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장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감
유난히 길고 눈도 많이 내린 겨울이 이제야 지나가나 했던 3월, 대한민국을 화마가 집어삼켰다. 화마가 토해내는 불길이 전국으로 퍼져 우리의 일상과 생계를 무너뜨려 버렸다. 특히 이번 화재의 원인이 사람의 안일한 생각과 부주의한 행동이라는 사실이 더욱 우리를 아프고 안타깝게 만든다. 사람에서 시작한 불길이 자연으로 넘어가 다시 사람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 대재앙이 돼 돌아온 것이다.
예부터 사람이 살아가며 반드시 주의하고 피해야 하는 세 가지 재앙을 ‘삼재(三災)’라 불렀다. 민간에서는 인생의 9년 주기마다 이 삼재가 찾아온다고 해 지금도 매년 초가 되면 자신의 나이에 삼재가 들었는지를 확인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풍습에서 가장 조심하던 것 중의 하나다. 삼재는 물에 의한 수재(水災), 바람에 의한 풍재(風災), 불에 의한 화재(火災)로 이 중 단 한 가지라도 겪지 않도록 매사에 주의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유례없는 괴물 산불은 단순한 화재의 불을 넘어 삼재 그 자체가 돼 버렸다. 비가 오지 않는 수재로 곳곳에 불길이 번졌고 태풍과 같은 바람이 부는 풍재로 불길이 가라앉지 않았으며 불길이 화마가 돼 모든 것을 집어삼킨 화재를 겪었다.
불교에서는 삼재와 더불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하는 속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인재(人災)를 더욱 주의시키는데 이번 화마의 삼재는 그 원인이 사람에게 있어 삼재의 모든 것과 인재까지 더해져 차마 우리의 힘으로 버틸 수 없는 대재앙이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일어서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이 하루를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의 손에서 시작한 화마와 삼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보조 지눌 스님의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딛고 일어나라’는 가르침과 같이 그 터전에서 넘어진 우리와 이웃과 인연들의 손을 잡아 그곳에서 일으켜줘야 한다. 비록 사람에 의해 일어난 화마와 삼재이지만 지금은 그것을 탓하고 원망만 하기에는 너무 힘든 순간이다. 오히려 우리 곳곳을 살펴보고 그분들의 손을 잡아주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불교에서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것은 깨달음이지만 삶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화합’이다. 화합은 단순히 함께하는 의미를 넘어 화목하게 함께하는 것이다. 다행히 피해가 없던 우리의 안심에 감사하고, 이제 그것을 도움을 드려야 하는 분들과 오늘의 인연에 전해줘야 한다. 화목하다는 것은 서로에게 정다운 것을 말한다. 나만이 아닌 우리로 있을 때 화목과 화합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으로 인해 힘들어진 이 봄, 다시 우리의 손으로 봄을 불러와야 한다. 우리의 봄이 모두에게 따스함을 줄 수 있도록 오늘 하루 가족과 이웃과 인연에 우리의 손길을 전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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