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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론] 사라져 가는 김장

최재용 인천연수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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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이 거의 끝났다. 김장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왕조실록 중 태종실록에 ‘침장고(沈藏庫)’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는 궁궐에서 야채를 공급하고 김장을 담가 관리하던 기관이면서 그 야채와 김치를 보관하던 창고의 이름이기도 했다. ‘김장’은 바로 이 ‘침장’이 바뀌어 생긴 말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沈’은 ‘침채(沈菜)’의 ‘沈’과 같아 김치를 나타낸다. 또 ‘藏’은 어떤 물건을 갈무리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침장’은 ‘담근 김치를 잘 갈무리한다’는 뜻으로 김장과 같은 말이 된다. 이로써 김장이 늦어도 조선 초기에 시작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김장은 사실 이보다 훨씬 오래전에 시작됐을 것이다. 지금처럼 배추김치를 담가 저장하는 것이 아닐 뿐이지 짠지나 동치미 같은 저장음식들을 겨우내 먹으려면 저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장은 많은 배추를 절이고, 여러 양념을 섞어 버무려 소를 만들고, 소를 넣은 배추들을 독에 담아야 하는 힘들고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너무 추워지기 전, 하루 이틀 정도의 짧은 기간에 끝마쳐야 했기에 사람이 많이 필요했다.

 

이를 해결한 방법이 ‘김장 품앗이’였다. 친척이나 이웃들이 모두 나서 넓은 장소에서 한꺼번에 김장을 한 뒤에 나눠 가져가는 방식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이 품앗이는 김장이라는 큰일을 수월하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이웃 사이에 정(情)을 나누고 일체감을 갖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와 같은 김장의 가치는 지난 2013년 유네스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공인을 받게 됐다.

당시 유네스코는 “한국인의 일상에서 세대를 거쳐 내려온 김장은 이웃 간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고, 연대감과 정체성·소속감을 증대시킨 매개체”라고 평가했다.

 

한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나 경도잡지(京都雜志) 같은 옛 자료를 보면 김장에 많은 재료들이 들어갔던 것을 알 수 있는데 김장김치에 소로 들어가는 재료는 지역에 따라 많이 달랐다.

 

이를테면 경기도에서는 새우젓을 많이 쓰고 강원도는 오징어나 생태 등을 많이 쓰며 전라도에서는 멸치젓을 많이 쓰는 식이다.

 

이 때문에 지역에 따라 김장김치의 맛이 상당히 달랐다. 하지만 이제는 핵가족화로 한 집에 식구들이 많지 않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져 이웃 사이에 공동체 의식이 줄어들면서 김장을 하는 가정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 대신 공장에서 똑같이 만든 김치가 일회용 포장 형식으로 전국 어디서든 팔린다.

 

이대로라면 김치 맛의 지역별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연대감과 정체성·소속감을 증대시킨 매개체’로서의 김장 자체가 옛이야기가 될 날도 머지않을 것 같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 사회가 절대 잃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을 넋 놓고 잃어 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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