라 격차가 뚜렷하다. 외국인 근로자 중 상당수가 컨테이너에 살며 폭염과 폭우로 인한 위험에 노출된다. 고온에서 농작업을 이어가는 노령층은 탈진과 열사병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에게 닥칠 피해가 예외적인 사고가 아니라는 점에서 기후 위기는 점점 더 일상이 되고 있고 그 위험 또한 구조화돼 간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은 보다 명확히 기후 불평등에 개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가 차원에서 기후 취약 계층의 정의 등 기후 행정 시스템을 확립하고 이들을 우선 보호하는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폭염이나 한파 등 기후 재난 상황에서 단순한 대피소 제공을 넘어 주거환경 개선, 냉난방비 지원, 방문 돌봄 서비스 확대 등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후 재난 대응 시스템을 지역 실정에 맞게 세분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전국 단위 경보만으로는 각 지역의 취약한 상황을 반영할 수 없다. 예컨대 저지대에 위치한 동네나 노후 주택 밀집 지역, 하천 인근 비주택 거주지를 우선 기후 행정 시스템 관리 구역으로 지정하고 사전 점검과 긴급 대응을 체계화해야 한다.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지정하고 훈련까지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교육과 공공 커뮤니케이션에서도 기후 정의라는 관점을 강화해야 한다. 기후 위기를 단순히 지구를 위한 실천으로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누가 가장 먼저 피해를 입고 어떻게 사회가 이를 막을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시민이 공감하고 실질적인 대응이 가능해진다. 흔히 기후 위기는 모두의 문제라지만 이는 반쪽짜리 진실이다. 그것은 모두의 문제가 맞지만 그 재앙은 항상 약한 이들에게 먼저 닿고 지금까지 대응은 그 불균형을 바로잡기에 부족했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 시대의 정의란 단지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을 넘어 누가 가장 아픈가를 먼저 살피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 질문에 응답하고 있는가. 혹시 못 본 척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가.

[삶, 오디세이] “이재명 정부, 문화예술 정책 재설계해야”

선진국을 재는 척도 중 하나는 문화와 예술이다. 높은 문화는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든다. 물화 중심의 세계를 좇다 보면 사회계약론자들이 지적한 자연 상태에 빠져 천민자본주의로 전락한다. 우리나라엔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있다. 이 기관을 아르코라 부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모토는 ‘문화예술과 국민을 잇고, 문화예술의 내일을 함께하는 아르코’다. 아르코지원기금은 모든 문화예술인이 받고 싶어 한다. 아르코기금을 받아 수준 높은 수많은 작품이 탄생했다. 하지만 아르코가 문화예술인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작가이므로 아르코 사업 중 문학 부문의 개혁만 논하겠다. 첫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지원 신청 작품 심사는 무기명 미발표작으로 해야 공정해진다. 필자가 처음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은 것은 2018년도다. 필자는 1990년도 문예지를 통해 등단했다. 그러나 등단한 문예지가 폐간되자 문단의 주변인으로 남게 됐다. 이렇게 투명 시인으로 존재하다 문학평론으로 다시 등단했다. 재등단 결과 문학평론뿐만 아니라 시 청탁도 받을 수 있었다. 필자는 아르코 지원 신청 부문을 문학평론이 아닌 시를 선택했다. 그 결과 미발표작 시 7편이 발간지원에 선정돼 첫 시집을 등단 30년 만에 낼 수 있었다. 필자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기명 미발표작으로 심사했기 때문이다. 둘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지원 자격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아르코창작기금은 선정되면 3년이 지나야 다시 지원할 수 있다. 3년이 지나니 지원 조건이 바뀌어 있었다. 출판사 계약서와 작품 한 권 분량을 제출해야 했다. 메이저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작가에게 유리할 것이 자명했다. 아르코가 기득권자들의 카르텔에 의해 공정성이 무너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발간 지원을 포기하고 무기명 미발표작으로 심사하는 발표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작년에 평론으로 지원 신청을 하려고 보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으로 또다시 바뀌어 있었다. 조건이 국내외 주요 문학상에 최근 10년 내 수상 이력이 있는 작가였다. 어쩔 수 없이 첫 평론집을 출간하기 위해 인천문화재단에 지원 신청을 했다. 이처럼 아르코는 지원 자격을 자주 바꾸면서 작가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했다. 셋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지원금을 대폭 상향해야 한다. 국내 총예산 700조원이 되는 나라의 문학 지원 기금이 적어도 너무 적다. 2024년까지 문학 발간 지원과 발표 지원 총 지원액이 12억원이었다. 그런데 2025년부터 발간 발표 지원이 없어지면서 12억원의 지원 기금이 절반으로 줄어 6억원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선 지원금을 개인당 1천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오른 것처럼 홍보했다. 하지만 총지원금은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이라는 이름으로 6억원이다. 이것은 문학을 무시하고 작가를 기만하는 행위다. 국가 총예산 700조원에 대한 분배의 문제다. 2025년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의 경우 선정자는 30건이고 개인당 2천만원씩 총 6억원이 지원됐다. 이재명 정부는 아르코문학지원기금의 총액을 대폭 늘리고 무기명 미발표작으로 심사해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정부와 지방정부는 제도적으로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의 부족한 고료를 보조해 주고 아르코나 지역 문화재단 기금으로 발간한 서적을 구입해 각 기관에 배포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문예지에 대한 지원금을 늘려 실질적 고료 상승을 돕는 것도 시급하다. 윤석열 정부에 의해 없어진 문학나눔과 발표지원도 즉각 복원하기 바란다. 유럽 국가의 문화예술 정책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정부는 선진국의 척도를 문화예술로 보고 문화예술 정책을 재설계해 블랙리스트 작가들의 상처를 하루빨리 치유해야 한다.

[삶, 오디세이] 투지(鬪志)

현충일인 지난주 금요일 새벽에 국가대표 축구팀이 한국의 여름보다 더 뜨거운 날씨인 이라크의 바스라에서 열린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에서 이라크를 2 대 0으로 이기고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라크의 한낮 기온은 45도를 넘고 오후 9시가 넘어서 열리는 경기인데도 35도라고 중계 캐스터가 말했다.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은 축구 종가 잉글랜드도, 아트사커 프랑스도 해 보지 못한 것으로 세계적으로도 평가받는 대단한 일이다. 필자는 1998년 5월 베트남 하노이를 여행한 적이 있다. 시내 중심에 있는 커다란 마트에 들렀는데 가전제품 매장 가득히 월드컵 개막에 앞서 대형 TV를 좋은 조건으로 특별할인 판매한다는 전단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매장을 오가던 모습이 신기했다. 왜냐하면 베트남은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월드컵 본선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월드컵 본선에서 경기를 할 수 있는 나라는 32개국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보다 객관적으로 축구 실력이 좋은 나라도 예선을 통과하지 못해 본선에는 관중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나라들도 많이 있다. 축구 경기의 게임 방식은 아주 단순하다. 양편 11명이 손을 사용하지 않고 발과 온몸을 이용해 패스와 드리블로 상대편 골문에 공을 더 많이 넣는 팀이 이기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고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은 전 세계인들을 들썩이게 한다. 특정 국가에 대해서는 절대 지면 안 되는 라이벌 관계가 형성돼 대한민국이 일본과의 경기에는 무조건 이겨야 하기에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응원을 하기도 하는데 태국과 베트남,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잉글랜드와 독일,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과 포르투갈, 멕시코와 미국도 한일전과 같은 대단한 라이벌로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배경이 얽혀 있다. 축구 경기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당연히 실력이 좋아야 하지만 그 외에도 변수가 많이 있다. 이번 경기에서는 전반 22분 이라크의 주 공격수 알리 알 하마디가 우리나라 수비수 조유민 선수의 얼굴을 걷어차 퇴장당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1명이 퇴장당한 이라크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고 홍명보 감독이 후반전에 교체한 선수 2명이 상대를 압도하는 탁월한 실력으로 두 골을 넣어 쉽게 이겼다. 필자는 오랜만에 새벽잠을 포기했지만 맘 편하게 응원하며 즐겁게 애국할 수 있었다. 나는 즐겁고 편했지만 승리를 위해 뜨거운 모래바람을 가르며 승리를 이룬 선수들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수비수 조유민 선수의 ‘투지’가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다. 경기가 시작돼 치열하게 볼 다툼을 하는 중 상대 선수의 발이 자기의 얼굴을 향해 날아올 때 꿈쩍하지 않고 끝까지 볼을 패스한 후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조유민 선수의 얼굴은 축구화 스커트에 쓸려 상처가 나고 피가 났지만 절대로 피하지 않는 강력한 정신력의 투지가 아름다웠다. 나의 삶을 돌아본다. 상황에서 쭈뼛거리지 않고 손해인 줄 알지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뜨겁게 헌신하는 투지가 내게 있는가. 교회 앞에 뜨거운 여름날을 기다리고 있는 수국 화분이 있다. 꽃이 얼마나 예쁜지 교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세차게 부는 바람에 그 화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넘어진다.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놓고 뒤돌아보면 투지 있게, 흔들리지만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화분에 물을 가득 담아 두기로 했다. 물이 가득한 화분이 넘어질 때도 있지만 또 물을 채워 예쁜 꽃을 피워 교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꽃과 함께 포기하고 싶지 않다.

[삶, 오디세이] 말의 무거움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가 일상을 지내며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을 꼽으라면 단연코 ‘말’일 것이다. 특히 요즘 시대는 말이 더욱 많아지고, 말로 인해 수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생겨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치러진 선거에서도 수많은 말이 오갔고,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말과 그로 인한 이슈가 생겨나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말은 가장 빠르고 무엇보다 가볍게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빠름과 가벼움과는 달리 말이 지닌 힘은 어떤 행동보다 무겁고 무섭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을 조심시키고 말을 무겁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는 불교도 마찬가지다. 불교에는 중생이 살아가며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을 계율로 정하고 있다. 계율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공통되게 들어있는 네 가지가 있는데 이를 ‘성계(性戒)’라 부른다. 성계의 네가지는 ‘불살생, 불투도, 불음행, 불망어’로 이를 어기면 불교인으로서의 자격(성품)을 박탈당하거나 큰 업을 짓게 된다고 한다. 이 중 ‘불망어’가 바로 말과 관련된 것이다. 불망어는 ‘거짓말하지 말라’로 번역되지만 그 안에는 망어(妄語·거짓말), 기어(綺語·속이는 말), 양설(兩舌·두 말), 악구(惡口·욕설)의 네 가지가 전부 포함돼 있다. 그리고 계율 중 보살계에는 10계가 있는데 그중 4계가 앞의 말로 인한 것으로 돼 있을 정도로 말을 조심시키고 있다. 그리고 불교의 오래된 경전인 ‘숫타니파타’에서는 ‘사람은 태어날 때 입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자는 나쁜 말을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기 자신을 찍는다’고 설한다. 말은 부메랑과도 같아 일단 자신의 입을 떠나면 여러 사람을 거치지만 다시금 그 자리로 맹렬하게 되돌아와 다름 아닌 자신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이는 명심보감에 나오는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는 말도 같은 가르침이다. 우리는 이제 말로 만든 길목에 다시금 서게 됐다. 우리가 뽑은 이 나라의 대표가 우리에게 했던 공약(公約)이 어떻게 실천되고 실현될지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말을 다시금 해야 할 때다. 그저 지켜보고 남 일과 같이 여겨서는 안 된다는 걸 이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수없이 말한 약속이 공약(空約)이 아니라 모두와의 약속으로 실현되고,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의 무거움과 무서움을 보여줘야 한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사는 곳이고 우리가 국민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말을 함부로 하게 되면 구업(口業)을 짓게 되고 그 구업은 말과 같이 가장 빠르게 현세에 그 과보를 받게 된다는 무서운 말이 있다. 말의 무서움을 여실히 알고 무거운 말로 그 약속들이 실현되는 그런 오늘이 되도록 이제 우리가 그 말의 거울이 돼야 할 때다.

[삶, 오디세이] 가족의 소중함 되새기며

난 내 부모를 잘 안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익숙한 말투, 즐기는 음식, 반복하는 농담이며 과거 에피소드까지 줄줄 꿸 정도였던 터라 오랜 세월 함께했으니 당연하다 믿었다. 그러나 요즘 연로하신 부모님을 뵐 때마다 그 믿음이 조금씩 흔들린다. 이런 나의 심리는 최근 스스로에게 자주 하는 질문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나는 정말 이 두 분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정말 이 두 분이 내가 알고 있는 그분들이 맞는가. 이래서 인간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나 보다. 그만큼 나는 내 부모를 충분히 안다고 착각했다는 것인데 돌아보면 그렇게 믿는 순간부터 오히려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게 됐던 건 아닐까 싶을 뿐이다. 이런 사유는 어느 날 치매안심센터에 어머니를 모시고 간 순간부터 시작됐다. 기억력 감퇴로 불안해하는 어머니의 팔을 잡고 센터 입구에서 ‘너는 곧 치매로 판명될 거다’라고 무언의 압박이라도 하는 듯 큼직하게 세워져 있는 입간판을 지나 조심스럽게 센터의 문을 여는 순간 뭔지 모를 애석함이 밀려 왔다. 어릴 적 나를 이끌던 든든한 그 손이 어느새 바싹 마른 고목처럼 야윈 모습으로 내 한쪽 팔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은 흐려지고 몸은 쇠약해지며 존재는 조금씩 빛을 잃는 것, 그것이 생의 순리임을 잘 알지만 그렇기에 더욱 뼈아픈 순간이었다. 사실 부모님을 병원이나 센터로 모시는 것도 쉽고 단순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 이유 없이 미루시거나 의사의 말을 흘려듣는 두 분을 볼 때면 정말이지 가슴이 답답하기까지 했다. 그 옛날 나 역시 비슷하게 투정을 부렸을 텐데, 이젠 상황이 역전되다 보니 늙음이란 나에게 더 이상 막연한 그 무엇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현실이 돼 나를 흔들었다. 그렇게 보면 계절마다 피고 지는 식물들은 얼마나 위대한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연의 흐름을 받아들이며 제 몫의 생만을 살아야 하는 순리에 순응하는 태도는 인간보다 더 단단하니 말이다. 한때 부모는 나의 전부였다. 그들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기준을 세웠다. 그러다 사춘기엔 그들을 시대에 뒤처진 존재로, 성인이 된 후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멀어졌다. 그러다 이제야 약해진 부모를 바라보며 그들도 나처럼 흔들리며 사랑했던 평범한 인간이었음을 깨닫는다. 두 분의 고집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방어였고 어설픈 조언은 마음 깊은 곳의 애정 표현이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자식들은 늘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뒤늦은 후회만을 안고 살아갈 뿐이다. 우리는 매일 낯선 가족을 마주하고 변해 가는 자신과 타인을 받아들이며 새롭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산다. 그래서 결국 가족을 안다는 믿음은 때로는 착각일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너무 익숙해 그 소중함을 잊고 지내기 쉽지만 바로 그 익숙함이야말로 우리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서로를 완벽히 알 수 없어도 함께 걷는다는 것, 이해가 부족해도 끝내 품는다는 것. 그 따뜻한 반복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이 가벼운 듯 무거운 마음을 안고 조심스레 내일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나의 부모도, 형제들도 다들 그러하겠지 하고 위안을 삼으며.

[삶, 오디세이] 블랙리스트 작가

필자는 블랙리스트 작가다. 필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질문과 분석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것이 성인이나 신이라 할지라도 분해되고 다시 조립돼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정치나 종교에 대해 견해를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필자는 청탁받은 원고를 쓸 때도 정치나 사회를 비판했고 단체의 성명서 발표가 옳다고 생각되면 이름을 올렸다. 모 문예지에선 필자의 글을 실어야 할지에 관해 편집회의를 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어느 날 필자는 블랙리스트 작가가 돼 있었다. 한강도 블랙리스트 작가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필자와 함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됐다. 박근혜 정부는 사회적 이슈와 인권 문제를 다루고 이를 확장하려는 작가들을 불순 세력으로 봤다. 블랙리스트 명단이 밝혀지자 한국 문학계에 비상이 걸렸다. 군사독재정권의 악몽이 되살아나며 작가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제 글을 쓸 때마다 정부 당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없어지고 문학작품의 소재는 축소된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작가들은 정부의 억압적인 태도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블랙리스트 작가는 늘 불안하다. 관리 대상이 돼 예술가 지원 혜택에서 배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작가들은 글을 쓸 때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강이 쓴 ‘소년이 온다’도 정부에 의해 유해 도서가 되고 세종도서에 배제됐다.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행위다. 문화와 예술이 발전해야 진정한 선진국이 된다. 예술의 부가가치는 국가의 국격을 높이며 제조업의 경쟁력도 높인다. 간섭받지 않는 절대 자유 속에서 작품을 집필할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작가의 기본적 인권이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는 작가의 살생부다. 군사독재 시대에는 군인들이 작가의 책을 검열했고 박근혜 정부는 작가들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지원 삭감으로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를 없앴다. 문학나눔 도서 보급은 우수 출판물을 선정해 전국 주요 도서관에 보급하는 사업이다. 문학나눔에 선정되면 출판사는 아르코 지원금으로 2쇄를 발행하고 저자는 2쇄의 인세를 받는다. 결과적으로 독자들은 작품성이 검증된 도서를 읽는다. 그런데 문학나눔이 사라졌다. 박근혜 정부가 블랙리스트에 적힌 소수를 부정적으로 보고 배제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문학나눔을 없앰으로써 문학인 모두에게 불이익을 줬다. 그러므로 윤석열 정부는 박근혜 정부보다 더 나쁘다. 필자는 블랙리스트 작가로 윤석열 정부 초기 소송에서 승소했다. 그때만 해도 정부가 문학나눔을 없애는 등 광범위하고 심각한 행위를 할 줄은 몰랐다. 이제 6월3일이면 새 정부가 들어선다. 작가로서 새 정부에 바란다. 제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지 마라. 예술과 문학에 대한 지원 서류를 간단히 하라. 원로 예술인들은 서류 제출이 어려워 지원 신청도 못 하는 실정이다. 그리고 예술과 문학에 대해 올바로 인식하고 정책을 펴기 바란다. 블랙리스트로 살생부를 만들어 관리하는 국가에서 노벨 문학상이 나왔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작가의 정신이다. 작가들은 절대 자유 속에서 글을 쓰고 싶다.

[삶, 오디세이] 커피 한잔의 감동

필자는 목사이지만 교회 주변, 동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커피를 배워 바리스타 자격증을 갖게 됐다. 나의 바리스타 자격증은 그냥 인터넷 온라인 강의로 적당히 배운 것이 아니라 거금의 수강료를 내고 명성이 있는 교수님을 찾아 세종에 가서 수개월 동안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다. 커피를 공부할 때 교수님이 ‘맛에는 사회성이 있습니다’라는 말로 강의했는데 아주 많이 공감했고 커피를 배우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맛있다’와 ‘맛없다’를 구분해 표현한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은 그 사람의 성장 배경과 사회성에 의해 형성된다. 한국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된장찌개를 외국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한국에 정착해 산다면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맛의 사회성 때문이다. 사자성어 가운데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말이 있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한다’라는 뜻으로 ‘잘못된 방법으로 목적만 이루려 하다가는 수고만 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물고기를 구하는 사람은 마땅히 물가로 가야 하는데 나무 위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손가락질하면서 어리석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는 사회성의 과정을 뛰어넘어 고집과 강요로 목적을 이루려 할 때가 많다. 상대방을 설득해 목적을 이루려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쉽게 빠지는 함정은 강요라는 쉬운 방법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강요와 위협은 가장 단순하고도 쉬운 설득 방법이다. 강도가 칼을 들이미는 것이 굶고 있는 자기 가족들의 비참한 사진을 보여주며 필요를 요청하는 설득보다 더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에 사람은 절박한 상태에서는 적절한 다른 수단을 찾기보다 강압적인 방법인 강요를 택하기 쉽다. 구약성경 민수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가까워졌을 때 모압 왕 발락이 선지자 발람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 달라고 요청하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이때 발락 왕이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에 발람 선지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설득하는 방법이 감동과는 전혀 거리가 먼 위협적인 강요였다. 필요를 설명하거나 정당한 이유로는 설득할 수 없으니까 결국 발락 왕은 높은 지도자들을 발람 선지자에게 보내고 또 보내며 감동이 빠진 강요를 한 결과는 모압의 멸망과 발람 선지자의 죽음이었다. 어떤 상담학 통계에 따르면 커피 향이 있는 상담실에서 상담할 때 대화가 더 원활하게 진행되고 내담자도 속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쉽게 말하기 때문에 상담의 결과가 좋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강요하지 않고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키지 못할 약속인 줄 알지만 “언제 만나서 식사 한번 해요”, “커피 드실래요”라는 말에도 감동한다. 필자는 아침마다 교회에 나와 카페 문을 열고 행복한 향기가 가득한 커피를 내리고 음악 소리를 높이고 창문을 활짝 연다. 그리고 교회 앞을 지나가는 분에게 “커피 한잔하고 가실래요”라고 말을 건다. 오늘 아침에는 지난번 만났던 동네 아저씨가 먼저 말을 걸어와 커피 한잔을 사이에 두고 대통령선거 이야기에서 시작해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야기와 수원kt 야구팀 이야기까지 커피 한잔이 모자라도록 마음을 열고 시간을 보냈다.

[삶, 오디세이] 부처님오신날

여유롭고 달콤했던 연휴가 어느새 지나갔다. 이번 연휴는 부처님오신날과 어린이날이 겹쳐 불교인에게는 온 가족이 함께한 행복한 시간이었으나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는 휴일이 짧아져 다소 아쉬운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사정을 차치하고 연휴를 즐길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휴일과 연휴는 언제나 그렇게 다가와 어느새 지나가는 꿈 같은 시간이다. 이는 ‘부처’라는 분의 명호와도 같다. 우리가 흔히 부처라고 칭하는 것은 깨달은 자, 눈뜬 자라는 ‘Buddha(붓다)’를 음사한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에게는 ‘여래10호’라는 열 가지의 이름이 있다. 순서대로 ‘여래(如來), 아라한(阿羅漢),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세존(佛世尊)’이다. 이 중 부처는 마지막 불세존의 불(佛)을 풀어서 표현한 것이다. 여래10호의 순서에 대해 여러 학설이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한 인물이 수행을 통해 인연이 일어나는 법칙인 연기(緣起)를 깨닫고 그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과정 속에서 불려진 이름의 순서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최초로 불린 이름은 ‘여래(如來)’다. 여래는 불교에서 추구하는 ‘법’의 가르침과도 밀접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한자를 풀이하면 ‘같을 여(如)’와 ‘올 래(來)’로 ‘그렇게 왔다, 그처럼 왔다’로 해석된다. 이처럼 여래라는 명호는 무언가 특별한 힘이나 능력을 지닌 절대적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인연이 돼 그렇게(그처럼) 우리 곁에 오신 분을 말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불교를 수행하고 신앙하는 모든 존재는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기에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설한다. 이 불성의 존재는 불교의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기도 하다. ‘신’이라는 절대자나 창조주가 없는 불교에서는 모두가 서로의 인연이고 그 인연의 힘이 우리를 지탱해 주고 살아가게 해준다고 여긴다. 그래서 부처나 보살이라는 이상적 존재를 특별한 공간에 두지 않고 우리 곁의 인연 속에서 찾게 하고 나아가 수행을 통해 다름 아닌 자신이 부처가 된다고까지 설한다. 부처는 ‘그렇게 그처럼 오는 존재’다. 그리고 ‘그’라는 지시대명사는 어떤 중요한 순간의 시절인연을 말한다. 우리가 절실히 필요로 하고 간절히 바랄 때 바로 ‘그’ 순간에 부처님이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연과 ‘그’ 부처는 바로 우리가 우리 앞에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오래전부터 그 부처와 모든 순간을 함께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너무 가깝고 당연히 있었기에 눈여겨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의 모든 인연이 우리의 부처다. 그리고 지금 우리와 함께하는 가족이야말로 우리를 바른 삶으로 이끌어주고 모든 순간 우리를 품어주는 부처다. 막연하고 먼 곳에서 부처를 찾지 말고 가장 가까운 우리의 곁에 이미 부처님은 그렇게 와서 함께하고 계신다.

[삶, 오디세이] ‘한국어능력시험 민영화’ 그림자 아래서

언어는 삶을 가르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낯선 사회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언어는 무기이자 방패이며 때로는 유일한 친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어는 국내에 정착한 이주민들에게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닌 그들의 존엄을 지켜주는 방언이자 내일로 향하는 다리가 돼 왔다. 병원에서 몸 상태를 설명하고, 자녀의 담임교사와 대화를 나누며, 일터에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힘. 이 모든 것이 한국어라는 언어에서 비롯되는데 그 출발점에 한국어능력시험(TOPIK·이하 토픽)이 있다. 이 시험은 한국 사회의 여러 문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해 왔다. 외국인에게는 대학 입시, 취업, 체류 자격 심사, 귀화 등에서 필수 혹은 결정적인 조건이 되는 시험이기에 단지 점수를 매기는 도구가 아니라 삶을 이어가기 위한 생존 보트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 이 중요한 제도가 디지털 전환이라는 이름 아래 민간 기업에 넘겨질 위기에 놓여 있다. 정부는 이 시험의 운영을 네이버 컨소시엄에 맡기려 하며 그 대가로 민간은 10년에 걸쳐 전면 운영과 수익 창출권을 보장받는다. 3천억원이 넘는 사업비는 모두 민간 자본이 부담하는 대신 그 안에서 이윤을 회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다. 하지만 한국어교육에서 가장 대표적이고도 중요한 시험이 공공의 품을 떠날 때 그것은 언어교육 전체가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게 됨을 의미한다. 응시료는 지금보다 두 배 가까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시험 준비를 위한 학습 콘텐츠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에 따라 유료로 제공될 가능성이 크다. 한 사람의 삶이 달린 시험이 이제는 지불 능력에 따라 접근 가능한 공산품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기술이 교육을 대신하고 이윤이 권리를 대신하는 시대.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이 변화는 시험장 너머의 세계, 곧 한국어교육 현장에서 이미 고단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교사들에게도 커다란 그늘을 드리운다. 오늘도 수업을 준비하며 밤 늦게까지 강의안을 다듬는 이들 중 다수는 몇 달짜리 초단기 계약서에 서명한다. 유급휴가는커녕 퇴직금조차 꿈도 꾸기 어렵다. 학생 상담, 평가, 외부 활동 같은 수업 외 활동은 사명감과 봉사정신이란 이름으로 무보수로 강요되고 현재 교육법상의 교원으로도 명시돼 있지 않아 그 어디서도 정식 교원의 신분을 인정받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헌신 위에 한국어의 세계화를 쌓아 올렸지만 그 누더기 같은 노동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 무심했다. 국외를 보면 외국인을 위한 자국어 시험이 공공 기관이나 비영리 단체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TOEFL은 비영리단체가, DELF·DALF는 프랑스 정부가, JLPT는 일본 외무성이, HSK는 중국 교육부가 운영한다. 이들은 언어를 통해 문화를 전파하고 교육의 신뢰를 지키며 국제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토픽이 민간 기업의 독점 체제로 넘겨진다면 그것은 국제적 기준에서나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기본선에서 한참 벗어난 결정이다. 무엇보다 이 시험은 수많은 이주민과 외국인에게 처음으로 만나는 한국이나 다름없다. 시험장에서 느끼는 존중, 결과에 담긴 공정함, 응시 과정의 접근성은 한국 사회에 대한 첫인상으로 각인된다. 그 첫인상이 이윤에 의해 재단된다면 우리는 언어와 교육을 통해 다가가야 할 세계와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토픽이란 단순히 언어 시험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길 위에 서 있는 삶이다. 말은 서로를 이해하게 만들고, 삶을 설명하게 하며, 꿈을 말할 수 있게 해준다. 언어는 고립된 사람을 세상으로 꺼내주는 손길이자 존재의 근거다. 그러니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누군가가 시험 비용 때문에 그 문턱에서 돌아선다면 그것은 단지 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서로의 권리를 함께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시험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언어는 누구의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모두의 것이라고 대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진 것이다. 시험은 문을 열기 위한 것이지 닫기 위한 것이 아니며 언어는 서로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연결하기 위한 것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한국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한국 사회에서 뿌리 내리기를 꿈꾸는 수많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보자. 그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워 가는 과정이 고통이 아닌 기회가 되려면 교육은 언제나 공공의 이름으로 존재해야 한다. 누구든, 어디서든, 조건 없이 배우고 자랄 수 있는 언어 환경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한국어 교육의 미래다. 그 길 위에 토픽이 다시 공공의 이름으로 서야 하는 이유가 있다.

[삶, 오디세이] 시인은 시집을 사지 않는다

시인은 한 권의 시집을 낼 때마다 산고의 고통을 겪는다. 노트북 앞에서 스스로 불행하고 고독한 자가 돼 현상을 들여다본다. 시의 목표는 랭보가 말한 것처럼 “미지의 세계에 도달함이며, 불가시적인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듣는 것”이다. 시인은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을 저주받은 자로 만든다. 이렇게 내면의 세계로 집중해 한 편의 시가 창작된다. 그런데 이런 시집을 정작 시인이 사서 읽지 않는다. 다수의 인천시인협회 회원들이 매년 시집을 발간한다. 작년 연말에는 동주문학상을 수상한 원도이 시인이 ‘토마토 파르티잔’을 출간했고 지난달에는 인시협의 원로 임경자 시인이 81세의 나이에 두 번째 시집 ‘어우렁그네’를 출간했다. 이달에는 이승예 시인이 ‘코드를 잡는 잠’으로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며칠 전 최휘 시인은 문학동네로부터 두 번째 동시집 출간을 약속받았다. 그리고 올해 문화재단 지원금에 선정돼 출간 준비 중인 시인이 여러 명이다. 이토록 힘들게 시집을 출간하는데도 시인들조차 시집을 직접 구매하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출간한 시집을 시인이 무료로 사인해 주는 문화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시인들 스스로 시집은 무료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이런 문화는 시인의 자존감을 크게 떨어뜨린다. 중견인 정진혁 시인이 어느 날 필자에게 “시집에 사인해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보낼 때 시인으로서 자괴감이 든다”며 우울하게 말했다. 산고의 고통을 겪으며 출간한 시집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을 스스로 부끄러워한 것이다. 또 어떤 시인은 정진혁 시인과는 상반되게 아는 시인이 시집을 발간했는데 자기에게 무료로 사인본을 주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불평했다. 필자는 아는 시인이 시집을 발간하면 가능한 한 구매해 읽는다. 특별한 경우는 수십권 구매해 학생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시집을 줄 때는 저자의 사인을 받아 소장 가치가 있도록 한다. 한 권의 시집이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출간되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재 인천시인협회에서는 시집 사서 읽기 운동을 시작했다. 뜻을 함께하는 시인들이 시집 사서 읽기 운동에 깊이 공감하고 앞장선 것이다. 그리고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시집을 사서 읽게끔 서로 독려하고 있다. 올해부터 시행하는 인시협상에 응모하려면 한 해 동안 발간된 회원의 저서 모두를 각각 한 권 이상씩 구입해야 한다. 필수 조건이므로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시협상은 본상인 ‘오늘의시인상’과 작품상인 ‘인천시인상’이 있다. 두 상 모두 작품성을 평가해 회원들에게 수여하므로 명예롭다. 오늘의시인상은 문학적 성과가 높은 시인에게 수여하고 인천시인상은 한 해 동안 발간된 시집을 심사 대상으로 삼는다. 시집 한 권의 가격은 한 끼 식사나 차 한 잔 정도인 대략 1만2천원이다. 시집은 가격에 비해 읽어서 얻는 효용가치가 매우 높다. 한 시인의 시적 세계에서 사고의 지평이 끝없이 넓혀지기 때문이다. 또 고립되고 파편화된 현대인의 초상을 발견할 수 있다. 시 한 편마다 삶을 성찰하는 예술적 아포리즘이 가득하다. 이런데도 시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시집을 사서 읽지 않는다. 문화강국답게 시인 모두 시집을 사서 읽는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다. 한 끼 식사는 몇 시간의 포만감에 그치지만 잘 쓴 한 권의 시집은 평생 정신적 포만감을 준다.

[삶, 오디세이] 파스칼의 팡세 이야기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책 ‘팡세’의 저자인 파스칼의 이름은 부활절이라는 라틴어 ‘파스칼리스’에서 온 말이다. 블레즈 파스칼은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신학자로 과학과 철학, 종교에 걸쳐 수많은 업적을 남긴 천재 사상가다. 16세에 ‘아르키메데스 이래 최고의 업적’이라고 평가된 ‘원추 곡선 시론’을 발표했고 19세에는 세계 최초로 우리가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계산기를 발명했다. 이처럼 분명한 과학적 증명과 이성적 논증을 중시했던 과학자 파스칼의 이름이 부활절과 연관된 것에는 그가 ‘성령의 불’로 표현한 개인적 체험을 통해 합리적 이성과 신적 초월성의 만남을 경험했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 중 하나는 ‘파스칼 내기’다. 파스칼은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을 단순한 믿음의 문제로 보지 않고 확률적 접근을 통해 분석했다. 그는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신을 믿는 것이 무한한 이익을 가져오지만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믿는 데 큰 손해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 논리는 이후 게임 이론과 경제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가 남긴 명언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이 있다. 그는 31세에 예수 그리스도를 극적으로 만나는 신비한 체험을 통해 인간이 참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이성을 초월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회심의 순간을 “확신, 기쁨, 평강,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나는 나 자신을 그분께로부터 분리시켜 왔다. 오 주여, 나를 결코 그분께로부터 분리되지 않게 해주소서”라고 고백했다. 부활절이 있는 4월에 나는 신앙의 본질을 생각하다가 파스칼의 삶에 대해 새로운 통찰력을 갖게 됐다. 사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온전함을 상실한 채 허망한 나그네의 인생을 산다. 인간의 교만한 이성과 병든 지성은 하나님을 만나야 겸손해지고 온전함을 회복할 수 있다. 부활절을 의미하는 이름을 가진 파스칼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만난 후 자신의 모든 것을 소외된 이웃과 나누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남은 생애를 살았다. 그리고 그 시대 무신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팡세’를 유작으로 남기고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시대가 다양성을 중시하고 개인주의가 팽배한 결과 절대가치와 기준이 모호해지고 혼란해졌다. 그러기에 타협하지 않는 영원불멸의 진리가 누구에게도 필요하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 지인이 얼마 전 미국 하원의회 개원식 기도를 부탁받았던 이야기를 나눴다. 하원의회 사무국에서 기도문에 대한 지침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미국에는 많은 종교가 있기 때문에 특정 종교로 기도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못한다면 굳이 기도 순서를 맡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기도의 마지막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다고 한다. 생방송으로 전국에 전파된 개원식 후 많은 전화와 손편지와 이메일을 받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느냐고 질책하거나 문제 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근래 상원에 기도 순서를 맡아 또 한번 갔는데 이번에는 작심하고 ‘우리의 구원자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기도했더니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큰 소리로 아멘하면서 함께 기도했고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개인과 국가의 가치관과 역사는 분명해진다.

[삶, 오디세이] 다시 우리 손으로 ‘봄’을

유난히 길고 눈도 많이 내린 겨울이 이제야 지나가나 했던 3월, 대한민국을 화마가 집어삼켰다. 화마가 토해내는 불길이 전국으로 퍼져 우리의 일상과 생계를 무너뜨려 버렸다. 특히 이번 화재의 원인이 사람의 안일한 생각과 부주의한 행동이라는 사실이 더욱 우리를 아프고 안타깝게 만든다. 사람에서 시작한 불길이 자연으로 넘어가 다시 사람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 대재앙이 돼 돌아온 것이다. 예부터 사람이 살아가며 반드시 주의하고 피해야 하는 세 가지 재앙을 ‘삼재(三災)’라 불렀다. 민간에서는 인생의 9년 주기마다 이 삼재가 찾아온다고 해 지금도 매년 초가 되면 자신의 나이에 삼재가 들었는지를 확인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풍습에서 가장 조심하던 것 중의 하나다. 삼재는 물에 의한 수재(水災), 바람에 의한 풍재(風災), 불에 의한 화재(火災)로 이 중 단 한 가지라도 겪지 않도록 매사에 주의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유례없는 괴물 산불은 단순한 화재의 불을 넘어 삼재 그 자체가 돼 버렸다. 비가 오지 않는 수재로 곳곳에 불길이 번졌고 태풍과 같은 바람이 부는 풍재로 불길이 가라앉지 않았으며 불길이 화마가 돼 모든 것을 집어삼킨 화재를 겪었다. 불교에서는 삼재와 더불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하는 속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인재(人災)를 더욱 주의시키는데 이번 화마의 삼재는 그 원인이 사람에게 있어 삼재의 모든 것과 인재까지 더해져 차마 우리의 힘으로 버틸 수 없는 대재앙이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일어서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이 하루를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의 손에서 시작한 화마와 삼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보조 지눌 스님의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딛고 일어나라’는 가르침과 같이 그 터전에서 넘어진 우리와 이웃과 인연들의 손을 잡아 그곳에서 일으켜줘야 한다. 비록 사람에 의해 일어난 화마와 삼재이지만 지금은 그것을 탓하고 원망만 하기에는 너무 힘든 순간이다. 오히려 우리 곳곳을 살펴보고 그분들의 손을 잡아주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불교에서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것은 깨달음이지만 삶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화합’이다. 화합은 단순히 함께하는 의미를 넘어 화목하게 함께하는 것이다. 다행히 피해가 없던 우리의 안심에 감사하고, 이제 그것을 도움을 드려야 하는 분들과 오늘의 인연에 전해줘야 한다. 화목하다는 것은 서로에게 정다운 것을 말한다. 나만이 아닌 우리로 있을 때 화목과 화합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으로 인해 힘들어진 이 봄, 다시 우리의 손으로 봄을 불러와야 한다. 우리의 봄이 모두에게 따스함을 줄 수 있도록 오늘 하루 가족과 이웃과 인연에 우리의 손길을 전해주자.

[삶, 오디세이] ‘페미니즘 혐오’ 사회와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소설 ‘작은 아씨들’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품으로 이 소설이 등장한 시기에는 보기 드문 여성서사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는 이유다. 원작 소설은 가난한 마치(March) 가문의 자매들이 백인 남성 중심의 보수적 사회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이 점에서 문화비평 영역에서는 ‘작은 아씨들’을 페미니즘 비평이론의 관점으로 해석하곤 한다. 그렇다. 적어도 문화비평 분야에서 페미니즘은 특정 대상을 혐오하거나 조롱하기 위함이 아닌 그런 대상을 재해석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그래 왔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혐오의 단어가 됐고, 이는 그러한 경향의 사람들을 ‘페미’라고 부르며 낙인을 찍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는 아무래도 페미니즘을 단순히 특정 경향의 집단으로 오해하고 정치적으로 악용한 데서 비롯된 것 같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페미라는 조롱의 표현으로 전락하기까지 여러 과정과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톨레랑스를 성찰하고 인식적 탄력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바는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대중이 페미니즘을 단순히 남성 혐오 정도로만 인식하는 것과 달리 문화비평 이론에서 정리하는 페미니즘의 사적 전개 과정은 복잡다단하다. 19세기부터 1950년대까지의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참정권, 아프리카계 영국·미국인의 권리 신장 등을 주도한 1세대 페미니즘의 성격을 띤다. 즉, 자유주의적 여성주의를 표방한 것이다. 이후 페미니즘은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노동 문제에 입각한 급진적 성격으로 전개되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좀 더 다양한 계층과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의 권리운동과도 결탁해 포스트모던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 같은 페미니즘 이론은 대중문화 속에서 ‘타자화’된 소수자들에게 우선 주목한다. 즉, 가부장적 전통사회의 남성과 같은 특권층이 주체화된 문화 속에서 여성 같은 소수자가 부당하지만 자연스럽게 객체화되는 고정성과 보편성을 비판하며, 배경으로 밀린 그들을 중심부로 소환해 목소리를 돌려주고 그것을 전경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흔히 대중문화 속에 재현되는 소수자의 이미지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 또한 소수자성을 또 다른 방식으로 개념화한다는 점에서 큰 한계가 있었고 이후 수정된 혹은 새롭게 정의된 페미니즘에서는 젠더적 정체성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한다는 점에 더 큰 주목을 하고 있다. 일례로 몇 해 전 방영된 한국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이 드라마에서는 단순히 여성 해방이나 근로자성, 소수자와 타자와의 연대를 이야기하는 데 머물러 있지 않다. 그보다는 매 순간 변모하고 진전하는 여성 캐릭터들 그리고 그들의 연대와 연대의 가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돈, 섹스, 권력이라는 인류의 원죄적 속성과 맞물리면서 결과적으로는 단순히 여성의 이야기로 젠더 특수화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구원에 대한 문제로 보편화된다. 이렇게 페미니즘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고, 그것이 문화계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 끼낀 영향력은 잠잠하면서도 파워풀하다. 그것은 페미니즘이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곧 틀렸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용인하는 사회를 지향하고, 그것을 통해 한 사회문화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단순히 급진적 여성주의나 남성 혐오 정도로만 폄훼되는 현상은 다소 위험하고 그러한 점에서 세대를 거듭하며 발전할 수 있었던 서양의 페미니즘과 달리 발전 동력을 압제당한 한국 페미니즘의 흐름은 매우 안타깝다.

[삶, 오디세이] 박홍이산(朴弘移山)

‘열자’의 탕문 편에 중국의 유명한 ‘우공이산’이라는 우화가 나온다. 우공이산은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우공은 90세 가까운 나이에 사람의 왕래를 불편하게 하는 태형산과 왕옥산을 옮기려 시도한다. 이에 감동한 옥황상제가 산을 옮겨줬다는 내용이다. 이로부터 우공이산은 사람이란 꾸준히 노력하면 산과 바다라도 옮길 수 있다는 의미가 됐다. 필자는 현대판 우공이산인 박홍 작가를 알고 있다. 선생은 8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누나 밑에서 자라면서 작가를 꿈꾸었다. 그 후 그는 2025년 83세의 나이에 ‘빗물 속에 영혼이 녹아 있다면’이라는 장편소설을 펴냈다. 박홍 선생이 노벨 문학상을 꿈꾸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를 읽은 후다. 파스테르나크는 본래 시인이었다. 따라서 그의 소설 문장은 시적 표현으로 묘사력이 풍부하다. 혹자는 닥터 지바고를 시소설로 보기도 한다. 파스테르나크는 소설을 모스크바 문예지에 발표하려 했지만 거부당한다. 어쩔 수 없이 타국인 이탈리아에서 출판한 책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다. 그는 혁명 과정에서 죽은 사람들에 대한 속죄 의식으로 소설을 썼다. 이 때문에 작가동맹에서 제명되고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다. 반골 기질이 강했던 박홍 선생은 중학생 때 파스테르나크를 인생의 롤모델로 삼는다. 노벨 문학상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선생은 먼저 파스테르나크처럼 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나라 시단의 빛나는 존재였던 청록파 시인들로부터 시적 감각을 익혔다. 그 결과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의 시에서 자연의 본성을 깊이 깨닫고 인간 존재의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그는 시 공부를 통해 세상을 따뜻한 감성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냉철한 이성으로 저항하기 시작한다. 이런 노력으로 선생은 2010년 시 전문지 ‘시안’으로 등단한다. 등단 5년 후인 2015년 선생은 나이 73세에 첫 시집 ‘나의 옥상 와이너리’를 출간했다. 선생의 시 세계는 청록파의 서정성과 세상을 향한 저항의식으로 가득하다. 이처럼 선생은 60년이 지나 자신의 꿈에 다가섰다. 선생의 소설가가 되기 위한 과정은 더욱더 치열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소설에 운명을 건 사람처럼 사고했고 행동했다. 그는 경희대 화학과를 3학년 때 휴학한다. 그리고 천호동에서 배추 장사를 하며 세상과 만난다. 이 모든 과정이 소설 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했다. 선생은 직업도 소설 작업을 고려해 신중히 선택했다. 그렇게 고른 직업이 소설 쓰기에 최적화된 2함대의 군무원이었다. 선생은 신혼여행도 포기하고 소설을 썼다. 이때 썼던 소설이 권위 있는 문예지에 연속 최종심에 올랐다. 그러나 그 후 신춘문예와 문예지에 계속 투고하는데도 낙선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선생이 세상과 타협했다면 일찍이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그곳에선 대부분의 문예지가 추천제였기 때문이다. 박홍 선생이 드디어 작가의 꿈을 이뤘다. 83세에 자전적 성장 소설인 ‘빗물 속에 영혼이 녹아 있다면’을 출간했다. 선생이 시인과 소설가의 꿈을 이루는 과정이 놀랍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정신과 문학으로 삶의 전 과정을 관통한 시간이 경이롭다. 선생은 노벨 문학상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목표를 세우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빛난다. 선생은 지금도 실존주의적 존재의 본질에 치열한 질문을 던지며 글을 쓴다. 이러한 노력이 계속되기 때문에 노벨 문학상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필자는 지금 여기 ‘열자’의 탕문 편에 나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을 박홍이산(朴弘移山)이라고 바꿔 읽는다.

[삶, 오디세이] 어머니의 병원 생활

필자에게는 87세인 홀어머니가 계신다. 주민등록상으로는 87세가 맞는데 어머니는 한 살 줄여 늘 86세라고 하신다. 아직 건강해 서울 큰형님네 집 근처에서 혼자 사신다. 얼마 전에 봄 감기로 힘들다고 하시더니 동네 병원에서 링거를 맞았다. 몸이 힘드니 이틀 상간으로 연거푸 두 번 링거를 맞았는데 그게 화근이 돼 급기야 서울의료원에 입원하셨다. 당장 달려가야 하지만 일요일 예배가 끝나고 예정에 없던 모임이 있어 하루를 건너뛰고 월요일에는 사전에 약속된 일정이 있어 못 갔다. 그 대신 형님과 누나가 어머니 병실에 다녀와서 전화를 줘 미안한 마음을 숨기고 있는 차에 서울 지역번호로 된 전화가 왔다. 대부분 그런 전화는 상업적인 전화라고 생각해 지나치고 마는데 이상하게 받아야 할 것 같아 “여보세요”라고 했더니 어머니의 보호자에게 전화했다고 내일 퇴원하시는데 어머니를 모시러 오라고 한다. 어머니가 많이 회복한 것으로 맘 편하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어머니께 전화했더니 많이 아픈 목소리로 아직 몸이 너무 힘들고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고 하신다. 목에 넘긴 음식물을 속에서 받아주지 않아 하루이틀 더 병원에 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퇴원 약속을 했던 번호로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병원에 더 계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담당 과장님과 의논 후 알려주겠다고 하고 곧장 예정대로 내일 퇴원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어머니를 모시러 병원에 들렀더니 걷기조차 힘들어하셨다. 퇴원 절차를 마치고 수원의 작은 아들, 우리 집으로 가자고 했더니 “며느리가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가도 되냐”고 하신다. 몸 상태나 마음은 가고 싶은데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며느리의 생각을 걱정하셨다. “어머니, 집에서 출발할 때 어머니의 몸 상태를 보고 집으로 모시자고 상의하고 왔어요” 했더니 순순히 차에 타셨다. 문제는 집에서도 아무것도 못 드셨다. 좋아하는 호박죽도 못 드셨고 정성스레 쑨 흰죽도 바라만 볼 뿐 숟가락을 들 마음이 없으셨다. 직감적으로 이 땅에서 어머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18년 전 아버지를 먼저 천국에 보내고 혼자 힘들게 하루하루 사신 어머니가 아버지 곁으로 가실 시간이 가까워진 것 같아 무거운 맘으로 형제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니 오늘도 못 드시면 내일은 병원에 입원하셔야겠어요. 힘드셔도 조금씩 드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녁에 집에 들어갔더니 어머니가 점심 때 호박죽을 반 공기 드셨다고, 저녁에 주무시기 전에도 조금 더 드시고 그렇게 하루이틀 좋아지고, 특별히 며느리가 만든 봄동 겉절이김치가 맛있다며 입맛을 회복했다. 한 주간 집에 계시면서 혼자 일어나 화장실도 가고 끼니마다 식탁에 앉아 정해진 양의 음식을 다 드시고 다시 병원 진료가 약속된 날 어머니를 모시고 담당 과장을 만났더니 아주 반가워하면서 좋아하셨다. 이번에 있었던 어머니의 병원 생활을 통해 환자인 어머니와 보호자인 아들의 바람대로 하루이틀 병원에 더 계셨더라면 정말 어머니와는 이 땅에서 만나지 못했을지도 몰랐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병원의 치료와 더불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가족을 주셨고 몸이 아플 때도, 기쁜 일이 있을 때도 가족과 함께 살아가도록 이 땅을 지으셨음을 깨달았다. 큰 고비 하나를 넘긴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삶, 오디세이] 출가적 일상

불교의 수행자를 ‘출가자’라고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출가(出家)는 ‘집을 떠나감’을 의미한다. 그래서 과거부터 출가자를 속세를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나 은둔 수행자와 같이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는 출가해 깨달음을 얻은 후 단 한 번도 깊은 산이나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머물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성을 찾아 가르침을 전하고 그들의 일상에서의 수행과 변화를 일깨워 줬다. 즉, 우리는 출가라는 개념을 ‘가출(家出)’과 같이 어떤 문제나 불만 등으로 집을 나와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난 것과 같이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출가에 대한 바른 설명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직전의 장면에 상세하게 나타난다. 특수한 힘이나 신비한 능력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이고, 그 삶을 이어주는 것이 어떠한 법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태자 싯다르타는 궁극에 이르러 원인과 결과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 속에서 무엇도 영원불변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에 눈뜨고 ‘연기법(緣起法)’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 직전에 자신의 내면에서 항상 자문하고 타협시키며 나약하게 만들던 또 다른 자아인 마왕 파순을 대면하게 된다. 이 마왕 파순은 다름 아닌 자신이 확고부동하게 존재한다고 믿는 그 생각이다. 그리고 이때 싯다르타는 파순에게 ‘집 짓는 자여, 드디어 그대를 만났도다. 이제 그대 두 분 다시 집을 짓지 못하리’라고 한 뒤 그의 항복을 받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된다. 즉, 파순을 지칭한 ‘집 짓는 자’는 언제나 우리 자신을 가꾸고 만들며 그것이 절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바로 ‘나’다. 불교는 ‘무아(無我)’를 말하는 종교로 절대불변의 ‘자신’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내가 분명히 여기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없다는 것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의 가르침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에 대한 부정이다. 만약 절대불변의 자신이 있다면 우리는 늙을 일도, 병들 일도, 죽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노병사를 절대로 피해 갈 수 없다. 그리고 태어난 순간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고 변화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피할 수 없는 숙명적 법칙과 계속해서 변화하는 자신 속에 그 무엇도 고정적이고 영원불변할 수 없다는 가르침이 불교의 ‘무아’다. 우리는 오늘 하루도 수많은 사람들과 여러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으로서 존재하지만 그 자신은 매일의 삶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찾지 말고 ‘나’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럼 그 여정의 길에서 나로 인해 나를 변화시키고 나와 함께 맺어진 인연들과 오늘 하루를 참되게 살 것이다. 출가적 일상을 살자. 어제와 같겠지라는 실망을 버리고, 내일도 그렇겠지라는 생각을 지우고, 오늘 하루 매 순간 변화하는 자신을 만들고, 그 길에서 스스로 한 걸음을 내디뎌 오늘로 나아가자.

[삶, 오디세이] 또다시 찾아온 봄과 삶의 지혜

여전히 쌀쌀해 춘삼월에 걸맞은 따뜻한 기운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확실히 봄이 좀 더 가까이 왔음은 느낄 수 있다. 영하로 내려갔던 기온이 영상으로 올랐고 간혹 눈으로 둔갑하기도 하지만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데다 그 비는 겨울 동안 건조하게 얼어 있던 대지를 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맘때 거리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옅은 흙냄새가 풍긴다. 물론 그것이 완연한 봄기운으로 바뀌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러다 순식간에 식물들이 싹을 틔우고 거기서 꽃이 피어나고 그럴 테다. 봄은 그렇게 대자연의 큰 흐름 속에서 우리들의 곁을 맴돌며 기쁨과 환희를 선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긴 시련의 끝에 좋은 날을 맞이하거나 개인적인 경사가 연이을 경우 봄이 왔다는 표현으로 그 상황을 비유하곤 한다. 대표적인 예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이상화 시인의 작품으로 이 시에는 나라는 빼앗겼더라도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봄만은 압제당할 수 없다는 저항의식과 당장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비애, 독립을 향한 열망 등이 혼재돼 있다. 그만큼 이 시에서 ‘봄’이라는 시어가 그것을 읽는 독자들에게 던지는 의미가 큰 것이다. 그런 봄이 2025년에도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지만 마음이 여전히 겨울처럼 얼어 있는 사람이 많을 테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걱정하며 주시하고 있을 정치적 혼란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고 심지어 그것은 매순간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져 더 큰 혼란을 야기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거기다 경제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서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 지 오래고, 이런 가운데 미국 대선 이후 국제 정세 또한 급변해 세계 도처에서 심상치 않은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TV나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 보는 지금의 세상에서는 봄이라고는 느낄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세상을 보는 눈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봐서는 절대로 길러질 수 없고 내가 보기 싫은 것도 봐야 균형 잡힌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주로 듣는 음악만 따로 모아 놓은 뮤직 플레이 리스트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플레이 리스트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번 신곡을 채워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기존에 만들어 놓은 플레이 리스트를 매번 똑같이 듣는다면 우리가 듣고 느끼는 음악은 딱 거기까지로 한정돼 음악의 새로운 흐름을 체감하지 못하게 된다. 다시 봄 이야기로 넘어가면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때일수록 봄을 느끼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대중매체의 각종 소식에 무감각해지라는 것이 아니라 잠시라도 의도적으로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지금 그 주변으로 눈을 돌려 자연을 느껴 보라는 것이다. 자연은 내가 만들어 놓은 뮤직 플레이 리스트처럼 고정돼 있지 않고 매순간 역동적으로 변모하기에 그것을 관찰하면서 얻는 삶의 지혜는 생각보다 크고 깊으며 넓다. 자연은 인간의 욕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늘 거기에 존재하지만 매순간 변화무쌍하기에 우리 생활 속 곳곳의 자연을 관찰하다 보면 우주의 놀랍고도 경이로운 섭리를 깨닫게 된다. 그러한 자연 앞에서는 이 세상을 살다 가는 일개의 유한한 인간으로서 겸허해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가 떠난 세상에도 자연은 여전히 거기에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봄은 그저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대자연에 다가갈 때 비로소 관찰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오늘부터 잠시 오가는 길에서라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앙상하게 서 있던 가로수나 식물들 혹은 내가 밟는 땅의 흙을 관찰해 보자. 그럼 이미 그들 속에서 움트고 있는 봄을 보게 될 것이며 더불어 얼어 있던 마음도 분명 한결 따뜻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연을 관찰하면서 과연 우리 사회에서는 무엇이 진정한 봄이고 그것이 과연 우리들에게 실제로 왔는지를 좀 더 깊이 고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삶, 오디세이] 시 합평의 원칙

올해부터 인천시인협회에서 시 합평을 하기로 계획했다. 시 합평은 두 종류로 진행될 예정이다. 하나는 등단한 회원을 위한 시 합평이고 또 하나는 준회원인 시인 지망생을 위한 시 합평이다. 어느 것이든 시 합평은 잘못하면 서로에게 상처만 준다. 이뿐만 아니라 합평했던 타인의 작품을 표절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합평은 시 공부를 하는 데 꼭 필요하다. 인천시인협회는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 합평을 통해 모두가 성장하는 방식을 찾겠다. 올바른 합평의 원칙을 만들어 참여자 모두 K-문학 장에서 도약하게 할 것이다. 필자가 처음 경험했던 합평은 20대 시절이었다. 모두가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합평은 할 때마다 서로에게 상처만 줬다. 문청들은 타인의 작품에서 단점을 찾기에 급급했다. 잘된 점은 말하지 않았다. 지금도 필자의 머릿속엔 모두에게 상처만 주는 합평으로 남아 있다. 얼마 전 기성 시인들의 시 합평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오랜만의 시 합평이라 기대가 컸다. 하지만 시작되자 필자가 경험한 20대 때의 합평이 재연됐다. 그곳에 모인 시인들은 칭찬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직 문제점 위주로만 합평했다. 이러면 서로 감정 대립이 된다. 필자는 다른 시인들의 작품에서 장점을 찾아내 의견을 개진했다. 합평은 장단점을 말해야 한다. 그래야 시적 아노미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대학의 문예창작과에서도 전 학년에 걸쳐 학생들은 합평 강의를 듣는다. 필자는 대학 문예창작과에서 시창작연습, 시창작과퇴고, 현대시강독, 문학과신화 등을 오랫동안 가르쳤다. 이 중 시창작연습과 시창작과퇴고는 학생들이 제출한 작품을 합평하고 마지막에 교수가 피드백을 주는 방식의 강의였다. 누군가는 상대의 작품에서 단점만 찾아내고 누군가는 장점과 함께 단점을 찾는다. 그리고 다수의 학생은 자기 작품이 혹평받아 상처를 입는다. 필자는 가능한 한 피드백을 줄 때 단점보다는 장점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를 언급했다. 어떤 학생은 상처 입은 것을 강의 평가로 드러냈다. 지나치게 혹평을 한 학생을 막지 않은 책임을 필자에게 물은 것이다. 또 평가 압박 때문에 표절한 작품으로 합평한 학생도 생겨났다. 이 학생의 경우는 징계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휴학했다. 합평이 참석자 모두를 만족하게 한 예도 있다. 필자가 모 문학 단체에서 소모임장을 맡았을 때다. 그 단체의 소모임장이라는 직책은 합평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우선 작품을 회원들이 자유롭게 평가하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소모임장이 총평하는 방식이었다. 필자는 회원들의 작품에서 장점을 보려 노력했다. 우선 대상 작품에서 잘된 점을 찾아냈다. 잘된 부분을 이론적 근거를 대며 말해줬다. 합평 말미에 퇴고했으면 하는 부분을 조언했다. 더불어 지적한 단점도 필자가 잘못 본 것일 수 있다고 첨언한다. 그러자 모두가 만족하고 합평하는 날을 기다렸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란 없다. 다만 설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절대적인 진리인 것처럼 오만한 태도로 작품을 혹평하면 안 된다. 합평은 시인들의 시적 합목적성에 맞게 원칙을 세워 진행해야 한다.

[삶, 오디세이] 내게 맞는 교회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부지런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게으르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도록 쇳덩어리를 가만히 두면 녹이 생기고, 땅을 가만히 두면 엉겅퀴가 자라고, 사람도 때가 되면 머리를 깎아야 하고 손톱을 손질하도록 창조하셨다. 나는 두 달에 한 번쯤 머리를 깎는다. 우리 동네는 시장 안에 남자 전용 미용실이 있다. 오랫동안 단골손님으로 이발을 했는데 어느 날 주인이 바뀌었다. 머리를 깎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친하게 지냈는데 아는 언니가 호주에 있다고 했던 적이 있는데 호주로 이민을 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부터 낯선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기고 인사말을 시작으로 대화가 되지 않는 겉도는 말을 하면서 아직 친해지지 않은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일 예배를 앞둔 지난 주말, 때가 돼 단골 미용실을 찾았는데 문을 열기도 전에 밖에서 봤더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 뒤돌아 왔다. 마침 30년 넘게 운전하며 다니던 골목길에 보이지 않던 보조간판을 본 기억이 났다. ‘남자 전용 이발 구천 원’ 집으로 오던 발걸음을 돌려 새로운 미용실을 들어갔다. 연세 많은 아주머니가 힐끔 쳐다보며 자리에 앉아 기다리라고 하며 나 같은 아저씨 머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내 차례가 됐다. “어떻게 깎아 드릴까요”라는 물음에 장난기 섞인 대답으로 “잘~ 깎아 주세요”라고 했더니 “뻗치는 머리라서 조금 다듬어 드릴게요”라면서 이미 현란한 손놀림의 가위질이 시작됐다. “조금만 다듬어 준다”는 말이 걱정돼 “그래도 한 달이나 두 달 후에 미용실에 올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수줍은 요구를 하나 더했더니 깎고 있던 머리는 더 짧아지기 시작했고 시간이 길어지게 됐다. 처음 만난 손님에게 온 신경을 써서 집중하고 있는 미용사에게 과감하고 정확하게 요구사항을 말씀드렸다. “저는 목사입니다. 잘 부탁해요.” 내가 목사라는 말에 잠시 멈추고 놀란 표정으로 어느 교회이며, 어디에 있는 교회인지, 교인은 얼마나 모이는지, 얼마나 오래됐는지.... 준비하고 있었듯이 질문을 쏟아냈다. 단골 미용실에서도 있었던 질문들이었고, 대부분 사람이 나를 처음 만나 나누는 대화이기에 스스럼없이 대답했더니 본인 이야기를 맨 나중에 했다. 자신도 예전에 교회에 다녔는데 쉬다가 다시 교회를 찾고 있다고. 그리고 주일 예배에 한 번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 머리를 다 깎을 즈음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교회는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 안 됩니다. 본인에게 맞는 교회를 찾아 꾸준히 교회 생활을 해야 믿음이 자라고 유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정말 주일에 일찍 교회에 와서 맨 뒷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갔다. 교회 뒤에 서서 성도들을 관리하는 아내에게 다음 주에 또 오겠다고 하고 갔다고 한다. 교회를 찾고 있는 그분에게 우리 교회가 잘 맞는 교회가 됐으면 좋겠다. 나는 그분과 약속을 했다. “뻗치는 머리지만 잘 다듬으면 멋집니다. 주일에 교회에 오셔서 확인하세요.” 그분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갔을까. 내 머리만 바라보고 갔을까.

[삶, 오디세이] 이 땅에서 일어나자

연말부터 새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다툼과 분열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일상 속에서 이야기를 나눠도 서로의 의견이나 성향이 다른 것은 아닌지 조심하고, 표현이나 말투도 이전보다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지금은 많은 생각과 오해가 뒤섞인 나머지 다름을 용서하지 않고 그것을 화로써 표출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탐진치(貪瞋癡)라는 삼독심(三毒心)이 있다. ‘탐’은 탐심과 욕심으로 내가 더 가져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는 집착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진’의 화를 내고 더 나아가 ‘치’의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즉, 화와 어리석은 행동의 토대에는 욕심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욕심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더 가지려는 마음과 더불어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심도 포함된다. 즉,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을 따라야 한다거나 자신과 같아야만 인정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우리는 같은 나라에 태어나 같은 한글을 사용하고, 같은 피부색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그것들로 인해 모두가 똑같다고 정의할 수 없다. 모두가 다른 삶을 사는 세상에서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모든 것에 충돌할 수밖에 없고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오히려 자신이 가장 다른 존재일지도 모른다. ‘화합’이라는 말은 끌어당겨 합치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받아들이고 안아줘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다르기에 화합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작은 지구 속의 아주 작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한두 명만 거쳐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까운 관계 속에 있고 지금도 그들 옆에서 내가 함께하고 있다. 지금은 화가 너무나 끓어올라 서로를 밀어내고 분별하고 있지만 우리는 결국 여기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미 절반이 잘려진 나라에서 다시 서로를 인정하지 못해 잘라낸다면 이 작디작은 나라에서 결국 자신의 설 곳이 없어질 것이다. 끓어오른 화는 언젠가 식을 것이고 밀어냈던 그들은 언젠가 우리와 함께 이곳에서 살 것이다. 서로에 대한 상처는 고스란히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지눌 스님의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人因地而倒者, 因地而起)’는 가르침이 있다. 지금 비록 이 땅에 분열과 성냄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다시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그 ‘서로’ 속에 자신도 함께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서로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아물도록 화합의 마음을 열어줄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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