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오디세이] ‘한국어능력시험 민영화’ 그림자 아래서

언어는 삶을 가르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낯선 사회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언어는 무기이자 방패이며 때로는 유일한 친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어는 국내에 정착한 이주민들에게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닌 그들의 존엄을 지켜주는 방언이자 내일로 향하는 다리가 돼 왔다. 병원에서 몸 상태를 설명하고, 자녀의 담임교사와 대화를 나누며, 일터에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힘. 이 모든 것이 한국어라는 언어에서 비롯되는데 그 출발점에 한국어능력시험(TOPIK·이하 토픽)이 있다. 이 시험은 한국 사회의 여러 문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해 왔다. 외국인에게는 대학 입시, 취업, 체류 자격 심사, 귀화 등에서 필수 혹은 결정적인 조건이 되는 시험이기에 단지 점수를 매기는 도구가 아니라 삶을 이어가기 위한 생존 보트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 이 중요한 제도가 디지털 전환이라는 이름 아래 민간 기업에 넘겨질 위기에 놓여 있다. 정부는 이 시험의 운영을 네이버 컨소시엄에 맡기려 하며 그 대가로 민간은 10년에 걸쳐 전면 운영과 수익 창출권을 보장받는다. 3천억원이 넘는 사업비는 모두 민간 자본이 부담하는 대신 그 안에서 이윤을 회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다. 하지만 한국어교육에서 가장 대표적이고도 중요한 시험이 공공의 품을 떠날 때 그것은 언어교육 전체가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게 됨을 의미한다. 응시료는 지금보다 두 배 가까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시험 준비를 위한 학습 콘텐츠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에 따라 유료로 제공될 가능성이 크다. 한 사람의 삶이 달린 시험이 이제는 지불 능력에 따라 접근 가능한 공산품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기술이 교육을 대신하고 이윤이 권리를 대신하는 시대.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이 변화는 시험장 너머의 세계, 곧 한국어교육 현장에서 이미 고단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교사들에게도 커다란 그늘을 드리운다. 오늘도 수업을 준비하며 밤 늦게까지 강의안을 다듬는 이들 중 다수는 몇 달짜리 초단기 계약서에 서명한다. 유급휴가는커녕 퇴직금조차 꿈도 꾸기 어렵다. 학생 상담, 평가, 외부 활동 같은 수업 외 활동은 사명감과 봉사정신이란 이름으로 무보수로 강요되고 현재 교육법상의 교원으로도 명시돼 있지 않아 그 어디서도 정식 교원의 신분을 인정받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헌신 위에 한국어의 세계화를 쌓아 올렸지만 그 누더기 같은 노동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 무심했다. 국외를 보면 외국인을 위한 자국어 시험이 공공 기관이나 비영리 단체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TOEFL은 비영리단체가, DELF·DALF는 프랑스 정부가, JLPT는 일본 외무성이, HSK는 중국 교육부가 운영한다. 이들은 언어를 통해 문화를 전파하고 교육의 신뢰를 지키며 국제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토픽이 민간 기업의 독점 체제로 넘겨진다면 그것은 국제적 기준에서나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기본선에서 한참 벗어난 결정이다. 무엇보다 이 시험은 수많은 이주민과 외국인에게 처음으로 만나는 한국이나 다름없다. 시험장에서 느끼는 존중, 결과에 담긴 공정함, 응시 과정의 접근성은 한국 사회에 대한 첫인상으로 각인된다. 그 첫인상이 이윤에 의해 재단된다면 우리는 언어와 교육을 통해 다가가야 할 세계와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토픽이란 단순히 언어 시험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길 위에 서 있는 삶이다. 말은 서로를 이해하게 만들고, 삶을 설명하게 하며, 꿈을 말할 수 있게 해준다. 언어는 고립된 사람을 세상으로 꺼내주는 손길이자 존재의 근거다. 그러니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누군가가 시험 비용 때문에 그 문턱에서 돌아선다면 그것은 단지 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서로의 권리를 함께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시험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언어는 누구의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모두의 것이라고 대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진 것이다. 시험은 문을 열기 위한 것이지 닫기 위한 것이 아니며 언어는 서로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연결하기 위한 것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한국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한국 사회에서 뿌리 내리기를 꿈꾸는 수많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보자. 그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워 가는 과정이 고통이 아닌 기회가 되려면 교육은 언제나 공공의 이름으로 존재해야 한다. 누구든, 어디서든, 조건 없이 배우고 자랄 수 있는 언어 환경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한국어 교육의 미래다. 그 길 위에 토픽이 다시 공공의 이름으로 서야 하는 이유가 있다.

[삶, 오디세이] 시인은 시집을 사지 않는다

시인은 한 권의 시집을 낼 때마다 산고의 고통을 겪는다. 노트북 앞에서 스스로 불행하고 고독한 자가 돼 현상을 들여다본다. 시의 목표는 랭보가 말한 것처럼 “미지의 세계에 도달함이며, 불가시적인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듣는 것”이다. 시인은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을 저주받은 자로 만든다. 이렇게 내면의 세계로 집중해 한 편의 시가 창작된다. 그런데 이런 시집을 정작 시인이 사서 읽지 않는다. 다수의 인천시인협회 회원들이 매년 시집을 발간한다. 작년 연말에는 동주문학상을 수상한 원도이 시인이 ‘토마토 파르티잔’을 출간했고 지난달에는 인시협의 원로 임경자 시인이 81세의 나이에 두 번째 시집 ‘어우렁그네’를 출간했다. 이달에는 이승예 시인이 ‘코드를 잡는 잠’으로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며칠 전 최휘 시인은 문학동네로부터 두 번째 동시집 출간을 약속받았다. 그리고 올해 문화재단 지원금에 선정돼 출간 준비 중인 시인이 여러 명이다. 이토록 힘들게 시집을 출간하는데도 시인들조차 시집을 직접 구매하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출간한 시집을 시인이 무료로 사인해 주는 문화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시인들 스스로 시집은 무료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이런 문화는 시인의 자존감을 크게 떨어뜨린다. 중견인 정진혁 시인이 어느 날 필자에게 “시집에 사인해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보낼 때 시인으로서 자괴감이 든다”며 우울하게 말했다. 산고의 고통을 겪으며 출간한 시집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을 스스로 부끄러워한 것이다. 또 어떤 시인은 정진혁 시인과는 상반되게 아는 시인이 시집을 발간했는데 자기에게 무료로 사인본을 주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불평했다. 필자는 아는 시인이 시집을 발간하면 가능한 한 구매해 읽는다. 특별한 경우는 수십권 구매해 학생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시집을 줄 때는 저자의 사인을 받아 소장 가치가 있도록 한다. 한 권의 시집이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출간되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재 인천시인협회에서는 시집 사서 읽기 운동을 시작했다. 뜻을 함께하는 시인들이 시집 사서 읽기 운동에 깊이 공감하고 앞장선 것이다. 그리고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시집을 사서 읽게끔 서로 독려하고 있다. 올해부터 시행하는 인시협상에 응모하려면 한 해 동안 발간된 회원의 저서 모두를 각각 한 권 이상씩 구입해야 한다. 필수 조건이므로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시협상은 본상인 ‘오늘의시인상’과 작품상인 ‘인천시인상’이 있다. 두 상 모두 작품성을 평가해 회원들에게 수여하므로 명예롭다. 오늘의시인상은 문학적 성과가 높은 시인에게 수여하고 인천시인상은 한 해 동안 발간된 시집을 심사 대상으로 삼는다. 시집 한 권의 가격은 한 끼 식사나 차 한 잔 정도인 대략 1만2천원이다. 시집은 가격에 비해 읽어서 얻는 효용가치가 매우 높다. 한 시인의 시적 세계에서 사고의 지평이 끝없이 넓혀지기 때문이다. 또 고립되고 파편화된 현대인의 초상을 발견할 수 있다. 시 한 편마다 삶을 성찰하는 예술적 아포리즘이 가득하다. 이런데도 시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시집을 사서 읽지 않는다. 문화강국답게 시인 모두 시집을 사서 읽는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다. 한 끼 식사는 몇 시간의 포만감에 그치지만 잘 쓴 한 권의 시집은 평생 정신적 포만감을 준다.

[삶, 오디세이] 파스칼의 팡세 이야기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책 ‘팡세’의 저자인 파스칼의 이름은 부활절이라는 라틴어 ‘파스칼리스’에서 온 말이다. 블레즈 파스칼은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신학자로 과학과 철학, 종교에 걸쳐 수많은 업적을 남긴 천재 사상가다. 16세에 ‘아르키메데스 이래 최고의 업적’이라고 평가된 ‘원추 곡선 시론’을 발표했고 19세에는 세계 최초로 우리가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계산기를 발명했다. 이처럼 분명한 과학적 증명과 이성적 논증을 중시했던 과학자 파스칼의 이름이 부활절과 연관된 것에는 그가 ‘성령의 불’로 표현한 개인적 체험을 통해 합리적 이성과 신적 초월성의 만남을 경험했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 중 하나는 ‘파스칼 내기’다. 파스칼은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을 단순한 믿음의 문제로 보지 않고 확률적 접근을 통해 분석했다. 그는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신을 믿는 것이 무한한 이익을 가져오지만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믿는 데 큰 손해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 논리는 이후 게임 이론과 경제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가 남긴 명언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이 있다. 그는 31세에 예수 그리스도를 극적으로 만나는 신비한 체험을 통해 인간이 참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이성을 초월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회심의 순간을 “확신, 기쁨, 평강,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나는 나 자신을 그분께로부터 분리시켜 왔다. 오 주여, 나를 결코 그분께로부터 분리되지 않게 해주소서”라고 고백했다. 부활절이 있는 4월에 나는 신앙의 본질을 생각하다가 파스칼의 삶에 대해 새로운 통찰력을 갖게 됐다. 사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온전함을 상실한 채 허망한 나그네의 인생을 산다. 인간의 교만한 이성과 병든 지성은 하나님을 만나야 겸손해지고 온전함을 회복할 수 있다. 부활절을 의미하는 이름을 가진 파스칼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만난 후 자신의 모든 것을 소외된 이웃과 나누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남은 생애를 살았다. 그리고 그 시대 무신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팡세’를 유작으로 남기고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시대가 다양성을 중시하고 개인주의가 팽배한 결과 절대가치와 기준이 모호해지고 혼란해졌다. 그러기에 타협하지 않는 영원불멸의 진리가 누구에게도 필요하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 지인이 얼마 전 미국 하원의회 개원식 기도를 부탁받았던 이야기를 나눴다. 하원의회 사무국에서 기도문에 대한 지침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미국에는 많은 종교가 있기 때문에 특정 종교로 기도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못한다면 굳이 기도 순서를 맡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기도의 마지막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다고 한다. 생방송으로 전국에 전파된 개원식 후 많은 전화와 손편지와 이메일을 받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느냐고 질책하거나 문제 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근래 상원에 기도 순서를 맡아 또 한번 갔는데 이번에는 작심하고 ‘우리의 구원자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기도했더니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큰 소리로 아멘하면서 함께 기도했고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개인과 국가의 가치관과 역사는 분명해진다.

[삶, 오디세이] 다시 우리 손으로 ‘봄’을

유난히 길고 눈도 많이 내린 겨울이 이제야 지나가나 했던 3월, 대한민국을 화마가 집어삼켰다. 화마가 토해내는 불길이 전국으로 퍼져 우리의 일상과 생계를 무너뜨려 버렸다. 특히 이번 화재의 원인이 사람의 안일한 생각과 부주의한 행동이라는 사실이 더욱 우리를 아프고 안타깝게 만든다. 사람에서 시작한 불길이 자연으로 넘어가 다시 사람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 대재앙이 돼 돌아온 것이다. 예부터 사람이 살아가며 반드시 주의하고 피해야 하는 세 가지 재앙을 ‘삼재(三災)’라 불렀다. 민간에서는 인생의 9년 주기마다 이 삼재가 찾아온다고 해 지금도 매년 초가 되면 자신의 나이에 삼재가 들었는지를 확인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풍습에서 가장 조심하던 것 중의 하나다. 삼재는 물에 의한 수재(水災), 바람에 의한 풍재(風災), 불에 의한 화재(火災)로 이 중 단 한 가지라도 겪지 않도록 매사에 주의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유례없는 괴물 산불은 단순한 화재의 불을 넘어 삼재 그 자체가 돼 버렸다. 비가 오지 않는 수재로 곳곳에 불길이 번졌고 태풍과 같은 바람이 부는 풍재로 불길이 가라앉지 않았으며 불길이 화마가 돼 모든 것을 집어삼킨 화재를 겪었다. 불교에서는 삼재와 더불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하는 속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인재(人災)를 더욱 주의시키는데 이번 화마의 삼재는 그 원인이 사람에게 있어 삼재의 모든 것과 인재까지 더해져 차마 우리의 힘으로 버틸 수 없는 대재앙이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일어서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이 하루를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의 손에서 시작한 화마와 삼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보조 지눌 스님의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딛고 일어나라’는 가르침과 같이 그 터전에서 넘어진 우리와 이웃과 인연들의 손을 잡아 그곳에서 일으켜줘야 한다. 비록 사람에 의해 일어난 화마와 삼재이지만 지금은 그것을 탓하고 원망만 하기에는 너무 힘든 순간이다. 오히려 우리 곳곳을 살펴보고 그분들의 손을 잡아주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불교에서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것은 깨달음이지만 삶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화합’이다. 화합은 단순히 함께하는 의미를 넘어 화목하게 함께하는 것이다. 다행히 피해가 없던 우리의 안심에 감사하고, 이제 그것을 도움을 드려야 하는 분들과 오늘의 인연에 전해줘야 한다. 화목하다는 것은 서로에게 정다운 것을 말한다. 나만이 아닌 우리로 있을 때 화목과 화합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으로 인해 힘들어진 이 봄, 다시 우리의 손으로 봄을 불러와야 한다. 우리의 봄이 모두에게 따스함을 줄 수 있도록 오늘 하루 가족과 이웃과 인연에 우리의 손길을 전해주자.

[삶, 오디세이] ‘페미니즘 혐오’ 사회와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소설 ‘작은 아씨들’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품으로 이 소설이 등장한 시기에는 보기 드문 여성서사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는 이유다. 원작 소설은 가난한 마치(March) 가문의 자매들이 백인 남성 중심의 보수적 사회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이 점에서 문화비평 영역에서는 ‘작은 아씨들’을 페미니즘 비평이론의 관점으로 해석하곤 한다. 그렇다. 적어도 문화비평 분야에서 페미니즘은 특정 대상을 혐오하거나 조롱하기 위함이 아닌 그런 대상을 재해석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그래 왔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혐오의 단어가 됐고, 이는 그러한 경향의 사람들을 ‘페미’라고 부르며 낙인을 찍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는 아무래도 페미니즘을 단순히 특정 경향의 집단으로 오해하고 정치적으로 악용한 데서 비롯된 것 같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페미라는 조롱의 표현으로 전락하기까지 여러 과정과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톨레랑스를 성찰하고 인식적 탄력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바는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대중이 페미니즘을 단순히 남성 혐오 정도로만 인식하는 것과 달리 문화비평 이론에서 정리하는 페미니즘의 사적 전개 과정은 복잡다단하다. 19세기부터 1950년대까지의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참정권, 아프리카계 영국·미국인의 권리 신장 등을 주도한 1세대 페미니즘의 성격을 띤다. 즉, 자유주의적 여성주의를 표방한 것이다. 이후 페미니즘은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노동 문제에 입각한 급진적 성격으로 전개되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좀 더 다양한 계층과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의 권리운동과도 결탁해 포스트모던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 같은 페미니즘 이론은 대중문화 속에서 ‘타자화’된 소수자들에게 우선 주목한다. 즉, 가부장적 전통사회의 남성과 같은 특권층이 주체화된 문화 속에서 여성 같은 소수자가 부당하지만 자연스럽게 객체화되는 고정성과 보편성을 비판하며, 배경으로 밀린 그들을 중심부로 소환해 목소리를 돌려주고 그것을 전경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흔히 대중문화 속에 재현되는 소수자의 이미지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 또한 소수자성을 또 다른 방식으로 개념화한다는 점에서 큰 한계가 있었고 이후 수정된 혹은 새롭게 정의된 페미니즘에서는 젠더적 정체성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한다는 점에 더 큰 주목을 하고 있다. 일례로 몇 해 전 방영된 한국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이 드라마에서는 단순히 여성 해방이나 근로자성, 소수자와 타자와의 연대를 이야기하는 데 머물러 있지 않다. 그보다는 매 순간 변모하고 진전하는 여성 캐릭터들 그리고 그들의 연대와 연대의 가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돈, 섹스, 권력이라는 인류의 원죄적 속성과 맞물리면서 결과적으로는 단순히 여성의 이야기로 젠더 특수화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구원에 대한 문제로 보편화된다. 이렇게 페미니즘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고, 그것이 문화계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 끼낀 영향력은 잠잠하면서도 파워풀하다. 그것은 페미니즘이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곧 틀렸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용인하는 사회를 지향하고, 그것을 통해 한 사회문화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단순히 급진적 여성주의나 남성 혐오 정도로만 폄훼되는 현상은 다소 위험하고 그러한 점에서 세대를 거듭하며 발전할 수 있었던 서양의 페미니즘과 달리 발전 동력을 압제당한 한국 페미니즘의 흐름은 매우 안타깝다.

[삶, 오디세이] 박홍이산(朴弘移山)

‘열자’의 탕문 편에 중국의 유명한 ‘우공이산’이라는 우화가 나온다. 우공이산은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우공은 90세 가까운 나이에 사람의 왕래를 불편하게 하는 태형산과 왕옥산을 옮기려 시도한다. 이에 감동한 옥황상제가 산을 옮겨줬다는 내용이다. 이로부터 우공이산은 사람이란 꾸준히 노력하면 산과 바다라도 옮길 수 있다는 의미가 됐다. 필자는 현대판 우공이산인 박홍 작가를 알고 있다. 선생은 8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누나 밑에서 자라면서 작가를 꿈꾸었다. 그 후 그는 2025년 83세의 나이에 ‘빗물 속에 영혼이 녹아 있다면’이라는 장편소설을 펴냈다. 박홍 선생이 노벨 문학상을 꿈꾸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를 읽은 후다. 파스테르나크는 본래 시인이었다. 따라서 그의 소설 문장은 시적 표현으로 묘사력이 풍부하다. 혹자는 닥터 지바고를 시소설로 보기도 한다. 파스테르나크는 소설을 모스크바 문예지에 발표하려 했지만 거부당한다. 어쩔 수 없이 타국인 이탈리아에서 출판한 책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다. 그는 혁명 과정에서 죽은 사람들에 대한 속죄 의식으로 소설을 썼다. 이 때문에 작가동맹에서 제명되고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다. 반골 기질이 강했던 박홍 선생은 중학생 때 파스테르나크를 인생의 롤모델로 삼는다. 노벨 문학상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선생은 먼저 파스테르나크처럼 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나라 시단의 빛나는 존재였던 청록파 시인들로부터 시적 감각을 익혔다. 그 결과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의 시에서 자연의 본성을 깊이 깨닫고 인간 존재의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그는 시 공부를 통해 세상을 따뜻한 감성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냉철한 이성으로 저항하기 시작한다. 이런 노력으로 선생은 2010년 시 전문지 ‘시안’으로 등단한다. 등단 5년 후인 2015년 선생은 나이 73세에 첫 시집 ‘나의 옥상 와이너리’를 출간했다. 선생의 시 세계는 청록파의 서정성과 세상을 향한 저항의식으로 가득하다. 이처럼 선생은 60년이 지나 자신의 꿈에 다가섰다. 선생의 소설가가 되기 위한 과정은 더욱더 치열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소설에 운명을 건 사람처럼 사고했고 행동했다. 그는 경희대 화학과를 3학년 때 휴학한다. 그리고 천호동에서 배추 장사를 하며 세상과 만난다. 이 모든 과정이 소설 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했다. 선생은 직업도 소설 작업을 고려해 신중히 선택했다. 그렇게 고른 직업이 소설 쓰기에 최적화된 2함대의 군무원이었다. 선생은 신혼여행도 포기하고 소설을 썼다. 이때 썼던 소설이 권위 있는 문예지에 연속 최종심에 올랐다. 그러나 그 후 신춘문예와 문예지에 계속 투고하는데도 낙선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선생이 세상과 타협했다면 일찍이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그곳에선 대부분의 문예지가 추천제였기 때문이다. 박홍 선생이 드디어 작가의 꿈을 이뤘다. 83세에 자전적 성장 소설인 ‘빗물 속에 영혼이 녹아 있다면’을 출간했다. 선생이 시인과 소설가의 꿈을 이루는 과정이 놀랍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정신과 문학으로 삶의 전 과정을 관통한 시간이 경이롭다. 선생은 노벨 문학상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목표를 세우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빛난다. 선생은 지금도 실존주의적 존재의 본질에 치열한 질문을 던지며 글을 쓴다. 이러한 노력이 계속되기 때문에 노벨 문학상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필자는 지금 여기 ‘열자’의 탕문 편에 나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을 박홍이산(朴弘移山)이라고 바꿔 읽는다.

[삶, 오디세이] 어머니의 병원 생활

필자에게는 87세인 홀어머니가 계신다. 주민등록상으로는 87세가 맞는데 어머니는 한 살 줄여 늘 86세라고 하신다. 아직 건강해 서울 큰형님네 집 근처에서 혼자 사신다. 얼마 전에 봄 감기로 힘들다고 하시더니 동네 병원에서 링거를 맞았다. 몸이 힘드니 이틀 상간으로 연거푸 두 번 링거를 맞았는데 그게 화근이 돼 급기야 서울의료원에 입원하셨다. 당장 달려가야 하지만 일요일 예배가 끝나고 예정에 없던 모임이 있어 하루를 건너뛰고 월요일에는 사전에 약속된 일정이 있어 못 갔다. 그 대신 형님과 누나가 어머니 병실에 다녀와서 전화를 줘 미안한 마음을 숨기고 있는 차에 서울 지역번호로 된 전화가 왔다. 대부분 그런 전화는 상업적인 전화라고 생각해 지나치고 마는데 이상하게 받아야 할 것 같아 “여보세요”라고 했더니 어머니의 보호자에게 전화했다고 내일 퇴원하시는데 어머니를 모시러 오라고 한다. 어머니가 많이 회복한 것으로 맘 편하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어머니께 전화했더니 많이 아픈 목소리로 아직 몸이 너무 힘들고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고 하신다. 목에 넘긴 음식물을 속에서 받아주지 않아 하루이틀 더 병원에 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퇴원 약속을 했던 번호로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병원에 더 계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담당 과장님과 의논 후 알려주겠다고 하고 곧장 예정대로 내일 퇴원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어머니를 모시러 병원에 들렀더니 걷기조차 힘들어하셨다. 퇴원 절차를 마치고 수원의 작은 아들, 우리 집으로 가자고 했더니 “며느리가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가도 되냐”고 하신다. 몸 상태나 마음은 가고 싶은데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며느리의 생각을 걱정하셨다. “어머니, 집에서 출발할 때 어머니의 몸 상태를 보고 집으로 모시자고 상의하고 왔어요” 했더니 순순히 차에 타셨다. 문제는 집에서도 아무것도 못 드셨다. 좋아하는 호박죽도 못 드셨고 정성스레 쑨 흰죽도 바라만 볼 뿐 숟가락을 들 마음이 없으셨다. 직감적으로 이 땅에서 어머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18년 전 아버지를 먼저 천국에 보내고 혼자 힘들게 하루하루 사신 어머니가 아버지 곁으로 가실 시간이 가까워진 것 같아 무거운 맘으로 형제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니 오늘도 못 드시면 내일은 병원에 입원하셔야겠어요. 힘드셔도 조금씩 드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녁에 집에 들어갔더니 어머니가 점심 때 호박죽을 반 공기 드셨다고, 저녁에 주무시기 전에도 조금 더 드시고 그렇게 하루이틀 좋아지고, 특별히 며느리가 만든 봄동 겉절이김치가 맛있다며 입맛을 회복했다. 한 주간 집에 계시면서 혼자 일어나 화장실도 가고 끼니마다 식탁에 앉아 정해진 양의 음식을 다 드시고 다시 병원 진료가 약속된 날 어머니를 모시고 담당 과장을 만났더니 아주 반가워하면서 좋아하셨다. 이번에 있었던 어머니의 병원 생활을 통해 환자인 어머니와 보호자인 아들의 바람대로 하루이틀 병원에 더 계셨더라면 정말 어머니와는 이 땅에서 만나지 못했을지도 몰랐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병원의 치료와 더불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가족을 주셨고 몸이 아플 때도, 기쁜 일이 있을 때도 가족과 함께 살아가도록 이 땅을 지으셨음을 깨달았다. 큰 고비 하나를 넘긴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삶, 오디세이] 출가적 일상

불교의 수행자를 ‘출가자’라고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출가(出家)는 ‘집을 떠나감’을 의미한다. 그래서 과거부터 출가자를 속세를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나 은둔 수행자와 같이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는 출가해 깨달음을 얻은 후 단 한 번도 깊은 산이나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머물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성을 찾아 가르침을 전하고 그들의 일상에서의 수행과 변화를 일깨워 줬다. 즉, 우리는 출가라는 개념을 ‘가출(家出)’과 같이 어떤 문제나 불만 등으로 집을 나와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난 것과 같이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출가에 대한 바른 설명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직전의 장면에 상세하게 나타난다. 특수한 힘이나 신비한 능력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이고, 그 삶을 이어주는 것이 어떠한 법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태자 싯다르타는 궁극에 이르러 원인과 결과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 속에서 무엇도 영원불변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에 눈뜨고 ‘연기법(緣起法)’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 직전에 자신의 내면에서 항상 자문하고 타협시키며 나약하게 만들던 또 다른 자아인 마왕 파순을 대면하게 된다. 이 마왕 파순은 다름 아닌 자신이 확고부동하게 존재한다고 믿는 그 생각이다. 그리고 이때 싯다르타는 파순에게 ‘집 짓는 자여, 드디어 그대를 만났도다. 이제 그대 두 분 다시 집을 짓지 못하리’라고 한 뒤 그의 항복을 받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된다. 즉, 파순을 지칭한 ‘집 짓는 자’는 언제나 우리 자신을 가꾸고 만들며 그것이 절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바로 ‘나’다. 불교는 ‘무아(無我)’를 말하는 종교로 절대불변의 ‘자신’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내가 분명히 여기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없다는 것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의 가르침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에 대한 부정이다. 만약 절대불변의 자신이 있다면 우리는 늙을 일도, 병들 일도, 죽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노병사를 절대로 피해 갈 수 없다. 그리고 태어난 순간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고 변화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피할 수 없는 숙명적 법칙과 계속해서 변화하는 자신 속에 그 무엇도 고정적이고 영원불변할 수 없다는 가르침이 불교의 ‘무아’다. 우리는 오늘 하루도 수많은 사람들과 여러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으로서 존재하지만 그 자신은 매일의 삶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찾지 말고 ‘나’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럼 그 여정의 길에서 나로 인해 나를 변화시키고 나와 함께 맺어진 인연들과 오늘 하루를 참되게 살 것이다. 출가적 일상을 살자. 어제와 같겠지라는 실망을 버리고, 내일도 그렇겠지라는 생각을 지우고, 오늘 하루 매 순간 변화하는 자신을 만들고, 그 길에서 스스로 한 걸음을 내디뎌 오늘로 나아가자.

[삶, 오디세이] 또다시 찾아온 봄과 삶의 지혜

여전히 쌀쌀해 춘삼월에 걸맞은 따뜻한 기운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확실히 봄이 좀 더 가까이 왔음은 느낄 수 있다. 영하로 내려갔던 기온이 영상으로 올랐고 간혹 눈으로 둔갑하기도 하지만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데다 그 비는 겨울 동안 건조하게 얼어 있던 대지를 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맘때 거리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옅은 흙냄새가 풍긴다. 물론 그것이 완연한 봄기운으로 바뀌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러다 순식간에 식물들이 싹을 틔우고 거기서 꽃이 피어나고 그럴 테다. 봄은 그렇게 대자연의 큰 흐름 속에서 우리들의 곁을 맴돌며 기쁨과 환희를 선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긴 시련의 끝에 좋은 날을 맞이하거나 개인적인 경사가 연이을 경우 봄이 왔다는 표현으로 그 상황을 비유하곤 한다. 대표적인 예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이상화 시인의 작품으로 이 시에는 나라는 빼앗겼더라도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봄만은 압제당할 수 없다는 저항의식과 당장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비애, 독립을 향한 열망 등이 혼재돼 있다. 그만큼 이 시에서 ‘봄’이라는 시어가 그것을 읽는 독자들에게 던지는 의미가 큰 것이다. 그런 봄이 2025년에도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지만 마음이 여전히 겨울처럼 얼어 있는 사람이 많을 테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걱정하며 주시하고 있을 정치적 혼란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고 심지어 그것은 매순간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져 더 큰 혼란을 야기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거기다 경제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서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 지 오래고, 이런 가운데 미국 대선 이후 국제 정세 또한 급변해 세계 도처에서 심상치 않은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TV나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 보는 지금의 세상에서는 봄이라고는 느낄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세상을 보는 눈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봐서는 절대로 길러질 수 없고 내가 보기 싫은 것도 봐야 균형 잡힌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주로 듣는 음악만 따로 모아 놓은 뮤직 플레이 리스트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플레이 리스트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번 신곡을 채워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기존에 만들어 놓은 플레이 리스트를 매번 똑같이 듣는다면 우리가 듣고 느끼는 음악은 딱 거기까지로 한정돼 음악의 새로운 흐름을 체감하지 못하게 된다. 다시 봄 이야기로 넘어가면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때일수록 봄을 느끼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대중매체의 각종 소식에 무감각해지라는 것이 아니라 잠시라도 의도적으로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지금 그 주변으로 눈을 돌려 자연을 느껴 보라는 것이다. 자연은 내가 만들어 놓은 뮤직 플레이 리스트처럼 고정돼 있지 않고 매순간 역동적으로 변모하기에 그것을 관찰하면서 얻는 삶의 지혜는 생각보다 크고 깊으며 넓다. 자연은 인간의 욕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늘 거기에 존재하지만 매순간 변화무쌍하기에 우리 생활 속 곳곳의 자연을 관찰하다 보면 우주의 놀랍고도 경이로운 섭리를 깨닫게 된다. 그러한 자연 앞에서는 이 세상을 살다 가는 일개의 유한한 인간으로서 겸허해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가 떠난 세상에도 자연은 여전히 거기에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봄은 그저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대자연에 다가갈 때 비로소 관찰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오늘부터 잠시 오가는 길에서라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앙상하게 서 있던 가로수나 식물들 혹은 내가 밟는 땅의 흙을 관찰해 보자. 그럼 이미 그들 속에서 움트고 있는 봄을 보게 될 것이며 더불어 얼어 있던 마음도 분명 한결 따뜻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연을 관찰하면서 과연 우리 사회에서는 무엇이 진정한 봄이고 그것이 과연 우리들에게 실제로 왔는지를 좀 더 깊이 고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삶, 오디세이] 시 합평의 원칙

올해부터 인천시인협회에서 시 합평을 하기로 계획했다. 시 합평은 두 종류로 진행될 예정이다. 하나는 등단한 회원을 위한 시 합평이고 또 하나는 준회원인 시인 지망생을 위한 시 합평이다. 어느 것이든 시 합평은 잘못하면 서로에게 상처만 준다. 이뿐만 아니라 합평했던 타인의 작품을 표절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합평은 시 공부를 하는 데 꼭 필요하다. 인천시인협회는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 합평을 통해 모두가 성장하는 방식을 찾겠다. 올바른 합평의 원칙을 만들어 참여자 모두 K-문학 장에서 도약하게 할 것이다. 필자가 처음 경험했던 합평은 20대 시절이었다. 모두가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합평은 할 때마다 서로에게 상처만 줬다. 문청들은 타인의 작품에서 단점을 찾기에 급급했다. 잘된 점은 말하지 않았다. 지금도 필자의 머릿속엔 모두에게 상처만 주는 합평으로 남아 있다. 얼마 전 기성 시인들의 시 합평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오랜만의 시 합평이라 기대가 컸다. 하지만 시작되자 필자가 경험한 20대 때의 합평이 재연됐다. 그곳에 모인 시인들은 칭찬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직 문제점 위주로만 합평했다. 이러면 서로 감정 대립이 된다. 필자는 다른 시인들의 작품에서 장점을 찾아내 의견을 개진했다. 합평은 장단점을 말해야 한다. 그래야 시적 아노미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대학의 문예창작과에서도 전 학년에 걸쳐 학생들은 합평 강의를 듣는다. 필자는 대학 문예창작과에서 시창작연습, 시창작과퇴고, 현대시강독, 문학과신화 등을 오랫동안 가르쳤다. 이 중 시창작연습과 시창작과퇴고는 학생들이 제출한 작품을 합평하고 마지막에 교수가 피드백을 주는 방식의 강의였다. 누군가는 상대의 작품에서 단점만 찾아내고 누군가는 장점과 함께 단점을 찾는다. 그리고 다수의 학생은 자기 작품이 혹평받아 상처를 입는다. 필자는 가능한 한 피드백을 줄 때 단점보다는 장점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를 언급했다. 어떤 학생은 상처 입은 것을 강의 평가로 드러냈다. 지나치게 혹평을 한 학생을 막지 않은 책임을 필자에게 물은 것이다. 또 평가 압박 때문에 표절한 작품으로 합평한 학생도 생겨났다. 이 학생의 경우는 징계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휴학했다. 합평이 참석자 모두를 만족하게 한 예도 있다. 필자가 모 문학 단체에서 소모임장을 맡았을 때다. 그 단체의 소모임장이라는 직책은 합평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우선 작품을 회원들이 자유롭게 평가하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소모임장이 총평하는 방식이었다. 필자는 회원들의 작품에서 장점을 보려 노력했다. 우선 대상 작품에서 잘된 점을 찾아냈다. 잘된 부분을 이론적 근거를 대며 말해줬다. 합평 말미에 퇴고했으면 하는 부분을 조언했다. 더불어 지적한 단점도 필자가 잘못 본 것일 수 있다고 첨언한다. 그러자 모두가 만족하고 합평하는 날을 기다렸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란 없다. 다만 설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절대적인 진리인 것처럼 오만한 태도로 작품을 혹평하면 안 된다. 합평은 시인들의 시적 합목적성에 맞게 원칙을 세워 진행해야 한다.

[삶, 오디세이] 내게 맞는 교회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부지런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게으르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도록 쇳덩어리를 가만히 두면 녹이 생기고, 땅을 가만히 두면 엉겅퀴가 자라고, 사람도 때가 되면 머리를 깎아야 하고 손톱을 손질하도록 창조하셨다. 나는 두 달에 한 번쯤 머리를 깎는다. 우리 동네는 시장 안에 남자 전용 미용실이 있다. 오랫동안 단골손님으로 이발을 했는데 어느 날 주인이 바뀌었다. 머리를 깎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친하게 지냈는데 아는 언니가 호주에 있다고 했던 적이 있는데 호주로 이민을 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부터 낯선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기고 인사말을 시작으로 대화가 되지 않는 겉도는 말을 하면서 아직 친해지지 않은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일 예배를 앞둔 지난 주말, 때가 돼 단골 미용실을 찾았는데 문을 열기도 전에 밖에서 봤더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 뒤돌아 왔다. 마침 30년 넘게 운전하며 다니던 골목길에 보이지 않던 보조간판을 본 기억이 났다. ‘남자 전용 이발 구천 원’ 집으로 오던 발걸음을 돌려 새로운 미용실을 들어갔다. 연세 많은 아주머니가 힐끔 쳐다보며 자리에 앉아 기다리라고 하며 나 같은 아저씨 머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내 차례가 됐다. “어떻게 깎아 드릴까요”라는 물음에 장난기 섞인 대답으로 “잘~ 깎아 주세요”라고 했더니 “뻗치는 머리라서 조금 다듬어 드릴게요”라면서 이미 현란한 손놀림의 가위질이 시작됐다. “조금만 다듬어 준다”는 말이 걱정돼 “그래도 한 달이나 두 달 후에 미용실에 올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수줍은 요구를 하나 더했더니 깎고 있던 머리는 더 짧아지기 시작했고 시간이 길어지게 됐다. 처음 만난 손님에게 온 신경을 써서 집중하고 있는 미용사에게 과감하고 정확하게 요구사항을 말씀드렸다. “저는 목사입니다. 잘 부탁해요.” 내가 목사라는 말에 잠시 멈추고 놀란 표정으로 어느 교회이며, 어디에 있는 교회인지, 교인은 얼마나 모이는지, 얼마나 오래됐는지.... 준비하고 있었듯이 질문을 쏟아냈다. 단골 미용실에서도 있었던 질문들이었고, 대부분 사람이 나를 처음 만나 나누는 대화이기에 스스럼없이 대답했더니 본인 이야기를 맨 나중에 했다. 자신도 예전에 교회에 다녔는데 쉬다가 다시 교회를 찾고 있다고. 그리고 주일 예배에 한 번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 머리를 다 깎을 즈음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교회는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 안 됩니다. 본인에게 맞는 교회를 찾아 꾸준히 교회 생활을 해야 믿음이 자라고 유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정말 주일에 일찍 교회에 와서 맨 뒷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갔다. 교회 뒤에 서서 성도들을 관리하는 아내에게 다음 주에 또 오겠다고 하고 갔다고 한다. 교회를 찾고 있는 그분에게 우리 교회가 잘 맞는 교회가 됐으면 좋겠다. 나는 그분과 약속을 했다. “뻗치는 머리지만 잘 다듬으면 멋집니다. 주일에 교회에 오셔서 확인하세요.” 그분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갔을까. 내 머리만 바라보고 갔을까.

[삶, 오디세이] 이 땅에서 일어나자

연말부터 새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다툼과 분열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일상 속에서 이야기를 나눠도 서로의 의견이나 성향이 다른 것은 아닌지 조심하고, 표현이나 말투도 이전보다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지금은 많은 생각과 오해가 뒤섞인 나머지 다름을 용서하지 않고 그것을 화로써 표출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탐진치(貪瞋癡)라는 삼독심(三毒心)이 있다. ‘탐’은 탐심과 욕심으로 내가 더 가져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는 집착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진’의 화를 내고 더 나아가 ‘치’의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즉, 화와 어리석은 행동의 토대에는 욕심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욕심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더 가지려는 마음과 더불어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심도 포함된다. 즉,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을 따라야 한다거나 자신과 같아야만 인정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우리는 같은 나라에 태어나 같은 한글을 사용하고, 같은 피부색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그것들로 인해 모두가 똑같다고 정의할 수 없다. 모두가 다른 삶을 사는 세상에서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모든 것에 충돌할 수밖에 없고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오히려 자신이 가장 다른 존재일지도 모른다. ‘화합’이라는 말은 끌어당겨 합치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받아들이고 안아줘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다르기에 화합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작은 지구 속의 아주 작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한두 명만 거쳐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까운 관계 속에 있고 지금도 그들 옆에서 내가 함께하고 있다. 지금은 화가 너무나 끓어올라 서로를 밀어내고 분별하고 있지만 우리는 결국 여기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미 절반이 잘려진 나라에서 다시 서로를 인정하지 못해 잘라낸다면 이 작디작은 나라에서 결국 자신의 설 곳이 없어질 것이다. 끓어오른 화는 언젠가 식을 것이고 밀어냈던 그들은 언젠가 우리와 함께 이곳에서 살 것이다. 서로에 대한 상처는 고스란히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지눌 스님의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人因地而倒者, 因地而起)’는 가르침이 있다. 지금 비록 이 땅에 분열과 성냄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다시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그 ‘서로’ 속에 자신도 함께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서로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아물도록 화합의 마음을 열어줄 지금이다.

[삶, 오디세이] 차별과 폭력의 발아 순간

돌아보면 10대와 20대에는 유독 한국 밖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 어느 옷가게에서 옷을 구매하고 공짜로 받은 아이비리그 달력이 필자에게는 그렇게 소중했다. 그 달력에는 네이비색 바탕에 미국을 대표하는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풍경이 월별로 펼쳐져 있었다. 어느 달에는 초록색 담쟁이 넝쿨이 고풍스러운 빨간 벽돌의 건물을 타고 올라가는 장면이 클로즈업돼 있었는데 그 장면만으로도 막연한 위엄이 느껴졌다. 그때 그 달력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다짐 혹은 소원 같은 게 박혔던 것 같다. 언젠가는 나도 저곳에 가리라고. 물론 그것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나 자신이 그러한 다짐이나 소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잊고 한국에서 평범한 대학원생으로 살던 어느 날, 박사과정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미국의 한 대학에 펠로우십(일종의 교환연구원 장학)을 지원받게 됐다. 비행기삯만 지불하면 현지에서 생활비를 받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변 대학의 연구자들과 함께 공동으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지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무엇보다 미국 체류 기간에 거주할 수 있는 집 또한 이미 저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 상황이었기에 나로서는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꿈꾸던 것이 현실에서 이뤄진 것이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이라 인천국제공항에서 애틀랜타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순간까지도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만큼 불안감도 컸지만 기대감만 못했다. 그렇게 부푼 기대를 안고 출발한 미국 생활은 적어도 초반에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내가 출근할 학교의 건물은 중학교 때의 그 아이비리그 대학 달력 속 건물과 거의 차이가 없었고 교직원들 또한 하나같이 친절했을 뿐 아니라 거주지의 이웃마저 갑작스럽게 이사온 이방인을 열린 마음으로 대해 줬다. 그런데 모든 일이 그렇듯이 우리 삶에는 늘 좋은 일만 있지는 않다. 나의 미국 생활에서 그것은, 정말이지 이것이 문화 이론서에서만 봤던 문화 적응의 허니문 단계임을 실감하며 미국 생활에 한껏 취해 있을 때쯤 자동차 사고처럼 다가왔다. 거주지 근처에는 마트가 없어 제대로 된 식자재를 사려면 30분쯤 걸어 큰 슈퍼마켓으로 가야 했는데 그날은 오랜만에 그곳으로 가는 날이라 이것저것 사다 보니 비닐봉투에 든 짐이 여러 개가 돼 버렸다. 참고로 미국은 워낙 땅 덩어리가 넓은 나라라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인구가 많아서인지 뉴욕 같은 대도시가 아니면 대중교통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 필자가 거주한 애틀랜타 교외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슈퍼마켓 근처에서 버스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펠로우십 연구원 주제에 한번 타면 기본적으로 100달러는 족히 깨지는 택시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짐이 든 비닐 봉지 여러 개를 양 손목에 걸치고 두 손으로 잡고 하면서 낑낑대며 집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도로를 가로지르던 차량 한 대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안에 타고 있던 청년들이 창문을 내리려고 했다. 내심 내게 도움을 주려고 그러나 싶었지만 정작 돌아온 것은 할리우드 영화로만 봤을 뿐 내 생애 결코 들어본 적도 없는 욕설과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망언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그렇게 내게 조롱 섞인 차별의 말만 남기고 총기 사건 등의 물리적 폭력은 없이 순식간에 떠났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들은 나를 도대체 얼마나 안다고 저런 저주를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퍼부을까. 자신들이 차별주의자라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그리고 본인들이 방금 내게 한 것이 범죄에 해당하는 폭력인 것은 인지하고 있을까 등등의 여러 생각이 오갔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 끝에는 내 안에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분노만 남아 있음을 봤다. 그것은 내가 조금만 덜 도덕적이었다면 살기로 이어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 차별과 폭력은 누군가의 일상과 행복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며, 그 사람이 다시는 그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렇기에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면 또 다른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으며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그 광기의 사슬은 절대로 끊어지지 않고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되풀이된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그 옛날 나의 미국 생활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지금이라도 우리 각자의 언동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성찰해야만 또 다른 차별과 폭력의 발아 순간을 막을 수 있다.

[삶, 오디세이] 주례사 비평은 잘못인가

문학평론의 위기를 말하는 것 중 하나가 주례사 비평이다. 문학평론가는 작품을 평할 때 엄격하게 장단점을 말해야 올바른 평론이 된다. 그런데 비평이 마치 결혼식 주례사처럼 듣기 좋은 말만 늘어 놓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비평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문학평론을 하는 사람들은 현장 비평가다. 문학평론가는 매일 생산되는 수많은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현실적 가치에 질문을 던져보는 사람이다. 비평은 텍스트들이 현실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분석하고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문단에서는 평론가들이 이러한 임무를 저버리고 지나치게 칭찬만 해 잘못을 저지른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회자되는 주례사 비평은 과연 잘못인가. 어느 날 몇 명의 문학평론가가 인천의 한 음식점에 마주 앉았다. 젊은 평론가 M이 시집 해설을 쓰고 난 후 일어난 일화를 들려줬다. M평론가는 시집 해설을 의뢰받고 평론가의 자의식으로 솔직하게 해설을 썼다고 한다. 요즘 문제시되는 주례사 비평이 아닌 시의 작품성 위주로 평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를 분석하니 시집은 혹평이 됐다. 그 후 시집의 저자인 시인에게 전화상으로 M평론가는 상스러운 욕을 먹었다. 이 젊은 평론가는 정말 주례사 비평을 싫어했다. 또 다른 예도 들려줬다. 출판사로부터 의뢰받은 시집 해설을 쓸 때의 일이었다고 한다. 이 역시 문제점 위주로 시를 평가했다. 그리고 시집 출판기념식에서 저자인 시인으로부터 M평론가는 멱살을 잡히고 육두문자를 들어야 했다. M은 평론가로서 자의식이 확실한 자신을 거듭 강조했다. 현재는 폐간을 한 모 권위지에서는 매호 작가 특집 코너가 있었다. 문예지에서 그 호에 특집으로 다룰 작가는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였다. 특집 대상의 소설가는 평론가의 평가에 기대를 많이 했다. 당연히 우리 시대를 대표할 만한 소설가였기 때문에 긍정적인 평가를 기대하며 문예지의 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특집의 평론을 맡은 B평론가는 해당 작가의 작품세계를 혹평했다. 특집 대상의 작가는 한 번도 받아보지 않은 혹평을 받고 큰 상처를 받았다. 그는 늦은 밤 만취해 울분에 찬 목소리로 문예지 편집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절필 선언을 하고 말았다. 문예지의 특집이 되는 작가들은 평론가들로부터 빛나는 조명을 받는다. 문학 장 안에서의 문예지와 평론가 그리고 작가의 카르텔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특집의 대상이 되면 작가는 문단에서 지위가 상승한다. 그런데 B평론가의 혹평이 한 작가의 자존감을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만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두 명의 평론가는 자의식을 갖고 해당 작품을 평가했다. 문단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주례사 비평을 하지 않았다. 한국 문학의 발전을 위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두 명의 평론가는 칭찬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필자는 시집 해설과 문예지 특집의 작품론은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문예지의 특집은 B평론가처럼 자의식을 갖고 작품의 문제점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할 수 있다. 비평은 감시받지 않는 절대 자유 속에서 대상 텍스트를 평가해야 한다. 작품의 문제의식과 인간의 다양한 욕망 그리고 부조리를 실존적 의미와 결부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비평의 문장은 결기와 파열음이 가득해야 존재 이유가 확실해진다. 필자가 편집인으로 있는 시와 비평 전문지 포엠피플에 ‘문제적 비평’이라는 코너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집 해설일 경우는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시인이 시집을 출간하는 것은 매우 큰 축제에 해당한다. 시인은 자신의 시집 출간을 최대한 축복받고 싶어 한다. 문단에서 평론가로부터 평가받는 작가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 자장 안에서 문단은 작동한다. 따라서 문학 장 안에서의 헤게모니 투쟁의 승자는 소수의 스타급 작가다. 비평의 대상은 이들로 국한돼 있다. 하지만 비권위지 출신의 시인이 평론가로부터 평가받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바로 시집을 출간할 때다. 시인들은 기대에 부풀어 섭외한 평론가의 평가를 기다린다. 문단에서는 비권위지 출신이지만 개성이 강하고 작품성이 높은 시를 쓰는 시인이 많다. 이들의 문학에 대한 열망은 매우 높고 자존심도 강하다. 시집 출간이라는 자신의 축제에 M평론가처럼 혹평을 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시집 출간이라는 축제의 측면에서 보면 M평론가는 잘못을 저질렀다. 필자는 시집 출간을 할 때는 시인의 축제에 참여했으므로 문학적 열망과 결과에 대한 답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게 옳다고 본다. 다만 작품론이나 작가론을 쓸 때는 평론가의 자의식으로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맞다.

[삶, 오디세이] 2025년, 나의 꿈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꿈’은 좀 먼 나라의 무지개를 손에 잡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새해를 맞으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꿈 꿀 수 있다면 많이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의미 있는 새해, 2025년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새해 아침 광교산 형제봉을 오르면서 2025년 ‘나의 꿈’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2025년 버킷 리스트 50이다. 꿈은 꾸는 사람에게 이뤄진다. 이 글을 읽으며 각자 2025년 자신의 꿈을 찾아보았으면 좋겠다. 리스트 중에는 조금은 황당한 것도 있지만 꼭 50가지는 아니더라도 5가지, 10가지, 20가지를 정해 꿈을 따라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그럼 천천히 하나씩 꿈 찾기에 도전해 보자. △잘 웃기 △먼저 인사하기 △약속 시간 늦지 않기 △감사일기 쓰기△큰 소리로 노래 부르기 △안 먹는 음식 먹기에 도전하기 △해외여행 가기 △장례식장 조문하기 △3명의 친구 만들기 △결혼식장에 가서 사진 찍기 △부모님께 용돈 드리기 △서점 방문해 책 구입하기 △영혼의 짝 1명 만들기 △헤어스타일 바꾸기 △새 노래 배우기 △운동 시작하기 △악기 한 가지 배우기 △몸에 안 좋은 음식 끊기 △다이어트 △외국어 배우기 △장롱 속 면허증 꺼내 운전하기 △유튜브, 카톡 사용 시간 줄이기 △면허증 따기 △친척 집 방문해 1박하기 △건강을 위해 매일 비타민 먹기 △매일 1만 걸음 걷기 △말하기보다 경청하기 △아직 가보지 않은 가장 높은 산에 가기 △양보 운전하기 △겸손하게 낮아지기 △직장에서 가족 자랑하기 △손해인 줄 알지만 선행하기 △책 읽기(한 달에 1권) △저축하기 △필요한 사람에게 돈 빌려주고 받지 않기 △아기 갖기 △컴퓨터 배우기 △섬 여행하기(제주도, 울릉도, 백령도 등) △사진찍는 법 배우기 △사막에 가보기 △아들딸 결혼시키기 △한 달에 한 번 가족들과 외식하기 △가족들과 여행하기 △요리 배우기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기 △부모님 여행 보내 드리기 △캠핑에 도전 △자전거 타기 △혼자서 하루 여행하기 △유언장 쓰기 꿈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은 바쁘지 않다. 해야 할 일을 하지만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삶은 여유가 있고 동기와 목적이 분명하기에 발걸음은 힘이 있다. 빅토르 위고는 “매일 아침 하루를 계획하고 그 계획을 실행하는 사람은 극도로 바쁜 미로 같은 삶 속에서도 그는 인내할 수 있는 한 올의 실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계획이 서 있지 않고 단순히 우발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게 된다면 곧 무질서가 삶을 지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꿈을 꾸라.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살라. 2025년이 과거가 됐을 때의 성공과 실패는 오늘 나의 꿈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진심으로 변화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새해 첫날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시작하라.” -짐 스토벌

[삶, 오디세이] 다시 이 시간

2024년이 떠나가고 2025년이 다가왔다. 우리는 그 시간을 보낸 적이 없으나 시간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고 또 다른 이름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이 시간은 이제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순간순간을 선물할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시간을 보내고 맞이한다. 그러나 이 시간은 그 찰나뿐이다. 불교에서는 시간에 대해 ‘찰나생(刹那生) 찰나멸(刹那滅)’이라는 가르침을 설한다. 매 순간이 새롭게 다가오고 지나간 순간은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로 지금을 사는 우리가 이 순간을 간절하게 대하고 어떤 미련도 후회도 없이 적극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매일의 시간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이 시간이 지나도 다른 시간이 찾아올 것이고 항상 그렇게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연말과 새해를 대할 때면 시간의 무서움을 여실히 느낀다. 얼마 전 새해라고 기뻐하고 설레던 것 같지만 돌아보면 눈앞에 연말이 다가와 있다. 분명 하루하루가 너무나 길고 지루하기까지 했건만 1년이라는 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사라진 시간 속에는 수많은 아쉬움과 미련 등이 뒤섞여 있다. 이러한 찰나의 시간을 이제 더 이상 놓치면 안 된다. 시간은 잡을 수 없지만 놓쳐서도 안 된다. 이 시간이 지나가 버리면 절대 되돌릴 수 없다. ‘지나간 1초는 1억의 가치보다 크다’는 말과 같이 어떤 재물로도 환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산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언제쯤 행복해질까. 이 물음의 대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행복한 일을 하고, 지금 내가 행복한 마음을 갖고, 지금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만 그 ‘행복’이 생겨나는 것이다. 즉, 행복의 완성은 다른 무언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사는 여러분이, 제가, 우리가 행복할 때 이뤄지는 것이다. 때때로 특별한 이벤트나 선물 등으로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 특별한 순간만의 행복이며 기쁨이다. 오래 지속되고 항상 하는 행복은 일상 속에 있어야 한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과 주변이 그 행복의 토대가 돼 줘야 지금 웃을 수 있고, 어제가 추억되고, 내일이 기대되는 것이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가르침은 특별한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잔잔하며 평안한 매일을 사는 것이야말로 참된 깨달음의 삶이며 그 안의 모든 것이 행복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평상심의 마음을 지니고 산다면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매일이 행복한(좋은) 날이 된다. 특별한 재물이나 시간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우리가 행복할 때 모든 것이 그처럼 변해 우리와 함께 지금을 살아갈 것이다. 지금 환히 웃는 그대의 미소가 세상을 밝히고 그 빛은 모든 인연에게 이어져 다시 우리에게 전해진다.

[삶, 오디세이] 부분의 법칙과 POGS

조금이라도 젊고 어렸던 날에는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뭔가 거창한 계획을 세우곤 했다. 그러나 그건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계획이 아니라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상이나 꿈에 가까운 것이었음을 마흔이 훌쩍 넘은 뒤에야 알았다. 인간이란 이리도 어리석은 존재로구나 하고 몸소 깨달은 순간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애당초 계획이란 것 자체가 지금, 여기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할 때 그 실천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더 큰 계획을 할 수 있고 보다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 아니던가. 어쩌면 불변의 진리였을 그 사실은 실제로 가정에서 훈육하는 부모나 정규 교육과정 중에 스승으로부터 충분히 들었을 법한 것임에도 그때는 들을 귀가 없어 40년 이상을 미련하게 살았나 보다 싶다.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 사실은 그것을 하기에 가장 이른 때라는 사실이다. 이는 오랜 시간 미련하게 무모한 계획을 세우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깨닫게 된 삶의 지혜로 보인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 오면서 실제로 우리 삶에는 사실상 늦은 것이란 없음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나 계획은 그 필요성을 깨달아 알았을 때에야 비로소 목적성이 구체화되며 실행력을 지니게 된다. 딱히 내 삶에 필요하지 않음에도 그것을 얻기 위해 남들보다 빨리 움직인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시의적절하다고 평가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사람이 무엇인가를 할 때에는 분명 적절한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한 때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은 아니므로 뭔가 하고 싶지만 이미 늦었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그때야말로 그것을 시작해야 할 때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것들은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그 시작이 고민될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자신의 바람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뭔가 하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그것을 하려면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 손을 대기도 전에 머리부터 복잡해지는 경험은 누구나 한다. 그런 순간에는 계획하는 것조차 막막하기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버거워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에 기억할 만한 것이 ‘부분의 법칙’이다. 부분의 법칙이란 행동주의 언어교수법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언어를 가르칠 때 큰 단위를 작은 단위로 쪼개 하나씩 제시하고 연습하면 언어 학습과 습득에 용이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기계적 반복이 강조돼 맥락이 결여된 언어 학습이 이뤄지기 쉽다는 단점이 있지만 습관화 혹은 자동화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습과화와 자동화는 언어 사용의 정확성을 발달시키지만 유창성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언어 사용의 정확성과 유창성이 기본적으로 부분의 법칙에 따른 언어 요소의 객관화를 바탕으로 획득되는 것처럼 우리가 바라는 것이나 도모하는 일도 그러한 법칙으로 구체화해 실천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잘게 쪼개 그 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각자 나름대로 터득한 삶의 기술이 필요한데 필자는 개인적으로 POGS라는 것을 주로 활용한다. POGS는 목적(Purpose), 목표(Object), 하위 목표(Goal), 세부전략(Standard)의 머릿글자를 따온 것으로 삶의 큰 목적(P) 아래 그것을 이루기 위한 목표(O)를 정하고 그 목표를 내 삶의 영역별(G)로 어떻게 실천해 나갈 것인지(S)를 세부적으로 기술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막연했던 바람이 내 삶의 전 영역에 걸쳐 구체적인 실천 계획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필자는 새해가 되면 늘 POGS를 짜곤 한다. 바라는 것도 없고 그래서 계획하고 싶지도 않다면 그 순간에 자신의 삶의 영역을 잘게 쪼개 계획이 필요한 곳은 없는지 한번 살펴보자. 그러한 작은 실천과 함께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분명 을사년 2025년의 끝에는 어떤 형태로든 좀 더 나은 내가 서 있으리라 확신한다. 부디 이번 을사년은 모두가 마음을 나누며 함께 서로를 돌아보고 뱀같이 지혜로운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삶, 오디세이] 작가와 트라우마

12·3 비상계엄 사태는 시민들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상처였다. 서울 도로에 나타난 군 장갑차와 국회의사당으로 들이닥친 무장한 군인들로 인해 대한민국은 충격에 휩싸였다. 과거 계엄 때 받았던 공포 스위치가 켜진 것이다. 수많은 시민이 한밤중인데도 국회의사당으로 모여들어 맨몸으로 계엄군을 막아냈다. 시민들이 계엄군과 맞서는 사이 우원식 국회의장 등 다수의 국회의원이 국회의 담을 넘었다. 결국 국회의사당에 모인 190명의 국회의원이 155분 만에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지금 이곳의 작가에게 심리적 외상을 입혔다. 이제 작가들은 작품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할 것이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시를 쓰는 데 바탕이 되는 중요한 재료가 된다. 일제강점기 카프 계열의 대표적인 시인 임화는 ‘현해탄’에서 “어떤 사람은 돌아오자 죽어갔다/어떤 사람은 영영 생사도 모른다/어떤 사람은 아픈 패배에 울었다”며 주권 잃은 트라우마를 노래했다. 의열단 요원이었던 이육사는 ‘광야’에서 “다시 천고의 뒤에/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며 역사적 트라우마를 극복할 날을 예고했다. 그런가 하면 서정주처럼 ‘오장 마쓰이 송가’를 써서 가미카제 특공대로 죽어간 동족의 젊은이를 미화한 시인도 있다. 서정주는 민족의 트라우마를 잘못 사용해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서사라는 특징 때문에 중요한 소설의 소재가 된다. 조정래는 ‘태백산맥’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의 세계관과 우리나라의 분단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좌익 진영의 염상진과 우익 진영의 염상구는 형제다. 두 인물은 남북이 형제라는 것을 상징한다. 또 김원일은 ‘손풍금’에서 분단의 비극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서사로 엮어냈다. 손풍금은 남파 간첩으로 잠입했다가 체포돼 21년을 복역한 박광수와 남한에 정착한 박도수의 이야기다. 태백산맥처럼 손풍금도 분단 시대의 형제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은 우리에게 닥친 큰 충격이다. 이러한 충격이 역사적 트라우마로 작가의 작품 소재가 됐다. 심리적 외상인 트라우마는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와 미술 등에 종사하는 작가들에게도 중요한 소재가 된다. 천만 관객 달성으로 알려진 ‘서울의 봄’은 12·12군사반란에 의한 트라우마를 형상화했고 액션의 명작인 ‘글래디에이터’는 로마 제국에 저항하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서사화했다. 이처럼 트라우마는 화면에 생생한 액션을 불러오고 잘못된 역사에 저항했던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든다.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가 역사적 트라우마로 ‘절규’라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그는 미술사에 남지 못했을 것이다. 뭉크는 노란색과 붉은색 등 원색으로 공포에 질려 있는 인물을 그렸다. 세계대전을 경험한 뭉크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원색으로 질문을 던진 통찰력이 뛰어난 화가다. 작가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세계에 질문하고, 현상에 질문하고, 사물에 질문한다. 한강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질문한 결과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소설 ‘소년이 온다’와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질문했고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제주4·3항쟁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질문했다. 이제 지금 이곳의 작가들이 12·3 비상계엄이라는 트라우마로 작품을 만들 것이다. 시인은 시로, 소설가는 소설로, 감독은 영화로, 화가는 그림으로 12·3 비상계엄에 질문을 던질 것이다. 작가는 질문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삶, 오디세이] 성탄절의 소원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주 예수 나신 밤....” 어김없이 2024년에도 성탄절을 맞고 있다. 매년 12월25일 성탄절은 전 세계인들이 함께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날이다. 어떤 해는 더 빨리 오거나, 어떤 일 때문에 늦어지지는 않는다. 많은 어려움이 있는 올해도 화이트크리스마스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 온 세상 사람들이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성탄절이 다가온다. 필자는 2002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성탄절을 맞은 적이 있다. 기독교 국가가 아니었지만 그곳의 성탄절도 필자가 알고 있는 성탄절과 똑같았다. 호텔 로비와 거리에는 형형색색의 조명과 장식물로 화려하게 성탄을 맞는 모습에 당황한 것 오히려 나였다. 그리고 책에서 배우지 않은 종교와 문화에 대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4년마다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월드컵 축구대회는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축제이고, 지구촌의 축제라고 말하는 올림픽도 개최국이나 스포츠 팬들을 제외하면 무관심할 수 있는데 성탄절은 지구촌 사람 모두, 남녀노소, 인종과 국가와 문화를 초월하는 세계 최고의 축제일이다. 필자는 중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녀 어린 시절 성탄에 대한 추억은 없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굴뚝을 타고 들어와 아이가 원하는 선물을 양말 속에 넣어 놓고 간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커서 책에서 배웠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기 원하는 한 부모님이 있었다. 성탄절 때마다 아이에게 책을 선물했다. 그런데 아이는 점점 크면서 성탄절 선물로 받고 싶은 장난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 부모는 어김없이 책으로 성탄절 선물을 준비해 양말 속에 넣어 뒀다. 그 아이의 어린 시절 성탄절은 그렇게 기다려지는 날은 아니었단다. 2024년 성탄절의 소원이 있다. 우선 우크라이나전쟁이 끝나는 것이다. 더구나 그곳에는 북한의 젊은이들이 용병으로 전쟁에 참가하고 있다. 전쟁이 종식되는 성탄절 선물을 기다린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헤즈볼라의 전쟁도 선물 보따리에 들어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한밤중의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대통령 탄핵의 어지러운 정치 상황이 평화롭게 정리되는 선물을 주시면 좋겠다. 대한민국에는 뛰어난 정치 지도자들이 있지만 일은 점점 더 꼬이고 어려워지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2024년 성탄절에는 이 땅에 아기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에 질서를 더해 온 국민이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일상의 축복을 선물로 주시면 좋겠다. 끝으로 2024 성탄절에는 지난 1년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감사의 바구니에 담아 하나님께 선물로 올려 드리고 싶다.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돌아보니 가장 필요했고 좋은 것들이었다. 일이 일어난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 성탄의 불빛에 비춰 보니 다 감사한 일이고 축복된 일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인사드린다. 성탄에 행복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삶, 오디세이] 지구의 방생

불교에 ‘방생(放生)’이라는 의식이 있다. 인간에 의해 잡힌 동물을 다시 그들이 살던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것으로 생명 존중과 공생이라는 불교의 가치관을 실천하는 의식이다. 사찰에서는 봄, 가을이나 물고기의 산란기에 맞춰 방생의 법회를 열어 많은 불교인들과 함께 인간만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공존하고 함께하는 지구라는 가르침을 일깨워 준다. 과거에는 방생에서 물고기나 새 등을 풀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것이 자칫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방생문화도 점차 변하고 있다. 최근에는 방생의 의미를 보다 넓게 해석해 생명이 살아가는 것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활동으로 변해 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강가에 버드나무를 심어 정화작용을 돕거나 겨울철 먹이가 부족한 산짐승이나 철새에게 사료를 제공하는 방생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새로운 방생문화는 생명 존중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보다 지금의 현실에 맞게 실천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몇 해 전부터 방생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바로 지구를 위한 방생이다. 당장 11월 말의 폭설을 떠올려 보면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고 예측조차 못할 정도의 기록적인 눈이 내려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에 대란을 일으켰다. 더불어 장마와 태풍은 매년 그 피해와 규모의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우리의 지구가 이제는 우리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던 곳에서 두려움과 걱정의 대상이 돼 가고 있다. 모든 인류는 지금까지 지구에서 태어났고, 지구에서 살다가 다시 지구의 품으로 돌아갔다. 이 지구는 단지 우리의 터전을 넘어 모든 생명의 토대이고 그 생명들의 세상이다. 그러나 그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오직 자신만을 위해 마구잡이로 생산하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일회용품을 사용하며, 흥청망청 자원을 소비한다면 지구가 제공하던 터전은 그리고 세상은 어쩌면 이제 우리를 품어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생명을 지키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이제 지구를 위한 방생을 해야 한다. 지구를 위한 우리의 방생이 어쩌면 다소 늦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탓을 할 때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실천해야 한다. 그 방법도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으나 오히려 실천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이다. 사용하는 자원을 조금만 아끼고, 사용한 것은 잘 분리해 버리며, 다시 쓸 수 있는 것은 꼭 다시 쓰면 된다. 그리고 주변에 타인에 의해 버려지거나 훼손된 것을 내가 먼저 줍고 정리한다면 그 작은 실천이 하나둘 모여 거대한 힘이 돼 지구를 살리는 방생이 된다. 누구나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 한다. 이 ‘행복하고 잘 사는 것’은 우리의 자리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그 자리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다. 오늘 무엇 하나를 줍거나 아낀 그 행동이 훗날 더 아름답고 안락한 지구가 돼 우리에게 행복의 터전을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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