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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오디세이] 약한 이들에 먼저 닿는 재앙... 불평등한 기후 위기

윤경원 세종사이버대 한국어학과 교수·한국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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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그날, 빗물은 반지하에 살던 우리 이웃의 삶을 앗아갔다. 그날 도심의 배수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홍수 같은 물이 저지대로 몰렸기 때문이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인재였지만 누구도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같은 비를 맞았음에도 누구는 잠깐 불편했고 누구는 목숨을 잃은 것처럼 기후 위기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지구 온난화 관련 각종 과학적 수치가 쏟아지지만 기후 위기의 실체는 그 수치 뒤에 있다. 도심 외곽의 노후 주택, 에어컨이 없는 쪽방, 지하에서 일하는 노동자, 논밭에서 일하는 농민 등 가장 열악한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가장 깊은 피해를 입는다. 그래서 기후 위기는 생태 문제이기 전에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한 불평등의 문제인 것이다.

 

폭염도 폭우와 다르지 않다. 냉방비를 아끼기 위해 하루 종일 창문만 열어 놓고 열기를 참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중 상당수가 65세 이상의 홀몸노인이다. 냉방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임에도 그것을 뒷받침할 공적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하다. 에너지바우처제도나 폭염 쉼터 정책은 있지만 수혜 범위는 제한적이고 접근성이 낮다.

 

이러한 기후 위기의 불평등은 도시와 농촌, 계층, 주거환경, 국적에 따라 격차가 뚜렷하다. 외국인 근로자 중 상당수가 컨테이너에 살며 폭염과 폭우로 인한 위험에 노출된다. 고온에서 농작업을 이어가는 노령층은 탈진과 열사병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에게 닥칠 피해가 예외적인 사고가 아니라는 점에서 기후 위기는 점점 더 일상이 되고 있고 그 위험 또한 구조화돼 간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은 보다 명확히 기후 불평등에 개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가 차원에서 기후 취약 계층의 정의 등 기후 행정 시스템을 확립하고 이들을 우선 보호하는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폭염이나 한파 등 기후 재난 상황에서 단순한 대피소 제공을 넘어 주거환경 개선, 냉난방비 지원, 방문 돌봄 서비스 확대 등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후 재난 대응 시스템을 지역 실정에 맞게 세분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전국 단위 경보만으로는 각 지역의 취약한 상황을 반영할 수 없다. 예컨대 저지대에 위치한 동네나 노후 주택 밀집 지역, 하천 인근 비주택 거주지를 우선 기후 행정 시스템 관리 구역으로 지정하고 사전 점검과 긴급 대응을 체계화해야 한다.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지정하고 훈련까지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교육과 공공 커뮤니케이션에서도 기후 정의라는 관점을 강화해야 한다. 기후 위기를 단순히 지구를 위한 실천으로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누가 가장 먼저 피해를 입고 어떻게 사회가 이를 막을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시민이 공감하고 실질적인 대응이 가능해진다.

 

흔히 기후 위기는 모두의 문제라지만 이는 반쪽짜리 진실이다. 그것은 모두의 문제가 맞지만 그 재앙은 항상 약한 이들에게 먼저 닿고 지금까지 대응은 그 불균형을 바로잡기에 부족했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 시대의 정의란 단지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을 넘어 누가 가장 아픈가를 먼저 살피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 질문에 응답하고 있는가. 혹시 못 본 척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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