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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면서] 높임말의 제자리 찾기

정수자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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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길 잃은 높임말을 자주 만난다. 과용에서 오남용까지 높임말의 범람도 점입가경이다. 높임이라는 특성상 맞춤하게 쓰기 어려운 면은 있다. 높임의 기본 기준은 생물학적 나이지만 관계에 따른 호칭 속의 높임·낮춤도 있으니 복잡한 것이다. 그런 사정으로 신분이며 친인척 사이의 구분이 위계나 수직적 질서를 강화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높임말 습속은 쉽게 변하지 않을 듯하다.

 

최근에 많이 나오는 높임말 문제 중에 ‘분’의 오남용이 있다. 예컨대 ‘팬(fan)분’을 넘어 ‘어린이분’, ‘어르신분’ 같은 과용이 의외로 늘어난 것이다. 어린이만 해도 ‘어린 사람’(아동인권 의식이 부족했을 때는 ‘어린놈’ 취급이 예사였음)의 높임말에 속한다. 사람을 조금 높여 이르는 ‘그이, 저이’ 같은 말의 ‘이’를 붙인 ‘어린+이’니 말이다. ‘젊은이, 늙은이’도 같은 맥락의 말인데 늙은이는 노인 비하로 여겨져 쓰기 어려운 말이 됐다. 그러다 보니 ‘어른’의 높임말로 ‘어르신’을 쓰는데 거기에 ‘분’까지 덧붙여 기이한 말본새가 떠도는 것이다. 높임에 높임을 얹는 말이니 옥상옥(屋上屋)이 따로 없다.

 

한때 사물 높임말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커피 두 잔 나오셨어요, 큰 사이즈는 지금 없으세요’ 같은 이상한 높임에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넘쳤던 것이다. 꾸준한 지적 끝에 그 비슷한 사물 높임의 오남용은 이제 사라진 듯하다. 무의식중에 잘못 쓰는 말씨를 바로잡은 사례라 하겠다.

 

그런데 최근에는 또 다른 높임말의 폭주가 거슬린다고들 한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높임말이 헷갈리는지 이상한 자기 높임말들이 빈번해졌다는 것이다. 그중 흔한 예로 ‘제가 아시는 분’이나 ‘저한테 여쭤보시면 돼요’ 같은 말들이 있다. 상대에게 높임말을 쓰려다 오히려 자신을 높이는 말이니 높임의 대상을 혼동하는 데서 나왔을 테다. 틀린 줄도 모르고 쓰는 말을 일일이 짚어줄 수도 없으니 민망함은 듣는 사람의 몫인지. 그저 아는 사람만 속 시끄러울 노릇이다.

 

사실 우리말은 높임말을 제대로 잘 쓰기 어려운 언어로 꼽힌다. 대상에 따른 높임말 사용도 그렇지만 친인척의 위계에 따른 높임말은 최상급의 어려운 말일 것이다. 그중에도 시가·처가 사이의 호칭과 그에 따른 높임말의 구분은 복잡하고 민감하다. 무엇보다 여성의 친인척 호칭에 깊이 배어 있는 차별성이 명절 기사로 오르내릴 만큼 비판을 초래하는 것이다. 갈수록 여성 자신의 역량으로 바꿔가긴 하지만 여성 쪽 호칭과 관련된 낮춤말은 여전히 쓰이고 있다. 가부장사회 유습 중에도 말에 깃든 의식의 개선이야말로 문화 변화 이상으로 더딘 까닭이겠다. 차별적 표현을 대체할 만한 적절한 말을 새로 만들기도 어려운 데다 생활의 적용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니 말이다.

 

우리말 속의 위계는 뿌리가 깊다. 높임말·낮춤말이 생물학적 나이에서 사회적 신분의 표현에까지 층층이 들어 있다. 높임말 사용이 인성은 물론이고 가정교육까지 운운하는 사회 분위기가 작용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무례와 무시를 넘나들던 높임말 문제로 살인까지 간 사건도 나온 게다. 조심에 조심을 더하는 높임말, 지나치게 높이다 오남용에 걸리기 십상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높임말도 적절히 잘 써야 존중의 교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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