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미래] 李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

이재명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회담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회담 세 시간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내 교회와 미군기지의 압수수색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소셜미디어에 갑자기 게시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만년필 선물과 백악관 실내장식에 대한 칭찬을 통해 관세, 방위비, 농수산물 개방 등 난제를 효과적으로 회피했다. 또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을 치하하며 한반도 정책에 대한 긍정적 지지를 끌어냈다. 트럼프 대통령 설득에 성공한 이 대통령은 10월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명분과 동력을 확보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고비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올라온 메시지였다. 그는 “한국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나? 숙청 혹은 혁명 같다. 우리는 그런 것을 용납할 수 없고 한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후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를 직접 거론했다. 이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설명한 뒤 미군기지가 아니라 한국군의 지휘체계와 통제시스템을 조사한 사실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분명 내 오해라 확신한다”고 밝히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한미 조선협력 방안은 트럼프 대통령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조선산업의 몰락을 언급하며 한국과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으로부터 배를 구매할 것이고 동시에 한국이 우리 국민을 활용해 미국에서 직접 선박을 건조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기업의 미국 해군 함정 제조는 경제적 이익과 안보적 유대 강화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남북 문제 해결을 부탁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호감을 얻고 긴장 완화 정책에 대한 지지까지 확보했다. 특히 북한에 트럼프월드를 건설하자는 제안에 트럼프 대통령은 “제 개인적으로는 이제껏 제가 만난 분들의 대북 정책은 적절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접근은 더 나은 것 같다”고 칭찬했다. 이 대통령이 “대통령께서 피스메이커를 하시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함께 북한에 대해 큰 진전을 함께 이룰 수 있다”고 화답했다.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백미는 이 대통령의 한중 관계 설명이었다. 그는 미국과 중국 중 한 국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이분법을 비판하며 한국은 한미동맹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중국과 협력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의 우려가 상당 부분 해소됐고 중국 방문을 앞둔 이 대통령에게 “같이 비행기를 타고 가겠느냐”고 농담을 던질 정도였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관계의 불확실성을 높였던 요인 대부분이 제거됐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와 기업은 좀 더 자신 있게 대미 수출과 투자를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다만 이 계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양국 정상이 합의한 사항을 최대한 빨리 추진해야 한다. 미중 갈등이 격화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정책을 일방적으로 번복하거나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미래] 오사카 엑스포와 국가 브랜딩

지난 4월 막을 올린 오사카 엑스포가 반환점을 돌았다. 개막 전만 해도 폭증하는 건설비와 일본 내 무관심으로 우려를 샀지만 어느덧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성공적인 마무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첨단 기술이 빛의 속도로 쏟아지는 디지털 시대에 특정 장소에 특별히 새로운 것도 없는 기술과 전시물을 모아 선보이는 엑스포는 ‘시대에 뒤떨어진 유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단정은 엑스포라는 플랫폼의 진화를 간과한 것이다. 세계 여행이 쉽지 않았던 시절 다양한 국가의 풍물과 신기한 기술을 전시하던 초기의 만국박람회와는 달리 현대의 엑스포는 미래 사회의 시스템을 시험하고 인류 공동의 해법을 모색하는 거대한 실험실이자 각국의 기술, 문화, 철학이 총동원되는 ‘국가 브랜딩의 올림픽’으로 변화하고 있다. 오사카 엑스포의 공식 주제인 ‘생명이 빛나는 미래 사회 디자인’에서 ‘생명’을 뜻하는 일본어 ‘이노치(いのち)’는 단순한 개별 생명체를 넘어 자연과 우주에 연결된 생명 생태계의 거대한 순환을 상징한다. 일본은 다소 식상해 보일 수 있는 서구의 지속가능성 담론을 전통문화와 연결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재탄생시켰고 이를 엑스포의 대표적 상징물인 ‘그랜드 링’을 통해 구체적인 미학과 기술력으로 구현해냈다. 둘레 약 2㎞에 달하는 세계 최대 목조 건축물인 그랜드 링은 각국 전시관을 품는 울타리인 동시에 관람객에게는 시원한 그늘과 산책로를 제공하며 일본의 전통, 기술, 미학을 하나의 구조물에 응축해 보여준다. 과거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국가의 미래 비전과 철학을 건축물로 체화시킨 것이다. 일본이 전통과 미래를 건축으로 융합했듯 다른 국가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자국의 비전과 핵심 가치를 콘텐츠로 브랜딩했다. 미국은 항공우주국(NASA)의 로켓 발사를 재현한 몰입형 영상으로 프런티어정신과 기술력을 과시하며 인류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선도자 이미지를 각인시켰으며 프랑스는 자국 고유의 장인정신(savoir-faire)과 삶의 예술(art de vivre)을 우아하게 선보이며 문화강국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굳건히 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관도 방문객 140만명을 돌파하며 선전하고 있다. 급증한 건설비로 규모가 축소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K-컬처와 첨단 미디어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그리고 한국관의 키워드인 ‘with hearts’에 걸맞은 파견 직원들과 청년 서포터즈의 진심 어린 노력으로 다른 주요 국가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호평받고 있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개별 콘텐츠 및 운영상의 성과와는 별개로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내는 국가적 지향점, 즉 철학과 미학의 일관성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장기적 전략의 부재 속에서 부처 간 칸막이에 막혀 총체적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우리 시스템의 고질적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과정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경쟁국보다 1년 늦게 뛰어들어 냉정한 분석 대신 희망 섞인 낙관론에 기댄 채 막판 총력전에만 매달렸던 전형적인 ‘한국형 추진 방식’의 한계였기 때문이다. 엑스포는 문화, 기술, 산업, 그리고 철학이 총동원된 국가 브랜드의 경연장이다. 그리고 한 국가의 진정한 저력은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로 엮어 내는 보이지 않는 힘, 즉 국가 거버넌스의 깊이에서 나온다. 우리의 다음 엑스포는 바로 이 근본적 지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함께하는 미래] 공존예찬

인류와 동물은 지구를 공유하는 존재로서 서로의 이익을 나눌 때 지속가능한 관계로 발전했다. 지금까지는 인류가 동물을 바라본 시각을 살펴보며 현재의 개선 방향에 관해 기술해 왔다. 이제는 인류와 동물의 관계를 고찰하는 마무리 단계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 개선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애써 온 모든 분의 노고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야생동물 서식지 복원 연구자는 험한 산에서 산양을 따라 길을 헤매고 반달가슴곰을 추적 관리한다. 이분들 덕분에 지구 생태계는 건강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동물보호 운동가는 정책과 법률로 변화를 만들고자 국회 앞에서 온종일 피켓을 들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끈질긴 노력으로 한 줄 문장을 법전에 새겨 넣을 때 그것은 수많은 생명을 지켜낼 것이다. 어디 이분들뿐일까. 동물을 소중히 대하는 선생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마음에는 생명 존중의 씨앗이 심긴다. 시장의 냉정한 계산 속에서도 영양에 충실한 사료를 만드는 사람들, 곱고 노련한 손길을 담은 미용사, 필요한 곳에서 동물을 정성껏 관리하는 돌보미와 훈련사의 하루는 어제보다 더 나은 미래를 선사할 것만 같다. 사고 현장에서 동물을 구하는 구조대원들과 아픈 생명을 살리기 위해 늦게까지 동물병원을 떠나지 못하는 수의사의 발길은 많은 동물의 고통을 끊고 생을 이어주고 있다. 동물원에는 동물의 상태를 살피고 행동을 풍부하게 만들어 제한된 공간 안에서도 행복을 피워 내려는 사육사가 있다. 실험실에는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으로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애쓰는 연구자들이 있다. 이들의 진지한 양심 앞에서 과학은 더욱 위대해진다. 가축을 기르는 농장에는 주말이나 휴가도 없이 아무리 덥고 추워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밥을 주고 깔짚을 치우고 아픈 가축 옆을 지키는 관리자들이 있다. 우리의 식탁 뒤에는 이렇게 성실한 손길이 숨어 있다. 유기동물 보호소는 어떤가. 너무 많아 보호소의 기능을 잃어갈 때 한 마리라도 더 귀가시키고 입양 보내려고 재활을 돕는 사람들이 있다. 봉사 와서 냄새 진동하는 오물을 치우고, 사료 포대를 옮기고, 땀범벅이 돼도 버려진 강아지 걱정에 임시 보호를 자처하는 이들의 손길은 상처를 희망으로 바꾼다. 무엇보다 이 모든 노력의 토대가 된 사람은 동물을 사랑하는 평범한 당신이다. 아침저녁 밥을 챙겨주고, 비 오는 날 젖은 발을 닦아주고, 마지막 숨을 지키는 이들은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끝까지 함께 살아간다. 한 집에 사는 털북숭이와 오래도록 생활을 공유해온 사람들은 오늘의 사소한 눈맞춤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고 있다. 첫 만남의 귀여움이 세월이 흘러 볼품없는 안타까움으로 변해도 한층 깊어진 유대감은 작은 생애를 끝까지 품게 한다. 이는 사람과 동물이라는 대상을 넘어 생명이라면 누구나 나누고픈 관계의 참모습이다. 삶은 유한하다. 그래서 우린 서로 부둥켜안고 의지해야 한다. 그러다가 어떤 삶이 떠나가면 당장은 참을 수 없는 슬픔에 먹먹한 시간을 보내겠지만 끝내 떠난 삶은 우리에게 밑거름이 돼줄 것이다. 그렇게 잊지 못할 관계는 남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또 다른 누군가를 끌어주는 힘으로 싹틀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동물을 사랑하는 평범한 당신을 온 마음을 다해 존경한다. 앞서 소개한 이들의 길은 다르지만 모두가 향하는 끝은 같다.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 인간과 동물이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는 것. 부디 여러분이 꿈꾸는 따뜻한 공존의 고리가 더 굵어지고 단단해져 생명 존엄이 더 많은 이의 가슴속에 숨쉬기를 기원한다.

[함께하는 미래] 극한으로 치달을 때

연일 시시때때로 울리는 재난안전문자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뉴스를 통해 처참한 재난 현장이 비칠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어쩌면 현재의 재난에 대한 책임이 가장 큰 이들이 천재지변이라고 우격다짐으로 숨기려 하지만 굳이 그것이 인재라는 것을 감출 필요가 없는 시절이 됐다. 지구의 경고를 인지하고 환경의 역습이 시작됐다고 인류사에 외침이 시작된 것이 30여년도 훨씬 지난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와 그들은 무얼 했을까. 우리나라가 극한 폭염과 폭우에 시달릴 때 먼 나라 북유럽 핀란드는 폭염 아닌 폭염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평년 7월 일 최고 기온은 20도 안팎인데 7월 기온이 21일 연속으로 30도 넘는 것이 관찰됐고 이는 역대 최장 기록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동화 속 산타의 썰매를 끄는 순록을 보호하기 위해 물을 충분히 마시도록 권고하거나 높은 기온으로 창궐한 모기의 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관리하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전 세계가 겪는 고난의 행군일 뿐만 아니라 지구 위에 터 잡아 존재하는 모든 존재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 간 무한경쟁 속에서 싸워야 하는 정부는 이상적인 수단인 ‘잠시 멈춤’을 선택하기보다는 기후 위기의 대응책으로 화석발전원을 퇴출하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는 과정에서 이미 두 번에 걸쳐 국정 방향을 공개하며 어느 정부보다 적극적인 횡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정책의 이행 속도는 의도와는 다르게 세상과 사람을 움직일 것이다. 결국 어쩌면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현재와 미래 상황을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각자도생해야 할 수도 있다. 에너지의 대전환보다 인간과 자연의 저항의 크기가 더 커질 수도 있다. 이미 가야 할 길은 분명하기에 새로운 시도와 함께 사람 사는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보듬는 고민도 병행해야 한다. 국민주권 정부가 주창하는 소위 ‘에너지 고속도로’가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 되거나 다방향으로만 돼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마저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곳은 피해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설득하고 보완할 수 있는 고민과 대안을 더 촘촘하게 만들어 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장을 위한 방향성보다는 사람의 온기를 감싸는 것을 우선해 생각해야 한다. 어쩌면 도구를 넘어 존재로 자리잡은 인공지능(AI)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대두되는 시절이지만 이것이 삶과 터전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언급한 것을 전제로 하며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 사회로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다음의 원칙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재생에너지 보급의 시급성·충족성·정의성을 견지하고 국민 누구나 재생에너지 생산·이용의 주인을 지향하며 재생에너지 사회로의 대전환을 촉진하는 과정에서 삶과 생활의 관계를 보완하는 것을 중심에 두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지역과 농촌의 소멸 위기의 대응을 중심으로 탈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 보급에 따른 민주성·공공성·지속가능성 담보를 통해 공동체 복지 증진과 사회경제연대의 가치 함양을 지향해야 한다.

[함께하는 미래] 관세협상의 묘수, 한미 조선 협력

한미 관세협상이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례없는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협상안을 발굴했다. 그중 미국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방안은 지난 25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하워드 러트닉 장관에게 제안한 ‘미국 조선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7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 조선업은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으며 올해 4월9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의 통화에서도 조선 협력을 논의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5월16일 이상균 HD현대중공업 대표와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를 16일 비공개로 만나 상선 및 군함의 건조와 보수·수리·정비(MRO) 방안을 협의했다. 미국의 최고위 정책결정자들이 한국과의 조선 협력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미국 조선업의 몰락과 중국 조선업의 발전에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대양을 지배했던 미국 조선업은 21세기 이후 급속히 몰락해 상선은 물론이고 군함을 충분히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반면 중국은 조선업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켜 2024년 기준 미국의 219척보다 25척 더 많은 234척을 보유하게 됐다. 물론 항공모함 같은 전략자산을 더 많이 가지고 있지만 미국이 중국의 추격을 저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 세계 조선업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약 25%)의 도움이 필요하다. 전 세계 10대 조선사 중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을 제외하면 다 중국 기업이다. 이 때문에 거제와 울산의 조선소가 최근에 한국을 찾은 주요 인사들이 꼭 방문해야 하는 명소가 됐다. 한미 협력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한화오션이다. 이 기업은 작년에 미국의 필리 조선소를 인수합병했다. 미국이 군함을 발주하면 한국이 설계와 기자재를 공급하는 방식의 협력을 통해 이 조선소의 생산능력은 연간 1척에서 16척으로 향상될 예정이다. 또 한화오션은 지난해 미 해군의 월리 쉬라호와 유콘호의 MRO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현재 찰스드류함을 작업하고 있다. 국내 최대 조선사인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7월 미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함정정비협약(MSRA)을 가장 먼저 체결했다. 또 이 기업은 올해 4월 미국 최대의 군수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와 선박 생산성 향상 및 첨단 조선 기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한미 조선 협력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미국 내 해상 운송은 미국에서 건조되고 미국 시민이 소유하며 미국인이 승선한 선박만 허용한다는 존슨법이다. 두 번째는 미군 함정은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될 수 없다는 반스-톨레프슨 수정법이다. 미국이 이러한 법적 제한을 해결해 준다면 한국 조선산업은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강화한다는 점에서 조선 협력은 한미동맹을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 한류의 새로운 패러다임

지난달 넷플릭스에서 선보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개봉 직후 여러 국가에서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했으며 가상 그룹 ‘헌트릭스’와 ‘사자 보이스’의 노래가 빌보드와 스포티파이 차트 최상위권을 점령했다. 메인 테마곡 ‘골든’은 빌보드 핫 100 차트 4위에 오르며 ‘겨울왕국’의 기록을 넘어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BTS나 블랙핑크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이 현상을 두고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한편에서는 한류가 드디어 세계 주류문화의 반열에 올랐다며 환호한다. 케이팝뿐 아니라 민화와 저승사자 같은 한국 소재가 전 세계에 동시 소개된 것은 문화적 성취라는 평가다. 반면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이 케이팝의 단물만 빼먹은 ‘가짜 한류’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제작은 소니가, 배급은 넷플릭스가 맡았고 대사는 대부분 영어다. 한국은 소재만 제공했을 뿐이며 이제 케이팝 최대 기획사는 넷플릭스라는 자조도 나온다. 실제로 헌트릭스 팬덤은 기존 케이팝 그룹을 넘어설 기세이며 퇴마와 케이팝을 결합한 세계관의 슈퍼 IP 경제적 수익은 모두 미국 기업들이 가져간다. 사실 이러한 국제화 모델은 할리우드가 100여년간 구사해 온 비즈니스 전략이다. 디즈니는 유럽 동화로 콘텐츠 제국을 만들었고 뮬란, 알라딘, 모아나 등 각국의 스토리를 애니메이션화했다. 드림웍스의 쿵푸팬더는 중국 무술을 미국식으로 포장했고 픽사의 코코는 멕시코 전통을 가족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일본의 사무라이와 홍콩의 쿵푸가 할리우드의 소재가 됐듯이 이제는 케이팝과 한국문화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단편적 시각이다. 한류가 변방의 문화 현상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원천 소스’의 지위를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도깨비, 저승사자, 호랑이 민화와 갓 같은 전통문화 요소는 물론이고 남산타워와 서울 성곽, 한국식 목욕탕과 길거리 간식 등 대한민국의 매력적인 풍경은 정부가 수십년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도 이루지 못했던 파괴력으로 한국의 국가 브랜드를 드높이고 있다. 그리고 이 배경에는 두 문화를 정확히 이해하는 디아스포라 창작자들의 활약이 있다.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을 필두로 대니얼 대 킴 등 한국계 미국 배우들과 이병헌, 김윤진 등 글로벌 프로젝트 경험이 풍부한 한국 배우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서구의 영화 코드를 모두 체화한 완충제로서 두 문화가 지닌 최고의 가치들을 조화롭게 융합시켰다. 영어 가사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한국어처럼 이들은 한국의 베스트를 세계의 베스트로 성공적으로 업데이트했다. 이제 한류는 한국이 만들어 수출하는 문화상품이라는 정의를 넘어 전 세계가 함께 만들어가는 한국 기반의 글로벌 문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화하고 있다. 더 이상 일방향적 문화 수출이 아닌, 다층적이고 복잡한 글로벌 문화 생산 네트워크의 핵심 허브가 된 것이다. 글로벌 자본과 영향력을 활용하면서도 우리 고유의 목소리를 키워 나가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며 세계와 호흡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의 문화 기획자와 아티스트가 필요하다. 한국적 DNA를 지닌 글로벌 디아스포라 아티스트와 세계적 감각으로 무장한 한국의 차세대 인재들이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바다를 항해하며 만들어 갈 지속가능한 한류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함께하는 미래] 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삶

죽음을 몇 시간 앞둔 환자 곁에 한 고양이가 조용히 다가가 앉는다. ‘오스카’라는 이름의 이 고양이는 환자의 마지막을 예감하듯 침대 위에 올라가 그 곁을 지켰다. 의료진은 오스카의 행동을 보고 가족에게 연락했고 덕분에 유족은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15년을 산 오스카는 100명 넘는 환자의 임종을 예측하고 함께했다. 담당 의사 데이비드 도사 박사는 이 이야기를 책 ‘고양이 오스카’에 담아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전했다. 사람과 감정을 나누는 동물, 우리는 이런 존재를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산책길에서 보호자와 보폭을 맞추며 걷는 반려견과 마트 한편에 따로 마련된 반려동물 간식 판매대를 접할 때 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모습은 이제 그리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 대신 동물에게 기대는 삶’이나 ‘관계 회피의 방식’이라며 이들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이런 관점은 정서적 유대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다. 물론 인간관계의 상처나 두려움을 피하려 동물에게 의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반려동물과 맺는 모든 관계를 회피로 일반화해선 안 된다. 오히려 동물과의 유대는 인간관계를 회복해 가는 정서적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 코로나 시기 미국의 한 요양원에서는 ‘제우스’라는 이름의 방문견이 유리창 너머로 어르신들과 눈을 맞췄다. 말없이 곁에 머물기만 해도 노인들은 “나를 기억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위로를 받았고 고립된 일상에서 다시금 감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또 오리건주의 소년원에서는 유기견을 돌보며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수감 청소년들이 책임감과 자존감을 되찾기도 했다. 개를 돌보며 처음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걸 느꼈다”는 소년의 말은 깊은 사유를 전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관계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관계는 감정의 교류에서 시작된다. 시선, 몸짓, 반응처럼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오가는 순간 우리는 관계 안에 있게 된다. 대상이 반드시 사람일 필요는 없다. 감정을 주고받는 존재라면 동물 역시 유대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나는 결혼하지 않은 채 혼자 살아가는 한 친구를 알고 있다. 그는 9년 넘게 반려견 벤지를 가족처럼 돌보고 있다. 출근 중엔 강아지 유치원에 보내고 주말이면 부모님과 벤지를 함께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노견이 된 지금은 시력도 좋지 않은 벤지를 더욱 살뜰히 돌보고 있다. 그런 친구를 보며 나는 안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혈연이나 인간관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감정의 유대가 언제나 사람 사이에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믿음은 너무 좁다. 누군가에게 가족은 튼튼한 뿌리를 내린 참나무일 수 있다. 또 어떤 이에게는 바람에 흔들려도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화분 같은 존재일 수 있다. 반려동물은 누군가에게 그런 화분 같은 가족이다. 돌봄은 누구를 향하느냐보다 어떻게 행해지는가가 더 중요하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고 관계를 맺는 일은 삶의 깊이를 만든다. 우리가 이 확장을 받아들일 때 사회는 더 다양하고 포용적인 감정의 지형을 가지게 된다. 그러니 사람과 살아야만 온전한 삶이라는 낡은 고정관념을 넘어서야 한다. 감정을 나누는 모든 존재를 존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짜로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협동조합

최근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 탄소중립 선언식’을 갖고 국회 차원의 탄소중립 목표와 이행 경로를 발표했다. 지난 정부에서 공공 부문 탄소중립 목표를 2045년까지 정했지만 국회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보다 10년 앞당긴 2035년까지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마중물 역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4대 실행 과제를 밝히며 그중 하나로 국회 내 태양광 패널과 솔라아치 설치 및 시민참여형 햇빛발전 협동조합을 통한 RE100을 달성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진심으로 국회 스스로가 2035년 탄소중립을 실천하며 2050 국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마중물 역할로 재생에너지 확대와 촉진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걷어내기 바란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2050 탄소중립 실현 목표를 조기 달성해 전 세계 기후위기 대응에 부응하며 제2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서약한 2021년 기준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3배 이상을 충족하기 위해 시급성·충족성·정의성에 기반한 특단의 대책을 담은 ‘에너지 전환법’을 하루빨리 제정하기 바란다. 무엇보다도 재생에너지 사회로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국민 누구나 재생에너지의 생산과 이용의 주인이 돼야 함을 기본 방향으로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와 이행 경로의 법제화,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산업과 전력시장의 개편, 이격거리와 인허가 등의 불합리한 제도 개선 등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전 지구적인 문제인 기후위기 대응과 함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 기후위기 대응의 중심적인 과제가 돼야 성공할 수 있음은 모두가 인정한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마을공동체 중심의 협동조합을 통한 경기 여주시 구양리 마을과 전남 영광 월평마을 성공 사례를 전국화해 공공자원인 재생에너지 발전 이익을 지역공동체가 공유함으로써 지역소멸과 농촌소멸의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국 1천404개 읍·면 가운데 52%가 농촌소멸 위험(499곳)·고위험(227곳) 지역에 해당되기에 주민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이용되는 협동조합을 통해 재생에너지 사회로의 전환을 촉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유럽의 독일, 덴마크 등 주요 기후대응 선진국의 경우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이 에너지원의 많은 부분을 감당하며 성공적으로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10여년 전부터 시민참여형 에너지협동조합이 국민 누구나가 재생에너지 생산과 이용의 주인이 되는 기본방향을 설정하고 활발하게 재생에너지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전국에 수천개의 마을 또는 시·군 단위의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이 설립, 운영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체계적인 지원과 금융 지원 등이 체계가 마련되면 재생에너지 확산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의 지원과 육성에 관한 포괄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관련 정책의 기본원칙과 방향을 제도화하는 한편 햇빛연금·바람연금의 확산을 위한 생태계를 구축해 농촌과 지역소멸의 위기에 대응하는 법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전국 도시와 농촌지역에서 주민 주도로 신속한 재생에너지 보급과 국민 누구나 재생에너지 생산과 이용에 참여해 2050 탄소중립에 부응하며 지역공동체 복리 증진과 주민소득 증대로 지역과 농촌소멸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

[함께하는 미래] 거꾸로 가는 트럼프 독트린

취임 6개월 만에 트럼프 독트린이 총체적 난관에 봉착했다.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중재를 위해 중동특사를 파견했으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폭격 이후 악화됐다. 관세전쟁에서도 미국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에 부딪혀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를 완화했다.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은 ‘의도적인 전략적 모호성’이라 주장했으나 이런 변화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과 상당히 배치된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로 불리는 트럼프 독트린의 목표는 미국의 국가안보에 직결되지 않는 불필요한 전쟁의 종식과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억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과 중동에서 철수한 군사력을 중국의 주변 지역으로 재배치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키스 켈로그 우크라이나특사는 물론이고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특사까지 푸틴 대통령에게 보내 휴전협상을 중재했다. 4월 미국이 제안한 평화협정안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모두 거부하자 그는 미국이 협상에서 철수하겠다고 위협했다. 지난달 초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포로 및 시신을 교환했지만 휴전협상이 전혀 진척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인프라를 여러 차례 대규모로 공격하고 우크라이나도 러시아 공군기지 등을 공습했다. 나토 가입과 점령지 처리에 대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대치하고 있어 미국의 중재자 역할은 당분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외교적 해결보다 군사적 개입으로 선회했다. 그는 사전 보고 없이 이스라엘과 이란 공습을 논의했다는 이유로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5월1일 전격 해임했다. 그러나 지난달 13일 그는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에 대한 폭격을 용인했다. 더 나아가 미국 해군과 공군은 22일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의 핵시설을 공습하는 ‘한밤의 망치’ 작전을 실시했고 이란은 23일 카타르 내 미군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적 지원으로 MAGA가 MIGA(Make Israel Great Again)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대중 관세 협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확실하게 굴복시키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이견을 봉합했다. 5월 제네바와 런던에서의 고위급 무역회담에서 양국은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강화, 중국인 유학생 비자 취소 방침, 대미 희토류 수출 통제 시행 등을 둘러싸고 대립했다. 미국의 자동차 및 방위산업에서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희토류 부족이 심화되자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24일 중국이 요구한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의 완화를 수용했다. 중국이 미국의 경제적 강압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을 성공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미국은 수세에 몰리게 됐다.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 이후 대북 정책에서도 트럼프 독트린이 변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지난달 27일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고 정말 잘 지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욕의 북한 외교관들은 6월 초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낼 친서의 수령을 거부했다. 협상이 진전되지 않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협상보다 군사작전을 우선할 수도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은 미국의 협상 제안을 조속히 수용해야 할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 메타버스·AI 결합 ‘차세대 인터페이스’

애플은 6월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리퀴드 글라스(Liquid Glass)’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선보였다. 기존 스마트폰 화면이 하나의 판 위에 정보를 보여줬다면 이제는 여러 겹의 투명한 유리창이 겹치듯 정보를 전달한다. 사진첩을 보다가 알림이 떠도 알림창이 반투명하게 처리돼 뒤의 사진을 계속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발표 직후 인공지능(AI) 경쟁에서 뒤처진 애플이 한가하게 예쁜 디자인에나 신경 쓴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이 기술의 함의를 놓치고 있다. 애플의 증강현실 기기인 비전 프로(Vision Pro)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이 투명 인터페이스는 단순히 화면을 보기 좋게 꾸미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큰 화제를 모은 스타트업 ‘클루리’의 데모 영상에도 이 투명 인터페이스가 등장한다. 영상 속에서 연애 경험이 없는 학생은 데이트 상대 앞에 앉아 눈앞의 투명한 정보창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AI 연애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대화를 이어간다. 클루리의 창업자 로이 리는 도발적인 인물이다. 그는 AI를 이용해 빅테크 기업들의 면접을 통과하는 과정을 공개했다가 컬럼비아대에서 퇴학당했지만 이후 오히려 수천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며 ‘모든 것을 커닝하라’는 슬로건을 내건 회사를 차렸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모든 정보를 AI가 가지고 있는데 굳이 그것을 암기하고 평가하는 방식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인류는 AI라는 ‘치트키’의 도움을 받아 일상을 살아가야 할 것이고 이 치트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술이 주변 사람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현실 세계와 디지털 정보가 겹치는 중첩형 투명 인터페이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실 세계 위에 디지털 정보를 덧입히는 방식은 이미 자동차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등을 통해 대중에게도 낯설지 않은 기술이다. 하지만 이 콘셉트가 새롭게 부각되는 이유는 투명 디스플레이 위에 펼쳐지는 것이 단순한 영상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맥락을 파악해 전달되는 AI 정보, 즉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지능(Ambient AI)’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철학자 마크 와이저는 “가장 심오한 기술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사라지는 기술”이라고 했다. 이 개념에 맞춰 애플의 투명 인터페이스, 그리고 메타와 구글이 선보이는 스마트 글라스는 현실과 디지털의 경계를 지우며 ‘보이지 않는 지능’의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는 2016년 증강현실이 “10년 후의 기술”이라고 예측했다. 그 10년이 돼가는 지금, 인공지능과 결합한 증강현실은 단순히 스크린을 눈앞으로 옮기는 것을 넘어 세상 전체를 화면으로 바꿔 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작은 스마트폰의 화면에서 벗어나 시야 위에 중첩되는 현실 세계의 정보를 실시간 맞춤형으로 볼 수 있다. 풍속과 심박수 등을 고려한 최고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달리기를 할 수 있고 안경 위에 뜬 AI의 실시간 가이드에 따라 기계를 조작하고 복잡한 외과수술을 할 수도 있다. 용도 폐기된 것 같았던 메타버스가 AI와 결합되면서 모바일폰을 대체할 차세대 인터페이스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 반려와 유기 사이의 거리

네 집 건너 한 집쯤에는 온 몸에 털이 덮인 생명체가 하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반려(伴侶)동물을 기르는 반려동물 천만 시대에 접어들었다. 개와 고양이가 대부분이지만 햄스터, 토끼, 기니피그,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 등 다양한 생명체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과 살아간다. 이들은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이자 가족이라는 의미의 반려동물로 불리며 인류가 동물을 얼마나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생의 최고 지점에 서 있다. 그러나 세상에 빛만 존재하지 않듯 반려동물을 둘러싼 사회 곳곳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유기(遺棄)라는 말에 감춰진 현실이다. 10만이라는 이 적지 않은 수는 대한민국에서 1년 동안 발생한 유기동물 마릿수다. 2017년 이후로 국내 유기동물은 매년 10만마리 이상 구조됐다. 작년에는 이들 중 11%만이 보호자의 품으로 돌아갔고 27%는 입양되거나 기증됐다. 나머지 절반에 가까운 개체는 자연사하거나 인도적 처리라는 이름 아래 죽음을 맞이했다. 정부는 2000년대 후반부터 이 문제를 인식하고 동물보호법 개정을 통해 반려동물 등록제를 의무화했다. 그 덕에 귀가율은 5%에서 약 두 배 가까지 올랐지만 여전히 제도의 실효성은 갈 길이 멀다. 현재는 홍보를 강화하고 시행 대상을 고양이까지 확대하는 등 개선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민적 인식과 책임감이 함께 따라야 한다. 유기동물을 줄이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동물을 되찾아주거나 입양을 장려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가장 근복적인 예방책이 필요하다. 바로 버리지 않도록 만드는 책임 교육이다. 초·중등 교육과정 안에 생명존중 교육이 충분히 포함돼야 하며 반려동물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전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개와 고양이 같은 동물을 기를 때 필요한 지식을 동물과학 수준에서 함양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위스는 반려동물의 복지와 책임 있는 소유를 강조해 입양 전에 행동 이해, 훈련, 건강 관리, 사회화, 법적 책임 등 다양한 주제를 포함한 법적 교육을 이수한다. 이런 교육은 반려동물과의 건강한 관계 형성을 돕는다. 스위스는 반려동물의 유기율이 낮고 동물복지 수준이 높은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반려동물은 누구나 처음에는 사랑스러운 존재로 시작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너무 짓는다, 털이 날린다, 크게 자랐다, 늙고 병들었다, 결혼한다, 이사간다, 돌볼 사람이 없다 등의 이유로 버려지기도 한다. 그 이유가 가볍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 고민할 만한 중대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버릴 가족이었다면 애초에 가족이 되지 말았어야 한다. 함께 살기로 했다면 그 삶은 책임과 선택의 연속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최선을 다해 함께 살아가야 한다. 대부분의 반려견과 반려묘에게 보호자는 세상의 전부다. 그들이 우주이자 삶의 이유다. 화재 현장에서 큰 소리로 짖으며 온 몸을 날려 가족을 구한 개, 4천100㎞를 6개월 동안 홀로 걸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미국의 보비, 10년간 시부야역에서 죽은 주인을 기다린 하치, 11년간 주인의 무덤 곁을 지킨 아르헨티나 캡틴까지. 세상에는 수많은 ‘털 덮인 생명’들이 인간과 깊은 유대를 간직한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작은 책임감이어도 괜찮다. 오늘 없던 책임감이 생기고, 내일 더 깊어지고, 모레엔 단단해진다면 버려질 생명 하나가 줄어들 것이다. 반려와 유기 사이의 거리는 마음 하나 차이다. 선택이 아닌 약속이, 소유가 아닌 책임이 두 거리를 결정한다.

[함께하는 미래] 대선, 그 후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과 정의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계엄 사태로 촉발된 조기 대선이 막을 내렸다. ‘빛의 광장’의 목소리로 모아 낸 내란 청산과 사회 대개혁을 염원하는 국민의 열망이 반영된 결과다. 장기간 거꾸로 가고, 헝클어지고, 내던져진 사회개혁 과제가 무논에 갓 모내기한 모가 뿌리 내리듯 소중한 생명으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위기 상황에서 빛나던 국민 개개인의 담대함과 통찰력, 용기 있는 집단지성이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을 더 재촉하기를 응원한다. 대선 기간 각 정당의 후보자들은 수많은 공약을 발표했다. 선거는 끝났으나 조기 대선으로 인해 당선인이 국정을 차분하게 준비할 수 있는 인수위원회 절차는 없고 존속 기간이 짧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오랜 정당 활동의 역사가 있기에 큰 틀에서 국정의 정책 방향과 이행 수단에 대한 예측이 어렵지는 않지만 열린 광장을 통해 봇물처럼 쏟아낸 국민의 기대를 제대로 수용하기 바란다. 무엇보다 탁상머리를 넘어 현장 중심의 경험과 소통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며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좌지우지한다는 국민 중심의 원칙을 되새기기 바란다. 잘못된 과거는 과감하게 청산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에 대한 청사진은 대선 기간 공표한 공약에 얽매이기보다 적어도 임기 초 6개월 이내에 국민 공론화를 통해 명료하고 촘촘하게 점검하며 필요한 경우 묻고 재설계해야 한다. 특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지구 인류 공동의 과제인 기후위기 대응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공약이 그렇다. 이미 기후대응 선진국에서 검증되고 일반화돼 성과가 분명한 정책과 사업에 인력과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 그 결과가 사회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고 사람 관계 속에서 숨쉬는 것이어야 빛을 발할 것이다. 과거 우리가 누렸던 ‘플라스틱’이 현재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지 과도한 풍요와 편리함을 취한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것이 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일 것이다. 소위 ‘딜레마적 물질’이라고 불리는 플라스틱 제품은 일반적으로 값싸고, 만들기 쉽고, 가볍고, 편리해 그 쓰임새와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쓰는 과정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하고, 함유된 유해화학물질이 방출되며, 사용 후 소각 과정에서도 온실가스는 물론이고 대기오염 물질이 생성돼 인간과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그럼에도 마치 공기와 물처럼 당연시된 익숙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젠 정책의 실패를 경험하기에는 한정된 재원, 한정된 토지, 그리고 한정된 시간이 우리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후위기 대응과 재생에너지 사회로의 전환을 앞당기는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최근 지역 에너지협동조합의 모임인 경기시민발전협동조합협의회와 인천·경기기자협회,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이 ‘기후위기 대응 기후저널리즘’ 활동이라는 의미 있는 공동 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언론이 단순한 기상이변이나 재난 차원의 문제로 다루는 정보 전달 차원을 넘어 사고의 전환과 삶을 영위하는 방식의 변화를 동반하는 쟁점을 다뤄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을 확인한 것이다. 작은 변화가 큰 파도를 만들어낸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기후위기와 싸우는 것을 도울 수 있는 10가지 방법 중 하나로 “목소리를 내라”고 권고한다.

[함께하는 미래] 새 정부를 위한 경제안보 전략

새 정부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경제안보 문제는 한미 관세 협상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2월 철강·알루미늄 관세 25%, 3월 자동차 관세 25%, 4월 상호관세 25%(7월8일까지 10%만 적용)가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5월1~25일 대미 수출에서 자동차 32%, 철강은 20.6% 급락했다. 이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협상이 하루빨리 타결돼야 한다. 현재 18개국과 협상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미국이 우리나라와만 특별히 빨리 협상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상호관세 인하 조치가 만료되는 시점까지 한 달 남짓 남았다.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해 신임 장관이 협상을 주도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새 정부는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신속하게 협상안을 마련해 교섭을 진행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의 통화에서 대미 무역흑자, 관세, 조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합작투자, 방위비 분담금을 언급했다. 그러나 25일 한미 ‘2+2 통상협의’ 및 산업부-미국 무역대표부(USTR) 간 장관급 협의 이후 환율과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협상 의제에서 배제됐다. 통상교섭본부와 USTR의 기술협의에서는 균형 무역, 비관세 조치, 경제안보, 디지털 교역, 원산지, 상업적 고려 등 6개 분야가 다뤄지고 있다. 특히 제2차 기술협의에서 USTR은 2025년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에 담긴 구글의 정밀지도 반출 신청 및 미국 기업의 유전자변형생물체(LMO) 감자 재배 적합 판정 등과 같은 비관세 장벽의 해소를 요구했다. 국방비 증액이나 방위비 분담금 인상보다 정치적으로 덜 민감해 이런 요구들은 심각한 논란 없이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산업의 대미 수출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에 상호관세와 철강·알루미늄 관세보다 자동차 관세율 인하에 집중해야 한다. 지난해 완성차의 49.1%, 자동차부품의 36.5%가 미국으로 수출됐으며 전체 대미 무역흑자에서 자동차 비중이 60%를 넘었다. 지난달 8일 타결된 협상에서 영국은 완성차 10만대까지 관세율을 25%에서 10%로 인하하도록 미국을 설득했다. 2022년 이후 영국의 대미 완성차 수출이 10만대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국은 피해를 최소화했다. 우리나라도 영국과 유사한 방식으로 미국에 양보를 받아낼 수 있다면 대미 자동차 수출의 감소세가 둔화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타결을 선언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렇게 된다면 당분간 한미 관계는 순항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우리 대통령을 비판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처럼 난처한 상황에 빠지지 않으려면 장관급 회담이 차선책으로 고려돼야 한다. 장기적으로 대외 의존도를 줄이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내수 활성화다. 미국은 상호관세 행정명령에 한국의 내수 비중이 49%로 미국의 68%에 비해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내수 비중이 늘면 대외 충격이 완화돼 정책의 자율성이 확대된다. 이런 점에서 내수 진작은 미국과의 갈등을 줄이는 동시에 경제안보의 기반을 견고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 부고: 일자리 (RIP Jobs)

오픈 AI의 영상 생성 서비스 ‘소라’의 새 버전으로 ‘지브리 프사’ 열풍이 번지자 해외 소셜 미디어에는 ‘RIP Animator(부고: 애니메이터)’라는 문구가 떠돌았다. 그리고 지난주 구글이 동영상 생성 프로그램 ‘VEO 3’와 ‘FLOW’를 선보이면서 그 부고장은 곧 ‘RIP Filmmaker(부고: 영화감독)’으로 바뀌었다. 구글이 유튜브와 구글 포토의 막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보인 이 서비스는 창작의 민주화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2차 대전의 전장, 신비한 우주 탐험, 서울의 거리를 거니는 연인들까지—상상하는 모든 장면이 전문적 영상 지식 없이도 구현된다. 영화 제작 경험이 전무한 일반인조차 텍스트 몇 줄만으로 편집과 대사, 음향까지 완비된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은 영상 길이가 짧고 완성도 또한 방송 수준에 못 미치지만 생성형 동영상 기술이 대중에 공개된 지 1년 조금 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술의 발전 속도는 경이롭다. 누구나 영화감독이 될 수 있는 시대, 그리고 기존 감독들은 대규모 제작진 없이 상상력만으로 원하는 콘텐츠를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는 분명 창작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변화다. 자본과 시스템의 제약에서 벗어나 순수한 창의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신세계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냉혹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스태프 없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전문 인력이 설 자리를 잃는다는 의미이고 모두가 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창작자들의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 초 마이크로소프트는 인공지능(AI) 투자에 집중하기 위해 전 세계 직원의 3%에 해당하는 6천여명을 해고했으며 놀랍게도 해고자 중에는 AI 부문 관리자들도 포함돼 있었다. 미국의 한 시장 조사에 따르면 2026년까지 영화, TV, 애니메이션 분야의 10만개 이상 일자리가 AI의 직접적 영향권에 놓일 것으로 예측된다. 많은 이들이 AI 시대에도 과거 산업혁명 때처럼 사라지는 일자리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AI 혁명의 속도와 규모는 과거와는 그 성격과 차원이 다르다. 마부는 운전 기술을 배워 새로운 운송 수단인 자동차 운전기사가 될 수 있었지만 AI 시대에는 하나의 알고리즘이 수많은 운전기사를 대체하게 된다. 유발 하라리의 예언처럼 인간보다 뛰어난 기술의 발달로 수많은 사람들이 ‘무용 계급’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노동과 직업은 단순한 경제적 수단을 넘어 자아 실현의 통로, 인간 존재의 증명이다. 한 평론가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가’는 결국 ‘우리는 누구인가’와 연결돼 있는데 AI 기술이 이런 인간의 가치를 규정하던 근본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가 AI가 열어가는 신기한 가능성과 놀라운 효율성에 감탄하는 사이 누군가의 생계와 정체성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AI 시대의 개인적 경쟁력 확보 방안과 함께 이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혁신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자신의 일자리 앞에, 그리고 국가 경쟁력 앞에 부고장이 날아 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함께하는 미래] 가축의 편에서

템플 그랜딘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카우보이 복장에 열정 가득한 눈을 가진 그는 가축 복지 분야에서 가장 존경받는 박사다. 템플은 자폐를 안고 살았고 주변 사람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소음과 장면이 참을 수 없는 불안과 공포로 밀려오곤 했다. 어린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고모 부부가 운영하는 소 농장에서 지내면서 부터였다. 농장 심부름을 하며 바라본 소는 불안했던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그는 맑은 눈의 소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떨리는 순간이었다. 덩치 큰 소들은 일제히 그를 에워쌌지만 전혀 다치게 하지 않았다. 차츰 바닥에 앉기도 하고 때로는 누워 소와 시간을 보내면서 템플은 동물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는지 공감했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석사과정으로 동물과학을 공부하면서 가축 핸들링과 도축장 문제의 원인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인지했다. 특히 도축장의 소가 앞으로 가지 못하고 갑자기 멈추는 일이 흔한데 핸들러들은 이유를 몰라 소리를 지르거나 막대기로 위협하는 일이 잦았다. 소가 멈추는 이유는 시각, 청각, 후각이 예민하고 정보 처리하는 전두엽의 운영체계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만약 햇빛에 반사된 물이나 작은 소음, 바닥에 음영이 나타나면 동물은 심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템플은 가축의 스트레스 행동과 환경 요인의 관계를 종합해 연구를 진행했고 이를 통해 가축 핸들링 기준과 동물복지 도축장 시설 설계를 이끌었다. 그가 설계한 곡선형 통로는 가축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유도해 스트레스를 최소화했다. 이 시설은 오늘날 미국과 캐나다 대형 도축장의 절반이 채택해 수많은 동물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여주고 있다. 동물보호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동물권리(animal right)를 떠올린다. 동물권리는 인간의 목적을 위해 동물을 이용하는 것 일체를 반대한다. 동물보호 단체의 이념과 실천 열정은 생명존중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먹거리 보급을 위해 가축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동물의 고통을 덜어주기가 어렵다. 인류가 살아가는 한 가축은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동물보호에도 동물복지와 같은 현실적인 노선이 병행돼야 한다. 인류에게 희생되는 가축이기에 더 외면받지 않아야 하고 사각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 그런 가축이 처한 현실을 현장에서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이 바로 템플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 일부 동물권리론자들은 그의 활동을 “가축 도축을 정당화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가축의 운명을 살아가는 동물에게 일생을 바쳐 더 나은 삶을 제공하려 노력했고 실질적인 결과를 선사한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이러한 사례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동물을 보호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때론 협력하고 때론 각자의 길을 응원할 때 비로소 더 많은 동물에게 보다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템플 그랜딘의 이야기는 동물 이용의 최전선에 놓인 가축의 이야기다. 가축의 편에서, 현실의 한가운데서 동물복지가 절실한 생명에게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한 사람에게 존경을 표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저서 ‘동물과의 대화(Animals in Translation)’ 첫 페이지에 나오는 글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나는 동물을 사랑한다. 그것이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다.”

[함께하는 미래] 기후를 묻다

최근 발표된 세계기상기구(WMO)의 ‘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는 작년 한 해 전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5도 상승한 것으로 발표했다. 2015년 국제사회가 파리협약을 통해 약속했던 제한선인 ‘상승 폭 1.5도’가 불과 9년 만에 깨져 지구촌의 노력에 빨간불이 켜졌다. 또 보고서는 북극 해빙 면적이 지난 18년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티핑포인트’로 주목받고 있는 남극 해빙 면적도 지난 3년간 최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과 함께 지구 해수면은 10년 동안 연평균 4.7㎜씩 높아지고 있다는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내용들이 담겨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심각성을 일깨우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은 10년 전과 거의 변함이 없다. 국제사회가 약속한 기후위기 대응 방안은 단순 명료하다.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화석연료에 기반한 전력과 에너지원을 줄이면서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며, 탄소흡수원을 확대하거나 보호하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국가도 소외 및 배제되지 않도록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특히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확대해야 하는 ‘시급성’을 견지하고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바로잡는 ‘정의성’을 지키며 지구의 생태적 한계선과 인간의 사회적 기초를 반영하는 ‘충족성’을 동시에 이행해야 가장 현명하고 빠르게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얼마 전 환경단체가 발표한 ‘전기 생산하는 시원한 주차장-전국 주차장의 태양광 잠재량 평가 보고서’에서 분석한 자료만 보더라도 전국 50구획 이상 주차장에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할 경우 2.91GW 용량으로 연간 5천115GWh의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 주변의 작은 공간만 이용하더라도 손쉽게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 제21대 대선을 향한 법정 선거운동이 시작돼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후보자와 정당에서 수많은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과연 우리가 ‘지구 가열화’란 절체절명의 위기 시대에 같은 행성에서 살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기후 유권자는 대선 후보자들이 내놓는 정책에서 미래 비전을 찾고 그들이 찾는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 시대 변화의 중심성을 확인하고, 그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희망을 찾는다. 기후변화로 인해 큰 피해와 불확실성이 높아진 농민과 농업이 있고, 폭우로 인한 수재민이 있고, 삶의 기초마저 위협받는 지하·반지하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기록적인 폭염과 한파로 고통받는 야외 노동자와 온열과 한랭질환자들의 생존마저 기후 위험에 노출돼 있다. 석탄발전소의 폐쇄로 인해 일과 생계를 걱정하는 노동자와 가족이 있으며 대규모 송전선로로 인해 삶의 터전과 일터마저 위협받는 사람들이 있다. ‘기후위기’는 경쟁과 불평등, 부정의를 심화시키고 있다. 후보자와 정당은 그 해법을 현장 속에서 찾으시길 바란다. 다행히 제21대 대선을 앞두고 기후 단일 의제 대선 TV 토론회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한 번도 듣지 못한 대답, 대선 후보들은 기후위기 해법을 말하라!’는 캠페인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기후정치를 호소하며 대선 후보자들에게 듣고 싶은 질문을 취합하면서 단 한 번만이라도 ‘기후’ 단일 의제로 후보 토론회를 개최해 달라는 유권자의 목소리가 성사되기를 소망한다.

[함께하는 미래] 한미 관세 협상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달 30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한국, 일본 등은 선거 전에 무역 협상의 틀을 완성하고 그 성과로 선거운동을 하려 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언급했다. 미국과 조속한 협상이 여당의 지지율을 올려줄 것이므로 선거 전에 빨리 처리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캐나다와 호주의 총선에서는 베센트 장관의 주장과 정반대로 미국에 일방적 양보를 거부하는 여당이 모두 승리했다. 지난달 28일 캐나다 총선은 트럼프 상호관세의 정치적 영향을 측정할 수 있는 시험대였다. 올해 1월까지만 해도 자유당은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경제 정책 실패로 보수당에 20% 이상 뒤처져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및 캐나다의 미국 51번째 주 편입은 선거 구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반(反)트럼프 여론에 편승한 자유당은 상호관세에 강경한 대응을 주장한 마크 카니 전 캐나다은행 총재를 트뤼도 총리 후임으로 선출했다. 카니 총리는 피에르 포일리에브르 보수당 대표를 캐나다의 트럼프로 맹렬히 비했다. 그 결과 정권교체를 기대했던 보수당은 총선에서 졌을 뿐만 아니라 포일리에브르 대표도 의원직을 상실했다. 지난 3일 호주 총선에도 반트럼프 여론이 선거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불과 2개월 전만 해도 노동당은 물가 및 집값을 잘 관리하지 못해 자유당·국민당 연합에 패할 것으로 예측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호주에 주력 수출품인 철강,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면제를 거부한 3월 이후 반트럼프 여론이 급속히 확산됐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를 모방해 정부효율부(DOGE) 도입을 통한 공공 부문 인력 감축 공약을 제안했던 피터 더튼 자유당 대표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그 결과 자유당·국민당 연합은 노동당에 역전당했을 뿐만 아니라 더튼 자유당 대표도 지역구를 지키지 못했다. 캐나다와 호주에서 반트럼주의의 승리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일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월7일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1조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등 타협을 모색했다.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지난달 17일 첫 실무회담에서 베센트 장관에게 포괄적 합의를 가능한 한 조기에 실현하겠다는 의사를 제시했다. 그러나 지난 1일 열린 2차 실무회담에서 일본은 철강·알루미늄 관세 및 자동차 관세를 면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상호관세에 대해서만 24%에서 14%로 인하하겠다는 미국의 양보안을 즉각 거부했다.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은 3일 세 가지 관세를 모두 인하하는 패키지 딜이 아니면 미국과 협상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일본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면 미일 협상은 당분간 교착될 것이다. 미국과 빠른 타협이 선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베센트 장관의 주장은 캐나다와 호주는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이미 틀린 것으로 증명됐다. 따라서 정부는 이달 중순 예정된 2차 실무회담에서 미국의 요구 사항을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만 논의하지 말고 우리가 원하는 협상 의제와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의 압박에 굴복해 국가 이익을 적극적으로 수호하려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다음 달 대선에서 유권자의 냉정한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 AI와 생각의 근육

런던의 블랙캡 택시 기사들은 도시의 2만5천개가 넘는 복잡한 도로와 골목, 2만개에 달하는 건물과 공공시설의 위치까지 모두 외워야 하는 ‘The Knowledge(지식)’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흥미롭게도 이처럼 방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활용하는 런던 택시 기사들의 뇌 속 ‘해마’의 크기가 일반인이나 정해진 노선만 운행하는 버스 기사들보다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마치 근육이 운동에 따라 발달하거나 위축되듯 뇌 역시 사용 방식에 따라 특정 영역이 발달하거나 퇴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이러한 과학적 사례가 아니라도 ‘머리는 안 쓰면 퇴화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일상에서 체감하고 있다. 내비게이션이 등장한 후 예전에는 잘 찾아가던 길도 헤매게 되고 휴대폰에 번호를 저장하기 시작한 후에는 수십개씩 외우던 전화번호를 하나도 기억 못 하는 일이 흔해졌다. 자신의 전화번호를 묻는 기자에게 “전화번호부에 있는 것을 왜 기억해야 하나요”라고 반문했던 아인슈타인의 일화처럼 이러한 기억의 아웃소싱은 한정된 두뇌 자원을 더 중요한 일에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단순한 기억이나 정보 처리뿐 아니라 핵심적 판단 능력까지 외주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자동항법장치에만 익숙해진 조종사가 실제 매뉴얼 비행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하거나 내비게이션만 믿다가 강물에 빠지는 사례들은 판단 능력을 외주화할 때 발생하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자동화 편향’이라고 불리는 인공지능(AI)과 자동화 시대의 징후이다. 듀얼 브레인, 세컨드 브레인이라는 개념이 일상화된 지금 AI는 단순한 정보 처리를 넘어 의사 결정과 창의력까지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신입사원 채용에서부터 광고 기획, 작가의 창작 과정, 심지어 심리 상담까지 AI가 인간의 본질적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이처럼 이성적, 감성적 판단마저 AI에 의존하게 되면 사용하지 않는 근육이 위축되듯 인간 고유의 사고 능력은 급속히 퇴화할 것이다. 이러한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AI의 한계와 문제점을 이해하는 AI 리터러시를 강조한다. AI의 판단을 무조건 수용하지 말고 항상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창의적 영역에서는 가급적 스스로의 능력으로 먼저 시도하고 AI는 검증이나 보완 도구로만 활용하는 접근법이 중요하다. 자신의 사고 과정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메타인지 능력을 기르고 디지털에서 벗어나 전통적 취미 활동 등을 즐기는 정기적인 AI 디톡스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AI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도구이자 생산성과 창의력을 높이는 동반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도구는 도구일 뿐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싱귤래리티(singularity) 시대가 도래한다 해도 최종 결정과 책임의 주체는 인간이어야 한다. 도구가 사용자를 대체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한번 위축된 근육을 다시 회복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AI가 제공하는 편리함과 효율성에 완전히 매몰되기 전에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 정기적인 ‘생각운동’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그것이 AI라는 거대한 변화의 파도 속에서 우리의 인간다움을 지키는 단단한 닻이 돼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미래] 야생동물, 공존 넘어 상생 바라볼 때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는 나무 구멍에 긴 나뭇가지를 넣었다. 잠시 후 꺼낸 가지 끝에는 흰개미가 잔뜩 붙어 있었다. 그레이비어드가 흰개미를 잡은 이유는 단 하나,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침팬지다. 저명한 동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은 처음 다가온 침팬지에게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1961년 유인원 관찰 캠프인 탄자니아 곰베에서 생활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고 믿어졌지만 침팬지 또한 도구를 능숙하게 다룬다는 사실이 구달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이 위대한 발견은 생명을 존중하는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에서 비롯됐다. 구달은 어린 시절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홀로코스트 이후 인간성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했다. 너그러운 어머니와 현명한 할머니 밑에서 자라며 자연과 동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한 그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넘어 생명과 생명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인류와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공존하려면 서로의 다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음이 먼저여야 한다. 젊은 구달은 곰베에 도착하자마자 바위 숲을 올랐다.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햇빛과 노을이 숲의 계곡 사이로 퍼지는 아름다움을 느끼며 그는 자연과 하나 되는 경험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연구를 멈추지 않은 그는 침팬지를 비롯한 야생동물의 가치를 재발견했고 지금도 전 세계를 순회하며 환경과 인권을 위한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구달 박사처럼 자연에 대한 경외와 애정을 담아 연구하고 행동한 이들이 없었다면 지구 환경과 생명 파괴는 훨씬 더 가속화됐을지도 모른다. 물론 깨어 있는 선각자들의 노력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류는 기후변화, 전염병, 기근, 자연재해, 대멸종 등 복합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이는 결국 자연과 야생동물을 대하는 인류의 오랜 태도와 생각이 누적돼 나타난 결과다. 그러나 구달 박사는 말한다.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야생동물과 그들의 삶의 터전을 생각한다면 결코 늦은 때는 없다고. 간절한 바람을 품은 인간의 힘은 무한하며 실제로 인류는 그 끈기와 용기로 수많은 기적을 이뤄 왔기 때문이다. 위대한 인간성은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과 기꺼이 함께 살아가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규범 속에서 질서 있는 공존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공존은 함께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서로에게 이익을 주고받는 상생(相生)으로 확장될 수 있다. 우리가 손해를 감수하고 조금씩 양보하며 살아갈 때 뜻밖의 도움과 따뜻한 배려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야생동물에 대한 인류의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다. 태초부터 무수한 생명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유지된 아름다운 지구를 떠올려보자. 그 속에서 야생동물이 지닌 고유한 존재 가치를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우리는 보다 넓은 차원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자연과 야생동물이 지닌 가치를 직접 느껴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당장 주변 공원을 산책하며 푸르른 참나무 잎의 살랑거림과 참새의 지저귐에 잠시 귀 기울여 보자. 그렇게 자연 속에 나를 놓아두는 일이야말로 인간과 야생동물이 함께 살아가며 서로를 돕는 상생의 문을 여는 가장 따뜻한 시작일지도 모른다.

[함께하는 미래] 새로운 정부의 과제, 기후위기 대응

123일 만에 광장의 봄을 맞았다. 하지만 그 봄맞이 기쁨도 잠시, 한반도 전역을 잿더미로 만든 산불 청구서를 받으면서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다시금 뒤돌아보게 했다. 그나마 마음을 달래준 벚꽃마저 때 아닌 돌풍과 비바람 앞에서 속절없이 져버린 탓에 온전한 봄을 시샘했나 싶다.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맞이할 봄이 매년 새로운 봄으로 기록될 수 있겠다’는 해서는 안 될 생각이 잠깐 스쳤다. 올봄 전국을 휩쓴 산불은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는 물론이고 자연생태계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 곧 아니면 먼 훗날 받게 될 자연생태계의 손실 청구서와 온실가스 청구서에는 어떤 기록이 담길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산불은 인위적인 발화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실화로 인한 산불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모든 산불을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에 ‘괴물 산불’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나마 대형 재난을 막는 최선의 길이다. 우리나라 산림 관리는 국가기관이 담당해 왔다. 그동안 막대한 세금과 인원을 투입해 왔기에 그 노력의 효과성을 검증하기 위해서라도 매우 세밀한 확인과 철저한 규명이 필요하다. 숲은 그 자체로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생명터이기 때문이다. 4월 초, 지난 한 해 동안 발생한 이상고온, 호우, 대설 등의 이상기후 발생과 분야별 피해 및 대응 현황, 향후 대책을 담은 ‘2024년 이상기후 보고서’가 발간됐다. 요약하면 ‘기후위기가 심각하게 진행돼 기후 재난이 현실화되고 있기에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최근 수년간 반복되는 진단과 이미 캐비닛이 돼 버린 약속을 되풀이했다. 무너져 버린 국가권력의 쓸쓸한 뒤안길을 보는 느낌이다. 이미 “심하게 뜨거워졌다”는 비상 신호를 계속 보내는 지구 앞에 그나마 남아 있는 인내마저 한계를 보이게 한다. 어쩌면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은 정부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6월3일. 대선이 확정됐다. 곧 대선 후보자들이 수많은 공약을 내놓을 것이다. 사회대개혁 광장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온 의제가 하나하나 숙의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특히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 사회로의 전환에 대한 의제는 단일주제로 후보토론회가 진행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난해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도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졌고 특히 올해 9월까지 유엔에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기후재난이 일상화되는 현실에서 수년간 허송세월을 한 것도 모자라 거꾸로 가던 것들을 최소한 원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공론장이 필요해 보인다. 그 공론장에서는 “기후위기가 어떻고 에너지 전환이 어떻고”가 아닌 온실가스를 매년 얼마만큼 어떻게 감축하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얼마만큼 어떻게 늘릴지, 화석연료발전을 언제 어떻게 멈출지, 이로 인한 경제와 일자리는 어떻게 보호할지, 행정조직은 어떻게 개편할지, 재정은 얼마나 투입할지 등 구체적인 대안과 계획을 듣고 싶다. 최근 북유럽 최대 석탄 소비국인 핀란드가 탈(脫)석탄발전 대열에 동참했다. 석탄발전의 종주국이던 영국의 뒤를 이었다. 광장의 봄으로 맞이한 6·3 대선에서는 지난 대선 후보토론회에서 가장 낯뜨거운 장면으로 남아 있는 ‘RE100’ 논란이 재연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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