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오즈의 마법사’에서 마주한 AI

지승학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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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출판된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인 작가 라이먼 프랭크 바움이 어린이를 위해 쓴 소설로 출판 직후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책은 아이들이 주변 환경의 아름다움을 찾도록 이끌었고 더불어 도로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 착한 마녀 글린다 등 기억에 남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당시 전 연령대 미국인들의 상상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바움은 총 14권의 오즈 시리즈를 더 집필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역시 1939년 제작돼 대중과 비평가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1914년 바움은 자신의 오즈 시리즈를 영화화하기 위해 ‘오즈영화제작회사(The Oz Film Manufacturing Company)’를 설립했다. 그 직후 영화사는 3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첫 작품은 ‘The Patchwork Girl of Oz’였고 ‘The Magic Cloak of Oz’는 두 번째 작품, ‘His Majesty, the Scarecrow of Oz’는 세 번째 작품이었다. 영화사 설립 목적은 폭력적인 서부영화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가족 친화적인 영화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영화사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Dramatic Feature Films라는 이름으로 재기를 시도했으나 이마저 실패한 후 결국 Metro Pictures에 흡수됐다가 현재는 Metro-Goldwyn-Mayer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오즈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서 바움이 가장 좋아한 캐릭터는 허수아비(scarecrow)였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는 ‘His Majesty, the Scarecrow of Oz’를 가장 좋아했고 이 영화의 성공을 확신하기도 했다.

 

한편 오즈의 마법사가 집필되던 1900년대는 기존 체제와 단절하려는 진보주의가 결국 농경사회의 윤리를 기반으로 태동하게 된 소위 딜레마적인 시대였다. 이런 경향은 무지개 너머 오즈의 마법사가 사는 마을을 통해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농촌의 윤리가 현대적인 오즈의 마을에 전승돼 그 딜레마를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움은 이러한 설정을 캐릭터에게도 마찬가지로 투사했다.

 

도로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지만 이를 단순하고 직관적으로만 해석하려는 태도를 고수하고, 허수아비는 자신에게 뇌가 없다고 한탄하지만 실은 가장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양철 나무꾼은 심장이 없다고 하지만 누구보다도 감정에 충실하며 겁쟁이 사자 역시 용기가 없다고 하지만 위기 상황이면 항상 용기를 내어 행동한다. 착한 마녀 글린다 역시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 자로서 블랙박스의 딜레마를 드러낸다. 그렇게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 사회와 역사를 모두 관통해 시대를 보듬는 이야기로 거듭난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 포함돼 있는 결핍과 딜레마라는 인간성의 문법은 AI의 특성과 미묘하게 연결된다. 그 시작은 ‘허수아비’에게서 출발한다. 결정적으로 허수아비는 뇌가 없음에도 결국 가장 현명한 조언자로 인정받는다. 거기에 더해 도로시는 메타인지의 가능성을, 양철 나무꾼은 기계화된 감정의 문제를, 겁쟁이 사자는 자율적 판단 윤리를, 착한 마녀 글린다는 딥러닝 구조의 블랙박스 특성을 답습한다.

 

사실 AI의 초기 연구는 1940년대에 이른바 ‘전자뇌’를 구축하려는 시도에서 시작했다. 그 시도의 실패 이후 기어이 찾아낸 딥러닝 대형 언어모델(LLMs)은 뇌 없이 작동하는 블랙박스 모듈로 완전한 해결책을 제공하기보다는 주변의 지식, 감정, 판단, 책임을 끊임없이 보완해 나가는 오즈의 캐릭터들, 그중에서도 특히 허수아비와 같이 작동한다. AI라는 개념조차 희박할 때 허수아비의 딜레마는 우리에게 뜻밖에 AI의 특성과 알고리즘의 은유를 예언처럼 그렇게 마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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