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집 건너 한 집쯤에는 온 몸에 털이 덮인 생명체가 하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반려(伴侶)동물을 기르는 반려동물 천만 시대에 접어들었다. 개와 고양이가 대부분이지만 햄스터, 토끼, 기니피그,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 등 다양한 생명체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과 살아간다. 이들은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이자 가족이라는 의미의 반려동물로 불리며 인류가 동물을 얼마나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생의 최고 지점에 서 있다. 그러나 세상에 빛만 존재하지 않듯 반려동물을 둘러싼 사회 곳곳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유기(遺棄)라는 말에 감춰진 현실이다. 10만이라는 이 적지 않은 수는 대한민국에서 1년 동안 발생한 유기동물 마릿수다. 2017년 이후로 국내 유기동물은 매년 10만마리 이상 구조됐다. 작년에는 이들 중 11%만이 보호자의 품으로 돌아갔고 27%는 입양되거나 기증됐다. 나머지 절반에 가까운 개체는 자연사하거나 인도적 처리라는 이름 아래 죽음을 맞이했다. 정부는 2000년대 후반부터 이 문제를 인식하고 동물보호법 개정을 통해 반려동물 등록제를 의무화했다. 그 덕에 귀가율은 5%에서 약 두 배 가까지 올랐지만 여전히 제도의 실효성은 갈 길이 멀다. 현재는 홍보를 강화하고 시행 대상을 고양이까지 확대하는 등 개선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민적 인식과 책임감이 함께 따라야 한다. 유기동물을 줄이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동물을 되찾아주거나 입양을 장려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가장 근복적인 예방책이 필요하다. 바로 버리지 않도록 만드는 책임 교육이다. 초·중등 교육과정 안에 생명존중 교육이 충분히 포함돼야 하며 반려동물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전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개와 고양이 같은 동물을 기를 때 필요한 지식을 동물과학 수준에서 함양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위스는 반려동물의 복지와 책임 있는 소유를 강조해 입양 전에 행동 이해, 훈련, 건강 관리, 사회화, 법적 책임 등 다양한 주제를 포함한 법적 교육을 이수한다. 이런 교육은 반려동물과의 건강한 관계 형성을 돕는다. 스위스는 반려동물의 유기율이 낮고 동물복지 수준이 높은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반려동물은 누구나 처음에는 사랑스러운 존재로 시작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너무 짓는다, 털이 날린다, 크게 자랐다, 늙고 병들었다, 결혼한다, 이사간다, 돌볼 사람이 없다 등의 이유로 버려지기도 한다. 그 이유가 가볍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 고민할 만한 중대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버릴 가족이었다면 애초에 가족이 되지 말았어야 한다. 함께 살기로 했다면 그 삶은 책임과 선택의 연속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최선을 다해 함께 살아가야 한다. 대부분의 반려견과 반려묘에게 보호자는 세상의 전부다. 그들이 우주이자 삶의 이유다. 화재 현장에서 큰 소리로 짖으며 온 몸을 날려 가족을 구한 개, 4천100㎞를 6개월 동안 홀로 걸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미국의 보비, 10년간 시부야역에서 죽은 주인을 기다린 하치, 11년간 주인의 무덤 곁을 지킨 아르헨티나 캡틴까지. 세상에는 수많은 ‘털 덮인 생명’들이 인간과 깊은 유대를 간직한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작은 책임감이어도 괜찮다. 오늘 없던 책임감이 생기고, 내일 더 깊어지고, 모레엔 단단해진다면 버려질 생명 하나가 줄어들 것이다. 반려와 유기 사이의 거리는 마음 하나 차이다. 선택이 아닌 약속이, 소유가 아닌 책임이 두 거리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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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25-06-18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