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기축통화 패권과 관세전쟁

기축통화의 기원을 경기FTA통상진흥센터의 시각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우리가 위기 상황에 대비해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늘리듯 국가들도 경제적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외화를 비축하는데 이를 ‘외환보유고’라 한다. 이 중 미국 달러는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970년 기준으로 세계 외환보유고의 약 80%가 달러였고 2020년에도 여전히 약 60%에 달한다. 금을 제외한 대부분의 통화는 그 비중이 5%에도 못 미친다. 이는 달러가 국제 금융질서를 주도하는 기축통화로 여전히 군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수십년간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독일, 일본, 중국, 브릭스(BRICS) 등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미국 중심의 통화질서에 균열을 내며 트럼프 정부의 관세전쟁을 촉발하는 배경이 됐다. 독일의 마르크화: 냉전 시기 유럽에서 소련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창설하고 독일을 핵심 국가로 삼아 지원하며 마르크화가 유럽의 중심화로 떠오르게 했다. 일본의 엔화: 아시아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전개됐고 중국과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의 재건을 돕게되며 엔화는 아시아 대표 통화가 됐다. 미국의 응징: 독일과 일본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성장했으나 달러에 도전하자 미국은 강하게 대응했다. 1985년 9월 미국은 독일·일본·프랑스·영국과 함께 ‘플라자 합의’를 체결하며 엔화와 마르크화의 강제 절상을 유도했고 이로 인해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에 접어들고 독일은 유로화로 통합되며 개별 통화로서의 위상은 사라졌다. 중국의 위안화: 2000년대 들어 중국의 위안화가 새로운 도전자로 등장했다. 1편에서 언급한 ‘페트로 달러 체제’ 아래 원유는 달러로 거래되며 미국이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했지만 바이든 정부에서는 중국이 원유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며 ‘페트로 위안’ 체제를 시도하고 있다. 이는 페트로 달러 체제의 붕괴를 암시했고 미국과 중국의 통화 패권전쟁은 본격화되며 관세전쟁으로 확산됐다. 또 미국과 사우디는 오일 협력국에서 에너지 패권 경쟁국으로 전환되고 있다. 미국은 셰일가스로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고 사우디는 이란과의 핵무장을 둘러싼 갈등을 겪고 있다. 미국의 전략적 관심도 아시아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의 근저에 달러 패권이 있다면 우리는 이 충돌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브릭스(BRICS): 2023년 8월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은 “달러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대한 불만이 현실로 이어지고 있으며 향후 달러의 역할 변화에도 주목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관세전쟁을 멈출 의향이 있을까. 가능성은 희박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가 스티브 배넌은 2017년 시진핑 주석이 글로벌 패권국 도약을 선언한 직후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되는 날, 게임은 끝나는 것”이라며 중국의 도전을 경고한 바 있다. 라이트하이저는 최근 방한 중 “트럼프 정부가 끝나더라도 미국의 관세정책은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미국은 전 세계에 묻고 있다. “패권전쟁에 동참할 것인가, 독자적인 길을 갈 것인가.” 우리는 관세전쟁의 끝에서 ‘환율전쟁’이라는 대혼란을 맞이할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대한민국에는 실용주의를 내건 정부가 들어섰고 지방자치의 리더십을 자처하는 경기도가 중심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 현실에 작게나마 기대를 걸어본다.

[천자춘추] AI, 스포츠 필드의 게임체인저

게임체인저(Game Changer)는 게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 또는 사건, 인물을 뜻하는 단어다. 인공지능(AI)은 스포츠 전반의 흐름을 바꾸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스포츠 분야의 게임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초기 단순한 자동화 기술에서 오늘날에는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형태의 AI로 발전하면서 경기 분석부터 훈련과 전략 수립 그리고 팬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스포츠의 모든 장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AI는 인간의 영역보다 더 세밀하게 선수 개개인의 움직임, 속도, 힘, 정확성 등을 정밀하게 분석한다. 기존의 감각에 의존하던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 구축을 가능하게 한다. AI 기반 선수 분석 시스템은 선수의 강점과 약점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스포츠 현장에서는 이미 코칭 전략 수립에 AI가 활용되고 있다. 비디오 분석과 실시간 데이터 해석 기술은 경기 중 상황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경기 결과 예측과 전략 조정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특히 심판 판정에서 AI의 역할은 오심을 줄이고 공정성을 높이는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선수 스카우트와 유망주 발굴에서도 AI의 힘은 강력하다. 신체능력, 경기 데이터, 성장 곡선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발전 가능성이 높은 선수를 예측하고 추천할 수 있다. 이는 엘리트 스포츠뿐만 아니라 유소년 육성과 아마추어 스포츠 시스템에도 큰 전환점을 제공하고 있다. AI는 팬 서비스 분야에서도 강력한 도구로 활용된다. 팬의 관심사와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경기 정보, 하이라이트 영상, 뉴스 등을 제공하고 경기 중 실시간 데이터를 통해 몰입감을 높여주고 있다. 기존에는 없었던 신선한 관전 경험을 제공하면서 스포츠 소비 형태의 변화와 함께 스포츠산업에서 새로운 시장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처럼 AI는 스포츠 분야 곳곳에 자리 잡으며 공정성에 대한 원칙적 부분을 다루는 것부터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나아가 팬 경험까지 혁신하며 스포츠마케팅 영역까지 장악하고 있다. AI 같은 기술적 변화가 스포츠 생태계 전반에 긍정적인 보조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열린 자세로 그에 맞는 제도적 준비와 윤리적 기준 마련도 병행해야 한다. AI를 활용한 변화의 주도권을 통해 K-스포츠 시대를 열어 대한민국 스포츠의 또 한번의 도약을 기대해 볼 시점이다.

[천자춘추] 우리동네 기후연구소

기후 위기가 더 이상 막연한 미래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지구 평균기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연일 이어지는 급변하는 날씨는 우리의 일상과 삶의 방식까지 바꿔 이에 대한 인식과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기후교육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기상청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기후교육을 확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23년부터 고등학교 ‘기후 변화와 환경생태’ 교과서 개발을 시작했고 지난해 대전시교육청에서 인정 교과서로 선정됐다. 기후 변화에 대한 미래세대의 이해를 넓히기 위한 기상청의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의 결실이다. 하지만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진짜 첫걸음은 기후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함께 ‘실천’이 있어야 시작된다. 아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변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예컨대 일회용품 줄이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 누구나 들어봤을 탄소중립 실천 내용은 ‘실천’이란 허들을 넘었을 때 의미가 있다. 이에 기상청은 시민들의 주체적 실천을 이끌고자 지역별로 지역 특색을 반영한 기후교육을 개발·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전국 곳곳의 학교, 지자체, 지역단체와의 소통·협력에 힘쓰고 있다. 수도권기상청이 서울 은평구, 경기 수원시 등의 지자체와 함께 운영 중인 기후교육 사업 ‘우리동네 기후연구소’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는 시민들이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자신이 사는 동네의 기온을 직접 관측하고 기후행동 실천을 인증하면 수도권기상청이 찾아가 해당 지역의 기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후 변화와 기후전망을 설명하고 탄소중립 실천의 중요성을 알리는 프로그램이다. 기상청의 참여로 교육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시민들의 실천 행동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왜 특정 행동이 필요한지, 그 행동이 나의 삶과 지역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이해할 때 작은 실천은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기후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행동의 변화’다. 기상청은 앞으로도 과학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실천 중심의 기후교육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삶과 지역에서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행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그 시작과 끝에 늘 기상청이 함께할 것이다.

[천자춘추] 문화의 힘이 나오는 바탕

우여곡절 끝에 새 정부가 출범했다. ‘진짜 대한민국’을 표방하며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K-컬처를 통한 신성장 에너지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당면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고 소위 ‘잘사니즘’을 실현하기 위해 현 정부는 대선 시기에 세 가지 성장 에너지를 제시했다. 인공지능, 재생에너지, 그리고 K-컬처다. 문화가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중요한 영역이라는 인식 아래 국민 앞에 약속한 것이다. 문화의 힘을 이처럼 중요하게 인식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실제로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의 매출액은 153조원에 달한다. 문화 콘텐츠를 잘 만들어 세계시장을 점유하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며 미래 먹거리를 생산하는 전략은 현 시대에 부합한다. 현대 산업은 제조업 기반 산업 시대에서 지식 기반 산업 시대로, 다시 인공지능·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에 기반한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발전해 왔다. 지금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지닌 창의성이다. 창의성의 힘으로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고 이를 위해 창의적인 K-컬처 산업을 육성하는 일은 타당한 성장 전략이다. 그러나 K-컬처는 문화산업 시스템 자체에 대한 투자와 육성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기초예술 분야에 대한 강력한 지원을 통해 창의적 시도와 도전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는 예술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 K-컬처 활성화의 전제이자 본질이다. K-컬처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힘은 기술이 아니라 창의적 서사와 보편적 공감대 형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시대적 아픔에 대한 공감과 성찰 없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불가능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빈부 격차에 대한 통찰과 풍자 없이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작품상 및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초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과 육성이 동반돼야 K-컬처가 세계 시장에서 이른바 ‘잭팟’을 터뜨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이는 현 정부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사실이다. 또 지역문화를 진흥하고 생활문화를 육성함으로써 국민들의 삶이 문화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도 중요하다. ‘문화’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양식이며 함께 공유하고 지켜 나가는 가치 체계다. 지난 정부 때 ‘지역문화진흥원’ 사업이 대폭 축소됐다.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문화를 창조하는 일이 중단되고 관료가 주도하는 분위기로 변해 버린 것이다. 새로운 정부는 이를 빠르게 복구해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가는 ‘문화자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의 주도성과 창의성이 발현되는 문화가 형성되고 창의적인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다. 창의적인 인물이 많아야 K-컬처가 성공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 K-컬처 성공의 두 번째 조건은 바로 지역문화 진흥과 생활문화 육성을 통해 ‘문화자치’ 시대를 여는 것이다. 기초예술에 대한 강력한 지원, 지역문화 진흥 및 생활문화 육성을 통해 문화자치 시대로 나아가는 변화야말로 K-컬처 성공의 전제이자 본질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재명 정부의 문화 정책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천자춘추] 사방공사로 망가진 계곡

어릴 적 여름, 계곡은 우리의 놀이터였다. 차가운 물살을 따라 송사리를 쫓고 돌 틈에 숨은 가재를 잡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흐르는 물소리와 햇살에 반짝이던 물방울,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갔던 천렵은 단순한 유년의 추억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연 그 자체였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계곡은 콘크리트 바닥에 물이 조금 흐르는 ‘정비된 공간’일 뿐이다. 물이 고여 있지 않고, 돌부리도 없고, 물고기도 사라졌다. ‘계곡 정비’라는 이름 아래 전국의 산간 계곡이 굴착기로 파헤쳐지고 있다. 이른바 사방공사다.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해 설치된 사방댐은 계곡을 가로막고 바닥은 평평하게 정리된 후 콘크리트로 덮인다. 현장에서는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한 구조물이라고 설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돌과 흙, 뿌리와 생명, 물소리와 기억이 함께 제거된다. 그런데 잠깐, 묻고 싶다. 토사는 왜 내려오는가. 수천년간 멀쩡하던 계곡이 왜 갑자기 무너지는가. 해답은 계곡 아래가 아니라 상류에 있다. 도로가 생기고, 건물이 들어서고, 주차장이 만들어지면서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모두 아래로 쏟아져 내리게 된 것이다. 공학적으로는 이를 ‘유출계수 증가’라고 부른다. 같은 비가 내려도 예전보다 세 배 가까운 양이 계곡 아래로 쏟아지는 현상이다. 토사를 막는답시고 계곡을 덮는 것은 결국 증상을 가리는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원인은 그대로 두고 결과만 막는 방식은 예산 낭비이자 자연 파괴이며 무엇보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있다. 계곡으로 들어가는 작은 물줄기, 즉 지류와 경사면에 ‘물모이’라는 작은 물웅덩이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의 계곡은 하나의 선(線)처럼 물이 집중돼 흐르지만 경사면 곳곳에 물모이가 생기면 그 물이 흡수되거나 증발돼 결국 계곡으로 내려오는 물의 양을 줄일 수 있다. 물모이 하나하나는 작지만 그것이 수십 수백개로 늘어나면 계곡으로 유입되는 물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킬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상류 지역에서 빗물이 급속히 내려오도록 만든 구조적 원인을 줄이기 위해 건물 옥상이나 주차장 등 불투수면을 만들 때는 적절히 설계된 빗물저금통(저류조)을 설치해야 한다. 빗물을 저장하고 천천히 흘려 보내면 하류 계곡의 유출량 증가와 토사 유실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다. 최근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우리는 자꾸 더 큰 장비, 더 단단한 구조물로 대응하려 한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것은 돌 하나, 흙 한 줌의 소중함을 아는 감각이다. 계곡은 물이 흐르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기억과 자연의 질서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장비가 들어간 계곡엔 더 이상 추억도, 생명도, 미래도 흐르지 않는다. 우리 후손에게 이런 풍경을 물려주지 않도록, 그 비용마저 떠넘기지 않도록 지금 우리가 막아야 한다.

[천자춘추] 아름다운 우리말 쓰기

청소년들의 언어생활이 심각하다. 국립국어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언어에서 소리 나는 대로 쓰기, 과도하게 줄여 쓰기, 은어 및 비속어 남용, 외래어나 외국어 오남용이 큰 것으로 지적됐다. 몇 해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EBS와 함께 초·중·고교생의 언어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었다. ‘×나’ , ‘×새끼’ 같은 욕은 이제 일상이 돼 버렸고 청소년의 65.6%가 ‘매일 욕을 한다’고 응답했다니 걱정이다. ‘극혐’, ‘노잼’, ‘깜놀’ 등 나이 드신 분이 요즈음 청소년의 카톡 내용을 이해하려면 학원이라도 다녀야 할 판이다. 아예 자모(字母)만 써서 ‘ㅎㅎ’, ‘ㅋㅋ’, ‘ㅇㅋ’ 정도는 상용화한 지 오래다. 이 정도까지 악화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청소년의 언어생활이 점점 저속해지는 것과 학교폭력이 심각해지는 것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보고가 있다. 특히 유튜브나 TV, 인터넷 등 방송매체의 언어 오염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많다. 예능 프로그램 사회자나 출연자의 비속한 언어 사용이나 자막에 등장하는 쌍소리, 맞춤법 무시는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젊은이들에게 생각을 물으면 열이면 열 사람이 “같애요”를 남발한다. 우승 소감을 물으면 “우승해서 기쁜 것 같애요”, “속상한 것 같애요” 투다. 대체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가르치기는 한 걸까. 케이팝이 세계로 확산하면서 ‘한글’로 노랫말을 흥얼거리고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들로 한국어 학당이 북적인다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모국어’가 대접을 못 받고 있으니 기막힌 역설이다. 한글날이 언제인지 모르는 국민이 37%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다. 1년에 한 번 한글날만이라도 온 국민이 1446년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반포한 그날을 되새겨 보고 우리의 말과 글을 아름답게 써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K-컬처가 세계를 압도하고 있는 지금이 한글의 우수성과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다. 언어생활은 한번 길들이면 단기간에 바꾸기 힘들다. 느리지만 서서히 아름다운 말, 이쁘게 말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한글학회나 국어교육학회 같은 단체에서 우리말을 정화하기 위한 계몽 활동을 하고 있지만 막상 지역사회에서는 이런 활동을 찾아보기 어렵다. 유치원, 초·중·고교, 대학 등 모든 학교, 학원까지 동참하고 문화예술단체, 청소년보호단체가 나서 ‘아름다운 우리말 쓰기’ 범국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진정한 지역공동체의 완성은 자라나는 청소년과 어른들의 올바른 언어생활이 첫걸음일 수 있다.

[천자춘추] 옛 콘텐츠 된 영화, 존재의 이유

영화에게 2020년은 격동의 시기다. 1919년 한국 영화가 시작된 이래 존재 자체를 생각해봐야 할 정도로 이토록 심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2020년대는 코로나19 팬데믹의 그림자 아래 시작됐고 극장 폐쇄가 감염시대의 상징적인 사건이 되고 말았다. 영화 제작은 중단되고, 개봉은 지연됐으며, 영화사들은 위험을 피하고 안정적인 장르와 이야기에 기댔다. ‘범죄도시’ 시리즈, ‘서울의 봄’, ‘파묘’ 같은 천만 영화가 나오며 한국 영화산업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가 했지만 혼란과 위기는 계속돼 장기적으로 이 산업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의문을 남기고 있다. 한국 영화사의 암흑기라 칭하는 1970년대보다도 더 약한 10년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생충’이 칸영화제와 아카데미영화상의 선택을 받으며 K-시네마가 세계 최고 정점을 차지한 그 순간, 한국 영화가 쇠락해 지금은 K-콘텐츠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퇴조에는 반작용이 따른다. 산업의 폐허 위에서 진짜 목소리를 가진 창작자는 언제나 등장할 수 있다. 암흑으로 끝없이 흘러가던 1980년대에 ‘민중미학’의 시선으로 한국 영화계에 활력을 불러온 흐름이 있었고 이는 코리언뉴웨이브란 이름으로 희망을 선물했다. 소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이야기는 30초 릴스로 압축되며, 플랫폼은 넘쳐나고, 드라마는 시즌제로 이어지며, 유튜브는 개인의 세계관까지 상품화한다. 이런 시대에 두 시간짜리 집중을 필요로 하는 영화는 구식처럼 보인다. 영화관은 점점 낯선 장소가 된다. 그런데도 영화가 필요한 이유는 단순한 오락이 아닌 예술이어서 사람의 감정을 어루만진다는 점이다. 시간을 공유한다는 경험, 재구성된 공간 감각을 통한 시선의 확장, 감정을 나누는 공통의 기억, 언어를 넘어 타인의 내면을 이해하는 가능성 때문이다. 현실이 설명되지 않는 순간, 사람들은 다시 영화로 갈 것이다. 영화는 이미지와 소리라는 도구로 이해할 수 없는 감정과 기억을 붙잡는다. 지금도 어떤 어두운 영화관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고통을 이해받고 있을 것이다. 영화언어를 새롭게 정의할 규칙 파괴자들이 등장하길 기다린다. ‘건국전쟁’, ‘신명’ 같은 극단의 정치에 기대는 프로파간다 말고 암흑을 돌파했던 ‘하녀’(1960년), ‘바보선언’(1984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년) 같은 진짜 영화예술의 혁명가들 말이다.

[천자춘추] 새 정부에 거는 기대

국가의 존재 이유가 있다면 첫째는 안보이고 둘째는 경제일 것이다. 나라와 국민을 지켜내고 국민이 먹고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기본적 책무다.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는 분쟁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3년 넘는 전쟁과 북한군 파병, 홍해의 무법자 후티 반군에 대한 미국의 맹폭으로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야 하는 무역선, 핵보유국 인도와 파키스탄의 아슬아슬한 분쟁, 이스라엘과 이란의 보복 전쟁, 게다가 슬금슬금 서해 공동수역에 이상한 기구를 설치하는 음흉한 계략과 대만 침공을 준비하는 중국의 행동 등 화약고가 점점 많아진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와 연관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실로 대외적 환경을 피해가거나 이겨내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래서 안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다. 말로만 그칠 줄 알았던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관세폭탄이 되고 관세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혼란스럽던 대선이 끝나고 새 정부가 출범했다. 새 학기가 설레는 것처럼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새 정부는 민심 수습과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책에 몰두해야 한다. 이제 단순히 여당 발목만 잡으면 되던 시절과는 반대로 여당의 위치에 섰다. 이제 전혀 다르게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말이다. 공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통합을 말하는데 국회는 협치를 포기하고 정쟁을 시작한다면 이 또한 내로남불이 될 수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상 삼권(三權)을 쥔 것과 같은 상황에 단순히 국민에게 용돈을 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정책으로 경기도는 매년 수천억원씩 갚아야 할 부채만 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자기 돈은 한 푼도 안 내며 주 4.5일제 타령으로 군불 때는 정치인들은 중소기업만 서글프게 만든다. 최저임금 상향은 결국 불법 외국인 체류만 늘리는 결과임도 고려해야 한다. 나라와 조직은 앞장서 인심 쓰는 사람들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다. 새 정부는 안보와 경제 회복, 국민 먹거리 창출에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 먹거리를 못 만들어 내면 꽝이다. 배고프면 민심이 흔들리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제 정쟁에 몰두하지 말고 먼저 기업 살리는 일에 힘을 써야 한다. 새 정부의 성공은 복수가 아니 포용과 인내, 풍요로운 경제다. 표를 몰아준 국민은 철저한 안보와 경제성장을 기대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일하면서 꿈을 이뤄 가는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후손들도 웃을 수 있는 멋진 정치를 기대한다.

[천자춘추] 수원FC 진정한 시민구단이 되려면

대한민국의 프로축구는 K리그1 12개팀(기업구단 6개팀, 시민구단 5개팀, 군팀 1개팀)과 K리그2 14개팀(기업구단 4개팀, 시민구단 9개팀, 사회적협동조합 1개팀)이 1부와 2부로 나눠 시즌을 치른다. 시즌 막판에 승강제를 통해 최다 3개팀까지 승격과 강등이 가능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기업구단은 기업 이미지 또는 자사 제품의 홍보 효과를 노리고 있고 시도민구단은 지자체의 브랜드 가치 제고와 시민들에게 최상위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를 통해 광의의 사회적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 K리그에는 이들 외에 2개의 특별한 구단이 존재한다. 군팀인 상무는 분단국가의 병역의무 특수성 때문에 우수한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입대해 지속적으로 빼어난 경기력 유지가 가능하다. 충북 청주FC는 유일하게 사회적 협동조합의 형식을 갖고 있다. 현재 이 구단의 운영 예산은 조합이 40%를 부담하고 충북도와 청주시가 각각 30%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60%의 지원을 감당해주니 시도민구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일반 시민이나 조합원을 더 참여시켜 예산 지분을 높이고 직접 구단 운영에도 참여하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독일과 튀르키예 축구클럽의 형태와 거버넌스 체계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이른바 ‘50+1 룰’을 적용해 시민(팬)들이 이사회의 51% 지분을 보유하며 외부 개인이나 기업의 참여율은 최대 49%로 제한된다. 구단 운영은 팬들의 대표인 이사회에서 모든 결정권을 갖고 진행된다. 이런 방식으로는 외부의 대규모 투자를 받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튀르키예의 경우 형태는 비슷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일부 구단은 시장, 도지사 등 지자체장이 운영, 예산 지원, 시설, 개선 등 공공 자원을 통해 구단 운영에 직접 관여한다. 또 국영·민간 기업이 주요 스폰서로 참여한다. 국공립 은행도 대출이나 정부 보증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다. 이러니 구단 운영이 정치적 인물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경우에는 선거 결과에 따라 이쪽저쪽으로 흔들리기도 한다. 필자는 2023년 1월 수원FC 단장으로 취임하면서 ‘미래’, ‘존중’, ‘정의’, ‘명예’ 등 네 가지 핵심 가치와 몇 가지 비전을 제시했다. 그중 하나가 후원회 조직의 결성이었다. 후원회원으로 가입하면 월 소정의 회비를 내게 된다. 4년 기준의 필자 임기 중 초석을 놓아 1차 목표 회원은 1만명이다. 후원회는 월 1만원을 내는 시티즌클럽을 비롯해 월 5만~10만원을 내는 비즈니스클럽, 그리고 100만원 이상을 일시불로 내는 밀리언클럽으로 구분된다. 독일과 튀르키예 클럽 형태와 내용을 잘 연구한 뒤 수원FC도 향후 점진적, 단계적인 변화를 통한 합리적이고 독립된 한국형 스포츠클럽으로 발전했으면 한다. 수원FC를 포함한 많은 국내 팀들이 FC(풋볼클럽)와 SC(스포츠클럽)으로 이원화의 방향으로 발전해 스포츠 강국, 축구 강국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원시와 자매 도시인 독일의 프라이부르크SC는 인구 약 23만명이지만 스포츠클럽의 회원은 7만5천명이다. 현재의 K리그 시도민구단은 ‘지자체 구단’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수원FC의 후원회 회원이 3만명을 넘어선다면 문자 그대로 진정한 시민구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천자춘추] 까치둥지서 깨달은 ‘환경보호’

올 초, 사무실 창문 너머 나무에 두 마리 까치가 찾아왔다. 그리고 한동안 부지런히 무언가를 주워 날라 둥지를지었다. 둥지를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인데 생각보다 크고 촘촘했다. 놀라운 건 까치둥지가 나뭇가지 외에도 철사와 건축자재 조각으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오롯이 자연의 재료만으로 지어졌을 텐데, 이제는 인간이 버린 쓰레기조차 둥지의 일부가 되어버려 마음 한 켠이 씁쓸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 하나가 바다를 덮고 숲과 동물들의 삶에 스며들며 결국,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환경문제의 현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마침, 지난 6월5일 ‘환경의 날’을 맞아 필자가 속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는 ‘폐전자제품 자원순환 캠페인’을 시작했다. 회사나 집에서 보유 중인 폐전자제품을 수거해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재활용하여 탄소 감축 및 환경 보호에 기여하자는 취지다. 또, 탄소중립실천 포인트제를 도입해, 텀블러·다회용컵 이용, 전자영수증 발급, 친환경제품 구매 등 9개 녹색생활 과제를 이행하도록 독려하고, ‘캠코 그린워킹 캠페인’을 매칭그랜트 방식으로 개최해 임직원 걷기와 기부를 연계하고, 생활 속 걷기를 통해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와 에너지 절약 등 일상생활 속 탄소중립 실천을 생활화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캠코는, 친환경·탄소중립을 선도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환경부 탄소중립 경영대회와 자원순환 실천대회에서 장관상을 수상하고,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의 한국의 경영대상에서 ESG경영 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등 명실상부한 탄소중립 선도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적수천석(滴水穿石)이란 말이 있다. 직역하면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로, 작은 실천이 모여 사회 전체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환경은 미래 세대를 위한 빚이 아닌 함께 가꿔야 할 자산이다. 캠코경기지역본부는 지속 혁신으로 미래를 선도하고, 모든 업무에 국민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방침을 바탕으로 물방울 같은 작은 힘이지만 환경보호에 적극 힘을 보탤 계획이다. 어제는 아내와 함께 차가운 커피 한 잔이 담긴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챙겨 30분 거리에 있는 매탄 시장을 걸어서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이 무거운 짐 때문에 힘들었지만, 일상생활에서 탄소 절감을 실천했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났다. 다시 사무실에서 까치둥지를 관찰했다. 이제는 까치가 보이지 않는다. 둥지를 떠난 까치가족이 더 안전한 자연의 품에서 힘차게 날고 있을 그날을 조용히 응원해 본다.

[천자춘추] 호국보훈의 달에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기존의 국제질서가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의 불가예측성이 증폭되고 있는 시점에서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는다. 보훈 정책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희생·헌신한 국가유공자들의 공훈을 되새기고 그들의 숭고한 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나라 시·군 자치단체로서는 최초로 성남시가 금년 6월 호국보훈의 달부터 6·25전쟁 및 월남 참전유공자에게 전투수당을 지급하기로 한 보훈행정은 참 신선하다. 월남 참전 장병의 전투근무수당은 1963년 5월1일 시행된 ‘군인보수법’에 따라 지급됐어야 함에도 당시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지급하지 않았다. 전투수당 문제는 2014년 김춘진 의원 등 13인이 공동으로 발의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국가 정책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신상진 성남시장은 취임 당시부터 줄곧 ‘호국보훈도시’를 표방하며 유공자들의 예우에 심혈을 기울여 왔는데 금번 성남시가 6·25와 월남 참전유공자에게 전투수당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의 보훈행정의 의지와 실천의 결실이다. 현재 성남시의 국가유공자 수당도 경기도 시·군 지자체 중 최고 수준이다. 전투수당 지급 결정은 국가보훈부가 앞장서 주도해야 할 정책 사안임에도 손을 놓고 있자 성남시가 선도적으로 시행한 정책이다. 이러한 선진 보훈행정이 다른 지자체에도 확산돼 대한민국 전체 보훈 정책의 선진화에 기폭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국가와 타 지자체들이 성남시처럼 보훈명예수당을 인상하고 참전자들에게 전투수당을 지급하면 수십년간 참전유공자들과 국가 간의 전투수당에 대한 갈등도 종지부를 찍는 날이 올 것이다. 북-러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체결과 북한군의 우크라이나전쟁 파병 및 군사적 밀착, 그리고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국제법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해양영유권의 확장을 꾀하며 군사적 팽창주의를 노골화하는 중국의 패권적 행보가 한반도 안보를 더욱 위협하고 있다. 우리 선열들이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피땀으로 나라를 지켜온 호국 전통의 근간은 애국심이었다. 보훈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가유공자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기리며 그들과 가족을 예우함으로써 국민의 애국심을 고양하고 안보와 평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선진 보훈 정책이야말로 안보의 초석을 다지는 첩경이다.

[천자춘추] 조용하지만 강력한 힘 ‘자존감’

가족, 건강, 성공, 사랑, 자유, 행복, 평화 등은 인간의 삶에서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이다. 현대인들은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됐음에도 내면의 공허함과 불안을 호소한다. 그로 인해 ‘내면의 힘’이라는 개념이 점차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마음 근력’이나 ‘멘털 트레이닝’ 같은 표현이 유행처럼 번지고 동시에 정신병리 기반 콘텐츠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유튜브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면 ‘안정적 애착 관계가 형성이 안 된 사람은 피하라’, ‘감정 기복은 어릴 적 부모의 정서적 방치가 원인이다’, ‘이상 행동은 과거 성장 과정에서의 결핍이 원인이다’라는 식의 단편적 해석들은 인간의 복잡한 정신 구조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진단하듯 분류해 주변인들을 낙인찍는다. 내면의 힘을 기르는 과정은 누군가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관계 안에서 나와 타인을 조화롭게 이해하고 보다 유연하고 효율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 결과적으로 자신의 태도와 선택을 성숙하게 조정해 나갈 수 있는 내적 역량을 기르는 것이다. 내면의 힘은 일터와 가정에서 다양한 상황을 끊임없이 판단하고 결정하며 책임을 감당하는 그 모든 삶의 과정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인간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한 태도, 즉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스스로 감당해 온 수많은 수고의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내면의 기준점이다. 그 수고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는 수고의 시간을 통해 자신과 주변 환경을 끊임없이 성장시키고 있고 크고 작은 도전을 통해 개인과 사회가 함께 변화해 간다. 그렇기에 인간은 언제나 ‘돼가는 존재’이지 결코 ‘결정된 존재’로 평가될 수 없는 것이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 ‘끝나야 끝난 것이다’라는 말은 그 가치를 어떤 시점에서 단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외모가 모두 다르듯 내면 또한 각자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고유한 결을 지닌다. 그 결은 자신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 타인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며 살아 왔는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나온 모든 시간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됐고 앞으로의 시간 역시 나는 ‘돼가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조용히 마음에 질문 하나를 품어본다. “남은 삶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천자춘추] 한반도·북 비핵화 주술에 걸린 핵맹 코리아 上

올해는 광복 80주년이자 원자폭탄 투하 80년, 그리고 한일 수교 60년이다. 이에 원자폭탄에 초점을 두고 3회 정도 글을 써 보려 한다. 미국의 핵무기 개발은 제2차 세계대전 후반 나치 독일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소식에 놀란 아인슈타인 등 핵물리학자들의 요청으로 진행된 ‘맨해튼 계획’에서 출발했다. 1945년 7월16일 미국은 뉴멕시코 트리니티에서 첫 핵무기 실험을 성공한 이후 그해 8월6일 히로시마와 8월9일 나가사키에 핵무기를 투하했다. 투하한 핵탄두로 두 도시에서 약 70만명이 피폭됐다. 이 중 10만명이 조선인 피폭자다. 생존한 4만3천명이 상처받은 몸으로 귀국했지만 치료받지 못하고 국가의 관심 밖에서 ‘원자병’으로 고통스럽게 연명해야 했다. 현재 남아 있는 피폭자는 1천500여명에 불과하다. 1945년 5월 나치 독일은 항복했지만 핵무기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이후 뒤이은 미국과 소련 간 핵무기 경쟁으로 냉전은 격화됐고 영국, 프랑스 그리고 마침내 중국까지 핵무기를 확보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핵무기 시대의 실상이다. 핵무기 실험은 과거 식민지였거나 내부 식민지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이뤄졌다. 전 세계적으로 2천번이 넘는 핵실험이 있었는데 미국은 미국령 마셜군도 비키니와 네바다에서, 영국은 옛 식민지인 호주에서, 프랑스는 식민지 알제리와 폴리네시아에서, 중국은 신장위구르, 소련은 카자흐스탄 및 북극에서 진행했다. 일본은 유일한 피폭 국가라고 주장하면서 전쟁 국가 이미지를 벗으려 하지만 실험지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수십번, 어쩌면 수백번에 달하는 핵실험 속에 노출된 식민지 피폭자 수백만명의 고통은 세대를 넘겨 2세로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소련이 개발한 핵발전소 시스템과 미국의 ‘핵의 평화적 이용’을 더한 원자력발전소 시대에 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400여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며 발전소를 통해 우리는 풍부한 전기를 공급받고 있다. 하지만 1979년 스리마일섬 원자력발전소 사고,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거치면서 원전의 안전 신화는 점점 무너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곳곳에서 ‘원전 제로 사회’로의 시도가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달 ‘32차 반핵아시아평화포럼’이 대만에서 열렸다. 대만은 2025년 5월18일 0시를 기해 마지막 원전의 가동이 중단됐다. 아시아 최초의 ‘원전 제로’ 국가가 된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당시 포럼에 참가한 아시아 13개국은 타이완전력공사 앞에서 축하 행사를 진행했다. 핵무기와 원전은 핵의 쌍생아라고 평가된다. 핵무기 경쟁으로 한때 8만기의 핵무기가 지구를 뒤덮었다. 이는 지구를 수차례 멸절시킬 만한 양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반핵 평화운동으로 핵무기 감축이 실현돼 현재는 1만2천기 정도다. 2017년 세계 비정부기구(NGO) 연대체인 핵무기금지국제캠페인(ICAN) 덕분에 유엔은 핵무기금지협약을 122개국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그해 12월 ICAN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21년 1월 50개국이 비준한 ‘핵무기금지협약(TPNW)’이 발효돼 핵무기의 개발 보유 협박이 불법으로 규정됐고 현재는 73개국이 협약에 가입돼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한반도와 북한 비핵화를 주장하면서 미국 주도의 핵 정책을 지지하는 핵무기 지지 국가로 분류돼 있다. 고개 들고 눈을 떠 보자.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과제이기도 하다.

[천자춘추] 주간이용시설 문제와 대안

“한우리 이용인들과 가족들의 신의를 잊지 않겠습니다.” 장애인주간이용시설은 발달장애인 등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낮시간 동안 각종 프로그램과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가족은 돌봄 부담을 덜고 이용자는 사회적 관계를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애인 당사자단체에서 23년간 활동하며 지금은 한우리장애인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분명히 실감하는 것이 있다. 복지정책은 현장을 관통하지 않으면 공허하다는 것이다. 특히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발달장애인 영역에서 돌봄 정책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삶을 실제로 담아낼 수 있는 구조와 철학이 필요하다. 현재의 주간이용시설은 청장년기 중심의 프로그램 운영에 머물러 있고 다양한 장애 유형의 이용인과 점점 고령화되는 이용인의 건강, 정서, 여가, 재활 등 복합적인 욕구를 충분히 포괄하기 어렵다. 그 결과 가족들은 시설 이용 이후에도 여전히 일상의 돌봄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이는 단지 서비스의 양적 부족 문제가 아니라 정책이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설계된 결과다. 이제는 기존 주간이용시설 인프라를 중심에 두고 각 장애 유형 및 고령 발달장애인을 위한 복합형 맞춤 프로그램이 결합돼야 할 시점이다. 의료지원, 물리·작업재활, 이동지원, 심리정서 회복 등 다양한 영역이 통합된 모델은 단순히 예산의 효율성뿐 아니라 당사자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복지의 본질은 ‘사람을 사람답게’다. 그러므로 돌봄 정책은 더 이상 ‘신설’에 매달릴 일이 아니다. 지금 존재하는 살아 있는 인프라에 온기를 불어넣고 기능을 재정립하는 일이 우선이다. 여전히 현장을 지탱하는 시설과 전문인력, 그 안의 삶들에 정책이 다시 연결돼야 한다. 당사자가 있는 곳에 역할을 더하고, 있는 곳에서 당사자는 성장과 나이듦을 겪어야 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센터를 떠나 또 다른 자리에서 다시 당사자를 위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한 성남시장애인복지과와 지역의 인적자원, 그리고 무엇보다 한우리장애인주간보호센터의 이용인과 종사자, 가족들이 보여준 깊은 신의를 잊지 못할 것이다. 어디에 있더라도 현장의 누구도 홀로 남겨지지 않도록 굽은 길을 바로 세워 함께 걸어갈 것이다.

[천자춘추] 시민과 호흡하는 문턱없는 미술관

우리나라는 산업화 이후 급격한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겪었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세대 간 문화격차가 심한 편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개인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MZ세대와 달리 베이비붐세대와 시니어 세대는 여가문화의 향유 성향도 매우 다르다. 중장년 이상의 세대는 주로 등산 등 건강관리를 위한 활동이나 TV 시청 등 대중매체 콘텐츠 소비로 여가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미술관 관람은 어떨까.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 특별활동으로 또는 가족과 함께 박물관과 미술관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MZ세대에게 미술관 방문은 낯설기만 한 문화활동이 아니다. 반면 베이비붐세대와 시니어 세대에게 미술관 방문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 문화활동 중 하나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미술관을 한번도 방문해보지 않았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1986년 경기 과천에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하면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미술관 시대가 시작됐다. 그리고 1995년부터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를 통한 선출제도가 시행되면서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1990, 2000년대에 걸쳐 전국적으로 공공미술관 설립이 늘었다. 이러한 문화환경의 변화는 MZ세대가 어린 시절 미술관 방문 경험을 갖게 된 시기와 일치한다. 현재는 서울과 청주에 있는 4관의 국립미술관과 함께 각 지역에 총 80여곳의 공립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다. 사립미술관까지 포함하면 전국에 등록미술관만 해도 2024년 기준 295곳에 이른다. 우리 주변에 미술관이 많아지면서 미술관은 관람객을 늘리고 이용자의 문화 향유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전시와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공립미술관은 각급 기관, 기업체,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수원시립미술관은 미술관 방문이 낯선 중장년층과 시니어 세대의 미술관 방문을 유도하고 주민이 자주 찾는 친근한 문화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미술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모두가 누리는 미술관’을 주제로 하는 기획전시 개최와 홍익대와의 협력사업으로 미술심리치료 및 상담을 통한 시민 심리정서 돌봄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수원시립미술관이 운영하는 수원시립만석전시관은 노인의 문화예술 향유권을 확대하기 위해 수원시 광교노인복지관과 맘밭노인복지관 두 곳의 노인복지기관과 협약을 맺었다. 앞으로 미술관은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 정보 제공, 교육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도모할 계획이다. 지난달 지역의 통장협의회 회원 30여명이 미술관을 방문해 문화자원봉사자인 도슨트의 전시해설을 들으며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도 문턱을 낮추고 시민과 호흡하는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지역을 대표하는 주민단체의 미술관 방문을 확대하려 한다.

[천자춘추] 21세기 메가트렌드 이주

이주는 21세기를 특징 짓는 메가트렌드 가운데 하나다. 특정 지역을 넘어 세계적인 영역에서 중장기적인 변화를 추동해내는 거대한 동향이나 추세가 메가트렌드다. 국제사회가 이주를 메가트렌드로 평가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메가트렌드로서 이주는 모든 국가와 개인의 삶에 ‘디지털 전환’이나 ‘탄소중립’에 버금가는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주는 더 이상 몇몇 사람들만의 특별한 경험일 수 없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시공간이 통합’된 하나의 지구는 누군가가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무제한으로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주는 전 지구인의 보편적인 경험으로 일반화된다. 실제로 전 지구인의 7명 중 1명은 이주민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이주는 전 지구적인 지속가능한 발전에 ‘불가피하고 필수적이며 바람직한’ 동력으로 재평가된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세부 과제에 이주가 포함돼 있다. ‘질서 있고 안전하며 일상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들의 이주와 유동성의 보장’이 전 지구적인 발전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유엔의 모든 회원국은 동의한 바 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인구 감소, 노동력 부족, 지역 소멸’이라는 국가 존망과 관련된 중차대한 문제의 해법과 관련해 이주는 선택지가 아니라 절박한 정언명령(定言命令)일 수밖에 없다. 활력 있고 창의적인 이주민들의 적극적인 유치를 간과한 채 우리의 미래를 결코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보편화된 이주의 시대, ‘국민과 외국인’, ‘선주민과 이주민’류의 인구 집단에 대한 전통적인 범주화의 유효성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제 모든 이는 ‘현재적인 이주민’이거나 ‘잠재적인 이주민’일 뿐이다. 우리와 그들의 엄격한 경계에 근거한 ‘우리끼리주의’ 역시 과거와 같은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새로운 경쟁력은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우리’ 혹은 ‘더 많은 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과 구분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메가트렌드로서 이주를 수용하는 모든 이들이 회피할 수 없는 질문은 이렇다. 당신은 ‘잠재적인 이주민’으로서 ‘현재의 이주민’들과 연대할 준비가 돼 있는가. 당신은 지속가능한 공동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 위해 ‘우리’의 경계를 확장하고 ‘더 많은 우리’를 환대할 준비가 돼 있는가.

[천자춘추] 공동체의 추억

우리나라는 혈연과 지연을 기반으로 하는 농촌 공동체 사회였다. 과거에는 모두가 함께 일해야만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었다. 이웃이 가끔 꼴 보기 싫어도 서로 도와가며 사는 것이 미덕이었고 그래야만 내가 아쉬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쳐 어느덧 지능정보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애써 힘을 합치지 않아도 혼자서 일을 처리하는 시대가 됐다.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던 기성세대와 달리 부부가 가사와 육아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직장에서 상하 관계를 내세우면 꼰대로 취급받게 됐고 퇴근 후 회식 자리에서 직장생활의 고충을 토로하기보다 정시에 퇴근해 운동과 취미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새로운 직장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지금은 꽤나 완성도 높은 법제도가 사회적 약자를 비롯해 개인을 보호한다. 가정이든 학교든 교육을 명분으로 손찌검을 하지 못하게 됐고 욕설조차 금지하는 사회가 됐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서양 현대 이전에는 강한 가족 공동체에 약한 개인이 소속됐지만 지금은 강한 국가와 강한 개인의 시대임을 강조한 바 있다. 우리 사회는 지난 100년에 걸쳐 체화했던 가부장적 문화를 상당 부분 청산했다. 더 이상 집단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게 됐으며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가장 우선시하게 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동체 소속감과 정서적 안정도 함께 사라졌다. 즉, 개인은 가부장적 공동체의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그와 동시에 한없이 외로워졌다. 그래서인지 나이 든 정치인이나 기관의 리더들은 공동체에 대한 추억이 너무도 강렬하다. 그들은 일제히 공동체 복원을 외쳤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공동체 관련 사업을 앞다퉈 추진했다.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외로움이다. 어떤 사람도 교감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기 어렵다.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노인 10명 가운데 2명이 혼자 살고 10가구 중 4가구는 1인 가구다. 2022년 보건복지부에서는 고립·은둔 청년을 50만명 이상으로 추산했다. 2018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까지 임명해 사회적 대응에 나섰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절박한 시대는 일단 막을 내렸지만 외롭지 않기 위해 우리는 다시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다만 힘들게 얻은 개인의 영역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서로에게 세련되게 다가서려면 과거와 달리 ‘사회기술(社會技術)’을 따로 익혀야 할지도 모른다.

[천자춘추] 1차원·2차원적 선거운동

요즘 대통령선거운동이 한창이다. 거리에는 확성기를 단 선거 차량이 돌고 후보들의 현수막이 도심 곳곳에 걸려 있다. 방송에서는 TV 토론이 이어지고 사람들은 각 후보자에 대한 평가와 의견을 쏟아낸다. 후보자들은 자신을 선택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지도자를 뽑는 일은 유권자에게도 큰 부담과 스트레스를 준다. 겉으로는 “마땅한 후보가 없다”거나 “관심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나 무책임하게 아무나 뽑을 수는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선거가 끝난 후에는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감정으로 남는다. 이상적으로는 후보의 과거 이력, 공약의 현실성, 주변 인물의 성향, 자신에게 맞는 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일상에 쫓기는 시민이 모든 정보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당적, 지역 연고, 선거홍보물의 인상 정도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선거운동 과정을 통해 지도자의 면모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뚜렷한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어떤 정치적 태도를 지닌 사람인지는 유추해볼 수 있다. 바로 1차원적 정치를 하는 사람인지, 2차원적 정치를 하는 사람인지를 구별하는 것이다. 1차원적 정치활동은 주로 자신을 과대포장하거나 경쟁자를 공격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들은 “나는 경험이 풍부하고 내 공약이 가장 현실적”이라며 자신이 더 낫다는 것을 강조한다. 상대를 끌어내리는 전략을 통해 자신이 돋보이길 원하며 정치적 우위를 확보하려 한다. 이는 ‘선거는 전쟁’이라는 논리에 따라 자신이 더 유능하다는 인식을 유권자에게 심으려는 접근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 스타일은 단기적 승리를 위한 전략일 뿐 장기적 국가 비전을 수립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경쟁자보다 우월해 보이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국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전략이나 실천력은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반면 2차원적 정치를 하는 인물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국민의 질문에 귀 기울이고 공동의 목적을 탐색한다. 그는 “우리 사회의 가장 절박한 과제는 무엇인가”, “국민이 바라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소통을 통해 해답을 찾으려 한다. 단순한 승부보다 비전과 방향을 중시하고 정책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설득하려 한다. 경쟁자와의 갈등보다는 다양한 관점을 통합하려 노력하며 공동체적 가치와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오늘날 우리가 선택해야 할 지도자는 바로 이러한 2차원적 정치를 실천하는 인물이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변화와 성장의 책임을 짊어지는 자리다. 경쟁자를 이기기 위한 선거운동에만 몰두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하는 인물에게서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기 어렵다.

[천자춘추] 관세청 조사 확대에 기업의 대응 방향

관세청은 종전에 최근 2년간 연평균 수입금액 3천만달러 이상이고 매출액 1천억원 이상 기업에 대해 4~5년 주기로 수입물품 과세가격 누락에 따른 관세 등의 세액 추징 및 수출입 통관요건 준수 여부를 점검하는 정기 관세조사를 실시했다. 지난해부터는 최근 2년간 연평균 수입금액 3천만달러 미만의 관세조사의 사각지대에 있던 기업에 대해 비정기 관세조사 대상으로 선정해 관세조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2월에는 서울본부세관 등 전국 본부세관에 관세조사팀을 증설해 관세조사 대상 기업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또 관세청은 외환시장의 질서를 확립하고 기업의 외국환거래법규 준수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 수출입거래, 용역거래, 자본거래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외환 거래가 발생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4~5년 주기로 점검하는 ‘정기 외환 검사’ 제도를 2025년부터 신규 도입해 시행 중이다. 이 제도를 실행하기 위해 지난 2월 서울본부세관 등 전국 본부세관에 외환검사팀을 증설했고 3월부터 수출입 물품이 있는 화장품, 의료기기, 의약품, 제지 등 관련 업종뿐만 아니라 물품의 수출입이 없어 관세청의 관리 대상이 아니었던 엔터테인먼트, 게임, 해운, 포워딩 등의 관련 업종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외환 검사가 시작됐다. 현 시점에서 외환 검사가 종결된 대부분의 기업은 외국환거래법상에 지급 및 수령의 절차, 지급 및 수령 방법, 자본거래 등에서 요구하는 한국은행 등 외환 당국에 대한 신고 또는 보고의무를 누락해 수억원부터 수백억원대의 과태료 부과 처분을 받았다. 현재 외환 검사가 진행 중인 기업들도 과태료 부과 등의 조치가 예상된다. 관세청은 향후 외환 검사를 한 번도 받지 않았던 기업이나 업종에 대해선 외환 검사를 지속적으로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관세조사 또는 외환 검사가 예상되는 기업은 과거 5년간 세관에 수출입 신고한 내역과 수출입거래 등에 대한 리스크를 전문성 있는 관세사의 도움을 받아 미리 점검해 개선안을 마련하고 상시 점검 업무 프로세스를 구축한다면 기업의 경영 안정성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이미 세관으로부터 조사 통지를 받은 기업이라면 고액의 추징 세액 및 과태료 부과 등의 리스크 규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사 초기 단계부터 관세조사와 외환 검사 대응 경험이 풍부한 관세사의 조력이 필수적이다.

[천자춘추] 미래 국민연금 많이 받으려면

최근 국민연금제도 도입 이래 처음으로 노령연금을 월 300만원 넘게 받는 수급자가 나타났다. 또 몇 달 전 국민연금 월 합산액이 542만원에 이르는 부부 수급자가 처음으로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노령연금 평균 수급액은 67만원대이고 부부 수급자의 연금 합산액 평균이 108만원 수준인 것에 비춰 보면 4.5~5배에 이른다. 이와 관련해 궁금해지는 국민연금 월 수급액을 늘리는 방법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첫번째는 소득활동을 하는 동안 국민연금에 가입해 보험료를 꾸준히 납부하는 것이다. 미납한 기간은 가입 기간으로 산정되지 않으니 보험료를 꾸준히 납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과거에 반환일시금을 수령한 이력이 있는 사람이 해당 기간에 대한 반납금을 납부하고 가입 기간을 복원하는 것이다. 반납금에는 반환일시금 수령 후 이자가 부가돼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반납 대상인 과거의 가입 기간이 복원되고 해당 과거 시점의 소득대체율이 적용돼 가입자에게 더 유리한 면이 있다. 셋째, 추후납부제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추후 납부는 납부 예외 기간, 적용 제외 및 군복무 기간 등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은 기간에 대해 신청 시점의 기준소득월액을 기준으로 납부하고 가입기간으로 산입하는 제도다. 넷째, 소득이 없는 기간에 대해 임의 가입하거나 60세 이후에도 임의계속가입을 통해 가입 기간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임의계속가입의 경우 그 기간 연금을 받지 않고 납부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상담을 통해 유불리를 확인한 후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게 좋다. 다음으로는 연금 수급 연령 도달 후 연금액을 늘리는 방법이다. 노령연금 수급을 연기해 향후 받게 되는 연금액을 늘리는 일명 연기연금이다. 연기비율은 50%, 60%, 70%, 80%, 90%, 100% 중 선택할 수 있으며 연기하는 기간(최대 5년)에 연 7.2%(월 0.6%)를 올려 지급한다. 이같이 연금액을 늘리는 다양한 방법이 있으므로 가까운 국민연금 지사를 방문해 상담을 받아 보고 개인의 가입 이력과 소득 수준 등에 따른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해 노후를 든든하게 준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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