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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1 (화)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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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미래] 야생동물, 공존 넘어 상생 바라볼 때

김나연 아태반추동물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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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는 나무 구멍에 긴 나뭇가지를 넣었다. 잠시 후 꺼낸 가지 끝에는 흰개미가 잔뜩 붙어 있었다. 그레이비어드가 흰개미를 잡은 이유는 단 하나,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침팬지다. 저명한 동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은 처음 다가온 침팬지에게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1961년 유인원 관찰 캠프인 탄자니아 곰베에서 생활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고 믿어졌지만 침팬지 또한 도구를 능숙하게 다룬다는 사실이 구달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이 위대한 발견은 생명을 존중하는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에서 비롯됐다. 구달은 어린 시절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홀로코스트 이후 인간성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했다. 너그러운 어머니와 현명한 할머니 밑에서 자라며 자연과 동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한 그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넘어 생명과 생명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인류와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공존하려면 서로의 다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음이 먼저여야 한다. 젊은 구달은 곰베에 도착하자마자 바위 숲을 올랐다.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햇빛과 노을이 숲의 계곡 사이로 퍼지는 아름다움을 느끼며 그는 자연과 하나 되는 경험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연구를 멈추지 않은 그는 침팬지를 비롯한 야생동물의 가치를 재발견했고 지금도 전 세계를 순회하며 환경과 인권을 위한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구달 박사처럼 자연에 대한 경외와 애정을 담아 연구하고 행동한 이들이 없었다면 지구 환경과 생명 파괴는 훨씬 더 가속화됐을지도 모른다. 물론 깨어 있는 선각자들의 노력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류는 기후변화, 전염병, 기근, 자연재해, 대멸종 등 복합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이는 결국 자연과 야생동물을 대하는 인류의 오랜 태도와 생각이 누적돼 나타난 결과다. 그러나 구달 박사는 말한다.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야생동물과 그들의 삶의 터전을 생각한다면 결코 늦은 때는 없다고. 간절한 바람을 품은 인간의 힘은 무한하며 실제로 인류는 그 끈기와 용기로 수많은 기적을 이뤄 왔기 때문이다.

 

위대한 인간성은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과 기꺼이 함께 살아가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규범 속에서 질서 있는 공존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공존은 함께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서로에게 이익을 주고받는 상생(相生)으로 확장될 수 있다.

 

우리가 손해를 감수하고 조금씩 양보하며 살아갈 때 뜻밖의 도움과 따뜻한 배려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야생동물에 대한 인류의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다. 태초부터 무수한 생명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유지된 아름다운 지구를 떠올려보자. 그 속에서 야생동물이 지닌 고유한 존재 가치를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우리는 보다 넓은 차원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자연과 야생동물이 지닌 가치를 직접 느껴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당장 주변 공원을 산책하며 푸르른 참나무 잎의 살랑거림과 참새의 지저귐에 잠시 귀 기울여 보자. 그렇게 자연 속에 나를 놓아두는 일이야말로 인간과 야생동물이 함께 살아가며 서로를 돕는 상생의 문을 여는 가장 따뜻한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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