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문화강국을 위하여

양승규 예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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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시대의 거울이다. 고통의 순간에는 저항의 언어가 되고 기쁨의 순간에는 희망의 합창이 된다. 그래서 음악은 늘 권력과 긴장관계를 보였다. 정치는 음악의 힘을 빌리고 싶어 하고 음악은 정치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 미묘한 관계를 가장 건강하게 설명하는 말이 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라.”

 

음악은 모든 장르가 동일한 시장 논리로 운영되기 어렵다. 특히 전통음악, 클래식, 인디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실험적인 음악은 상업적 수익보다 예술성과 공공적 가치, 그리고 문화의 지속가능성이 우선시된다. 따라서 이러한 분야에 대한 국가의 전략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은 필수적이다. 지역의 문화축제, 청소년 창작지원, 해외진출 사업 등에도 공공예산의 투입이 필요하다. 예술은 공공재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과 사회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토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지원이 간섭으로 변질되는 순간 예술은 제 기능을 잃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한민국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다. 정치적 비판을 했다는 이유로 수천명의 예술인이 정부 지원에서 배제됐고 이는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 중에는 세계적 명성의 영화감독, 대중가수, 국악인 등도 포함돼 있었고 이 사건은 국제사회에서도 큰 논란을 일으켰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도 음악은 통제의 대상이었다. 김민기, 신중현, 한대수는 ‘청년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이 금지됐고 창작곡은 검열을 받아야 했다. 반면 민주화 이후 1990년대부터 한국 음악은 폭발적인 다양성을 보이며 세계로 뻗어 나갔다. 케이팝의 글로벌 성공은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자율성이 뒷받침된 결과다.

해외에도 유사한 사례는 많다. 미국의 힙합 아티스트들은 인종차별, 총기 문제, 빈부격차 등을 가사에 담으며 사회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켄드릭 라마, 차일디시 감비노, 비욘세 같은 아티스트들은 정치적 메시지를 정면으로 담은 공연과 음반으로 문화적 충격을 줬지만 미국 사회는 이를 표현의 자유로 인정하고 토론의 장으로 확장했다. 이는 예술을 억누르기보다 사회를 반영하는 목소리로 수용하려는 문화민주주의의 모습이다. 최근에는 지자체나 공공기관 차원에서도 간섭 논란이 제기된다. 일부 지역 축제에서는 정치적으로 ‘무난한’ 아티스트만을 선호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내는 뮤지션들은 배제되기도 한다. 비판적 예술을 ‘리스크’로 간주하고 무색무취한 콘텐츠만 허용하는 기류는 문화 다양성을 저해한다. 이러한 방식은 장기적으로 창작자의 자율성을 위축시키고 결국 산업경쟁력도 떨어뜨린다.

 

정책이 창작의 자율성을 보장할 때 음악산업도 성장한다. 자유로운 창작 환경은 독창적인 콘텐츠의 탄생으로 이어지고 이는 뮤지션의 지식재산권(IP) 확장으로 연결된다. 음원, 공연, MD, 영상, 글로벌 협업까지 뮤지션 한 명이 하나의 브랜드가 돼 수익을 창출하는 시대다. BTS 같은 사례는 단순한 스타의 성공이 아니라 창작자 중심의 콘텐츠 IP 생태계가 만들어낸 구조적 성과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제도적 지원이 함께 어우러질 때 가능한 일이다.

 

국가는 음악을 도와야 한다. 그러나 무대에 어떤 노래가 울려 퍼질지를 정해서는 안 된다. 정치의 역할은 창작의 뿌리를 튼튼히 하는 것이지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자유로울 때 가장 진실하다. 그리고 그 진실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회를 바꾼다. 음악은 정치보다 오래간다. 시대를 넘고 국경을 넘는다. 그 울림을 지켜야 할 책임이 지금 우리에게 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라.”

 

이 한 문장이 문화강국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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