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찬 새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필자에게는 87세인 홀어머니가 계신다. 주민등록상으로는 87세가 맞는데 어머니는 한 살 줄여 늘 86세라고 하신다. 아직 건강해 서울 큰형님네 집 근처에서 혼자 사신다. 얼마 전에 봄 감기로 힘들다고 하시더니 동네 병원에서 링거를 맞았다. 몸이 힘드니 이틀 상간으로 연거푸 두 번 링거를 맞았는데 그게 화근이 돼 급기야 서울의료원에 입원하셨다. 당장 달려가야 하지만 일요일 예배가 끝나고 예정에 없던 모임이 있어 하루를 건너뛰고 월요일에는 사전에 약속된 일정이 있어 못 갔다. 그 대신 형님과 누나가 어머니 병실에 다녀와서 전화를 줘 미안한 마음을 숨기고 있는 차에 서울 지역번호로 된 전화가 왔다. 대부분 그런 전화는 상업적인 전화라고 생각해 지나치고 마는데 이상하게 받아야 할 것 같아 “여보세요”라고 했더니 어머니의 보호자에게 전화했다고 내일 퇴원하시는데 어머니를 모시러 오라고 한다.
어머니가 많이 회복한 것으로 맘 편하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어머니께 전화했더니 많이 아픈 목소리로 아직 몸이 너무 힘들고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고 하신다. 목에 넘긴 음식물을 속에서 받아주지 않아 하루이틀 더 병원에 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퇴원 약속을 했던 번호로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병원에 더 계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담당 과장님과 의논 후 알려주겠다고 하고 곧장 예정대로 내일 퇴원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어머니를 모시러 병원에 들렀더니 걷기조차 힘들어하셨다. 퇴원 절차를 마치고 수원의 작은 아들, 우리 집으로 가자고 했더니 “며느리가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가도 되냐”고 하신다. 몸 상태나 마음은 가고 싶은데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며느리의 생각을 걱정하셨다. “어머니, 집에서 출발할 때 어머니의 몸 상태를 보고 집으로 모시자고 상의하고 왔어요” 했더니 순순히 차에 타셨다.
문제는 집에서도 아무것도 못 드셨다. 좋아하는 호박죽도 못 드셨고 정성스레 쑨 흰죽도 바라만 볼 뿐 숟가락을 들 마음이 없으셨다. 직감적으로 이 땅에서 어머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18년 전 아버지를 먼저 천국에 보내고 혼자 힘들게 하루하루 사신 어머니가 아버지 곁으로 가실 시간이 가까워진 것 같아 무거운 맘으로 형제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니 오늘도 못 드시면 내일은 병원에 입원하셔야겠어요. 힘드셔도 조금씩 드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녁에 집에 들어갔더니 어머니가 점심 때 호박죽을 반 공기 드셨다고, 저녁에 주무시기 전에도 조금 더 드시고 그렇게 하루이틀 좋아지고, 특별히 며느리가 만든 봄동 겉절이김치가 맛있다며 입맛을 회복했다. 한 주간 집에 계시면서 혼자 일어나 화장실도 가고 끼니마다 식탁에 앉아 정해진 양의 음식을 다 드시고 다시 병원 진료가 약속된 날 어머니를 모시고 담당 과장을 만났더니 아주 반가워하면서 좋아하셨다.
이번에 있었던 어머니의 병원 생활을 통해 환자인 어머니와 보호자인 아들의 바람대로 하루이틀 병원에 더 계셨더라면 정말 어머니와는 이 땅에서 만나지 못했을지도 몰랐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병원의 치료와 더불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가족을 주셨고 몸이 아플 때도, 기쁜 일이 있을 때도 가족과 함께 살아가도록 이 땅을 지으셨음을 깨달았다. 큰 고비 하나를 넘긴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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