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달 중국의 헤지펀드 회사 환팡퀀트 소속 인공지능 연구기업 딥시크(DeepSeek)가 전 세계 인공지능(AI) 산업에 큰 충격을 줬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 때문에 성능이 낮은 H800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딥시크의 R1 모델이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가진 H100 칩을 활용한 오픈AI의 o1 모델과 대등한 기술력을 보여줬다. 더 놀라운 점은 자본금 1천만위안(약 19억9천만원)으로 설립된 딥시크의 R1 개발비가 1천570억달러(약 208조원)의 가치를 가진 오픈AI의 챗GPT 개발비의 5.8%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딥시크 충격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양면적이다. 한편에서는 AI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산업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 다음 날인 지난달 21일 미국 오픈AI, 오라클, 일본 소프트뱅크가 참여하는 총 5천억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틀 뒤에는 자유로운 기술개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의 AI 규제를 철폐하는 ‘AI에서 미국 리더십을 위한 장벽 제거’ 행정명령이 공포됐다.
한편으로는 미국 관공서와 군부대는 딥시크 R1의 사용을 금지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처리 방식이 불분명해 R1에 보안 침해 가능성과 함께 개인정보 유출이 의심된다는 이유에서다. 기기 정보, IP 주소, 키보드 입력 패턴 등이 불법적으로 수집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미국 의회는 틱톡 금지 법안과 유사한 딥시크 금지 법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정책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AI기본법’을 제정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글로벌 인공지능 3대 강국(G3) 도약, 중소벤처기업부는 AI생태계 활성화를 목표로 올해 대규모 재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반면 행정안전부는 이달 4일 중앙부처와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생성형 AI 사용에 유의해 달라고 요청하고 이에 외교부,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외부망과 연결 가능한 업무용 PC에서 딥시크의 사용을 차단하는 등 보안정책까지 언급되고 있다.
미국처럼 대규모 투자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성비가 훌륭한 딥시크의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면 우리나라가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과의 격차를 줄이지 못할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 중 AI 관련 예산은 총 1조8천억원으로 미국의 200억달러(약 29조원), 중국의 1천917억위안(약 39조원)에 비해 턱없이 적으며 민간투자(2023년 기준)에서도 우리나라가 13억9천만달러로 미국(672억2천만 달러)은 물론이고 중국(77억6천만달러)보다도 훨씬 적다.
중국 AI 산업의 저력은 풍부한 연구인력에 있다. 중국 내에만 생성형 AI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이 700개가 넘는다. 미국 폴슨연구소의 ‘글로벌 AI 인재 현황 2.0’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 기업과 연구기관에 소속된 최상위 AI 연구자의 47%가 중국 대학 졸업자이며 미국 대학 졸업자는 18%에 불과했다.
미중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것이다. 2025년 처음으로 네이처 인덱스의 2~11위를 중국 대학이 차지했다. 1위인 하버드를 제외한 스탠퍼드(12위), MIT(13위), 옥스퍼드(14위), 도쿄대(15) 모두 중국 쓰촨대(11위)에도 추월당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중국에서 제2, 제3의 딥시크가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생성형 AI에 대한 정책은 기술·산업 육성과 보안 침해 방지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제한된 재원과 인력으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가성비가 좋은 중국 AI 모델을 적절히 참고해야 한다. 중국 AI 모델의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는 쇄국정책은 기술 발전을 촉진하기보다 후퇴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 정부와 업계는 보안을 강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딥시크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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