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원 단국대 철학과 교수
경북에서 역대급 산불이 발생한 지 어느덧 한 달이 돼간다. 사건 직후 한반도 동남부의 푸르른 산림은 순식간에 거대한 잿더미로 변했고 소방헬기와 구조대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연일 언론을 장식했다. 이어 언론은 인명과 재산 피해의 규모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전국 각지에서 이재민을 돕기 위한 성금 모금이 이어졌다는 따뜻한 이야기들도 전해졌다. 최근에는 최초 실화를 일으킨 두 사람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소식까지 뉴스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 대형 산불이 과연 단지 하나의 ‘사건’으로만 소비돼도 괜찮은 일일까.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여전히 ‘왜 불이 났는가’보다는 ‘얼마나 탔는가’에 집중된다. 설령 원인을 묻는 이들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의 시선은 개인의 실수나 부주의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누군가의 불씨가 발단이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단지 한두 사람이 실화한 결과가 27명의 인명 피해와 축구장 6만개가 훨씬 넘는 산림의 초토화로 이어졌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 이상한 것은 호주나 미국 같은 해외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는 이구동성으로 그 근본 원인을 기후 변화와 생태계의 불안정성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불이 붙는 계기는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고온과 가뭄, 불규칙한 강수, 강풍 같은 기후적 조건이 겹쳐야 이토록 거대한 화재로 번지는 것이다. 즉, 산불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기후 위기가 만들어낸 구조적 재난이라는 점이다.
이번 경북 산불은 생태 재난이 이미 우리 곁에 닥쳤고 더 이상 한반도도 안전지대가 아님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여전히 이 문제를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이 지나치게 개인화되고 치열한 경쟁 체제 속에서 ‘나’와 ‘우리’의 생존과 자기중심적 욕망에만 몰두한 결과 기후 위기 같은 문제는 애초에 우리가 손댈 수 없는 일이라며 외면하는 경향이 강하다.
더 큰 문제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정치적 프레임이 덧씌워진다는 사실이다. 기후 문제를 말하는 사람이나 단체에는 으레 ‘좌파’라는 낙인이 찍히고 그 주장들은 한쪽으로 치우친 이상주의로 몰린다. 물론 이 문제를 주요 의제로 삼는 이들 중 다수가 진보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생태 위기를 직시하는 시각에서 보면 정치적 보수뿐 아니라 진보 진영 또한 이 문제에 대해 그리 ‘진보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기후 위기와 생태 재난은 일부 여유 있는 사람들의 ‘한가한’ 걱정이 아니며 정치적 좌우로 갈라치기 해 다룰 사안도 아니다. 그것은 인류 전체의 생사 존망이 걸린 문제이며 지금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대형 산불은 바로 이 위기의 도래를 알리는 경고음이다. 우리는 이제 이 신호를 직시하고 현대사회의 반생태적 정신과 기술, 체제 전반을 근본부터 다시 성찰해야 한다. 지금처럼 당장의 경쟁에서 ‘내’가 살아남는 일이 급하다고 이 문제를 외면한다면 위기는 더 가속화될 뿐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불타는 숲 너머의 너무도 불편한 진실을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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