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오디세이] 출가적 일상

법장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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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수행자를 ‘출가자’라고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출가(出家)는 ‘집을 떠나감’을 의미한다. 그래서 과거부터 출가자를 속세를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나 은둔 수행자와 같이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는 출가해 깨달음을 얻은 후 단 한 번도 깊은 산이나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머물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성을 찾아 가르침을 전하고 그들의 일상에서의 수행과 변화를 일깨워 줬다.

 

즉, 우리는 출가라는 개념을 ‘가출(家出)’과 같이 어떤 문제나 불만 등으로 집을 나와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난 것과 같이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출가에 대한 바른 설명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직전의 장면에 상세하게 나타난다. 특수한 힘이나 신비한 능력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이고, 그 삶을 이어주는 것이 어떠한 법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태자 싯다르타는 궁극에 이르러 원인과 결과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 속에서 무엇도 영원불변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에 눈뜨고 ‘연기법(緣起法)’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 직전에 자신의 내면에서 항상 자문하고 타협시키며 나약하게 만들던 또 다른 자아인 마왕 파순을 대면하게 된다. 이 마왕 파순은 다름 아닌 자신이 확고부동하게 존재한다고 믿는 그 생각이다. 그리고 이때 싯다르타는 파순에게 ‘집 짓는 자여, 드디어 그대를 만났도다. 이제 그대 두 분 다시 집을 짓지 못하리’라고 한 뒤 그의 항복을 받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된다.

 

즉, 파순을 지칭한 ‘집 짓는 자’는 언제나 우리 자신을 가꾸고 만들며 그것이 절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바로 ‘나’다. 불교는 ‘무아(無我)’를 말하는 종교로 절대불변의 ‘자신’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내가 분명히 여기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없다는 것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의 가르침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에 대한 부정이다. 만약 절대불변의 자신이 있다면 우리는 늙을 일도, 병들 일도, 죽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노병사를 절대로 피해 갈 수 없다. 그리고 태어난 순간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고 변화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피할 수 없는 숙명적 법칙과 계속해서 변화하는 자신 속에 그 무엇도 고정적이고 영원불변할 수 없다는 가르침이 불교의 ‘무아’다.

 

우리는 오늘 하루도 수많은 사람들과 여러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으로서 존재하지만 그 자신은 매일의 삶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찾지 말고 ‘나’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럼 그 여정의 길에서 나로 인해 나를 변화시키고 나와 함께 맺어진 인연들과 오늘 하루를 참되게 살 것이다.

 

출가적 일상을 살자. 어제와 같겠지라는 실망을 버리고, 내일도 그렇겠지라는 생각을 지우고, 오늘 하루 매 순간 변화하는 자신을 만들고, 그 길에서 스스로 한 걸음을 내디뎌 오늘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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