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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미래] AI와 생각의 근육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아트앤테크놀로지 랩 소장∙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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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블랙캡 택시 기사들은 도시의 2만5천개가 넘는 복잡한 도로와 골목, 2만개에 달하는 건물과 공공시설의 위치까지 모두 외워야 하는 ‘The Knowledge(지식)’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흥미롭게도 이처럼 방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활용하는 런던 택시 기사들의 뇌 속 ‘해마’의 크기가 일반인이나 정해진 노선만 운행하는 버스 기사들보다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마치 근육이 운동에 따라 발달하거나 위축되듯 뇌 역시 사용 방식에 따라 특정 영역이 발달하거나 퇴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이러한 과학적 사례가 아니라도 ‘머리는 안 쓰면 퇴화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일상에서 체감하고 있다. 내비게이션이 등장한 후 예전에는 잘 찾아가던 길도 헤매게 되고 휴대폰에 번호를 저장하기 시작한 후에는 수십개씩 외우던 전화번호를 하나도 기억 못 하는 일이 흔해졌다.

 

자신의 전화번호를 묻는 기자에게 “전화번호부에 있는 것을 왜 기억해야 하나요”라고 반문했던 아인슈타인의 일화처럼 이러한 기억의 아웃소싱은 한정된 두뇌 자원을 더 중요한 일에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단순한 기억이나 정보 처리뿐 아니라 핵심적 판단 능력까지 외주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자동항법장치에만 익숙해진 조종사가 실제 매뉴얼 비행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하거나 내비게이션만 믿다가 강물에 빠지는 사례들은 판단 능력을 외주화할 때 발생하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자동화 편향’이라고 불리는 인공지능(AI)과 자동화 시대의 징후이다.

 

듀얼 브레인, 세컨드 브레인이라는 개념이 일상화된 지금 AI는 단순한 정보 처리를 넘어 의사 결정과 창의력까지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신입사원 채용에서부터 광고 기획, 작가의 창작 과정, 심지어 심리 상담까지 AI가 인간의 본질적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이처럼 이성적, 감성적 판단마저 AI에 의존하게 되면 사용하지 않는 근육이 위축되듯 인간 고유의 사고 능력은 급속히 퇴화할 것이다.

 

이러한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AI의 한계와 문제점을 이해하는 AI 리터러시를 강조한다. AI의 판단을 무조건 수용하지 말고 항상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창의적 영역에서는 가급적 스스로의 능력으로 먼저 시도하고 AI는 검증이나 보완 도구로만 활용하는 접근법이 중요하다. 자신의 사고 과정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메타인지 능력을 기르고 디지털에서 벗어나 전통적 취미 활동 등을 즐기는 정기적인 AI 디톡스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AI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도구이자 생산성과 창의력을 높이는 동반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도구는 도구일 뿐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싱귤래리티(singularity) 시대가 도래한다 해도 최종 결정과 책임의 주체는 인간이어야 한다. 도구가 사용자를 대체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한번 위축된 근육을 다시 회복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AI가 제공하는 편리함과 효율성에 완전히 매몰되기 전에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 정기적인 ‘생각운동’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그것이 AI라는 거대한 변화의 파도 속에서 우리의 인간다움을 지키는 단단한 닻이 돼 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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