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아트앤테크놀로지 랩 소장
지난달 25일 발표된 오픈AI의 새로운 이미지 생성 기술이 연일 화제다. 누구나 디자이너나 애니메이터 수준의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여러 혁신적인 기능 중에서도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지브리’의 그림체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기능이었다.
‘지브리피케이션’이라는 새 유행어가 탄생하면서 소셜미디어와 커뮤니티는 지브리풍으로 바뀐 자신들의 사진과 그림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넘쳐 났으며 백악관까지 이 열풍에 동참했다.
누구나 이제 애니메이션의 거장이자 지브리의 수장인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이 기술 혁명을 환영한 것은 아니다. 창작자 커뮤니티에서는 정보기술(IT) 기업이 거장 예술가의 지식 재산권을 무단으로 훔쳤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몇 년 전 AI 애니메이션을 ‘삶에 대한 모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던 미야자키의 인터뷰까지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생성형 AI 기술이 창작의 민주화를 이끄는 혁신인지, 아니면 창작자의 예술혼을 훼손하는 천박한 모방이자 무단 복제인지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 논쟁에서 어느 쪽에 서 있든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독창적 원본’이 가진 강력한 힘이다. 사람들이 AI가 만든 지브리풍의 외형적 스타일에 열광하는 밑바탕에는 미야자키의 원작 애니메이션 속에 담긴 섬세한 스토리텔링과 철학적 깊이, 그리고 작품을 통해 공유했던 감정과 시간에 대한 기억, 예술적 아우라에 대한 향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일본 아이치현에 문을 연 ‘지브리파크’가 큰 성공을 거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테마파크는 놀이기구 대신 ‘이웃집 토토로’의 숲, ‘마녀 배달부 키키’의 거리 등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 공간을 현실에 그대로 구현해 놓았다. 관람객들은 가상이 아닌 현실의 공간을 직접 걷고 체험하면서 자신들이 작품을 보며 느꼈던 감흥과 기억을 되살리고자 이곳에 모여든다.
지자체와 지역 산업계가 협력해 조성한 이 파크는 개장 직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연간 180만명의 관광객 유치, 480억엔의 경제효과를 창출하면서 자동차산업지구였던 아이치현에 ‘지브리의 성지’라는 새로운 문화 브랜딩을 부여했다. 이 모든 성공의 배경에는 한 장인이 수십년에 걸쳐 묵묵히 쌓아 올린 독창적 세계관과 예술적 깊이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특정 스타일을 무한히 재생산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그 가벼운 재미에 빠질수록 사람들은 복제할 수 없는 창작의 깊이와 진정성을 더욱 갈망하게 될 것이다. 컴퓨터 앞에서 누구나 손쉽게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함께 모여 독창적 창작품의 숨결을 나누고 공유하는 집단적 경험을 더욱 그리워할 테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의 가치는 높아지며 가상의 공간에서 유사한 콘텐츠가 늘어날수록 독창적 오리지널리티를 직접 경험하려는 욕구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미야자키 하야오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즐겁게 받아들이면서도 그 과정에서 더욱 중요해지는 독창성과 인간 고유의 가치를 되짚어보는 것, 이것이 ‘지브리피케이션’ 현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정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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