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홍 이민정책연구원 부원장
법무부는 지난해 정주적합성이 높은 전문·숙련 외국 인력을 체계적으로 도입하고 정책 수요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며 국민 일자리 보호를 위해 ‘취업비자 총량 사전 공표제’를 시범 도입했다. 해당 제도 도입을 통해 우수 인재, 투자자 등과 같이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할 대상의 경우 정책 목표로서의 기능을 하고 단순기능인력 등과 같이 국민 일자리 보호가 필요한 경우에는 연간 비자 발급건수의 상한을 제한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이에 앞으로 인구 구조, 경제성장률, 산업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연간 이민 도입 규모를 정하는 방향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국가들의 관행을 보면 미국은 이민귀화법에 따라 매년 인구의 0.3%(약 100만명)에 해당하는 이민비자(영주비자)를 발급하고 있고 캐나다와 호주는 연간 계획을 수립해 매년 인구의 약 1%에 해당하는 이민자에게 영주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영주비자를 발급할 때, 학력, 경력, 소득, 연령, 언어능력 등 다양한 개인 역량을 고려하기 때문에 정주 외국인의 양은 물론이고 질적 수준을 조절할 수 있다.
앞선 나라들은 영주비자 이외에 일시적 거주와 취업 등에 필요한 비자도 발급하지만 영주비자를 통한 정주인구 증가에 더 큰 정책의 비중을 두고 있다. 이로 인해 이민자들은 영주권을 가지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있어 자신의 기술, 기능, 지식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해외에 가진 물적 자본까지 이전할 수 있다. 아울러 본인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 나가고 창업에도 쉽게 도전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일본 등은 주로 노동수급 상황을 고려해 부족 인력을 메울 수 있는 이민자의 취업 업종·직종을 제한해 한시적으로 거주를 허용하고 입국 후 에 정주자격을 부여할지를 결정한다. 우수인재 입장에서 볼 때 정주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떨어지고 직업역량의 강화와 직업의 변경, 창업 등을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이 정책은 결국 인력의 미스매칭이 많이 발생하는 단순노무 분야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많이 유입시킨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취업자격을 가진 외국인 근로자의 약 84%가 단순노무에 종사하고 있다. 지난해 이민정책연구원이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는 중소제조업체를 분석한 결과 외국인이 1% 증가할 때 지역 내 제조업의 생산성이 0.56% 감소했다는 연구가 있을 정도다.
202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이민자의 전문성(숙련성)이 높을수록 생산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기업이 채용하는 외국 인력의 구조에 따라 그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정부, 대학 및 기업이 협업해 연구개발을 통한 새로운 기술과 혁신적 사업모델의 개발, 자동화 등을 통해 산업구조의 조정을 촉진하고 그 변화에 적합한 숙련기능공과 전문인력을 양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구 보너스 시대와 같이 부족 인력만 보충하면 된다는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인구 급감에 따라 소비와 투자가 감소하고 노동 수요와 일자리가 감소하는 악순환을 가져올 것이다. 이미 지난해 8월 기준으로 229개 시·군·구 중 57.2%가 소멸위험지역이 될 정도로 대다수 지역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섰다. 따라서 생산, 소비, 투자 등에 도움이 되는 정주외국인의 유입과 정착 지원에 대해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 실행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역비교우위산업의 육성 ▲교육발전특구의 활용 확대 ▲다양한 대안학교와 저렴한 국제학교 운영 ▲방과 후 프로그램 지원 ▲거주여건 개선 등을 통해 이민자는 물론이고 자녀가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이 이뤄져야 부모도 정착할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해야 한다.
일본은 인구 구조 악화와 인력 부족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해외 직업훈련을 강화했고 2019년 특정기능 2호 비자를 신설, 숙련기능 외국 인력까지 정주를 허용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독일은 1994년 유럽연합(EU) 단일시장 출범에 따른 노동시장 개방, 2004년 EU에 가입한 동유럽 8개국에 대한 노동시장 개방, 2020년 ‘전문인력 이민법’ 제정을 통해 EU가 아닌 국가의 전문인력과 숙련기능공의 유치 및 정주 허용 등과 같이 정책의 근본적인 틀을 바꾸고 있다.
우리 사회도 이민자를 부족한 인력을 일시적으로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잠재력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인간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각의 전환이 이뤄져야만 우리나라 이민정책의 근본적인 틀도 바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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